성녀와 마녀
박경리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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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마녀 사이에 낀 자네는 정말 보잘것없는 필부로구나.
그렇게 감정을 통어할 줄 몰라서야...


작가가 1960년에 쓴 소설이다. 단편을 쓰시다가 59년 <표류도> 이후 60년에 쓴 연애소설이니 문체에서 구시대적인 맛이난다. 하지만 인간의 이중성을 들여다 보는 맛은 재밌다. '성녀와 마녀' 꼭 나쁜 피가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이중성인 '성녀와 마녀' 적인 기질이 있는것 같다. 어느 면을 더 표출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그사람을 성녀라고 하고 마녀라고 보는것 같은데 딱히 한사람을 놓고 볼때 성녀다 마녀다 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어서 한가지로 결정하기가 무엇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성녀의 대변인 문하란과 마녀이 대변인 오형숙은 두 기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오형숙은 요부였던 엄마의 나뿐 피를 물려받아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마녀취급을 하니 그녀 또한 마녀기질로 더 흘러간듯 하지만 한남자를 가슴에 품고 있었으니 진심은 성녀기질이라 해야할것 같다. 반면에 형숙이 요부의 딸로 밝혀져 수영의 아내자리에서 밀려나 대신 그자리를 차지하게 된 하란은 겉모습을 성녀의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몇 명의 남자가 그녀에게 마음을 문을 열고 남편에게 버림받듯 산 세월속에 자연히 마녀기질로 변하여 가는 단계였던 것 같다.

어쩌면 성녀기질과 마녀기질을 판단하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도 작용한다고 본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환경에 지배를 받는데 여자 또한 배경이 되는 집안환경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느냐에 따라 그녀에게 잠자고 있던 마녀기질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잘 다루고 있는데 이 소설은 약간 단편적이면서 옛 문체의 맛을 간직하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인간의 내면의 이중성을 나타낸듯 하여 지금 읽어도 별 무리는 없다.

다 가진듯 하던 수영의 아버지 안박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수미를 잃고 모든것을 잃은 듯 병원도 넘어가게 나두고 깐깐한 그가 그의 집의 일을 봐주는 신여사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가는 것 또한 세월의 변화이다. 그의 아들인 수영은 요부의 딸인 형숙을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하란과 결혼하게 되지만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품게 되어 그녀도 그도 아무것도 건질것 없는 삶을 산다. 모두가 알맹이를 잃고 빈껍데기로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 자신들의 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그만이다. 그들에게는 대화라고는 없으며 소통이 없다. 단절이다. 성녀도 마녀도 고정관념일 뿐일지 모른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은 변한다. 성녀가 마녀가 될 수 있고 마녀도 성녀가 될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사느냐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이 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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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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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내면에서 오는것...


원작을 읽기전에 영화를 먼저 보았다. 영화의 감흥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서일까 영화와는 약간 다른 원작, 그래도 영화의 여운때문일까 읽는 동안 그 맛이 더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자말이었지만 원작의 이름은 '람 모하메드 토머스' 이다.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적 특성이 모두 가미된 이름 람, 그는 태어나자마자 성당앞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아이다.신부님이 그를 키워 주었지만 신부님마져 그가 여섯살이 되던 해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으면서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삶은 파란만장하게 이어진다. 

그는 태어나면서 부터 길에서 살아 남는 법이라도 익힌것처럼 그때 그때 위기를 기회로 여기듯 잘 헤져나가며 산다. 고아원에서 만난 살림, 타지마할 관광안내원을 하면서 우연하게 가게 되었던 홍등가의 니타,주물공장에서 일하며 살게된 집단주택단지에서 만난 구디야,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던 여배우, 그의 18년의 삶속에는 한시도 굴곡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인도의 생활상과 빈부의 격차, 힌두교와 이슬람의 부딪힘 등이 있지만 그래도 '희망' 을 잃지 않음을 보여주듯 람이 퀴즈쇼에서 우승을 하여 거액의 상금을 거머쥐어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해피엔딩이라 짜릿함이 더하다.

그가 인생역전의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행운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냥 오는 것일까.. 행운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람이 <행운>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삶에 정직했으며 충실했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퀴즈쇼에서 우승을 하지 못했는데 학교구경도 못한 람은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정직하였기에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퀴즈쇼의 정답은 그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정작 퀴즈쇼에서 우승하고 그는 구속된다. 그 앞에 나타난 여변호사, 그녀에게 그의 지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진실되게 털어 놓으며 정답이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녀가 왜 난데없이 나타났으며 누구일까.. 한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의 행운의 1루피를 믿으며 모두를 털어 놓은 후에 그녀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된 람, 그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던 행운의 1루피의 정체, 그의 행운은 1루피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람의 파란만장한 삶과 퀴즈쇼의 긴박함이 잘 어우러져 그와 함께 인도의 역사와 현실이 잘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작가는 인도를 나름의 애착을 가지고 보고 있어서인지 해피하게 다루고 있다. 빈부의 격차가 많이 나서 희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것 같지만 저마다 희망을 가지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람은 '백만장자' 라는 꿈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보다 더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람의 인생 또한 사기 같으면서 현실이었듯이 퀴즈쇼 또한 사기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계산대로라면 8개월여가 지난 후에 우승자가 나와야 수지타산이 맞는데 3개월만에 우승자가 나왔으니 그들에게는 그에게 우승상금을 줄 돈이 없다. 그리고 람의 인생을 약간 꼬이게 만들었던 정체불명의 남자가 그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회자라니...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더 재미가 있었던 듯 하다.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로 결말이 넘 시시한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반전이 있어 원작이 더 나은것 같다. 작가의 처녀작이며 두달여만에 집필했다니 대단하다. 

'옛 친구를 만나는 것은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영화보다 먼저 읽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영화에서의 영상이 원작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아 행복한 되새김질을 하며 읽을 수 있었던것 같다. 영화에서의 그 천진난만한 아역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고 있었는데 원작의 람 또한 오뚜기처럼 지쳐 쓰러지지 않고 그때 그때 잘 버티고 견디어 주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는 희망적인 인물이라 그를 응원하며 읽었던 것 같다. 불황기에 자포자기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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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 오정희 우화소설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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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년 여성의 삶, 일상을 날카롭게 파헤친 그녀만의 언어의 힘..


돼지꿈, 청소년권장도서이면서 우화소설이라고 하여 등장이야기를 청소년의 이야기인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된 여인들은 중년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일상에서 한번쯤 겪어 보았거나 이웃의 이야기로 전해 들었을법한 이야기들이 그녀만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맛깔스럽게 요리가 되어 읽고 난 후의 쾌감을 주듯 한상 그득 잘 차려져 있다.

작가의 책은 몇 권 구매를 해 놓고 읽어보지 않았다. 왠지 선입견이라는 것도 있고 어쩌면 더 뜸을 들였다가 발효가 된 후에 읽고 싶은 생각도 들어서 이 책도 더 미룬후에 읽어보려 하다가 참지 못하고 집어 들었다. 200여 페이지의 적당한 분량은 드라마를 한 편 보는 시간에 드라마를 보듯 읽어도 좋을 단편들이 한 편 한 편 읽고 난 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간다.

<돼지꿈>, 사별한 남편이 사준 넉넉한 코트를 그녀는 버리지 못하고 아끼듯 입고 있다. 예전에는 살이 쪄서 넉넉하던것이 지금은 살이 빠져 넉넉한 코트를 입고 그녀는 간만에 돼지꿈을 꾸어 떼인 돈을 단돈 몇 푼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믿고 길을 나섰다. 기차안에서 코트를 벗어 걸어 놓고 있는데 앞자리에 넉넉한 파카를 입은 애띤 여자가 안고 그녀의 품에서는 아기가 나온다. 그녀는 자신과 아기를 버리고 떠난 남자의 부모를 만나거 가는 길이라면서 아기를 능숙하게 다른다. 아기를 길러 본 경험이 없는 순옥은 아기 엄마가 잠든 후에 칭얼거리는 아기를 이상한 감정에 빠져 얼르고 먹을 것을 주며 아기를 달랜다. 그 모습을 본 아기엄마는 화장실에 간다며 나간후에 감감무소식. 얼마의 시간이 흐른후에 아기엄마가 사라진것을 알은 순옥은 앞가슴에 아기를 안고 넉넉한 코트를 걸치고 돌아온다. 간만에 돼지가 가슴을 치받는 꿈은 이런 횡재를 나타내는 꿈이었던 것이다.

짤막한 이야기들 속에는 우리가 부딫히는 일상이 잘 들어나 있다. 청소년권장도서이기 보다는 중년여성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을 이렇게 날카롭게 잘 포착하여 썼다는 것이 우리 문학의 묘미인듯 하다. 네 파트로 나뉜 '몹쓸 사랑의 노래, 마흔에 다시 쓰는 일기, 이 웬수 같은 나의 가족, 세상이라는 놀이터에서' 에서도 들어나듯 마흔을 넘기거나 그부분의 나이게 걸친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더 가슴에 와 닿은것 같다. 마흔, 내가 걷고 있는 나이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더 실감나게 읽었고 작가 오정희를 처음 만나는 책으로 감칠맛 나는 그녀의 언어에 빠진것 같아 다른 책을 얼른 집어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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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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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그 아름다움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속에 삶의 풍요로움과 사랑,신이 창조한 세계의 다채로움에 대한 존경심과 신앙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가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죠..

이 소설은 시작부터 약간 특이하다. ’ 나는 죽은 몸’, 곧 시체가 말을 하듯 자신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였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을 하듯 이야기를 한다. 화자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부제로 정해진 사물이나 사람들이 모두 화자가 되어 글을 이끌어 간다. 1591년 터키 어느 우물안, 금박세밀화가 엘레강스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그를 죽인자는 그와 함께 세밀화를 그리던 자로 의심이 되고 술탄이 지시한 책을 만들던 에니시테, 남편을 잃고 두 아들과 친정으로 돌아온 세큐레의 아버지도 누군가에 의해 타살된다. 타살현장에서는 마지막 그림 한장이 없어지고 그 일을 맡은 서기관 카라는 세큐레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범인을 밝혀내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세큐레의 남편은 전장에 나가 4년여 아무 소식이 없어 죽은 것으로 알고 아버지 곁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남편 동생인 하산은 그녀를 사모해 그녀와 결혼을 하기 위해 카라와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듯 둘의 관계를 흔들어 놓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일을 맡아 하는 카라를 더 신임해 그와 결혼을 하지만 범인을 밝혀내는 마지막까지 그를 신뢰할 수 없어 합방을 하지 않는다. 세명의 세밀화가인 나비와 올리브 황새 그리고 화원장인 오스만 그리고 커피숍의 이야기꾼과 카라까지 모두 범인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소설은 세밀화처럼 세밀하게 짜여져 있다. 남녀의 사랑과 그림에 대한 화가들의 고집,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이려는 자와 옛것을 지키려는 자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이 잘 짜여진 세밀화처럼 오밀조밀 잘 채워져 있다. 작가의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의 독특함이 더 소설에 집중하게 만든것 같다. 

과연 카라가 범인을 색출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엘레강스와 에니시테를 죽인 범인을 찾아 낼 수 있을까.. 세밀화가 세명의 특징들이 잘 나열되면서 그들의 화풍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며 그림에서 단서를 찾는 험난한 작업, 어찌보면 중간에 손을 놓을 수도 있는 책이다. 하지만 좀더 집중을 해서 읽는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퍼즐조각을 맞추어 나가듯 화가들의 특징과 그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위 깊게 듣다 보면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에게 빠져들만한 소설임을 알게 된다. 작가가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 었고 오스만 제국 시대에 제작된 세밀화를 모사를 하기도 하고 미술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서인지 언어로 그만의 세밀화를 완성한 듯한 작품 <내 이름은 빨강> 은 여운이 길게 갈 작품이다.

이 작품을 만나며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가 좋아져 그의 다른 작품인 <이스탄불>과 <검은 책 1,2>을 구매해 놓았다. 자신의 고향인 이스탄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작가의 또다른 면을 만나고 싶어 다른 작품들도 만나고 싶은데 세밀화처럼 꽉 조여맨듯한 작품을 두권이나 읽고 나니 약간의 쉼을 주고 싶어 좀더 지난후에 읽어보려 한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장자인 오르한 파묵, 그의 작품을 만나는 동안 기분좋은 상상속에 빠질 수 있어 좋았다.

화풍은 세밀화가가 원해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세밀화가의 과거가, 잊었던 기억이 비밀스러운 결점을 드러내는 거라고 가르쳐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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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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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보리’도 주인할머니가 지어주셨어. 내가 생선뼈나 고깃덩어리보다도 주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보리밥을 더 잘 먹으니까 할머니는 그게 신통해서 내 이름을 ’보리’라고 붙여준 거지.나뿐 아니라 우리 네 형제가 모두 다 ’보리’였어...

 - 저런 빌어먹을 놈의 개. 기어이 한마디 하고 가는구나. 사람 오장을 다 뒤집어놓고 가네.
주인할아버지는 팔려가는 엄마를 욕했는데,욕지거리도 슬프게 들렸다.
<>, 녀석의 발바닥을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소설에는 ’보리’라는 개가 등장을 한다. 수몰지구에서 노인내외와 함게 살던 보리는 할머니의 마지막 버팀에도 어쩔 수 없이 굳은 살이 박이도록 뛰어 다녔던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물이 할머니의 배추밭 가장자리까지 차 올라 어쩔 수 없이 노인내외는 큰아들 집으로 가고 보리는 바닷가에서 작은 어선 한 척으로 그날 그날 고기를 잡아 근근히 살아 가는 작은 아들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낯선 곳이지만 바다내음과 주인아저씨의 옷에 베인 휘발유냄새마져 나중에는 그리움이 될 정도로 정을 붙이고 살게 된다. 녀석의 눈을 통해 민초들의 각박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엿볼 수 있으며 개들의 눈에 비친 인간사와 인간의 눈에 비친 개에 대한 현실이 숨김없이 여실히 들어남으로 하여 좀더 동물에, 반려동물로 함께 하고 있는 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것 같다. 나 또한 애완견을 두마리나 키우고 있지만 녀석들의 입장보다는 내 편에 맞추어 녀석들을 키운것 같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늘상 보아온 것들을 허투루 보지 않고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 결코 간단히 보아 넘길 수 없는 버려진 현실의 낙오된 부분들을 잘 찾아 내었다는 것이 작가답다.

그 굳은살은 지금은 물에 잠겨 사라진 고향의 땅이 나에게 가져다 준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보리의 굳은살을 읽으며 개의 굳은살 보다는 난 내 아버지의 굳은살을 생각하게 되었다. 칠십평생을 땅을 일군 아버지의 손과 발에는 훈장처럼 굳은살이 그동안의 피와 땀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아버지에게 고향땅을 떠나 도회지에서 사시라 하면 하루도 결코 숨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신다며 적응을 못하신다. 굳은살로 다져져서 지금도 농사를 짓고 계신 아버지, 보리에게도 굳은살은 아파트의 방안에 갇혀 살기엔 흙내음이 그리운 땅을 밟고 활기차게 뛰어다녀야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굳은살, 그 굳은살은 바닷가 작은 아들의 집에서도 인간의 똥을 먹기도 하고 작은 아들의 죽음을 보기도 하면서 더 다져지지만 녀석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간의 식탁에서 한그릇의 배부름으로 끝이날지 다른 주인을 만나 삶을 연명할지... 

개 발바닥의 굳은살은 민초들의 손과 발에 박힌 굳은살처럼 하루하루가 험난하고 힘들기만 하다. 보리가 악돌이를 만나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와 같은 길에서 사투를 벌이기도 하듯 언제 난관에 부딪힐지 모르는 삶속에서 작은 아들의 급작스런 죽음은 한가정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수몰지구에서 바닷가까지 온 보리의 삶 또한 흔들어 놓고 있다. 굳은살로 어디든 가서 살지 못할까마는 현실의 올가미는 하루하루 목을 조이듯 조여오는 것이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칠수록 더 조여오는 느낌이 들어 슬프기만 하다. 똥개도 아니고 진돗개인 보리의 운명이 현실의 가장들의 모습인듯 하여 마음 아프게 읽었다. 개에 사실적인 감정이입이 마음을 더 아리게 한 소설이다. 한 자  한 자 온 몸으로 이 소설을 썼을 생각을 하면 더 가슴에 와 닿으며 그래서 작가에게 빠져드는것 같다.

’비 오는 날은 나무와 풀들,바다와 산들,그리고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깊은 안쪽에 숨겨져 있던 냄새들이 밖으로 배어나온다. 그 냄새는 짙고 또 무거워서 낮게 깔린다. 나는 비 오는 날이면 하루종일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쩔쩔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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