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53호 - 2006.겨울
황해문화 편집부 엮음 / 새얼문화재단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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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작은 계획을 잡았다.담배는 끊은지 오래되었으니 계획이 될 수 없었다.운동은 아이때문에 1년간은 힘들 듯 하다.책읽기 역시 물리적 시간의 한계가 있어서 양적으로는 더 늘릴 수도 없고 또 굳이 계획을 짜서 늘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대신 한동안 접었던 계간지는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올해부터 꾸준히 볼 계간지는 두 개다.<녹색평론>과 <황해문화>... 이 두가지는 현재 내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둘 다 새로운 사회,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담론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갖는다.그러나 둘이 가르키고 있는 손가락 끝의 대상은 조금 차이가 있다.지향점으로 보자면 <녹색평론>조금 더 이상적이다.그러나 <녹색평론>의 글들을 읽어보면 굳이 이상적 지향만을 외치는 것들은 아니다.현실의 토대 위에 있는 <황해문화>의 학술적인 글보다 직접적인 글들도 많이 있다.생태주의를 표방하는 <녹색평론>은 근원적인 삶의 변화를 모토로 한다.이상적이며 실천에 있어서는 미시적이다.<황해문화>는 현실정치 위에 있다.근원적인 변화보다  현실토대 위에서의 변화를 중심에 두고 있다.이념적 지향으로 본다면 최소한 우파적이지는 않다.

나는 이 둘이 한 개인 내에서 조화로와야 된다고 믿는 쪽이다.두 책 창간 이념적을 유추해보면 변별성이 분명이 있겠으나 지면을 채우는 글들은 서로 공유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연대의 부분이 많다..생태주의로 대표되는 <녹색평론>의 모토였던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는 것이 <황해문화>의 내지 제호 밑에도 씌여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이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은 중의적이기도 하다.

황해문화 겨울호는 좋은 인연을 통해 얻게 되었다.올해 부터는 내 돈주고 사서 봐야겠다.(친환경 농사꾼들의 이야기를 인용하면 이 상황에 딱 맞다.친환경 농산물이 조금 비싸다는 말에 대해 ...'제대로 지은 농산물 제대로 된 가격에 사주면 우리농촌이 다 산다.' 라고 한다.별것 아닌 말 인 듯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황해문화 2006년 겨울호의 특집은 시기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또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87년 혁명 그 후 20년' ...곧 나오게될 2007년 봄호에 특집 2편이 실린다.

올해는 87년 6월 항쟁의 20주년 되는 해이다.며칠전 박종철 열사의 20주년 추도식이 그의 모교인 부산 혜광고와 그가 비극적 죽음을 맞았던  대공분실에서 있었다.발빠른 신문은 '민주화 세대 20년'을 정리했고 몇 몇 방송에서도 올 6월쯤 되면 다큐멘터리등을 선보일게 뻔하다.대통령도 20주년을 기념해서인지 개헌론을 툭하고 던져서 정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대통령의 개헌은 다른 말로 하면 '87년 시스템'을 이제 정리하자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민주화 세대'들이 대거 포진해 있던 '참여정부'의 무능이 부각되면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개혁 정치에 대한 피로함을 드러내고 있다.과연 지난 20년전의 열정은 사상 누각이 었으며 공허한 메아리였는가? 민주화세대는 어떻게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며 주저앉고 말았는가? 결국 민주주의라는게 해봐야 그게 그거인 것인가? <황해문화>는 질곡의 20년을 돌아보며 민주화세대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김선혁 교수는 최장집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87년의 민주화를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규정한다.그리고 87년 시스템이 대단히 불완전하고 협소하며 취약한 민주주의였다는 점을 지적한다.절차적 민주주의의 부분적 성취 정도로 파악한다.왜 혁명적 상황 속에서 개밥의 토토리만큼만의 성취를 얻어냈을까? 김교수는 87년 6월 항쟁이후 변혁의 불길이 3중위임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그러들고 말았다고 말한다.첫번째 위임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가 정치사회에게 주도권을 준 것이다.두번째 위임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성장한 계급운동이 90년대 들어서면서 힘을 잃고 시민운동에게 밀려나게 된 것이다.세번째 위임은 조금 더 일반적인 형태이다.오도넬이 말한 '위임 민주주의'의 보편적 특징이 한국에도 적용된 것이다.아무런 견제 장치도 없이 대통령과 정치엘리트들에게 정치를 위임한 것이 그것이다.3중의 위임구조하에서 잊혀져가던 87년의 기억을 다시 수면위로 떠올린 것은 노무현 정권의 등장이었다.국민들은 2002년 개혁을 원했고 당선이 불가능해보였던 노무현을 권좌에 앉혔다.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그 염원과 반대방향으로 향했다.노 정권은 외부요인론을 내세우며 '신자유주의'의 가속 페달을 밝았고 강력한 속도로 '보수혁명'을 추진했다.최장집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정서적 급진주의와 정책적 보수주의의 기묘한 결합'상태가 이어졌다.비정규직의 증가,사회양극화의 심화,잦은 정책 실패,보수언론의 맹공 등등의 이유로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급락했다.이는 노무현 정권으로 상징되던 '진보세력의 위기론'으로 돌아왔다.(노무현이 과연 진보세력의 좌장이었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가 정답이다.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진보=노무현/열우당 이런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집권 386들 역시 위임과정을 통해 정치권에 '젊은 피'로 수혈 되었다.(그람시가 말한데로..)이런 포섭 다음에는 또다른 차용이 있었다.정책 능력이 부족했던 집권386은 관료세력들을 안을 수 밖에 없게 된다.이런 거래를 통해 개혁과 보수적 관료가 기묘한 동거에 들어간다.그 결과는 현재 보이는 바와 같다.

민주화 세대 20년을 돌아보며 각 필자들은 회고와 반성,그리고 대안을 제시한다.조금씩 차이를 두고 있지만 '새로운 정당정치의 출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박상훈 교수는 '정당 없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지적한다.대부분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화 이후 공통적으로 불평등의 심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은 정당을 통해 대중의 힘을 조직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정당은 배제되고 대통령 개인 위주로 구성되는 권력의 문제는 현 노무현 정권의 한 특징처럼 보이기도 한다.특히 임기말에 이르러 대통령은 정책을 직접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방식을 취한다.개헌론에 이어 신년 연설,그리고 신년 기자회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은 TV를 통해 직접 국민들을 만나고 있다.이는 다른 말로 보면 정당정치의 붕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지금의 여당이 사분오열되어 있어서 그런 현상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은 집권초기 부터 대중주의적 여론 동원 방식을 택했다.정당이 붕괴된 것은 사회현상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와 주장들을 조직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강한 정당의 부재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축소시키고 선거를 중간계급 위주의 것으로 만든다'는 로이와 긴스버그의 지적이 귀에 들어온다.

물론 새로운 정당의 출현과는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는 필자들도 있다.홍석만의 경우는 노동운동의 재정비와 계급적 통일에 기초한 전국적인 투쟁질서의 확립을 주장한다.홍석만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지난 20년간의 노동자 정치운동/노동자 정당 운동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결과이다.민주노총에 바탕을 둔 민주노동당은 원내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저자는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의회정치 안으로 노동운동 문제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또한 민주노동당이 가진 내적 분열과 인적 구성의 편향성등은 반자본주의적 대안을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김정한은 80년대의 NL,PD론과 구분되는 민중주의적 시각의 복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전통사회의 도덕경제 모델에 바탕을 둔 민중주의는 대안모델의 부재로 신자유주의에 포섭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김정한은 새로운 시민권 확보 차원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운동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흔히들 386세대라고 불리는 민주화세대는 이제 기득권층에 올라섰다.젊은 날 그들의 열정은 시간과 제도의 틀 안에서 퇴색되어 갔다.'87년 혁명 20주년'은 이제는 중년이된 민주화세대,그리고 청년으로 성장한 한국민주주의에 있어 새로운 성장을 위한 결절점이 되야한다.지난 시간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이제는 또다른 권토중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그렇지 않고 수구정당의 집권을 막자며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공포의 정치'에 기대어 '여론몰이'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성찰이 없었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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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1-25 14:1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늘 선거때마다 고민하는 문제인 당은 노동당, 인물은 반한나라당...ㅋㅋ

박종철은 알고보니 본교(영남중)출신이었더군요..
기억하는 선생님의 얘기를 좀 들으니
아주 착한 심성에 반듯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고 하더군요..
그때 교사했던 분들이 다 퇴직하고 거의 안계서서 방송국서 그때 학교왔다가 뭐 별로 얻을게 없어서 그냥 갔다는...

드팀전 2007-01-26 07:58   좋아요 0 | URL
달팽이님>대선에서도 아마 '수구 집권 막자 ' 또는 '한편만 거대하면 안된다.견제할 수 있는 힘을 다오' 이러면서 여권의 표집결 논리가 나오리라 봅니다.지난번에는 민노당에 대해 유시민이 그런 발언을 했지요. '어차피 안된다.노후부에 힘모아줘라.'...
진보세력(?)이 집권해서 실패하고 그 반동으로 보수세력이 다시 등장하는 것도 민주주의입니다.할 수 없습니다.저열하게 살아남으려하지말고 깨끗이 죽고 다시 사는 방법을 모색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구두님>그 댓글이 정말 그렇네요...모르척 하기도 아는 척 하기도...
어쨋거나 시의적절한 시점의 책이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장하준 지음, 황해선, 이종태 옮김 / 부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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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제학도로서 그리고 비즈니스계에 있지 않는 나로서는 이 책 읽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이 책이 별 셋인 이유는 내게 힘들었기 때문이지 책의 내용이 부족해서는 아니다)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 중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 일까 책장을 넘기면서도 갸웃 갸웃 거렸다.물론<국가의 역할>에서 장하준 교수가 하고자 했던 바....그걸 몇 줄로 정리하는 것은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무슨 잠언서도 아니고 대략적으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만 주워담기 위해 이 책을 보는 건 경제적으로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기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경제학에 대한 사전 공부가 어느 정도 되어 있어야 한다. 옛 강의실 기억을 떠올려 봤자 '경제학 개론'이거나 '경제사' 정도인 나같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좀 고생해야한다.피구의 후생경제학이나 사무엘슨의 공공재 이론등을 떠올리기 위해서 일본의 경제신문사에서 나왔던 <경제학의 선구자>니 하는 류의 책을 뒤적여 보아야 했다.책이라는게 나아가는 맛이 있어야 된다.그런데 아파트앞 안전턱처럼 속도를 줄여가는게 반복 되다보면 결국 '책읽기의 악순환구조'가 발생하게 된다.저효율이 고짜증으로 폭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 경제학적 지식의 일천함을 안타까와하며 또 이 책을 술술 읽어 내실 분들의 지식을 부러워하며 읽기는 읽었다.

<국가의 역할>에서 장하준교수는 적극적인 국가 개입론을 편다.그의 국가개입론은 제도주의적 관점에서의 개입이다.이 제도주의적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장하준 교수는 후생경제학,신자유주의,제도주의를 비교하여 설명한다.요약하자면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장하준 교수가 바라보는 시장에 대한 관점은 다양한 사회제도 중 하나일뿐 이라는 것이다.이념적으로 시장의 절대적 가지,시장이라는 유일 신을 섬기는  자유방임적 신자유주의자들과 비교하면 시장은 그리스의 올림프스간 구성원중 하나일 뿐이라는 관점이다.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시장의 실패를 세계의 실패가 아니다.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실패하면 인류는 대재앙을 겪을 것이라고 위협한다.그러나 제도주의적 관점에서는 다양한 제도들간의 상호작용으로 시장의 실패는 보완될 수 도 있다.

장하준 교수가 싸우는 대상은 명확하다.신자유주의의 이론과 신자유주의가 함의하고 있는 신화들이다.특히 국가문제와 관련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의 반개입론은 이 책을 통해 철저히 비판당하고 있다.경제학사를 살펴볼때 대공황 이후 국가 개입주의는 너무나 보편적인 사상이었다.케인즈로 대표되는 개입주의는 70년대를 거치면서 역습을 받는다.통화주의자들의 공격이다.오스트리아 학파와 시카고 학파로 대표되는 통화주의자들은 '최소정부'를 주장하며 시장의 유연성을 도모한다.90년대를 들어서면서 초국적 기업과 투기자본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그 바톤을 이어받고 있다.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학계에 끼친 긍정적인 부분도 잊지 않는다.정보의 경제적 역할,경쟁의 중요성,국가 영역 밖에 있는 시장의 중요성 등이 그런 부분이다.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하에서 국가개입 여부가 역사적,지리적,환경적 요인등에 따라 구체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신자유주의는 개별 국가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국민경제를 무한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의 탈정치화를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산업 정책(우리에게는 익숙하며 당연한 듯 보이는)같은 것들은 일소해야할 독버섯이다.특히 이 문제는 저개발국가가 과거 선호하는 방식이며 그 효과가 현재에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산업정책 논쟁은 현재성을 갖는다.장하준 교수는 '선별적 산업정책'이라는 것으로 산업 정책을 정의한다.

'산업정책은 국가가 경제 전반에 효율적일 것으로 인식한 결과를,특정 산업-그리고 그 요소로서 기업-으로 하여금 달성토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저개발 국가가 산업정책을 펴는 이유는 간단하다.대기업을 키워서 정치자금 받겠다는 것보다는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다.국가는 직접 자원의 배분에 관여하여 특정 산업을 육성한다.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은 이 책에서도 여러번 등장하는 대표적인 산업정책의 예이다.이론적인 측면에서 강력한 정부의 금융통제를 통한 자원배분과 산업육성방식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장하준 교수는  산업정책을 통해 기업이 가진 미래 정보의 불확실성과 불충분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실제 저개발국들은-현재 선진국이 되어 잇는 나라들 역시- 고유의 산업정책을 통해 국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산업 정책론에 갖는 반감은 이상화된 완전경쟁 시장에 대해 갖는 환상때문이라고 말한다.물론 산업정책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하는 바는 아니다.산업정책 역시 비용과 수익의 관계가 발생한다.결국 제도적 다양성과 기술 변동,그리고 경제 이론의 발전등을 고려한 조절 메커니즘으로서의 산업정책은 효율적인 정책 수단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가 바로 '탈규제'다.이건 다른 말로 하면 정부의 간섭을 없애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장하준 교수는 규제와 탈규제를 구분하는 기준의 모호성에 대해 언급한다.또한 탈규제가 경제 영역에서 정부의 완전철수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힌다.시장의 효율성과 존립 자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규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또한 개발도상국이나 체제 전환국의 경우에는 시장 규제 정도가 아니라 시장 창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또한 규제개혁을 통해 발생하는 분배의 형태도 고민거리로 남겨두어야한다.규제 개혁과 관련해 이어서 등장하는 것이 공기업의 효율성문제이다.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널리 퍼뜨린-또는 경험상으로 익힌-공기업은 비효율적이며 실적이 저조하다라는 상식에 도전한다.특히 대만과 한국같은 신흥공업국의 경우 공기업의 성공은 주요했다고 평가한다.민영화론자들은 공기업의 이기적 대리인모델,징계 메커니즘의 부재,수익성을 기준으로 한 비효율성등을 예로 들며 공기업을 공격한다.흔히들 알고 있는 '무사안일 공기업인'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장하준교수는 민영화가 된다고 주인-대리인 모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단지 국가의 자리에 대기업이나 대주주가 자리바꿈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또한 '퇴거론'에 근거한 -즉 무기력한 기업은 소비자가 퇴출 시킨다는 식의-징계 메커니즘 역시 민영화도입으로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다.경험적으로 볼 때 공기업도 도산이라는 절차를 받게 되며 또한 반드시 지켜야하는 기업,주주 이익이 극대화된 기업조차  민영화로 그 퇴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결국 퇴거에 의한 징계는 기업의 효율성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기업 규모때문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수익성에 따른 공기업의 비효욜성도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즉 공기업은 단순한 수익성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럼에도 수익성을 측정해야 한다면 공기업이 지향하는 '공익목표'라는 목표지향성을 포함한 수치로 재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치 중 좀 납득이 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장하준 교수는 <국가의 역할>이 씌여진 시점은 2003년이다.세계화와 함께 등장한 초국적 기업의 증가와 외국인 직접 투자를 보여주기 위한 표에 문제가 있다.저자는 외국인 직접 투자가 대부분 선진국에서 발생했고 개도국은 극히 미미했다고 말한다.그러면서 1983년부터 94년까지의 투자 비중을 보여준다.국내 자본형성에서 외국인 직접투자비율을 나타내는 표에 의하면 한국은 외국인 직접투자가 상당히 낮은 국가로 평가된다.물론 한국은 차관이라는 형태의 투자방식을 과거에 고수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91-93년 수치를 보면 0.6%로 일본의 0.1%에 미치지 못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낮은 편에 해당한다.그런데 문제는 이 수치가 지나치게 과거의 것에 의존해있다는 것이다.한국에서는 90년대 중반 이후 외국인 투자규제 문턱이 낮아지기 시작한다.그리고 99년에 이르면 외국인 직접투자가 대폭증가한다.99년 4월 외환자유화 1단계 계획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탈정부화한 금융시스템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 약화,자본시장의 변화등은 기업부문의 자금조달구조를 변화시켰다.결국 98년부터 2000년 사이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1965년-1997년 사이의 총 유입액과 유사해진다.장하준교수가 93년 이전의 외국인 투자액을 제기한 것은 초국적 기업의 진출과 투자라는 것이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다라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였다.하지만 그 시점이 책이 써진 시점에서 10년전 자료에 근거하다보니 아무래도 현재성을 확보하기 어렵지 않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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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1-23 22:00   좋아요 0 | URL
억지 춘향꼴로 책을 끝까지 읽었을 님생각을 하니 슬며시 웃음이 이는군요..
뭐 그래도 고집은 있어 끝까지 다 읽고 서평까지 올렸네요..
난, 모르는 책 들면 읽기는 해도 서평까지 쓸 엄두는 못내는데
그런 면에서 나보다 낫군요
우선 원론적으로 한마디 거들면...
고전파 경제학(시장자유주의)과 케인지안 경제학은 현실 경제의 변화에 따라
문제점이 커지면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론으로 제기되었던 것이라
현실 인식이 그 관건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뭐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라
물 불 가리지 않고 다국적기업활동이 유리하도록 규제완화나 관세 및 비관세장벽 철폐를 주장하는데...
사실 국내적으로는 기업과 재벌들 처음엔 국민들 혈세로 기업일으켜 온갖 특혜에 부패로 덩지불려서 이젠 그 정부가 각종 규제니 해서 귀찮으니까 작은 정부를 만들어라고 하는데.. 좀 역설이지요.. 물론 세계시장에서 보면 국내 기업들도 완전경쟁 비슷한 시장에 놓여있어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연구개발비나 각종 수출 관련 특혜를 엄청 누리고 있는 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요구를 한다는 것은 이중적인 일이라 생각되죠.
세계경제에서는 저자의 '사다리 걷어차기'란 책에 보면 영국이 패권을 쥐고 있을 당시처럼 자국의 산업이 경쟁력이 있을 때에는 자유주의를 주창하고 국내산업의 보호가 필요한 대륙국가에선 보호무역주의로 맞서는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의 꼴은 선진국들이 경쟁력있는 산업을 바탕으로 자유무역협상을 맺어 후발국이 선진국의 진입을 막으려는 사다리 걷어차기식의 정책을 편다고 비판하죠..
장교수님은 말그대로 전도유망한 젊은층의 중도우파교수라 지적 객관성을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만
존경했던 정운영 교수는 지금의 상황에서 더욱 국가개입을 늘여서 사회보장제도와 노사관계의 재정립을 통한 인간적인 경제체제를 꿈꾸셨죠..

결국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란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그 뜻을 대표하는 정책입안자 정치자들의 마음 속에 인간(짐승같은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고서)의 마음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나저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언제 다시 찾을 건가요?

드팀전 2007-01-23 23:45   좋아요 0 | URL
한국은 독특한 발전국가모델로 성장해온 나라지요.피터 에반스 교수는 동아시아 발전 모델에서 기업과 사회세력간의 밀접한 관계를 '연계된 자율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박정희식 발전모델이 한국경제를 견이해온것은 사실입니다.(사회적 기회비용을 배제한다면.)한국의 경제는 '자본통제'가 핵심이었지요.국가가 금융기관을 통해 자본의 배분에 직접 나서게 된 것이며 장교수가 말하는 '산업전략'이라는 것을 통해 '수출주도형'산업을 적극 육성하게 되지요.이 과정에서 재벌 기업의 특혜나 특정 기업에 대한 정치적 성격의 지원도 벌어지게 됩니다.어쟀거나 한국의 국가주도형 산업구조는 6,70년대 한국경제를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오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한국의 경제 발전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정책과 달리 다양한 각도의 국가개입을 통해 이루어졌지요.자본통제와 수입보호 정책이 대표적이지요.거기에 내부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로 국민동원이 용이했던 점도 있겠구요.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밀월 관계에 있던 정부-기업간 관계는 9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 변하기 시작합니다.자본 시장이 변화하며 기업들은 해외자본 유치에 열을 올리게 되고 정부의 금융통제정책은 빛을 읽게 되지요.흔히 말하는 금융시장 자유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지요.덩치가 커진 재벌들은 효율성을 잃어버리고 중복투자,차입경영,재벌 총수에 대한 일방적 의존,문어발식 다각화 등으로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변해갑니다.
대부분의 신고전경제학에서는 한국경제의위기를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위기로 진단하고 발전모델의 종언을 선고합니다.정부의비효율성,재벌과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등이 지적되고 정설로 받아들여져왔습니다.장하준 교수가 지적하는 부분은 그런 주류경제학의 진단이 과연 '상식'처럼 그런가 하는데 있는 듯 합니다.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상식'처럼 되어버린 주장에 '이론적'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장교수는 이 책에서 다양한 방식의 국가 개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그의 접근법에 노동경제문제는 빠져있지요.전체적으로 거시경제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신자유주의가 우파이데올로기를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장교수의 '개입주의'를 우파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신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 즉 거칠게 말해서 시장만능 주의와 국가개입주의를 놓고 보면 장교수는 후자에 속합니다.물론 신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들도 맑스 경제학에서 보면 결국 우파이긴 하겠지만요.경제학에서는 그런 좌우구분보다는 학파중심의 구분이 일반적인 듯 합니다.장교수의 다른 책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베블렌,갈브레이스등의 영향을 받은 제도학파적 속성이 강하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정치인 또는 사람들 개개인의 대오각성'을 통한 변화는 너무 낭만적인 접근입니다.도덕적이며 좀 더 확장하면 종교적인 접근이지요.물론 그렇게만 된다면 무슨 법률과 제도가 따로 필요하겠습니까.. 근원적인 주장은 현실 사회 관계속에서는 그다지 유의미하지 못합니다.실천의 구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주장이어야 현실 관계에 정합적입니다.개개인의 덕성 문제는 그것과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사회정치적 함의들을 개개인의 덕성으로 치환하는 '탈정치화'에 제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개개인의 덕성이 중요치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미시적 기획과 거시적 기획의 차이를 분명히 하셔야 할 듯 합니다.
유리구두는 앞으도 계속 신어야 할 듯.....다음 기회에 또 뵙겠습니다.

글샘 2007-01-24 10:57   좋아요 0 | URL
정답 :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탈을 쓴 세계화만이 있을 뿐. ㅋㅋ 좀 비극적인가요?
인간적인 그리고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은 <글로벌>이 아닌 <로컬>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글로벌>이란 개념이 특히 경제적으로 적용되면 제국주의와 착취 이외의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로컬>을 강조하는 지방자치나 무정부주의적 활동들이 <강력한 국가>를 통해 권력과 돈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 비해 돈이 없어도 어차피 사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이 경제 발전이 빚어낸 양달도 따스하지만, 그 음달은 여전하거든요.
아파트에서 문 꼭 걸어 잠그고 겨울에도 런닝차림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수십 미터 허공중에 떠 있는 생각을 하면 이게 잘 살게 된 건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같으면 드팀전 아우님 사랑방에 불러서 동치미 떠놓고 막걸리 한잔 하고 있으면, 시퍼런 칼날같은 그믐달이 떠오를 무렵에서야 달팽이님이 슬그머니 합석할 만도 했을텐데요... ㅋㅋ
유리구두는 무효입니다. 열두시까지는 버텨 줘야 유리구두지, 그건 사기구두라고 봐요.

드팀전 2007-01-24 11:45   좋아요 0 | URL
생태주의의 모토가 그거지요.전지구적인 사고와 지역적인 행동....
실천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논지에서 봐도...맞는 말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외부유인론으로 설명하는게 옳은데 이 거대담론에 <로컬>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 개인의 실천 윤리와 실험으로써는 의미가 있으나 -저 역시 개인의 실천윤리로 이부분을 선호하고 좋아합니다,또한 먼저 선실험하시는 분들에 존경도 표합니다.-거대담론에 대한 대응논리로는 이상적일 뿐입니다... 이런 예를 들지요.
대의정치하에서 양심적인고 도덕적인 정치인,제대로된 인간들이 정치를 하는것이 전근대 정치윤리(공자 맹자님도 말씀하시던)에서도 지향했던 긍정적인 방식입니다.그렇게 만들기 위해 장기적 노력도 필요하겠지요.그런면에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저질 정치판을 순화하는 실천적 움직임이 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있는 둥 없는 둥 한 '국민소환제'를 현실화하도록 움직이는 일이 구체적입니다.(국민소환제라도 물론 문제가 많이 발생하겠지만..) 적절한 예였는지는 모르지만...제 논지는 이상적인 상황은 다들 알고 있다는 겁니다.존레논의 '이매진'에 나오는 그런 상황말이지요...하늘에서 세상을 관망하고 정리해주는 것은 별로 어렵지도 않고 또한 개인적으로도 그다지 잃어버릴게 없습니다.나름대로 폼도 나잖아요.^^ 영혼의 위안을 주는 몫이라면이야 그다지 불만이 없습니다.(20대 초반에는 그것도 결국 반동적이라고 본 시절도 있었지요.아...옛날이네.)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그 논리를 모든 상황에 적용하려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글샘님의 상황도 그러리라고 생각해요.제가 님의 글을 좋아하고 또 총체적인 진정성을 믿는 이유도 그렇습니다.님의 실천은 구체적이고 그 실천을 위한 논리들은 이성적입니다.또한 즐겨읽으시는 내면의 수양을 위한 책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바탕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제 개인적으로도 그런 방식을 좋아합니다.
열두시 넘기면 와이프가 외박으로 칩니다.^^ 설 연휴 즈음해서 와이프가 친정갈 텐데 그때 소규모로 한 잔 하지요.싼거는 제가 한번 막아보겠습니다.

달팽이 2007-01-24 17:24   좋아요 0 | URL
글 잘 읽고 또 배웁니다.
전공이 아닌데도...정리를 참 잘 하셨네요..
난 사실 경제학 대학원 다녔어도...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다음에 보게되면 소주도 한잔 합시다. 지발...

글샘 2007-01-24 17:48   좋아요 0 | URL
이거 번개 후유증이 크군요. 이제 리뷰보다 긴 댓글들 읽기도 힘듭니다. 헥~~헥.컥,
요즘은 생태운동도 글로벌리가 아니라 씽크 로컬리, 액트 로컬리로 간다더군요.
제가 젤 좋아하는 노래가 이매진입니다. ㅋㅋ 다음번에 노래방가면 함 불러봅시다.
저도 소주는 좋아하는데... 소주먹고나면 기억이 실종되는 <상실이 병>에 걸려서리... ㅋㅋ

드팀전 2007-01-24 18:28   좋아요 0 | URL
^6^ 안그래도 저도 그런생각을 했습니다.왜 이렇게 댓글을 길게 썻지라고...달팽이님이 길게 써서 나도 길게..^^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 소주는 시원!! ...서울출신이지만 소주는 시원이 역쉬!!
희안한 일인데 와이프 고향이 청주잖아요.그런데 시원이 나오는데가 부산이랑 청주더라구요...주례를 대선 사장님을 모셨으면 평생 소주이용권이런거 주시지 않았을까??^^ㅜ

그리고 달팽이님..제가 이 책을 읽다가 뒤적인 책들이 몇 권돼서 나름정리를 좀 했습니다..메모의 힘!!
 
불멸의 목소리 1 - 남성 성악가편
유형종 지음 / 시공사 / 200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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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꼬리가 먼저 올라오다.

전두환-전재국-시공사...됐나? 내가 리뷰쓰면 결국 홍보가 될 터이니 이 라인에 일정 기여를 하는 셈이다.뭐 크게 기여하지는 않겠지만...그래도 논리적으로 분명 관계는 있다..최소한 오는 명절에 아버지 '일해'선생께 들어가는 용돈의 일부로 기여되고 있을지도 모른다.1원정도.그렇다고 내가 경남 합천의 '일해공원' 명칭을 찬성해야 하는 건 아니지?... 위에 있는 자본의 흐름은 알면서 '일해공원'은 반대하니까 모순이라고....(멀뚱 멀뚱  (. . )(' ' )(. .)(' ' )...이거 내가 지금 막 만들어 본 건데 어때요? 원래 이런거 있었나요? )

진짜 시작.!!

쓰리테너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 같다.이미 오페라계에서는 쓰리 테너의 시대가 저문지 오래 돼었다.고도비만 파바로티는 나이가 많고 언니들이 좋아할 것 같은 호세 카레라스는 병원 다녀온 후로는 소리의 빛을 잃었다.둔탁한 고음의 도밍고 만이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시다.월드컵 우승 후보국 출신답게 -2002년 우리나라한테 다 졌던 팀이다-4년마다 한번씩 콘서트를 하시더니 지난 번 부터는 그나마도 보기 힘들어졌다.도밍고가 섹쉬하게 생긴 안나넵트레브코와 미스터 빈처럼 생긴 롤란도 비아존을 데리고 공연하고 말았다.

쓰리테너의 전성기는 역시 70-80년대였다.물론 그들의 공연을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 대단한 테너들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은 NBA의 마이클 조던,KBL의 박철순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 만큼 즐거운 일이다.하지만 오페라 팬들은 진정한 테너의 전성시대를 50-60년대로 친다..오페라야 독일도 있고 프랑스도 있고 러시아도 있다만 그래도 원조집으로 치면 이탈리아 아니겠는가.이탈리아 종마들..(사람을 말에 비유해서 좀 그렇지만 쓰다보니 영화<록키>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던 것 같다.이탈리안 종마 록키 마르시아노...ㅋㅋ) 마리오 델 모나코-주세페 디 스테파노-프랑코 코렐리-카를로스 베르곤치. 이렇게 네 명의 이름을 쓰고 보니 그리스 신전을 지키는 네 기둥마냥 무게감이 확 느껴진다.레퍼토리로 치면 모나코가 가장 무거운 쪽이고 스테파노가 가장 가벼운 편인 듯 하다.네 명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이들은 자기 고유의 캐릭터를 가지고 개성적인 소리를 창조해 냈다.이들 앞에도 또 대단한 테너들이 많았다.카루소-베냐미노 질리-유시비욜링정도면 20세기 초반 쓰리테너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물론 이 책에서 테너들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영원한 리트의 황제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성격파 바리톤 세릴 밀른스,모범적이고 안정적인 베이스 니콜라스 갸우로프,20세기 최고의 보탄 베이스-바리톤 한스 호터 등... 테너가 중심이 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목소리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불멸의 목소리>는 사실 새로운 책은 아니다.이미 월간 <객석>에 소개되었던 글을 모아서 새롭게 낸 것이다.나 역시 <객석>을 간간이 보는 편인데 이 책에 나오는 몇 몇 그들은 이미 만난 적이 있다.글의 내용은 거의 유사한 형식을 갖는다.짧게 음악가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고 간단한 약력 소개가 있다.음악가로서 성장과정과 몇 몇 에피소드,소리나 연기의 특징,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퇴와 그 후 활동등...성악가의 짧은 평전 형식이다.새로 책을 내면서 책 말미에 그 성악가가 부른,또는 모습을 만날 수 있는 CD와 DVD를 소개한다.또한 <객석> 기사를 책으로 그대로 내는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이 책에 소개된 위대한 가수들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덜 알려진 가수-그러나 유명했던-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친절하게도 장르별,지역별,파트별로 구분해서 정리해주고 있다.예를 들면 독일권의 헬덴테너,스칸디나비아 출신의 테너,독일 리트를 빛낸 바리톤,코스모폴리탄 저음가수.... 결국 이 책에서 언급하는 가수들의 명단을 정리하면 20세기 성악사에서 나올 만한 사람은 전부 나오게되는 셈이다.

이 책을 보면서 관심이 가게된 가수가 베냐미노 질리와 카를로스 베르곤치이다.베냐미노 질리는 옛날 가수여서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가끔 컴필레이션 음반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때가 있었지만 직직 거리를 소리에 묻혀 지나치기 일수였다.이 책을 읽다 다시 한 번 그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듣게 되었다.요즘 가수들에게서 만날 수 없는 순수함과 고답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베냐미노 질리가 출연하 오페라 전곡을 아직 만나지는 못했다.그러나 지난번에 간 음반가게에서는 그의 아리아집을 뒤적거리는데 많은 시간을 썻다.저자가 말하는 베냐미노 질리의 장점을 좀 옮겨본다.

베냐미노 질리는 성악적으로 완벽한 테너로 불린다.순수하고 아름다운 톤을 지녔으며 특히 그의 메차보체(약음의 테크닉)는 역사상 최고의 절륜이라 할 만하다.의도적인 달콤한 음색이나 흐느끼는 듯한 표현방식으로 통속성을 가미하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풍부한 성량과 극적인 힘을 드러내며 오페라의 드라마틱한 면을 충분히 살리기도 한다.

정열적인 이탈리아 남자들에 가려 조금 손해를 본 듯 한 카를로스 베르곤치도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카를로스 베르곤치는 다른 이탈리아 가수들에 비해 선이 조금 가는 편이다.사실 그가 선이 가늘다기 보다는 동시대 활약했던 모나코-코렐리등이 워낙 쩌렁쩌렁했다는 생각이 든다.베르곤치는 열정적인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이지적인 스타일이다.찌르는 하이 C로 브라보를 외치게 하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지적인 분석와 안정적인 호흡으로 무난하게 하이C를 건드리고 내려오는 스타일이다.그래서 혹자는 베르곤치의 스타일에 호소력이 좀 부족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저자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으로 철부지 남자와 원숙한 여인상을 거론하며 스테파노나 코렐리등을 옹호했는데 이를 베르곤치에 적용하면 그는 너무 철이 든 이탈리아 남자인 셈이다.다른 측면에서 보면 카를로스 베르곤치의 발성이나 테크닉이 다른 이들에 비해 안정적이며 뛰어났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저자가 인용한 이탈리아의 오페라 학자 첼레티의 말을 옮겨본다.

지난 40년 동안 테너는 물론 바리톤과 베이스 중에도 베르곤치만큼 권위있는 베르디를 만나보지 못했다.(그는)리듬의 흐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호흡하는 법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감쪽같이 호흡하는 기술도 갖고 있었다.그는 작곡가가 요구하는 세세한 프레이징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존재였다.

저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그의 스타일.극히 정제되고 귀족적인 광채를 뿜는 베르곤치의 특유의 개성을 일컫는 것이다.나는 베르곤치보다 아름다운 테너를 들어본 적은 있어도 그보다 더 우아한 테너는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 세상에서 기타를 가장 잘치는 사람이 누구이냐를 가지고 자율학습 시간을 논쟁의 시간으로 대체해버린 적이 있었다.흔히들 말하는 '세계 3대 기타리스트'니 뭐니 하는 그런 되먹지 않는 논쟁이었다.오페라 가수들도 마찬가지다.흔히들 쓰리테너라고 말들은 하지만 그들이 모든 오페라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몇 번 도전했다가 참패를 거둔 적도 있고 아예 시도하지 않는 역들도 있다.그럼에도 무림 최고수를 가리듯 누가 넘버 3이고 누가 TOP 10인지 가려내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호세카레라스는 서정적이나 목소리가 바랬다.파바로티는 기량적으로는 찬란하나 표현력과 레퍼토리가 한정적이다.도밍고는 안정적이 중저음과 표현력 그리고 넓은 레퍼토리는 높게 평가할 수 있으나 고음과 소리의 답답함은 늘 아쉽다.이 셋 뿐만이 아니다.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고음은 불안불안하다 코렐리는 쩡쩡 울리지만 힘에 너무 의존한다.그럼 어떻게 하나?  간단하다 네거티브 리스닝에서 포지티브 리스닝으로 바꾸면 아주 편안하다.

파바로티의 청량한 딕션과 깨끗한 고음은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피셔 디스카우의 학구적이며 심오한 리트 해석은 또 어떠한가? 돌이킬 수 없는 목소리 프리치 분덜리히의 미성은 천국에서 훔쳐내고 싶을 정도다.

뱀꼬리가 앞으로 가는 바람에 뒤로 밀린 사두...

나는 이 책을 또 화장실에서만 읽었다.화장실에서 최고로 많이 애용하는 읽을 거리는 신문이나 잡지.이 책의 글들도 잡지 기사였으니 잡지 읽듯 책을 읽었다.그리고 지금은 2권에 해당하는 오페라 디바들을 화장실에 초대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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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18 13:20   좋아요 0 | URL
숨은 글이 두 군데 있어요.(으이구 친절하기도 하지.) 원래는 전부 안보이게 해봤는데..^^ 당황해 하실까봐^ ^ (으이구 소심하기도 하지)

글샘 2007-01-19 00:08   좋아요 0 | URL
어째도 전두환은 죽일놈이죠. 나쁜넘.
재미있습니다. 뱀꼬리와 뒤바뀐 뱀 대가리도... ㅋㅋ
 

어느 맑은 밤 편안히 앉아 등불을 은은히 하고 차를 끓인다.세상은 온통 고요한데 시냇물 소리만 졸졸졸 들려와 이부자리도 펴지 않은 채 건듯 책을 읽어본다.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비바람 몰아치는 날 빗장 걸고 방을 치우고선 눈 앞에 가득한 책을 흥 나는 대로 꺼내서 본다.사람들의 왕래가 뚝 끊겨 온 세상이 고즈넉하고 온 집안이 조용하다.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텅 빈 산에 겨울이 찾아와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싸락눈 날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바람결에 흔들리고 추위에 떠는 산새가 들판에서 우짖을 때 방안에서 화로를 끼고 앉아 차 끓이고 술 익힌다.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상촌 신흠의 '야언' 중 일부....

경향신문 <옛글의 숨결>을 읽다가 옮겨 적어본다.서예를 배웠다면 이글의 원문을 알아내서 한자로 한번 쫘악 하고 써볼텐데....왜 이렇게 안배운게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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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1-1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의 책페이지를 비추는 등불을 훅 하고 불어끄고 시냇물 소리를 함께 감상한다. 이것이 첫번째 즐거움이요.
술 한병을 들고 찾아가 벗의 앞에 던지고 방문 빗장을 열어젖히고 비바람 소리 안주 삼아 술잔을 권한다. 이것이 두번째 즐거움이요.
소복이 쌓인 눈 위로 발목 폭폭 빠져가며 찾아간 인적 없는 산속의 벗의 집에서
화로를 옆에 끼고 묵은 이야기를 주고 받고 또 그간의 글공부한 것을 나눈다. 차 향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이것이 세번째 즐거움이다.

비록 취향은 달라도 세상엔 책과 글을 좋아하는 많은 벗이 있어
그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쁘네...

kleinsusun 2007-01-1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안배운게 많은지."
음하하하. 전.....수영을 못해요. 왜 안배웠을까나?

글샘 2007-01-1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책읽기도 좋고, 술 한 잔도 좋고...
드팀전님... 수욜날 안된다는 분들이 좀 계신데, 월요일은 시간이 어떠십니까?
그리고 전화번호 하나 남겨 주세요^^. 졸지에 총무가 돼서 좀 정신이 없는 중...
그리고, 달팽이님... 책과 글에 하나 더 들어가야겠네요. ㅋㅋ (뭔진 아시겠죠?)

드팀전 2007-01-1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그동안 나눌만한 글공부가 있어야지 나누지요.요즘 차 맛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좀 있습니다...비싼게 티는 나더군요.그래서 영어로 TEA인가..??@@
수선님>이런...이런식으로 리마인드를 시키시는군요.그래요.전 수영도 못해요.ㅜㅜ 그래도 연애는 잘했어요.(과거형..그건 님보다 자신있다구)
글샘님>고생 많으십니다.원래 인기 많으면 의무도 많아지는 법이니 그러려니 하시지요.전 수요일이 좋긴 한데 월요일도 무방하긴 합니다...시간내지요.월요일..

글샘 2007-01-1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싼 티 나는 tea가 맛은 좋더군요. 역시. 그래서 china에서 나온 좋은 차가 차이나나봅니다. (썰렁~)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아닌 것 같고... 워낙 총무 체질이 아닌데, 총무를 많이 맡고 있어 놔서리...
그럼 월요일로 정하기로 하죠. 장소를 좋은 데로 물색해야 할텐데요...
뭘 먹지요? 좋은 데 없을까요? 지금까지 오시기로 하신 분들은, 달팽이님,바람돌이님, 우리 둘에, 배혜경, 해콩님이 오실 뜻을 비추셨습니다. 최대한 6명 정도...

2007-01-21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2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말 우리나라는 책을 잘만든다는 생각이 든다.외양 말이다.그래서 가끔 가벼운 책을 들면 마음까지 가벼워진다.<녹색평론>책들도 그렇지만...개인적으로는 <녹색평론>책보다 표지는 조금 낫고  종이질은 그정도의 책이 마음에 든다.<보리>나 <도솔>에서 나왔던 몇권의 책들 정도 예를 들면 <야생초편지><잡초는없다>정도의...

'너무 무거운' 우리 책, 알고보니 이유있네!

[SBS TV 2007-01-15 22:27]    
<8뉴스>

<앵커>

요즘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 읽는 모습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데 혹시 책이 너무 거창하고 무거워서 그런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울까요?

장세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외국책들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외국 서적 매장에 나와 있습니다.

같은 책을 기준으로 원서와 번역본의 무게 차가 얼마나 나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320페이지 분량의 미국판 원서의 무게는 260g

일본에서는 글자 크기 등을 줄여 2백80페이지에 150g짜리 문고판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원서보다 크기가 10%정도 커지고 80쪽이 더 늘어나 무게가 미국 원서의 2배를 훨씬 넘었습니다. 

또 다른 양장본도 달아본 결과 우리책이 40% 이상 무거웠습니다.

[하형주/독자 : 왜 한국에서는 책이 이렇게 무거울까...차라리 우리나라 이렇게 미국처럼 가볍게 하면 가방에 가볍게 하면 넣고 다니면서 지하철에서 읽을 수 있는데...]

유독 우리책이 무거운 이유는 커진 책 크기도 이유지만 무거운 종이의 질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됐습니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비교 분석 결과 영어판은 인쇄품질을 높이는 충전재 돌가루의 비중이 8%에 불과한 반면 우리책의 경우 3배가 넘는 27%나 됐습니다.

종이를 매끄럽게 해주는 돌가루는 펄프에 비해 무게가 2배 가량 더 나갑니다.

[이학래/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 탄산칼슘이나 활석 등 충전재는 인쇄품질을 높여주고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데 우리출판업계에서는 이런 충전재를 많이 함유한 용지를 많이 선호하는 편입니다.]   

책의 겉모양을 중시하는 독자들의 성향때문이라고 출판사들은 항변하지만 문제는 소장을 위한 양장본뿐 아니라 거의 모든 책들이 무겁게 만들어진다는데 있습니다.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소장 : 책의 무게도 굉장치 무겁고요, 그리고 컬러풀하거나 어떤 가시적인 측면에만 주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독서 생활화에 일정한 방해 요인이 되고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달 평균 독서량이 1권 꼴로 OECD 최저수준인 우리나라 독서 문화, 그 이면에는 책의 내용보다는 겉 모습에 집착하는 허위 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장세만 j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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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막신 2007-01-16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공감. 물론 무게때문만은 아니지만, 무거운 것도 들고다니며 책읽기 힘들게하는 이유중 하나예요. 학교갈때 가방에 생수한병, 책한권, 거기다 수업할 원서들고 가면 거의 등산가는 기분이예요.

딸기 2007-01-16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저는 전철안에서 주로 책을 보는데, 정말 넘 무거워요!

드팀전 2007-01-1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막신>전 학교다닐때 책은 사물함에 놔두고 다녔는데...^^ 너무 빈몸만 갈 때가 있어 왠지 학생같아보이지 않을까봐..고무줄로 잠금하는 학교파일을 들고 다녔다는.
딸기>젤 쪽팔릴때가 사당역에서 책을 폈는데 동작역쯤 가서 졸기시작할때죠...(앞에 있던 사람들이 뭐라할까 ^^)

게으름뱅이_톰 2007-01-1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요. 하드커버로 안 만들어도 될 책까지 하드커버. 도서관에 뚜벅이로, 버스로 다니는 제게 무거운 책은 진짜....=.= 팔이 빠질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