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잡아라
마크 카츠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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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처음 전축이 생겼던 날이 기억난다.방 한 면을 가득채울 듯 무척 거대했다.독수리표인지 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데시벨을 나타내는 눈금이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왔다 갔다 했다.작고 노란 램프에서 불이 들어오면 마치 사람의 눈과 눈썹같아 보였다.그 전축이 어떤 구성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아마 요즘 나오는 컴퍼넌트 정도였을 것이다.당시에 CD는 없었으니까 LP플레이어가 달려있었겠지....그 전축과 관련해서 가장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전축이 우리집 가구가 된 며칠 지난 뒤였다. 아버지가 무언가 꼼지락 꼼지락 거리시더니 마이크를 턱하고 잡으시고 노래를 한곡했다.어떤 곡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맘때 아버지의 18번이 <꽃집의 아가씨> (제목 맞나 모르겠다.)였으니 그 곡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노래를 마치고 잔득 기대감을 심어주고 몇 가자 버튼을 조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무반주로 듣는 '꽃집의 아가씨'

"꽃집에 아가씨는 예뻐요,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분명 이후에 나와 내 동생도 노래를 하고 녹음했을 텐데 그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처음 전축을 통해 흘러나왔던 아버지의 노래와 신기한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고 아이들보다 더 들떠 있던 아버지의 모습만 생각난다.

녹음은 통상적으로 '기록'으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진다.목소리를 기록하고 자연의 음향을 기록한다.녹음은 결국 현실의 소리를 담아서 다시 재생하는 과정을 뜻한다.저자는 이것을 '녹음의 리얼리즘 담론'이라고 말한다.즉 '녹음된 소리란 실제 소리를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라는 지배적인 관념이다.마크 카츠는 10년을 준비한 이 책에서 이 개념이 갖고 있는 다른 측면을 건드린다.바로 녹음된 소리는 녹음이라는 기술을 통해서 조정된 소리라는 것이다.그는 '포노그래프 효과'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녹음의 영향이 드러나는 방식'에 대해이야기하고 있다.다른 말로 하면 녹음이 음악가와 음악듣는 행위,음악 수용자들,그리고 음악 자체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밝히는 것이다.

마크 카츠는 1장에서 녹음과 녹음된 음악의 일관된 특징에 대해 언급한다.2장부터 등장하는 기술변화에 따른 녹음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음악환경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기초가 되는 특성들이다.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녹음과 녹음된 음악 속에 사는 현재의 음악팬들이라면 내가 듣는 음악이 어떤 인문학적인 의미를 갖는지 되짚어봄 직하다.

녹음의 유형성..이동성...가시성과 비가시성..반복성...시간 제한...녹음 장비의 수용성...조작성 등이 그 특징이다.짧게 특징만 요약하니 영 재미가 없다.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개별 예들을 다 들다가는 오늘 퇴근하기 힘들다.서비스 차원에서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먼저 '조작성' 은 녹음이라는 것이 등장한 후 음악의 접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접합은 조작의 가장 기초적인 방식이다.글렌 굴드의 예를 들면 아주 쉽다.글렌 굴드는 녹음에 적극적이었고 녹음기술의 미학적 가치에 대해 실험적인 태도를 취했다.그는 이런 식이다.그가 바흐의 평균율을 녹음한다고 치자. 프렐루드 중 하나를 아주 빠르게 녹음해본다.그리고 다음은 훨씬 느리게 연주한다.이런 식으로 여러가지 테이크를 만든다.그리고 프로듀서와 논의한다. '어떤게 나아?'  이런식으로 곡을 조각 맞추듯 모은다.그가 녹음한 테이크들을 그와 다른 방식으로 모으면 글렌굴드의 또 다른 글렌굴드를 만날 수도 있다.(물론 그의 무덤을 파고 허락을 받아야겠지만.)...조금더 알려진 건 아마 냇 킹 콜과 나탈리 톨의 <언포게터블> 듀엣일 것이다.죽은 아버지의 트랙과 살아 있는 딸의 트랙을 접합한다.라이브에서 천국에 있는 아버지를 불러오지 못하는 한 불가능하지만 녹음의 접합성은 이를 가능케 한다.

녹음의 특성중 '가시성과 비가시성'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리처드 레퍼트의 <소리의 광경>을 인용해보자. "음악소리는 추상적이고 만질수 없으며 덧없기 때문에 즉 듣는 순간 사라지기때문에 음악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착 펄만은 '연주를 할 때 청중은 반 만들을뿐 나머지 반은 본다.' 라고 했다..음악이 듣는 것만 있는 것 같지만 시각적인 원체험이 음악에서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특히 음악의 시각적 영향은 템포와 휴지부에 대한 조이기로 녹음에 반영된다.즉 녹음은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라이브처럼 긴 휴지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라이브에서는 잠시 '마'가 뜨는 것도 분위기에 어우러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극적 효과를 줄수 있다.그러나 녹음된 상태의 음악에서 아무런 소리없이 음악이 3-4초가 흘러가면 청취자들은 난감해한다.

녹음은 음악의 보편화를 이루어내었다.음악이 인종,계급,시간,그리고 공간을 넘어갈 수 있게 만든 것이 녹음의 공로이다.(물론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최소한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보편성을 담보해냈다는 것은 사실이다.녹음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는 베토벤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물론 라이브와 녹음이 다른 음악이긴 하지만.) 경상남도 산청 두메 산골에서 어떻게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을 수 있었겠는가?

녹음기술이 음악을 규정한 가장 큰 예가 디스크의 시간에 따라 재즈음악이 녹음된 시기이다.초기 78회전짜리 레코드에는 3분 가량 녹음이 가능했다.현재 디스크의 포맷이 커졌음에도 대중가요가3-5분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도 이때부터 시작된 관습으로 본다.초기 재즈 연주자들은 라이브연주에서의 긴 즉흥연주를 레코드에 맞추기 위해 녹음할 때는 대폭줄였다.빅스 바이더는 마치 까라마조프 형재들을 단편으로 압축하라는 주문같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바이올린 비브라토의 변화 역시 녹음과 관련이 깊어보인다.비브라토는 연주자들의 특성이자 연주의 실수를 감추는 역할을 했다.1920년대 이후 신비브라토는 녹음의 특성에 대한 연주자들의 적극적 대응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녹음 장비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불완전한 조음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연주자의 몸짓등 특성을 각인하기 위해 비브라토는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이후에 시대적 기술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레코드를 '원료' 로- 그라모폰 무지크,텐테이블리즘,DJ배틀,샘플링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단순한 소리를 기록하는 매체가 어떻게 기술발전에 따라 재맥락화되어 가는지 흥미진진하다.부록으로 보태지는 CD에는 해당 녹음들의 기록을 담아서 이해를 돕고 있다.요하힘과 하이페츠의 비브라토가 어떻게 변해가는지,그라모폰무지크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재활용되는지저항적인 포크음악이 어떻게 새플링을 통해 재맥락화되는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MP3와 지적재산권 문제는 한동안 논쟁이 많았던 주제이고 여전히 쟁점이 되는 부분이어서 현재감을 가지고 읽어볼 수 있다.몇 년 전에 나온 책이어서 그 사이의 변화를 조금 못쫓아가는 점은 있지만 말이다.요즘 추세는 음반회사에서 음악파일을 판매하고 CD가진 유형성과 정보,소유가치 등 까지 화일로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결코 기술결정론자가 아니라고 말한다.중요한 것은 기술의 변화와 인간이 맺는 상화관계에 있다고 결론 맺는다.마크 카츠가 말하는 세가지 결론은 이렇다.

"녹음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라이브 음악과 녹음 음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이용자가 녹음의 가치와 파급효과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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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는 아이와 함께 부산에서 1시간 가까이 떨어진 진하해수욕장까지 갔다왔다.주말 오후를 주로 밖에서 보내는데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주말 마다 나가는데는 이유가 있다..

아토피가 있는 아기들은 신선한 바깥공기를 접해야 한다.평일에는 와이프가 하루 한번은 꼭 산책을 나간다.겨울에도 아주 춥지 않은 날을 제외하곤 동네 한바퀴라도 돌았다.그러니 주말에는 함께 약간 멀리나가줘야된다.바닷가나 산 밑이나....지난 주에는 금정산 아래 부산대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녔고 비가오는 데도 범어사에 다녀왔다.그 전 주에도 어딘가 갔을텐데 ..기억도 안난다.

또 다른 이유..

주말에 집 안에서 아기를 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좁은 집안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답답한 공간이다.일단 밖에 나가면 아기가 주변에 신기한게 많아서인지 훨씬 온순해진다.두리번 두리번....또 자동차를 타고 나가다보면 이내 잠이 들기도 한다.

 12시에 나가서 저녁 무렵 들어왔다.오늘은 바닷가에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래 서성이지는 못했다.돌아오는 길에 아기는 차 안에서 잘 잤다.오는 길에 대변항에서 오징어 두 마리를 사서 와이프랑 나누어 먹었다.조금 남았길래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맥주 사와서 차 안에서 마셨다.엘리베이터 타고 이러다 보면 아이가 깰까봐...자는 틈을 이용하여 차 안에서 먹는 맥주도 괜찮았다.

저녁8시에 뉴스를 봤다.

한미FTA 반대 상경집회가 있었나보다.서울 종로일대가 한동안 마비되었던 듯...지역에서 올라가는 농민들을 경찰들이 톨게이트나 공항에서부터 원천봉쇄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이 키우느라 험한말을 담지 않는 와이프가 뉴스를 보다가...

"으이구...노무현 도대체 왜저래...저런 저런 십장생들" 이라고 했다.

조금 귀엽게 했다.^^  FTA 앞 기사는 북미관계 개선,남북정상회담 4월쯤 논의가능 뭐 이런 기사들이 나왔다.한동안 평화체제와 FTA의 딜이냐 이런 말들이 나왔는데 뉴스만 보면 그래보이기도 한다.

와이프가 그런다.'사태가 저 지경인데 ..왜 사람들은 가만있지?'

그래서 나는 뭐라 뭐라 리뷰 쓸때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대충 무슨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사실 마음 속에 남는 더 큰 마음은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부산에 있고 ..서울에서 있었어도 아기때문에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그러 저러한 변명을 대도..나는 미안하다.나는 졸속적으로 처리되는  '한미FTA'에 반대한다.그렇지만 아직 반FTA 시위에 참여하지 못했다.그저 산별에서 3월말쯤 거국적인 반FTA 파업이 있다고 하니 그것만 기다리고 있다.산별 노조의 지도부는 한동안단식투쟁을 했었는데 아마 지금쯤은 접었을 것이다.물론 단식만 접었지 시위는 계속한다.대개 죽치고 앉아 있는 시위이긴 하지만.

물론 내가 글을 쓴다거나 다른 이들과 이야기한다거나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한다거나 할 때 나는 내 '신념'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한다.또한 직간접적으로 반FTA진영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그런데 그런 거.....다 하는 거다.그게 뭐라고...

졸속으로 추진된 한미 FTA는 분명히 국민 개개인의 삶에 직간접 영향을 미칠 것이다.그런데 왜 뉴스에 나오는 시위대에는 일부 노동자,일부 농민,일부 사회단체,극소수의 학생들 밖에 없을까...그냥 이대로 끝나고 말것인가..

나는 계속 미안하다..몇 십년 동안 그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논게 미안하다.

와이프가 그런다.

'촛불 시위같은 거 하면 예찬이랑 같이 갈까? 최연소 시위 참가 기록세우는거 아닐까? 생후8개월 한미FTA반대 머리띠를 두르다. '

진짜 8개월짜리 아기까지 나가야되냐? 응!!  아...미안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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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1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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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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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대녕'이 아프다.

윤대녕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가슴 한 켠에 통증이 느껴진다.통증은 바늘처럼 날카롭기도 하고 무거운 망치처럼 묵직하기도 하다.간헐적인 통증에 자꾸 가슴에 손이 간다.긴 한숨과 더불어...나의 눈은 자꾸 방 한 구석을 바라보거나 창 문 밖을 멍하니 내다보게 된다.

아픈 곳에는 더 자주 손이 간다.윤대녕의 소설<제비를 기르다>는 다시 아픈 곳을 건드린다.이제 나의 것이 아니라고 믿었넌 그 '상처'들이다.

어린 시절 들었던 '바늘' 이야기가 떠오른다.바닥에 바늘이 떨어졌다.아버지는 어두컴컴한 방을 헤집으며 바늘을 찾고 계셨다.엉거주춤 기어다니며 바늘을 찾는 아버지를 나는 멀뚱 멀뚱 바라보고 있었다.손으로 바닥을 몇 번 쓴 끝에 한 줌의 먼지와 함께 바늘이 모습을 드러냈다.아버지는 바다 밑에 가라앉았던 침몰선에서 보물을 건져낸 듯 뿌듯해 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작은 바늘은 말이지.아주 위험해.그냥 있다가 밟고 넘어가면 몸으로 들어가서 혈관을 타고 따라 돈다고..'

바늘이 혈관을 따라 타고 돈 다는 것이 사실은 아닐것 같다.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붉은 혈관을 따라돌아다니는 은빛 작은 바늘을 생각하고 몸서리를 쳤다.

'윤대녕'은 사라진게 아니었다.나는 스스로 날개를 꺽고 내려앉았다고 믿고 있지만 '그'는 은빛 바늘이 되어 내 혈관을 돌고 있다.잊고 지낼 때가 많은 것은 그 바늘이 자연선택하여 혈관의 길을 알아내고 벽에 부딪히지 않고 잘 돌았기 때문이다.혈관 벽 역시 바늘이 주는 통증에 어느정도 익숙해 져 있기도 하다.하지만 몸에 들어간 바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나는 '윤대녕'이 아프기 때문에 그 말 이외에 사실 덧붙일 말이 없다.아픈 사람에게 그 통증의 입체적 느낌을 설명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계란같은 통증 하나가 몸에 들어가 있는 느낌.나와 똑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만이 그 미세한 통증 아닌 통증을 느낄 수 있다.11월의 바람같은 그 느낌말이다.

윤대녕의 이야기는 비슷 비슷하다.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에도 윤대녕스러운 정서는 이어진다.윤대녕이 여기까지 왔다...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내게 윤대녕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책 후기에 그 스스로도 어떤 벽에 부딪혔음을 말한다.그 벽을 넘었는지 아니면 우회했는지 모르겠다만 그 결과물이 이 책인 것만은 사실이다.이 책으로 윤대녕이 더 성숙했느니 다른 길을 보았느니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내게는 그가 '윤대녕'답게 그에게 주어진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길 너머를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윤대녕의 인물들에서 어떤 '신비성'을 읽는다.하지만 아픈 나는 윤대녕에서 '사실성'이 느껴진다.통상적인 개념의 '리얼리즘'을 말하지는 않는다.)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 속에 있다.

4-5년전 좋아하던 형님과 대학로에서 술을 마셨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형님은 이미 길 너머를 갔다 온 아니면 이미 길 너머와 길이 하나가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형님이 내게 그랬다.'넌 참 힘들겠다 싶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널 보면 늘 줄타기 하고 있는 사람이 생각난다.왜 있잖아.서커스 같은데서 균형잡고 줄위에 서 있는....보통 사람들은 8할 정도는 땅에 발 붙이고 있고  나머지로 허공을 그리워 하지..그게 정상적인 거고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다수를 차지하지.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부유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부유 자체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지.그런데 널 보면...진짜 위태 위태하면서도 줄타기를 잘하고 있어...이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딱 50 대 50이야. 그래서 널 보면 참 힘들겠다 싶다.차라리 어느 한 쪽이 무거우면 편안해지는 법인데 말이지.그런데 아마 넌...내가 아는 사람들 처럼 영원히 부유하지는 않을거야...대신 말이지. 네가 내려앉았다고 떠다니는 사람들,그리고 아직 내려앉지 않은 사람들을 못났다거나 이상하다거나 정신 못차렸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면해. 그런 사람을 봐 왔거든.자기가 내려앉더니 지나온 자기의 과거를 부정해버리더라고...쓸모없는 시간낭비나 주체못하는 낭만성정도로 취급해버리더라고'

나는 느낀다.이제 '윤대녕'이 나의 것이 아님을.그렇지만 알고 있다.여전히 '윤대녕'스러운 것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럼 나머지 제비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일부는 생을 다해 죽고 나머지 제비들은 또다른 곳으로 가겠지' .... <제비를 기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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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05 12:46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감동적인 리뷰에요^^
3월, 힘차게 시작하시기를...

2007-03-05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산역 노숙인들은 오늘 밤 11시 이후 부산역내에서 잠들기 힘들어진다.부산역에서 방범과 승객서비스를 이유로 1,3층을 심야시간에 폐쇄하기 때문이다.처음에는 건물 대부분을 폐쇄하려했으나 지나치게 공격적인 방식이라는 여론이 있어서 양보한게 그 수준이다.

부산역에는 대략 300명 정도의 노숙인이 산다.특히 매표장 오른쪽,즉 관광안내소와 동전 넣는 컴퓨터 뒤쪽은 거의 노숙자들이 점령을 한 상태이다.가끔 서울가려고 기차를 타는데 그때보면 대낮에도 2-30명의 노숙자들이 고개를 떨구고 잠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산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기 때문에 겨울철에 들어서면 부산역 주변으로 노숙인들이 늘어난다.뉴스를 검색하다보면 지난 12월정도 부터 전국에서 기차를 통해 노숙인들이 부산역으로 몰려들었다는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노숙인들이 늘어나면서 음주관련 범죄나 승객들에 대한 위협등이 문제가 되어 왔다.최근에는 자원봉사 여대상이 노숙인에게 성폭행당하는 사건까지 생겼다.이러 저러한 여론이 노숙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10여년 동안 노숙인들과 동거동락해오던 부산역이 뭔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에서 처음 만나는 노숙인들의 모습이 부산의 이미지를 훼손시킨다.심야시간 역무원들의 안전문제도 심각하다.철도공사가 복지기관은 아니다,결국 중요한것은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인데 노숙인들로 인해 고객들이 불편해 한다.. 등등 "  이런 저런 주장들이 시민들에게 어느정도 먹혀들고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대개 저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런데 정작 그들은 노숙인들을 별로 만나보지 않았다는 것이다.그저 지나가면서 복장이 꼬질꼬질하고 냄새나고 왠지 가까이 오면 뭔가 묻을 것 같아 거리를 두게 되는..그게 그들이 노숙인의 정체성에 대해 갖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노숙인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면 알라딘의 평범한 사람들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좀 갑갑하며 아쉬운 것이  '노숙인'을 그러한 고정된 이미지 속에서 하나의 집단으로 파악하는 것이다.이건 지독한 편견이며 무관심과 무식이 만들어낸 가짜 '진실'이다.결론 부터 말하자면 노숙인은 결코 동질한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사람들은 노숙의 발생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무능,자력의지의 부족등 만을 이야기 한다.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만 이는 원인이라기 보다는 결과에 가깝다.97년 이후 우리사회에 늘어난 노숙의  원인은 당연히 사회경제적인 것이다.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우리사회에서 가진것 없고 배운것 없는 사람들이 일자리 잃고 그로 인해 가족해체되고 절망감이 깊어지고 이러다 보면 금새 노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노숙의 길에 들어서면 이제부터는 노숙을 하는 행위가 자력의지 자체를 떨어뜨리는 것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장기노숙자로 전락하게 만든다.'멀쩡한 사지두고 저게 뭐하는 짓이냐'는 지적은 그들의 심리적 외상과 사회경제적 처지를 외면한 무책임한 말이다.

결국 노숙 문제의 해결은 노숙자 개개의 상황에 따른 개별처방이 길이다.알콜의존성 노숙자에게는 알콜치료를,정신병력이 있는 노숙자는 정신과 치료를,의료지원이 필요한 노숙자에게는 수급자선정을,직장이 필요한 노숙자에게는 일자리를...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그런 말을 한다."에이 그건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거지요?" ... "그래 너는 노숙자 문제에 대해 별 생각도 안해보고 그냥 느낌만 갖고 노숙자를 규정하고..가장 단순하게 배제하는 방식만을 기억하고 있구나.뭘 알고 말하진 않아도 되는데 뭘 생각해보고는 이야기를 해라..." 라고 이야기해주려다가 그냥 '피식'하고 말았다.실제 사회복지 관련단체에서도 노숙자지원센터를 확충하고 아웃 리치 서비스를 시도중이다.(OUT REACH는 쉽게 말하면 쉼터에서 기다리는게 아니라 찾아나서서 실태파악하고 꼬셔서 이런 저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쉼터 처럼 내부규율이 강한 것이 아닌 그냥 와서 대충 사용내용만 적고 자다 나가도 되는 잠자리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드랍인(DROP IN) 형태의 숙소같은 것이다.97년 이후 마구잡이로 대책을 만들던 노숙자 정책도 이미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다.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모르니까 '이론적' 으로나 가능하다고 속단해버리는 단순경박은 단지 그 친구만의 문제도 또 이 문제에만 해당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노숙자중에 어떤 사람들은 농담처럼 자기는 A급 노숙자고 술먹고 하루종일 비틀거리는 사람들은 C급 노숙자라고 이야기를 한다.그런 놈들때문에 자기들까지 도매급으로 넘어가서 죽겠다고 한다.거기에 그런 놈들때문에 예비범죄자 처럼 인식되고 잘 곳 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원망한다.

실제  노숙자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단 한번도 노숙자들과 이야기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그 '이야기'에서 노숙자들이 역 앞에서 빵사먹게 돈달라고 이야기했다는 수준의 것은 제외하자.제발) ....그렇다고 먼저가서 이야기해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굳이 뭐하러 대화할 필요까지 있겠는가? 보통사람에게도 그러지 않는데 굳이 노숙자라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또한 결코 쉬운 일도 아니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노숙자에 대한 어떤 어떤 이미지,어떤 어떤 생각들을 잠시만 중단하라는 것 뿐이다.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만 잠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아마 그러한 행위가 어떤 입구가 될지도 모른다.

그나 저나 오늘 밤 쫓겨난 부산역 노숙자들은 어디가서 잘까? 아직 밤에는 추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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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3-0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께서 예전에 올리셨던 글이 생각나네요. 남대문 노숙자와 서울역 노숙자. 말 걸어보는건 미션이 아닌 이상 쉬운 일은 아닐듯합니다. 저는 저한테 피해주는 노숙자 아닌 이상 ( 냄새가 너무 난다거나, 지하철 문을 막 치고 다니면서 위협한다거나, ) 호.오.가 없네요. 잘 모르겠지만, 노숙자한테 얘기 거는...건,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하루(春) 2007-03-01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달쯤 전 부산에 다녀와서 그런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몇년 전 서울역에서 자던 노숙자가 동사한 사고가 있었죠. 무서워요.

드팀전 2007-03-01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노숙자에게 말 걸 필요없습니다.평범하게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 걸지 않는데 뭐하러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그건 당연한 일입니다.대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는거지요.그리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배제'가 아니라 '호의'를 가지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루님>서울역 노숙자는 거의 전국구 형태가 되었다지요.지역별로 파벌도 생길 정도라고 하더군요...아무리 어떤 정책을 펼쳐도 노숙자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들을 위한 그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작업들은 이어져야할 것입니다.노숙자 중에는 정말 무서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닐겁니다.

조선인 2007-03-02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숙자들도 사람사는 사회와 똑같아 부지런한 사람도 있고, 게으른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개개의 사정은 다 다른데 사정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없는 이 사회의 빈부격차가 그만 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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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음반이야기를 한다.한동안 그달 그달 구매했던 음반을 올렸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것도 좀 귀찮아졌다.여전히 한 달에 10여만원을 음반 구매비로 쓰고 있다.그러나 들을 시간은 예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집에 들어가면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음악은 시간예술인데 그 시간이 없다.음악을 압축해서 mp3로 만들수는 있지만 압축상태로 들을 수는 없는 법이다.음악은 언제나 실시간이다.실제 음악 듣는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음반 구매량은 하방경직성을 띠며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지난 몇 달 간 그걸 실감하며 음반 구매를 확연히 줄여가고 있다.음악이 중심이 아니라 음반이 중심이 되어버리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본말전도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은 봄 출근길 같았다.평소처럼 또 늦게 집을 나섰다.와이프 밥먹는 동안 아기 안고 있다보면 늘 늦는다.라디오에서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음악이 나왔다.봄에 참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기타 음악은 음량이 작다.대신 피아노와 함께 작은 오케스트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악기이다.특히 기타에는 현악기 특유의 날카로움보다는 인간의 손이 닿는 포근함이 있다.그래서 봄에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존 윌리리엄스(G)와 이착 펄만(Vn)의 파가니니 작품집.모래시계의 혜련의 테마도 들어 있다.

괴란죌셔(G)와 길샤함(Vn)의 슈베르트 편곡집,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가곡을 위한 편곡.괴란 죌셔의 비틀즈음반도 요맘때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기타와 플루트를 위한 갈랑트 뮤직...봄이 되면 꼭 듣는다.예전에 샘플러CD에 포함되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음반이다.줄리아니의 대소나타 연주를 들으면 봄 꽃 사이에 묻혀있는 느낌이 든다.

 안토니오 라우로는 베네주엘라 작곡가이다.스페인의 기타음악이 남미정서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낭만적인곡들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흥겹다.

줄리아니 작품집. 왠만한 연주가들은 거의 녹음을 한번씩 했다.최근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데이비드 러셀은 수선화처럼 그윽하다.대서곡,로시니아나 같은 로맨틱한 곡들이 듣기 아주 편안하다.

마누엘 퐁세는 멕시코 출신 작곡가이다.바흐의 영향을 받아서 24곡의 기타 전주곡을 만들었다.바흐의 엄격함에 살짝 봄바람이 실렸다.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테너 피터 슈라이어의 노래다.원곡은 피아노 반주이나 이 음반은 기타 반주로 되어 있다.효과는? 음악적으로 보면 피아노의 감정처리만 못하다.그러나 봄의 뉘앙스를 전달하는데는 훨씬 효과적이다.봄밤 처럼 아늑하면서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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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2-2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와 바이올린으로 슈베르트 연주하는 음반 있었는데, 전 겨울에 그 음반 듣고, 우아- 너무 따뜻하다 했었어요. 그러고보니, 그 느낌은 봄에도 잘 어울려요.

프레이야 2007-02-27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손이 닿은 포근함, 그래서 기타는 어느 악기와도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가 봐요. 드팀전님, 정말 봄이 왔네요^^

2007-04-12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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