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타듯이 가을 타는 사람들....다 죽자.

가을 태우는 풀무질이다.

남은 재마저 바람에 흩어버릴테다.

노래 듣고 다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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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Mephistopheles 2007-09-27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저기...반만 죽으면 안될까요....

라로 2007-09-2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어욥!!






이노래도 듣고 안죽으면 안될까요????

kimji 2007-09-2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때 저는 '아, 작살이다' 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안그래도 첫번째 곡은 얼마전부터 내내 듣던 거라서(근데 동영상은 첨 봤습니다), 더 죽겠네요. 페이퍼 제목 만드는 재주가 아주 뛰어나다는 걸, 새삼 느끼며, 한 번 더 죽어야겠습니다. 찬찬히 들으면서.
 
노동의 힘 - 1870년 이후의 노동자운동과 세계화
비버리 실버 지음, 백승욱.안정옥.윤상우 옮김 / 그린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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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버리 실버의 <노동의 힘>은 '세계체제론'이라는 뿌리에서 출발한다.하지만 '세계체제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노동의 힘>을 읽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실버는 아리기의 <장기 20세기>에서  '헤게모니의 순환론'을 기본틀로 삼는다..아리기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체계적인 축적을 통해 마지막으로 금융적 축적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고 말한다.그리고 잠시 동안 화려한 벨에포크라는 정점을 지난다.이후 헤게모니는 다른 국가로 넘어간다.그는 16세기부터 네번에 걸쳐 헤게모니의 이전이 있었다는 점을 살핀다.북부 이탈리아도시 국가,네덜란드,영국,그리고 20세기 미국의 시대가 그것이다.아리기는 헤게모니 국가가 지배적인 지위를 점하는 독특한 축적구조를 갖는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순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월러스틴이 세계를 기축적 분업에 의해 구분한 것에 비해 아리기는 하나의 세계적인 축적구조의 순환이라는 견지에서 역사적 자본주의를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동학을 읽어내고 예견한 공에도 불구하고 세계체제론의 가장 큰 약점은 '노동'의 문제였다.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체제론은 '자본'의 입장에서(자본가의 입장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구성과 역사적 확장,그리고 변천을 살핀 것이다.체제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저항담론과 자본에 대한 상대역으로서 대중운동의 동학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이러한 한계에 대해 '세계체제론'의 입장에서 '노동의 동학'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실버의 이 책이다.

저자는 우선 '노동 위기론'에 대한 진단부터 시작한다.현재 노동문제를 둘러싼 담론에는 두가지 경향이 존재한다.현재의 자본주의 변화가 전례 없는 것으로 전지구적 경제과정을 변화시켜 노동 운동의 기반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노동운동에 연연하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또 다른 쪽에서는 자본주의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모순과 갈등이 반복될 것이고 말한다.실버는 역사적으로 자본의 동학에 따라 노동의 동학도 함께 간다는 입장에 서 있다.실버의 주장을 한 가지 테제로 정리하면 "자본이 가는 곳에 갈등이 따라간다."는 것이다.

실버는 세계화 시대에 전향적으로 등장한 '노동위기'에 대해 '담론'의 위기가 오히려 이를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물론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움직임이 꼭 담론 영역에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금융자본주의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움직임은 노동운동 자체에도 실질적으로 타격을 주었다.하지만 문제는 '대안은 없다'라고 손을 놓아버리는 담론 환경 형성에 있다.

"자신들에게 힘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노동자들이 지닌 힘의 중요한 원천이었다.세계화는 이처럼 노동자들에게 힘이 있다는 한 세기나 된 신념에 구멍을 냈으며 대중의 정치적 사기를 극적으로 꺽고 변화를 위해 싸우려는 의미마저 꺽는 담론환경을 만들어냈다."(프란시스 피븐& 리처드 클라워드)

실버는 에릭 올린 라이트를 인용하여 노동의 힘을 시장교섭력작업장 교섭력으로 구분한다.시장교섭력이라는 것은 노동 시장의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생기는 힘이다.요즘 같이 실업과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시대라면 시장교섭력이 별로 없다.반면 작업장 교섭력은 노동자집단이 산업부문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때문에 생기는 힘이다.몇 명 안되는 화물연대 파업이 저녁뉴스 앞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작업작 교섭력이라는 것이다.화물유통이라는 전략적 위치가 주는 힘이다.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기 발 밑에서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힘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산업의 발전이 노동자의 연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실버는 이를 비유하여 산업의 발전이 노동의 시장교섭력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작업장 교섭력과 연합적 힘을 모두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노동의 힘>은 노동소요를 중심으로 노동동학을 살핀다.이 책은 전세계노동 소요의 패턴을 그리기 위해 세계 헤게모니 국가의 두 신문 ,영국의<타임스>와 미국의<뉴욕타임스>의 신문기사를 통계자료로 활용한다.즉 거시적인 역사 변동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이 책에서 세계 노동의 장기적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두가지 노동소요를 상정한다.하나는 '폴라니식 노동소요'이고 다른 하나는 '맑스식 노동소요'이다.'폴라니식 노동소요'란 전지구적인 자기조절 시장의 확산에 반격하는 저항이다.기존의 사회협약이 축소되면서 전지구적인 경제적 전환탓에 해체되어 가는 노동계급의 저항이다.맑스식 노동소요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발전이 과거 노동계급을 해체하면서 새로운 노동계급을 형성하게 되고 이 계급이 투쟁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노동의 힘>은 19세기 섬유산업과 20세기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자본-노동의 동학을 파헤친다.자동차 산업은 자본주의의 대변화였던 포드주의 대량생산의 핵심이었다.포드주의 생산양식은 분업화를 특징으로 한다.이것은 비숙련노동자를 양산하고 노동계급을 분절화한다.그렇지만 동시에 한 공정이 멈추어 서버리면 나머지 공정도 작동할 수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이 지점에서 노동자들의 작업장 교섭력이 커지게 된다.자동차 산업은 최초 미국에서 시작되지만 이후 유럽으로 동아시아로 이전된다.이때마다 자본-노동의 갈등은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해왔다.이 유사한 패턴을 자료를 통해 입증한 실버는 데이비드 하비의 '재정립'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쫓고 쫓기는 술레잡기를 설명한다.

먼저 자본은 '공간재정립'을 통해 노동 소요를 회피하는 방식을 취한다.즉 다른 지역으로 생산을 재배치하는 것이다.미국 자동차 산업이 팽창하고 이에 따라 노동 소요 역시 커지게 되자 미국 자동차 업계는 처음에는 미국 남부로 이전한다.이어서 유럽 그리고 한국 등지로 자본을 이동시킨다.결과적으로 전지구적 차원에서 '공간재정립'은 별 효과가 없이 갈등을 이전하고 있을 뿐이다.'기술재정립'은 포스트포드주의적인 조직혁신 통해 노동-자본관계의 전환을 도모한다.흔히들 JIT 모델로 알려진 린 생산방식이 대표적이다.유연작업,하청체계,효율적 부품조달방식,수직적 생산통합,탄탄한 품질관리 시스템...린생산방식은 핵심노동력에게는 고용안정성을 부여하고 특권없는 노동자를 완충장치로 쓰는 이중적 린생산 방식을 기초에 두고 있다.하지만 실제 미국이나 유럽의 다국적 기업의 경우 핵심노동력에게도 고용안정성을 주지 않는 인색한 린방식을 채택한다.하지만 이 린 방식이라는 것 역시 부품공장과 수송부문의 파업에 대해서 포드주의 방식 만큼이나 취약하다.또한 일본의 경우 다층적 하청체계에 의해 생산의 대부분을 동남아시아로 옮겨갔다.문제는 노동시장의 이중성이 새로운 공간적 형태를 띠는 경우,국적,인종,종족성 같은 이유들이 노동소요에 동원되어 문제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즉 린생산방식은 '완충장치'들의 안정성이 필수인데 이것이 흔들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제품재정립'이라는 방식으로 자본은 이윤압박에 대응한다.혁신적이고 더욱 이윤이 높은 새로운 생산라인과 산업으로 자본을 이동하는 것이다.이렇게 되기 위해선 혁신기업이 거둬들인 독점적 초과 이윤과 안정적인 노동-자본의 타협이 필요하다.그렇지만 제품 주기의 혁신단계에서는 독점적 이윤이 가능할뿐 이후 성숙단계와 표준화단계에 뛰어든 국가의 경우 사회협약을 감당할 이윤확보가 불가능하다.예를 들어 미국의 포드주의적 시스템은 독점이윤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에게 대량소비의 신화를 심어주었다.그리고 실제 임금상승을 통해 자본-노동간 담합을 이루어내었다.일명 '헤게모니적 공장체제'가 만들어진것이다.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시점에 뛰어든 반주변국가에게는 노동자들에게 던져줄 떡고물이 없다.이는 남북 문제와도 공간적으로 연결되면서 전지구적 노동소요의 항구성을 지속시킨다.마지막으로 19세기말과 20세기말에 공통되게 발견되는 '금융재정립'이다.자유방임주의 환경속에서 사회적으로 보호된 생계원천을 파괴하는 세계적 자본축적의 재구조화가 발생한다.(아리기의 축적의 마지막 단계로서 금융축적과 유사하다.)이에따라서 금융과 투기를 향한 투자의 주요변동이 생기게 된다.산업에서 발을 뺀 자본은 금융으로 몰려든다.기존 생산양식은 혼란을 겪게 된다.이 시기에는 반노동공세와 노동소요의 쇠퇴가 진행된다.그렇지만 19세기의 경우 노동소요의 쇠퇴가 짧았고 20세기 초 대규모 폴라니식 그리고 맑스식 노동소요물결이 진행된다.실버는 조심스럽게 현재의 위기가 '대안없는'위기가 아니라고 말하며 희망을 놓치 않는다.

우선 실버는 새로운 노동소요의 거점으로 중국을 지적한다.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잡고 있다.(자본이 있는 곳에 노동소요가 따라간다.) 중국이 가진 경제적 잠재력만큼이나 중국 내부의 모순과 결합된 노동자 소요는 앞으로 전세계적 노동운동의 거점이 어디로 이동될 지 예상할 수 있게 한다.또한 산업적으로도 노동 소요의 거점 몇 개를 예로 들고 있다.반도체산업,생산자서비스산업,교육산업,개인서비스업 등이다.사실 여기에 열거된 산업들은 생산이 수직적으로 분절화되어 있고 조직력도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다른 말로 하면 구조적인 교섭력이 없는 직종이라고도 말한다.그러나 실버는 19세기 섬유산업 노동자들의 환경을 예로 들면서 강력한 연대의 거점이 형성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실버의 <노동의 힘>은 세계체제론의 약점을 보완한 측면도 있지만 또한 몇 가지 문제도 지적된다.백승욱은 <자본주의 역사강의>에서 실버가 '노동계급 동일성 신화'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물론 실버는 경계긋기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이 국가,민족,성,인종 등에 의해 분할되어 있음을 지적한다.하지만 전체적으로 노동자 소요를 중심으로 살펴보다 보니 노동자 계급을 동일 집단으로 설정한 경향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또한 노동의 문제를 분배의 문제로 환원시켜 버린 점도 지적된다.백승욱은 폴라니식 시계추 운동과 스미스식 자유주의 저항이라는 것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듯 하다.실버는 '노동의 힘'의 핵심은 '연합의 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특히 지역사회와의 연대같은 것을 예로 든다.문제는 이 '연대'가 훨씬 복잡한 그물망을 가지고 있고 실버 본인이 이야기한 경계긋기에 의해 철저하게 나뉘어 있다는 점을 크게 상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런 노동자 계급의 분할과 복잡성을 회피하고 하고 할 수 있는 연대라는 것이 기껏해야 고진이 이야기하는 '소비자운동'정도 일 듯 보인다.자본이 빠져나가서 동시에 노동이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반주변국' 내에서 노동위기문제에 대해서 실버는 아무것도 말할이 없다.물론 이것은 <노동의 힘>이 다루고 있는 부분은 아니다.처음부터 괄호치고 시작한 부분이긴 하다.전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중심국과 주변국 내에서 노동소요는 항상 제로섬게임이 되버린다.일국 내에서 노동 소요는 상당히 구체성을 띠는 사건임에도 결국 이러한 구체성이 총체성이라는 이름으로 좌변에서 우변으로 옮기는 정도로만 파악된다는 것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푸하...

.....몇 주전 모 신문사에서 양대 노총 위원장 대담을 기획했다.미묘한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노동 위기론'에는 둘 다 공감하고 있었다.'위기'를 양산하는 원인에 대해서도 조금 더 목소리를 싣는 방향이 다르긴했다.지금의 절망적 상황이 실버가 말하는 것 처럼 '지나가는' 위기였으면 좋겠다만....희망을 잃지는 않겠지만 의지만으로 낙관하자고 말하는 건 너무 나이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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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9-27 16:08   좋아요 0 | URL
알겠지만..포드주의 노사타협이란게 오래도록 작용해온 것이 그런 방식 아니었던가...저자 역시 직접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일본의 경우를 들면서 하청체계가 노동소요의 거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일본의 경우는 2차부품업의 임금이 1차부품업 수준까지 상승했다고 하더군.일본은 해외로 다층적 하청체계를 만들지만 우리는 일국내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기때문에 내적 모순이 존재하지.그래서 비정규직 문제가 앞으로 태풍의 눈이 아니겠는가 싶고 또 투쟁의 전위가 될 듯 싶어.조직화의 문제와 기존 노동운동의 벽도 장애가 될 듯 하지만.

내 요즘 고민은 이 '노동귀족'(모든 정규직이 그런건 아니겠지만..)들을 '노동자'라고 해야 하나는 문제야.다 직장인이고 소비자고...아무도 노동자는 없어보여.우스개 소리지만 네그리도 하도 답답하니까 '다중'이라는 주체를 만들어낸거 아닌가 싶기도 해..'연대'와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대단한 일인가 새삼 느낀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협회라는게 있다.

그 중 짬빱순으로 나의 위치를 매겨본다,

ㅣ-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l

(..)('')....

직접행동의 가능성(그래봐야 가능성일뿐인데..)에 대해 상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조직 내에서는 가장 전투적인 사람으로 취급된다.

어떨때는 이런 말도 듣는다.'이게 우리의 수준이다' .이런 말을 전투적인 사람이 하면 실망감으로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타협주의만이 대안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한다.'우리의 수준'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수준'을 탓하니 아이러니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위기는 담론의 위기다'라는 말이 적용될 듯 하다.

'우리의 수준'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작용과 의미가 있을까? 내 생각에는 그건 아무말도 아니다.이런 말이 결국 담고 있는 것은 작은 행동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기변명일 뿐이지 않을까? '우리의 수준'이라는 말의 결과가 누구에게 가장 유리한가를 생각해봐도 명약관화하다.

ㅣ- - - - - - - - - - - - - - - - - - - - - - - - - - - - - -l

그나마 각론은 다르더라도 '원칙'과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의 포지션은 이정도다.이건 비관적으로 포지셔닝한 것이지만 사실 이정도를 거의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는 빽빽거리는 것도 지긋 지긋하다.입장만을 확인하는 대화의 장도 지긋지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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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1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1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9-22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드팀전 님에게선 항상 뭔가를 해보려는 시도가 느껴집니다.^^
 

아기가 생기기 전에 자주 듣던 말이 있다.주로 선배들이 했던 말이다.

"아기 생기면 영화 못본다.최소 몇 년 정도.그러니까 그 전에 많이 봐라"

당시에 내가 그 말을 그다지 심각하게 듣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는 법이다.

예찬이가 14개월을 넘어서고 있다.내가 영화관을 찾지못한 것도 그만큼이다.우리 부부가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미션 임파서블3>였다.'태교에 좋지 않겠는데..' 걱정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내게 올 가을이 가기전에 딱 한 편 영화를 볼 시간을 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이 영화<원스>를 보고 싶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음악과 관련된 영화들은 빼놓지 않고 보려는 편이었다.

영화<원스>가 바로 그런 음악영화이다.

나는 지금 이 영화의 OST를 듣고 있다.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 음악 먼저 듣는다.

 

 

 

 

전기청소기 수리공으로 일하는 남자 주인공과 체코 이민자 여자 주인공이 있다.둘 다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지만 현실은 그들을 음악에만 전념하게 해주지는 못한다.이 들은 우연히 만나게 되고 티격 태격하면서 그들만의 음악을 만든다.그리고 사랑하는 감정도 함께... 음악 잡지에서 본 대략 줄거리다.

이 영화는 더블린 국제영화제와 선댄스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영화 감독은 존카니라는 사람이다.그는 전직 뮤지션이다.아일랜드의 프레임스라는 밴드 베이시스트 출신이라고 한다.그런 그였으니 음악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도 자연스럽다.그의 영화에 출연한 남자 주인공 글렌 한사드 역시 프레임스의 보컬리스트이다.여자배우인 마르케타 이르글로바 역시 이 그룹을 통해서 알게된 비전문배우이다.

영화에 나오는 곡들은 대개 남자 주인공 글렌 한사드가 작곡했다.기존에 그의 그룹이 녹음했던 곡들도 있고 새로 작곡한 곡도 있다고 한다.글렌 한사드가 70년 생이고 마르게타 이르글로바가 88년생이다.이 둘은 음악 작업의 동료로 시작해서 영화도 함께 찍고 실제로 연인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카니 감독은 아일랜드 영화협회에서 15만 달러 펀딩을 받아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물론 영화의 성공으로 수지 맞는 장사를 했다.꽉차인 시나리오도 없었으며 15일 동안 더블린 인근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감독 자신이 뮤지션이다 보니 특정 직종 내에서만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고 한다.영화에 보면 그런 장면이 있다고 한다.음반 녹음을 하고 프로듀서가 차 안에서 들어봐야 녹음이 잘 되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멤버들이 고물차를 타고 자신들이 녹음한 데모음반을 들으며 바닷가로 달려간다.감독 자신이 음악활동을 할 때 겪었던 일을 재현했다고 한다.그 바닥 사람들만은 '씨익' 웃으며 '그렇지'라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장면이라고 한다.

씨네21에서는 영화의 기본 정서가 '덜 성장한 남자가 조숙한 여자를 만나 변화하게 되는 성장기'라고 했다.그렇지만 이 뻔한 토대를 뻔하지 않게 만들고 있는 것을 칭찬했다.

이 영화 OST는 데이안 라이스의 음반과 분위기가 비슷하다.악기 편성은 작다.목소리는 차분하며 조금은 쓸쓸하다.데미안 라이스의 염세적인 분위기보다는 한결 낫지만 그렇다고 더블린의 흐린 날씨가 지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가을에 듣기 정말 좋은 음악들이다...

오늘도 퇴근 후에 지겨운 회의가 있다.이 음악들을 들으며 집에 가는 차 안의 풍경을 떠올리며 깝깝함을 참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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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9-1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번 연휴에 볼 예정입니다만 ^^a

웽스북스 2007-09-1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찜해놓은 영화, 나다에서만 개봉한다는 슬픔 ㅠ

이게다예요 2007-09-19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극장에서 예고편으로 이 영화보고 바로 아... 음악 좋다,하고 찍어놨었는데. 다들 비슷비슷한 귀를 가졌나봐요. 좋은 건 다 좋게느껴지니 말이에요.

마늘빵 2007-09-19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봉작 중에 눈이 가는 영화가 몇 있더라고요. 저 위에건 드팀전님한테 처음 소개받은(?)건데 보고 싶군요. 추석연휴에 영화관으로.

글샘 2007-09-20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다가 모죠??? 궁금 궁금...
추석에 시간이 나면 봐야지~~~

비로그인 2007-09-2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궁금하던데^^ CGV 서면에서 하는 것 같던데, 여유가 있음 볼 수 있었음 좋겠어요

웽스북스 2007-09-23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저 나다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몇군데 더 생겼더라고요 (나다=대학로에 있는 하이퍼텍 나다 극장이요 글샘님) 저는 메가박스에서 봤어요, 극장 선택의 폭은 좁지만, 그 와중에도 사운드 좋은 극장에서 보실 것을 추천드려요 ^^

비로그인 2007-09-2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이 영화 저두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꼭 봐야겠네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대신에 왕궁의 음탕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십사야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하고 있느냐고 놀린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위에는 서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때문에 일원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원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적으냐
정말 얼만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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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합의도 없이 '이리 가자'라고 한 것에 우르르 목을 메고 있다.그 가는 방향이 자존감과 정체성을 훼손 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고사'하게 되는 길인데도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말라 죽는 방향'으로 슬슬 따라간다.

어제 대책회의에서는 밤 10시까지 동어반복만 있었다.이것 저것 생각한 바가 많아서...이래 저래 많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반응이 그렇다. '분석이나 본질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적확하다'..나의 정세 파악을 그렇게 받아들여주니...아주 고맙다.어떤 선배는 끝나고 "야..너 말 잘한다.국회나가도 되겠다."그런다.

나는 그런 분석 속에서 분명히 일관된 대안을 이야기해왔다.아주 지속적으로...

그런데 분석에는 공감하면서도 대안은 각양각색이다.첫 단추가 꼬여 있는데 그건 인정하면서 나머지 단추 가지고 어떻게 해보려고 하니 결국 대응논리가 빈약해지고 자기함정에 빠진다.또한 한쪽이 힘의 논리에 의지해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을 이성적 논리로 논박하려고 애쓰고 있다.물론 그 쪽도 완전 무대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결론을 만들어 놓고 움직이는 논리가 있다.나름대로 일관된 자본의 논리와 같은 것이다.

어제 내가 한 이야기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모든 대화는 서로 틀릴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 되어야 가능하다.그런데 현재 저쪽은 조금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득 논리의 부족에 대해 좌절하는가?"   

대개는 '현실'과 '합리'라는 말도 포장된 '패배의식'이다.사람들은 여러모로 분할되어 있고 당장 내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또 직접적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복합적이다.

어제는 그런 말도 인용했다.최근에 보던 책에서 마침 나왔던 말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노동자가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힘의 원천이다" 물론 어제 모임은 노조모임은 아니었다.노동자 대신 다른 이름을 넣으면 된다고 했다.

결국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의 동학에 의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들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피할 수 없는 힘이니까 일단 받아들이고 대신 '희생양'이 죽어 나자빠지기 전에 대타를 보낸다.즉 '고통의 분담'방식...스스로의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집단이 겪을 수 밖에 없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 저것인가보다....깝깝...하다. 

아마 내일도 회의는 이어질 것이다.할 건 이미 다했다.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 하나만은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고 있으며....

하루 하루 참 피곤하다.일도 해야되고 자본과의 싸움도 해야되고...아기도 봐야되고...와이프의 눈치도 봐야되고... 오십원짜리 갈비에 기름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것도 봐야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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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1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대화는 서로 틀릴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 되어야 가능하다.그런데 현재 저쪽은 조금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득 논리의 부족에 대해 좌절하는가?"

드팀전님 글 중에 요 부분이 '칼 포퍼의 오류가능성 논증'인데,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게 문제겠죠. 흠 늦게까지 고생 많으십니다.

드팀전 2007-09-1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까..그 유명한 칼 포퍼의 논증이었군요.그는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인간은 부족하니까....
그의 점진적 사회공학도 내리 적용이 되겠군요.포퍼는 추상적인 선보다 절대적 악을 제거하라고 했지요.(지난 대선에서 유시민의 민노당 공격 논리도 칼 포퍼에게서 얻었나 봅니다.^^) 또한 악의 제거를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감행하라고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제가 말하고 있는 바가 그 '직접적 수단'이지요..
사실은 그전에 어느 것이 선인가에 대한, '방향'에 대한 수렴이 없었고 막혀있는 것이 문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