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영상에서는 둘이 부른다...어제 먹은 술이 아직도 깨질 않네.아이 머리야.sade는 뒤에서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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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손목 통증으로 인해 연주 무대에서 천천히 물러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그런 와중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집 녹음 완성은 반가운 소식이었다.처음 나온 소나타집을 듣고 이후 약간 망설이고 있었다.전집 나올때 까지 기다리려는 마음도 있었다.또한 많은 베토벤 소나타 녹음 중 백건우를 골라야하는 이유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근본적으로 나는 전집을 잘 사지 않는 편이다.짧게 말하면 골라 먹는 재미가 없어서이다.그럼으로 이번에도 여전히 어떻게 할 까 여전히 고민중이다.

굳이 전집을 사야한다면 왜 백건우여야 할 까는 아직도 답을 못내고 있다.한국 연주자이기에 조금 더 애정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다른 위대한 연주자들을 뒤로 접어야할 만한 답은 못된다.

과거 연주자로 한두곡이 빠지지만 값도 저렴한 강철타건 에밀길레스도 좋고 오래된 녹음이지만 박하우스나 캠프도 훌륭하지 않던가.또한 한 장 한 장 쌓여가는 모더니스트 폴리니의 연주는 어떤가.지성적인 브렌델의 녹음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백건우가 베토벤 소나타 녹음의 기치를 올렸을 때 음악계의 중견피아니스트들도 무릎팍 산을 오르듯 베토벤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음반을 낼 때마다 근자에 나온 음반중 베토벤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게르하르츠 오피츠,ECM레이블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서정주의자 안드라스 쉬프,영국 피아니스트계의 샛별 폴 루이스 등이 그들이다.정말 2007년 클래식 음반계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각축장이다.

어찌되었거나 백건우의 음반이 이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지난 토요일부터 백건우는 32곡의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하고 있다.8일에 걸친 연속공연이다.곡 순서는 백건우 자신이 정했는데 주로 후반부에 곡명이 있는 소나타를 배치했다고 한다.예를 들면 비창,월광,열정,발트슈타인 같은....사실 가장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 것은 마지막날 공연되는 후기소나타 3곡이다.

한국방송의 클래식FM에서는 월요일부터 백건우 피아노소나타 공연 실황을 <FM실황음악회>를 통해 방송한다.아기때문에 저녁 시간에는 그냥 라디오 틀어놓고 배경음악처럼 듣다가 하루 지나 깊은 야밤에 다시 듣기로 듣고 있다.....양이모 후보의 지지율이 클래식 지지율보다 높으니 안타깝다.또한 클래식 지지자 중에 양이모 후보 지지자들이 높을테니 또한 안타깝다.나야 라디오로 듣고 만족하지만 저기 공연 앉은자들 중에 대개는 좌파정권 종식을 목표로 삼거나 아님 탈정치적 인간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할테니 라디오로 듣는게 감상에 덜 방해가 된다.그들이 최고로 감동 먹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스스로 음악가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했는데....그 말이 품고 있는 예술의 의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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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부산은 봄 날씨 같았다.

점심 먹으로 갈 때 봄 날씨 같아서 도망가고 싶었다.

퇴근하며 차에서 내렸을 때 코로 스며드는 공기는 촉촉한 봄 밤의 그것이었다.

겨울이 이제 시작인데...

나는 봄이 좋더라.

이런 잼을 직접 보면 얼마나 즐거울까..

모두 모두 해당 장르의 수퍼스타들...저기 뒤에 나오는 사람까지도 ^^

비비킹,에릭 클립튼,버디 가이,코코 테일러,에리카 바두,스티브윈우드,찰리머슬화이트,닥터 존,폴 쉐퍼,지미레이본,글로버 워싱턴 주니어....

 아르헤리치,키신,플레트네프,레바인,사라장,기돈크레머,미샤마이스키,테츨라프,카퓌송,레핀,바쉬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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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의 아이들 - 세계화 시대의 야만, 어린이 노동
제레미 시브룩 지음, 김윤창 옮김 / 산눈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저 아이의 이름은 '루빠' 이다.내가 이 아이를 본 것은 지하철에서다.옆에 앉은 사람의 신문을 훔쳐보다  아이와 시선이 마주 쳤다.내 돈 주고 사보지 않는 '조선일보' 였다.신문에서는 이 아이를 '돌깨는 아이 루빠'라고 소개했다.

조선일보에서는 몇 달 전에 our asia 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아시아 아동 노동의 현장을 촬영하고 이를 지역 민방과 기타 다른 매체를 통해 방송한 것이다.방송학계에서는 신문기업의 방송 진출의도가 드러난 시도로 보았다.나는 이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보지는 못했다.신문과 방송을 통해 이 시리즈가 나가고 국내에 후원금이 꽤 모였다고 한다.내가 지하철에서 본 신문의 기사는 캠페인 이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후일담 기사였다.

나는 부랴 부랴 동영상을 검색해서 보았다.('돌깨는 아이 루빠'로 검색하면 만날 수 있다.이외에도 성매매하는 아이,길에서 꽃을 파는 아이등 많다.) '루빠'는 8살이고 네팔에 산다.네살 때부터 돌을 깻다고 한다.마을사람들은 강가에 천막을 치고 모여 살면서 모두 돌을 깨어 먹고 산다.돌을 깨는 작업은 매우 위험하다.아이들 중에는 망치에 손을 찧어 손가락이 마비된 아이도 있다.또 깨진 돌이 튀어 실명하기도 한다.하루 10시간씩 돌을 깨면 우리 돈으로 500원 정도 번다.이 마을에 아이들은 4살쯤 되면 강가에 앉아서 돌을 깬다.루빠 역시 그랬다.이 다큐멘터리에 보면 2살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돌망치를 들고 돌을 깨면서 논다.태어나면서 본 그 일을 앞으로 그 아이도 평생할 것이다.마을은 온통 돌가루 먼지로 회색이다.아이들은 거기서 일한다.루빠에게는 양팔이 없는 동생이 있다.이 아이는 돌을 깨지 못하니 아빠가 일하는 곳에서 새처럼 앉아서 미안함을 달랜다.다큐멘터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무의미한 이 작업에 운명을 걸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지옥에 빗댄다.8살 짜리 루빠가 그런 말을 한다.

"글도 모르고 가난하니까 돌을 깨야해요 이게 내 운명이에요"

8살 짜리 아이 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니...

다큐멘터리는 유엔아동권리 조약을 수시로 비춘다.즉 아이들의 노동을 금지한다는 규약이다.프로그램은 네팔 정부가 이 조약을 지키기 위해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뉘앙스를 풍기며 끝을 맺는다.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단순할까?

제레미 시브룩의 <다른 세상의 아이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만약 당신이 따뜻한 마음과 동정심으로 충만하여 '아동 노동'을 없애는 것이 '선'의 실천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그리고 또 그런 '정언명령'을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다면. 이 책 <다른 세상의 아이들>을 읽어보아야 한다.제레미 시브룩은 19세기 산업태동기의 영국과 20세기 방글라데시 아이들을 교차편집하여 비교한다.19세기 당시 생활상을 묘사한 글들과 오늘날 남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은 놀라울 만큼 유사성이 있다.

저자는 산업 혁명기 전부터 빈민 아동들의 노동이 이용되었다고 말한다.그리고 산업혁명기에 와서 아동 노동은 노예 노동을 대체하여 높은 수익성을 올리는 토대가 된다고 말한다.말썽많고 통제하기 힘든 노예 대신 순응적인 아동들이 그자리를 대신한 것이다.그리고 그 때 부터 이미 아동 노동에 대한 논쟁들이 있었다고 말한다.즉 '아동 노동폐지론'과 '아동 노동보호론'이다.제레미 시브룩은 '아동 노동폐지론'이 지극히 서구적 아동관에 바탕을 둔 가치라고 말한다.우리가 상식적으로 믿는 '아동'은 서구 근대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아날학파의 대가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이 입증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결국 서구 모델은 '노동 없는 유년기'라는 근대적 관념을 창조한다.그련데 대부분 방글라데시 같은 빈국에서 아동 노동이 금지되면 어떻게 될까? 불행히도 이는 한 가족의 '생존권'을 뺏는 결과를 낳는다.온 가족이 하루 종일 일해야 겨우 먹고사는 마당에 아이들의 일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킬 수 없다는 점을 상식적인 휴머니즘이 잊고 있다는 것이다.미국 의회에서 아동 노동에 의존한 의류사업을 금지하기 위해 실시한 '하킨 법안'은 아동 노동 금지가 아무리 욕구는 강할지라도 그렇게 무턱대고 실시할 수 없는-훨씬 섬세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하킨법안'이 강제되면서 빈국에서는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했다.아이들은 의료공장에서 쫓겨나서 더 열악한 공장으로 향하거나 거리로 흘러들어갔다.아이들이 더 비밀스럽고 열악한 곳에 더 대항력없이 스며들게됨에 따라 아동 노동을 금지하겠다는 법안의 취지는 무색해지고 말았다.

제레미 시브룩은 아동 노동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역사적인 가난,빈곤한 교육체계,세계화,그리고 소비주의를 꼽고 있다.서구는 이런 문제를 제공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고 서구적 가족 규범을 유엔의 이름으로 강제하고 있다.저자는 많은 서구국가들 역시 전통 사회에서는 가족 경제 내에서 아동 노동을 일정 정도 인정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서구 국가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집단망각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아동들의 도덕적 십자군인양 행사하고 있는 것 뿐이다.우리 나라의 50-60년대만 생각해봐도 이는 분명하다.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꼴베고 소 풀먹이는 등 가족 경제에 노동력을 제공했었다.저자는 서구의 양심이 실제로 핵심에서 종종 멀어지며 수혜자들에게 미칠 결과에 대해서도 잘 고려하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이런 논의가 이어지다보면 결국 '답은 성장이다'로 귀결되곤 한다.일정 정도의 성장 없이는 분명히 아동 노동 문제 해결에 답이 없어 보이긴 한다.그렇지만 이런 성장론자들은 주로 서구 성장 모델을 금과옥조로 삼고 그걸 따라하면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그렇다면 서구의 빈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절대 빈곤은 많이 벗어났지만 불행히도 서구와 그를 열심히 따라하는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많은 빈곤층이 존재한다.요즘 밥못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었어라고 한다면 인터넷에 우리나라 결식아동 숫자를 검색해보면 된다.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성장에 따른 분배이다.저자는 서구 성장의 역사가 정복과 통제의 역사였음을 잊지말라고 말한다.이런 류의 주장은 가난한 나라에게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는 식민경제 모델을 따르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말한다.오히려 현재 불고 있는 세계화는 국가의 위치를 축소하고 빈부격차를 벌여서 아이들에게 일을 시킬수 밖에 없는 가난한 빈민들에게 더 큰 짐만 안기는 서구와 빈국내 기득권자들만을 위한 발전방향이라고 비난한다.

또한 사람들은 '교육'의 부재에 대해서도 말한다.교육수준이 높아지면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지 않고 좀 더 나은 작업장에서 일할 것이라고 말이다.맞는 말이다.그런데 가난한 나라에서 교육받은 일부는 여전히 실업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실제 써먹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저자는 가난한 나라에서 아동 노동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말하지는 않는다.그 안에는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기능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작용하기도 한다.아동 노동의 문제는 단순히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현재적 문제이다.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시각에서 많은 부분을 돌아볼 수 있어야한다.

제레미 시브룩은 아동노동 폐지론과 문화적 다원주의에 바탕을 둔 옹호론 사이에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안타까운 것은 저자가 이 균형점에 대해 딱부러진 도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아동노동 옹호론이나 점진주의적 폐지론 (유해 환경하의 고된 노동에서의 해방)등이 아동노동 악용론자들에게 이용될 가능성도 다분하다.그렇지만 서구화된 우리의 시각에 아동 노동에 대한 조금더 균형잡힌 시각을 주는데 이 책은 도움이될 듯 하다.

또한 우리의 따뜻하지만 낭만적인 양심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조선일보가 기획한 our asia는 좋은 프로젝트였지만 결국 그런 상식의 지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리고 이런 점도 생각해 볼 만하다.조선일보가 줄기차게 신자유주의의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거의 승리주의 전도사이다.그런 철학은 전 세계 아동노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철학과는 상반된다.대신 조선일보는 our asia를 통해서 개인의 낭만적 인도주의로 문제를 치환시켜 버렸다.우리는 더 많은 돈을 내거나 더 슬픈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우리는 이를 통해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는 안도감을 갖기도 한다.사실 이런 작업들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생각치는 않는다.하지만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섬세함을 읽지 못한다면 결국 그 일은 자기만족을 위한 '비아그라'일 뿐이지 않을까?

제레미 시브룩은 그들을 다른 세상의 아이들이라고 칭했다.하지만 제목이 잘못되었다.그들은 우리 세상의 아이들이다.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작은 기부가 그 첫 걸음일 수 있다.하지만 거기서 생각을 멈추지는 말자.그 순간부터 그 작은 기부는 우리의 위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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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2-07 21:5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는 조선일보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사이비 꼴통짓도 물론 계속 하고는 있지만, 요즘의 조선일보 국제뉴스는 과거보다는 확연하게 업그레이드 되었답니다. 차원이 좀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꼴통이라기보다는 '온정적 보수주의'에 많이 다가섰다고나 할까요. 저는, '구조적 모순'을 짚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푼두푼 돕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튼 드팀전님의 리뷰는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에도 동의하고요. 실은 이 책 지금 제 책상 위에 있거든요. 세미나 하려고 사놓았는데.. 지적하신 부분들 잘 생각해가며 읽고, 친구들과 토론해보겠습니다. :)

드팀전 2007-12-08 11:24   좋아요 0 | URL
글쎄요...이것 저것 많이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그런 부분들이 하나 하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예전에 나왔던 조선의 북섹션은 무척 좋아라하기도 했습니다.그 작은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그 물들이 흘러서 무엇과 누구를 위한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는 바다로 흘러가는지 흐름을 보면된다고 생각합니다...저자가 한푼 두푼 돕는것을 의미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가끔 이런 글들은 그런 식으로 제단되는 것이 석연치 않습니다.또한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겠다고 말하지도 못합니다.저자가 진짜 이야기하고픈 바는 한푼 두푼의 '인간적감정'으로 보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자는거겠지요....개개인의 인간으로서 도무지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게 구조라는 것 아니겠습니까..저는 거기에 자칫 그런 활동들이 '양심적 인간임을 보여주는 따뜻한 위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더하고 싶구요.기부를 하더라도 겸손하게 해야지요.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섬세'하게 말이지요.제레미 시브룩이 '기부'에 대해 말했다면 '섬세한 기부'를 하라고 했들 듯 합니다.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전면개정판) -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옮김 / 시유시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맥도날드는 어디에..

십여년 전 이야기다. 6시간의 비행은 계절을 바꾸어 놓았다. 시드니 공항은 드꺼운 여름의 열기 아래 있었다.나의 양 손은 이미 무거웠다. 거대한 슈트 케이스에 빼았겨 버렸기 때문이다.한국에서 입고 있던 네이비 코트는 어깨에 걸칠 수 밖에 없었다. 필리핀 인으로 보이는 택시 기사가 운전한 차를 타고 처음 가는 목적지로 향했다.제대로 영어학원 한 번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메모해온 주소 덕에 목적지를 알리는데 어려움은 없었다.그러나 낯선 곳에서는 예상에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빌어먹을 택시 기사는 나를 목적지에서 20여 분 떨어진 곳에 떨어뜨려주었다.나는 이국의 폭염 아래서 양손에 슈트케이스를 끌고 코트는 어깨에 두르고 언덕길 즐비한 곳을 헤메기 시작했다.정작 문제는 배고픔이었다.그런데 걱정이 밀려왔다.도대체 어떤 음식을, 어떤 식당에 가서, 어떻게 주문하고 먹어야 할 것인가?  영어로 물어보는 종업원 앞에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나를 생각하니 미리 얼굴이 붉어졌다.그 때 갑자기 택시를 타고 오다가 본 '황금아치'가 생각이 났다.그렇다 나를 이 배고픔과 쪽팔림에서 해방시켜 줄 곳은 '맥아저씨'였다.나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청년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where is 맥도날드? "

나는 무려 그 청년에게 5분 여간 설명했으나 그 센스 없는 청년은 알아 듣질 못했다.내가 썻던 단어들....'햄버거.치즈버거...헝그리.코카 콜라".나는 나의 식민지 발음을 탓하며 이리저리 혀를 굴렸지만 그는 감을 못잡았다.결국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고 아무길이나 찾아갔다.그리고 바닷가 근처에서 '황금아치'를 만났다.죽으라는 법은 없는거다.

나는 뒤에 알았다.'맥도날드'가 이곳에서는 3음절이라는 것을...일본 애들은 6음절로 한다.

2.막스 베버와 맥도날드

패스트 푸드점 맥도날드와 맥도날드화는 비슷하지만 다른말이다.맥도날드화는 베버가 말하는 '근대적 합리성'과 유사하다.저자인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사회를 비롯해서 세계의 더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과정' 이라고 말한다.맥도날드는 관료제의 원리와 자동차 조립라인의 원리를 결합시켜서 맥도날드화를 이루어낸 대표적인 상징이다.

맥도날화의 특징은 베버의 이론에서 차용된다.즉 베버가 근대적인 합리성의 특징으로 본 효율성,계산가능성,예측가능성,그리고 자동화를 통한 통제가 그것이다.거기에 저자는 맥도날드화가 갖고 있는 내재적 한계를 5번째의 특성이라고 말한다.그것이 '합리성의 불합리성'이다.

그렇지만 맥도날드화가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진 것은 아니다.또한 맥도날드나 포드때문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다.조지 리처는 근대를 규정하는 관료제화,테일러의 과학적 관리,포드식 조립라인 등에서 패스트푸드 체인의 기반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맥도날드의 첫번째 특징 '효율성'은 빨라진 생활 속도와 가장 빈번하게 연결된다.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맥도날드는 메뉴를 간소화하고 주방을 공장으로 만들었다.즉 맥도날드가서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지를 미디엄으로 구워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재료들은 모두 규격화되어서 자동차 공장 부품처럼 하나의 완성된 햄버거를 위한 조립라인을 흘러다닌다.소비자들도 먹는 즐거움 대신 빠른 효율성을 택한다.그 완벽한 부합으로 제시되는 것이 '드라이브인'같은 써비스이다.맥도날드 세계에서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일시키는 것도 허용된다.우리가 '셀프 서비스'라고 하는 것들이 모든 자본의 이익을 위한 효율성에만 복무하는 것들이다.맥도날드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듯 말한다.그러나 실제 그 몫이 돌아가는 자들의 말일뿐이다.

맥도날드 세계의 두번째 특징인 '계산가능성'은 모든 것을 수량화하고 질보다는 양에 대한 강조를 부각하는 것이다.즉 속도,수량,크기가 맥월드의 이념이다.패스트푸드 말고 다른 예를 들어보자.가장 대표적인것이 '패키지 여행'이다.관광의 질은 중요치 않다.방문자 수와 몇 장의 사진을 건지느냐,몇 개국을 돌아다니느냐가 중심고려사항이다.'여행의 맥도날드화'라는 것이다.

'예측가능성'이란 것은 통일성과 표준화를 말한다.내가 글 첫머리에 낯선 곳에서 '황금아치'를 보고 반가왔던 것이 바로 소비자의 '예측가능성' 선호의 좋은 예이다.문제는 사람들의 본능적인 보수성향,안전 지향이 아니다.이것을 상업적인 환경이 이용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예측가능한' 놀이 동산 같은 것이다.안전요원,안전한 장비 등등의 이름으로 안과 밖을 구분한다.바깥은 범죄와 불안이 난무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안심시킨다.

'통제'는 말 그대로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자동화의 지향을 말한다.닭을 닭으로 키우지 않고 닭고기로 키우는 '공장형 농장' ,아이들을 쇼핑하는 좀비로 만드는 쇼핑몰,들여놓은 의료기계에 점점 종속되어가는 의료진...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화된 세계가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또한 이것이 일순간 투쟁으로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맥도날드의 효율성은 분명 필요한 것이고 또한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그렇지만 이 안에 문제점이 있으니 이것이 '합리성의 불합리성'이다.맥도날드의 예를 들면 일반 식당보다 더 기다려야하는 줄서기 같은 것들이다.사실 맥도날드가 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 만은 아니다.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맥도날드가 심어주는 환상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여기서 맥도날드 세계가 소비자들의 '오락에 대한 집착'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또 선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엔터테인먼튼 사업이나 놀이공원화된 즐거운 먹거리,개인정보를 이용한 거짓 친근감 같은 것들이 예로 제시된다.이런 시뮬라시옹을 통해 맥도날드가 현실에서 없애버린 것은 바로 '마법'이다.마법은 예측불가능성이고 세계의 질적 소중함이었다.맥도날드의 애리한 현미경은 이를 산산히 파괴한다.이것은 세계의 동질화와 비인간화를 초래한다.

3.그 많은 맥도날드는 어디로 가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서 베버의 합리화론에 기대어 설명하는 장면은 흥미진진하지만 조금 길다.구체적인 예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분량이 늘어났다.이것도 맥도날드적 속성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압축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개인적으로 책 후반부쪽에 배치된 '변화하는 세계속에서의 맥도날드' 장이 즐거웠다.'맥도날드화가 어떻게 구현되어 왔는가 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맥도날드가 진화 하는지..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 더 현실적인 고민거리를 주기때문이다.'고품질화한 패스트푸드' '토착화된 맥도날드'같은 것들이다.조지 리처는 포드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시대에 맥도날드가 어떤 위상을 갖고 어떻게 자기 변신과정을 취하는지 보여준다.또한 바뀐 세상에서 맥도날드가 어떻게 될는지도 예상한다.조지 리처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인가 아니면 후기 자본주의 문화>를 인용하여 맥도날드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말한다.즉 모너니티와 포스트 모너니티의 연속성을 강조한다.조지 리처의 경우 조금 더 모더니즘의 입장에서 지난 세기를 주도했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근본적 변화가 없다라고 강조한다.개인적으로 이 뒷부분에 대한 분량이 조금 더 많았으면 하지만 한 권의 책에서 모든걸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4.맥도날드는 감옥인가?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맥도날드에 대한 점진적이고 온건한 대응책들을 제시한다.그중에서 실천적 과제로 나오는 것들은 아주 귀엽기까지 하다."제목 뒤에 숫자 적힌 영화들은 보지 말자" "백화점에서 점원이 깜짝 놀라게 신용카드를 주지말고 현금을 내자" "돔구장이나 인조잔디 야구장에 가지말자.대신 보스턴 팬웨이파크나 시카고 리글리 필드 구장에 가자" (뭔말인가 할 수도 있겠다.이 책을 보지 않았고 미국 메이저 리그를 본 적이 없으면 당연하다.) 저자는 맥도날드화에 대응하는 세가지 형태를 말한다.맥도날드 문화를 즐기는 '벨벳 감옥' ,맥도날드를 디스토피아로 보는 '쇠감옥'그리고 얼마든지 진출입이 가능한 '고무 감옥'이다.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실천 영역 안에서 맥도날드를 접하자는 것이다.맥도날드가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과 그것외엔 답이 없다고 패배주의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물론 조지 리처의 현실 설정에 대해서도 딴지를 걸 수있다.조지 리처는 현세계를  결국 '감옥'이라고 쓰고 있다.근대성의 대전제가 부정적인 세계로 귀결된다.결국 우리 모두는 맥도날드 매트릭스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혁명을 팝니다>의 저자들은 일부 좌파와 반소비주의자들이 전제하고 있는 '억압으로서의 세계'에 대해 부정적이다.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근대화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반문화적 가치가 세계를 부정과 탈출의 대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그들은 반문화가 사실 사기라는 극언을 취하기도 한다.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극단적 반문화자는 아닐지라도-조지 리처도 그런 세계관의 토대 위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맥도날드화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한다.그렇지만 그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무가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나 역시 동의할 수 밖에 없다.나는 다행히도 결혼 이후  점점 맥도날드로부터 멀어지고 있다.와이프의 덕분이다.와이프는 이론적이진 않지만 나보다 더 패스트푸드를 못 먹고 나보다 현대 의료 쳬계에 대해 부정적이다.우리는 '아이 출산' 과정에 있어서 맥도날드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또한 언제부터인가 집에서는 제철에 난 것들만 먹고 있다.또한 나름대로 관례화된 업무를 빨리 끝내버리고 글쓰기라는 비합리적인 짓들을 할 시간도 만들고 있다.다행이고 행운이고 감사할 일이다.  저자는 현재 나와 아내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제안한다."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아이들을 구하라" 아이들을 맥월드로 부터 구하려면 부모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TV 드라마에 눈을 꽂고 있으며 아이에게 TV보지 말고 책보라고 해봐야 먹히지 않는다.

이 책은 사회학의 고전적 이론을 가지고 세계의 숨은 속살을 대중적인 시각으로 드러내 놓았다.책 후반부의 재기도 이 책을 더욱 빛낸다.그리고 저자가 마지막으로 인용한 딜런 토마스의 싯구는 여기저기 마구 마구 인용하고 싶어진다.

"그 깊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빛의 소멸에 분노,또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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