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제법 많이 오네

 

 

 

 

11월이 정말 정신없이 지나고 있는데 오늘은 첫눈까지 내린다. 제법 많은 눈이 올 듯하고 현재도

눈이 내리고 있다. 11월은 하기휴가를 미루어 가을휴가로 십여일을 보냈기 때문에 정말 정신없고

일이 많이 밀려서 더 정신이 없는데 김장도 있고 동창회도 있고 연말행사가 잡혀 있어 더 바쁜

가운데 집안행사인 생일과 제사가 겹쳐 있더 더없이 바쁜 달이다.토요일에는 초등학교 친구들 

동창회가 있어 참석해야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아니지만 함께 중학교를 다닌 친구들이라 가

깝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하고 싶다고 장소를 잡아 달라해서 몇 곳 추천해주고

그렇게 해서 지난달에 장소를 잡았나보다. 이달 초에 한다고 하더니 수능도 있고 해서 미루다 지난

토욜에 하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울집 바로 옆이라 얼굴좀 보자고 해서 간만에 모임에 참석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친구들도 있다.정말 중학교 졸업때 보고 처음 보는 친구녀석들,몇 십년이

흘러 약간 쭈그러진 상태에서 만나니 알것도 같기도 하고 모르는 얼굴도 있었지만 금새 우린 친구로

돌아가 정말 기분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사는 모습은 가지가지,닮은 듯 하면서도 서로

의 일상은 너무도 다르다. 아이들이 이제 커나가는 친구녀석들은 자녀상담을 하듯 많은 시간을 할애

하여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그런가하면 인생의 큰 굴곡을 겪은 친구는 아픔을 토로하며 자신의 아픔을

달래주길 바라기도 하고...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있을까나마는 우린 그렇게 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하나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다. 시간이 어찌 가는 줄도 모르고 처음 자리한 곳에서 장소를

옮겨 간단하게 다시 사는이야기로 기분 좋은 시간을 가지며 각자의 인생에 따뜻한 친구란 밑줄을 그으며

그렇게 온기의 시간을 보낸 친구들,모두 각자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는 마지막 자리를 뜨며 집으로 향한

시간은 조금 늦은시간이었다. 바로 옆이 우리집이라는 이유로 모두의 뒷모습을 보아야 했는데 다음날이

친정에 가서 김장을 담는 날이라는 것.

 

아침 일찍 알람이 우는데 옆지기도 나도 일어날 수가 없어 조금 더 지체하다 일어나 시골로 향했다.

가는 길에 현충사앞 곡교천변에서 일출도 만나 잠깐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시골집에 가니 벌써

배추를 씻고 있는 식구들,아침을 얼른 챙겨 먹고 김장 준비에 들어가는데 지하수를 쓰는 수도가 말썽,

그래도 모두가 함께 하여 기분 좋게 마무리 잘 하는 김장을 할 수 있었다.큰올케가 아파서 오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아쉽고 걱정도 되고..그런 큰올케를 간호하는 오빠의 모습을 보니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고.

언니와 작은오빠네는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 혼자 계신 엄마가 안쓰러워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하다가 올라

가겠다는 큰오빠와 저녁을 해서 함께 먹고 늦은 시간에 엄마 쉬시라고 하고는 떠나는데 날이 무척이나

춥다. 급기야 비에서 눈으로 그렇게 첫눈이 내렸다. 김장 끝내고 날이 추워 지니 다행인데 오늘은 또

친정아버지제사다.사년전에 먼저 가신 아버지,어제 김장을 하면서도 엄마와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동네분들 오셔서 술을 한 잔 하시며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꼭 울아버지 어디 외출가신 듯한

기분..ㅠㅠ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헛기침 하시며 들어설 듯 하신데 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일찍 가서 도와 드려야 하는데 몸도 아프고 11월 휴가로 인해 많은 일이 밀려있어 맘이 무거워

저녁에 간다고 했는데 첫눈에 날이 추우니 어떻게 하고 계신지..이번주는 식구들 생일이 모두 들어 있어

또한 정신없는 시간일텐데 날까지 추워지고 첫눈까지 내리니 마음이 싱숭생숭이다. 첫눈치고는 눈이

많이 내린다.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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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아산 현충사앞 곡교천변 은행나무길에서 일출풍경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만추에서 갑자기 겨울이 온것처럼 바람도 쌀쌀하고 그야말로 추워 추워..란

말이 제대로인 날이 다가왔다. 시골에 김장하러 가는 길,현충사 앞 은행나무길을 달려 가게 되었는데

은행나무 가로수는 노랗게 물들어 반은 떨어져 내렸고 반은 아직 늦가을임을 알려주는데 말간 해가

저 멀리서 발갛게 떠 오르고 있다. 이른 아침 이 장관을 맞이하는 찍사 몇 명이 있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우리도 지나다 잠깐 길을 멈추고 손이 시렵지만 몇 장 담았다. 하지만 기계의 한계,이런 풍경은

눈과 마음에 담는 것이 더 오래간다는 것.

 

 

 

 

 

 

 

 

현충사앞 은행나무길에서 해넘이도 멋진데 이렇게 일출도 멋지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이렇게 이른 시간 만추의 계절에 이곳을 지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모든 것은 정말 행운처럼

너무도 딱 들어맞는 시간에 놓이게 된 듯 하다. 옆지기는 은행나무길 반정도를 통행금지로 해 놓아

돌아가야해서 더 늦게 되었다고 했지만 그런 일이 이런 행운을 만나게 만들었다.좀더 머물렀다면

좋은 풍경을 더 담을 수 있었겠지만 아니 은행잎이 노랗게 떨어진 길도 걸어보고 싶었지만 빨리

가야해서 서둘렀다.이런 풍경을 만난 것도 감사하며 길을 재촉해야 했다. 은행나무길의 노란 단풍은

다른 곳보다는 조금 늦게 든다.그런 늦은 단풍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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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노릇 사람노릇 -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어 그야말로 책냄새 구수하게 나는 책이다. 이런 책을 왜 오래전에는 읽지 않은 것인지 후회된다. 저자가 가고 난 후 그의 책들을 찾아 읽고 있는 나,문득 이시대에는 이런 노작가의 힘이 필요한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에 쓰인 글들은 우리가 정말 어렵고 힘들다고 했던 'IMF' 그 시대에 쓰인 글들이라 더 따뜻한 위로가 된다. 누군가는 따끔한 말을 해주는 이도 있어야 때론 정신이 번쩍 하고 나는 것이다. 책 머리에 저자가 쓴 '어려운 시기에 책을 내게 되었다. 약속한 걸 안할 정도로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아 그동안 써온 짧은 글 중에서 웬만한 걸 추려보았다.어려운 때일수록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려운 시기에 책을 내는 것이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면 어려운 때일수록 정말 누군가가 따뜻한 위로를 해준다면 영원히 잊지 못하는 법인데 그 시기에 읽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이라도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어느 때나 다 고만고만 하고 여유보다는 늘 마이너스 인생처럼 그렇게 살고 있으니 우린 늘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그런 시기에 저자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다보니 겹치는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롭고 어른들 말씀이 같은 말씀 몇 번 반복하며 하셔도 들을 때마다 구수한 것처럼 그와 같다.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조금 지난 글들이니 어느 정도 연세가 있던 노작가는 '죽음' 에 대하여,자신의 마지막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풀어 놓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자신은 그때 죽음을 예고라도 하듯 '암'에 대하여 혹은 혹시나 암에 걸렸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저자의 남편이나 친정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담담하게 이야기를 한다. 그런 글들이 결코 경박하다거나 노파심 보다는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문제들이고 내 부모님들을 보아도 윤달이 낀 해거나 아니면 동네 친구분들이 큰 병이나 죽음을 맞이했을 때 자신들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시는 것처럼 담담하게 읽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나도 나이를 먹고 있기 때문일까.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도 한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을 테지만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태어남을 준비하듯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죽음도 분명 삶의 일부분 이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나를 토박이 서울 사람과 확연히 다르게 느낄 적이 있다. 내 성격 중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거의 나의 촌스러움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자각할 때이다. 그리하여 고향은 어머니에게뿐 아니라 나에게도 자존심의 근거가 돼주고 있다. 이렇듯 내 고향은 아직도 나에게 살아 있는 모순이다.

 

그런가하면 글쓰는 방법 또한 변천사를 거침을 알 수 있다. 처음 부분을 무척 힘들게 쓰신 다는 것에서 글쓰기를 원고지에 하면 파지를 무척 많이 내는데 종이에서 컴퓨터로 옮겨 가면서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는 386나 586같은 이야기에서 노트북으로 그야말로 시대가 변함을 느낄 수 있고 컴퓨터에 글을 쓰면서도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이 서투르기도 하지만 컴퓨터로 쓰면서의 장점과 단점을 읽어가며 정말 시간이 많이 흘러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 많이 등장하는 친정어머니와 고향 박적골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밌고 시골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간직하고 있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나 또한 시골이 고향이기에 늘 어린시절 동무들과 뛰어 놀던 그 시간들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때의 풍경이며 집주변에 있던 나무며 뒤란에 가득하던 시골스런 꽃이며 그 때 가슴속에 박혀 있던 것들을 지우지 못하고 지금 나 또한 그 때로 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 또한 베란다에 도라지를 심고 더덕을 심고 초록이들을 가꾸며 살고 있는 것은 늘 시골집 뒤란에서 보았던 도라지꽃이 이쁘고 지금도 빛바랜 사진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맛'에 대하여 좀더 까다로워지는 것도 어쩌면 어린시절 아니 고향에서 먹었던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찾아 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시에 살고 있어도 우리 가슴속 한 켠에는 어린시절의 추억의 방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에 대하여 누구보다 강했던 작가와 친정어머니는 자신들이 고향과 그 때 박혀 있던 모든 것들이 표준처럼 현재의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그 때로 회귀하듯 그가 찾아낸 곳은 고향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아차산자락이다. 자신의 열정으로 찾아낸 곳은 아니지만 점점 그곳이 고향과 닮았다는,아직 지우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어린시절의 박적골이 골수에 박혀 저자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아차산 자락에서 또 다시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는 그야말로 깐깐함을 보여주는 것 또한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다.누구나 자신이 살아오고 느끼고 먹었던 것들이 '최고'라고 한다. 기억에 저장된 과거의 것들은 현재의 그 어떤 것도 따라오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삶을 흔들어 놓아도 왜 그 삶이 부러운 것인지.

 

어머니가 전쟁 중에 겪은 악몽 같은 경험으로 미루어 으레 그러려니 짐작한 고향의 모습이 결코 현재 북의 실재하는 고향땅의 참다운 모습은 아니듯이,어머니가 죽는 날까지 이상향처럼 그리워한 고향 역시 지금 현재 이북에도,그밖에 어떤 곳에도 실제할 수 있는 고향은 아닐 것이다.결국 어머니의 애착도 증오도 다 당신이 꾸민 허상에 비쳐진 것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깐깐한 이웃 할머니의 '잔소리'처럼 여기저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는 글들이 저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또 이소리야' 할 수 있겠지만 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에 평생 현역작가로 살지 않았을까? 고향을 닮아 가고 싶었고 고향을 다시 재현해 놓듯 현실을 만들어 가고 싶었어도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음은 그의 글에서도 나타나지만 시간 또한 간극을 좁히기엔 너무 멀리 와 있음을 말해준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볼 수 있다.아무리 발버둥쳐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의 박적골로 친정어머니가 살아 계시던 그 시간 속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다시금 글로 환생시키는 순간에 간극은 좁혀져 물은 다시 제 물길을 찾아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저자의 글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이런 책들이 절판된 것이 아쉽다.저자의 책들을 중고책으로 조금 버겁다 싶을 정도로 구매해 놓고 한 권 한 권 곶감 빼 먹듯 읽고 있는데 참 좋다.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해 놓은 듯도 하고 자신의 일상이 역사를 꿰어 놓은 것처럼 좋은 글이 되었다는 것도 참 좋다.평범한 것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이 시대 어른의 소리이고 어른 노릇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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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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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늘 꽂아 두기만 했던 책을 오래간만에 우연하게 빼들고 읽게 되었다.박완서님이 책은 한곳에 죽 꽂아 두고 한 권 한 권 요즘 파블숙제로 읽어 나가고 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쓴 수필 23편을 모아 놓은 책이라 '2002년 월드컵' 이야기도 나오기도 하여 그 때를 기억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난 작가들의 장편도 좋아하지만 수필이나 단편도 무척 좋아한다. 이런 수필집을 읽다보면 저자의 삶의 일부분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고 좀더 저자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 친근감이 있고 좋다.이 책도 그렇게 읽었다. 다른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는 있는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참 맛깔스럽게 풀어 낸 수필을 읽다보면 '삶이 곧 글이고 소설'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툭하면 옛날타령을 하고 있었다. 옛날 식으로 무친 가지나물과 호박나물, 흰죽과 육젓, 고약처럼 까만알이 잔뜩 든 민물게장.이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식욕의 차원이 아닌 정신적인 갈망 같은 거였다.

 

저자는 '박적골'에서 살았던 어린시절을 기억속에 고스란히 저장해 놓고 그것을 야금야금 꺼내어 글 속에 녹여 냄으로 하여 더욱 글을 맛깔스럽게 하면서도 어쩜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는지 글을 읽으며 늘 놀란다. 기억이란 시간이 흐르면 빛바래게 마련인데 그의 기억속에서는 늘 생생하게 어제일처럼 빛난다.그것이 늘 글에 모든 것을 담아 두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도 해본다. 저자는 어린시절 부족함이 없이 살았던 박적골을 생각하며 나이가 들어서 그와 비슷한 곳에서 살고 싶어하여 아파트에서 산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여 화단을 가꾸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산에도 다니고 나물도 캘 수 있는 아치울에서 여유롭게 살아간다. 다른 것이 여유롭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여유로운,어린시절의 박적골과 비슷한 느낌의 집을 일구며 살아가는 일상이 행복으로 그려진다.

 

아치울 마당의 꽃들도 첫해만 씨를 뿌렸고,그 이듬해부터는 내 유년의 뒤란에 아무렇게나 피던 꽃들처럼 그 자리에서 저절로 돋아나게 됬다.그러나 이름만 같을 뿐 옛날 꽃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게 조금씩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옛날 꽃들은 다 수수한 홑겹이었는데 요새는 채송화도 백일홍도 한련도 다 겹으로 피고, 송이도 크고 빛깔고 현란하다. 옛날보다 더 보기 좋게 종자가 개량된 것 같은데, 내 소원은 화려하거나 신기한 꽃이 아니라 마음 붙일 수 있는 꽃이다.

 

이 책은 그가 함께 어울리던 아치울 친구와 같은 화가와 함께 작업을 하려 했던 것인데 그녀가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계획한대로 나오지 못하고 수필집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그림과 함께 였다면 얼마나 더 멋진 책이 되었을까? 박적골에서는 할아버지가 있던 공간과는 다르게 그의 방이 있던 뒤란은 그야말로 '꽃천지'다. 봉숭아 채송화 분꽃 백일홍...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씨가 떨어져 나고 자라고 꽃 피고 지고.그런 뒤란을 보며 자란 저자는 그 속에서 고향의 아름다움을 더 간직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여 그 때의 꽃들로 화단을 가꾸고 싶어 그야말로 옛날꽃이라 할 수 있는 꽃을 발견하게 되면 씨를 받아 화단에 심고 가꾼다. 텃밭을 일구기도 했지만 아치울에 오는 채소장사 아저씨가 싸게 주시는 것이 더 좋은 듯 하기도 하고 텃밭에 심으면 벌레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많으니 아마도 꽃을 더 심게 되지 않았을까.흙을 일구고 꽃을 가꾸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시간을 가지며 살아가는 아치울 이야기와 그와 함께 하는 세상 이야기는 늘 느끼는 것이지만 맛깔스러우면서도 늘 담백한 밥상을 한 상 받는 느낌이다.

 

책의 제목인 [두부]는 전 전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로 해서 그가 많은 이들에게 두부를 먹게 했지만 그는 감옥에 갔다 나오면서도 '두부'를 먹지 않는 일을 만들고 만다.내가 알기로 감옥에 다녀오면 제일 먼저 두부를 먹게 하는 것은 예전에는 콩이 귀했고 더불어 소금도 귀하니 사찰과 같은 곳에서만 두부를 할 수 있어서 귀한 음식이었던 두부였기에 감옥에 다녀오면 귀한 음식인 두부를 먹인 것이 굳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읽었는데 다른 이들에게 또 그도 감옥을 다녀오고도 두부를 먹지 않았지만 어느 음식점에서 '두부'를 먹는 이들의 풍경을 접하며 맛깔스런 글로 풀어낸다. 저자의 눈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하여 세상을 보는 이야기로 전환을 하면서 날카롭게 냉철하게 때론 꼬장꼬장한 노인네처럼 꼿꼿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그의 글이 살아 있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의 삶은 모두가 그야말로 '글이며 문학'으로 승화하여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다시금 글 속에서 만나는 느낌은 야릇하기도 하고 의미를 모를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무얼까? 그 시간이 벌써 십년이란 시간이 더 지났다는 것이 깜짝 놀라게 한다.거리와 나라를 온통 붉게 물들였던 것이 어제일처럼 생생한데 시간은 이렇게 빨리 흘러서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가 처해 있는 그 순간에는 무척 대단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지나고 하면 점점 작아져 버리는 빛바랜 사진 속의 추억처럼 한 점이 되어 가물가물 스러져 가는 촛불처럼 빛나기만 하니 그 기억속 추억을 따라 한바탕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나 또한 어린날의 그 추억속을 거닐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 정말 기분 좋게 읽었다.

 

나 또한 어린시절에는 꽃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분에 뒤란엔 늘 꽃들이 가득했다.그야말로 시골스런 꽃들인 봉숭아 도라지 함박꽃 호랑나비 백합 맨드라미 분꽃... 봉숭아가 피는 여름엔 손가락마다 봉숭아 꽃물을 들여야 그 시간을 보낸 듯 하기도 했지만 앵두나무에 앵두가 익어갈 때는 한바탕 앵두나무에 매달려 앵두를 따먹어야 했고 호랑나비 꽃이 화려하게 필 때는 씨를 따서 여기저기 던지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고 도라지꽃이 뒤란 가득 필 때는 얼마나 이쁜지.그 기억을 잊지 못해 지금 우리집 베란다 화단엔 도라지를 심어 여름이면 도라지꽃을 보고 있다. 어쩌면 기억이란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지만 그 속에서 놓여나질 못하게 매두기도 하는 듯 하다.글롤 풀어내고 내 속에서 풀여낼 수 있다는 '추억과 기억'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그런면에서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아이들이나 나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본다. 도시와는 다른 여유로운 기억을 가졌으니 말이다.

 

저자가 풀어내는 아치울 이야기는 우리가 나이가 들어 노년에 살고 싶어하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담장안에 매화나무 한 그루 살구나무 한그루 심어 가꾸고 화단엔 봉숭아꽃 채송화꽃 맨드라미 과꽃 분꽃 흐드러지게 피어 꽃 속에서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며 그 시절을 추억하며 자연을 즐기며 사는 삶이란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자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보태져서인가 다른 소설 보다도 더 친숙하고 친근감 있으며 더욱 맛깔스런 밥상을 받고 있는 행복함으로 읽었다. 가끔 가끔 글 속에서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우리말이 나오기도 해서 더 기분 좋은 글이기도 하고 이젠 더이상 이런 글을 만날 수 없어서일까 감추어 두고 몰래 꺼내어 혼자 야금야금 그 행복을 누리고 싶은 글이기도 하다.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울집 베란다에 도라지꽃이 활짝 피었는데 이 책을 만나 어린시절 고향의 추억을 생각하며 더 맛깔스럽게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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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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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들을 일주일에 한 권은 읽어보자는 나름 계획을 세우고 요즘 한 권씩 읽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잘 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을 하며 가끔 한 권씩 읽어 쌓아 놓은 책들 중에 내 안에 담긴 책이 한 권 한 권 늘어간다는 뿌듯함에 읽고 있는데 이 책에는 지난번 읽었던 단편집에 같은 글이 두 편 실려 있어 더 반갑다. 읽은 것을 바로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래도 읽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다시 읽다가 혼자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았다. [남도 기행]과 [섬진강 기행] [백두산 기행] 이 그것이고 다른 것들은 처음이라 그냥 읽어 나갔다. 작가가 생존해서 읽었다면 어떠했을까? 생존과 상관없이 좀더 일찍 읽어보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해도 그래도 지금 읽는 것을 만족한다.

 

친구의 잘못이었는지 고의였는지 광주에서 해남까지의 장거리도 직행버스도 못 타고 수도 없이 정거하는 그냥 시외버스를 타게 됐다. 그러나 그동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조금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내가 지금까지해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로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늘 다정한 어머니 현역으로 글만 쓰시던 분 같은데 국내여행은 물론 해외도 많이 다니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자의든 타의든 가게 된 여행에서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지금과는 조금 다른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많이 느낄 수 있어 좋고 사실감 있고 작가라 그럴까 감상적인 면들도 있어 쏠쏠한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다. 여행기를 읽다보니 내가 하는 여행과 비교를 하게 되기도 했는데 우리 또한 늘 '목적지 위주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목적지만 생각하며 여행지에 갔다가 '에이, 이게 아닌데 뭐이래..'하고 돌아섰던 여행도 있었다.그럴 때는 다른 곳을 연계하며 올라오다가 처음 생각했던 목적지에서 느끼지 못했던 보람을 느끼기도 해서 그것으로 만족하기도 했는데 여행이란 정말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고 추억이라 생각한다.숙박지를 정해지 못해서 헤매었다던가 밥을 제때 먹지 못하고 쫄쫄 굶다가 겨우 컵라면 하나로 떼웠는데 그게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 주기도 한다. 여행은 정말 예기치 못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고 낯선 곳에서 분명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 주는 예기치 못한 느낌으로인해 내가 있는 자리의 소중함을 더 깨닫게 되는것 같다.

 

파스텔조로 사위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그날 온종일 한 번도 공장이나 고층아파트의 회색빛 직선을 보지 못하였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아,바로 그러였구나. 오늘 하루 누린 평화와 행복의 원인이 바로 그거였구나. 그건 소리라도 지르고 싶게 놀랍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내 여행인 <남도 기행>이나 <섬진강 기행> <오대산 기행><하회마을 기행> 등을 보면 계획적인 여행이라기 보다는 무작정 친구와 함께 떠나거나 가족과 함께 떠나도 모든 것을 틀에 맞추어 놓은 것이 아니라 현지에 가서 현지에 맞게 여행을 하여 더 잔잔함을 안겨준다. 지금도 그런 인심이 있는 곳도 있겠지만 그때하고는 분명 많이 달려졌다.지금은 스마트폰시대이고 지자제로 인해 전국은 축제의 현장에 트레킹 코스가 여기저기 잘 정리되어 있기도 하고 아날로그적인 맛이 떨어직도 하는데 저자의 여행기는 구수하면서도 된장국 같은 맛과 냄새가 나서 좋다. 언어의 감칠맛도 있고 저자의 소설에서도 느끼는 그런 생동감이 넘치는 맛이 기행산문에도 넘쳐나 재밌게 읽을 수 있다.그것이 국내 뿐만이 아니라 해외 여행을 하면서도 느껴진다.

 

그 고장의 황혼이 그토록 길고 유정했던 것은 달빛 때문도 낙화 때문도 아니라 섬진강의 물빛, 모래빛 때문이었구나,비로소 알 것 같았다.

 

<백두산 기행>에서는 고향이 이북이라 더 북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계셨을텐데 자신보다 다른 이들이 더 통곡을 하듯 북녁땅을 앞에 두고 느끼는 감정 앞에서 어쩌지 못해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꼭꼭 눌러 왔던 감정이었을까 한뿌리로 느끼는 감정이었을까.고향이 그곳이 아니라고 해도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는 괜히 그쪽 땅만 바라보아도 서늘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섬진강 기행>은 나 또한 작가가 거닐었던 그 곳을 나도 거닐어 보았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섬진강변 벚꽃길이며 '운조루'등 정말 좋았던 곳을 다시 글 속에서 만나는 것은 포근함이고 '공감' 이라 표현해도 되려나.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같은 곳을 거닐었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기분,내가 걸어 왔던 그 길과 시간이 남다르게 느껴지게 된다.

 

책의 제목이 되는 <잃어버린 여행가방>은 어느 나라에서는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경매에 부친다는 것이다. 그 가방에는 별거 별거 다 들어 있겠지만 여행가방에는 다른 무엇보다 여행하며 입었던 꼬질꼬질한 것들이,삶의 애환이 가득 담긴 것들이 냄새를 폴폴 풍기며 들어 있을 것이다.작가 또한 자신의 여행가방을 딱 한번 잃어버렸던,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잃어버렸지만 그 가방에 들어 있던 그동안 자신을 감싸고 있던 '애환' 에 대한 것을 토로한다. 여행가방에 귀중품을 싸가지고 나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나 또한 여행가방을 싸면서 느끼는 설레임과 가방안에는 온통 여행지에서 필요한 것들 ,옷가지나 생필품을 챙기게 되는데 돌아 오는 길에는 가방안에서 나는 케케한 냄새,그것이 삶이고 여행이리라. 떠 날 때는 설레임으로 가득했던 여행가방이 돌아오는 길에는 낯 익는 냄새로 가득하고 다시금 익숙한 삶으로의 회귀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여행가방을 잃어버릴지라도 여행가방을 싸고 싶을 때가 있다.맘만 있고 떠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늘 시간이 없다고 한다.하지만 시간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여유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내 삶에 그런 여유의 시간을 내지 못하다는 것은 한번 내 삶을 뒤돌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문득 저자의 기행산문집을 읽다보니 오랜 친구와 함께 혹은 가까운 이와 함께 계획없이 무작정 기차에 올르거나 시내버스에 올라 목적지를 두지 않는 차창밖 풍경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과정과 추억이 더 알토란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늘 친구와 '언제 얼굴좀 보자.밥 한번 먹자'하고 살지만 일년에 한 두번 보기도 힘들다. 잘 살아 가고 있는 것일까? 삶은 곧 여행이다. 낯선 곳으로 떠나야만 여행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시간이 여행일텐데 목적지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행이란 누구와 떠나든간에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에서 만나는 '낯섬' 의 설레임과 한편으로는 실망감이 주는 여운인지도 모른다. 뭐든 좋다.누군가와 혹은 나 혼자라도 떠나고 싶다. 그곳에서 내 남루한 영혼과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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