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파르티잔

                       서정춘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남쪽의 봄은 종종걸음을 칩니다.안그래도 짧은 봄이 지구를 데우는 인간들로 인해 더 짧아질 듯 보입니다.<침묵의 봄>이 아니라 언젠가는 <사라진 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최근에 나오는 기상예측도를 보면 수십년 후에는 남쪽지방은 아열대 기후로 들어선다고 하더군요.어제 신문에서는 아열대 기후에만 산다는 어떤 나무가 발견되었다는 것도 언뜻 보았습니다.아열대가 된다고 봄이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아니겠지만 수 천년을 거쳐 내 몸에 각인된 '고향의 봄'이 가진 보송보송한 봄의 기억들은 흐려질 것 같습니다. 

요즘은 답답한 마음에 이민갈까...생각해보곤 합니다.현실이 막혀있을때 도피를 꿈꾸는 것은 자연스렁 인간심성인가 봅니다.가끔 농담삼아  '종교에 귀의 하던지..이민을 간다.' 고 말하곤 합니다.'종교'에 귀의하는 것이 가능이야 하겠습니까만...바깥의 문제에 귀를 닫으며 '내면의 탐구'라는 이름으로 숨을 수는 있을 듯 합니다.세상이 어찌되든 일하는 환경이 어찌되든 문제를 '내 안에서' 찾고 '다른 세계'에서 답을 찾는 다면 현실의 압박이 주는 불편함에서 편안해질 것 같긴 합니다. 탈사회화한 관점으로 탈관계화한 관점으로 '노자,장자'를 읽고 '불경'을 읽으면 될 듯 합니다.짖는 것들은-그것이 공격이든 저항이든- '궁극의 지혜'를 모르는 자들도 배제하고 귀 닫고 눈 막고.....결국엔 외부에서 보면 '순응'이고 -과거에 있던 내가 그렇게 보는 것이지 -'내면'으로 들어가면 그닥 괴념치 않을 듯 합니다.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요?

수년전에 외국나가서 공부하려고 외국 대학 사이트들을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뉴욕에 가서 미학이나 대중문화학 같은 것을 공부해보고 싶었지요.한 몇 개월 그러다가 말았습니다.그 때 만약 갔더라면 결혼은 언감생심이었을 듯 하고 -예찬이도 없겠군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듯 합니다.(역사에 가상은 참 부질없네요.) 요즘은 이민 생각이 나서 처음으로 이민관련 업체들의 사이트에 들어가봤습니다.현실의 답답함도 있었고 한겨레 21에서 봤던 김규항의 교육칼럼도 예찬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김규항 칼럼의 내용은...과거 군부정권때보다 자유로와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딱 한 계층만 예외다.아이들..... 아이들은 무한경쟁의 틈에서 살아가고 있다.20년동안 감옥에서 구속되어 있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서 어떤 가치로 세상을 살아갈수 있을까..그 아이들이 만드는 사회가 과연 희망적인가...좌파든 우파든 이것을 막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공멸한다.....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만만한게 호주,캐나다,뉴질랜드이더군요.그러나 그것도 돈이 있던가 기술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대개 손으로 하는 직업들이 기술이민에서는 선호되고 있었습니다.배관공,전기기사,용접공,요리사....제가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더군요.옆에서 있는 동료가 아는 사람이 뉴질랜드에서 중국음식점하는데 중식 자격증따면 소개해 줄께요 하더군요.또 어떤 동료로 부터 직원중에 누군가 출근전에 일식자격증 따러다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캐나다에서 일식요리사가 인기인데 한국과 일본이들 외에는 할 줄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입니다.그래서 일식 자격증따면 이민가서 먹고 살길은 있다고....

 스스로도 이런 퇴행적인 상상이나 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도대체 이 사회에 무슨 비전이 있을까 ... 극단적인 선택만이 행복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여기에 묻어가면서 저항하는 척 하지만 아이들 학원 자정까지 보내지 않고 밤 10시까지만 보내면 더 나은 건지...

그냥 답답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 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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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4-1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장밖으로 나가기 전 좋은 글을 만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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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맑은 봄날....예찬이와 절에 다녀왔습니다.(저희가 불교신자는 아닙니다.^^)

통도사 서운암....예전에 알던 스님이 최근에 서운암 주지로 발령받았다고 해서 겸사 겸사 나들이길에 올랐습니다.서운암은 된장 파는 절로 알려져 있지요.몇 년전인가는 대장경을 뭐 어떻게 다시 해서 절에 안치했다고 한참 홍보하더군요.관심이 없어서 잘 듣지는 않았습니다.

서운암에서는 들꽃 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양쪽 길가로 온통 차들이 주차해 있어서 도저히 자신이 안나더군요.그래서 조금 더 들어갔습니다.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지장암과 극락암이 나옵니다.우선 거기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나서 서운암에 사람 빠지면 가자고 생각했지요.

처음 가보는 절이었는데 괜찮았습니다.극락암은 암자임에도 건물들이 꽤 많더군요.지장암은 무슨 금개구리가 나온다...뭐 그런 신화가 있다는데 좀 힘들어서 그냥 무시하고 앉아서 쉬었습니다.


예찬이의 요즘 관심은 문과 문고리입니다.

집에서도 문고리만 보면 잡고 일어서려고 용을 쓰더니

절집에 가서도 문에 지대한 관심을 보입니다.지장암 종무소 앞마루에서 앉아서 문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광선을 예쁘게 받아서 눈가에 아토피상처가 가려졌네요..센스 ^^


사진들은 극락암에서 찍은 것들이네요.봄 물이 아이 손에 들것같았습니다.하늘은 파랗고.검은 담을 넘어 온  매화는 황금빛이고 마당에 자주빛 금낭화.....쉬엄 쉬엄 놀기 좋은 봄날입니다.





 










 

 

극락암에서 나오는 길에 좌판에 있는 할머니에게 취나물 2000원 어치를 샀습니다.와이프는 취나물 요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할머니께 한참 물어봤습니다

서운암에서는 그다지 오래 있지 않았습니다.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많더군요.좀 힘들기도 했습니다.서운암의 들꽃 길을 걸으려면 꽤나 오래걸릴텐데 걱정하고 있었는데 와이프가 조금만 걷고 말자고 하더군요.

우연히 주지스님이 손님들 환송한다고 절 마당에 나와계셔서 인사만 했습니다.반겨주시며 참기름 한 병을 내다 주시더군요.중국산 참깨로 만든..^^ 다음에 좀 조용할때 차나 한잔 얻어 마시러 오겠다고 말씀 드리고 바로 내려왔습니다.

오랜만에 좀 멀리 나들이 왔는데 예찬이가 잘 놀아줘서 수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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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4-1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집 구경을 꽤 좋아라 하는데 이상스럽게 통도사를 못가봤네요
고즈넉하고 소박한 암자 분위기 참 좋습니다
예찬이 볼 살에 한번 더 웃고 갑니다 ^^

클리오 2007-04-15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일 사진하고 얼굴이 많이 달라졌군요.. 부산 분들께서 예찬이랑 님이랑 판박이라고 하시던 생각이 나서 드팀전 님 얼굴을 상상해봅니다. 저희 아가도 요즘 한참 붙잡고 일어서는데 몰두해있답니다.. 애 데리고 한번도 멀리 놀러도 못갔는데... 봄나들이 가봐얄텐데 말입니다.

2007-04-16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7-04-1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한국 불교의 최대 사찰이라 할 만하지요.^^ 통도사 들어가는 길도 무척 예쁩니다.암자도 많아서 한번 다녀봄직 합니다.
클리오님>달라졌나요.^^ 예찬이가 저보다 좀 나아요...봄이 가기전에 많이 다니시길
숨은님>그런가 ^^ 서재 사진이 좋네요...타향살이가 쉽진 않을텐데 힘냅시다.저는 요즘 회사가 너무 강하고 왜곡된 압박을 해서..이민가고 싶어져요.

2007-04-26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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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는 숙취가 풍기는 트림 같은 한 주 였다.

 요즘 일상에서의 쟁투는 악취를 풍기며 일회적으로 공기 속에 산화되고 말 문제가 아니어서 힘겹다.급성 궤양이 만성 궤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금요일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마음이 즐겁지 만 않았다.머리 속에 담석이라도 들어앉은 것 처럼 묵직하다.아이와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다시 잠들려고 하는데 눈이 말똥 말똥하다.복잡한 마음과 잦은 회의때문에 하루 서너장 밖에 읽지 못하던 책을 읽었다. 새벽에 책을 읽어 보는게 얼마만인지..

지난 한 주는 작용과 반작용의 날들이었다.자본의 일관성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에 대응하는 반작용들은 중구난방,오합지졸들 처럼 움직인다.수요일에는 워크샵이라는 형태로 방까지 잡아놓고 향후 정국에 대한 대책회의를 했다. 7시부터 시작된 회의가 자정을 넘겨 마쳤다.전혀 지루하진 않았다.그렇다고 논의가 내 입맛에 맞았던 건 아니다.오히려 상황을 바라보는 반작용을 해야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정말 소수자였다.아니 원칙적으로는 다들 동의해주지만....

현재 나의 위치가 가장 '안테나'를 높이 세울 수 밖에 없는 입장이어서 본질적인 부분에 민감하다.

같은 경우는 아니었겠지만....일제 시대때도 '독립운동'을 놓고 이러했을 것 같다.

1.무장 독립투쟁을 하자는 사람들,2.현실적으로 개량하자는 사람들,3.어떻게 하겠느냐며 순응적인 패배주의에 빠진 사람들,4.힘있는 사람들에 편승하여 개인의 살길을 찾는 사람들.....그 역사성과 무게감은 다르다.그런데 '자본과 힘의 논리'에 밀린 내가 속한 조직 사람들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그 형태는 거의 유사하다.

나의 입장은 1번과 2번 사이이다. '파업이니 사보타주도 하면 하는 거다....그걸 왜 두려워하느냐....그 가능성은 열어놓고 개별사안들에 대해서는 저들과 또 논의한다.'  그런데 이 정도 생각에 동의해주는 사람들은 전체 20명 정도 중에 나를 포함해 두서너명이다.

내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 '단추론'이다. 1년전부터 줄창해왔는데 아직도 한다. 밑단추 잘못 끼웠으면 거기부터 문제 제기를 하고 최소한 단추 푸는 시늉이라도 하게 해야지 이야기가 풀린다. 아랫단추는 어쩔수 없다면서 어젠다를  윗단추 끼우는데 맞춰왔다.다들 문제는 아랫단추라는 것을 안다.그런데 아랫단추에 손대는 것에 대해 쭈뼛거린다.

'언어 유희'로 어젠다를 헷갈리게 하는 전술에도 잘 넘어간다.차이를 설명하고 분석하는데 이성을 집중하다보니 그 이면의 궁극적인 본질에 대해서는 잊고 만다.그러면서 미묘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을 합리와 이성이라고 믿는다.내가 생각할 때 이성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맥락 뒤에 감추어진 것들의 의미를 읽고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성' 아닌가?

내가 갈등의 최전선에 있어서 더욱 민감한 것은 사실이다.그리고 나머지들도 곧이어 자신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최근에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새로 우리팀에 들어온 선배 역시 문제 인식에 대한 안이성을 그래도 보여주었다.곧 날카로와 질 것이다.당해봐야 안다는 말은 경험적인 진실이다.지난 1년 동안 지루하게 싸웠는데 이제 진짜 지친다.그냥 모르겠다 하고 시키는데로 조용히 있는게 편안할 듯 하다.

그런데 끊임없이 자극을 주니까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스트레스 수치가 계속 높아진다.

요즘 같아서는 회사 그만 둘 생각하고 장렬하게 전사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화랑 관창이 되어도 내가 믿어야하는 우리 병력들은 멀뚱 멀뚱 바라보고 '예이...뭐 저렇게 까지 할 필요 있어' 라고 할 듯 보여 화랑 관창될 마음도 없다.

안 싸우면 안돼고 싸우다 보니 지치고.....

장자의 <달생>편에 나오는 '목계'가 되면 정말 다들 무서워서 건드리지 않을까?...자본의 논리와 경영의 논리로 무장한 무뇌아같은 하수인들이 무서워해줄까?

뉘른베르크 재판을 보고온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작동케하는 것으로 '무사고'를 들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정말 죄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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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14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오랜만입니다.
뭔가 첨예한 사안이 있군요. 스트레스 덜 받고 잘 결론 나면 좋겠습니다.
주말에라도 좀 쉬시기 바래요.^^

마늘빵 2007-04-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푹 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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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선배기자에게 맞아 '전치4주' | 사건사고/기타..
2007.04.10 00:03

 
▲ 김아무개씨가 "수습기자 3일만에 선배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올린 글과 사진.
한 언론사 수습기자가 입사한지 3일 만에 교육을 맡은 선배 기자에게 폭행 당해 실명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한 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선배 기자는 "쌍방 폭행이었다"며 자신도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 새벽 국내 한 언론사 수습기자 김아무개(28)씨는 수습기자 교육을 담당한 선배 송아무개(31) 기자로부터 길거리에서 폭행 당해 실신했다. 길에 쓰러져 있던 김씨는 경찰의 도움을 받고서야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송 기자를 경찰에 형사고소했고, 경찰은 9일 송 기자를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9일 <오마이뉴스>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의 전모에 대해 밝혔다.

김씨에 따르면, 그는 사건 발생 전날인 5일 저녁 7시 함께 입사한 수습기자 5명, 선배 기자 2명과 함께 서울 종로구 계동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회식을 했다.

김씨는 이 자리에서 선배기자들이 수습기자들에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언사를 거침없이 해댔다고 주장했다. 선배기자들이 술자리에서 "우리는 맞으면서 배웠는데 너희는 우리가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고 세상 참 좋아졌다"거나 "상상 이상으로 힘든 곳이니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 무조건 참고 복종하라"며 강압적 어조로 훈계했다는 것이다.

"그만 두겠다고 하니 선배기자가 때리고 발로 밟아"

김씨는 "이날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분위기도 점점 험악해졌다"며 "옛날에 우리(선배) 교육 받을 때는 술자리에서 옷을 벗으라면 벗었다거나 그만둘 거면 지금 말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상황을 견디지 못한 김씨는 결국 3차 술자리에서 "그만 두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후 가방을 놓고 온 사실을 알게된 김씨가 다시 술자리로 갔고 선배인 송 기자가 김씨에게 "이야기 좀 하자"며 따라나섰다. 송 기자는 재차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권했지만 김씨가 좀체 뜻을 굽히지 않자 대뜸 주먹이 날아왔다고 김씨는 밝혔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씨는 "안경을 낀 상태에서 발로 눈을 밟혔다"며 "눈이 너무 아파 살려달라고 애원했는데도 '토 달지 말라 그랬지' 하면서 다시 달려와 얼굴을 찼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김씨는 코뼈가 부러지고 눈 아래 뼈에 금이 가는 등 전치 4주의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김씨를 폭행한 송 기자는 '쌍방폭행'을 주장하고 있다. 송 기자는 사건 이후 회사에 사표를 낸 상태다.

해당 언론사 편집국의 한 관계자는 "6일 송 기자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며 "회사측은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이후 관련된 내용을 처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 언론사의 사회부장은 "그 다음날 송 기자로부터 아침 일찍 연락이 왔는데 (수습기자인 김씨에게) 맞았다는 보고였다"며 "송 기자도 눈 옆이 찢어져 13바늘을 꿰맸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김씨 아버지와 외삼촌이 회사에 찾아왔는데 입장이 엇갈린 상태이고 양측이 다쳤으니 치료부터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며 "이런 일이 빚어져서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네티즌 "때려야 취재력 길러지나" 비난 잇달아

한편 김씨가 지난 8일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 모임 사이트에 당시 상황을 폭로하는 글을 올리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공분'이 일고 있다. 네티즌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교육을 빙자한 '반인권적' 대우 때문이다.

김씨는 '다음카페'에 해당 언론사가 내부적으로 배포한 '수습기자 교안' 내용을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까라면 까고 기라면 기어라", "토 달지 말라, 혀 뽑아버린다", "다리 꼬지 말라, 다리 분질러버린다"는 등 충격적이고 비인간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씨가 공개한 교안에 대해 네티즌은 '충격적'이라며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음카페 ID '태양아 너는'은 "다른 언론사도 이런 분위기냐"며 "세상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 '꿈의 라디오'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수습노조를 결성하든지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그런 식으로 두들겨 패서 길러지는 취재력이 어떤 것이냐"고 따지기도 했다.

ID 'pressswp'는 "정말 화가 난다"면서도 "지금 수습생활을 하고 있는데 저렇지는 않다, 하지만 글쓴이의 상황은 정말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니 억울한 일을 당한 만큼 당당하게 문제를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언론사는 김씨가 공개한 '수습기자 교안'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이 언론사의 사회부장은 "그런 교안이라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한 뒤 다만 "선배기자들이 후배기자들에게 마와리(담당구역취재)나 하리꼬미(말뚝근무) 같은 근무체계에 대한 지침이나 각오를 다지게 하는 가르침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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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4-1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 이런 문제를 모 방송사 기자하는 친구에게 언뜻 이야기한적이 있다.그 친구 나름대로 생각도 있고...꽃병도 던지고...그랫는데...뜻밖의 대답을 듣고 할 말이 없어졌다.
"음...우리 현실에서 아주 단기간에 애들을 현장에서 쓸만한 물건으로 만들려면 그렇게 강압적인 방법을 할 수 밖에 없어.그게 현실이야."
"..."
근대의 속도주의가 문제인가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내면화되어 버린 폭력이 문제인가..?

글샘 2007-04-10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성보단 복종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사회.
그런 것을 이 사건에서 느낍니다. 우리와 다르면 왕따시키는 비겁한 사회.
우리와 다르면 쓸모없다고 우기는 사회.
반성할 줄 모르는, 미래가 없는 사회를...

하이드 2007-04-10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드팀전님, 2007년 뉴스 맞나요???

드팀전 2007-04-10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2007.4.10 기사네요.^^ 오늘 한겨레 신문에도 관련 기사가 실렸는데..한겨레 인터넷판에서 못찾았어요.

urblue 2007-04-1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참. 할 말 잃게 만드는 뉴스로군요.

비로그인 2007-04-10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아직도 군부독재 시댄가요... 할말을 잃게 만드네요...

마늘빵 2007-04-1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이거 어느 언론입니까. 아니 어떻게 기자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답니까.

드팀전 2007-04-10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가 뭐 별건가요.기자들의 조직이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있는 사실이고...그 토대하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에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책읽기는즐거움 2007-04-1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맞으면서 배웠는데 너희는 우리가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고 세상 참 좋아졌다"

자신들의 내부의 작은 사회도 올바르게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큰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게 할 수 있는 펜을 잡을 자격이 있을까? 아니 올바른 방향은 둘째 치고 똑바른 사실전달은 할까?........
기자를 믿지 못하면 신문에 대한 불신이 생길텐데 그럼 이제 믿음을 가지고 볼 텍스트는 존재하는 걸까?.....
댓글저장
 

 

 

 

 

김미화의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진창현 선생이 나왔다....일본 교과서에도 실린 바이올린 제작 명장이다.고향이 낙동강 근처라고 한다.어머니의 무덤이 그곳에 있어서 매년 들러 성묘를 하고 한줌의 흙을 일본으로 가져간다.그리고 미리 자리를 봐둔 자신의 무덤가 비석에 그 흙을 바른다.

TV프로그램을 보다가 야노스 슈타커도 나오고 정명화도 나온다.첼리스트 정명화가 "지금까지 이런 분을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 고 인사성 멘트를 한다.

이분이 사는 일본의 시골마을은 이분 덕에 유명해졌다고 한다.동네에 기념관도 만들었다.일본의 클래식이 한때 돈으로 콩쿠르를 휩쓴다는 오명을 쓴 적이 있다.일본에 대한 시기어림이 조금은 과장된 신화를 만들어낸 것일 게다.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일본의 클래식 문화가 한국보다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연주단체의 수준,연주장의 수준,또 클래식 음악 팬들의 수준 등등을 고려할 때 그렇다.이것도 다 일본이 돈이 많아서 그런거라고 하면 별로 할 말은 없다.

만약 진창현 선생이 한국에서 계속 작업을 했더라면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분야의 명장들이 많이 있다.종이 만드는 명장,징 만드는 명장,북만드는 명장,활만드는 명장......등등 ..... 이 분들은 춥고 배고파서 더이상 후계자 양성도 꿈구지 못한다.

무엇이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상징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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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7-04-09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장인이 오로지 명작을 탄생하는데 온힘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어야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죠. 문화재도 그렇지요. 일본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들이 고이 보존되어 있는걸 보면 화도 나지만 그보다 속상합니다. ㅠㅠ

책읽기는즐거움 2007-04-1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무형문화재 즉, 인간문화재로 지정했다고 해서 끝은 아닌거겠죠.
전 현재 우리나라의 정확한 상황을 몰라 어떻게 말할 수는 없지만요...

드팀전 2007-04-1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인가 신문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그다지 큰 지원을 받지는 못하는 듯 하더군요.그러다보니 전수자로 나서는 사람들도 없고...현재 계신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아마 찍어 놓은 화면을 보고 그 기술을 전수하는 꼴이 날 듯 합니다.하지만 그건 단지 외양만 모사하는 것이지 장인의 기와 예가 동시에 전달되는 건 아니겠지요...눈에 보이는 것만을 인정하는 체제이다 보니 따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소멸하는건 시간문제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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