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7 양자론(Quantum Theory), 글 J. P. McEvoy, 그림 Oscar Zarate, 이충호 옮김, 김영사, 2001



  양자컴퓨터 공부하려다가, 읽다 만 양자역학 책 몇 권을 같이 읽고 있는데, 이것도 같이 보았다.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는 큰 기대 않고 펼쳤다가,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곤 하는 것 같다.

  이 책도 비슷한 다른 책을 넘는 미덕이 있다.


  저자인 J. P. McEvoy는 2007년에 개정판을 냈는데, 번역본은 1999년판(초판은 1996년에 나왔다)을 옮긴 것이고, 절판되었다.



  아무튼 20세기에 나온 책이어서 그런지,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에 관한 EPR 역설(Einstein-Podolsky-Rosen Paradox)에 은근히 무게를 두면서 John Wheeler의 언급을 소개하는 정도로 책을 마치고 있는데, 개정판에는 이후의 연구가 어떤 식으로 추가 반영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J. P. McEvoy는 스스로 많은 논문을 낸 물리학 박사이신데, 같은 시리즈의 스티븐 호킹 편도 쓰셨다.이것도 2009년판이 있고, 두 권 다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https://www.amazon.com/stores/author/B001K87JBE/about




  양자역학 개론서는 국내에도 꽤 많이 나와 있어서, 주요 논문을 몇 개 구경해 보았다.


  Max Planck (1901), "Ueber das Gesetz der Energieverteilung im Normalspectrum", Annalen der Physik, 309: 553-563 https://doi.org/10.1002/andp.19013090310 [막스 플랑크, "정상 스펙트럼에서 에너지 분포 법칙에 관하여", 흑체 복사(black-body radiation)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방출되는 것이 아니라 양자화된 작은 불연속적 단위로 발산된다는 가설을 제시, E = hν (플랑크상수 x 빛의 주파수)로 표현, 양자역학의 기초를 마련한 중요한 전환점].


  Albert Einstein (1905), "Über einen die Erzeugung und Verwandlung des Lichtes betreffenden heuristischen Gesichtspunkt", Annalen der Physik, 322: 132-148 https://doi.org/10.1002/andp.19053220607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빛의 생성과 변환에 관한 발견적 관점", 광전 효과를 설명하면서 특정 주파수 이상의 빛만 전자를 방출할 수 있다고 제안, 빛이 입자처럼 작용함을 강력하게 시사, 1921년 노벨 물리학상 받는 데 중요한 역할].


  Niels Bohr (1913), "On the Constitution of Atoms and Molecules", The London, Edinburgh, and Dublin Philosophical Magazine and Journal of Science, 26(151), 1–25 https://doi.org/10.1080/14786441308634955 [닐스 보어, "원자와 분자의 구조에 관하여", 원자 모형을 통해 전자들이 특정한 양자화된 궤도에서만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흡수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 당시 고전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수소 원자 스펙트럼을 성공적으로 설명].


  Louis de Broglie (1924), "Recherches sur la théorie des Quanta", 박사학위 논문 https://doi.org/10.1051/anphys/192510030022 [루이 드 브로이, "양자 이론에 대한 연구", 물질, 특히 전자도 빛과 마찬가지로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자-파동 이중성 개념을 제시, 이후 슈뢰딩거 파동방정식의 기초가 됨].


  Erwin Schrödinger (1926), "Quantisierung als Eigenwertproblem", Annalen der Physik, 384: 361-376 https://doi.org/10.1002/andp.19263840404 [에어빈 슈뢰딩거,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 슈뢰딩거 방정식을 제시하여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파동 성질을 수학적으로 설명, 양자 시스템의 에너지 준위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


  Max Born (1926), "Zur Quantenmechanik der Stoßvorgänge", Zeitschrift für Physik, 37: 863-867 https://doi.org/10.1007/BF01397477 [막스 보른, "충돌 현상의 양자역학에 대하여", 슈뢰딩거의 파동 함수를 입자의 위치에 대한 확률밀도함수로 해석함으로써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정확한 위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개념을 수학적으로 설명, 확률 해석은 이후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음].


  Werner Heisenberg (1927), "Über den anschaulichen Inhalt der quantentheoretischen Kinematik und Mechanik", Zeitschrift für Physik, 43: 172-198 https://doi.org/10.1007/BF01397280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양자 이론적 운동학과 역학의 직관적 내용에 대하여",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불확정성 원리를 제안, 양자역학적 측정의 근본적인 한계를 설명].


  Paul Adrien Maurice Dirac (1928), "The Quantum Theory of the Electron",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A, 117: 610-624  https://doi.org/10.1098/rspa.1928.0023 [폴 (에이드리언 모리스) 디랙, "전자에 대한 양자 이론", 디랙 방정식으로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 이 방정식은 전자와 같은 페르미온의 행동을 설명하고 반물질의 존재를 예측(1932년 실험을 통해 발견됨)].


  여하간 양자역학의 발전사는 참 아름다운 과정이다.


  그리고 1927년 5차 솔베이 회의 사진은 참으로 기적적이고 역사적인 사진이 아닐 수 없다.

  https://namu.wiki/w/%EC%86%94%EB%B2%A0%EC%9D%B4%20%ED%9A%8C%EC%9D%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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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마셜 맥루언과 가상성, 크리스토퍼 호락스, 김영주, 이원태 옮김, 이제이북스, 2002



  최근에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을 재미있게 들여다 보고 있는데...


  이 책도 그래서 읽었지만 아주 큰 감흥은 없었다.


  맥루언은 1980. 12. 31. 사망하였고, PC와 월드와이드웹의 대중화, 상업화를 목격하지 못했다.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사이버펑크, 탈인간(posthuman), 사이보그 등 담론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탐구 일부가 가상 시대 인간의 확장과 연결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 토론토 대학에서 맥루언 프로그램을 부활시켰고, 맥루언 자신도 몰랐고 예견하지 못했던 맥루언주의자들을 다시 만들어 내고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McLuhan_Program_in_Culture_and_Technology


맥루언주의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그것을 조금은 어긋나게 배울 거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제자들을 갖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성가신 일이 될 것이라는 걸 난 쉽게 상상할 수 있다. - 마셜 맥루언(책 22쪽)


  그러나 맥루언의 통찰을 종교적, 예언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그 의미를 윤색하고 왜곡하는 낭만주의적 경향은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113쪽 역자 후기). 저자는 맥루언의 미디어 효과 이론이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결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제'는 대부분 절판되었지만 이제이북스 '아이콘북스' 시리즈(총 24권)는 주요 저자들을 다른 시각에서 비평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이어서 보이면 사두는 편이다(이제이북스에서 E와 J는 Equality와 Justice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아이콘북스' 시리즈는 2002년 9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사이에 나왔는데, 그 즈음부터 함께 나온 '사이코북스' 시리즈와 더불어 이제이북스의 등장과 지향을 국내 인문학계에 알린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이제이북스에서는 중요한 책을 많이 번역해 내셨고, 나도 『헤겔 또는 스피노자』, 『스피노자와 정치』, 『개념표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을 비롯하여 여러 권을 가지고 있는데 2015년 말까지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활발하게 내시다가 2018년 1월 『에우튀프론』이 나온 후로는 더 이상 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은 '아카넷'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찾아 보니 폐업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전응주 사장님의 인터뷰 기사가 몇 개 검색된다.

  "[권은정의인터뷰무제한] ‘적(的)’자와 싸우고 ‘적자’와 또 싸우고", 한겨레 (2006. 3. 30.)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2247.html 

  “제대로 된 철학서 누군가는 내야겠죠”, 경향신문 (2006. 8. 11.) https://www.khan.co.kr/article/200608111517371

  "<인터뷰> '플라톤 전집' 도전 전응주 EjB 대표", 연합뉴스 (2008. 2. 4.) https://v.daum.net/v/20080204071213706 [연합뉴스 누리집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인 2000년대가 우리 인문학계의 마지막 벨 에포크가 아니었나 싶기도 한데, 이제이북스의 포트폴리오는 지금 봐도 경외심이 드는 면이 있다. 이제이북스가 앞당기려 한 시대는 이제는 올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 자료를 정리해 둔다. McLuhan의 저작 중에 검색되지 않는 것들이 꽤 있다.





맥루언주의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그것을 조금은 어긋나게 배울 거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제자들을 갖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성가신 일이 될 것이라는 걸 난 쉽게 상상할 수 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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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론 - 귀한 자식 이렇게 가르쳐라
존 로크 지음, 박혜원 옮김 / 비봉출판사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매우 재미있음ㅎ

그러나 점점 진지하게, 교육론으로서보다는 명심보감처럼 읽게 된다.

부모님과, 살면서 만났던 많은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하는 책.

젊은 부모님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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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말레이시아, 박종현,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2007



  나쁘지 않은 평을 달아 두신 분이 계시기에 사두었던 책인데, 책장에 있는 것이 문득 눈에 띄어 읽어 보았다. 기록을 보니 2021. 9. 17.에 샀다고 나온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께서 연구를 하러 길게 말레이시아에 다녀오신 적이 있다. 내게 말레이시아는 그때 아버지께서 사오신 기념품으로 기억되는 나라이다.

  올해는 학술 행사에서 젊은 고위직을 만나기도 했다. 또랑또랑한 영어가 인상적이었다. Oxford를 졸업하셨다는데, 책 119쪽에 나오는 Twinning Program을 통하셨을지 궁금하다. 밝은 분이셔서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는 리콴유 총리의 책에서 간접적으로 알게 된 툰쿠 압둘 라흐만 총리에 관한 이야기 정도이다.


  10년도 더 된 책이어서 아주 유용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짧은 분량 안에 이모저모를 잘 담으신 것 같다.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부미푸트라(Bumiputra) 정책 https://en.wikipedia.org/wiki/Bumiputera_(Malaysia)

  최첨단 광역 정보통신 단지 MSC Malaysia https://en.wikipedia.org/wiki/MSC_Malaysia

  중동의 이슬람교도들에게 말레이시아가 썩 괜찮은 여행지라는 것(책 58쪽),

  국왕을 5년마다 선출한다는 것 https://en.wikipedia.org/wiki/King_of_Malaysia

  마하티르 총리와 바다위 총리 이야기 https://en.wikipedia.org/wiki/Prime_Minister_of_Malaysia

  '관용'의 문화와 전통(아래 자료 참조) 등이 기억에 남는다.


  "UN expert urges Malaysia to protect its tradition of tolerance from the rise of fundamentalism" (2017. 9. 25.) https://www.ohchr.org/en/press-releases/2017/09/un-expert-urges-malaysia-protect-its-tradition-tolerance-rise-fundamentalism

  Charukesi Ramadurai, "Malaysia’s harmonious approach to life", BBC (2021. 3. 10.) https://www.bbc.com/travel/article/20210308-malaysias-harmonious-approach-to-life

  Wan Husin, W. N., Halim, N. A., & Zul Kernain, N. F. (2021). Students’ perceptions on ethnic tolerance in Malaysia: A study in three public universities. Ethnicities, 21(1), 98-119. https://doi.org/10.1177/1468796820951991


  https://en.wikipedia.org/wiki/Mahathir_Mohamad




  말레이시아 법제사 책이 있어 좀 놀랐다.




  지은이께서는 2011년에도 말레이시아 책을 한 권 더 내셨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나라"라는 부제를 다셨다.




  그리고 찾아 본 자료.


  강영진(KOTRA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무역관장), "수교 60주년, 더욱 가까워진 말레이시아", 나라경제 2020년 3월호 https://eiec.kdi.re.kr/publish/naraView.do?fcode=00002000040000100012&cidx=12446


  Dr. N. Ganabaskaran, "The Impossible Dream: How And Why Mahathir’s Vision 2020 Failed", Between the Lines (2021. 2. 27.) https://betweenthelines.my/vision-2020-mahathir-dream-failed/

간디의 한마디 말이 바다위의 내면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옳다면 화낼 필요가 없으며, 네가 틀렸다면 화낼 자격이 없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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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파이드로스 / 메논, 플라톤, 천병희 옮김, 숲, 2013


  



1. 책 읽은 것을 한동안 기록, 정리하지 못하여 올해 몇 권째를 읽었는지 추적하던 것을 놓쳐 버렸다.

  요즘은 생의 에너지가 고갈된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할 일은 많은데, 무엇 하나 마음을 일으켜 시작하고 끝까지 완수해 내는 것이 무척 힘들다. 만사 흥이 나지도 않고 지구력이 많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지쳤다.

  오랜만에 혼자 보내는 주말이기도 하고, 9월도 되어 플라톤으로 산산이 부서진 쓸쓸한 마음을 달래 본다.



2. 천병희 선생님의 역서를 2015년경부터 한동안 사 모았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선물처럼 남기신 플라톤 전집의 편제를 이제야 들여다 보았다.




  아무튼 전에 사둔 책이 있었으므로, 2013년에 나온 구판으로 보았다.

  구판에는 전집 2권과 달리 파이드로스와 메논만 실려 있다.


  2002년 여름에 대화편을 처음 읽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고 다시 읽으니 느낌이 또 다르다.

  10년 전에는 천병희 선생님의 말랑말랑한 문체가 최선이라고 여겼는데, 딴에는 넓은 의미의 연구 활동에 몸 담고 난 뒤에 보니 아쉬움이 없지 않다.


  파이드로스와 메논

  프로타고라스파이돈국가향연 등과 더불어 플라톤의 '중기' 작품으로 분류된다.

  천병희 선생님의 소개에 따르면, 파이드로스가 '초기' 작품으로 간주된 적도 있는데, 이제는 국가보다는 나중에, '후기' 작품에 속하는 필레보스보다는 먼저 집필된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이라고 한다.

  '초기' 작품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등이 있고, '후기' 작품에는 『필레보스』 외에도 『소피스트』, 『티마이오스』, 『법률』 같은 것들이 있다.



3. 천병희 선생님의 다른 대화편 번역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바로 곁에 앉은(실제로는 아마도 누워 있었을) "전기가오리" 소크라테스 아저씨가 진짜로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지(당신 말로는 '진짜로 모른다'고 거듭 강조하시지만) 알 수 없는 말투로 조곤조곤 말을 건네고 있다. 읽고 나면 '테스 형'과 무척 친해진 느낌이 든다. 바로 이어서 다른 대화편을 좀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장서 상당 부분이 창고에 들어가 버려서 다시 만날 때까지 한동안은 소피스트들과 어울려야 할 것 같다. 그럼 테스 형(플라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친구여,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네. 자네가 소피스트들에게 빠져 있다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인가? 소피스트들이 하는 말이 자네에게 무슨 특별한 것을 주기라도 했는가? 자네는 말하는 기술만으로도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마음을 붙들려고 8월부터 성당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는데, 오늘 고해성사 후 미사에 참례하면서 도킨스의 책들만 잔뜩 빼놓고 종교서 대부분을 창고에 넣어버린 것을 후회했다.



4. 참고로, "전기가오리"는 메논』 80a (구판 162쪽)에 나오는 표현이다.


메논: (...)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지금 나를 마술로 호려 말 그대로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시는 것 같아요. 농담을 좀 해도 된다면, 선생님께서는 내가 보기에 외모나 그 밖의 다른 면에서 영락없이 바다에 사는 저 넓적한 전기가오리예요. 전기가오리는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는 자는 누구든 마비시키는데, 선생님께서 내게 그런 짓을 한 것 같으니까요. 나는 정말로 혼과 입이 마비되어 선생님에게 도무지 대답을 할 수가 없어요.


  '정전기'를 발견한 탈레스도 있었지만, '전기'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피뢰침 개발의 기초가 된 1752년 벤저민 프랭클린의 연(鳶, kite) 실험 등으로 정립되었으므로, 플라톤 시절에는 '전기가오리'라는 생물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먼저 영어 번역부터 찾아 보았다. "농담을 좀 해도 된다면" 이하 부분만 인용한다.


Benjamin Jowett (1871 ?)

"And if I may venture to make a jest upon you, you seem to me both in your appearance and in your power over others to be very like the flat torpedo fish, who torpifies those who come near him and touch him, as you have now torpified me, I think. For my soul and my tongue are really torpid, and I do not know how to answer you;"


http://polazzo.com/Plato%20-%20Meno.pdf


G.M.A. Grube (1997 ?)

"Indeed, if a joke is in order, you seem, in appearance and in every other way, to be like the broad torpedo fish, for it too makes anyone who comes close and touches it feel numb, and you now seem to have had that kind of effect on me, for both my mind and my tongue are numb, and I have no answer to give you."


https://commons.princeton.edu/eng574-s23/wp-content/uploads/sites/348/2023/02/Plato-Meno.pdf


J. Holbo & B. Waring (2002)

"In fact, if you don’t mind me turning the whole business into a bit of a joke, on the inside you’re like one of those stingrays that paralyzes everything it touches; you look a bit like one, too – broad and flat. Anyway, now you’ve done it to me; both my mind and my tongue are completely numb. I’ve got no answer to give you."


https://123philosophy.wordpress.com/wp-content/uploads/2018/09/meno.pdf


Cathal Woods (2011-2012)

"You seem to me, if it is possible to joke a little, to be, in appearance and in every way, exactly like the broad electric ray of the sea, for it too numbs anyone who approaches and comes in contact with it, and now you seem to have put me in something like the same state."


https://marom.net.technion.ac.il/files/2018/09/Meno.pdf



  과거에는 torpedo fish라고 옮겼는데, Cathal Woods의 최근 번역은 (천병희 선생님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을 써서 electric ray로 옮기고 있다. torpedo는 "어뢰"를 뜻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Καὶ γὰρ δὴ εἴπερ δεῖ καὶ σκώψαντά σε εἰπεῖν, δοκεῖς μοι καὶ τῇ ὄψει καὶ ἄλλῳ παντὶ τρόπῳ ὅμοιος εἶναι τῇ πλατείᾳ νάρκῃ τῇ θαλαττίᾳ. καὶ γὰρ αὕτη τοὺς πλησιάζοντας καὶ ἁπτομένους ναρκᾶν ποιεῖ, καὶ σύ μοι δοκεῖς νυνὶ τοιοῦτόν τι πεποιηκέναι, ναρκᾶν με· καὶ γὰρ τὴν ψυχὴν καὶ τὸ στόμα νενάρκην καὶ οὐκ ἔχω ὅτι ἀποκρίνομαι σοι."


  앞의 "넓적한"(flat, broad, πλατείᾳ) 부분은 차치하고,


  "전기가오리"(torpedo fish, stringray, electric ray)로 옮겨진 단어는 "νάρκῃ"이고, 이는 [나르키(nárkē)]로 읽는다. "마비", "무감각"을 뜻하는 말로, 현대 영어에서 "narcotic"의 어원이 된 말이다. 뒤에도 "ναρκᾶν" [narkân] (마비시키다), "νενάρκην" [nenárkēn] (마비된) 등 관련된 표현이 쓰였다. 이 점을 살려 torpedo fish, torpify (마비시키다), torpid (마비된 // 무기력한, 활력 없는, 열의 없는)로 번역한 Benjamin Jowett의 번역이 원문에 충실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나저나...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상대방의 면전에서 외모가 "넓적한 전기가오리"를 닮았다고 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절에라도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지혜, 용기, 절제, 정의는 다 어디 갔는가!!



5. 무리수나 √2라는 개념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메논』 82b 이하에서 '정사각형의 면적이 두 배가 되려면 한 변은 몇 배여야 하는가'를 도출하는 노예 소년과의 대화도 무척 흥미로웠다.



6. 또 하나 이전에 찾아보았던 것을 서재에도 갈무리해 둔다.


  대화편을 보면, "개" 등에게 걸고 맹세한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예컨대, 『파이드로스』에는 "개에 걸고 맹세하건대"(228b 구판 20쪽)라는 표현이 있고, 『국가』 제9권 592a에도 유사한 구절이 나온다. 『파이드로스』 236e (구판 38쪽)에서 파이드로스는 "그런데 누구의 이름으로, 어떤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여기 이 플라타너스 나무에 걸고 맹세할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제우스에(게) 맹세코"(『파이드로스』 229c 구판 22쪽, 261a 구판 89쪽, 『메논』 95b 구판 200쪽), "우정의 신인 제우스에게 걸고"(『파이드로스』 234e 구판 33쪽), "헤라에 맹세코"(『파이드로스』 230b 구판 24쪽)와 같이 평범하게(?) 신에게 걸고 맹세한다는 표현도 있다.


  이에 관하여 천병희 선생님은 역주 13 (구판 21쪽)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이셨다.


천병희 역주: "당시 그리스인들은 대개 제우스에 걸고 맹세했지만, 맹세할 때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피하려고 플라타너스나 양배추 따위의 식물이라든가 거위, 개, 양 따위의 동물에 걸고 맹세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 찾아 보았더니, 천병희 선생님의 위와 같은 설명은 불충분한 것이다.


  먼저 Judith Fletcher, Performing Oaths in Classical Greek Dram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희극 작가들"은 웃기려고 위와 같은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The comic poets evidently got a laugh by having characters swear by unusual deities or objects. Someone in Eupolis’ Baptai swears by an almond tree (fr. 79 K–A), someone else by cabbages (fr. 84.2 K–A)."


https://assets.cambridge.org/.../9780521762731_excerpt.htm


  그런데 Alan H. Sommerstein and Isabelle C. Torrance, Oaths and Swearing in Ancient Greece (De Gruyter, 2014)를 보니, 특히 대화편에서 위와 같은 표현은 천병희 선생님 주석처럼 그리 간단하게 일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위 책 111~131쪽에 위와 같은 맹세가 맥락에 따라 맹세의 신성함을 더하는 경우와 더는 경우가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130~131쪽에 결론이 요약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swearing without swearing"이라는 해석이 흥미롭다.


"Socrates’ oath by the dog is deemed light-hearted by some, sacred by others.",


"Socrates’ oath by the dog and the oaths by cabbages. The very fact that there are groups of these oaths demonstrates that they are not context-specific. Oaths by cabbages do not seem to be serious, and it is telling that they appear in comedy or invective. Socrates’ oath by the dog, on the other hand, seems to be a formula of 'swearing without swearing' so to speak, giving the semblance of the force and emphasis conveyed by the oath but without running the risk of divine punishment for falsehood."


https://www.degruyter.com/.../doi/10.1515/9783110227369/html


  우리의 학문 저변이 얕아, 어디선가 누군가는 깊이 연구한 이러한 문제들을 대개의 경우 그저 '지식 소매상'들이 전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아쉽다. 그래도 인터넷 덕분에 관심과 의지를 내면 앉은 자리에서 어느 정도는 답을 찾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7. 어제 잘 읽은 HOW TO READ 데리다』를 비롯하여 정리할 책이 몇 권 더 있지만, 시간을 많이 쓴 터라 오늘 자 '책으로의 도피'는 일단 이 정도로 줄인다. 아래 책은 품절되었지만 옮긴이(변성찬)의 말처럼 아주 훌륭한 개론서이다.


"독자에 따라 데리다로부터의 '출구'는 저자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데리다로의 '입구'로 이끌어주는 세심하고 균형 있는 안내서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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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2024-09-0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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