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과 함께 치맥,이런맛 처음이야

 

간장파닭 18000원

 

 

 

옆지기가 집근처 치킨집에 가서 [치맥]을 먹고 보고는 맛있다며 언제 한번 가자고 노래하듯 했는데

나와는 기회가 되지 않았고 딸들이 방학을 맞아 내려오고 한번 나가서 먹잖다. 나야 더운데 밥

안하면 정말 좋지.'오케이 무조건 오케이~~^^' 그가 퇴근하고 바로 준비를 하고는 집근처이고

치맥을 먹을 것이라 차를 가져가지 않고 넷이서 걸어서 갔다.덥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맛이 함께

하는 맛이 아닐까. 정말 간만이다. 아니 처음이다. 딸들이 다 컸어도 함께 나가서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말이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막내는 술을 안마시길래 물었더니 한 잔은 할 수

있단다.그래서 파닭에 생맹주 두 잔 시켜서 시작했다.

 

녀석들은 잠깐 외출했다가 들어오며 떡볶이에 순대 밥버거를 일인분씩 사와 조금씩 나누어 먹은

전적이 있어서 조금만 먹는다고 하면서 나갔던 것이다.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녀석들 굶주린것처럼

잘 먹는다. 객지에 나가 있으니 먹을 기회가 부족하다며 영양보충이란다.힐링의 시간이라며 엄마

아빠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그렇게 하여 간장파닭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없어져 버렸고 생맥도

금방 비워져서 옆지기가 부족한 표정이길래 하나 더 하라고 했더니 냉큼 웃으며 다시 시킨다.

그렇게 하여 순살로파닭에 생맥 하나를 더 시켜 먹었다.

 

순살로파닭 18000원 

 

딸들은 뼈를 발라먹기 싫어한다.막내는 잘 발라 먹는데 큰녀석이 뼈가 있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순살로파닭으로 했더니 모두가 좋다며 잘 먹는다. 이곳은 사장님이 참 친절하시고 서비스도

잘 갔다준다. 무와 샐러드 접시가 비며 바로바로 채워 주셔서인지 인근에 아파트가 많은데 사람들이

북적북적,거기에 이벤트도 많이 해서인지 사람들이 많다. 옆지기와 가끔 와서 먹어야겠다. 간단하게

먹고 동네 한바퀴 산책하고 들어가며 모두 소화가 될 듯 하다. 이 날 무척 배가 불렀는데 산책은 안하고

다시 카페로 가서 [팥빙수]와 커피를 마셨다.

 

 

 

 

카페에서 팥빙수는 순전히 옆지기가 먹기 위해서 시킨 것이다.작은 것 하나 시켰는데 6000원,

사이좋게 떡 한 쪽씩 나누어 먹고 옆지기가 홀랑.딸들은 아이스크림위에 에소프레스를 얹은 커피를

시켰는데 큰놈은 좋아하고 막내는 쓰다고 싫다고 하고.큰딸은 요즘 커피내리는 것을 배우러 다녀서

커피에 관심이 많아 요걸 시켰는데 큰딸과 난 잘 먹었는데 쓰다니.. 깔끔한 맛.이곳 카페는 평생교육원

으로 대학과 연계하여 커피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 그런지 집 앞 카페는 사람이 없는데 이곳은 바글바글,

써비스는 조금 떨어지는데 그냥 괜찮은 카페라 다음에 딸들과 한번 더 와봐야겠다.팥빙수나 아이스커피

마시러.딸들이 내려오고 가족이 함께 모여 움직이는 날들이 점점 늘어나고니 경제는 구멍.그래도 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

 

20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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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하우스
캐슬린 그리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흑백티비로 보았던 <뿌리>라는 흑인 노예들의 삶에 대한 영화는 정말 대단했다.오래도록 '흑인 노예'하면 <뿌리>를 떠오렸고 등장인물인 '쿤타킨테'를 떠올리게 했다. 노예해방,남북전쟁에 관한 영화나 소설을 많이 접했던 것도 그 시절이 아니었나 한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주방의 대장격이나 마찬가지였던 인물인 풍부한 '흑인 마마'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들은 흑인 노예이면서 백인과 생을 함께 하듯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벨'이라는 '키친하우스'에 사는 흑인노예는 '빅 하우스' 에 사는 주인님의 숨겨둔 딸이다. 그런하면 그곳에 주인이 데리고 온 아일랜드계이면서 부모를 모두 잃고 오빠는 노예로 팔려가고 여덟 살 난 소녀인 '라비니아'는 흑인 노예 속에 노예로 들어오게 된다. 키친하우스와 빅하우스 사이에 백인노예인 '라비니아'가 있는 것이다. 그녀가 들어 오고부터 톨 오스트의 담배농장 역사는 파란만장하게 흘러간다.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흙탕물과 같은 역사였으나 더욱 휘오리바람에 휘말린듯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야기의 시작은 거대한 참나무에 걸린 '노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왜 거기에 걸려 죽게 되었을까? 그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라비니아와 엘리' 는 어떤 인물일까? 라비니아는 부모를 잃고 이 농장에 주인에게 팔려오게 된 것이다.그녀는 심한 고통으로 인해서인지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오빠의 존재 또한 오랜시간이 흐른 후에 기억을 하게 되고 찾으려고 하지만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거기에서도 그녀의 비극은 예상 되고 그녀는 백인이지만 흑인 노예들이 살아가는 키친하우스에서 벨을 엄마로 여기며 파파와 마마 벤 그외 노예들과 가족처럼 어우러지면 살아가게 된다. 벨은 농장주의 숨겨진 딸이지만 그녀는 해방문서를 들고 이고승ㄹ 떠나고 싶지 않아한다. 가족같이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길 원한다. 농장주는 집을 오랫동안 비우며 배를 가지고 먼 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농장은 '랭킨'이라는 감독자와 가정교사의 간사한 혀에 의해 좌지우지 되기도 하고 '마사 마님'은 늘 아편에 길들여져 있어 자신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그녀의 어린 아들은 가정교사와 감독관에 의해 나쁜 길로 인도되고 있다.그런 마셔가 동생을 그네에게 떨어지게 해서 숨지게 하고는 사고가 일어나고 마사마님은 더욱 아들을 버려두기도 하고 아편에 중독되어 간다. 주인이 돌아와 농장을 경영했더라면 좀더 노예들도 편안한 생을 살았을 것이고 농장도 모두의 삶이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갔을 터인데 그러지 못한 운명에 놓이게 된다.

 

'네, 주인님,맞습니다. 주인님.' 이게 내가 하는 말 전부였어.너희들, 날 자세히 봐라. 어떻게 하면 빅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까 말고는 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잖니. 그곳에서 살아내기 위해. 그리고 너희를 내 곁에 두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거야.

 

흑인과 백인 사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라비니아는 노예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들의 삶을 자신의 삶처럼 받아 들이고 적응하며 가족처럼 지내면서 자신이 백인이라는 잇점보다는 이곳에서 그들과 어울려 살 수 있다는 것에 더 행복해 한다. 하지만 점점 삐뚫어지는 마셔,그가 학교에 가게 되고 주인이 농장에 돌아오게 되지만 짧은 시간은 허망하게 흐르고 주인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들의 운명도 급무살을 타게 된다.마셔는 이모네에게 맡겨지듯 해서 순탄한 청년시절을 보내는가 하게 하기도 하고 라비니아도 이모네로 거취를 옮겨 그곳에서 백인으로의 예절과 교양 공부를 하여 톨 오스크의 키친하우스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이젠 백인으로의 삶을 누리는 예절 바른 숙녀가 되고 우여곡절 끝에 마셔와 결혼하여 그토록 그리던 '집'이라 할 수 있는 농장으로 돌아와 농장생활을 하게 되지만 행복은 순간이고 마셔의 이중적인 생활과 방탕하면서도 폐인과 같은 생활이 이어지며 농장은 겁잡을 수 없이 기울게 되고 모두의 삶은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어찌보면 이야기는 마셔가 벨을 아버지의 '창녀'로 생각하면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그의 '누이'라는 것,하지만 그것을 모두 끝이 난 상태에서 알게되고 운명의 시계바늘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고 그는 모두의 표적이 되고 만다. 그의 힘을 누군가 꺾을 수 있었다면 농장과 그에 딸린 식구들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부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선대에서 많은 재산을 불려 놓았다고 해도 밑에서 그 재산 간수를 하지 못하고 방탕하게 모두 털어 먹는 경우가 있다.어려움을 모르고 자랐거나 위에서 하던 '방탕'을 그대로 답습하듯 똑같이 재현하면서 재산을 들어먹는 경우가 있는데 마셔의 경우가 그렇다. 어찌보면 그런 아들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한 '엄마'의 어긋난 사랑 때문에 빚어진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의 아들을 거부했던 마서 마님,죽은 자식에게만 애착을 가지고 놓으려 하지 않고 실제 살아 있는 아들은 한번도 보듬으려 하지 않았던 그녀의 삶 또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그들의 삶에 휘말린 '라비니아'와 그외 노예들 또한 비극적인 삶을 살지만 그래도 그곳이 자신들의 집이고 가족이라 여기며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다른 소설과 다르게 '노예 해방'이나 '노예제도' 에 대하여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 노예 벨과 백인 노예 라비니아의 삶을 통해서 가족처럼 지냈던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듯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숨막힐 듯 이어지는 이야기 때문에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종일 '키친하우스'를 붙잡고 읽다가 마지막 손에서 덮는 순간 왜 그리 허망한지. 불타 없어진 빅하우스의 잔해처럼 내 가슴에 남겨진 것은 시커먼 재처럼 허망하기만 했다.마마의 삶이나 라바니아나 그외 노예들의 삶이 아우성처럼 들려 오면서도 언덕 위 커다란 참나무에 걸린 마마의 죽음처럼 '비극'은 더욱 극대화 되어 시야에서 아니 뇌리에서 사라질 줄을 몰랐다.언제쯤이면 여운에서 벗어날까.분명 라비니아와 그녀의 딸 엘리 그리고 살아 남은 노예들은 톨 오스크에서 더 나은 '농장' 을 만들며 행복하게 살아갔을 터인데 그들이 키친하우스와 빅하우스에서 복닥복닥하며 질곡의 삶을 살아가던 그 때가 더 깊게 남는 것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그럴까? 가까이 있는 비극을 뒤덮은 '희극',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희망이겠지만 결코 먼저 간 이들이 남기고 간 비극이 헛되지 않는 시간의 밑바탕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작가 '캐슬린 그리섬'은 <키친하우스>가 첫 소설이라는데 정말 굉장하다.어느 한 부분 막힌 부분이 없이 집중하게 하기도 하지만 첫 소설이라 믿기지 않을 모든 것들이 그녀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흑인 여성 메리'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니 이 작품 또한 나오면 꼭 읽어봐야겠다. <키친하우스>에서 벨과 라비니아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살아 남아 다시 톨 오스크의 농장을 일으키는 주역들이 된다. 그녀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것도 아니고 인종도 틀리다. 그녀들의 다음 이야기를 써도 재밌을 듯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키친하우스 후편이 나온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라비니아는 흑인노예들의 거처인 키친하우스에서 자랐고 흑인을 부모 혹은 가족으로 여기며 살았기 때문에 농장의 주인이 되어 그들을 부린 다는 것은 힘들다. 어린시절 그들을 대했던 모든 것들이 온 몸에 남아 있기 때문에 마셔처럼 그들을 갑과 을의 관계로 대한다는 것은 어려움을 주지만 그것이 훗날에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인간의 존엄성, 갑이라는 입장에서 흑인은 그저 '재산'이나 마찬가지다.그들의 신체 일부를 손해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해도 재산의 일부이기에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진 껍데기로 작용을 한다.하지만 그들 속에서 자란 라비니아에게는 그들은 재산이 아닌 '인간'이고 '가족'이고 그곳이 '집'이다.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되는 소중한 존재이다.인간의 존엄성을 아는 라비니아와 그렇지 못한 마셔의 충돌로도 보이는 소설은 흥미롭다.그런가하면 잡초는 강하지만 온실 속의 화초는 비바람에 잘 꺾인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무게감이 있는 책이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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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정원] 청경채 꽃 피고 도라지는 꽃몽오리

 

청경채 꽃

 

실외기 베란다에 청경재가 꽃이 피었다. 장맛비가 지나고 정말 화창하고 파란 칠월이 열렸다.

비와 바람에 실외기 베란다의 도라지와 더덕 적상추 그외 것들이 강한 바람에 나붓끼며

고생을 많이 해서 여기저기 휘어지고 모양이 흐트러졌다.그런 속에서도 청경채가 꽃을 피웠다.

집안 베란다에 있던 것을 몇 개 뽑아 실외기 베란다로 옮겨 심었더니 처음에 잘 크는듯 하더니

문제는 영양부족인지 조금 크다 꽃몽오리,그래도 첨 보는 청경채 꽃이 이쁘네.

 

 

 

 

도라지

 

장맛비가 지나고 나더니 도라지가 하루가 다르게 꽃몽오리와 색이 보인다.

이제 하루 이틀 사이면 필 듯 하다. 하얀색은 벌써 몽오리가 많이 부풀어

내일 정도면 터질듯 하다.어젠 바람이 너무 거세서 끈으로 묶어 주었더니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며 휘어지더니 그래도 조금 안정을 찾았다.

파란 하늘에 도라지꽃이 피면 정말 이쁜데 올해는 줄기 하나에 한송이가 아니라

여러개의 꽃몽오리가 올라 오고 있어 내심 기대된다.

 

작년에 씨를 받아 화분에 다시 뿌려 주기도 했는데 

언제 씨가 떨어졌는지 다른 화분에도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가 나서 자라고 있다.

참 생명력이 강하다. 잘 크기도 하고.

올해도 이쁜 도라지꽃을 맘껏 볼 수 있겠다.

 

20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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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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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독 '숫자' 제목의 책을 많이 만나는 것 같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을 읽었기에 '보증수표'처럼 그녀를 믿고 미리 주문을 해 놓았던 책이라 더 빨리 읽고 싶었는데 다른 책들에 조금 밀렸다. '28' 이란 숫자는 가만히 뒤집어 보니 '82' '빨리빨리 이 재난 속에서 탈출하여 생 그 속으로' 라는 느낌처럼 다가왔다. 요즘 '재난소설'도 많고 '재난영화'도 많고 신종바이러스에 의해 인류가 멸망해가듯 특히나 강력한 신종바이러스에 주목하기도 하는데 소설은 '인수공통전염병'으로 개가 사람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급속히 번져 그야말로 도시전체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그 속의 아수라장과 같은 곳에서의 다섯 명의 사람과 한마리의 개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사람하고 동물이 함께 걸리는 전염병, 이를 테면 광견병이나 이볼라 같은 아니, 어쩌면 이볼라보다 훨씬 강력할지도 모르지.잠복기가 짧고 경과도 몇 배 빠르고,개가 개한테, 개가 사람한테, 사람이 사람한테,사람이 개한테 전염시키는 게 모두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점에서.드림랜드 안에서만 세 가지 경우가 나왔으니까.

 

알래스카에서 썰매꾼으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이 사랑하던 개와 스승의 개까지 죽음에 몰아넣게 된 재형, 그 일로 인해 알래스카를 떠나 '드림랜드' 에 와서 수의사로 일하게 되지만 그 땅은 이름처럼 '드림랜드'가 아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땅이 된다. 그의 알래스카에서의 일이 와전되듯 하여 그의 명예를 그야말로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하게 되는 개 한마리로 인해 그의 삶은 진창으로 끓려 들어간다. 개의 주인인 의사와 그의 아들 박동해,광기로 똘똘뭉친 그의 저돌적인 광기의 가속도를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마져도.

 

"풍랑은 풍랑에 맡겨두고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다."

 

인수공통전염병은 어느 아줌마의 제보로 찾아가게 되는 집의 남자와 번식견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곳을 탈출하는 하는 한마리 늑대,아니 개는 마지막 순간까지 '복수'의 끈을 놓지 않아 재형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존재가 된다.개와 사람은 정말 오래전부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이어오고 있다.나 또한 반려견을 12년을 키우고 있고 이 소설을 읽는 중에 반려견을 시골에 데리고 갔다가 '사고'를 당해 반려견인 여시가 죽을 뻔한 아찔한 일을 겪에 되어 우연인가? 하며 갸웃뚱했다. 이 소설은 제목처럼 지난 28일에 <28>이란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여시까지 사고를 당하니 이런 일이? 했다. 다행히 죽을 고비에서 잘 견디어준 여시는 상태가 조금 나아져서 나도 이 소설을 마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개에서 옮을 수 있는 병인 '광견병' 말고 이런 병도 있을까? 물론 우린 어느해 '소와 돼지'를 살처분해야만 했다. 살아 있는 생명들을 땅 속 구덩이에 파 묻어야 하는,그 일로 인한 소설들도 몇 편 만나보게 되었고 그 뉴스를 접할 때 정말 가슴이 아팠다.그런가하면 그 후의 일들은? 우리에게 전염이 전혀 없을까 하는 걱정을 낳기도 했던 살천분을 이 소설에서 또다시 마주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그것이 소와 돼지가 아나라 우리가 반려동물로 키우는 아주 가까운 동물인 '개'이기 때문에 더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녀는 비로소 눈 위에 뿌려진 작은 핏자국들을 볼 수 있었다.좀 전까지만 해도 새하얀 눈길로만 보였는데.시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시선의 차이였다. 그것은 한 인간이 속한 세계의 차이와도 같았다. 그의 세상에 는 털 없는 원숭이 따위는 들어설 틈이 없는 듯했다. 그녀의 세게에서는 털 달린 동물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태어나고,싸우고,사고 치고,병들어 죽어가는 털 없는 원숭이들이 주요 테마였다.

 

인수공통전염병이 돌고 28일,사람이나 개나 모두 살고자 발버둥친다. 하지만 '화양'이란 그 불볕의 땅에서 살아난 생명은 과연 얼마나 될까?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늪처럼 작가는 개와 사람에게 '생'이라는 행운보다는 '죽음'을 안겨준다.그것도 정말 처참하게 말이다. 자신이 쓴 기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형을 만나야 했던 윤주는 재형의 '화이트 아웃'이라는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듯 함께 전염병의 그 도시 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되고  119구급대로 자신의 아내와 아기만은 살리고 싶었던 기준은 모두를 잃고 재형의 희생 속에서 겨우 절뚝발이 삶을 이어가게 된다.그렇게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 나머지 삶이 과연 행복할까? 그런가 하면 윤주는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었던 재형과 함께 하며 색안경을 벗고 그의 '진심'을 보게 되면서 진정한 기자와 진정한 사람을 찾았다고 하는 순간에 모든 것을 잃듯 한다. 혼자 남겨진 삶,행복할까?

 

"욕망이 없다면 잃어버릴 것도 없어.잃을 게 없으면 두려움도 없고.드림랜드에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잃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적어도 그때보다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어.그런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야."

 

재형이나 윤주 기준 수진등 굵직한 희생의 인물들 외에 박남철과 박동해 부자의 인간의 탈을 쓴 광기의 인물들 또한 선과 악으로 만나는 재미로 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며 스릴감을 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아버지에 의해 '광기의 괴물'로 성장한 '동해'는 재형에게 품은 광기가 자신의 아버지에게로 그야말로 사회를 향한 광기처럼 화양의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어가듯 여기저기 화염병을 던져 불바다를 만들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자신의 엄마나 아버지까지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마져도 그 속에서 빠져 허우적 거리는 인물로 결코 악 또한 그 땅에서 더이상 담쟁이처럼 자라지 못하도록 죽음으로 마감을 한다. 이상하게 개나 사람이나 살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죽음을 향해 달려가게 되는 도시 화양, 그 땅이 28일 동안 살리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면서도 잔혹하고 진저리칠 정도로 리얼리티하면서도 더욱 방대해져 있다.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재형을 링고를 그렇게 죽여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게 됐고 그속에서 하나의 질문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삶이란?'

 

한 생명 한 생명 처절하게 꺼져가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더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갖게 된다. 그들이 모두 화양 땅을 떠나 가지려 했던 '생명'의 삶을 우린 살고 있는데 열정적으로 살고 있을까? 화양 땅이란 어쩌면 욕망의 광기가 빚어낸 우리의 악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악 속에 갇혀 있는 선은 어느 순간 '악으로 물들어 버리듯 선을 행하던 이들마져 악의 전염병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것을 전율이 무서움이 밀려온다. 분명 세상은 그러하지 않을진대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인간이 인간에게 개가 개에게 개가 사람에게 사람이 개에게 전염병을 옮기듯 빨리빨리 우린 현재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욕망을 키운다. 헛된 욕망은 화를 부르듯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고 자신을 옮아매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다. 그 사투의 리얼리티를 28의 숨막힘 속을 달려나와 날숨을 크게 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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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스티커 도감 붙였다 떼었다 재미있게 만드는 스티커 도감
한영식 글.사진, 김명곤 그림 / 진선아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이 어릴 때 '스티커' 공부를 하던 시기가 있다. 어린아이들은 스티커놀이를 정말 좋아한다.물론 우리집 아이들도 그렇게 숫자와 글씨를 익히기도 하고 공부에 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이 책은 '곤충' 을 스티커 놀이를 하면서 주변의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곤충들을 스티커를 붙여 나가면서 [나만의 도감]을 완성할 수 있는 책이다.

 

 

 

스티커북도감에서 맞는 그림을 찾아 곤충도감에 붙이면 나만의 도감이 완성된다. 그림이 무척 선명

하여 붙이는 순간에 도감으로 거듭나기도 하고 선명하니 자연에서 만나는 느낌이다. 나도 산에 가거나

자연에 나가면 꽃,나무,곤충등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보기도 하고 사진으로 남기기를 좋아한다.

지난번 식물원에 갔다가 만난 '하늘소'와 '이름 모를 나비'을 이 책에서 만나니 기쁨,그렇게 자연과

한발 더 친숙해짐녀서 자연을 더 지키게 되는 것 같다.

 

 

스티커를 붙이면 선명한 도감책이 되는 것 보이죠.책은 [땅에서 만나요] [잎에서 만나요] [꽃에서

만나요] [나무에서 만나요] [물에서 만나요] [밤과 낮에 만나요] 와 [ 곤충의 한살이] 와 [곤충의

애벌레와 어른벌레] [미로놀이]로 되어 있다. 아이들이 재밌게 놀이형식으로 배우는 자연책이다.

너무 어렵게 만나는 자연은 힘들고 지치게 만들지만 이렇게 놀이하듯 만나는 자연은 더 재밌고

신나면서도 머리에 쏙 쏙 들어오기도 하고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어 다시 붙여볼 수 있으니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내가 만남 [남색초원하늘소]

 

이런 책은 애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좋아하는 나도 정말 재밌게 붙였다. 이름을 다 알지

못하지만 붙이면서 한번씩 읽어보니 재밌는 이름도 있고 겉모양에 맞는 이름도 있고.스티커를 모두

붙여 놓았으니 뒷산에 갔다가 만나는 곤충들 이름을 모를 때는 얼른 펼쳐 보면 될 듯 하다. 한번

활용하고 버리는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도감]으로 보는 책으로 자연과 좀더 친해질 수 있는 즐거운

놀이 도감이 되는 기회가 되는 책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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