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뒷산에서 가을나비와 조우하다

 

 

오늘은 뒷산에 가는 것을 망설였다.주말에 막내에게 반찬을 해다 주려면 시장을 보고 조금 쉬어야

하는데 산에 다녀오면 힘들 듯 한데 주말에 비소식이 있어 망설이다 물한병 챙겨들고 내 기억에 

저장된 페르몬을 따라가듯 그렇게 뒷산으로 향했다.여시가 이틀 동안 산책을 시켜주지 않았더니

나 혼자 간다고 삐지기도 하고 난리다. 날이 좋으니 다녀와서 산책 시켜주겠다고 하면서 안정 시켜

놓고 산으로 향하는데 살짝 더운 듯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어제 코스모스도 담고 가을을 많이

담았으니 오늘은 그냥 순수하게 산행만 하며 가야지 했는데 들어서면서 코스모스와 또 한참을 시간

보냈다.

 

 

 

 

하지만 맘에 드는 사진이 없다..ㅜ 어제 많이 담아서일까? 꽃이 활짝인듯 하면서도 어제와는 다르게

시들은 꽃이 많다.활짝 폈던 꽃이 지는가보다. 그렇게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그래도 코스모스 앞에

있다는 이 시간이 참 좋다. 한들한들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벌과 조우하는 꽃을 보고 있으니 가을은

가을이다.

 

 

 

 

햇빛이 너무 강하니 액정이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 제대로 찍지를 못했다.핑게일까? 숲으로 들어서니

정말 기분 좋다. 풀벌레 소리와 바람소리 가을의 소리와 냄새가 정말 좋다. 숲은 그 계절마다 소리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다. 투덕투덕 바람에 상수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찾아보니 제법 알이 굵은

상수리가 있다. 서너개 주워 주머니에 넣고 괜히 기분 좋은 것은 뭐지.

 

 

 

 

오늘은 정말 순수 목적의 산행만 하려고 했는데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 1시경 산에 갔더니 나 혼자다.

이런 이런..너무 재미 없어 음악을 조금 크게 틀고 따라 노래를 하며 정상으로 향했다가 내려가는 길에

밤나무가 있는 곳에서 서성였다. 그랬더니 이미 지난간 이들이 휩쓸고 가듯 잔해인 밤송이가 무척

많이 떨어져 있는데도 내가 먹을 밤이 있긴 있다.그래서 또 그 재미에 나무 사이를 돌아 다니며 떨어진

밤을 몇 개 주웠다. 가을은 이런 재미도 있는데 요거 너무 재미 들리면 요즘 욕심이 과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할 듯.이곳은 산밤이 몇 그루 있어 산밤 줍는 재미도 있고 난 밤을 줍는 것

보다 이쁜 밤송이 찍는 재미를 찾으려고 하는데 그게 또 제대로 된 것을 찾기가 힘들다. 그래도 가을을

담아 보았다.

 

 

 

 

 

 

 

여긴 나비들의 집합소처럼 정말 많은 나비들이 날아 다니거나 나무에 붙어 있다.처음엔 나뭇잎인줄

알고 천천히 다가가 보았더니 나비다. 나뭇잎처럼 달라 붙어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줄줄이

붙어 있다가 다가가니 날아가고 몇 마리 앉아 있다. 어떻게 보면 징그럽고 어떻게 보면 신기하고.

요거 네발나비인듯 한데 가을나비..암튼 나비가 봄날처럼 날아다니고 있어 한참을 햇빛 속에서 나비를

따라 나도 이동을 했다.녀석들 담으려고 하다가 괜히 쪼그려 앉았다 일어났다..잘 담지 못했다.

 

 

 

오솔길을 지니고 오르막 길을 올라 오다보니 헉헉,그러다 옆을 보니 와 밭인데 한가운데 코스모스가

밭을 일구었다. 무척 넓은 땅인데 코스모스가 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듯 하다.

너무 넓으니 그냥 놔둔 듯 코스모스는 그렇게 제집인양 하늘하늘,그런데 이곳이 철조망이 쳐져서 갈

수가 없어 그냥 담장에 기대어 겨우겨우 찍었다.

 

익모초꽃에 앉은 나비

 

 

 

 

콩밭이며 코스모스밭을 지나 오다가 익모초 꽃을 보게 되었는데 양지녁이라 그런지 거기에 또 나비,

그런데 이녀석 한번 앉더니 일어날 줄 모르고 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꿀을 빨아 먹듯 샅샅이 뒤지며

내려간다. 이런 욕심쟁이 나비는 처음 봤다.내가 지켜 앉아 계속 찍어도 모르고 꿀을 빨아 먹는다.

익모초꽃 꿀은 어떤 맛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완전 욕심쟁이다. 익모초꽃에서 한참을 앉아 있던 녀석은 옆에 꽃으로 옮겨 이 꽃 저 꽃 난리가

났다.일어날 줄을 모른다.덩달아 나도 녀석의 뒤를 밟는 미행자처럼 달라 붙어 계속 녀석을 담는다.

이렇게 또 만날 날이 있을까.날도 좋고 꽃이 한창이라 녀석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듯 하다.

 

 

산의 초입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뒷산을 한바퀴 아니 오르고 내리고 몇 번 하다가 이곳에

와서 꼭 물을 마시며 음악을 듣다 온다.정말 좋다. 시원한 바람과 그늘 풀벌레 소리 모든 것이

자연음이라 더 좋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 크게 틀고 이어폰으로 들어가며 따라 부른다.

아무도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다시 쉬엄쉬어 내려오다 코스모스와 조우했다.

 

 

 

 

 

 

 

 

 

 

오늘 산행은 나비로 시작해서 나비로 끝나는 것 같다. 여기저기 봄나비보다 더 많다. 펄럭펄럭

언제 또 여기까지 쫓아 왔는지 코스모스 꽃이 한들한들 거리는 곳에서도 여기저기 나비가 팔랑이며

날아 다닌다. 녀석들 오늘 내 산행에 동무처럼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맙고 반갑다. 언제 또 이렇게 만나

볼까.벌이 많이 사라져서 농사가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꽃을 보면 벌이 있고 나비가 있다. 녀석

들이 있어야 농사가 튼실하게 결실을 맺는데 녀석들이 우리 곁에서 잘 견디어 주는 자연을 만들어야 할

듯 하다. 산을 다니다보면 여기저기 집안 쓰레기를 가져다 버린 경우도 있고 산행시 가져 온 쓰레기도

있고 정말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있는데 자연이 살아 있으니 우리도 살아 숨 쉴 수 있다. 아름다운

가을 마음과 눈에만 담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면. 주말에는 뒷산에 못 갈 듯 하니 다음주에나

또 찾을 듯,망설이지 말고 가도록 하자.

 

201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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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코스모스 한들한들 뒷산에서 가을을 담다

 

 

 

 

 

구월이 시작되고 날마다 뒷산에 산행을 간다고 한 것이 한번도 가지 못하고 구월을 보내게 생겼다.

그래서 오늘은 날도 좋고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고 얼른 물 한 병 챙겨 들고 뒷산으로 향했다. 날이

너무 좋아 기분도 좋고 발걸음도 가볍고. 점심시간 때라 많이 오가는 사람은 없어서 하나 둘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보니 나말고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산의 초입에는 많은 사람들이 밭을 일구어

이것저것 심어 놓아 결실을 맺느라 무성하다. 도라지 고구마 콩 파 가을김장 무 배추 깨... 많은 농

작물이 결실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길가에 양 옆으로 늘어선 코스모스, 밭작물을 일구느라 코스모스를

모두 뽑아 버렸었는데 그래도 많이 나서 한들한들하니 참 좋다. 이쁘고.

 

 

 

 

 

 

정말 바람에 한들한들 코스모스다. 같은 색만 있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가을에는

코스모스와 갈대 억새를 봐야만 가을을 보낸듯하니 잠깐의 시간이지만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어떤 이는 하이힐을 신고 올라와 코스모스를 한줌 꺾어간다.가을은 그녀 손에서서 환하게 피어난다.

코스모스와 사진 한 장 찍어주려고 했더니 그냥 꽃만 꺾어 들고 가서 뒷모습을 바라 보다가 난 한장

찍어다..ㅋㅋ 가을을 담고 싶어 소녀처럼 혼자서 찍고 또 찍고.

 

여치

 

 

 

 

자리공

 

 

산에 들어서니 가을이 완연하다. 가을바람에 투덕투덕 상수리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가을바람이

나무와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에 나뭇잎 사이로 흩어져 내리는 가을 햇살이 너무도 이쁘고 따사롭게

느껴진다. 여름엔 덥다고 산을 오기 싫어했는데 어느새 가을이다. 들어서는 길에 여치도 만나고 코스

모스도 피어 있고 씀바귀꽃도 고들빼기꽃도 자리공도 보니 가을은 가을이다. 투덕투덕 소리를 따라

발길을 옮겨보니 상수리가 떨어져 있어 몇 개 주어봤다. 큰 상수리도 있지만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있고

아직 여물지 않은 도토리도 있고. 다 같이 자연에 길들여져도 결실을 맺는 시간은 저마다 다 틀리다.

자연도 그럴지니 사람은 또 어떠할까.

 

 

 

 

 

 

맑은 가을하늘이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정말 이쁘다. 정상에 밤나무가 있어 밑을

보니 벌써 누군가 밤을 다 발라가고 빈 밤송이만 있다.잠시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폐부 깊숙히 밀어

넣고 내려가며 버섯을 찾아보니 버섯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다른 곳은 버섯이 많던데

나무가 우거져서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바람에 투덕투덕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들러

보니 알밤이 가끔가다 하나씩 하나씩 있다. 그렇게 하나 둘 줍다보니 주머니 반은 주웠다. 요거면 옆지

기와 둘이서 맛은 볼 듯 하다. 산밤도 있고 알이 제법 굵은 것도 있고.그런데 다른 가만 보니 일부러

나무밑을 다니며 밤만 줍는 분들이 있다.봉지를 가지고 다니며 말이다.나도 사진을 찍으며 옮기다 보이

는 것들 주워 기분 좋았다.참나무들이 가지마다 잎을 달고 가을 해를 향해 있는 튼실한 풍경을 보니

참 좋다. 조금 있으면 하나 둘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을 터인데 이럴 시간도 얼마 없을 듯

하여 담아 보았는데 난 겨울나무도 좋아하지만 이런 푸르른 나무도 좋아하고 단풍이 든 것도 참

좋아한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나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까치도 청설모도 걸아가고 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보다보니 까치가 어슬렁 어슬렁 망중한을 즐기고 있어 살금살금 천천히 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청설모 한마리가 달려가고 있다. 무언가 먹잇감을 발견했나,아님 나를 발견하고..ㅋㅋ

녀석의 공간에 내가 들어 왔다고 뭐라 하는 듯 하다. 숲의 주인은 우리란 말야..라고 하는 듯.

 

 

 

 

 

 

오솔길을 혼자 걸어가니 정말 기분 좋다. 솔바람 솔솔 부는 곳을 혼자 음악을 들어가며 걷다보니

 길 끝이다. 아니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그런데 여름에 아카시 나무가 쓰러졌는지 그 쓰러져 있는 폼이

멋져서 한번 담아 보았다.그리곤 거기에 기대어 서서 가져 간 메밀차를 한모금 마시며 가을바람을 맞으니

정말 시원하니 좋다. 노부부가 걸어 오다가 내가 있으니 그냥 가신다. 그냥 길 끝까지 오시지.밤이나

메밀차 나누어 주려고 했는데 그냥 가시니 혼자 이 좋은 시간 즐길 수밖에.

 

돌콩

 

바람에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길 옆에 큼직한 밤송이가 있어 숲으로 들어가는데 어머니 한 분이

'아고 힘들다.다리가 아파서 힘이 드네..' 하시며 멈추어 말을 하시길래, '다리 아픈데 쉬엄쉬엄 가세요.'

하며 밤이 있나 살피다 보니 떨어진 밤송이가 있어 몇 개 발랐다.어머님은 길으 끝까지 갔다가 다시 오

시며 '밤이 있긴 있나요..' 하신다. 주운 밤을 어머님을 불러 다 드렸다. '요거 다리 아픈데 쉬엄쉬엄

가시며 발라 드세요.' 했더니 큰 것도 주웠다며 고맙단다. 밤 줍는 것도 재주라며 칭찬해 주신다. 당신은

올라오다 상수리 4~5개 주웠다며 보여 주신다. '내 눈엔 밤이 안보이던데..잘 줍네.' 하신다. 별거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돌콩이 완전히 땅을 덮었다. 돌콩을 보다 보니 <달려라 돌콩>이란

소설도 생각이 난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또 코스모스와 조우,그렇게 코스모스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에

담으려 하는데 가을바람에 흔들려 그야말로 한들한들한 풍경을 찍게 되었다. 언제 또 코스모스를

담아볼까. 오늘 산에 나오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듯 하다.날도 좋고 바람도 좋고 정말 가을을 맘껏

담은 듯 하다.이젠 미루지 말고 자주 나오도록 해야할 듯 하다.역시 자연은 넘 좋다. 가만히 그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풍요롭고 행복하다.

 

201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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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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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SF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소설' 이라고 해서 기대도 되고 생각해보니 중국 SF는 처음인 듯 해서 더 긴장하며 읽게 된 듯 하다. 내가 요즘 찾았던 [삼체] 는 부추와 비슷한 채소로 항암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것이라 그런 것일지도? 라는 생각을 가져 보았지만 '삼체' 는 '태양이 세 개가 존재하는' 그런 세계를 '삼체 세계'라 하고 '삼체 문제는 질량이 같거나 비슷한 물제 세 개가 상호 인력의 작용 아래 어떤 운동을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전 물리학의 중요 문제이고,천체 운동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어 16세기 이후 계속 관심을 받았다. 오일러,라그랑주 및 근대 이후 학자들이 삼체 문제에 관한 특수해를 찾아냈다.' 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삼체 문제' 각주를 옮겨 보았는데 이 소설은 과학이 등장하여 과학자와 이론도 많이 등장을 한다.

 

소설에서 '삼체' 는 '삼체 세계'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삼체'라는 컴퓨터 게임에 들어가 중국역사와 과학이 접목이 된 게임 속에서 희귀한 체험을 하며 레벨업을 해 나가는 상황이 펼쳐진다. 왕먀오 박사가 '삼체'라는 게임에 로그인을 하게 된 것은 '과학 경계' 회원들이 자살이나 그외 계속적으로 죽음으로 치닫는 일들이 발생하고 얼마전 그도 보았던 '양둥'이라는 과학자가 자살을 하게 되면서 그도 이 사건에 어쩔 수 없이 끼어 들게 되고 양둥과 함께 어울렸던 인물을 만났다가 그 자리에서 '삼체'라는 게임을 알게 되고 자신도 그 게임을 체험하며 중국과거역사와 과학이 접목된 희한한 세계에 빠져 들게 되면서 고난도에서 살아 남아 과학 경계 회원들,삼체 회원들과 만나게 된다. 한편 양둥의 남편은 양둥의 엄마 예원제를 만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녀는 중국 문화 대혁명 당시에 자신의 눈 앞에서 잔인하게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편에 어머니도 앞장섰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은 그녀가 '홍안' 이라는 기지에서 일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남편사이에 양둥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홍안이라 곳은 무엇을 했던 기지일까?

 

"우선, 삼체인의 탈수 기능은 진짜입니다.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들은 언제든 자기 몸 체내의 수분을 완전히 배출해 마른 상태로 변함으로써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열악한 기후를 피합니다."

 

우리의 역사에도 해가 두 개가 나타나 역사가 바뀌는 이야기를 들었다.개기일식인가를 놓고 두 개의 해로 보았던 조상들은 그것을 '불운'으로 풀이를 했다. 좋은 일보다 나라안팍으로 나쁜 일들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왕이 곧 해, 나라에 해는 하나여야 했는데 두 개가 되니 불운일 수 밖에.그렇다면 태양이 세 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삼체라는 게임에서는 항세기와 난세기 항세기가 이어진다고 보았다. ' 태양 운행이 불규칙한 것은 우리의 세계에 태양이 세 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상호 인력 작용 아래 예측할 수 없는 삼체 운동을 합니다. 우리의 행성이 그중 한개의 태양을 따라 안정적으로 운행할 때가 바로 항세기입니다. 다른 한 개 또는 두개의 태양이 일정한 거리로 들어오면 그 인력 때문에 행성은 기존 운행에서 벗어나 세개 태양의 인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불안정하게 움직입니다. 이때가 난세입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의 행성은 다시 한 개의 태양에 잡혀 잠시 안정적인 궤도를 돕니다. 다시 항세기가 오는 것이죠.' 게임 '삼체' 속에서 항세기와 난세기는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사람들은 그외 맞게 '탈수'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잘못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예원제와 추종자들은 왜 삼체 세계를 접하려 할까?

 

"지금 여루분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게임 삼체는 인류를 배경으로 삼체 세계의 발전사를 시물레이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플레이어들에게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짜 삼체 세게와 게임은 차이가 큽니다. 하지만 세 개의 태양은 진짜입니다. 이것이 삼체 세계의 기본 자연 구조입니다.

 

이것은 예원제의 복수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홍안기지에서 나라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이세상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우주의 생명체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홍안기지에서 우주 생명체에게 그녀의 메세지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돌아 온 답은 “경고한다.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는 순간 그곳의 위치가 파악되어 당신들의 세계는 점령당할 것이다.” 홍안기지가 비밀기지였던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곳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 줄 알았는데 그녀의 복수는 오랜 시간을 두고 이어졌던 것이다. 과거 문화 대혁명시대에 있었던 일을 오랜 시간이 흐르고 계속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무언가 더 큰 힘을 얻으려고 했던 예원제, 그녀는 결국 모든 것을 잃듯 그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듯 한다.소설에서 '삼체'라는 게임이 보여 주었던 가상의 세계가 더욱 매력적으로 작용을 한 듯 하다. 그 속에서 작가가 표현하려는 SF를 표현해 낸 듯 하다. 그것이 과거역사와 과학이 접목되어 더욱 매력적으로 작용을 하면서 예원제 그녀의 복수가 더 설득력 있게 표현된 듯 하다.

 

내가 약한 부분은 다른 것도 많지만 '과학'이라 읽기에 힘들줄 알았는데 오히려 재밌게 읽었다. 가상 게임세계인 '삼체'가 재밌게 다가왔다. '탈수' 하면 바닥에 누워 자신의 몸에서 수분을 모두 뽑아내 스펀지와 같은 몸이 되어 돌돌 말아 둘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그런 탈수된 자들이 다시금 '입수' 하면 입수하여 다시 몸에 수분을 공급받아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 오는 시대로 가려면 과학이 얼마나 발전해야 할까? 예원제의 복수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그들이 '삼체 세계'를 원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그녀의 복수이기 때문에 중국 문화 대혁명도 등장하고 역사와 과학이 교묘하게 씨실과 날실로 엮이면서 한벌의 옷을 만들어 냈따. 결말은 조금 섭섭하게 마무리 된 듯 해서 아쉬웠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거기에 중국 SF를 맛보았다는 것에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역시나 그들의 역사는 이렇게 맞물려도 재밌다. 공자 맹자 갈릴레이 뉴턴이 함께 등장하는 게임도 재밌을 듯 하다. 처음 맛 본 중국 SF 재밌게 읽었다. 조금 두꺼웠지만 약간은 추리적인 것도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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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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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기야마라는 간수이며 검열관이 사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폭력간수로 알려진 그가 누구에 의해서 처참하게 살해 되었는가를 어린간수병인 유이치가 조선인 죄수중에 최치수라는 인물을 지목하면서 일단락 되는 듯 하였다가 스기야마의 기록을 살펴보던 유이치는 그가 확실히 아니라는 무언가 스기야마의 죽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전쟁중이고 이곳은 후쿠오카 형무소며 그는 일개 간수병이다.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말단이기에 '먹잇감'에 불과한 위치이다. 그래도 이 사건에 자꾸만 호기심이 생기는 유이치,정말 스기야마는 소문처럼 폭력간수였을까?

 

모든 활자는 영혼을 가지고 있고 그 영혼은 바이러스처럼 읽는 사람을 감염시킨다. 독서는 치명적인 중독이고 문장의 세례를 받은 자는 평생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책과 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중독자이고 의존자다. 읽지 않을 책을 끼고 다니고, 책을 잡지 않은 손을 공허해하며 오래전에 읽은 구절을 되새김질하듯 중얼거린다. 나는 그런 병증을 겪었고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독은 아마도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죄수들에게 폭력을 늘상 휘두른다고 알고 있던 간수이며 검열관이었던 스기야마의 행적을 좇다보니 그는 활자중독증에 간서치다. 그런가 하면 그는 한방중에 별을 보며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정말 폭력을 휘둘르고 그들에 의해 살해되었을까? 소설은 글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 영향에 대하여 전쟁,형무소,죄수 들의 이야기를 통해 펼쳐 나간다.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살아야 했던 스기야마는 배우지를 못했지만 누구보다 글에 대한 냉철함과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어 '검열관'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윤동주라는 감성이 풍부한 시인을 만나게 되면서 시의 마력에 훔뻑 빠져 들기도 하고 윤동주라는 인물을 통해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섭렵하면서 자책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동주를 보호하고 감시하게 된다.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무언가 정말 철저히 잘못되었다.그는 감성 풍부한 시인인데 왜 그가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밖에 나가 그의 울림 가득한 시가 시집으로 나와야 하고 많은 이들이 읽기를 바라지만 그는 갇혀 있어 시작도 맘대로 못하지만 그나마 그의 처녀시는 형무소 담장 밖으로 나가질 못한다. 그저 불쏘시개로 쓰일 뿐이다. 그런 그가 그의 시를 형무소 담장 밖으로 보내기 위한 묘안을 생각해 낸다.연날리기. 교묘하게 연에 그의 시를 써서 담장 밖으로 날려 보내고 그의 연을 소녀에게 꼭 보관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런가 하면 간호사 미도리는 스기야마가 조율해준 피아노를 연주하여 죄수들과 합창을 무대를 준비하는데 합창곡은 베르디의 <나부코> 중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곡>이다. 피아노를 누구보다 섬세하게 조율하고 감성 풍부한 시와 문학작품을 몰래 몰래 읽으며 책을 사랑하는 스기야마가 정말 밖으로 보여지는 것처럼 폭력간수일까? 그가 왜 폭력간수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은 풀린다. 소장은 제3수용동 조선인을 생체실험을 한 것이다. 전쟁중이라도 그렇지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하다니.하지만 그런 인간도 있고 스기야마처럼 휴머니티가 흐르는 간수도 있다. 그가 죄수를 폭력적으로 다룬 것은 생체실험에서 그들을 살려내기 위한 살아남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다.그렇다면 그를 도대체 누가 죽였단 말인가. 범인으로 지목된 최치수마져 교수형을 당했다고 하는데. 유이치는 자신이 지목한 최치수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범인은 색출하지 못했지만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럼으로 인해 스기야마처럼 윤동주라는 인물을 잘 보호해야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자신의 말로도 스기야마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건 살아 있는 거야. 더럽고,참혹하고, 지옥 같은 이세상에 살아남는 거지. 천사처럼 순수하고, 영웅처럼 용감하게 죽기보다는 악마처럼 악하고 야수처럼 비열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해. 악마처럼 간악하게 살아남아야 천사처럼 착하게 죽을 수 있으니까. 살아남아야 더러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악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상처 입은 사람들이 위안받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1편에서 밝혀졌던 이야기를 2권에서는 왜 그랬는지 반전과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면서 그야말로 스기야마나 유이치와 같은 휴머니티가 그려진다. 전쟁이란 것이 누가 일으키고 누가 피해자인지 그들은 모두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살아남는 자로 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간수건 죄수건 모두가 살아 남기 위하여 이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형무소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동주 또한 날마다 출소할 날만을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견디어 나가지만 그의 몸속에 침투하기 시작한 식염수는 그를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 그가 기억했던 아름다운 문장들을 지워 나간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하늘 별 바람 시' . 아니 잊지 않고 그의 뇌가 마지막까지 간직하는 단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쟁은 그의 청춘과 시를 앗아가고 만다. 스기야마와 동주는 어느 별에서 만나 시를 논하고 있을까. 동주에게서 희망을 얻었던 이들도 동주의 기력이 쇠하면서 형무소는 그야말로 암흑처럼 변해가고 유이치는 후쿠오카 형무소의 잔혹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스기야마부터 윤동주까지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알아야 하고 들어야 한다.

 

살아 남는자가 아름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남아 남았다는 부끄럽다.

스기야마를 폭력간수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겉모습일뿐 그는 그야말로 속은 부드럽고 누구보다 글을 사랑하고 활자를 사랑한 사람이며 휴머니스트였다. 너무 강직한 휴머니스트였기에 그의 생은 꺾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토록 자신의 생을 다하여 지켜주고 싶었던 동주마져 싸늘한 죽음으로 형무소를 나가게 되고 그들이 건설했던 지하 도서관은 곰팡내가 나지만 아름다운 공간이었는데 돈과 욕망에 불타는 이들에 의해 짓밟히고 만다.글고 서로를 조율했던 스기야마와 동주, 소설은 동주보다는 '스기야마'라는 인물을 통해 글이 가진 위대함에 대하여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힘의 원천이 된 것이 천재적인 시인 동주가 있는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참회록이며 그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자화상이다. 이야기 중간 중간 나오는 윤동주의 시와 그외 시는 좀더 교묘하게 이야기에 빠져 들수 있는 안전장치처럼 쓰여 더욱 재미를 더했는가 하면 소설을 읽으며 시집을 읽는 느낌도 주었다.'시는 글의 사원이다' 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참회록> <자화상> 등등 윤동주에 시가 더욱 느낌을 업 시켜주었다.시를 사랑하고 글을 사랑했던 활자중독자였던 살아 남으려 했던 이들은 갔지만 유이치는 살아 남았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부끄럽다. 글로서 저장된 기록에서 그들의 시간을 읽었던 자신이 살아 남았다는 것이 부끄럽다.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아름다운 문장들이,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너무도 많다. 몇 번을 곱씹으며 읽어도 좋을 듯한 문장에 취하고 책벌레이며 활자중독자이며 시인인 그들이 나누었던 인간적인 나눔이 윤동주의 시가 겹쳐지며 더 아름답게 조율이 되었다. 거기에 형무소에서 펼친 합창에서 조선인 죄수들이 부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곡' 과 어우러져 더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그 내면에 인간의 더럽고 추한 욕망이 밑바탕에 깔리며 더욱 전쟁의 잔혹함을 그려낸 듯 하다. 겉모습은 나약하고 비쩍 말라 눈길을 끌지 못하는 동주지만 형무소에서 그가 일으킨 파장은 크고 멀리 갔다. 그를 내세우기 보다는 폭력간수 스기야마를 내세웠기에 그가 더 영롱하게 그려진 듯 하다. 윤동주 뿐만이 아니라 '별'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 하고 어머니를 생각한 이들은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한 장의 엽서는 '희망'이고 기대고 비빌 수 있는 언덕이었다. 전쟁도 아름다운 문장 앞에서는 나약한 문장의 힘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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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정명 작가는 <바람의 화원>을 읽고 빠져 들어 그의 다른 작품인<뿌리 깊은 나무> <천년 후에> <해바라기> <악의 추억> 그리고 <천국의 소년>에 이어 이 작품은 사 놓고 읽지 않고 있다가 더 기다릴 수 없어 갑작스럽게 읽게 되었다.가을에는 다른 계절보다 詩가 더 와 닿고 시 한편이라도 외우던가 쓰고 싶은 계절이라 그런가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를 정말 좋아해서 여고 때에는 윤동주의 '서시 ' 뿐만이 아니라 참 많은 시를 외우고 또 늘 시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한 듯 한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시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그러다 우연하게 詩를 쓰고 싶어 되지도 않는 시를 마구마구 쓰던 몇 년의 시간이 있었다. 감성이란 소녀적 감성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시들지 않고 샘물처럼 솟아는 감성이 갑자기 막 자신도 모르게 솟아 날 때가 있다. 그때가 잠깐이라도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그런가하면 가을이라 시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류근의 <성처적 체질>을 구매했는데 얼른 읽고 싶다.

 

작가는 소설에 '추리기법' 을 많이 쓰기 때문에 더 재밌고 빠져들며 읽을 수 있다.<바람의 화원>에서는 신윤복이 혹시 여자가 아닐까? 라는 의문으로 접근을 하며 풀어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소설은 소설일뿐인데 실제 역사인줄 알고 참 많이 회자되었던 소설이고 이슈였던 듯 싶다. 그렇게 하여 드라마로도 방영이 되고 드라마 또한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된다. <뿌리 깊은 나무> 또한 추리기법으로 쓰여져서 재밌게 풀어가며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어서 더욱 작가에게 빠져 들었는데 <악의 추억>은 조금 그의 맛에서 벗어났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만났던 <천국의 소년>은 탈북 소년의 삶을 통해 정권이 바뀐 북한을 어느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작품을 먼저 읽어 보려 하다가 <천국의 소년>을 먼저 읽었고 바로 읽으려 하다가 기회를 놓쳤는데 가을에 읽으니 시와 함께 더 분위기가 있어 좋다.

 

소설은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병인 유이치의 시선으로 그의 선임이었던 스기야마 도잔 간수병과 죄수였던 시인 윤동주가 시를 통해 나누었던 시간들이 그려진다. 스기야마는 그야말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인물로 문맹이었던 그가 검열관이 될 수 없었지만 그만의 특징인 글과 문장을 보는 날카로움과 냉철함으로 검열관을 맡게 된다. 젊고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힌 일년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소설은 간수병이며 검열관이었던 스기야마 도잔이 처참하게 살해를 당한 이야기부터 시작이 된다.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정말 인상깊다. ' 삶에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 그러나 죽음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죽음,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서.' 스기야마 도잔은 분명 '타살' 을 당했다. 그의 죽음은 살아 남은 자들에게 왜 누가 죽였는지 말해 주어야 하는데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니 감옥 밖으로 소식이 전해진다면 크게 번질 우려가 있다. 소장은 애송이 간수병 '유이치'에게 그 대신에 검열관을 맡으라 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라고 한다.과연 누가 왜 죽였을까? 그토록 무섭고 폭력적인 스기야마를.

 

"마음은 가들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거예요."

 

답장을 받아 쥐고 죄수복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자들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그것이 글이 지닌 힘일지도 모른다고. 모든 변화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변하게 했고, 한 자의 단어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의 겉모습이나 그가 하는 행동을 봐서는 '詩'를 전혀 좋아하지 않을 듯 한데 그의 안주머니에서 누군가의 시가 적힌 종이가 발견된다.왜 그가 시를 안주머니에 품고 있었을까? 스기야마는 그야말로 어린 나이부터 밖에서 굴러 다니며 성장을 하였기에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했다.그렇기에 그는 먹물들을 싫어했다. 그러니 그 속에 윤동주,시를 쓰며 감성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를 그가 좋아할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들은 '지음' 을 하듯 시를 통해서 서로를 읽고 마음을 나눈다.시로 교화가 되듯 서서히 도주가 쓰는 엽서에 길들여지듯 스기야마는 도주의 글을 읽으며 문학과 글과 시와 윤동주에게 빠져든다. 스기야마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피아노 조율도 누구보다 섬세하게 하는 인물이며 문맹이었지만 늦게 글을 배워 무서운 속도로 문학에 빠져 들었다. 욕을 달고 사는 인물이었지만 윤동주는 그야말로 그는 온 몸으로 시를 내뱉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욕도 시가 된다고? 이해할 수 없는 스기야마이지만 윤동주의 글을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빠져들며 감옥의 분위기 또한 젊은 청년으로 인해 변화하는 것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죄수와 간수병이다.

 

"말씀 언言 변에 절 사寺,시詩는 말의 사원이지요.".......

 

"시는 영혼을 비추는 우물이에요. 우리는 어두운 영혼의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던져 진실을 길어 올리죠. 그리고 시로부터 위로받고, 시로부터 배우며, 시를 통해 구원받아요." 

 

일본이 패하기 바로 전,그러니까 해방이 되기 전 해이니 감정이 그야말로 최고조에 달해 있던 때라 간수병들이 조선인을 대하는 것은 처참했다.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삶은 처참하고 죽어 나가는 일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속에서 독방에서도 살아 남아 절뚝 거리며 걸어 나오는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아름다운 시와 함께 간수병과 죄수는 서로를 이해하며 글로 마음을 나누듯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한다. 하지만 일본인과 조선인 죄수와 간수병이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는 대치 상태에서 서로에게 선을 긋고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스기야마의 죽음은 유이치에게 모든 것이 전임되며 그가 덮고 있던 것을 파헤쳐 나가는 형상이 된다. 윤동주의 시집을 불태워야만 했던 스기야마,그로인해 자책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라도 윤동주의 시를 외워 길이 남겨 주고 싶었다. 그만큼 그의 시는 울림을 주었다.그에게 울림을 주었으니 분명히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울림을 줄것이라 생각하는 정말 폭력적인 사람인 스기야마의 삶을 1권에서는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이정명의 소설은 팩션이지만 진짜 이야기처럼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사실과 같은 이야기들이 휘감아 돌며 자꾸만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윤동주가 화자가 아닌 삼자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시인'을 그리고 있다. 그라는 인물은 형무소에 어울리지 않았고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다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는 스기야마의 생각처럼 그는 형무소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글을 정말 쓰고 싶어하는 젊은이에 불과하다. 그가 쓰는 글은 긴 글이 아니지만 한 문장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시킨다. 글의 힘은 대단하다. 폭력성이 강한 악마 스기야마를 변화 시킨것을 보면 그에게 정말 큰 힘이 있는 시인임에 분명하다. 비록 스기야마에 의해 불쏘시개처럼 한 줌 재로 변해버린 詩이지만 그의 시는 모두를 밝혀주는 불쏘시개나 마찬가지다. 2권으로 빨리 달려가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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