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여 일 전에 읽은 책인데, 이제야 리뷰를 쓴다.


  이만큼 잘 정리한 책도 드물 것 같아 별점 다섯을 주려다 아무래도 번역과 책 만듦새에 대한 불만을 표시해야 할 것 같아 하나를 깎는다(전자책으로 읽는 동안 오타신고를 많이 했는데 반영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 '정론지' 중 하나인 워싱턴포스트에서 서울특파원, 도쿄지국장을 지내고 베이징지국장으로 있는 애나 파이필드는, 수차례 북한 현지 취재와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과감한' 인터뷰를 통하여(취재원들의 안전을 위해 쓰지 못한 내용이 꽤 있다고 보인다), 북한에 관하여 '불량국가'라는 인상 밖에는 별다른 지식이 없을 영어권 독자들을 위한 꽤 친절하고 공정한 르포르타주를 직조해냈다. 오토 웜비어의 죽음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김정은을 알게 된 미국인들이, 조금 더 '진지한' 맥락을 갖고 북한을 볼 수 있게 해줄 안내서 같다.


* 워싱턴포트의 2009년 기사 Andrew Higgins, "Who Will Succeed Kim Jong Il?," Washington Post, July 16, 2009를 볼 수 있는 링크 https://www.other-news.info/2009/07/who-will-succeed-kim-jong-il/

* Anna Fifield, "North Korea’s prisons are as bad as Nazi camps, says judge who survived Auschwitz," Washington Post, December 11, 2017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asia_pacific/north-koreas-prisons-are-as-bad-as-nazi-camps-says-judge-who-survived-auschwitz/2017/12/11/7e79beea-ddc4-11e7-b2e9-8c636f076c76_story.html (토머스 버겐탈 재판관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쪽으로도 관여하신 줄은 몰랐다.)



[밖에서 보면 트럼프에 대한 극성 지지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미국은 정말 지역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바이러스 확산 전까지만 하여도 트럼프 재선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는 분위기였다). DC 근처는, 모르고 마주쳐도 알고 보면 미국이나 자기 나라에서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 많아 정치적 대화를 상당히 자제하는 분위기임에도(동네에서 마주쳐 별 생각 없이 이야기하다 명함을 받고 보면 위키피디아에도 나오는 '가나 소장파 국회의원'인 식이다), 은근한 속내를 보면 트럼프 비판이 '상식' 내지는 적어도 '힙'한 것처럼 되어 일상의 유머와 대화에서도 그런 것이 배어 나오는 경우를 이따금 겪었다(탄핵 정국에서는 좀 달랐지만,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그러나 '적색주'를 가보면 공화당 지지가 '상식'이자 '애국'이고, 트럼프에 대한 열성 지지자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래 지도의 진한 빨간색 주 중 한 곳에서 길게 우버를 탈 일이 있었는데,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게 된 기사가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한국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북한과 미국, 또 남한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은지를 묻고는, 내가 "적어도 북한이라는 특이한 나라에 대해서는 트럼프의 '탑다운' 방식이 먹힐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자 자신의 트럼프 사랑을 열렬히 커밍아웃한 경우도 있었다(대통령 본인과 그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노벨평화상을 받을 것이라고 제법 진지하게 기대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트럼프 지지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미국인들 가운데는 김정은에 대해서도 묘한 호감을 갖는 경우가 꽤 있다.]

  기자로서, 바꾸어 말해 어떤 면에서는 '외부자'임에도(우리 입장에서는 더욱),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을 우선 잘 연결하고 비어있는 부분을 파헤침으로써 이만한 책을 짜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존경스럽다. 파이필드 지국장님의 끈질긴 '탐사' 덕분에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다시 보고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으실 것이다. 김정은의 생애를 썩 구체적으로 따라가볼 수 있다. 풍부한 독자층과 재정적 뒷받침 덕분이겠지만 영미권 저널리즘의 전통이 부러웠다.



(Wikipedia, 2004, 2008, 2012, 2016년 대선 투표 결과. 진한 빨강은 네 번 모두 공화당이 승리한 주들, 연한 붉은색은 세 번, 보라색은 2:2, 연한 파란색은 1:3으로 민주당 우세 주, 진한 파랑은 네 번 모두 민주당이 승리한 주들 https://en.wikipedia.org/wiki/Red_states_and_blue_states


  원제는 "The Great Successor"로, "마지막 계승자"라기보다는 "위대한 계승자" 정도로 옮겼어야 할 제목이다. 사실 이 책은 미국의 DC 인근 반즈앤노블 서점 매대에 너무나 눈에 띄게 나와있어 처음 알게 되었는데(그래서, '어라? 이런 책이 나왔네! 번역은 되어 있나?' 하고 찾아보았던 책이다), 표지 그림과 디자인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은이 실제로 'Great'하다는 의미로 쓴 제목은 아니다(책 결론을 보면 그렇다고 완전히 풍자적 의미로 쓴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 이기동 전 논설위원께서는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려는 현실적 판단에서인지, 개인적 희망을 담아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제목을 "마지막 계승자"로 옮기셨다.


[역자께서는 『기본을 지키는 미디어 글쓰기』라는 책을 쓰셨고, 아래와 같이 꽤 많은 책을 옮기셨다. 이기동 님과 출판사 프리뷰의 관계는 정명진 님과 출판사 부글북스의 관계와 유사하지 않나 싶다. 어빙 피셔, 정명진 역, 『화폐 착각』(부글북스, 2016)에 관하여 쓴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763468 참조. 두 분 모두 기자 출신이신데, 엄밀하게 옮긴 완성도 높은 책을 내는 편보다는 책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는 정도의 번역서를 빨리빨리 내는 데 목표를 두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인상도 든다(기자 특유의 센스가 돋보이는 역어들이 간혹 눈에 띄기는 한다).




여러 책들에 대한 여러 글에서 유사한 불만을 표시하였지만, 『마지막 계승자』도 주석에 대한 관심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으셨다. 예컨대, 4장의 여섯 번째 각주 "Thae Yong-ho, Password from the Third-Floor Se-cretariat (Seoul, Giparang, 2018), 280."에서 Se-cretariat 같은 곳의 하이픈을 전혀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셨는데 이는 그나마 '사소한 무성의'이다(원서에서 역서 종이책으로, 또 역서 전자책으로 출간되면서 이 부분이 어떤 식으로 고려되었는지, 검토되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더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 정도면 번역서를 읽는 한국 독자들을 위하여 "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기파랑, 2018)" 정도로 표기하는 작은 노력을 기울여주실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번역서를 신속히 출간하려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출처에 대한 무시와 소홀'은 우리 언론의 고질병처럼도 느껴진다. 기사의 온라인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고, 외국의 유수 언론사들 가운데 인용한 내용에 링크를 달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우리 언론의 기사들 중에는 거꾸로 링크를 단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기사가 주요 포털을 통해 소비되고 있는 것이나, '개인정보'에 대한 막연한 신성화가 이렇게 경로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같은 관행은 기사에 대한 검증을 어렵게 하여 신뢰를 크게 떨어뜨린다. 우리는 진영을 떠나 믿고 읽을 만한 언론을 가질 수 있을까?]


  파이필드 지국장께서는 남북한 문헌을 꽤 많이 인용하셨다. 다음과 같은 책들도 함께 볼 수 있겠다.




  책이 다룬 북한 해커들에 관한 기사 모음.


* Timothy W. Martin, "How North Korea’s Hackers Became Dangerously Good," Wall Street Journal, April 19, 2018 https://www.wsj.com/articles/how-north-koreas-hackers-became-dangerously-good-1524150416

* Patrick Winn, "How North Korean hackers became the world’s greatest bank robbers," Global Post Investigations, May 16, 2018 https://gpinvestigations.pri.org/how-north-korean-hackers-became-the-worlds-greatest-bank-robbers-492a323732a6

* Ju0min Park, James Pearson, "In North Korea, hackers are a handpicked, pampered elite," Reuters, December 5, 2014 https://www.reuters.com/article/us-sony-cybersecurity-northkorea/in-north-korea-hackers-are-a-handpicked-pampered-elite-idUSKCN0JJ08B20141205

* Sam Kim, "Inside North Korea's Hacker Army," Bloomberg Business week, February 7, 2018 https://www.bloomberg.com/news/features/2018-02-07/inside-kim-jong-un-s-hacker-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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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2023-01-0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한 서평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소중하게 새길 대목이 많아 되풀이 읽었습니다.
댓글저장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여유가 더 없어지기 전에 최근 읽은 책들에 관하여 메모를 남겨두려 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는 책에 관한 그만한 생각을 떠올릴 수조차 없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문학계 동향을 꾸준히 추적하여 온 것도 아니라서 최근 문학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른다. 시인이 되겠답시고 기형도, 오규원 전집과 이성복, 문인수, 엄원태 등 시인들의 시를 필사하고, 시학회를 기웃거리며 신춘문예 일정을 챙기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먹고 살다 보니 흥미가 거의 떨어졌다. 한 달에 못 읽어도 한두 권은 꾸준히 읽던 시집도 요즘은 드문드문 읽을 따름이다. 책을 골고루 읽으려고 열댓 개 분야를 정하여 열다섯 권에 한 권꼴로는 문학 책을 꼭 읽게 되도록 배려(?)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 한가롭지(?) 않게 되었다. '쓸모'를 따지는 이런 말이 문학에 대한 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학을 펼칠 시간과 여유가 나더라도 汎用性이 상대적으로 큰 고전이나 세계문학을 집게 되지, 개중에서도 한국소설은 적어도 내게는 점점 순위가 많이 밀려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의무감에서가 아니라면 작가가 창조한 세계와 문장에 빠져들 필요와 동기가 잘 일지 않는다. 긴 시간을 들이기엔 '가성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어느 작가의 이런저런 작품들은 다르더라는 것이 있으셨다면 추천해 주시길...)


  그렇게 내가 '편협한' 관점을 가진 '문외한'인 것을 전제로... 오늘날 '작가', '소설가', '문학'과 같은 말들이 주는 '아우라'는, 비교적 최근인 『토지』가 완성된 1994년 즈음과 비교하여도 상당히 왜소하고 스산해졌다. 30년 전, 50년 전, 100년 전과, 지금의 창작환경을 어떤 기준을 갖고 비교해야 하는지, 비교할 수나 있는지 어려운 문제지만, 문학이 지식의 최전선에 있고 작가가 곧 지식인이었던 시절과 지금은... 어떻게 보아도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다. 은유, "[삶의 창] 작가의 연봉은 얼마일까", 한겨레 (2018. 10. 19.)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66586.html; 민동용, "억대 연봉에 수십만 독자… 우리도 베스트셀러 작가랍니다: 웹소설 작가 3인 ‘밀차-강하다-달콤J’", 동아일보 (2020. 1. 8.)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00108/99127701/1


  간혹 거리에서 사진기를 멘 모습을 뵙기도 했지만 조세희 선생께서도 '글로서는' 오래 침묵하고 계신다. 최재봉, "[최재봉의 문학으로] 조세희의 침묵", 한겨레 (2018. 1. 18.)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8404.html 87년 체제를 열어젖힌 데 대한 보상(?)으로 명예와 권력을 넘어 경우에 따라서는 富와 그 세습까지 보장받은 이들이,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자신들의 시대를 스스로, 비가역적으로 강제 '폐막'시키고 있는 동안, 보수주의자로 분류되었던 소설가 김훈이 오히려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추락사와 산업재해 문제에 관하여 꾸준히 발언하고 계신다. 김훈, "[왜냐면] 아, 목숨이 낙엽처럼", 한겨레 (2019. 5. 14.)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93771.html

  대하소설만 위대하고 거대담론을 다뤄야만 가치있는 문학은 아니지만, (또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오늘날 박경리 선생님이나 작가 최명희 님처럼 그야말로 목숨 걸고 쓰시는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다(오히려 만화 같은 장르에서 그 비슷한 경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박상현, "문학은 민족 생존권 깨닫게 할 거대담론 다뤄야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출간", 연합뉴스 (2020. 2. 24.) https://www.yna.co.kr/view/AKR20200224122300005정영훈, "사람들이 토지·태백산맥 안 읽는 진짜 이유는…", 프레시안 (2012. 9. 11.)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68066 (갈수록 갸웃할 때가 많아지는 것 같지만, 여러 논란과 평가는 일단 접어두고라도 40년, 50년 넘도록 꾸준히 '소설'을 내고 계시는 김주영, 조정래, 황석영 같은 분들은 가히 노익장이라 할 만하다. 문순태 교수님께서는 재작년 두 번째 시집을 내시기도 했다.)

  가치 혼란,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한때 존경받았던 분들이 다양한 갈래로 '흑화'하고 판단이 흐려진 모습, 혹은 민주-반민주의 단순한 전선하에서는 용케 덮일 수 있었던 진면모(?)를 드러내어 보이며 실망에 실망을 안기고 있다. 최근 '문학동네'는 젊은작가상 수상작에 대한 삭제와 수상 취소 요청, 또 이를 접한 독자들의 문제제기를 받고 입장을 조금씩 후퇴해가다가 어제는 판매중지를 공지하기까지 했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다.


[『토지』와 『혼불』을 함께 다룬 논문들을 몇 개 발견하여 기록해 둔다. 김희진, "최명희 『혼불』과 박경리 『토지』의 인류학적 연구", 2013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research.html?dbGubun=SD&m201_id=10042338; 김희진, "최명희 『혼불』과 박경리 『토지』연구 - 풍속을 중심으로 -", 인문사회 21, 7(3), 201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17170; 이경, "겁탈과 여성인물의 생존서사 : 『태백산맥』, 『토지』, 『혼불』을 중심으로", 여성학연구, 26(3), 201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63871; 우수영, "박경리 『토지』와 최명희 『혼불』을 통해 고찰한 한국의 음식문화", 현대소설연구, 58, 2015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85392김순례, "한국여성대하소설을 통해본 ‘여성의 가문의식’ 연구 -토지와 혼불을 중심으로", 국제한인문학연구, 1(1), 2012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93603 오세은, "여성 가족사 소설의 '의례와 연대성'-토지미망혼불을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 7, 2002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0888529; 이덕화, "『토지』와 『혼불』의 비교연구", 여성문학연구, 2, 1999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569184 (박경리와 최명희 두 여성적 글쓰기』, 태학사, 2002라는 책도 내셨다)]



  다시 찾은 박경리기념관에서 이 책이 눈에 띄어 샀다. 『토지』를 연재하면서, 또 『토지』 완간 이후에 틈틈이 쓰셨던 글들로, 직접 '미완'으로 표시하신 부분이 있는 등 계획을 갖고 '일본론'을 다듬어 나가셨던 게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토지』 자체가 '소설로 쓴 일본론'이고, 작가께서 일본 평론가와 인터뷰 자리에서 "나는 철두철미 반일작가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기도 하다.

  책 끝에 실린 강원일보 인터뷰를 보면, 『토지』 완간 이후의 계획에 관하여 "앞으로는 실제적인 이론이 서는 일본론을 집필할 예정입니다. 우리 세대 지나면 쓸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두 번 입 못 떼게 철저하게 조사해 쓸 겁니다. 어중간하게 칼 뽑지는 않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나온다(책 205쪽). 말씀 그대로 통렬하다. 삶을 걸고 내뿜는 일갈 앞에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나 실증주의 같은 것을 차마 들이대지 못하겠다. 특히 일본 역사학자 다나카 아키라[田中明]의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책 158쪽)에 대한 지상 반론(紙上 反論)인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책 173쪽)는, 정연한 글에서 벼락이 치는 것만 같다. 1부 다섯 번째 글 "출구가 없는 것"과 2부 "美의 관점"은 내용이 상당히 겹치는데, 뒤의 글이 좀 더 종합적이다. 일본문화를 분석한 글로, 대작가의 통찰이 빛난다. 책에서 글 하나를 고른다면 위 "美의 관점"을 추천하고 싶다. 일본문화의 허무주의와 탐미주의, 현실 도피와 쾌락 추구,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을 꿰는 논설로, 몇 문장으로 요약하기 힘든 글이다. 청산하는 독일과 청산하지 않는 일본의 차이를 '(진실을 추구하는) 철학의 부재'에서도 찾고 계신다(책 76쪽 이하).

  작가께서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우려하신 대로(책 17쪽), 일본 우익이 통치 위기를 모면하고자 혐한 감정을 조장하고, 한국 학자들까지 동원하는 양상이 걱정스럽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고 분명한 것을 아니라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그 무서운 것이 차음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인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씨가 마르게 사내들이 죽어간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의 악몽은 사람이 현인신(現人神)으로 존재하는 거짓의 그 황도주의 때문이다. 가타비라 같이 속이 비어 있는 신국사상에 매달려온 일본인의 역사의식 그것의 극복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사람으로, 야심 없는 이웃으로 마주 보기 위하여,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책 29~30쪽)


  "저는 과거에 원한을 갖고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본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고 묻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일본의 민족성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스스로도 희생자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체제입니다. 체제가 뭐냐를 물어야지요."(책 202쪽)


  박경리 선생님의 문장들이 반드시 어법에 맞지만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렇지만 끈덕진 말맛이 감돌고, 절로 설복되는 묵직함이 있다. "나는 인생만큼 문학이 거룩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책 148쪽)라고 말씀하시며 "결코 사사오입의 인생을 살지 않[고] 내부에서 가장 치열한 사고의 반란을 겪었던"(책 121쪽) 분이시기에, 역설적으로 문장에도 인생 그 이상의 무게가 실릴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아니 모든 생명은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한다. 그러나 살기 위하여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도 삶의 투쟁, 삶의 인식, 삶의 조화 그 모든 삶에 수반되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신묘한 본질적 삶의 교향악 위에서 군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술은 삶의 추구며 방식이다. - P59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지만 결코 반일본인은 아[닙니다]. - P84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 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의 목을 조르는 아들의 비극이 없기 위하여. - P87

후일 일본론을 쓸 생각입니다마는 너무나 학생들은 일본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고 사회 자체도 일본의 정체에 무관심하며 또는 일본을 모범으로 생각하는 부류의 확대되는 양상을 보며 걱정을 한 나머지 나로서는 이나마도 성급하게 엉성하나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일본을 모른다는 것이 학생들의 잘못은 아닙니다마는 마지막 꼭 해두고 싶은 말은 결코 일본을 모델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 P109

하기는 우리 민족 전부가 겸손하고 고상하고 객관적이고 했으면 오죽 좋을까마는 그렇지 못하다 해서 함구령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은 학자의 독점물은 아니며 사람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역사에 동참해온 것만큼 알 권리, 말할 권리는 있다. 설령 일부 지각없는 사람들이 우쭐해서 과잉 표현을 좀 했다 하자. 그들의 천진한 자랑 때문에 일본의 땅 한 치 손실을 보았는가, 금화 한 닢이 없어졌는가, 왜 그렇게 못 견뎌 할까. 그같은 자랑조차 피해로 받아들이는 그들이고 보면 우리 한국의 천문학적 물심양면의 피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안이 벙벙해진다. - P181

그러나 나는 어리석고 느슨한 내 겨레를 슬퍼하지는 않는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도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90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 P192

"나앉은 거지가 도신세 걱정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이 얘기는 일본의 경우일 수도, 우리의 경우일 수도 있다. - P193

저는 『토지』를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토지에는 왜 농부가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전 인류적인 삶을 다루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따로 없다고 했습니다. 『토지』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나무나 돌도 제 역할합니다. 저는 바람과 물에도 다 필연성을 부여했습니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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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작은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왠지 기시감이... 1963년에 나온 책이고, 시공사 번역 초판 제1쇄도 1994년에 나왔다고 하니 어릴 적 보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그림책 거장 모리스 센닥 Maurice Sendak은 칼데콧 메달 & 아너를 8회(메달 1회, 아너 7회)나 수상하여 9회(메달 3회, 아너 6회) 수상한 마샤 브라운 Marcia Brown의 뒤를 잇고 있다. 1954년 "A Very Special House", 1959년 "What Do You Say, Dear?", 1960년 "The Moon Jumpers"(번역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62년 "Little Bear's Visit", 1963년 "Mr. Rabbit and the Lovely Present" 등 칼데콧 아너를 꾸준히 수상하며 문을 두드린 끝에 바로 위 작품으로 1964년 칼데콧 메달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와 함께 모리스 센닥은 엄청난 명성을 거머쥐게 되었고, 1970년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아데르센상의 그림 부문 역대 세 번째 수상자가 되는 기염을 토한다('글' 부분에서 1958년 '말괄량이 삐삐'를 탄생시킨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1966년에는 '무민'을 탄생시킨 토베 얀손이 수상한 바 있다. 일본은 1980, 1984, 1994, 2014, 2016년 등 글 3회, 그림 2회 수상 경력이 있었는데, 2020년 다지마 세이조田島征三가 그림 부문에서 수상하여 그림 부분 수상을 3회로 늘렸다. 우리는 아직 수상자가 없다). 센닥은 1971년 "In the Night Kitchen", 1982년 "Outside Over There"로도 칼데콧 아너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2003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으며(2020년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가 수상하셨다!!), 2012년 83세로 생을 마쳤다. 다음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페이지 "모리스 센닥의 작품과 영향"이라는 제목의 글 링크 https://astridlindgrenmemorialaward.wordpress.com/2016/03/03/the-artistry-and-influence-of-maurice-sendak/ 



  칼데콧 메달에 관한 소개와 역대 수상작은 http://ala.org/alsc/caldecott 및 https://en.wikipedia.org/wiki/Caldecott_Medal 참조.


  센닥은 칼데콧 메달을 수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 링크에서 들을 수 있는데, 음악이 어떻게 작품활동에 도움을 주는지에 관한 언급도 흥미롭다. https://alair.ala.org/handle/11213/8111


“Certainly, we want to protect our children from new and painful experiences that are beyond their emotional comprehension and that intensify anxiety; and to a point we can prevent premature exposure to such experiences. That is obvious. But what is just as obvious-and what is too often overlooked-is the fact that from their earliest years children live on familiar terms with disrupting emotions, that fear and anxiety are an intrinsic part of their everyday lives, that they continually cope with frustration as best they can. And it is through fantasy that children achieve catharsis. It is the best means they have for taming Wild Things.”


  실제로, 칼데콧 상 수상작들을 보면 그림이나 내용이 기괴한(?) 것들이 많다. 함께 보려하면 아이가 내용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서 경악하면서 책을 아예 펼치지도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책인데... 어른들에게라면 또 모르겠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했는지, 그것이 과연 유익한 것인지 솔직히 의문스럽긴 하였다.




  아무튼 센닥의 다른 작품들.




  말이 나온 김에 2020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에 빛나는 백희나 작가님 작품들을 창작 연대 순으로 정리하였다. 알라딘의 경쟁사(?)인 YES24에서 특별 기사를 낸 것이 있다. 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특별 기고] 백희나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이 갖는 의미" (2020. 4. 9.) http://m.ch.yes24.com/Article/View/41503



  백희나 작가께서 그림과 인형 제작 등으로 참여한 책들.

 



  다지마 세이조의 책들도 꽤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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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사를 성공 만능주의, 영웅주의, 엘리트주의 관점이라는 굴절된 시야로 바라본다. 《로마인 이야기》가 인기를 누린 이유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휩쓸기 시작한 1990년대 이래 우리 사회의 풍토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사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리더십을 중시했고, 그러다 보니 민중은 언제나 영웅을 추종하는 존재로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어찌 보면 이것은 독재를 변호하고 민주주의를 유보하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바라보는 로마 제국의 팽창은 침략과 영토에 대한 욕구가 아닌 로마의 안전을 확립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본이 선제적으로 자국의 안전을 위해 조선을 침탈했다는 위험천만한 논리로 발전할 수 있다. 자국의 안전을 위해 침탈했다는 주장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은폐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기만적인 표현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맞물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사에대한 이해는 많은 우려를 자아낸다. 로마사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왜곡된 이미지에서, 한국 현대사를 자랑스러운 영광의 역사로 재조명하자면서 오랜 산고 끝에 성취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합리화하려는 우익 진영의 움직임이 연상되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 2017년 1월(?) 감수자 서문 중에서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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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특별한 보물 무민 그림동화 1
토베 얀손 지음, 서하나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근처 공공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읽어주다가 감동해서 눈물이 날 뻔... 상당히 긴 편이었는데도 집중해서 잘 듣더라. 시리즈 전체를 조금씩 빌려보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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