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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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프다' 라는 요즘 말이 있다. '웃기다'와 '슬프다'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웃프다' 라고 해야 하나. 대한민국의 청춘들이 왜 이렇게 비열하고 남루하고 찌질해져야 하는지.이야기는 IMF에서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신자유주의 광풍을 맞은 때에 웃픈 청춘들의 이야기다. 그야말로 돈 없고 빽 없고 인생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겪어내는 이야기는 웃기기 보다는 슬프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 단어만 겨우 외워 자신들이 그 광풍의 직격탄을 맞아 일자리나 직업도 없이 밑바닥 삶을 산다는 것을 겨우 아는 이들,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미국에서 바람이 불었는데 태평야 건너 조그만 땅덩어리의 나라 그것도 조용하게 살고 있는 시골 구석의 그들에게 '서브프라인 모기지론' 이 날아와 가슴에 꽂힌 것일까.

 

저자의 책은 처음인데 냉철한 사회적 시선이 결코 웃고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안녕 할리>, 할리 하면 거친 남성의 힘을 대변하듯 가끔 타는 이들을 만나면 시선이 머무르기도 하는 거대한 오토바이.우리의 로망은 'S'에 담겨 있기라도 하듯 S대,S전자,S라인의 여자를 로망하던 나는 S전자도 아닌 그 아래 전자에서 S부장에게 사표를 과감하게 던지고 나왔다.할리 데이비슨과 그 복장으로 무언가 도전적인 모습으로 말이다.그러나 그가 사회에 나와 차린 '할리'라는 오토바이가게는 그의 생각만큼 흑자를 내주지 못하고 가게문을 닫게 되고 겨우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인 할리로 퀵배달을 해보지만 그 또한 퀵에는 어울리지 않는 덩치만 큰쓸모없는 오토바이다.자신과 같다. 왜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져야 했는지.자신의 집에서 키우던 할리도 짝을 찾아 나가서 짝을 찾았건만 그의 도착할 마지막은.

 

<조공원정대>, 시골에서 그와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한 만석과 칠성,그들은 나보다 더 떨어지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그들이 직업이랍시고 가지고 있던 것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광풍으로 그 일자리마져 잃고 그들은 백수의 길로 접어 든다. 미선과 붙어 지내던 나는 미선이를 임신시키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미선과 결혼하여 애도 낳고 한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 보아야 한다. 그러기 전에 무언가 뜻 있는 일을 하고 싶다.자신이 원했던 일을 말이다. 그러다 그들이 좋아하는 '소녀시대'를 떠올리고 미선이 애지중지하는 루왁커피를 훔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는 그들,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에 나서지만 소녀시대가 떡하니 그들앞에 나타나줄리가 없다. 고향 선배의 옥탑방에 빌붙게 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서울에 널린 '토니,제리,티파니' 가 되어 서빙일을 하게 되지만 친구들은 고향으로 내려갈 이유가 없다. 나는 미선을 생각하고 내려가려던 찰나 그녀가 아이를 지웠단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단다. 이 서글픈 청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때문에 그의 인생도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광풍을 맞아 온전하지 못하다. 여자에게 버림받든 한 웃픈 청춘이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토니,제리' 로 살아간다고 그들의 인생이 고속도로처럼 광속으로 발전하진 않을 것이다.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배달의 생명은 '속도'다.그런데 요즘은 그 속도보다 더한 '쿠폰'이란 것이 있다. 다른 집과 차별화 하여 저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배달해준다고 하면 고객들은 빛의 속도로 단골을 바꾼다. 나부터도 한집만 단골할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새로운 것을 맛보려 한번씩은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소비자의 입장에서 한가지의 혜택이라도 더 주어진다면 당연히 움직인다.사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움직인다. 번듯한 대학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마치기는 했지만 달리 일자리를 얻지 못하다 피자배달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과 경쟁을 할 업체가 바로 앞에 생겨 그들의 밥줄을 끊어 놓듯 고객을 다 뺏어간다. '삼십준에 OK'라면 우린 그보다 더 빨리 배달을 해야 한다. 사장은 다른 것으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보다는 '속도전쟁'을 외친것이다. 그런데 빨리 가야하는데 민방위훈련에 걸렸다. 경찰은 바로 앞에 있고 시간은 흘러가고 어떻게 해야하나? 정말 난감한 상황에서 '법'을 어기는 이들이 있어 그도 그와 같은 일을 하려다 덜미를 잡혔 지구대에 가게 된 나,그런데 그곳엔 외국인 두 명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그들의 욕이 섞인 언어를 어느 정도 알아 듣는 나,그들도 피자배달을 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 까지 와서 밑바닥 삶을 살고 있다.그들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때문이다. 왜 우리는 모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때문에 일자리도 잃고 집도 잃고 거리에서 헤매야 한단 말인가.자신이 제일 불쌍한 줄 알았는데 그들이 더 불쌍하게 느껴진다. 이곳까지 와서 도둑질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헤드기어 맨> 아버지가 물려 주신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인 '헤드기어' 그것을 하나 남기고 엄마도 판자집과 같은 곳에서 헤드기어 때문에 돌아가시고 만다. 자신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헤드기어만 쓰면 슈퍼맨과 같은 힘이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그가 택한 직업은 밤업소 사장이 거래하는 일수 돈을 받아 내는 일, 고객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는 자해를 하듯 하며 돈을 토해내게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의 몸은 망가져 가고 아이까지 가진 아내와의 아파트 이사 약속은 멀어져만 간다. 그와 함께 일했던 이와 일을 함께 하며 '헤드기어'만 쓰면 힘이 솟는다는 비밀을 이야기 해주기도 하는 헤드기어맨은 더이상 권투선수처럼 머리를 벽에 박을 수가 없어 철거용역으로 일을 바꾸게 되고 자신이 이제 가해자가 되어 그들의 편에 서서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데 그들을 괴롭히는 일을 하게 되다 사장이 놓은 덫에 걸려 그도 철거지의 주민이 되고 피해자가 된다. 용감무쌍하게 총대를 매듯 앞에 서서 지금까지의 노하우로 철거용역인들을 막아내던 그,그리고 그와 함께 일했던 형과의 술 한잔은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된다.

 

저자는 IMF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신자유주의 광풍의 직격탄을 맞은 청춘들이 상실,이별,청년실업,빈곤 등을 그의 힘들었던 시기를 되새김질 하듯 웃프게 그려낸다. 처절하게 빈곤하고 바닥까지 몰려 더이상 내려갈 바닥도 없는 밑바닥의 삶을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개그적이게 풀어낸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청년실업이 50대 실업보다 더하다고 하는데 정말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날로 청춘들은 비싼 등록금 때문에 부모의 등에 빨대를 꼽기도 하고 자의가 아닌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사회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이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힘들다. 주변에서도 '취업' '취업'하니 나 또한 이제 딸들이 졸업을 하면 어떻게 될지 그 미래를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어떻게 되겠지가 아니라 너무도 주변에서 들려오고 보여지는 현실이 어두운 이야기가 많으니 늘 녀석들을 붙잡고 하는 이야기가 '취업'이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취업부담을 안겨주듯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그들의 부모인 우리세대들은 우리의 노후를 생각해야할 시기에 청년실업을 걱정하고 그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던 것이 이제 내 앞에도 닥친 것이다.

 

청년실업은 비단 어느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다.사회적 문제이고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이며 청년들이 살아나야 사회도 발전할텐데 고급 인재들이 백수니 신용불량자니 하는 말로 포장되니 같은 세대끼리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노후도 걱정이지만 취업 또한 우선순위로 거론되는 문제이다. 그들이 자라면 이 사회를 짊어질 가장이 되는데 가장들이 흔들린다면 사회가 온전할까? 아버지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청춘실업으로 보았던 이야기를 보다 넓게 생각해 보면 더 많은 사회문제들이 문어발처럼 연결된다. 사회의 기둥이 되는 청춘들이 잘 되어야 하는데 왜 점점 어두운 면만 들리고 보게 되는지 그들 청춘에게도 밝은 미래가 꼭 오기를. 청춘의 대변인처럼 그가 더이상 슬픈 자화상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젠 밝은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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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리고 오늘,하얀 눈의 세상

 

 

 

 

 

 

 

어제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가 사는 곳의 날씨는 정말 요상했다.비가 오다가 눈이 오다가

그러다 함박눈이 내려서 저녁에는 그야말로 하얀 눈의 세상이 되어 퇴근 시간이 임박한 옆지기가

걱정되기도 했다.여기저기 큰사고 소식이 들려오니 갑자기 내린 눈에 허둥지둥 하는 차들도 창

밖으로 보이고 오전에 갑자기 울집에 오겠다는 친구의 연락이 있어 그녀와의 만남도 오래간만이라

즐거웠지만 그녀 또한 눈이 많이 내려 걱정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할 일이 많아서 얼른 시작했야지 했는데 친구에게 톡,울집에 와서 수다를 떨고 싶단다. 그보단 얼굴을

본지 너무 오래 되었다.밖에서 만날까 했는데 내가 울집으로 오라고 했다.날도 추우니 수제비라도 해

주겠다고 오라고 했더니 친구는 뒷산을 한바퀴 돌고 춥다며 찬바람과 함께 들어섰다.그래서 얼른 따뜻

한 물을 부어 사과레몬차를 대접했더니 너무 좋단다.향도 좋고 비타민C를 먹는 느낌에 정말 좋다며 집에

가서 해봐야겠다고 어떻게 했는지 묻는다. 그래서 레시피를 알려주고 그녀와 수다를 떨며 수제비를 했다.

미리 친구가 오기 전에 연잎가루를 넣고 검은깨를 넣어 반죽을 해 놓았기에 친구가 온 후에는 반죽이 알

맞게 숙정이 되어 떼어 넣기 안성맞춤이다. 뚝뚝 수제비도 떼어 넣고 감자도 납작납작 썰어 넣은 후에

편다시마에 멸치 한 줌 넣고 표고버섯가루도 한숟갈 넣고 라면사리를 넣어 해주었더니 맛있다며 잘 먹는다.

비법이 뭐냐고. 그냥 손맛이지.그렇게 그녀와 뜨거운 수제비를 가운데 놓고 겉절이와 무조림만으로 배

부른 점심식사를 하며 따뜻한 수다를 나누었다.그동안 밀린 이야기에 둘을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며 앉았

는데 밖에는 비가 눈으로 그리고 함박눈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것이다.그녀 집에 갈 걱정을 하며 자꾸 창

밖을 보다 너무 늦으며 도로사정상 힘들것 같다며 일어나 집으로 가고 난 저녁 준비를 하는데 눈이 정말

많이 온다.오늘따라 옆지기가 차를 놓고 회사버스를 타고 갔는데.

 

눈이 많이 내려 딸들 귀가도 걱정되었지만 하루 친구와 모처럼의 수다가 힘들었는지 일찍 눕고 말았다.

에효..체력이 요즘 바닥이다.무얼 하기만 하면 피곤하니. 아침에 일어나니 온통 눈에 덮혔다. 뒷산도

하얗고 아파트 정원도 하얗고 울집 실외기 베란다의 화분에도 하얗게 하얗게 눈이 쌓였다. 실외기 베란다

문을 열고 보니 윗집 베란다에서 흐르던 물이 커다란 고드름이 되었다.울집 베란다에도 고드름이지만

윗집 베란다에 달린 고드름은 파란 하늘과 더불어 시리도록 말갛다. 옆지기는 오늘도 회식이 있다며

새벽 일찍 출근을 했다.차를 놓고 가야해서 일찍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일어나 챙겨주지도 못하고

장갑만 끼고 가라고 했다. 목도리까지 두르고 가면 좋을텐데 싫단다. 추운것보다 나을텐데.아침에

실외기베란다 화분을 보니 파릇파릇 올라오던 적상추와 상추가 걱정,들여 놓아야 하나 하고 방충망을

열었는데 아뿔싸 요것이 흔들흔들...옆지기 오면 잘 맞추어 끼우라고 해야겠다. 그나저나 적상추 들여

놓아야 하는데 안에다 키우면 튼실하지 않은데 겨울이라 어쩔 수 없이 화분에 난 상추들 캐서 집안 화분에

심어줘야 할 듯.아직 겨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하얀 뒷산을 보니 얼른

달려가고 싶은데 추우니 또 움츠러 든다.

 

201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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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달큰 밥도둑 무조림

 

 

친정에서 가져 온 주먹만한 무가 몇 개 있다. 딸들 주말에 깍두기와 생채를 담아 주고 남은 것인데

저녁에 갑자기 [얼큰한 무조림] 이 생각나는 것이다. 옆지기는 삼치나 고등어를 넣고 무조림을

한것을 좋아하는데 옆지기는 늦는다고 하고 난 얼큰한 무조림이 먹고 싶고 그래서 얼른 무 두개를

껍질을 벗기고 싹둑싹둑 큼직하게 썰어서 무조림을 했다. 고춧가루,고추장,청양고추를 넣고 얼큰하게.

추위가 물러설 정도로 얼큰하게 말이다.

 

 

*준비물/ 무 2개(작은 것),편다시마,청양고추,다진마늘,고추가루,고추장,멸치,물엿조금...

 

*시작/

1.무는 깨끗이 씻은 후에 껍질을 벗겨 준다.

2.큼직큼직하게 듬성 듬성 썰어 준다. 그래야 씹는 맛이 있다.

3.썰은 무를 넣고 다진마늘,고추가루3숟갈,고추장2숟갈,느타리버젓,편다시마 물은 조금 넉넉하게

넣어 무가 충분히 익게 뚜껑을 덮고 한소끔 끓여 준다.

4.무가 한소끔 익은 후에 굵은 멸치,청양고추1개를 썰어 넣고 한소끔 더 끓여준다.

5.국물멸치가 아니라 볶아 먹는 멸치로 조금 굵은 것을 넣어 주면 더 구수하고 맛있다.

멸치도 함께 먹으면 생선 맛도 나고 맛있다.

 

 

 

 

 

얼큰달큰한 무조림 정말 밥도둑이다.요거 하나만 있으면 밥한그릇 뚝딱이다.

김장 대 한 겉절이 한접시에 무조림 한접시 놓고 밥을 먹는데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무조림 국물에 밥을 비비고 달큰하면서도 얼큰한 무조림 한조각 얹어 먹으면 밥이 꿀꺽,

정말 맛있다.어떻게 밥이 넘어가는지 모르게 한그릇 금세 비우게 된다.

국물멸치보다 약간 작은 멸치를 한상자 사서 놓고 봉지 봉지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면

이렇게 조림이나 그외 국물요리를 할 때 멸치 한 줌 넣으면 맛이 더 구수해지고 좋다.

된장찌개에도 한 줌 넣으면 정말 구수하니 좋다.멸치 넣었을 때와 넣지 않았을 때 맛이 달라진다.

가을무는 무얼 해먹어도 맛있다.무채를 썰어 무나물을 해도 맛있고 무밥을 해도 좋고

생선조림에 넣어도 맛있고 어묵탕에 넣어도 맛있다. 시골에서 얼마 가져오지 않았는데

요거 무조림을 해먹으면 금방 먹을 듯 하다. 배추와 무를 조금 더 넉넉하게 가져와야

올겨울 밥도둑을 만들어 먹을 듯 하다.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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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야자 꽃이 피었다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중에 꽃이 피면 기분 좋은 것이 있다.

바로 요녀석인 [테이블야자꽃] 그리고 [행운목꽃] [산세베리아] [관음죽꽃]이다 

울집에서 키우는 식물은 정말 많다.베란다 가득 초록이들이니 하루라도 꽃이 없는 날은

없었던 듯 싶다. 요즘은 바이올렛,제라늄,사랑초,부겐베리아가 피고 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요리조리 살펴보면 꽃이 왜 안피나 하고 기다렸던 꽃이

바로 요 [테이블야자꽃]이다.

늘 이맘때 꽃을 피웠던 것 같은데 소식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더 기다려지고..

그러다 반가운 사람과 전화하다 눈을 돌리는데 갑자기 눈에 띈 것,

이거 이거 뭐야.언제 이렇게 꽃이 폈던 거지..

잎사귀 뒤에 숨어서 꽃을 피운 테이블야자,녀석 갑자기 행운이 마구마구 굴러 들어오는 느낌.

정말 기분 좋다.갑자기 집안이 활짝 꽃처럼 피어나는 것 같다.

좋은 일은 이렇게 잎 뒤에 숨어 있다 갑자기 나와도 정말 기분 좋다.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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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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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흰둥이 야만인' 왜 '나르시스 펠티에' 그가 흰둥이 야만인이 되어야 했을까? 이 이야기를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나르시스 펠티에라고 하는 인물이 실제 겪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는데 그는 19세기 중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흰둥이 야만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흰둥이 야만인,백인이지만 그는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하지 못했고 바람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며 옷이라고는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섬을 지나는 이들에게 발견되었다.발견될 당시에도 야만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섞여 있었으니 그가 섬에 남겨진 후 얼마나 그들과 환경에 잘 적응하고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나르시스 펠티에' 그는 구둣방을 하는 아버지와 형과 누이를 둔 집안에서 구둣방은 형에게 물려질터이니 자신은 다른 일을 선택해야 해서 뱃일을 하게 된다. 사춘기 나이에 홀로 거친 뱃일에 뛰어 들게 되고 원양어선도 타게 되었나 보다.그런 그가 왜 야만인들이 사는 섬에 홀로 남겨지게 된 것일까?

 

소설은 나르시스 펠티에가 섬에 남겨지게 된 경위와 섬에서 그를 발견하여 물과 먹을 것을 주며 함께 살아가는 야만딘들과의 생활이 그려지는 한편 지리학자 옥타브 드 발롬브룅의 편지와 함께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며 그의 인생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그가 배를 타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문명인이었던 문명생활을 했다. 뱃일을 하니 거친 그들의 삶을 잘 보여주듯 항구에 들러 여자들과도 밤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표현되기도 하고 배에서 물을 구하지 못해 죽어 나가는,그야말로 거친 뱃사람으로의 일들과 함께 그가 발을 딛게 되는 섬에서는 물을 구하고 바로 떠나려 했는데 그만 혼자 남겨져 죽음도 삶도 아닌 시간 속에서 야만인과 같은 노파의 도움으로 근근히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는 혼자 남겨졌기에 당연히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자신을 구하러 올것이라 생각을 한다. 실제 펠티에는 사춘기 나이에 섬에 들어와 17년간을 로빈훗 아닌 로빈훗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현대판 로빈훗이 아니라 그야말로 야만인아니 원주민들과 어울려 그들과 함께 하나가 되듯 자연을 배우고 익히며 그곳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을 견디며 살아간다.

 

문명인에서 야만인아니 자연의 삶으로 돌아간 그에게 그가 간직했던 '문명'이란 것은 겉옷처럼 다 벗어버리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과 하나가 되 듯 그렇게 그들의 삶을 익혀 나가야 했다. 나르시스의 시선에서 보는 '섬에서의 삶'은 그가 어떻게 원주민들과 하나가 되어 살아갔고 어떻게 견디어 나갔는지 작가의 입장에서 그려 놓은 것인데 사실감 있게 다가온다.그런가 하면 시드니 해변에서 발견되어 지리학자 옥타브의 손에 넘겨져 그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한,부모 형제를 찾아 가기 위한 길과 자신의 뿌리를 찾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17년 전에 죽은 생명과 같은 남과 같은 존재,거기에 문명을 모두 잃어 버려 야만인과 같은 존재이니 가족에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가족에 돌아간다는 것도 고향에 남겨진다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된다. 지리학자 옥타브가 그에게 유아와 같은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면서 그의 기억 저 편에 남아 있는 문명이 다시금 자신도 모르게 몸이 기억하고 있는 상태로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오게 되지만 결코 '섬'에서 '야만인'들과의 삶은 밖으로 꺼내려 들지 않는 나르시스,그에게 섬에서의 삶은 무엇이고 왜 자신의 야만의 삶을 꺼내 놓지 않으려는 것인지.

 

문명인들은 야만인들을 만나면 문명으로 야만을 흡수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야만 야생성이 사라진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도 우리 가까이에서도 그런 일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고 야생성을 잃은 이들은 야만도 아닌 문명도 아닌 삶을 살고 있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혹시 나르시스는 그들의 그런 삶을 존중해서 지켜주려고 더 함구한 것일까? 자신의 과거가 고스란히 묻혀 있는 정글의 삶의 문을 잠금으로 하여 그들을 보호하고 그곳을 그들만의 세계로 남겨 놓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이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르시스의 삶은 정말 누구도 두번 다시 겪지 못할 희한한 삶을 살았지만 정말 인간의 작은 실수에 의해 또한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문명에서 야만으로 그리고 다시 문명으로. 인간이 얼마나 환경 적응에 탁월한 존재인지 몸소 그가 보여주는 것처럼 문명인으로 뱃사람으로 나르시스가 야만에서는 그야말로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고양이 눈을 가지고 야만에 잘 적응한 반면에 다시 문명으로 나오게 되면서 다시 자신의 몸에 저장된 문명인의 삶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내는가 하면 문명 속에서 야만인의 삶을 발휘하여 누구보다 밝은 눈으로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 식량을 확보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야만에서의 능력 또한 가진 두 문명의 함께 공존하는 전천후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런 나르시스에게서 야만에서의 삶을 끄집어 내고 싶었던 옥타브,그는 나르시스의 후견인처럼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문명으로 다시 돌아 온 그에게서 야만의 시간을 끄집어 낸다는 것은 어떤 아픔을 들쑤시는 일과 같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부단한 노력으로 미지의 세계였던 부분들이 더 많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나르시스 또한 문명에서의 삶이 좀더 야생성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옥타브가 아니었다면 그는 '구경거리' 로 삶이 마감되었을 수도 있다. 온 몸에 야만인의 문신을 하고 자신의 모국어도 잃어버린 그야말로 흰둥이 야만인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슈가 되었을 듯 하다. 그런가하면 나르시스와 함께 했던 뱃사람들 또한 그가 섬에 남겨지게 된 일을 은폐하려던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그가 문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문명과 야만의 세상은 그의 존재 하나로 모두 시끄럽게 되었지만 인류학적으로는 큰 족적을 남기지 않았을까.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나와 다른 반문화를 받아 들이고 인정하길 꺼려 하는 이들이 있다.선입견이나 오만함에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던가 나와 다른 것은 한낱 구경거리로 밖에 여기지 않는 이들 속에서 나르시스가 과연 문명으로 돌아 온 삶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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