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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 - 아기 안에 잠든 언어 능력 깨우기
로버타 미치닉 골린코프 외 지음, 문채원 옮김 / 교양인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다시 잠깐 동안의 이주를 준비하면서, 책상에 쌓여있던 여러 읽다 만 책들의 자투리들을 읽어 치우고 있다. 이 책도 작년 2월경까지 읽다가, 아이의 발달 단계를 넘어선 장에 접어들어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고 감도 오지 않아 덮어두었는데, 제때 다시 꺼내 읽을 걸 하는 후회가 된다. 당시에 남겨둔 리뷰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695033.
책은 생후 첫 3년 동안 아이가 겪는 놀라운 (언어) 발달 과정을 다룬다.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장. 태아~생후 3개월: 울음으로 소통하기, 2장. 4~8개월: 옹알이 시기, 3장. 9~12개월:언어 전 단계 커뮤니케이션, 4장. 12~18개월: 언어 생활의 시작, 5장. 18~24개월: 어휘 폭발 시기, 6장. 18~24개월: 간단한 문장 말하기, 7장. 24~36개월: 문법 폭발기, 8장. 24~36개월: 사회적·문화적 언어 학습.
첫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가 있거나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 부모님이라면, 얼른 한 권을 구해(안타깝게도 품절되었다) 책이 알려주는 실험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아이의 발달 과정에 능동적으로 동참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와 파트너, 또 아이가, 그리고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한 "온 마을"이, 한마음으로 하루하루 쌓아나가는 '언어로 지은 하나의 우주'를 한결 생생하게 관찰하고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책들이 많지만, 그중 단 한 권의 육아서를 꼽으라면 (아직은) 이 책을 고르고 싶다. 부모가 아이와 어떻게 진지하고 성실하게 '대화'하여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충분히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대화 소재가 되는가에 관한 내용에 눈길이 간다(책 189쪽, 369쪽 이하). 글쓴이에 따르면 책을 읽어주기에 너무 이른 나이는 없는데,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거나, 여러 제약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은 시간의 격차가 적게는 40배에서 많게는 70배, 100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슬프고 충격적이다.
외국어 학습에 관한 설명도 단호하고 설득력 있다(책 44쪽, 131쪽, 312쪽, 318쪽 이하). 갓 태어난 아기들은 모든 언어의 모든 소리를 인지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태어난 지 8~10개월 정도가 되면 모국어 습득에 불필요한 음소를 구분하는 능력을 급격히 쇠퇴시킨다. '결정적 발달 시기'는 사춘기 이전에 끝나고, 외국어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외국어를 '외국어로서' 배우는 나이가 되기 전이라면, 두 개(혹은 그 이상) 언어를 배우는 것은 한 개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특히 각 언어가 (대화 상대방에 따라, 사용 장소에 따라) 완전히 분리된 환경이 가장 완벽하다. 어린아이들에게 두 가지 이상 언어를 배우게 하면, 어휘가 협소해지고 문법이 부실해져 도리어 말이 늦게 된다는 믿음은, 세상의 절반 이상이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마당에 재검토되어야 하는 신화에 불과하다(벨기에, 스위스, 캐나다 같은 다국어 국가는 언어 학습이 중요한 교과 과정이며, 초등학교에서 여러 언어를 가르친다).
매 단계 단계 감동적이고 놀라운 실험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책 49쪽은 갓 태어난 아기들을 대상으로, 눈, 코, 입 등을 여러 방식으로 배치한 얼굴 그림들을 보여주어 '아기들이 사람 얼굴에 얼마나 끌리는지'를 조사한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놀랍게도, 한 번도 사람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신생아들이 제대로 그린 사람 얼굴을 더 좋아했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람 얼굴을 찾는다. 다행히 나는 아이가 일요일에 태어나 준 덕분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와 첫 번째로 눈을 맞춘 사람이 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저런 실험을 보면, 출생의 순간, 첫 만남의 경이로운 순간을 아빠로부터 박탈하는 악랄한 직장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아가, 이 책이 생후 첫 3년을 중시하고 있는 것처럼, 가급적이면 부모들에게 3년의 육아휴직, 또는 적어도 단축근무를 보장하는 사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리투아니아 프로농구 잘기리스팀의 감독 인터뷰가 담긴 다음 유튜브 영상도 참조. "아이 때문에 결장, 이게 정상입니까?" 기자 질문에 농구 감독의 감동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iGbavpyh6yQ
책이 권유한 실험들을 일일이 수행하지는 못하였지만, 다행히 작년에 읽을 때 책이 하라는 대로 아이의 초창기 어휘 사전을 일부 정리해두었다. 예컨대, 사자와 호랑이는 "어우", 고양이는 "아우", 할아버지는 "하", 바이올린, 바지는 "바" (발도 "바"인데, 발음이 미묘하게 달랐던 것도 같다), 별은 "쁄", 책은 "부", 카메라는 "카", 양은 "잉", 시계는 "아" (사과, 악어도 마찬가지), 물은 "암" (마시고 나서 내는 소리) 같은 식이다. 아이에게 예전에 네가 이렇게 말했다고 알려주니 기억이 나는지 안 나는지 깔깔깔 웃으며 무척 좋아한다. 단어를 제일 앞 음절 한 글자로 말하던 아이가 어느덧 "이건 밑동이 하얀 자작나무야.", "우리가 봤던 나무는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야." 같은 제법 복잡한 문장도 구사하고, "자동차를 오래 타서 ○○○ 지쳤어. ○○○ 지루해.", "아빠가 같이 안 자서 서운했어." 같은 감정 표현도 한다. 대견하다.
아이의 언어를 다루는 책인 만큼 옮기기가 상당히 까다로웠을 텐데, 번역이 상당히 좋다. 영어 음운이 아니라 상응하는 우리 말의 예를 적소에 옮긴이 주석으로 달아주셨다. 전문연구자가 번역하셨나 싶어 찾아보니 그렇지는 않으신데, 육아서를 많이 옮기시긴 하셨다.
글쓴이의 다른 책들에도 자연히 관심이 간다.





한마디로 아기들은 탁월한 패턴 탐구자다 - P39
아기의 행동을 의사소통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받아주면 결국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 부모는 아기에게 "그래, 네가 뭔가를 말하려 하고 네 마음을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엄마는 믿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기의 의사소통 시도를 정당화해주는 것과 같다. 또한 부모는 아기가 더 좋은 의사소통 수단(단어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의사소통 방법을 배우려는 아기의 시도를 존중해주고 보답해주기 때문이다. - P139
그렇다면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가 말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문장을 만들어라. - P281
[제2외국어로 영어를 하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Jacqueline Johnson과 Elissa Newport 교수의 연구 결과,] 영어에 노출된 햇수가 같은데도 3~15살[에 영어를 배운 사람들의] 집단이 [17~39살에 영어를 배운 사람들의] 집단보다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게다가 같은 집단 안에서도 더 어린 나이에 영어에 노출된 사람이 문법에 더 능숙했다. 다시 말해 3~7살에 영어를 배운 사람들이 8~10살에 배운 사람들보다 실력이 더 뛰어났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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