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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병 ㅣ 범우고전선 7
키에르 케고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999년 9월 20일 월요일
고신대학교 2학년 때이다. 늦깍이로 대학이 들어와 독서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일년에 300권에 가까운 책을 읽어 댔으니.. 독서 말고도 한 것이 거의 없는 대학생활이었다.
그러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들러 이 책을 샀다. 오래되어서 닳아지고 낡은 책이었다. 얼마 주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읽으려고 몇번을 시도하다 다른 책 때문에 뒤로 미루어 결국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다 2009년 1월 6일 화요일이다. 책꽂이에서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단번에 읽어 내려가지는 못했다. 너무 바쁜 일정 때문에... 2009년 3월 10일 화요일 밤 10시 38분 일독했다. 10만에 일독한 셈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다.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 들었던 그 유명한 책이다. 인용하는 것은 .. 절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겨가다 보통 책이 아니라는 것을 금새 눈치챘다. 천재였다.
그리고 이렇게 메모해 두었다.
"이 세상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하늘의 평안을 얻는단 말인가?"
또 메모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외부로부터 오는 구원 복음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절망..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럼 키에르케골이 말하는 절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절망이다.
다른말로하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는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은혜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왜?
너무 단순하고 싶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들은 그것은 받아 들이지 못한하고 말한다.
그는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제왕과 비천한 날품팔이와 비교한다. 왕이 날품팔이에게 대사를 보내 나의 사위가 되어달라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제왕이 작은 호의를 나타냈다면, 이 날품팔이는 수비게 이해할 수 있고.......날품팔이꾼이 제왕의 사위가 된다는 따위는 정말로 너무나도 분에 넘치는 일이다..........그러한 경우에도 그 남자에게 감히 그것을 믿을 만한 충분히 겸손한 용기가 있을까?....그런 용기를 가지지 않은 자는 좌절할 것이며,.....[그러한 일은 도무지 나에게는 너무 높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은 당치않는 일처럼 생각된다]"
절망이란 다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며,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다.
크나큰 호의를 작디 작은 호의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면 받을 수 있다. 너무 큰 호의이기 때문에 이해할수 없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위대한 제왕이 나같은 품팔이를 사위로 맞이한단 말인가? 이건 장난이다.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들의 절망은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도망가려 하거나, 안주하려는 것 또한 절망의 한 형태이다.
답은 신앙이다. 즉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수납하는 것이다.
은혜의 수납은 자신을 죽이는 것.. 즉 죽음이다. 예배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마지막 부분에서 인용한 말씀들을 주의깊게 생각해 보자.
신은 말한다. [나를 보라, 여기에 인간의 참모습이있다.] 그는 덧붙여 말한다. [그러나 명심하라 동시에 나는 신이라는 것을, 나에게 좌절하지 않는 자는 행복하리라]
[나에게 좌절하지 않는 자는 행복하리라. 나는 가난하고 버림받아 인간의 손에 내맡겨진 고독하고 비천한 인간이다.(예수님의 성육신) 나에게 좌절하지 않는 자는 행복하리라.]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살과 피를 먹어야 산다는 것을 두고 한다음 제자들에게 한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