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작년 7월쯤 읽고 정리하지 못한 책... 이 책보다는 아래 『미국 헌법을 읽다』가 신선하고, 수작(秀作)이다. 다만, 지식소매업에 오래 종사하셔서 그런지, 그럴 듯하게(이야기가 되게) 썰을 풀다가 사실관계를 틀리는 경우가 보인다(번역과정의 오류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는 일이다. 자료를 꼼꼼히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로 검증하여 읽고 쓰는 훈련을 하지 않은 분들은, 대중서를 많이 내거나 언론에 자주 노출되어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들을 좋은 학자, 심지어 그 분야 최고 권위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나 학문적 역량과 대중적 글쓰기 재주는 같이 따라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매단계에서 양질의 지식이 유통될 수 있으려면, 도매업의 튼튼한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최근 들어 대중들이 소매단계 유사학자를 업고(책 한두 권 읽은 것을 가지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하여 (그 분야를 10년 이상 연구한) 도매업자들을 물어뜯고 공격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슬픈 일이다. 성숙한 토론이 되려면 다른 영역에 대한 존중을 깔아야 한다.


  이는 토크빌이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첨단학문과 문화, 예술적 성취, 순수(= 비실용) 지식을 귀족주의 사회만큼 추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평균적 지혜'라는 관점에서는 민주주의 사회가 귀족주의 사회보다 수준이 높다(p. 130). 토크빌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는 차이를 별로 따지지 않고, 세부를 꼼꼼하게 파고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p. 228). 미국에서 발달한 '실용'학문, 즉 응용과학과 기술은 과거 유럽 귀족사회가 만들어낸 기초과학의 순수지식에 터 잡고 있(었)다. 순수한 기초지식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기초가 무너지면 응용과 기술은 금세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된다. 토크빌은 이것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 보았다(p. 225).


  지금처럼 경제가 상당히 성장, 발전한 상황에서 토크빌과 같이 일도양단의 결론을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열린 공론장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자유롭게 오류를 검증, 수정하는 분위기에서라면, 첨단의 순수학문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다양한 경로로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순수과학은 막대한 투자가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이 분(양자오)의 책들에는 나름의 미덕이 있어, 유유출판사에서 낸 다른 고전강의 시리즈에도 흥미가 간다. 어디에 중점 두고, 어떻게 지식을 체계화하는지가 우리에게 익숙한 요소나 방식과 달라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읽은 지가 오래된 탓에, 갈무리해 둔 대목을 주로 '밑줄긋기' 식으로만 정리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채가 사라지면 그와 함께 비참한 생활도 사라진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채를 지닌 프랑스 사회에는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이 공존한다." (...) 민주주의 사회와 민주주의의 효과는 즐거움을 줄이고 편안을 늘리는 것이[다]. - P128

혁명의 충동, 집단적 열정이 격앙되는 와중에 사람들은 자유, 특히 고도의 개인적 자유와 유능한 정부라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기본적으로 모순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유능한 정부는 먼저 공공질서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개인 행위를 구속함으로써 개인 행위가 집단이 추구하는 목표에 합치되도록 요구합니다.

(인용자 주: 읽을 당시에는 선뜻 수긍하지 못했던 대목인데, COVID-19에 대한 각국의 관리방식, 특히 우리의 성공방식을 보며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 P149

"인류가 제정한 법률 가운데 이토록 사형이 많은 경우는 본 적이 없다." - P158

토크빌이 프랑스 독자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그토록 두려운 대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건 프랑스에 시민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토록 오래도록 대혁명이라는 동란을 겪었음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시민의 기초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인용자 주: 유보적으로 읽었던 부분이나, 시민을 ‘형성‘하는 운동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곱씹어 생각할 대목이다.) - P169

느슨한 정부라야 분산되고 세세한 행정이 가능[하다]. - P173

따라서 사법권의 상대적 위계는 입법권과 행정권보다 높습니다. (...) 토크빌의 책에서는 행정권의 위계가 삼권 가운데 가장 낮아서 사법권이나 입법권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 행정권은 입법권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작동하지 입법권에 도전할 수는 없습니다. - P187

토크빌은 프랑스에서 흔히 유행하던 ‘민주주의는 혁명에서 온다‘는 관점을 철저하게 뒤집었[다]. "미국이 민주주의 사회가 된 것은 미국에서 혁명이 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10

"모든 세대의 미국인은 새로운 사람이고 새운 종이다. 그들은 옛사람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 전범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세대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므로 진정한 구속력을 가진 정전(正典, canon)이란 것은 사라졌다. 정전이 없으니 내면화되고 일치된 언어 규율이 없어지고, 언어와 문자를 운용하기 위한 연구도 없어지며, 과거 유럽의 정확하고 연구된 언어, 문자와 문학도 없다." (...) "미국은 문학이 없는 곳이다. 적어도 유럽인이 인정할 만한 문학은 없다. 미국에 문학이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평등하고 민주적인 정치 구조 아래에서 만들어진 사회의 필연이다."

(인용자 주: 오늘에 와서는 언어의 이런 유연성이야말로 미국 팽창의 큰 비결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똑같은 영어를 쓰지 않고, 그것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다. 아래 기독교에 관해서도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 P232

토크빌은 기독교가 현대 사회에서 넓게 분포해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상대적으로 이슬람교가 너무나 많은 일과 사소한 것까지 관여해서 신자가 지켜야 할 규약이 너무 많아졌고, 이것이 현대 생활과 강하게 충돌하여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선택하고 이슬람교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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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교향악 펭귄클래식 39
앙드레 지드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책도 아래 리뷰도, 베토벤이나 전원교향곡과는 무관한 이야기)


  집을 책장으로 두르고 책을 겹겹이 꽂았는데도 집이 책으로 가득 차 보관할 공간이 없다. 산 책을 또 사는 일이 자주 생기고, 책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힘들다. 박스 안에 들어가 잊힌 책들이 많다. 한동안 서재를 떠나 있었던 터라 틈틈이 책장을 정리하며 어디에 뭐가 있었는지 상기하고 있던 중...

  리뷰를 쓰지 않은 이 책을 발견했다. 작년 예비군 훈련장에서 읽었다. 군복 옆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 책을 챙겨가는 편이다. 박태원의 소설을 읽은 해도 있었고 랭보를 읽기도 했다. 대기하는 시간에 틈틈이 읽다 보니 맑게 잘 읽히지는 않는다. 그날 바로 메모하고 정리하지 않았더니 어렴풋한 느낌-약간의 '혐오'와 분노-만 남아있다.

  전자책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 책을 조금씩 버려야 하나도 싶다. 누가 버린 책을 줍고 모으긴 했어도 책을 버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아기가 '도서관'이라 여기는 서재에 드나들다가 책이 와르르 쏟아질까 걱정도 된다. 어떡하나.


  우리말로 옮기면 그 연관이 드러나지 않지만, 목사, 목자 pasteur (pastor), 그러니까 '파스퇴르'는 전원교향곡 La Symphonie pastorale (Pastoral symphony)이라 할 때 전원 pastoral과 같은 라틴어 단어(목동, 풀 먹이다)에서 왔다.


  아래 '밑줄긋기'에서 지드의 사도 바오로(바울)에 대한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교리와 관습이 근원을 떠나 도그마에 빠지는 것을 비판, 경계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지금도 예수를 팔아 인간적 잇속만 차리며 신도들을 오도(誤導)하는 늑대같은 무리들을 너무 많이 본다.



사흘 전부터 계속해서 눈이 내리더니 길이 막혔다. - P9

‘정신은 자주 마음에 속는다‘ - 라로슈푸코 - P81

"예수의 구원의 복음이 성 바울의 교리적 도덕주의(moralisme doctrinal)를 받아들인 교회들에 의해 왜곡되어 버렸고 심각하게 변조되었다." - 앙드레 지드 (작품해설 중에서) - P115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뜻에 반하는 기독교(le christianisme contre le Christ)‘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에서는 예수보다는 성 바울이, 복음서보다는 바울 서(書)가, 자기들이 믿는 그리스도보다는 교회가, 신앙보다는 윤리가, 미래보다는 관습이, 그리고 사고의 자유보다는 교리가 더 중시되고 강조됨으로써 예수의 기독교 정신이 성 바울의 교리에 의해 변질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 작품해설 중에서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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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히 유익했다!


  제1장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 - 행동경제학의 탄생




  제2장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으로 행동한다 - 합리적 결정의 어려움




  제3장 휴리스틱과 바이어스 - '직감'의 기능




  제4장 프로스펙트 이론(1) - 리스크 상황 하에서의 판단




  제5장 프로스펙트 이론(2) - '소유하고 있는 물건'에 구속됨




  제6장 프레이밍 효과와 선호의 성향 - 선호는 변하기 십상




  제7장 근시안적인 마음 - 시간선호




  제8장 타인을 돌아보는 마음 - 사회적 선호




  제9장 이성과 감정의 댄스 - 행동경제학의 최전선

    1. 감정의 움직임




    2. 신경경제학

    3. 진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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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이야기다 보니, (우리 감성에서는) 살짝 삼국지 느낌으로(?) 각색되었는데...

  일단 국내서에서는 (의외로) 잘 접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아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 서점에서 역사 코너를 가보면, 이른바 Founding Fathers 일대기를 요리 다루고 조리 분석한 책들이, 말 그대로 매달 '쏟아진다'. 하나의 대중 장르로 자리잡은 것이다. 우리도 3.1운동과 임시정부, 제1공화국 시기를 재조명하는 연구가 진전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독립군 총사령관으로서 병력을 손에 쥐고 있던 조지 워싱턴이, 1783. 11. 25. 영국군이 물러난 뒤 12월 지휘권을 내려놓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사실이나(위 책은 여기까지만 다룬다. 관련 자료 https://www.mountvernon.org/library/digitalhistory/digital-encyclopedia/article/resignation-of-military-commission/),

  분위기와 여건상 얼마든지 세 번째 임기를 도모할 수 있었음에도 1797년 물러나 낙향함으로써 미국 대통령은 중임만 하도록 하는 '전통'을 확립한 것 등은 생각할수록 놀랍다(어느 정도는 본인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예감한 영향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만일 그가 세 번째 임기 중에 사망한다면 미국 대통령직이 종신직이라는 인상을 줄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그는 1799. 12. 14. 버지니아주 마운트 버논에서 사망했다).


  지금은 수정헌법 제22조가 명문으로 3선을 금지하고 있지만, 그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조지 워싱턴이 확립한 관례와 전통을 후대 대통령들이 따른 것일 뿐이었다. 조지 워싱턴보다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감히 두 번 넘게 대통령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나. 수정헌법 제22조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사상 처음 3선에 나서고 1944년 선거로 4선까지 하였다가 네 번째 임기 시작 석 달도 안 되어 뇌출혈로 사망한 후인, 1947년 의회를 통과하여 1951년에야 각 주 비준절차를 마쳤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장기 재임할 수 있었던 것이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정세 때문이었음은 물론이다. COVID-19는 각국 레짐과 국제정세를 또 어떻게 바꿔 놓을지... 여하간 초대 대통령으로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기준을 세운 것이다.


  사실 당시 미국 대통령이 상대해야 했던 카운터 파트너들은 모조리 유럽 군주들이었기 때문에, 가급적 긴 임기로 보조를 맞추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 때 살던 유럽인(미국인)들에게 사망하거나 추방당하지 않은 '퇴직 군왕'이란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요순(堯舜)의 선양(禪讓)처럼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역사서에 따라서는, 요임금은 순임금에 의하여 감금, 축출당했고 '선양'이란 순임금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하였을 가능성도 제기되어 있다.)


  실은 조지 워싱턴이 1774. 6. 15. 만장일치로 총사령관에 선출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인품 덕분이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장군으로서 능력보다 인격이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다행히 여기에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고 도덕적이며 상냥하고 용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명예를 중히 여기며 상호간에 신뢰를 존중합니다. 그는 공익을 우선하고 분파를 거부하며 국민들을 단결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욕과 군사적 독재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지역적 라이벌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대륙의 통일을 촉진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 그는 바로 조지 워싱턴이라 생각합니다."

  - 존 애덤스(초대 부통령으로 후일 제2대 대통령이 된다)가 대륙회의에서 조지 워싱턴을 천거하면서 한 말 [Ron Chernow, Washington: A Life, New York: Penguin, 2010, p. 186, 번역되어도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같은 지은이가 쓴 알렉산더 해밀턴 평전은 번역되어 있고(초대 재무장관으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공저자 중 한 명), JP모건, 록펠러의 전기도 나와있다. 그나저나 위 말은, 조지 워싱턴에게 장군으로서 능력이 없다는 말이었다기 보다는, 다른 경쟁자들과 대조되는 그의 인품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조지 워싱턴은 전쟁 중이던 1782. 5. 22. 부하로부터 미국 최초의 군주가 되어달라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 이른바 '왕관 편지(Crown Letter)'의 한 대목이다.


  "저는 공화국 형태의 정부를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이러한 문제(인용자 주: 참전군인들의 급여, 연금문제 등)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 저는 지금 이 나라에는 공화국의 지혜보다 군주국의 에너지가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유럽의 군주국들이 나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건재한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 총사령관님이 미국 최초의 군주가 되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 Lewis Nicola 대령이 조지 워싱턴에게 보낸 편지


  조지 워싱턴은 크게 놀라 그날 바로 답장을 보낸다.


  "그동안 군이 이룬 폭넓은 정의는 대단한 것입니다. ... 그 누구라도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이룬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 나라에 그 어떤 불행한 일도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군대 내에 이런 생각이 있다는 귀관의 편지에 놀라움과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만약 귀관이 이 나라와 그대 자신 그리고 후손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또는 나에 대한 존경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성격의 말은 물론 생각조차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조지 워싱턴의 답장(https://founders.archives.gov/documents/Washington/99-01-02-08501)


  이후에도, 부사령관 중 한 명인 Horatio Gates 등이, 조지 워싱턴의 온건한(어쩌면 수동적인) 리더십에 불만을 품고 주도한 '뉴버그 쿠테타 기도 사건'이 있었지만, 조지 워싱턴은 단호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이를 지혜롭게 무마시킨다.


  "나는 여러분의 헌신적 봉사와 희생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여러분의 동지이며 여러분의 고통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성명서]는 비군사적이고, 모든 질서와 원칙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 동기와 목적이 사악하며, ... 이성과 선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울화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익명의 선동가(인용자 주: 당연히 게이츠 도당이었지만 워싱턴은 이렇게 표현했다)가 여러분에게 배반을 하라고 요구한 그 나라는 다름 아닌 여러분의 나라, 곧 우리 아내와 자식들의 나라이며, 우리의 재산이 있는 곳입니다. 좀 더 인내심을 가지라는 말을 무시하고 선동하는 그 말은 우리에게 이성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군과 시민 사이를 분리하는 주장이 옳단 말입니까? 그런 글을 쓴 자가 진정 군의 친구란 말입니까? 그런 자가 이 나라의 친구란 말입니까? 그는 진정 사악한 적보다도 못한 자입니다. 만약 그 선동가가 말한 대로 된다면 우리는 자유를 잃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될 것입니다. ... 대부분 심의기구가 그러하듯이 대륙회의는 조치가 늦지만 결국 정당하게 일을 처리하리라 믿습니다(인용자 주: 연금법 개정 등). 여러분! 성장하고 있는 이 나라를 내란의 홍수 속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에게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했냐고 물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만약 오늘이 없었다면 세상 사람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완벽한 단계를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 1783. 3. 15. 조지 워싱턴이 쿠데타를 잠재울 수 있게 한 '덕의 사원' 연설(https://www.mountvernon.org/education/primary-sources-2/article/newburgh-address-george-washington-to-officers-of-the-army-march-15-1783/https://constitutioncenter.org/blog/george-washington-calms-down-the-newburgh-conspiracy)


  통치형태라고는 군주제밖에 없던 시절의 사고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나아가 인류 미래까지 내다 본, 초대 대통령이 가져 마땅한 너무나 바람직한 '정답'같은 생각 아닌가?


  그러면서 조지 워싱턴은 "여러분! 내가 안경 쓰는 것을 허락해주기 바랍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동안 머리도 희어지고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주뼛거리며 자신이 받은 편지를 읽기 위해 더듬더듬 안경을 꺼내 썼다는데, 존경받는 총사령관의 이 꾸밈없고 인간적인 모습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던 장교들을 단념시켰다는 것이다.


  아무튼 조지 워싱턴은 총사령관으로 선출될 때 기대되었던 바로 그 이유 그대로, 휘하에 있던 군사력을 자신의 권력 추구에 사유화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와 관련하여 토머스 제퍼슨(초대 국무장관이자 제2대 부통령이자 제3대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혁명들이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였던 자유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과 달리, 단 한 사람의 자제와 덕성이 우리 혁명이 그런 식으로 막 내리는 것을 막았다." https://founders.archives.gov/documents/Jefferson/01-07-02-0102),


  조지 워싱턴의 결단은 미국 입장에서는 큰 복이었다. 덕분에 세계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세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조지 워싱턴은 1787. 5. 25.부터 9. 27.까지 열린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도 의장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그 덕분에 세계 최초 헌법으로 철저한 권력분립 원리에 입각하고 있는 미국 헌법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도 했다(참고로, 조지워싱턴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미국 독립 직후가 아니라 미국 헌법이 제정, 발효된 1789. 4. 30.부터다. 군 통수권을 의회에 반납하고도 5년이 더 지난 뒤의 일인 것이다).


  조지 워싱턴 외에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공저자인 제임스 매디슨이 회의에 매일 참석하였다. 그는 미국 헌법의 초안이 된 Virginia Plan을 만들었고, 제헌회의 경과를 속기하였다. 매디슨은 미국의 제4대 대통령이 되었는데, 조지 워싱턴도 제임스 매디슨도 버지니아주 대표였다(건국 초 제10대 대통령까지 무려 여섯 명이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고,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여덟 명 대통령이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단, 남북전쟁 후에는 제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유일하다. 1620년 미국에서 처음 주조된 위스키 때문이긴 하지만 버지니아주는 'the Birthplace of the American Spirits'라고도 불린다. 아래에서 보듯 서부 출신은 단 한 명뿐인데, 그마저 최악의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닉슨이다. '정치적 기반'으로 따지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뉴욕주가 오하이오주와 더불어 각 7명씩으로 가장 많은 대통령을 배출한 주가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주에서 태어났지만,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출신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presidents_of_the_United_States_by_home_state).



  헌법을 만든 이들이 이렇게 연달아 대통령이 된 덕분에, 지금까지도 미국 정치논쟁의 중심에는 '무엇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가'가 놓이고, 법원 판결 또한 그렇다(이도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미국 헌법이 세계에서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에는 '헌법이 모든 법규범의 지도원리가 되는 최고규범'이라는 생각조차 생소한 것이었다. 참고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세 저자 중 남은 한 사람인 존 제이가 미국 초대 연방대법원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절차의 릴레이 발언에서, 민주당 의원들도 공화당 의원들도 모두 '헌법'을 근거삼아 상대가 '위헌적'이라며 공격했다. 따져 보진 않았지만, 당시 받은 인상으로는 헌법을 언급하지 않은 의원이 단 한명도 없지 않았나 싶다.

  미연방대법원 변론기일을 보기 위하여 아침 6시부터 줄을 서서 5시간을 기다려 오전 두 번째 사건을 본 적이 있는데[매년 10월부터 다음해 6월 말 7월 초 시작되는 여름 휴정기까지, 평일 오전 10시, 11시 각 한 건씩 진행된다(가끔 특별기일을 열기 위해 오후 시간을 비워둔다, 이번 회기에는 대통령 탄핵절차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오후에는 의회에 가있어야 했다, COVID-19로 3월 둘째주부터는 변론기일을 아예 열지 못했다). 첫 사건에 안전하게 입장하려면 오전 5시에는 가서 줄을 서야 한다. 이목을 끄는 사건은 전날 가서 줄을 서도 입장하지 못할 수 있다.], 법'학'과 전혀 거리가 먼 필부필부들이 자기와 전혀 무관한 사건 재판을 보겠다고 서서 '헌법'을 놓고 토론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개중에는 단지 대법원 재판을 보고, 의회 회기를 방청하기 위해 워싱턴 DC에 '관광'왔다는 미국 시민도 있었다(내가 만난 분들은 추운 날 그렇게 장시간 줄을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들이었다. 일리노이였나 미시건이었나 위스콘신이었나 아무튼 훨씬 추운 중북부 지역에서 오신 그분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라를 완전히 말아먹고 있다."고 했다). 이 글 직전에 미국 의료보험, 빈부격차 등에 관한 짧은 글을 썼지만, 헌법에 관한 살아있는 관심은 그 글과는 반대로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숨은 저력임이 분명하다(한편 애리조나에서 만난 어떤 우버 기사는 '자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을 너무 잘 이끄는 것 같다'고 역설했고, 미국인 절반은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COVID-19가 터지기 전까지만 하여도 재선을 의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물론 우리도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민주주의 역사를, 시민의 힘으로 빠르고도 충실하게 쌓아가고 있고,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중에는 독보적이라 생각한다. 다만, 전직 대통령들의 선택은 조지 워싱턴과는 달랐고, 측근 비리 없었던 대통령이 없었다. 거기다가, 최근 '시민'과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표출되는 민의들은 반드시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 같아 안타깝고, 때로 위험하게 느껴진다.)




  어느 정도 미화는 있었겠지만 이들 일화 대부분은 미의회 도서관 등에 보관된 '실물' 문서로 직접 뒷받침되는 것들이고, 그렇다면 흥미로운 것은, 우리처럼 유교 같은 윤리 중심 정치이념이 있었던 것도 아닌(것 같은)데, 조지 워싱턴은 어떻게 그런 인품과 덕성을 갖출 수 있었고, 미국 건국의 주역들은 어떻게 그 점을 가장 앞세우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그렇게 보는 견해도 있지만) 기독교 윤리가 이를 '직접'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르침인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리스 7현인의 이상? 영국의 폭정에 비춘 반면교사? 그냥 사람이 원체 훌륭해서?


  미국이 세워질 때, 다른 자질도 아니고 '도덕성'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기준과 덕목이 되었다는 점은 이후에 펼쳐진 미국사를 생각하면 조금 뜻밖인 면도 있다. 그러나 시대가 극단으로 흐를 때마다 돌아갈 '원점', '이상적 지도자상'이 되어준다는 점에서는 미국인들 입장에서 큰 행운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언제나 세종대왕의 재림을 기대하듯이.


[덧붙여,]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역대 대통령 순위를 꼽으면, 링컨 대통령이 보통 가장 앞에 오고, 그 다음으로 조지 워싱턴 또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꼽힌다. 케네디, 오바마 등 인지도(혹은 인기?)가 더 높은 대통령이 많기 때문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그 정도였어?' 싶은 분도 있겠지만, 심지어 조지 워싱턴이 가장 앞서는 조사도 있고, 최근 그 순위가 더 올라가는 느낌이다. 한편 아래에서 보듯, 미국이 명실상부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뒤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통령들이 대거 상위권에 포진되어 있다. 어찌 보면 링컨 대통령이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그나마 그런 패권주의적 경향에 균형을 잡아주는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C-Span https://www.c-span.org/presidentsurvey2017/?page=overall



Siena College https://scri.siena.edu/2019/02/13/sienas-6th-presidential-expert-poll-1982-2018/



NY times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8/02/19/opinion/how-does-trump-stack-up-against-the-best-and-worst-presidents.html



US NEWS ('최악 대통령' 조사로, 역순) https://www.usnews.com/news/special-reports/the-worst-presidents/articles/ranking-americas-worst-presi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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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2020-04-1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충하였습니다.
 
[전자책] 우리가 모르는 미국의 두 얼굴 :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없다 (체험판)
정종태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이전에 체험판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무덤의 섬‘을 만드는 뉴욕시,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식량배급을 기다리며 늘어선 자동차 행렬, 샌프란시스코 노숙인 쉼터의 집단감염 등 지금 읽으면 더 새롭게 읽힐 것 같다. 언젠가는 전체를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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