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우연히 들렀다.오랜만에 간 서점은 고향집 찾아 온 듯 푸근했다.알라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전에 서점은 나의 놀이터였다.5-6년전 나는 오후에 출근해서 새벽 1시쯤 퇴근 하는 일을 했다.대략 2-3시쯤 자더라도 10시쯤이면 일어나게 된다.아침 겸 점심을 먹고 출근시간 까지 몇 시간의 여유가 있다.전부 일하는 시간이니 딱히 놀 사람도 없고 혼자 돌아다니는게 유일한 즐거움이 된다.시내와 대학가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다.당연히 서점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시간 보내기 가장 좋은 장소 중에 하나였으므로...

서점가면 좋은 점이 책의 내용 일부를 염탐할 수 있다는 것이다.몇 장 펴 보면서 책에 쓰이는 용어들의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내 수준에 너무 어렵겠군..아니면 이건 너무 안이하게 쓰여졋군..하고 판단내릴 수 있다.) 눈으로 직접 만나는 책의 부피감 또한 느낄 수 있다.두툼하게 잡히는 책의 무게감을 느껴보면 책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과 그 시간 동안의 지루함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어서 훨씬 실제적이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매번 순번에서 밀리는 책들을 서점에서 살펴봤다.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방대한 분량에 위축된다.(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하게된다.이 방대한 걸 읽느라 1달을 쓰느니 더 다양한 책을 보는게 어떠하냐고 자꾸 머리 왼쪽에서 흰색 도널드가 꽥꽥거린다.)

다음으로 내 지식 용량으로는 과부하가 걸릴 듯 하여 두려움을 준다.에라 모르겠다.그게 별거냐..게폼잡으며 읽다가 읽으면서 고전하고 읽고나서 결국 한 두 줄 기억에 세긴 무공훈장외에 남은게 없는 패잔병이 될까봐 미리 쪼는거다.경험적으로 그런 적도 많다.

그 외에.....새로 나오는 책들에게 현혹되어 흐지부지 밀리는 경우가 있다.매주 매달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한번 밀리면 계속 떨밀려가서 대마도 앞바다까지 간다.

1.2.3 번의 이유는 독립적이지 않다.비중의 차이를 두고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거기에 '내가 무슨 학자도 아니고 학자연 해봐야 별것 없는데..' 라는 '대중적'인 생각도 한 몫한다.그게 4번이라면 4번이겠다.

아래에 있는 책들이 1.2.3.4 번의 종합적 이유로 보관함에 장기 방치되어 있는..또는 될 녀석들이다.

 

 

 

 

 

 

 

 

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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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2007-03-30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가지 중복되는 게 있군요 ^^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랑 아도르노의 말러, 트랜스크리틱은 글쎄 일단 보관함에 있긴한데 그다지 땡기지는 않구요. 그나저나 아케이드 프로젝트 보급판은 왜 절판된건지 ㅠㅠ 양장본은 너무 비싸던데,,,

기인 2007-03-3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황금가지는 분량의 압박이죠 ^^ 제국은 그렇게 쉽지많은 않은 텍스트인데 ㅎㅎ

몽당연필 2007-03-30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이 중에서 제가 갖고 있는건 한 권도 없네요.

바라 2007-03-3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제국이라는 유령이 출간됐군요. 저번에 서강정치철학연구회에서 곧 나온다는 얘기만 들었는데...안그래도 요새 제국 끙끙대면서 보고 있는데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분량과 가격으로는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대왕이군요;;

드팀전 2007-03-3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3.4 번의 종합적 압박이라고 보는게^^..
특히..분량의 압박은 아케이드..뜨왕.

마늘빵 2007-03-30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한나아렌트 마음먹고 다 읽어보고픈데 마음뿐입니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사다놨고, 그보다 앞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픈데.

기인 2007-04-0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바람구두님 그런게 아니라, (많은) 학부친구들이 제국을 너무 쉽게 읽는 것 같아서요 ㅋㅋ 사실 이 제국-제국주의-(그리고) 논쟁이 너무 골 아픈지라 ㅎㅎ
 

알린스키 빈민운동’ 힐러리·오바마 이념의 뿌리
입력: 2007년 03월 26일 18:38:23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일리노이)은 공히 솔 알린스키(Saul Alinsky)의 사상적 세례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가 25일 ‘클린턴과 오바마 공통의 이념적 시금석’이라는 제목으로 집중 소개한 기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신문은 짧게는 20년(오바마), 길게는 40년(힐러리) 전의 인연이지만 현재까지도 두 사람의 정치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 알린스키라고 분석했다.

먼저 두 사람 모두 알린스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빈민운동 참여를 제안받았다. 전형적인 리버럴(자유주의자)이었던 힐러리는 웨슬리 여대 학생회장 시절이던 1968년 알린스키로부터 직접 제안을 받았다. 힐러리는 제안을 거부했다. 오바마는 알린스키 사후인 1985년 그의 이론을 좇는 단체로부터 같은 제안을 받았다. 컬럼비아대 졸업생 오바마는 박봉(연 1만3000달러)을 무릅쓰고 시카고 흑인 공동체 운동에 참여했다.

빈민을 조직화해 투쟁을 통해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알린스키의 가치에서 벗어나 제도권 정치에 몸을 담은 힐러리나 오바마이지만, 공히 알린스키의 세례를 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힐러리는 백악관 안주인이 된 직후인 1993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는 알린스키가 옳았다”면서 정부의 빈민구제 프로그램이 당사자 개개인이 아닌 관료계급만 살지운다는 점을 비판한 바 있다. 오바마 역시 “시카고 흑인운동이 생애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의 기회였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현재 알린스키와 관련한 미국 언론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있다. 급진적 좌파로 오인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실제 힐러리는 알린스키를 주제로 한 졸업논문으로 인해 클린턴 정부 시절 보수진영으로부터 집중적 비판을 받았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알린스키와 힐러리, 오바마의 관계가 대두되는 것도 보수파에 의한 이념공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두 사람의 대선 전략에서도 알린스키의 유산이 드러난다. 공허한 이상에 기울기보다 대중 개개인에 접근하려는 알린스키의 조직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이합집산과 타협을 통해 정치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찾으려는 ‘이상적 현실주의자’의 면모 역시 ‘알린스키적’이다. 차이가 있다면 오바마는 ‘행동’을, 힐러리는 ‘이론’을 알린스키로부터 배웠다는 점이다.

오바마를 지도했던 시카고의 조직운동가 그레고리 갈루조는 “(차이는 있지만) 두 후보 모두 알린스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두 후보 중 한 사람을 백악관에 입성시킴으로써 우리는 보통 사람들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부를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알린스키-

알린스키는(1909~1972)는 마피아가 설치던 1930년대 시카고 도시 빈민운동에 투신했던 급진적 좌파 사회학자이다. 특히 지역사회 조직화에 주력했다. 이론과 실천 부분에서 1960년대 좌파 운동권의 정신적인 대부 역할을 했다. 미국의 선거정치 시스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된다며 수동적이고 비효율적인 주류 리버럴을 비난했다. 도그마와 폭력 시위에 반대하고 버스노선과 공공주택 등의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 ‘래디컬에 대한 기상나팔’ ‘래디컬을 위한 법칙들’ 등의 저서를 남겼다. 업턴 싱클레어의 소설 ‘더 정글’에서 그의 노동운동이 묘사됐고, 최근까지 미국 팝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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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 텔레토비에서 해피밀까지, 키즈 산업은 어떻게 아이들을 지배하게 되었나
줄리엣 B. 쇼어 지음, 정준희 옮김 / 해냄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아이가 생기니 새로운 브랜드들을 알게된다.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맥클라랜,치코,베베카,브라이텍스 같은 상표가 요즘은 낯설지 않다.하지만 처음부터 그런것은 아니다. 몇 달 전 일이다. 아기 유모차를 사려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했다.나는 약간 놀랐다.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 브랜드를 알고 있고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진 을지로의 '프린템스'백화점이 사실 라디오 광고로 많이 들었던 '쁘렝땅' 백화점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와 비슷했다.) 왠지 몰라도 아는척 해야 덜 쑥스러울 것 같은 묘한 감정이 일었다.미루어 생각컨데 아이가 커가면서 나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새로운 브랜드들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줄리엣 B 쇼어의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우리의 아이들이 상품에 어떻게 포위되어 있는지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리고 있다.이 책에도 언급되고 있는 <나이키는 왜 짝퉁을 낳았는가?>가 청소년들의 소비주의 문화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면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조금 더 연령을 하향화 하여 '트윈세대' 라고 하는 4-12세 (우리로 치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아이들에게 만연된 소비주의문화의 본질을 읽어낸다.미국의 기업환경과 시장규모,관련 제도들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사례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이 책에서 여러번 지적되고 있는 '어린이 광고'에 대한 규제 같은 것들이 우리나라의 경우와 같지는 않을 수도 있다.또한 기업의 스폰서를 받아 상업화되고 있는 학교를 그리는 장은 미국에 비해 교육의 공적기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강한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다.(미국의 경우 기업 스폰서가 수업 커리큘럼을 제공하기도 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정보를 얻어내기도 한단다.물론 해당 학교에 기부금이 들어간다.석유 메이저가 만든 환경관련 교재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함의할지는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마케팅의 천국이라는 미국의 상황이어서 우리가 따라가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미국화를 선진화로 믿는 나라이다보니 전체적인 맥락에서 유효한점이 상당히 많다.

우리의 아이들의 사회는 점점 더 소비문화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2002년 미국을 기준으로 아이들의 구매력은 과거 10여년 전에 비해 약 400% 증가했다.또한 7살 정도의 아이들이면 300여개의 로고를 구분할 수 있다.아이들은 점점 더 광고에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브랜드 상품의 소유를 사회에서 인정받는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무슨 아이들이 벌써 그러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게다.사회학적으로 최근 트랜드를 못쫓아가고 있는 것이다.닐 포스트먼은 '유년기 소멸론'을 주장한다.텔레비전이 인쇄문화를 대체하면서 아무런 훈련없이 아이들을 성인용주제에 노출시켰고 문화적 트랜드 역시 유년기를 손상시켰다고 본다.또한 양육방식 역시 '게이트키퍼'에서 '평등'쪽으로 바뀐 점도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 세계로의 편입을 사고시켰다고 본다.

기업들은 아이들을 소비제국의 시민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한다.발달심리학을 이용해 '소비욕구의 자연화' (소비는 자연스렁 본능이라는 생각)을 퍼뜨린다.성별 고정관념 확산하는 성별구분 마케팅을 과학화한다.반기성세대 정서를 이용하기도 하며 차별성,가변성등을 특징으로 하는 '쿨'함을 이용한다.또한 이중메시지 전략을 이용하여 아이와 부모에게 다른 공략법을 개발하기도 한다.그리고 아이들의 '조르기'를  이용하여 부모를 훈련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준다.

특히 텔레비전을 통한 광고는 이 분야의 꽃이다.한 광고인은 이렇게 말한다. "최고의 광고는 제품을 갖고 있지 않으면 패배자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광고이다.아이들은 특히 이 사실에 민감하다." 성인들의 경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정서적 안정성이 상품으로 인한 박탈감을 줄여 줄 수 있다.그러나 아이들의 경우는 직접적이다.컴퓨터게임 하나를 가지면 세상을 다 갖은 것 같고 그것이 없으면 세상이 무너지는지 안다. 광고인들은 아이들이 가진 특성들을 그대로 수용하여 마케팅에 활용한다.거기에 아이들이 가진 가치가 긍적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생각은 중요치 않다.광고는 아이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위해 스스로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일명 바이러스 광고가 그것이다.또한 또래집단의 중요성을 이용하여 입소문마케팅,알파키드(또래 집단내에 카리스마가 있으며 트랜드를 주도하는 아이,) 등을 활용한다.아이들에 대한 광고와 마케팅 전략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360도 세계를 창조하라' 즉 끊임없는 전면 공격을 통해 아이들의 요구로 부모의 지갑을 열게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문화가 아이들에게 주는 악영향은 무었일까? 줄리에 쇼어는 소비문화가 아이들에게 물질주의의 노예가 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이미 많은 아이들이 상품의 소유를 가지고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물질주의에 물든 아이들은 끊임없는 부족을 느끼고 심리적 안정감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다.소비문화는 강한 불만,만족을 모르는 욕망,비교 의식등과 관련있다.또한 자부심의 결여는 그것이 약물이든 술,담배이든 의존성을 높인다. 식품,음료등 정크푸드에 대한 광고들은 아이들의 비만이라든가 각종 질병등을 유발하는 복지상태에도 직접적 결과를 낳는다.(대부분 슈퍼에서 파는 과자,빵 그리고 맥도널드 햄버거등은 쓰레기에 가깝다.물론 나 역시 가끔 쓰레기를 먹는다만..) 대부분의 소비문화 연구는 소비주의문화가 또다른 유의미한 활동등을 제한한다고 말한다.TV를 보거나 쇼핑하는 것 말고 할 것이 무척이나 많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그 두가지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책에 후반부에 등장하는 소비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흥미롭다.반소비주의 트랜드에 기업이라고 가만히 있을리 없다.담론을 통해 이의 확산을 막는 것도 기업 마케팅의 몫이다.우선 광고가 어린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신어린이 결정론'이라고 하는데 상품구매로 자부심을 갖게 된다면 광고가 그 자부심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나이키를 신었는데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 에어를 신고 슬램덩크를 꽂았다면 뿌듯해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앨런 캐너는 많은 청소년들이 소비문화를 따라가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실감을 느낀다고 말한다.기업측은 어린이들이 점점 영악해져서 광고를 선별적으로 취급한다고 말한다.이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아이들의 광고에 대한 판단력의 성장을 조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은 보류해놓아야한다.줄리엣 쇼어는 광고시장의 성장을 두고 광고의 직접적 효과의 예를 든다.그러나 <혁명을 팝니다>에서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트는 반소비주의에 반대하며 광고의 성장이 매출의 성장과 직접 관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광고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효과정도로 보는 것이다.가장 흥미로운 것이 기업이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부분이다.즉 나쁜 광고 나쁜 제품이면 아이들 사주지 말고 TV보지 못하게 부모가 할 일이지 왜 건전한 영업활동에 딴지를 거냐는 것이다.'부모책임론'이다. 줄리에 쇼어 역시 이 부문에 동의한다.그러나 전방위적 물량 공세 속에서 부모들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이는 문제를 개인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소비문화와 키즈 마케팅의 도덕적 책임을 면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줄리엣 쇼어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우선 법과 제도의 정비이다.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와 마케팅,미디어에 보다 강한 규율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쇼어는 네델란드,스웨덴 등 유럽의 예를 든다.또한 대안적인 문화를 만들기를 권한다.대안문화라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을 뜻하는 바는 아니다.음식문화를 바꾸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과외활동,실외활동의 확대 등을 위한 실천적 노력등이 이야기된다.(대안적 활동은 TV와의 거리두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부모가 물질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또한 TV를 끄라고 말한다.TV를 끄면 아이가 문화적으로 소외되거나 필요한 정보를 놓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쇼어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TV없는 가정에 대해 걱정할 필요없다고 말한다. 나 역시-아이에게 적용해보지는 않아지만- TV없이 살아보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서른 즈음에 약 2년정도 TV없이 살았던 기억은 내 인생에 보석같은 시간이었다.TV를 거의 안보는 것과 TV가 없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TV 없으면 다른 것들을 정말 많이 할 수 있게 된다.... 재미삼아서라도 TV 끄고 한 달만 살아보면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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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20 19:52   좋아요 0 | URL
매번 드팀전님의 리뷰를 읽으면 너무 잘쓰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장문장마다 정성이 들어가 있어서 읽으면서 감탄을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드팀전 2007-03-20 22:33   좋아요 0 | URL
ㅜㅜ...감사합니다.그런데 문장마다 정성은 절대 아닙니다.제가 글쓰는 걸 보시면 얼마나 성의없는지 놀라실지도 모릅니다.ㅜㅜ 한 번 쓰면 퇴고라는 것도 모릅니다.제 회사 컴퓨터는 '윈도우 98' 이어서 1분에 200타쯤 치는 제 워딩 스피드도 못따라갑니다.한줄 치고 나면 껌뻑 껌뻑거리다 한꺼번에 좌악 하고 뜹니다.글쓰는 데 정성이 들어가는게 아니라 컴퓨터 기다리는데 정성이 들어갑니다.예전에는 10편 쓰면 한편 정도 집에서 썻는데 요즘은 10편 중 10편 전부 회사에서 씁니다.ㅜㅜ 회사에서 쓰면 약간 눈치를 보기때문에 생각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그래서 쓰면서도 좀 짜증이 납니다.앞으로는 좀더 문장을 갈고 닦고 정성스럽게 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고 싶지만..아마 앞으로도 회사에서 두리번 거리며 쓸 가능성이 농후합니다.ㅜㅜ 대신 좀 더 생각하고 쓰긴 하겠습니다.진짜루..
 

요즘 영화관 가는 일은 노숙자가 청와대가는 일 만큼이나 힘들다.기술의 발전이 영화를 거실로 가져다 주지 않았다면 아기 클 때까지 영화감상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비디오가 영상을 개인적인 공간으로 끌어왔다면 DVD는 더 나은 화질과 소리를 안방으로 들여왔다.고급 홈시어터가 있다면 유사영화관의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집에 소형 5.1채널 시스템이 있지만 요즘은 사용불가다.작지만 TV소리 보단 크기 때문에 아기 재우며 영화를 볼 때 그걸 쓸 수는 없다.결국 TV 모니터의 소리만 아주 작게 켜고 TV앞에 붙어서 영화 <묵공>을 봤다.그나마 외국 영화는 자막이 있어서 다행이다.지난 번에 영화 <타짜>를 볼 때는 볼륨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무지 애썻는데 이번에는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영화 <묵공>의 주인공은 '유덕화'와 '묵가'의 사상이다.

먼저 유덕화....지난번 국제 영화제때 한번 멀리서 본 적이 있었다.나이가 들어도 멋있으려면 살이 쪄서는 안되는구나를 생각하게 했다.유덕화는 나이가 들 수록 멋있어진다.영화 <천장지구>와 <열혈남아>에 나왔던 젊은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멋있다.눈은 깊어졌으며 얼굴에 생긴 주름사이로 연륜이 보태지기 시작했다.이런 배우들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영화에서 혈혈단신으로 양성을 지키기 위해 온 묵자의 역할을 했다.청빈함과 활동성을 확보한 혁리의 의상은 그의 카리스마와 더불어 인상적이었다.그냥 너덜 너덜하게 입은것 같지만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내츄럴 트랜드 의상이었다.(이건 함께 영화를 본 와이프의 견해다.)

영화는 춘추전국 시대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한다.왕은 '묵가'의 아나키즘적 사상이 국가 내에 퍼지는 것을 경계한다.'묵가'의 사상은 '이상적'이어서 현실을 꾸려가는데 적합하지 못하다고 말한다.그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수성'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묵가는 일종 춘추전국 시대의 '코뮌'이었다.제자백가의 사상이 다 그렇겠지만 묵가 역시 춘추전국시대의 현실에 대한 고민에 토대를 두고 나온 사상이다..하루가 멀다고 이어지는 전쟁,패권이 바뀌고 그 때마다 늘어나는 주검,피폐한 민중들의 삶......

제자백가라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패권을 잡기위한 정치체제의 필요에 의해 양성된 것이다.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무수한 '00군' 들은 다들 식솔로 이러한 정치참모들을 끌어모았다.공자도 맹자도 자신의 철학을 팔러 다녔다.묵가는 역시 지독한 현실에 대한 타개책으로 모색된 것이다.

대학 때 묵가에 대해 배우며 '혁명적'이라는 생각을 했다.혁리는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혁리는 묵가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말한다.혁리의 입을 통해 '비공'과 '겸애'라는 말이 나온다..더 깊은 함의가 있겠지만 요즘말로 하면 '반전평화주의'와 '평등사상'이다. 또한 묵가는 '검소'함을 무척 강조했다고 한다.요즘 말로 하면 '반소비주의' 정도를 갖다 붙일 수도 있을 법하다.

묵가는 기계 제작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영화 <묵공>에도 많이 나오는 '수성'을 위해서 '방성'도구들을 만들었다는 것은 묵가의 철학과 현실의 매개를 찾는 실천적 요소로 읽힐 수 있다..

묵가는 또한 강력한 조직력으로 유명하다.전쟁에서 패해서 집단자살했다는 것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지도자에 대한 믿음이 거의 종교적이었다.물론 이것은 묵가를 탄압하고 지적 헤게모니를 잡은 유가들의 정치적 이유때문에 확대해석된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른다.또한 당시 시대적 한계였겠지만 도술이나 미신같은 것들에 의존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묵공>에서 혁리는 묵가의 의견에 반하여 양성으로 왔다.혁리를 '좌파 자유주의자'로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묵가의 교리를 따르지만 조직 전체의 의견보다 개인의 선택을 우선시한 그의 입장은 재미있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영화<묵공>에서 감독이 연애라는 통속적인 스토리 라인을 만든 것은 정말이지 안타깝다.철학적인 주제를 상업영화의 틀안에서 만들어내었지만 그것을 가지고는 안전핀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나보다.하지만 그건 기우이며 사족이다.세계관의 힘이 영화를 잘 이끌어오다가 급격히 무너지는 것이 그즈음이다.

영화는 결국 아무런 승자도 없음을 이야기한다.전쟁은 아무에게도 승리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항장군의 죽음은 힘의 논리가 갖는 순간적 승리의 덧없음에 대한 감독의 주장이다.혁리의 상대역인 항장군의 캐릭터가 좀 더 치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말이다.차라리 연애스토리를 버리고 항장군의 캐릭터를 조금 더 입체적이고 논리적으로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어설픈 연애담에 공감하기보다는 상대적인 가치관의 대립이 더 큰 흡입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혁리가 전쟁 고아들을 데리고 떠나는 장면은 진부한 설정이다.그렇지만 묵가의 현재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묵가의 '비공'과 '겸애'는 제국의 깃발아래 신음하는 세계에 여전히 현실적인 유효성을 갖는다.혁리가 양성을 지키기 위해 동원한 것은 '지도층의 희생과 민중들의 협력'이었다.

결국 관점은 '세계관'이다.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어떤 대안을 찾느냐의 문제...그리고 현실의 권력관계 속에서 어떤 전술들이 택하느냐의 문제이다.

혁리의 수성은 실패했다.혁리의 실패일까? 아니면 시대의 실패일까? 여우같은 군주는 과연 성공한 사람일까?아니면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이 성공한 것일까?

혁리의 실패는 묵가에서 이미 예견한 것을  재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영복의 <강의> 중 묵가를 설명하는 짧은 글이 있다.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저지하였고 초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막았다.또한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막았다.묵자가 송나라를 지날때 비가 내려서 마을 여각에서 비를 피하려고 하였다.그러나 문지기가 그를 들이지 않았다.조용히 일을 처리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고 싸운 사람은 알아준다"

....그게 그런 것이다....가장 혐오해야될 사람들이 그게 그런 것인지 알고 그 사악한 머리를 굴려 이득을 얻는자들이다.억울함....없다고야 하겠냐만은 신념을 다 한 자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신념을 다하지도 못하고 머리를 굴려 살아남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인데 이 상황에 딱어울리는 듯 하다.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故君子事來而心始現事去而心隨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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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다. 오늘도 낮에 땡땡이 치고 비오는 바다를 구경하러 갈까? 점심 시간을 조금만 활용하면 빗방울 받아먹는 검푸른 바다를 만나고 올 수 있다.10년을 살았지만 이 곳은 아직 나의 도시가 아니다.그렇다고 유년시절의 기억이 남아있는 안양도 나의 도시가 아니다.그곳을 떠나온 시간이 그곳에 산 시간보다 길다.나의 청년기를 키워준 서울은 또 어떤가.밉지만 많은 기억과 생각을 만들어 준 곳.하지만 이젠 그곳에 적이 없다.

나는 아무데도 속하지 않는다.부산사람에게 나는 서울사람이고 서울 사람에게 나는 부산 사람이다.도시에 무슨 뿌리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있긴 하다.)...그 잔뿌리 조차 내게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한달음에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건 ....지금 살고 있는 도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한 편의 시가 많은 걸 생각나게 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의 <담쟁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고 난 이후에 해석이란 과정을 거친다.수용자의 경험,선호,이해력 등에 따라 한가지 작품은 수천만가지 형태로 재맥락화된다.도종환의 <담쟁이>를 인용한 몇 몇 사람들도 자기 위치에서 이 시를 해석했다.

열린우리당 전국여성대회인가에서 정동영 전 의장도 이 시를 낭송했고 한다.또 이번달 <객석>의 윤석화 발행인도 이 시를 인용했다.같은 시를 옮겼지만 정 전 의장과 윤 발행인은 다른 의미로 이 시를 사용한건 확실하다.전자에는 정치적 다짐같은게 있다면 후자에는 척박한 문화 시장에서 예술잡지를 경영하는 CEO의 문화적 사명감 같은게 느껴진다.

그런데 나는 윤석화 발행인이 <객석>을 맡은 이후 그 잡지를 보는게 늘 낯설다.왠지 나에게 맞지 않는 잡지를 보는것은 아닌가 하는 이질감 같은것이 느껴진다.마치 친손자 모임에 참석한 외손자같은 느낌이다.

나의 '객석유감'은 절대적으로 광고에 기인한다.윤석화 발행인이 <객석>을 인수한 후 변화는 잡지의 광고가 늘었다는 것이다.영업팀이 열심히 뛰어서 광고가 늘고 쓰러져가는 잡지를 정상화한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객석>에 실리는 광고는 보면 '해외명품' 광고들이 주를 이룬다.불가리,크리스찬 디올,샤넬..등등등.

예전이나 지금이나 클래식을 듣는 사람들은 좀 있는 사람들이 많다.단지 윤석화의 <객석>은 그걸 수면위로 드러내고 당당하게 선긋기 하는게 예전과의 차이일 뿐이다.윤석화의 <객석>은 명품광고를 유치하면서 '객석'을 고급화했다.최소한 광고지면의 차원에서는 말이다.그래서 요즘 <객석>을 펼치면 가끔 소수 부유층에게만 공급된다는 <노블리스>(병원같은데 가면 있다.)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음악을 좋아하고 연극을 좋아하는 부유하지 않지만 평범한 서민들은 그 잡지로 부터 배제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윤석화 발행인과 그녀의 마케팅팀은 <객석>의 주 고객을 부유층(또는 '상위층에 가까운 중산층'-있는 놈도 중산층 없는 놈도 중산층이라 믿으니까 이런 이상한 표현이 나온다.)에 가깝게 상향해서 설정한 것이 틀림없다.그 결과를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고급화된 <객석>은 문화예술의 저변을 스스로 축소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쉽게 말해서 좀 관심있어서 이 잡지를 보다 가도 이거 기죽어서 보겠냐는 심정 말이다.음악을 듣고 연극을 보는 것이 수 십만원이 드는 것은 아니다.조금만 줄이면 충분히 즐길수 있다.그런데 <객석>을 읽다 보면 왠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디자이너 콜렉션을 입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동작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것 만이 '예술감상의 적자'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도종환의 <담쟁이>를 노블리스 잡지가 된 <객석>의 발행인이 인용한다.모두 힘을 내자는 단순한 의미로 읽었던 것을 내가 너무 오바해서  정치적 의미로 읽은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내가 읽고 가슴 훈훈해진 도종환의 <담쟁이>가 귀족들의 오페라 안경을 통해 읽히는게 영 찝찝하다.그래서 부질없는 잡설을 늘어놓는다.투덜 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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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5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7-03-1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님>무슨 수입반인데 3만원이나..2장짜리인가 ^^ .. ..저도 요즘 음반 못듣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며칠 전에 사온 어떤 CD는 아직 비닐도 못뜯고 있습니다.이거 영....말이 아닙니다.
**님> 전 제 집에 가라앉아 있다고 주장하지요.^^ 거기가 서울이든 부산이든..
또 자유로운 것도 있어요.속하지 않는 자유로움.내가 어디 출신사람인지 저도 잘 모르는 자유로움같은거요.^^ ..요즘 세대는 점점 그래지나봐요.저만 아니라.

2007-03-16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