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늘 현실로 구체화된다.

두 분의 부음을 들었다.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았을 분들을 생각하니 답답하다.그리고 다음번이 자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하루를 넘기고 있는 분들까지...

나는 기독교와 독실한 예수쟁이들이 아주 싫다.

그래도 거기 계신 그 분들은 전부 아무일 없이 살아돌아와야 한다.

그 분들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하나인 중증 환자 예수쟁이라도 말이다.

하나님이 있으시다면 그 사람들을 하늘로 데리고 가서 쓰시지 마시고

이 땅에서 더 쓸모있게 써 주길 기원한다.

오늘 아침 부음을 전해들은 피랍자는 28살의 청년이란다..

경남 도의원 아들이다.도의원들도 내가 별로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데 아들 잃은 슬픔 앞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

 

더 이상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돌아왔으면...

믿지도 않는 신께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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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 2007-07-31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이유가 어떠하던 종교는 구원입니다. 저도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긴 하지만, 어느 교회앞 플랭카드가 기억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

드팀전 2007-08-01 11:43   좋아요 0 | URL
종교가 구원인지는 의문입니다만... 종교인은 많지만 참종교인은 드물다는 말은 맞는 말인듯해요.불교신자 몇 명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죽으려고 용을 쓴거지""그럼 예수가 도와줄지 알았나보지?""여기서도 별나니까 나가서도 별나지" ..개미 한마리의 목숨도 사소히 여기지 않는게 부처의 마음인데 부처의 말씀은 법당에서만 있는 것인지....

그러고보니 처음뵙는거지요.^^ 반갑습니다
 
신제국주의 한울아카데미 737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국주의'는 너무 많이 말하여져서 이제는 말하여지지 않는 용어 중에 하나이다. 이제는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처럼 과거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용어가 되버렸다.'제국주의'라는 용어의 과잉과 급속한 몰락은 금새 달구어졌다가 식어버리는 양철냄비같은 지적 토대의 부실함에도 관련이 있다.한때 '제국주의'는 '패권적 강대국'과 동일시되어 버리는 불운을 겪었다.아무 곳에나 '제국주의'라는 말을 붙이면 상대는 '악'의 콧바람을 뿜게 된다.'파시즘'이라는 말이 '권위주의적 군사정권'과는 다른 의미를 갖음에도 전부 다 '파쇼'라고 지칭해서 의미론적 혼돈을 불러일으킨 것과 유사하다.상표로서 '제국주의'를 일회용 젓가락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요즘은 오히려 그런 말이 남발되던 시절이 오히려 나은 것 아니었나 싶기도하다.)실제 많은 사람들은 '미제국주의' '일본제국주의''또는 '제국주의적 속성'등이라고 하는 미디어적 수사를 넘어서서 그 속살을 고민하지 않고 사용했다.

'제국주의' 논쟁에서 언제나 중심축에는 레닌이 있다.레닌은 역사결정론적이 방식으로 고도화된 자본주의가 걸을 수 있는 길은 '제국주의'라고 언명했다.즉 병아리가 자라면 닭이 되듯이 자본주의도 궁극적으로 제국주의가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존재적 속성이라는 것이다.20세기 초 레닌의 지적은 분명히 옳았다.(그리고 지금도 그 유효성은 현존한다.)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하물며 맑스나 레닌쯤이야..자기들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교조적으로 해석되고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의미에서 맑스는 좌파내에서 훨씨 많은 비판과 재구성 작업을 거친다.'제국주의'는 그럼 어떨까?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더불어 '제국주의'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가?

데이비드 하비의 <신제국주의>는 레닌의 제국주의론보다도 한나 아렌트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한나 아렌트는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기보다는 부르주아적 정치 통치의 첫 번째 단계라고 주장했다.그렇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데이비드 하비의 <신제국주의>는 포스트모던한 '제국'논쟁과 대립되는 측면에서 고전적 <제국주의>에 더 까깝다.데이비드 하비는 이런 입장에서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과 새로운 제국주의적 운행방식을 '신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다.책을 썻던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몇 년전이어서 하비의 예측과 분석이 현실정합적인 것은 아니다.그렇지만 하비는 '신제국주의'가 지향하고 진행되고 있는 경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지난 이야기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주의 분석은 기본적으로 세계체계론의 입장을 따른다. 함께 공동연구한-존스홉킨스대학에서-지오반니 아리기의 틀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다.아리기는 <장기 20세기>에서 역사적 자본주의를 국가를 매개로한 자본주의 헤게모니 경쟁의 차원에서 설명한다.아리기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은 '체계적 축적순환'과 '국가간 체계'이다.그는 국가간 체계에서 헤게모니 국가의 등장은 '조직혁명'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접근은 마르크스의 위기론과 슘페터의 조직혁명론의 조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데이비드 하비 역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를 '권력의 영토적 논리'와 '자본주의의 논리'의 모순적이 결합으로 파악한다.왜 이 관계가 모순적일까? 일단 '영토적 논리'(국민국가라고 이해해도 될 듯 하다)는 주권이 작용하는 한정적인 공간에 국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정치적 군사적 행동에 대한 제약등이 걸리는게 많은 체계이다.반면 '자본의 논리'는 시공간에 자유롭고 고정된 영토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자본이야말로 유목이다.역사적 자본주의를 보면 결국 이 둘의 상호배치되는 논리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변증법적 관계를 형성한다.물론 브로델적인 모델에 따라 '자본주의는 독점을 지향하고 독점을 위해 국가를 필수로 한다'라고 환원해버릴 수도 있을 것 이다.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 둘은 논리적으로는 상호배제적이지만 실제로는 상호협력적이었다.아리리 역시 이와 유사한 질문을 던진다.

<신제국주의>를 구성하는 데이비드 하비의 두가지 중요개념은 '시공간적 조정'과 '강탈에 의한 축적'이다.먼저 '시공간적 조정'이란 무엇인가? 이는 맑스의 과잉축적의 위기를 만드는 이윤율 하락과 그에 대한 재정식화 이론으로 부터 도출된다.맑스의 위기론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잉여와 노동력의 잉여와 관련이 있다.노동은 항상 잉여상태로 유지되어야하고 자본 역시 잉여가 없으면 돌아다니지를 못한다.데이비드 하비는 그중에서 축적되어 남아도는 '유휴자본'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시공간적 조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었다.즉 '남아도는 자본의 갈 곳은 어디인가? '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가 주어진 영토 내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내적으로 흡수될 수 없다면 이들은 감가되지 않기 위해 이윤 창출 가능성이 실현되는 새로운 지형을 찾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금융'과 '국가'이다.흔히들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차관'이라는 것 역시 '시공간적 조정'의 개념으로 보면 미국식 소비주의를 확산하는 자본의 공간적 재조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현재 '유휴자본'이 올인하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거대한 제조업의 엔진으로서 발진한 중국은 전 세계적으로 갈 곳 잃어 헤메이는 '축적된 자본'의 해우소 역할을 해주고 있다.아리기가 다음번 헤게모니 이행지로 '중국'을 지적하고 있는 것과 같은 궤를 같는다.

다음으로 중요한 개념은- 이 책에서 처음 소개된 것이라고 하는 -'강탈에 의한 축적'이다.여기서 말하는 강탈에 의한 축적은 식민지를 만들어서 원자재 공급시장과 상품의 수요시장을 만드는 전통적 의미의 제국주의적 강탈과는 다르다.그러므로 '모든 자본주의적 축적은 강탈이다'라는 말은 구체적인 입장에서는 하나마나 한 말이다.데이비드 하비는 맑스의 '시원적 축적'이 현단계 자본주의에서 설득력이 미약하다고 본다.맑스는 기술적으로 유도된 산업예비군을 제외하곤 '시원적 축적'에 대해 그닥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고 말한다.또한 데이비드 하비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세계를 자본주의화하면서 축적한다'는 테제에 대해서도 일정정도 선긋기를 한다.룩셈부르크의 테제는 자본주의 타자를 상정하기 때문이다.그런데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제국의 안과 밖이 없다'라는 분석이 나오는 마당에 룩셈부르크의 테제 역시 고찰이 필요하다.(룩셈부르크의 비자본주의 영역이라는 것은 훨씬 광범위한 범위이기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데이비드 하비가 이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 보완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탈에 의한 축적이 수행하는 것은 매우 낮은 비용으로 일단의 자산을 방출하는 것이다.과잉축적된 자본은 이러한 자산들을 취득하여 즉각적으로 이들을 이윤 창출이 가능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감가된 자본 자산은 과잉축적된 자본에 의해 불티나는 가격으로 판매되어 이윤 창출이 가능하도록 자본순환과정에 재회전 될 수 있다.그러나 이 점은 일종의 위기를 의미하는 감가(가격을 낮춤)의 파도를 우선 요구한다.위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합리화하도록 계획되고 관리 통제될 수 있다.

강탈에 의한 축적은 97년 IMF를 겪어 세계경제의 칼바람을 눈앞에서 목격은 우리들에게 오히려 쉬운 개념이다.TV 뉴스에 나오는 '00기업 헐값 매각' '00그룹 대규모 구조조정' '00노조 민영화반대' 등등이 전부 '강탈에 의한 축적'의 예들이기 때문이다.이런 것이다.과잉축적된 자본은 신자유주의-금융자본주의의 바람을 타고(IMF와 세계은행의 이름을 단) 국내에 경영합리화를 요구한다.구조조정도 하고 인원도 비정규직화하고 복지도 삭감하고 비용도 줄이고-그 중에는 또 분명 합리적 요구들도 있다-하여간 이런 걸 다 해서 기업의 똘방똘방하며 팔아먹기 좋은 상태로 만든다.즉 딱 삼광만 남기도 나머지는 팔아먹어 버린다.삼광의 가치를 높이 부풀려서 다시 팔아먹는다.그러면 자본은 또 이윤을 챙기고 이제 이 나라를 떠나면 된다.다른 화투판은 늘 있으니까...쉽게 말하면 이런게 '강탈에 의한 축적'이다.외환은행..론스타..뭐 이런거 떠올리면 된다.그 외에도 '민영화'는 '같탈에 의한 축적'의 대표적 프로그램이다.공공재의 성격이 강했던 물,전기,에너지,교통 이런 것들을 전부 '민영화'한다.(이런 관급 기관들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낸다.)그리고 매입된 공적 소유기업들을 또 이리 저리 굴려서 다시 매각한다.그리고 다른 화투판으로 간다.데이비드 하비의 '강탈에 의한 축적'은 상위 계급들에게는 그닥 여파가 없다.어차기 미국 자본주의는 전세계적으로 상위계급들을 포섭하고 동지로 어깨동무해서 영토내의 저항을 무마해왔기 때문이다.

요즘은 소설가보다 활동가로 이름을 날리는 아룬다트 로이의 결론은 이 점을 명확히 말해준다."생산적인 공적 자산을 국가로부터 민간기업에 이전하는 것이다.생산적 자산은 자연자원을 포함한다.땅,숲,물,공기,이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가 맡아두고 있는 국민의 자산이다...이들을 탈취하여 민간기업에 재고로 판매하는 것은 역사상 전례없는 규모로 야만적인 강탈과정이다."

데이비드 하비가 이 책을 쓴 것은 사실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이 석유라는 향후 헤게모니의 중요한 요소를 장악하기 위한 작업을 명백히 밝히기 위함이었다.석유를 잡아야 향후 중국의 헤게모니 부상에 대해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미국이 앞으로 50년간 헤게모니를 더 편안하게 유지하려면 이라크를 거점으로 하는 중동문제에 있어서 힘있을 때 반드시 잡아놓아야 한다는 것이다.이라크의 후세인이 사형을 당하고 후견정권이 들어서고 있지만 미국의 의도가 제대로 풀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미국이 설령 전세계적 패권국가라고 하더라도 국제관계에서 내적 외적 변증접은 여전히 중요하고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데이비드 하비는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보수주의적 자본축적과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뉴딜'정책을 주문한다.이를 통해 국가가 훨씬더 개입적이고 재분배 문제에 접근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데이비드 하비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선진국들 사이의 이런 시혜적 뉴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하비는 결론에서 미국내 새로운 행정부의 구성이 전환점이 될 수 잇다고 말한다.현실 정치 수준에서 분명히 현재의 일방적 패권주의에 변화는 가능할 것이다.공화당에 지친 미국은 다음 번에 힐러리든 오마하든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물론 그들중 누가 되더라도 미국의 거대한 움직임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또한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루즈벨트가 썻던 자본/노동/국가의 삼자 연합체로서 '뉴딜' 역시 그대로 제현되기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뉴딜'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자본의 무분별한 유동성을 막고 국내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방식이었다.또한 노동은 포드주의적 방식으로 포섭했다,그러나 이후 국제 통화체제의 변화와 자본의 고도화.프롤레타리아층의 다변화등을 고려할 때 국가의 개입적 방식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뉴딜'식의 전면적이 되기란 요원해보인다.

레닌의 질문과 로이의 대답 사이에 그 답이 있을 지 모른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의 세계에 발생하고 있는 것들은 포괄적으로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어마어마하다....이의 범위와 둘레를 찬찬히 생각하는것,이를 정의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들 모두와 한꺼번에 싸우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이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특정한 방법으로 특정한 전투에서 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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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7-30 15:44   좋아요 0 | URL
참 어려운 책을 이리 정갈히도 쓰시는지 또 한번 감탄을 하고 갑니다. 보관함 속에 들어갑니다.

드팀전 2007-07-30 17:29   좋아요 0 | URL
늘 과찬에 몸둘바를...사실 읽기에 만만치는 않은 주제이다보니 비판적 접근보다 정리하는 쪽에 힘을 더 많이 싣고 있어요.점점 딱딱해져가는 리뷰에 대해 고민중입니다.조금 더 쉽게 풀어쓰기엔 제 내공이 아직 부족해서..리뷰에 쓰진 않았는데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가 힘듭니다.처음에는 내용이 어려워서라고 생각했지만 그 외에도 군데 군데 국문법이 맞나 싶은 정도인 경우가 여럿 있습니다.로쟈님 정도라면 원본 대조 번역문제를 찾아내겠지만..그건 제 능력 밖이어서..어쨋거나 찾으면 번역상 오류가 꽤많을 것 같다는 혐의를 두게 됩니다.별 세개 주었어야되나??^^

오월의시 2007-07-30 23:51   좋아요 0 | URL
추천합니다.

드팀전 2007-07-31 12:07   좋아요 0 | URL
^^ 아 그럼 저 이주의 마이리뷰 되는거에요..호호호

마늘빵 2007-07-31 10:45   좋아요 0 | URL
여기 한울 아카데미 책들은 다 묵직하더라구요. -_- 읽기 쉽지 않아보이던데.

드팀전 2007-07-31 12:08   좋아요 0 | URL
읽다보면 끝이 나오는게 모든 책의 장점입니다.
아프님이 좋아하시는 진씨부터------>복씨까지 지루해지시면 보세요.

마늘빵 2007-07-31 12:21   좋아요 0 | URL
'진씨부터 복씨까지'라는 말이 참 많은걸 담아내고 있네요. ^^

드팀전 2007-07-31 12:41   좋아요 0 | URL
옹..별뜻 없이 생각나는 두 사람이어서 그런건데...
 
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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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 깊은 곳에 빠져 버린 느낌이다.무릎까지 차오른 유체의 흐느적거림,오랜 시간동안 만들어져 화석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벽면의 이끼들,작은 물방울 소리마저 흡수해버릴 듯한 절망적인 어둠, 닿을 수 없어 더 초자연적인 원형의 하늘...영원히 닫혀 버릴 시간들. <슬럼,지구를 뒤덮다>는 도시의 묵시록이다.책을 덮고나면 지옥은 예언된 것이 아니라 실현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구현되는 지옥은 종이 위에 엎질러진 검은 잉크처럼 거침없이 진행한다.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도시 빈민들을 가끔 만난다..요즘같은 장마철은 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절이다.슬럼까지는 아니지만  판자집에 가까운 저질주택에서 장마철의 습기는 살인적이다.벽지 위로 1미터 이상씩 습기가 올라찬다.비만 조금 내리면 집 안에 있는 양재기들은 전부 들고 나와야 한다.천장에 수십번 덧바른 벽지들이 전부 들고 일어난다.방에 있는 것인지 물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그 곳에서 작은 선풍기 하나로 온 식구가 바둥거린다는 것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다.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감옥에서의 여름나기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와질수록 인간이 미워지는 것이다.도시 빈민들의 삶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너무도 반가운 사실(?)은 중간계급이 대거 포진한 도시에서 주류인간들이 도시 빈민들과 그들의 주거공간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도시빈민은 분명 도시 안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가끔 리어카에 박스 모으는 꼬부랑 할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시선을 거두면 되는 것이 중산층이 하는 일의 전부다.(박스 모으는 꼬부랑 할머니는 하루 종일 박스 모으면 대략 7-8천원정도 번다고 한다.)

<슬럼,지구를 뒤덮다>는 한국의 도시빈민보다 더 열악한 제 3세계 슬럼 문제에 대해 그 원인과 실태,그리고 묵시록적인 도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한국에서는 이 책에서 언급하는 형태의 슬럼은 그다지 많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한국의 도시 주거문제에 대해서는 '철거민'이라는 인적 유형과 '쪽방'이라는 주거형태가 가끔 언급된다.김동원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을 떠올리게 하는 단일규모 최대 철거였다는 88 올림픽 철거도 나온다.) <슬럼의 도전>이라는 책에서는 도시빈민과 슬럼을 동일선상에서 논의하지 않는다.도시 빈민과 슬럼 주민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도시 빈민의 수가 슬럼 주민의 수보다 월등히 많다.현재 지구상에는 20만 개 이상의 슬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거대 슬럼은 주로 판자촌과 스쿼터 마을이 비공식 주택과 빈곤 지대를 형성하며 연결될 때 발생하며 도시 변두리에 나타난다.

대규모 슬럼은 대개 1960년대 만들어진다.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농촌의 붕괴이다.우리 나라에서도 그랬듯이 짐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온것이 달동네를 만드는 것이다.제 3세계의 경우에는 역사적으로 복잡하다.대개 그 연원을 식민지 시대의 공간분할 정치와 환금형 작물 재배로부터 찾을 수 있다.저자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도시화 과정의 부산물로 생긴 이런 슬럼이 1980년대에 이르러 전지구적으로 확대된다고 본다.굳이 말을 붙이자면 '슬럼의 전지구화'현상이다.대규모 슬럼화 작업의 1등 공신은 IMF와 세계은행이다.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IMF의 구조조정프로그램'은 빈곤과 사회불평등을 급격히 증가시켰다.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의 후퇴'이다.공공지출의 축소는 도시 내에서 빈곤층의 삶을 극단적으로 악화시켰으며 사회적 안정망이 전무한 상황에서 중간층의 하층민화도 급격히 진행되었다.저자는 SAP와 도시빈곤 문제의 관련성의 설명하면서 비공식 노동계급이 늘어나고 여성과 아동들이 직접적인 희생자로 부각되었다고 말한다.연구자들은 제3세계 대다수의 도시에서 '비공식적 생존지상주의'가 주요생활양식으로 자리잡았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슬럼,지구를 뒤덮다>에 나오는 슬럼의 생활상과 증가하고 있는 도시 슬럼의 통계는 흘러넘치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주로 아프리카,동남아시아,라틴 아메리카,중국,동유럽과 러시아 등지가 연구대상이된다.전세계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수많은 슬럼 도시와 현황들이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한참 읽다보면 그런 통계들과 현상들에 무감해져버리기도 한다.각 슬럼마다 생성의 역사가 다르고 슬럼의 형태가 다르다 하지만 공통되는 요소들이 있다.

몇 몇 사례들을 보자.슬럼들이 도심에서 밀려날 경우 도시 외곽의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열악한 지형위에 만들어진다.그렇다보니 자연재해에 극히 취약하다.물론 제대로된 건축물조차 만들어지지 않다 보니 재난에 맞닥뜨릴 경우 그 피해는 엄청나다.

2005년 인구 520만명의 카라카스.도시 인구의 3분의 2가 거주하는 슬럼은 지진이 수시로 일어나는 카라카스 계속의 불안정한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1999년 12월,갑작스런 홍수와 산사태로 카라카스에서 약 3만 2000면이 사망했고 14만명이 집을 잃었고 2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TV 뉴스를 보면 이런 건 단지 '자연재해'로 비춰진다.그러나 그 안에 분명히 정치경제학이 들어 있다는 것을 '슬럼과 재난'사이의 관계가 보여준다.

슬럼 주민들은 도시의 쓰레기 더미들과 공존한다.슬럼의 위생상황은 아주 심각하다.가장 중요한 급수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정화되지 않는 더러운 물을 끌어쓰다보니 당연히 전염병과 유아사망율이 높다.또한 기본적인 욕구처리 조차 불가능하다.  

남이 버린 쓰레기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한 사회의 빈곤층을 정희하는 가장 심오한 특징 중 하나이다.키베라에 위히찬 라이니사바 슬럼에서는 1998년 4만명의 주민이 구덩이 변소 10개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마타레 4A에서는 2만 8000명이 공중화장실 2개를 함께 썻다..

정말 지옥같은 일은 이런 슬럼에서 화장실이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가나의 쿠마시에서는 한 가족이 하루 1번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기본급의 10%를 소비해야한다.실제 이 지역외에도 유료화장실 3세계 슬럼지역에서 각광받는 성장산업이다.

정말 수많은 슬럼의 지명이 나와서 다 기억하기도 힘들다.그렇지만 킨샤사는 기억에 남을 듯 하다.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강 옆에 위치해있으면서도 사하라 사막에서 물구하기 만큼 물구하기 어려운 곳,도시경제가 완전히 붕괴되고 자발적 조직화를 도모하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곳.빈곤으로 인한 가족의 위기가 종교를 통해 해결되는 곳,종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을 일상화하는 곳....지옥이 어디인가?

저자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만이 슬럼의 착취자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부패한 국가 권력과 내전,보수적 NGO 등도 슬럼 확산의 공신들이다.보수적 NGO의 경우 재원마련부터 신자유주의와 결탁하고 있다.또한 '자조주의'라는 환상을 통해 실제 슬럼의 구조적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하며 또한 슬럼의 공간적 현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공고화하는 개량주의적 한계를 드러낸다.저자는 슬럼 주민들 사이에서도 착취/피착취 구조가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한다.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인 피착취그룹은 슬럼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이다.슬럼 주민들 중에서도 일부는 더 가난 한 사람을 월세라는 형태로 착취한다.리스미스는 소규모 임대와 전대는 빈민의 주요 축재 전략이며 집이 있는 사람들은 좀 더 가난한 사람들의 착취자로 신속하게 변모한다 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가장 관심을 가져야할 대목은 '도시 중산층'이다.이 문제는 내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기때문에 성찰적 질문을 던지게 해준다.

도시가 슬럼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인 것 같다...지타 베르마

이 책에서는 제 3세계 변두리에 들어서는 '폐쇄형 교외 주택단지'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베이징 외곽의 오렌지 카운티,카이로 외곽의 유토피아,홍콩의 팜스프링스 등이 그런 곳이다.이들은 사회상류층으로서 미국식 소비패턴을 즐기며 그들만의 도시를 만든다.이 단지는 공통적으로 정교한 보안체제를 자랑으로 삼는다.주택들이 전부 요새화되는 것이다.이 단지들은 교외에 위치해있기때문에 좋은 도로망이 필수적이다.이 도로망을 만들어주는 것은 개발업자들과 정부이다.사회적 비용은 빈민들로부터 얻어내면서 부자들은 거저 도로망을 얻는다.실제 빈민들에게 그 도로망보다 필요한 것은 물과 위생시설일텐데 말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3세계 엘리트 중심의 모습이라 볼 수도 있다.그렇지만 한국에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도시 내의 '장벽 도시'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보론을 쓴 우석훈 교수는 '타워펠리스'같은 공간을 적당한 예로 들었다.그뿐만이 아니다.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개발업자들이 펌프질하고 있는 '타운하우스'같은 경우도 고급화경향을 띠면서 그들만의 주거공간을 만들것이다.조금만 더 확대해보면 요즘 새로 짓는 대규모 고급 아파트들과 그 입주민들도 전부 철통같은 경계망을 선호하고 유사한 계층 구조 속에서 자신들의 주거공간이 '구별'되기를 선호한다.내가 아는 어떤 경우의 아파트는 주민이 승합차를 타고 들어갔다니 아파트 품격떨어진다고 이웃들이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모든 중산층이 이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소설가 이순원이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하루 하루 압구정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중간계급의 경향성은 이러한 '장벽도시'를 선호한다고 볼 수 도 있다.

메트로폴리스 공간이 근본적으로 개편되면서 부유층과 빈민층의 교루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기존에 있었던 계층간 차별 분리문제나 도시 공간의 파편화문제는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최근 몇몇 브라질 작가들은 '중세도시로의 회귀'를 말하지만,중간계급이 공적공간-그리고 빈민층과 공유하는 최소한의 시민생활-으로부터 이탈하는 현상에는 그보다 훨씬 큰 사회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안소니 기든스에 이어 로저스 역시 공간 재편의 핵심과정을 엘리트 활동이 해당 지역의 물리적 맥락에서 '귀속탈피'하는 현상으로 파악했다.여기서 '귀속탈피'는 빈관과 사회폭력이라는 숨막히는 매트릭스를 외면하고 사아비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시도를 뜻한다...

<슬럼,지구를 뒤덮다>는 묵시록적이다.이 책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그저 현상의 원인과 실태,그리고 분석만이 있을 뿐이다.대안은 그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의 역자가 대신 이 부분을 설명했다.

"이렇듯이 파국적 전망은 '막아야 한다'와 '어쩔 수 없다'라는 두가지 상반된 입장으로 나뉠 수 있다.<슬럼,지구를 뒤덮다>의 파국을 어느쪽으로 읽을 것인가는 독자의 선택일 것이다.그리고 그 선택에는 독자의 존재방식이 반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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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07-07-22 03:36   좋아요 0 | URL
밤에도 글쓰시네요~ 이 책의 내용과 밑에 적으신 이랜드 사태가 왠지 어느날 밀접한 연관성을 띌 날이 올거 같군요. 결국 역사는 순환하는 걸까요.. 웅~

드팀전 2007-07-22 11:59   좋아요 0 | URL
바밤바님>..맞습니다.이랜드사태가 비공식 경제 영역의 확산의 한 형태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현재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랜드...ㅜㅜ  자본주의는 단 한번도 국가와 결탁하지 않은 적이 없다.신자유주의가 국가를 축소하라라고 하는 것은 자본의 움직임에 장애가 될 때뿐이다.즉 신자유주의가 국가와 적대적이라는 것은 거짓이다.자본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거나 물길을 만들어야할때 신자유주의는 또 국가와 결탁한다.이랜드에 공권력이 들어간다.공권력이 누구를 지지하고 지켜주고 있는가...국가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뒤에서 '비용의 내부화'를 넘어 '권력의 사유화'를 지켜주고 있다.용역 경비들을 지켜주고 있는 국가다.

이랜드는 신자유주의의 칼날이 겨누고 있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이제 거짓말하거나 둘러대면서 다른 그럴듯한 말들을 뱉지말자.신자유주의는 '노동'을 노린다.민주노총 포스터 중에 이런 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정규직 당신의 다음 모습입니다" 이런 것이었다.

이 말이 와닿는 사람도 있고 와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많이 와닿는다.실제 돌아다니면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기도하고..또 내가 있는 직장에서도 이런 공포감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비정규직만의 문제는 아니다.정규직들은 이중적 상태에 놓여있다.중간계급의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을 방패막이 삼아 자신을 보호한다.또한 비정규직으로 변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떨면서 자본의 압력에 속속 굴복한다.주눅들어 있는 파편화된 정규직은 호구다.

"직장이 안정성을 상실하고 시간제 고용이 흔해지고 소규모공장과의 외주계약이 관행으로 자리잡으면서 노동자들과 피고용자들은 직장을 잃지 않으려면 좀더 일을 많이 하라는 요구를 받게된다"...

처음에는 노동강도를 높이고 복지를 축소한다.그 다음에는 인원감축에 들어간다.

우리 회사는 97년 IMF때 구조조정으로 여러사람을 내보냈다.그게 끝은 아니다.

회사는 공공연히 이런말을 흘리고 다닌다.

"곧 회사가 이전하는데 신사옥에 전부 데리고 들어가지는 않겠다"

실제 그럴지 않그럴지는 모른다.자본은 '공포'를 흘리고 다닌다.'빈곤의 일상화'는 한순간이다.그건 현재 정규직 노동자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공포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곧 정규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게 아직 안와닿는가?

 당신이 너무 무감하거나,당신이 너무 노동 현장과 멀리 있기때문이거나,당신이 내 능력 하나면 다 해결된다라고 믿는 철부지이거나...이런 것 들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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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2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의 사유화. 공감합니다. 거대자본을 지켜주는 공권력이라니.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 하군요. 이러다 지하반군까지 나타나야하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울 2007-07-2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안타깝네요. 마음도 몸도 아프네요. 일터 얘기 한번 나누었으면 좋겠군요. 잘 보았습니다.

마노아 2007-07-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의 이야기인데 그들의 이야기로 착각하며 살곤 하죠.ㅡ.ㅜ

바밤바 2007-07-2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치 치하의 민중들이 생각나네요. 비밀 경찰에 주윗 사람이 한나씩 잡혀갔을 때에 모른척 했었다는 그들. 남의 일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그제서야 내재된 분노가 과도하게 표출되곤 하죠. 요즘 님 서재에서 많은 걸 배우네요^^ㅋ

파란여우 2007-07-20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 밖으로 내던져진 존재들의 삶이란...정말 이렇게 나가면 안되는데..안되는데 말입니다.

드팀전 2007-07-20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공권력은 아주 오래던 부터 거대자본을 지켜주었습니다.자본주의와 국가의 밀월관계는 재미있는 공부가 될 듯 합니다
여울마당님>..네.전 마음은 아프고 몸은 피곤하네요.^^ 일터 이야기는 저의 푸념속에서 대충 짐작하세요..^^
마노아님>그래서 타인을 공유하는 감수성이 필요하고 또 인문사회학 공부가 필요한 듯 해요.
구두님>...건물이 대여섯개 있어도..
바밤바님>..로자룩셈부르크의 말이 생각납니다...야만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지금의 자본주의를 세계화라고 하던데..프랑스 좌파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더군요.세계화는 다양성을 포함한 긍정적 측면도 포함하고 있기때문에 현재의 자본주의를 그 용어로 묶어서는 곤란하다고 말이지요...그들은 '(전지구적)야만적 자본주의'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저는 사회 나오면서 점점 더 까칠해져가는 듯 해요.늦돼서 그런가 봅니다.
파란여우님>...곧 많은 사람들이...사회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습니다...정말 이렇게 나가면 안돼지요.여우님은 일단 자발적 망명을 하신 거라서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

<습관은 무섭다.아직도 서재 1.0 패턴으로 답글을 달고 있다..ㅋㅋ)

전자인간 2007-07-20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은 모든 이들이 비정규직이 될 때까지 밀어붙일 기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기가 목구멍 바로 아래에 올 때까지 그것이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지요. 오히려 자본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나무랍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드팀전 2007-07-21 01:34   좋아요 0 | URL
그들이 문제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일하다가 중간에 벙뜨는 시간이 있어서..이리 저리 책 구경했다.서점의 좋은 점은 대략 책의 내용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알라딘이 가지고 있지 못한 아날로그 서점의 장점이다.

데이비드 하비의 <신제국주의>와 <미셀 푸코,진실의 용기>를 샀다.데이비드 하비의 책을 여태까지 왜 그냥 지나쳐왔을까 생각했다.그의 책들 중에는 제목만 알고 있는 책들이 많았다.전작에 대해서는 원래 관심이 없는데 데이비드 하비는 왠지 전작주의를 해보고 싶어진다.그는 지리학자이자 인류학자답게 역사적 자본주의와 공간 배치에 분석에 있어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최근에 읽은 <자본주의 역사 강의>과 <슬럼,지구를 뒤덮다>은 데이비드 하비를 더 연상시키게 된다..포스트모던에 대한 책 역시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유명한 책이다...데이비드 하비에 대한 나의 무관심에 일침을 가하는 서점 방문이었다.

책을 사서 자리에 두었더니 지나가던 선배가 그런 말을 한다...오 제국주의...이런 책도 봐.이런건 대학교때 세미나 할때나 보는 거 아니야? ... 제국주의니 뭐니 하는 것 말이야..지금 신자본주의시대(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본주의라고 했다.)에 ...제국주의라...

그리고 밥 먹으며 그 인상이 남아 몇 마디가 더 오고 갔다.내용은 결국 대학교때 어깨넘어 배웠음직한 맑스의 경제결정론..대략 기억하는 물적토대 ...물적토대가 중요하니까 자본주의를 배반할 수 없다는 통속적인 이야기..돈과 이윤 추구는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

그냥 가만있는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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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7-19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앞으론 가만 있을게요. ㅜㅠ

드팀전 2007-07-19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글샘님도 가끔은 웃길 줄 아는 능력이 있으시네요..^^

산책자 2007-08-0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위 책 가운데 <에펠>을 쓴 하비는 동명이인으로 알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