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적 가치 - 세계의 지식인 16인과 하버드생의 대화
브라이언 파머 지음, 신기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오늘의 세계적 가치>는- 한국 어머니들의 꿈-하버드 대학의 '개인의 선택과 전 지구적 변화'라는 강좌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책의 내용으로 유추해 볼 때 강의는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졌다.그렇기 때문에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뷰형식'의 사회과학서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진보적 지식인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노엄 촘스키,하워드 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종교와 윤리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하비 콕스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클린턴 행정부를 떠난 로버트 라이시도 얼핏 떠오른다.그 외에도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경제학자 줄리엣 쇼어,법학자 라니 구니어,외교관 스와니 헌트,의사인 제니퍼 리닝과 폴 파머.16명의 등장인물 면면이 한약방 약재만큼이나 다양하다.책을 꾸리는 과정에서 적절한 배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런 안배 덕택에 독자는 세상이라는 '코끼리'를 비록 어두운 눈이지만 더듬거리며 다양한 각도에서 만져 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6명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또 몇 몇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는 약간 씩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그럼에도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다.또 한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들이 '실천적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면서도 구체적인 현실세계에 산다.결코 들뢰즈니 푸코니 지첵이니 하면서 '책 세상의 군주'로 살지 않는다.(아마 그들의 공부가 그런 철학에 미치치 못했거나 ,배움의 극에 다다르지도 못했는데도  성급하게 나서서 그럴 것이다.그러나 나는  발효를 기다리다 관뚜껑 열어야 확인할 수 있는 지식보다 이런 '못미침'-그런데 과연 누가 그들을 어느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랴?-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나 역시 공부가 부족해서....)

<오늘의 세계적 가치>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다양하다.미국의 이라크 침공,코소보 등 국제 분쟁지역에서 미국의 역할과 문제점,신자유주의,소비자본주의의 폐해,페미니즘의 성과...등등.여러 다양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 강의의 핵심을 한 줄로 설명한다.

"우리의 풍요를 보장해주는 불평등한 대우에 주목하자."

다양한 주제에 대한 좋은 질문과 답변이 많아서 한 두가지만 이야기 하긴 아쉽다.신자유주의와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문제도 그중 하나이다.<세속도시>로 유명해진 종교학자 하비콕스는 이렇게 답변한다.

저는 시장이 단지 은유로서 신이라고 제시하는게 아닙니다.시장이 이 세상 많은 곳에서 믿음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현상학적으로 그동안 종교가 가장 흔하게 하던 걸 지금 시장이 하고 있습니다.(시장은)종교로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그러니 사실은 종교들 사이의 다툼인 겁니다.이건 신들의 전투입니다.

하비 콕스는 자신이 반시장주의자가 아님을 말한다.

시장은 어떤 문화 또는 사회에도 필수적인 제도입니다.여기서 제가 비판하는 건,시장이 전체 사회의 우월적인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는 기구,곧 신으로서의 시장으로 부상하는 것입니다...대체로 종교적 제도들은 그저 이 거대한 세력을 따라가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 삶과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지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그렇다.기업화 되어가는 한국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인간의 가치'에 대해 별로 말을 해주지 않는다.그들이 이미 '종교자본'으로 코묻은 돈 꼬박 꼬박 일요일마다 걷고 있으니 할 말도 없을 게다.불교도 마찬가지다.이미 딴 세상가신 선사들의 글은 모두 물질화된 삶을 버려라..라고 이야기하는데 어제도 오늘도 불전함에는 돈이 수북이 쌓인다.절에 가면 '기와불사'하라고 꼬시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은지...최소한 우리나라에서 종교는 친자본주의적이고 최소한 문제의식도 가지지 않는다. 일반 사회보다 종교가 먼저 자본의 신을 받아들인 듯 하다.

<과로하는 미국인>이라는 책을 쓴 경제학자 줄리엣 쇼어,그녀는 실증적인 조사를 통해 2차대전 이후 미국인들의 노동시간이 점증적으로 늘어났음을 입증했다.(아무리 그래봐야 한국인들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줄리엣 쇼어는 '일과 지출'모형을 통해 노동과 여가 그리고 소비의 상관관계를 파악한다.

돈과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는 그들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노동)에 맞춰져간다는 겁니다...체제는 여가시간을 주지 않고 대신 돈을 줬습니다.사람들은 돈을 쓰고 이런 지출에 길들여졌습니다.

새로운 소비주의 시대...돈이 점점 더 사람들의 기초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는 쪽에서 사치재 소비와 사회적 지위 유지를 위한 소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소비를 선호한다는 표준적인 주장을 뒤집어 엎은 것이다.쇼어의 말을 정리하면 결국 여가대신 돈을 주고 그 돈으로 소비를 가속하시켜 기업을 움직인다는 것이다.그녀는 이 과정에 TV와 매체들의 광고가 이를 부추기는 성장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말은 이어진다.

텔레비전과 그 밖의 매체를 더 많이 접할 수록 더 소비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이 아이들은) 돈과 물건,유명 상표에 더 많이 신경 쓸 소지가 크고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더 소유하고 있는지 신경쓸 가능성도 큽니다.

쇼어는 이런 질문에 대해..

잠깐만요.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면 어떻게 건강한 경제를 유지하죠?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내일 신용카드를 모두 잘라버리고 더 온건한 소비지출을 하면서 살기로 결심하면....그러나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고 보는건 비현실적입니다.....(결국) 노동시간을 점차 줄이고 노동시장에서 속도를 낮추게 되면 실제로 혼란이나 실업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다른 형태의 경제로 옮겨 갈 수 있습니다.

그녀는 훨씬 거대한 경제체제 자체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일종의 '일자리 나누기' 프로그램같은 형태로 보인다.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걱정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는 않는다.비용이 많이 발생하니까...(물론 정규직의 경우 줄어드는 노동시간에 대한 임금 희생도 어느정도 감안해야한다)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그녀 덕분에 앞으로는 '세계화' 또는 '반세계화' 라는 말을 쓰지 않을 듯 하다.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규격을 모두에 적용하는 과자 절단기 모형입니다....신자유주의 또는 프랑스인들이 부르는 대로 하면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운동에서 세계화라는 단어 사용을 거부하는 것은 의도적인 행위입니다.이는 전 세계적인 경제정책에 대응하는 것이지 세계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닙니다.문제는 세계적이라는 사실이 아니고 정책입니다.그리고 이 정책을 전 세계에 강요한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라니 구니어는 인종,계급,빈부 차이가 사회적 계급재생산과 어떻게 관련있는지 30년이 넘는 대학 입학생 성적 분석과 사회진출 동향을 조사한다.그녀는 피터 색스의 볼보효과를 입증하는데 ..결국 '어떤 학생의 점수를 안다면 그 학생의 대학 1학년 성적을 예측하는 것보다는 그 학생 부모의 재산을 더 잘 예측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부가 교육으로 재생산 되는 과정을 입증하는 것이다.라니 구니아는 오스틴 텍사스 대학의 '10% 입학제도'를 긍정적으로 본다.쉽게 말하면 고교간 학력 격차를 무시하는 것이다.대신 각 학교의 상위10%에게 입학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양한 인종,계층,빈부차는 출발 선에서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 암암리에 적용하는 고교등급화와는 다른 방향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갖기도 한다.발칸 분쟁에 대한 미국의 폭격에 대해 하워드 진 같은 인물은 인도주의 개입을 인정하지만 미국은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는 현실을 드러 비판적이다.반면 통제불가능한 국제 분쟁에 인도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느 사람도 있다.법학자 마시 미노,외교관 스와니 헌트 같은 경우이다.노동문제와 관련에 미국내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즉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도 로버트 라이시와 줄리엣 쇼어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라이시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노동자들 간의 불평등을 해소해주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해 쓰면서 꼭 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현장에 서 느끼는 실패감 또는 환멸등에 대한 이야기였다.이건 진보의 실패라며 부둥켜 안은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또는 인간이 이기적 동물이며 경제문제에 국가가 관여하면 북한된다고 믿는 '시장신'을 섬기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노암촘스키(언어학자)>60년대를 회상해보세요.무엇이 없었는가.여성운동이 없었습니다.환경운동도 그렇고요.사실상 반전 운동도 없었습니다.이 모두가 전쟁을 여러번 겪은 끝에 60년대 말에 나타납니다.제 3세계 연대운동도 지구적 정의실현운동도 없었습니다.우리 삶의 일부인 이 모든게 그냥 없었습니다.이런 변화는 지난 40년 동안 나타났는데,사람들이 환멸에 빠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난 포기했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때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게 확실합니다.

로버트 라이시(정치학자)>..미시경제학이 생략한 것은,우리는 머릿속에 공통 선을 향한 소망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소망만 지닌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것,세계를 위해 바람직한 것에 관한 이상도 지니고 있습니다....

나오미 클라인(언론인)> 문제가 너무나 거대해서 그냥 집에 앉아 텔레비전이나 봐야겠다는 느낌에 압도당할 때 사람들은 시급성을 잃게 됩니다.그래서 작은 것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개인적으로 시작하는 거죠.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치는 어떤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런 거대한 쟁점들과 이 모든 사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만 여기서 그치는 건 아닙니다.이걸 입구로 이용해야하고 이어서 이런 부정행위가 가능하게 해주는 정책과 권력 체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니퍼 리닝(의사)>여러분의 모든 상호작용 속에 불편함을 날카롭게 품는 것이 제가 보이엔 지금 이 세상 내 존재의 핵심입니다......(하버드생)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을 위해 치른 모든 희생과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기 위해서 그동안 한 모든 일은,이 자리에 오는게 그리고 여기서 성공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그 노력을 깊이 존경합니다만,인생의 마지막에 여러분이 "이 일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어"라고 말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폴파머(의사)> 제가 불가향력에 압도당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하던가요?저는 완전히 압도당했음을 알게 됐습니다....그러나 우리 일은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이 일은 중단 될 수 없습니다...아무리 상상을 해보아도 저는 홀로 일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우리 가운데 한 명이 완전히 압도당했다고 느낄 때,그렇게 느끼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팀 내부에 있게 마련입니다.제 동료들과 저는 서로를 이렇게 상기시킵니다...당신이 압도당했다고 느낄 때 그렇게 느끼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 말입니다.그리고 당신이 봉사하고 있는 그 사람들은 결코 압도당했다고 느끼거나 절망에 빠지도록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 다는 것 깨닫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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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2-19 23:50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저도 그 책을 찾아봤습니다.나온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절판이더군요.

드팀전 2007-02-20 09:13   좋아요 0 | URL
아...이 양반이 아침 부터 염장을 지르시네... 잘 나가다가...끝에가서 놀리고 있는거죠...당장 내놓으시오.^^ (아님 구할 방법을 제시하시오)
 

   <오늘의 세계적 가치>라는 책을 보다가 줄리엣 쇼어의 책에 눈이 갔다.그녀의 인터뷰 내용중 자신의 책을 잠깐 언급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래서 한 번 찾아봤다.2004년에 나온<본 투 바이> 이다.행여 번역이 안돼있는 건 아닐까 했는데...국내에 출판되어 있다.

오..반가와라.번역판의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옮겨놓았다.표지 그림이 아주 귀엽네.흔히 <엔젤 산업>이라는 것이 호황업종임은 익히 알고 있다.아기가 생기고 나니 아기와 관련된소비가 부쩍 는다.

우리 아기는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그런데 처음에 두번은 반신반의하는 상태여서 그냥 남들처럼 했다.어떤 주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그랬다.

"주사가 두 개가 있어요.뭐 효능은 별 차이가 없는건데..하나는 3만원 하나는 7만원짜리에요....진짜 효능은 별 차이 없는데..뭐 조금 있다면 부작용에서 조금 덜 하다는 것 정도.그것도 몇 만분의 1정도 차이에요..어떤걸 맞히실래요? "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왜냐?...이미 이 이야기를 동료에게 들었기 때문이다.같은 병원이 아니었음에도 정말 토씨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이 이야기했다.나는 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속으로 "오..요고보게...웃기네..그래 다음은 부작용에서 약간 차이있다고 할꺼지..그것도 몇 만분의 1..그리고 결국 선택은 부모님이 하는거라고 할거지....."  의사는 정말 그렇게 말했다.^^

이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비싼걸 맞혔다.4만원이 아깝지만 아이에게 4만원 아끼려는게 왠지 미안해서였다.그리고 행여......의사의 마케팅은 이 두가지를 정확히 노리고 있다.부모의 자식에 대한 애정과 부모의 공포심...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만..이 책에서 줄리엣 쇼어는 아이들을 영리화하는 것.그리고 아이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의 성장,그 결과 아이들이 성장하며 소비주의문화에 물들어가는 것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여기에 TV보기는 큰 역할을 한다.아이들의 소비를 독려하는데 TV광고만한게 없을테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아이의 두뇌발달,정서발달,신체발달에 신경을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좋은 것도 먹이고 좋은 것도 읽히고....그러나 또 중요한 것이 아이가 어떤 문화에 탐닉하는 가를 관찰하는 것이다.그것이 나쁘다면 그렇게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도 당연히 부모의 일이다.어려서 소비문화에 쉽게 노출된 아이들은 어른이 되도 별반 다르지 않다.상품의 소유를 중심으로 가치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분명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유아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도...또 소비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듯 하다.

내가 먼저 읽어보고 나서 ...좋으면 더 추천해야지.일단 이 책이 있어서 다행이다.

>>> 쥴리엣 쇼어를 알게된 책은 요즘 보고 있는 이 책이다.

쥴리엣 쇼어는 보스턴 단과대학 사회학 교수이다.<과로하는 미국인>이란 책에서 미국의 노동시간이 2차대전이후 가장 길어졌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어 미국 사회를 술렁이게 했다.이 책의 원제는 <글로벌 밸류 101> 세계의 지식인 16인과 하버드생의 대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하버드 종교학자 브라이언 파머가 그의 수업시간에 초대한 학자들과 학생들의 질의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참여자는 노엄 촘스키,하워드 진,하비콕스,로버트 라이시,그리고 줄리엣 쇼어 등이다.....책은 쉽게 읽히고..질문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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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랑스'...  멋진 프랑스어다..한국 사회가 타인와 다른 생각에 대해 불관용적인것은 일정 정도 사실이다.토론의 문화보다는 지시의 문화가 주도적이기 때문이다.우리 역사를 돌려봐도 우리의 '아비투스' 속에 이런 소인은 다분하다.식민주의,한국전쟁,군사정권,광주살해 정권.. 폭력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런 공론의 장은 '빨갱이'들이 나 하는 짓이다.어르신들의 우스갯 소리 그러나 또 의식을 규정하고 있는 말 중에 이런게 있다. "말 많으면 빨갱이" 결국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정치적 이유로 의해 배제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형식적 민주화라도 어느정도 이루어졌다.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무수한 담론과 토론을 양산하는 공간이 되었다.한켠에서는 한국내에 군사쿠데타가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로 전국적인 인터넷 망을 들기도 한다.비록 사이버 공간이지만 정보와 담론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토론이 이루어지다보면 여러가지 주장이 난무한다.토론이 무언가 중도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토론은 토론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를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만은 없다.토론의 결과가 서로를 이해하고 일정정도 뜻을 꺽어 중도를 찾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잡한 수준의 '합리적 토론'에 대한 강박이다.

토론이든 논쟁이든 싸움이든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그런데 '똘레랑스'를 왜곡이해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똘레랑스'를 요구한다.'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어차피 한표니까 서로 똑깥이 이해해야된다'는 식이다. 불행하게도 이건 '똘레랑스' 긍정적 의미를 왜곡하는 짓이다.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이 '강자의 똘레랑스'인가 '약자의 똘레랑스'인가 하는 점이다.강자의 똘레랑스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틀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또는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똘레랑스'를 말한다.거칠게 말하면 '나의 기득권은 기득권이고 너의 빈곤은 너의 빈곤이다.똘레랑스하자...'이런 논리다.'똘레랑스'를 프랑스 강아지 이름으로 바꾸어 놓는 처사다.

'똘레랑스'가 거부하는 유일한 것은 '똘레랑스'를 구현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적 상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대충 '관용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는 '똘레랑스'도 '똘레랑스'할 수 없다는 뜻인 듯 하다.결국 '앙똘레랑스'라는 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똘레랑스'는 종이호랑이요 논리적 무지랭이다.

내가 '앙똘레랑스' 하는 것은 한 두개가 아니다.내 인품이 부족해서 모든 것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일게다.그렇지만 '모른척' 을 위한 '자기변명'을  너그럽게 감싸안아주는 자기만족적 인품이라면 그다지 추구하고 싶지는 않다.내가 '앙똘레랑스'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은 '사회진화론'이다.요즘은 우리사회에 메스를 대는 글쟁이들이 이에 대한 문제를 많이 지적해서 어느정도 공감을 얻는 분위기다.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고만고만한 고등학생들에게는 이게 영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그리고 현재 내 주변 동료들도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의문의 예는 한일관계 때문이었다. 위안부 관련된 기사가 가끔식 나오고 있던 시절로 기억한다.그런데 그 때 들리던 이야기중에 "아..나쁜 일본새끼들....우리가 힘이 세서 쪽발이 기집애들을 전부 먹어버려야 하는데 "....  나는 갑자기 궁금했졌다.. "만약 그러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똑같은 거 아닌가?...우리가 그러는건 괜찮고 일본애들이 그러면 나쁜건가? 한국사람들이 일본을 욕하는 것이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는게 나쁘다는 뜻에서 그런건가 아니면 우리가 식민지가 되어서 즉 우리가 가해자가 되지 못해서 그런건가?...만약 우리가 일본을 점령하고 총독부만들고 그랬으면 일본처럼 하지 않았을까? "(이건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대게 애들 답은 그랬다. ... 우리는 일본처럼 하진 않았겠지..과연그랬을까?)

나중에 알았다.그게 '사회진화론'이다.

사회진화론은 '강자 독식'시스템이다.어차피 인간은 능력이 제각각 이고 그에 따라 잘난 놈이 잘 먹고 못난놈 부리는 건 당연하다.이걸 사회로 확대한게 '사회진화론'이다. 이 논리를 대입하면 일본의 한국식민지 지배는 윤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전혀 문제될게 없다.(늘 논리를 앞세우기전에 논리의 지향에 대해 고민해보라는게 그래서다.) 개화기 선각자들은 거의 대게가 사회진화론에 바탕을 둔 '부국강병론'자 였다.또한 제국주의 침력도 '사회진화론'의 내피를 입고 있었다.당시의 시대적 한계가 그랬다고 치자...박노자처럼 그때 그렇지않았으면..하는 것은 이미 때늦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개화기로부터 10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우리 사회는 '사회진화론'의 망령이 주인노릇을 하고 잇다는 것이다.이게 현실 정치의 구동방식과도 유관하고 또 인류의 작동방식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결코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게 전부인가? 세상은 힘없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굴러왔다.그들의 목소리는 늘 들리진 않지만 조금씩 사회를 움직여왔다.내가 지난 주 토요일날 쉬게 된 것도 다 그때문이다.내가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하지 않고 법적으로 40시간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그때문이다.찾아보면 우리 주위에 작은 목소리와 분노가 바꾸어 놓은게 얼마나 많은지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땅 밑에는 새싹이 꿈틀 꿈틀 거리고 있다.눈에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누구나 다 안다.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서 세상을 연둣빛으로 만든다는 것을....

'못난 놈들의 징징거림'이라는 풀 뜯어 먹는 소리를 한다는 것은 온힘을 다해 올라온 새싹들에게도 미안하다.지금 내 주변이나 또는 내가 모르고 있는 어떤 곳에서도 새싹들은 움직인다.나는 그 '징징거림'을 못남과 부덕의 소치로 몰아가지 않겠다.나는 오히려 그 '징징거림'에 확성기를 대주고 싶다.나는 '앙똘레랑스'한다.

당신은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풍요를 보장해주는 불평등한 대우에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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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1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거리를 던져주어 감사합니다.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은 못하겠고, 의미깊은 거리를 주셨습니다. 복거일의 논변을 중심으로 살펴봐야겠습니다. 복거일의 사회적 목소리는 사회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거 같으니까요.

드팀전 2007-02-14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나요// 님께 드리는 말씀은 아니었는데..어쨋거나 님의 고민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정리정도인가 봅니다......
 

 
  창 밖으로는 비가 오네요.

 비오는 날은 향을 피우지 않는데

오늘은 가루향을 좀 피웠습니다.

며칠 전 낮에 본 매화가 생각이 납니다

 아파트 정원에 핀 매화.......

 알싸한 향기가 봄을 재촉합니다.


 


 매화가 하늘에서 봄소식을 수신받고

있나 봅니다.

 

비가 지나가고 나면 잠을 자고 일어난 듯

봄이 눈 앞에 서 있으면 좋을텐데..

 

 


 빗소리를 들으며 잠든 우리 아기 예찬이

매일 밤마다 힘들어 합니다.

가끔은 전쟁 같은 밤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아가를 힘들게 하는

그 녀석들이 봄 바람을 맞고

얼음 녹 듯 사라졌으면.. 새 봄이 기다려집니다.

 <사진 제공 : 무섭지만 사랑스러운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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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13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붕어빵이닷!
아기때 너무 심하게 앓아서 몸의 성장에 이상이 있을 정도는 안되겠지만...
조그만 병들은 겪는 것이 면역도 생기고 좋다고 합니다.
뭐, 기운을 보니 자잘한 병에 몸이 상할 정도의 아이는 아닌 듯...

발끝 세포 하나를 떼서 보면 그 아이가 몇 세때 어떤 병을 얻고 몇 세때는 어떤 병을 얻고 수명은 얼마정도 된다는 것을 알 정도로 생명공학도 발달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자잘한 병이 아이의 몸의 면역체계 형성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저도 뭐 당시엔 새벽에 40도가 넘는 불덩이 애를 안고 응급실을 몇 번 들락거렸습니다만... 애가 열이날땐 좌약만큼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다만 이때 수분 공급은 챙겨야 합니다. 탈수현상은 아닌지...그래서 쉽게는 손을 좀 따기도 했습니다.)

근데 붕어빵은 맞는데 어째 아빠보다는 순해보입니다. ㅎㅎ

바람돌이 2007-02-1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매화가 피었던가요? 제가 있는 곳의 매화도 양지바른 곳이라 참 빨리 피는 편이었는데도 아직이더만.... 오늘 비가 내리고 나면 필려나요?
아기 이름이 예찬이인가요? 클리오님 아기 이름이랑 똑같네요. 저맘때부터 정말 본격적으로 예뻐지던데.... 아기 어릴때 아픈 것 때문에 힘든 거 말도 못하죠. 자라느라 그런것이라 저도 힘들어서 그러려니 해야지요. 저는 작년쯤에 들어서야 조금 병원출입이 드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드팀전 2007-02-14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자생적인 면역을 중요시 여기지요.^^ 저희는 예방접종도 하지 않는 답니다.저희 집 아기는 아토피 ㅜㅜ 1-2년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라도 되어 준다면 고맙구.저 사진은 그나마 피부가 좀 괜찮아보이는 사진입니다.피부가 많이 일어난 사진은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
바람구두님>붕어빵 이야기는 자주 듣습니다....약간 염장성이 있었다면 죄송.^^
바람돌이님>그래요.매화가 아주 예쁘더라구요.오늘은 교육감 선거...투표율이 10%정도 넘지 않을까싶네요. 저희 아기는 아직 병원에 간 적이 없습니다.심한 상황이 아니면 감기정도는 스스로 낫게 하려는 주의인데요...아무래도 부모들이 힘들다고 하데요.와이프의 인터넷 모임이 그런거에요.^^ ..저도 물론 거기 회원이구.^^

mong 2007-02-14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구여워요~
붕어빵 이야기 자주 들으신다면 드팀전님이 저리 구여우시군요 -_-
남녘에는 벌써 매화가 피었군요. 서울은 오늘 바람도 매섭고 쌀쌀하네요

클리오 2007-02-14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 붕어빵이라니 드팀전 님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ㅋ 감기를 스스로 낫게 한다니, 대단하세요. 그런 마음을 먹다가도 아이가 밤에 한 시간마다 깨는 날이 계속되면 부모도 힘들고 애도 힘들어서 결국 잠이라도 푹 재우려고 병원가게 되던데... 겨울내내 감기여요... 면역이 좀더 생기는 시기까진 어쩔 수 없다구하니.. 그래도 저렇게 키우면 무지 튼튼하겠어요... 저도 새봄에는 이쁜 아가 괴롭히는 아토피가 멀리 물러나길 한번 빌어봅니다...

드팀전 2007-02-14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음..제 생각에는 제가 더 귀여웠던 듯...
클리오님>저희 아기는 감기 사흘 정도 앓은 적은 있는데 그외에는 아직...문제는 아토피죠..^^ 유전의 영향이 크다는데...아무래도 제가.ㅜㅜ

kimji 2007-02-15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화는 곱고 예찬이는 씩씩하니, 봄이 두렵지 않으시겠습니다! 씩씩예찬, 좋아요.
(예찬아, 어서 나아라! )
 
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중국집에 가면 언제나 깊은 고민에 빠진다.자장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이미 자장을 주문해 놓고도 잠시 후 마음을 바꿔 '아줌마..자장 대신 짬뽕으로..'를 외친다.블루오션을 개척한 일부 중국집은 그래서 짬짜면을 내놓았다.내게 진중권의 책은 짬짜면(짬뽕+자짱)이다.진중권은 시차를 두고 두 개의 면을 만든다.하나는 전공을 살린 '미학' 요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평론' 요리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책들이 <미학 오디세이><춤추는 죽음><현대 미학 강의>등이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폭력과 상서로움><시칠리아의 암소>등이 후자에 해당한다.'중권반점'의 강점은 자장이든 짬뽕이든 대중적인 입맛에 맞게 만든다는 것이다.(미학과 관련된 책들이 사전 학습이 조금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

이 책 <호모 코레아니쿠스>도 진중권이 과거에 보여준 한국사회의 분석방향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다.이 책에서 진중권이 분석대상인 한국인의  '하비투스',(아비투스) 즉 한국인의 습속이라는 것도 이미 다양한 학자들의 글을 통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결코 신선하지 않다.(이 '신선하지 않다'..는 평가는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다.다른 이들에겐 바다에서 막 건져낸 도다리처럼 아주 신선할 수도 있다.) 진중권은 편의상 세 개의 장으로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나눈다.근대화,전근대성,미래주의가 그 세가지 구분이다.현재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진중권의 입장은 세 시기가 혼재해 있다는 것이다.(별로 새삼스럽지 않다.)흔히들 말하는 '압축근대'가 가장 큰 원인이다.전근대성과 근대성이 발효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뒤늦은 근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된 조숙한 '탈근대'가 믹서기에 든 과일마냥 쾌속으로 섞여 버린 것이다.진중권은 다른 책에서 '근대와 탈근대'의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에 반대한다고 밝혔다.(이 주장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근대성 성취를 우선하는 모더니스트들에 대한 반대로 읽힌다.) '전근대성'을 계몽하며 '근대' 산업 사회가 파생시킨 해악들과 '탈근대'가 가져다준 소수자문제,개인성의 성취문제등이 동시에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중권이 애써 전근대/근대/탈근대를 나누어 놓았지만 그 역시 이 세 시기 구분이 인위적인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어떤 사회나 -아무리 선진화된 사회일지라도- 이 역사적 시간은 동시대에 존재한다.진중권은 한국이 조금 더 압축된 시간 속에서-식민주의,군사주의,천민형 자본주의에 의해- '이성의 합리성'이 존재할 공간이 줄어들었음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분석한다.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으신 분들 중 다수가 진중권의 분석이 서구의 시각,또는 외국에서의 경험에 바탕을 둔 오리엔탈리즘적 성격이 있다고 지적한다.(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진중권에게 근대성은 문명화 과정이다.전근대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사회의 변화를 분석하는 준거틀은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이다.한국은 궁정적 합리성이 상인적 합리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없었다.또한 의무교육을 통한 사회 하층 계급으로의 문명화가 정체되었다.우리가 '에티켓'이라고 부르는 '문명화'가 더딘 것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설명된다.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다.그런데 좀 의문이 남는 것도 있다.일단 비교 대상의 범주에서 조금 혼란이 있다.진중권이 말하는것은 서구의 문명화 전체이다.사실 서구라는 것이 어디까지 인지 잘 알수가 없다.미국도 서구이고 프랑스도 서구이다.스페인의 문명화 단계와 핀란드의 그것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했을까? 그는 문명화를 이야기하면서 '서구의 일반성'을 적용한다.그러나 그에 대한 비교대상은 '한국의 특수성'이다.이런 비교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다.그러나 이 비교방식은 왠지 마음에 찝찝함으로 남는다.

미래주의에 가면 진중권의 분석틀은 월토 옹의 <문자문화와 구술문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가 된다.진중권은 한국 사회를 구술문화권으로 보고 있다.구술문화가 가진 감성주의,이야기성,공동체성이 한국사회의 특징이다.그는 한국의 습속이 구술성을 디지털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고 말한다.인터넷 게임왕국이나 토론문화에 대한 진중권의 지적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또한 진중권은 세대간의 단절 문제 역시 매체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신체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미디어가 의식을 재구조화 한다는 명제를 이용한다.여기서 세대간 갈등은 '문자문화 대 영상문화'의 갈등이다.(약간의 혼동이 있다.여기서 말하는 문자문화는 서양/한국을 나누는 근거가된 문자문화와는 다르다.) 구세대들은 시각에 고정된 문자문화인이다.반면 신세대인들은 촉각과 공감각이 활용되는 영상세대이다.맥루한이 말한 TV의 '재종족화'라는 개념이 응용된 듯 하다.'인문학의 위기'를 바라보는 진중권의 시각은 '미디어적'이다.그는 '인문학의 위기'란 다름 아닌 '디지털 실어증'이라고 말한다.사회가 문자문화에서 영상문화로 이행하는 시점에 당연히 등장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그러나 진중권은 문자문화의 중요성을 외면하지 않는다.아무리 신세대가 그림과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더라도 결국 문자를 통한 해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그가 우려하는 점은  신세대의 의식이 문자문화의 역사적 성취이전으로 퇴행하는 것이다.진중권은 '대학의 시장화'를 우려하고 있다.

진중권이 제안하는 한국인의 새로운 습속은 '기술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미학적 신체'이다.그의 기술문명에 대한 접근이 퇴행적이지 않다는 뜻이다.그는 엔지니어의 기술성,디자이너의 예술성,인문학자의 문자성이 하나가 된 새로운 조직이 한 사회의 산업구조를 이끌어갈 것으로 본다.이는 단지 기업조직문화에만 해당하는게 아니다.진중권이 말하는 새롭게 디자인된 개인이라는 것은 결국 '놀이'로 상징되는 상상력에 바탕을 둔 자율적 주체인 셈이다.

....................지루한 리뷰가 끝이 났다. 이후는 페이퍼이며 또 리뷰 후반전이기도 하다.

언젠가 같이 일하던 친구가 내게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했다.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라서 어리둥절했다.처음 들어본 말이어서 꽤 지났는데도 아직 기억한다.아메리카(미국)에 그닥 애정을 갖지 않고 있는 나로서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결국 그 친구의 평가는 내가 '한국의 때거리'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걸 가지고 자꾸 딴지건다는 거로 정리할 수 있다.그 친구가 말한 나의 특징이란 것은 '조직보다 개인중심', '직장보다 가족중심' 그런 특징들이다.또 한가지 첨부하자면 어울렁 더울렁 노느니 혼자 노는게 낫다는 개인주의-요즘은 그걸 글루미족 이라고 하더군-... 그것이 나를 '아메리칸 스타일'로 규정한 근거다.이러한 요소를 아메리칸 스타일로 정의내릴 수 밖에 없는 너무나 '토종 한국인'인 그 친구의 어휘능력과 표현력이 아쉬울 따름이다.차라리 '유러피안 스타일'이 낫지 않았나? 그거나 그거나 매 한가지인가?

진중권의 책을 읽을 때 가장 즐거운 것은 '맞아 맞아'라며 맞장구 칠 수 있는 대목이 많다는 것이다.때때로 '대리배설'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위계를 위한 예법>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위계를 짓는 데 사용되는 원칙 중의 하나가 연령이다.....수평적 예의는 수직적 무례로 간주되고 수직적 예의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

술자리에 가면 흔히들 잔을 돌린다.나는 개념이 없어서 인지 술자리에 가도 그냥 옆에 있는 사람부터 따라준다.그리고 후배가 먼저 잔을 받아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그런데 회사 회식 자리가면 술잔 돌리는게 위계확인하는 장소가 된다.마치 원숭이들이 서열 정하듯이.병권을 쥔 사람이 먼저 본부장을 따라 준다.그리고 그 밑에 부장...그리고 차장...그 다음은 선배....이제 내 차례다.아..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동기가 세명이다.^^어떻게 할까?  때에 따라 다른데...주로 이런다. "야..생일 누가 빨라? ""야..사원증 입사번호 누가 빨라?" ..그 때까지 다들 술들고 기다린다.다 받으면 그 때 본부장 한 말씀 하시고 원샷...

나도 조직의 술문화에 좀 익숙해져서 따라한다.그러나 내가 대장일 때는 아무렇게나 마신다.그냥 알아서 따라먹기도 하고 일부러 무시하고 옆에 있는 후배부터 준다.그럼 그 때 그 후배들이 뭐라하느냐? " 저..00선배부터 주시지요." .."싫다.내 맘이다.그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준다.왜? " ...

술자리문화가 별개 아닌 듯 보이지만  진중권의 말처럼 수직적 위계의 강조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그리고 경험적으로 사실이다.

잊혀졌다 생각난 기억... 

"한국의 기업들은 말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여전히 개발독재 시대의 군사문화를 실천한다....한화그룹회장은 그룹의 핵심 임직원 220명에게 도보행군을 주문했다.200킬로 미터에 이르는 강행군이다....은행들의 신입 행원 연수 프로그램은 철야 행군에서부터 100킬로산악행군,해병대 극기 훈련..."

내가 대기업 다니는 회사원이 되지 않기로 마음 먹었던게 초등학교 6학년때다.뭘 알고 그런게 아니다.TV에서 신입사원 연수식을 봤는데 정말 정나미 딱 떨어졌다.똑같은 체육복 입고 펄쩍 펄쩍 뛰어 다니고 쪼그려 뛰기하고.....그럼에도 '연수를 마치고 동료애가 생기고 회사에 대한 애정이 생겨납니다.' 라고 말하는 인터뷰..초등학교 6학년 짜리 눈에도 굴종적으로 보였다.내 대학 친구 중에 하나는 S그룹에 들어갔다.그런데 나흘만에 뛰쳐 나왔다.그룹 연수 가서 뛰어다니다가 .."에이 지랄..." 이렇게 외치고 나와 버린 것이다.그 뒤 고생 좀 했지만 그래도 별로 후회하진 않았다.물론 이것도 다 경기 좋을 때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요즘처럼 경기 어려울 때 그런 생각이 어디있냐고...맞는 말이가도 하다.

진중권은 뒤에 '공포'에 의존하는 한국 사회를 말한다.이 말은 박수 열번 받을 만하다.한국 사회의 첫번째 공포는 적색공포다.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그에 얼마나 효율적이든-이제까지 자신의 생존방식을 보장해줬던 방식을 고집하게 마련이다.....(시청앞 군복 시위대를 보고) 군복을 입은 신체는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몇십년전의 동작을 반복한다.그들의 머릿속도 몇십년전 부터 똑같은 생각을 반복할 뿐이다.....공포는 판단력을 마비시킨다.과거에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이다......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서 국가의 폭력에 시달리던 그들은 이제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없는 생존의 정글이세 무차별한 시장의 폭력에 내맡겨졌다.기분 혹은 무드는 인식에 앞서는 원초적 체험.때문에 너무 강렬한 경우 그것은 이성의 작동을 연기시킬 수 있다...."

엄마들이 남들 욕하면서도 아이들을 무리하게 영어조기 교육시키고 유학보내는 이유,적성이고 뭐고를 떠나 공무원 임용시험에 지방생들을 위한 특별열차가 동원되는 이유...등등.. 모두 안전망 없는 사회의 추락에 대한 공포때문이다.

진중권의 책은 이제 약간 진부하게 느껴진다.그러나 강점은 사라지지 않는다.시원 시원한 글쓰기와 삐딱함이 주는 쾌감.그리고 조금만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자신이 겪은 체험과의 대입의 편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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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12 19:07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별3개 딱 적절한 것 같습니다. :)

바람돌이 2007-02-12 20:35   좋아요 0 | URL
평소 진중권의 말에서 대리배설의 쾌감으로 전율하는 저로서는 별3개가 적은 듯 보이지만 아직 책을 안읽었으니 뭐.... ㅎㅎ 재밌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조만간 보게 될 책일것 같네요. ^^

마늘빵 2007-02-12 23:19   좋아요 0 | URL
저는 네개와 다섯개 사이에서 갈등했는데, 아마 제가 다섯개를 줬더랬죠.
진중권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시원함과 날카로움이 있죠. 거기에 점수를 많이 줬더랬습니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새로울 것이 없는 것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진부함'에는 '별반'의 고민을 했어요.

드팀전 2007-02-12 23:39   좋아요 0 | URL
기인님>네..별셋.보통이란 이야기죠.
바람돌이님>진중권의 가장 큰 장점은 대중적인 글쓰기에 강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그의 강의 역시 그러하다면 즐겁게 들을 수 도 있겠다 싶네요.
아프락사스님>음 그러셨군요.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특유의 시원함과 날카로움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되겠지요.거기에만 점수를 후하게 주면 계속 별 다섯인데..^^ 그것도 나쁠 건 없지요.그의 글이 진부하다는 것은 그가 제기하는 문제가 진부하다는 것은 아닙니다.그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지요...다만 다작의 작가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진중권에게도 적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과거에 소설가 윤대녕이 그랬습니다.그럼에도 이번에 나온 윤대녕 책을 또 사고 말았지만요.(오랜만에 나왔으니까.^^)

글샘 2007-02-20 12:47   좋아요 0 | URL
공공성이 원천적으로 없었던 국가에서 '사적인 관계의 중요성'만이 강조되는 풍토가 한국 사회의 술자리 문화, 수직적 문화를 고착화시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진중권처럼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진부한 것은 정상이 아닐까요? 민중 미학을 선도해나가는 예술가가 아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