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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론
토르스타인 베블런 지음, 김성균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유한부인'이란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옛날 일을 뒤적이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그 프로그램에서 언젠가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을 주제로 다루었다.프로그램의 내용은 소설<자유부인>이 반영한 한국 전쟁 이후의 성 모랄의 변화와 소설로 촉발된 사회적 풍조에 대해 논쟁이 중심이었다.물론 당시 소설 <자유부인>은 퇴폐풍조를 양산한다고 철퇴를 맞았다.내가 '유한'이란 말을 처음 들었던게 그 프로그램에서였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유한계급'이라는 말은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유한'이라는 한자어가 낯설기도하지만 일단 '계급' 이라는 말이 주는 '붉은 기운'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큰 것으로 추측된다.또한 '유한계급'이란 말이 시간을 건너며 의미가 희석된 부분도 한 몫 할 것이다.
비록 '유한계급'이란 말이 사회학에서든 일상에서든 흔히 사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일상어'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그 말이 가진 함의가 통시적인 사회성을 확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의미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베블런이 말한 '유한계급적' 속성은 장롱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옥가락지처럼 자본주의의 전지구화가 확산되는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을 쓴 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된다.시간이 허락한다면 미국사 관련 책들중 19세기 후반부분을 참고하면 재미가 있다.19세기 후반 미국은 거대한 부가 집중되기 시작하는 '자본주의 만세!' 천하였다.남북전쟁 동안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돈 냄새를 맡은 신흥 부르주아들이 욱일승천하던 시기였다.서부 개척과 내륙 개발을 위한 철도는 자본의 기름에 불을 끼얹는다.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미국사>(케네스 데이비스)는 이 과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서부는 새로운 자원,소비의 시장이 된다.철도증설은 땅, 노동, 철강, 자본 네 가지 기본요소가 필요했다.땅은 연방정부, 값싼 노동력은 동부와 서부의 이민자들 ,철강은 카네기, 자본은 jp모건 부자...
요즘 자본가들은 국가를 자신의 적인척하며 '작은국가'를 이야기하지만 자본주의의 성공에 있어서 그들은 거대한 국가의 도움을 제대로 받아 왔다.
페르낭 브로델은 자본주의의 성공을 위해 몇가지 요소를 언급한다....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사회와 국가가 자본주의의 독과점을 인정해야한다.그리고 초과이윤을 수급할수 있는 해외시장이 존재해야 한다.
19세기말 미국은 이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또한 그 때는 기업들의 미친 말발굽에 가격당한 노동자들의 비명도 어느때보다 높았던 시절이었다.
<미국 민중사>(하워드 진)는 1886년은 동시대인들에게 '거대한 노동자 봉기의 해'로 언급한다.1886년에는 1400여 회의 파업에 50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그리고 1893년 역사상 최대의 경제 위기가 도래했다.42개의 은행이 파산했고 1만 6000개의 사업체가 문을 닫았다.1500만명 노동자 가운데 3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1893년 경제불항은 이윤 확보를 위해 해외팽창의 도화선 구실을 했다.미국 상품을 위한 해외시장이 국내 저소비 문제를 경감시키고 1890년대에 계급전쟁을 야기했던 경제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사고가 팽배해졌다.자본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쌍두마차로부터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였다.미국은 스페인과의 어거지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푸에르토리코,하와이,필리핀 등을 합병해나간다.
미국이라는 신세계는 구대륙의 귀족정치에 도전해서 성립된 것이다.그러나 그건 말만 잠시 바꾸어탄 것 뿐이었다.건국의 아버지로 상징되는 계몽주의 엘리트들은 그들의 부를 계속 세습해나갔다.유럽식 귀족들은 사라졌지만 의식적으로 유럽귀족을 동경하는 미국형 신귀족들이 부를 독점했으며 산업혁명에 따른 신흥부자층이 뒤섞이며 19세기 상류층을 구성하였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이들 상류 부유층의 속성을 낱낱이 파해친다.대상에 대한 분석은 사회과학적이라기 보다는 문화인류학적,역사적,심리학적 접근이 주를 이룬다.흔히들 베블런을 미국 제도학파의 태두로 언급한다.그는 다윈으로 부터 응용한 '사회진화론'으로 사회를 분석한다.그는 사회 구조의 진화를 제도들의 자연선택과정으로 보았다.즉 지금까지 형성된 인간의 제도나 인간 성격의 진보는 가장 적합한 사고습관의 자연선택의 결과이며 적응 노력이라는 것이다.그 결과 제도들의 집합으로 구성되는 생활양식의 성격은 심리적인 측면에서 지배적인 정신적 태도 내지는 지배적 삶의 논리로 규정되며 '지배적인 성격유형'이라는 용어로 정리된다.
그는 '자연선택'이라는 차원에서 '유한계급'의 탄생을 설명한다.유한계급은 평화적인 미개단계에서 약탈문화단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이것은 문화의 진화과정에서 사유재산의 발생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자연선택과정에서 우성은 남성들이다.그들은 '기술과 도구의 활용'을 통해 '호전성' 과 '용맹성'을 드러낸다.약탈적인 힘의 과시는 문화내에서 '존경의 대상'이 된다.또한 가부장제에 바탕을 둔 남성의 약탈성은 여자를 비롯한 사적 재산을 축적을 가능케 한다.베블런은 소유권 생성의 근본적인 동기를- 공인된 자기과시적 성향인-'경쟁'에 두고 있고 '부'를 소유하는 것이 세인들의 선망과 부러움을 사는 '명예'의 표시가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베블런은 '약탈단계'에서 발생하는 '유한계급'을 진정한 의미의 '유한계급'으로 보지는 않는다.이 시기는 이론상의 기원에 해당한다고 본다.그는 약탈문화가 금력과시문화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완전한 의미의 '유한계급'이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한다.그는 완전한 형태의 유한계급제도의 기원도 이 시점으로 잡고 있다.그렇다면 금력과시문화 단계에서 '유한계급'을 유한계급이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들고 있다.
먼저 중요한 것이 '과시적'이라는 말이다.단순히 부와 권력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그들은 부와 권력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공인받아야 하며 차이를 두어야한다.그렇기 때문에 금력과시가 가능한 소비재를 선호한다.그러나 이러한 '과시적 소비' 역시 하류계층에 의해 추격을 받는다.유한계급들은 한발짝 앞서가는 전략 내지는 '검소'라는 또다른 '과시적 소비'를 통해 이를 비웃는다.그리고 '금력'을 문화적으로 또는 취향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방식을 선택한다.예를 들어 고급 문화를 향유하며 그 분야의 식견을 갖는다든가 고급 건축물등을 소유하며 금력과시를 미학적으로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유한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여가'이다.여가라는 것은 비생산적 노동에 종사한다는 즉 노동으로 부터 면제받는다는 의미이다.금력과시문화 단계에서 발달된 산업사회의 단계로 가면 남성들은 세습받은 귀족을 제외하면 사회 활동에 관여한다.여기서 '유한부인'라는 '대리여가'층이 발생한다.남성들의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는 가정 내에서 순응주의적인 '여자'를 대표선수로 내세우게된다.여자들의 고급스러운 예법,고급스러운 모임,고급스러운 태도,고급스러운 소비들은 모두 남성 유한계급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여성들은 사회에서 생산활동에서 배제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러한 습속들을 내재화한다.또한 종교단체나 봉사활동을 통해 여가를 소비하며 남성 유한계급과 가족의 명예를 높인다.여성들의 이러한 '대리여가'와 '대리소비'는 유한계급들이 부리는 질 좋은 하인들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동일선상에 있다.유한계급 아래에서 고급예법을 통해 주인의 가치를 높이는 질좋은 하인들 역시 결국은 남성 유한계급의 가치를 높이는데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영화 <남아 있는 날들>의 안소니 홉킨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책 후반부로 가면 베블런은 유한계급이 향유하는 의복,스포츠,도박,종교,사회봉사,고등학문 등에 내재되어 있는 금력과 여가라는 낭비적인-비생산적인-특질등을 지적해낸다.특히 카톨릭의 과시적 문화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그였던 만큼 유한계급과 동격에 둘 수 있는 성직자와 종교적 의례의 과시적 속성에 대해 날카롭게 반응한다.
베블런은 기본적으로 유한계급문제가 사회문화적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보고 있다.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는 사회의 중심가치가 되어서 하류계층에게도 직접적으로 주사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애어른 할 것 없이 '부자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예견한다.(요즘은 돌잡이에서도 돈 집어야 부모와 친척들의 박수소리가 가장 크다.책 잡으면 좋아하며서도 웃음이 반쯤 줄어든다) 소설가 이순원이 <압구정에는 비상구가 없다>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매일 아침 한걸음씩 압구정으로 향한다'라고 했던 지적과 같은 말이다. 상류층을 따라하는게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될까 하고 질문할 수 있다.베블렌은 유한계급과 보수주의장에서 멋진 표현을 선사한다.
'일체의 에너지를 일상적인 생존투쟁에 쏟아부어야 하는 절대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수 밖에 없다.동일한 맥락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유한계급제도는 가능하면 하류계급의 생존수단까지 박탈하여 하류계급의 소비력과 가용 에너지를 축소시킴으로써 하류계급을 보수화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사고습관을 배우고 거기에 적응하려는 하류계급의 노력마저 불가능하게 만든다.'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없다는 말도 동일한 선상에 있다.하류층을 비롯해 극빈층과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의식혁명을 통해서 삶을 바꾸라고 하는것은 폭력이다.오히려 자신이 하류층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만을 상징하는 유한계급적 속성일 뿐이다.베블렌의 명문을 그렇게 이해해도 양해가 된다면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현시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그는 유한계급 문제를 '소비자'의 문제에만 국한했다.이 문제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지적 받은 바 있다.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생산이 소비에 작용하는 과정'을 설명했다.정작 베블런이 쉽게 지나쳐버린 부분은 상류층의 생활습관이 어떻게,왜 하류층에게 그대로 답습되는가 하는 부분이다.그저 적응과 모방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가 많이 있는 지점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조직되고 어떤 습관들을 내재화하고 어떤 방식으로 지배적인 관념을 따르게 되는지 등등...베블런은 이 문제를 후배 학자들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한동안 들고 다녔더니 후배가 지나가면 언뜻 그런 말을 한다."아니..요즘도 무슨무슨 계급' 하는게 있습니까?" 대꾸하려다가 일일이 대꾸하면 길어지기 때문에 그냥 웃고 말았다.아마 옛날에도 무슨 무슨 계급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꼭 그런 말을 한다.계급이란 말이 무서운가 보다 ^^(하도 무서워해서 바꿔주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