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지음, 강운구 사진 / 호미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문재 산문집은 등푸른 고등어같다.그러나 바다를 막건너온 고등어는 아니다.발효의 시간을 거친,이제는 바다보다는 인간과 더 가까와 져 있는 고등어다.그의 문장은 소박한 밥상에 오른 고갈비처럼 맛깔스럽고 그 의미는 한 젓가락 꽉차게 잡히는 흰살처럼 두툼하다.그러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푸른 바다 심연을 누릴 때 처럼 생생하다.시인은 매일 만나는 새로운 것들을 기록하며 등의 푸른 빛이 퇴색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새해 처음 읽은 책이자 오랜 만에 읽은 산문집이다.결론 부터 말하자면 첫 걸음이  너무 사뿐하여 행복하다.김학철 선생의 <우렁이 속 같은 세상> 이후 가장 훌륭한 산문을 만난것 같다.김학철 선생의 산문이 우직한 감나무같았다면 이문재 시인의 산문은 물푸레나무같다.물론 김학철과 이문재 사이에 더 좋은 글들도 많았을 것이다.(나는 과거 유명한 고답적인 산문을 읽는 정도에서 만족했다.)그 중간에 산문을 접해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그러나 인연이 좋지 않았다.내 나이 또래의 어떤 여류시인의 관념적이며 화려한 산문을 읽다 내팽겨친게 1년도 넘은 일이다.그 후 산문과의 '절연'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과문한 탓에 좋은 글을 찾지 않았던 것이 새삼 부끄러워지기도 한다.어쨋거나 오랜 만에 만난 산문과의 해후가 '이문재 산문집'이었으니 분명 행운이다.(아무래도 올 한해 이 책을 여기 저기 많이 선물할 것 같다.) .

길 위에 살면서도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시인답게 이문재는 디지털화한 세상을 천천히 소요한다.이문재 시인의 글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느림' '아날로그' '몸' '걷기' 등이다.시인은 첫 장부터 '나는 아날로그다'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밝힌다.스스로 아날로그임을 부끄러워하는 나 같은 도시인들에게 이 선언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아날로그선언'은 내게 DSLR이 없는 것도MP3가 없는 것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또 90년대 후반쯤 나온 것으로 추측되는-글을 치면 가끔 한 줄씩 동시에 나타나기도 할 만큼 느려터진- LG IBM 컴퓨터도 불편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아날로그'는 '기다림'을 특징으로 한다.흔히 인스턴트 식품의 대명사인 '라면'조차 이문재 시인은 '컵라면'에 비하면 '기다림'과 '주체적 이용'이 있기 때문에 이시대의 마지막 음식이라고 이야기한다.만년필이 그렇고 파이프 담배가 그렇다.불편하지만 그것들을 이용하기 까지 '시간'이라는 것이 개입된다. 그 시간은 사물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짧은 명상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녹차를 마시는 시간을 예로 든다.

'끓는 물이 식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고 또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으며 상대방이 찻잔을 비우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와인이 숙성되고 녹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여름 내내 포도를 키운 먼 곳의 농부를 떠올릴 수 있다.비탈에서 녹차를 따는 아낙네의 깊은 눈망울을 그려 볼 수도 있다.포도를 영글게하고 녹차 잎을 틔워 내는 데에 참여한 우주 전체가 고마울 수도 있다.'

근대의 속도 지상주의는 우리 삶을 점점 피폐화 시키고 있다.사람들은 그것을 발전으로 받아들이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따뜻한 정서의 공간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사라져 간다.골목과 마당에 대한 시인의 생각에는 애틋함이 묻어난다.나이 든 사람의 '옛날이 좋았어' 라는 신세타령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잃어버리는 정서의 공간이 너무 크다.

'황혼병이라고 있다.저녁이 되면 공연히 불안 초조해지는 질병..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에는 골목이 제법 많았다. 이모집,작은집,큰엄마네같은 단골 주점이 그 골목안에 있었다....언제든 쳐들어갈 수 있는 선배나 친구의 하숙집,자취방도 그 골목과 모두 이어져 있었다....정동에서 인사동까지 걸어가는 골목길이 나를 다스리는데 한몫을 했다.골목이 특효약이었다.....모든 대도시가 골목을 박멸하고 있다...도시의 실핏줄이 바로 골목이다.실핏줄이 없는 인체가 식물 인간이듯이 골목이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니던 대학도 무지하게 한옥골목이 많았다.그 골목에 면한 친구 하숙방,버스 끊겨 갈데없는 청춘을 졸린 눈을 비비며 창문을 열고 친구가 맞아 주었다.어떤 때는 주인없는 방에 혼자 들어가 자고 있으면 저 멀리 골목에서 친구의 술에 취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도 햇다.저녁 내내 생각을 하고 술기운을 빌어 여자친구를 데리고간 골목길,순진한 입맞춤 한 번을 못하고 얼마나 똑같은 골목길을 뱅뱅 돌았는지.......오랫동안 가보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 골목길에는 사람의 향기가 나고 있을 것이다.고층 아파트 숲에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향기이다.

또한 '마당'에 대한 이문재 시인의 기억도 나를 애틋하게 만들었다.그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한다.'나는 안방이 아니라 마당에서 자랐다' 라고.그 만큼은 아니어도 예전에 내가 살던 집 역시 마당이 있었다.내 유년 시절 기억의 많은 부분은 그 마당에서 벌어졌다.하지만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에서 살게 될 우리 아기에겐 이런 기억은 별나라 이야기가 될 것이다.그 친구가 나이가 들면 '나는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 놀이터에서 자랐다'라고 쓸 지도 모른다.쓰고 나니 더욱 안타깝고 애틋하다.

그는 속도의 무한 경쟁 속에서 편리와 편의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적시한다.수많은 시인들의 감수성의 원천이 되었던 우체국은  편지가 사라지며  각종 공과금 영수증을 보내는 곳으로 바뀌었다.핸드폰은 우리의 새로운 신체가 되어 하늘과 땅,지하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일중독으로 몰아간다.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단 한 순간도 각종 모니터를 떠나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모니터는 눈의 창이고 마음의 창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이 '디지털 대세화'는 우리에게 '기다림'을 앗아가 버리고 하늘의 바라보던 푸른 눈빛과 고드름을 만지던 차가운 손을 잊어버리게 했다.시인은 말한다.잊어 버린 몸을 찾고 '발효의 시간'이 주는 미덕을 즐기자고 말이다.

시인은 우선 '언플러그'라는 작은 실천을 제시한다.그는 우리가 '전력의 노예'라고 말한다.도시의 삶에 전기가 빠지면 도시의 존립 자체가 없어진다.아파트 단지에 잠시 정전이 되면 난리가 난다.몇 시간 정전이 되면 9시 뉴스감이다.도시인들의 삶은 플러그를 꽂아 놓았을 때만 작동한다.행여 플러그가 뽑히면 심적으로 무척 불안해한다.그는 '언플러그'를 통해서 '자발적 망명'을 하라고 주문한다.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기 위해서 또 근대화의 속도에 잊혀진 나의 속도를 찾기 위해 그는 '걷기'라는 방법을 제안한다.걸음으로서 모든 풍경이 비로소 자기의 것이 되며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생태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도시인으로서 시인은 한계를 알고 있다.도시적 삶에 반항하면서도 도시에서 먹고 살고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중간자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자신에 대한 자기반성에 치열하다.

'나는 아마도 눈부시게 이 도시의 속도에 적응했던 것 같다.말로는,글로는,시로는 유목민의 속도를 떠들고,쓰고하면서도,내 구체적인 삶은 이 거대 도시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생태적인 삶에 대한 동경만 가득한 나같은 이들에게 시인이 보내는 자기반성의 메시지이다.어떤 선배가 올 한해의 다짐으로 '좀 더 까칠해지자' 라고 농담처럼 말했다.그 말이 가르키는 바는 다르겠지만 나 역시 올해 좀 더 나에게 까칠해져야 겠다고 다짐해본다.언제나 문제는 마음으로 부터 손까지의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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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1-09 22:16   좋아요 0 | URL
어제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책이에요.
기대하면서도 좀 두려워요.
그에게서 스승인 김훈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날까봐요.-,-;
(기우인가요?)

드팀전 2007-01-09 23:09   좋아요 0 | URL
걱정 안하셔도 될 듯 해요.스스로도 김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인정은 하지만 또 그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니까요...저널리스트적인 글쓰기 특징이 언뜻 보이는데 전 개인적으로 그런 글들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답니다.

잉크냄새 2007-01-16 17:12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하다 얼마전 읽은 <농담>이란 시에 이끌려 들어왔고 님의 리뷰로 굳히기 한판 들어가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드팀전 2007-01-16 18:01   좋아요 0 | URL
...글 내용중에 좀 중복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그냥 봐줍니다.^^ ..그정도야 하는 허용범위내여서..^^
 

[책읽기 365] 안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입력: 2007년 01월 03일 18:14:44
 
이 소설은 앙드레 말로가 1933년 당시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네번째로 출판했다. 내가 ‘인간의 조건’을 원어로 처음 읽은 것은 6·25 휴전 직후인 50년대 초, 시인·작가의 꿈을 꾸던 대학시절이었다. 내 불어가 서툴러서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내가 이 책에서 받은 강렬한 정신적·미학적 충격과 흥분은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이 소설이 이같이 내게 다가오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소설의 무대는 1920년대 청조로 대표되는 전통적 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그러나 다같이 서구적인 이념으로서 근대화라는 이름의 거대한 전환기를 맞은 중국 근대사의 한 작은 토막이다. 1927년 3월21일부터 4월12일 아침 6시까지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일어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의 몽타주로 구성되어 있다.

나를 사로잡은 이 소설의 힘은 그것의 드라마틱한 역사성 때문인가?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이 책이 보여준 정치적 이념 때문일까? 책은 정치소설이 아니다. 이 책에서 감지되는 사디스틱한 동시에 마조히스틱한 폭력성 때문일까? 이 소설은 최근 젊은이들의 공격적 본능에 의존하는 폭력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이 이 소설의 서정적이자 낭만적이고, 극적이자 수려한 문체와 표현력 때문일까? 약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실험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의 힘은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실존적 조건에 대한 작가 말로의 철학적, 아니 끈질긴 종교적 천착과 깊은 통찰력에서 그 원천을 찾을 수 있다. 소설 인간의 조건은 소설이기 이전에 인생의 숭고한 의미에 관한 깊은 사색록이다.

〈박이문 연세대 특별초빙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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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365] 탈20세기 대화록
입력: 2007년 01월 02일 18:17:18
 
떠나보낸 시간은 늘 격동의 시기로 기억되는 법이지만, 20세기는 특별히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세기였던 것 같다. ‘탈20세기 대화록’(아카넷)은 조인원 경희대 교수 등 국내 학자들이 9명의 세계적인 석학들과 가진 대담을 통해 21세기를 위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모색한 책이다. 석학들의 깊은 성찰이 대담자들의 입을 통해 훨씬 소화하기 쉬운 내용으로 전달된다.

20세기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21세기에도 여전히 인류 최대의 관심사인 환경위기를 진단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에코과학을 제시하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시작한 대화는 인간들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넘어 지구윤리를 정립하자는 한스 큉의 통찰에 이른다.

지구화 시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존 던의 전망과 ‘21세기 제국’의 흥망에 대한 안토니오 네그리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뤽 페리는 여전히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고 글렌 페이지는 비폭력 리더십을 역설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과 이노구치 다카시의 동북아 공동체에 대한 분석과 함께 로베르토 웅거는 또 다른 미래를 위한 혁명정치를 꿈꾼다. 이 모든 석학들을 만나고 나면 당신은 어느새 그들의 어깨 위에서 21세기를 내다보고 있을 것이다.

‘이념 이후의 시대를 말한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모든 이슈마다 극과 극으로 찢어지는 전근대적인 우리 사회에 특별히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사 청산에서 기인한 좌우 이념 갈등, 성장과 분배의 논쟁에 휘말려 갈피를 못 잡는 철부지 우리 경제, 중국의 때아닌 동북공정 반격에 무참히 꺾여버린 동북아 중심국가론….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공영의 21세기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당신에게 자신있게 이 책을 권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자연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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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님 페이퍼에도 한번 언급되었다.경향신문의 2007 새로운 시도.매일 한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읽기365'.첫번째 책은 최정호 교수의 <한국의 문화유산>이다.추천 글을 쓴 사람은 김지하시인이다.

신문 책소개가 뭐 신기하냐고 할 이도 있을 것이다.^^  '책읽기 365'가 어디 실리는지 보면 조금 달라질 것이다.1면 제호 아래 실린다. 신문에서 가장 눈에 잘띄는 부분이다..물론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신문사의 자구책이긴 하다.LG와 KB가 스폰서를 하고 있다.그럼에도 책을 좋아하는 알라딘 독자들에게는 경향신문의 실험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신문보는 재미가 하나 더 늘어났다.하여간 요즘 경향신문은 정말 칭찬할 만하다.신년 기획시리즈도 '차이와 공존'이라는 주제로 소외,소수자,한국사회의 편협함이 만든 갈등,집단주의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1/3의 책은 최재쳔교수가 추천한 <탈20세기 대화록>이다.(아침이어서 인터넷에는 안올라온듯 하다)

[책읽기 365] 한국의 문화유산-아리송한…불확실성의 美

입력: 2007년 01월 01일 18:12:39
 
한국 매스컴학의 대가인 최정호 교수는 극히 세련된 유럽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분이 한국 전통문화의 알짬들을, 그것도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이 세계화시대의 날카로운 요구에 대응하여 심오하면서도 간결하게 해석,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유산’이 그 책이다.

경제에 있어서의 산업화, 정치에 있어서의 민주화 이후, 문화에 있어서의 선진화를 생각하는 분들에게 유익한, 이른바 ‘한류’에는 안성맞춤인 책이 될 것이다.

포스트 한류의 과제이기도 한 콘텐츠와 미학의 문제가 15세기 세종대와 18세기 영·정조대, 그리고 이어서 21세기 한국 르네상스의 내용과 방향으로 뚜렷이 부각돼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문화철학의 핵심개념을 ‘생명성’으로 파악한 점 또한 예사롭지 않다. 19세기 생명예술의 시작인 ‘아르·누보’이후 현대유럽의 녹색예술이 그 깊은 아키타입을 제시하지 못함에 비추어 한국의 예술문화가 세계차원에서 오히려 그 계승자로 등장할 가능성에 대한 암시가 그것이다.

서구예술에 결여돼있는 역동적 혼돈성으로서의 한국적 생명의 멋에 대한 지적은 참으로 웅숭깊다. 일본 나라의 법륭사에 있는 ‘백제관음’을 ‘아리송한 불확실성(표渺)의 아름다움’ 또는 ‘꿈결같은 분위기’로 규정하거나 백제금동화로를 ‘혼돈적인 것’으로,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에 관통하는 미학을 ‘약동하는 청춘의 혼란한 아름다움’으로 인식하는 과정은 야나기 무네요시와 고유섭 이후 한국미의 숨은 중심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저자의 고향이기도 한 전북의 ‘판소리’ 이야기는 그 기이한 민중적 예술성이 전편을 압도하면서 일본이나 중국과는 비교도 되지않는 새로운 아시아적 콘텐츠를 한류의 앞날에 크게 열어놓고 있다.

〈김지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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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중사 세트 (2권 세트)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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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죽음이 있었다.선거로 뽑히지 않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1913-2006.12.26)가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전 미국인의 애도 속에 그의 장례가 치뤄질 것이다.미국 증권시장도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새해 첫 장을 일찍 마감하기로 했다.한 해를 넘기기 전 또 다른 죽음,후세인(1937-2006.12.30)전 이라크 대통령의 죽음이다.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상당히 빨리 형이 집행되었다.바그다드에 있는 과거 그의 정보부 건물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다른 양상의 두 죽음은 그들의 정치적 공과를 떠나서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복잡한 심정을 갖게 한다.후세인이 이라크 민중들에게 행한 반인권적 행동은 결코 그의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방식이 과연 정당했는가는 마음 속에 큰 질문으로 남는다.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을 대신에서 권좌에 오른 포드,사자에 대한 예의인지 언론은 그의 업적을 미화하기에 여념없다.중동평화를 앞당기고 소련과의 핵협상을 통해 핵불안을 줄였다는 식으로 말이다.그러나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는 그런 이야기 말고 숨겨진 진실들이 빼곡하다..

제럴드 포드는 1972년 이미 승산이 없다고 판단이 난 베트남전에 미련을 계속 남겼다. 1975년 4월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의회가 내가 요청하는 시간에 맞춰 7억 2200만 달러의 군사 원조를 가용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남베트남이 오늘날 베트남의 군사적 상황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메이어게스호 선원 납치 사건을 빌미로 캄보디어 본토를 폭격한다.선원 39명은 중국측의 중재로 풀려나기로 되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폭격은 감행되었다.엄청난 인명사상이 발생했다.이 많은 무고한 사상자에 대해 포드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종로에서 뺌맞고 한강에 화풀이라도 해야지 베트남에서 구겨진 미국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다는 이유의 폭격이다.또한  포드는 취임 한달 만에 닉슨에 대해 면책특권을 준다.<르몽드>지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발언을 했다. '닉슨을 제거함으로써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낳은 모든 구조와 그릇된 가치는 그대로 남게 되었다.' 하워드 진은 말한다.이것이 미국 주류가 정치를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정치,기업,군부가 유지하는 기성 체제는 형태를 바꾸고 공격에 대처하면서 기존 질서를 더욱 교묘한 형태로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는 당파성을 인식하라고 주문한다.<미국 민중사>를 이끄는 역사의 주인공들은 흑인,장애인,여자,노동자,인디언,그리고 피학살자 들이다.하워드 진은 자신이 당파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

'이 책은 일정한 방향으로 치우친 편향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다.그러나 나는 이런 편향에 얽매이지 않는데,왜냐하면 산더미처럼 쌓인 역사책들이 우리 모두를 다른 방향으로 크게 치우치게 만든 나머지-정부나 정치인들을 전율할 정도로 존중하게 만들고 민중들의 운동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게 만든 나머지-우리로서 굴종 상태로 속절없이 내몰리지 않기 위해 반대의 경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중도' '중립'에 우호적이다.스스로 '중도,중립' 적인 인물로 이미지 메이킹함으로써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게끔 노력한다.(아무리 그래봐야 -미안하게도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하워드 진은 이런 '합리적'인 사람들이 '구세주'에 의존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즉 위기의 시대를 탈출시켜줄 그런 사람말이다.그들은 4년에 한번씩 투표소에 가서 두 명의 부유한 앵글로 색슨계 백인 남자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구세주를 뽑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하워드 진은 이런 '구세주'라는 관념이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 문화 전반에 구축되어 왔다고 말한다.

표현이 '구세주'여서 괜한 공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구세주'를 찾는 사람들은 '내가 뭐 그리 큰 걸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그가 그렇게 완벽하리라고 생각한건 아닌데..' 라며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 고개를 돌릴 빌미를 줄 것 같다. 유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글을 읽어 보라는 말 이외에 달리 해줄 말이 없다.우리 나라의 경우만 들어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인데... 지난 대선 때- 그리고 실패가 드러나고 있는 - 현직 대통령에게 보낸 열광은 하워드 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구세주'관념에 다른 말이 아니다. 다른 접근의 정치적 지평을 이야기해도 그들은 늘 '현실'을 이야기 했으며  임기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선 크게 실망을 하여 이젠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져버렸다.(실망의 늪에  빠진 그분들에게 광명의 빛이 다시 비춰지길..)

하워드 진은 이 힘빠진 분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이 책을 썻음직하다?

 ".....이런 역사(민중의 역사)를 들춰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인간적 충동을 발견하기 위함이다.이것은 더 없이 깊은 비관주의의 시대에 조차 놀라운 가능성을 버리지 않기 위한 것이다."  (아멘!)

하워드진의 관점에서 사회의 부를 독점하는 1%를 제외하면 나머지 99%는 민중이다.그들 중 하층 계급을 빼고는 대개 체제의 간수 역할을 한다.자본주의가 가장 잘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바로 이 중간계급층이다.이들은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완충지대가 된다.그리고 체제가 스스로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양보해주는 특권들에 스스로 만족하며 상층계급으로 의식적으로 편입한다.하워드 진은 체제가 만들어 놓은 이 완충지대-중간계급-이 변혁을 위한 열쇠라고 믿는다.이 체제의 간수들이 만약 시스템에서 이탈하기 시작한다면 변혁은 급물살을 타게 되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변혁 운동이 이 '중간계급의 불만을 조직'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물론 중간계급을 하나의 층으로보는 일원화된 관점이 있다.또한 그들의 헤게모니를 분석하고 재전유하는 방식은 말하지 않는다.)신자유주의의 시대에는 이러한 외부의 상황 변화가 급격하게 만들어지고 있다.하층 계급으로 수많은 중간층이 편입되어 가는 추세다.

하워드 진은 이렇게 말한다.

"99%가운데 자기 자신을 똑같이 궁핍한 계층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체제의 간수들과 죄수들 가운데 그들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기존 체제는 점점 더 고립되고 무력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수많은 사람들이 굳게 결심한다면 엘리트들의 무기와 돈과 정보수단의 통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천 페이지가 넘는 <미국 민중사>의 수많은 학살과 봉기,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를 전부 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우리는 알고 있다.기존의 교과서도 이 정도는 가르친다. 현재의 사회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역사 속 사람들이 피를 흘렸는 지를.물론 교과서의 수치만 잘 외워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생각 바른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하지만 행간을 읽고 그 행간의 의미에 눈을 돌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알고 있다.우리의 일상적인 평화는 사실 핏덩어리 위에 구축된 것이라는 걸 말이다.사실 인류의 기원은 폭력과 희생아니던가..문명인이라고 하면서도 그 태곳적 카인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 무슨 무장봉기를 하자는 말은 아니다.다만 우리의 역사가 그런 지평위에 있었다는 것을 왜 외면하냐고 묻는 것이다.또한 아무런 일도 없어보이는 일상 바깥에는  이 책에 넘쳐나는 갈라진 목소리와 핏덩어리들이 사방에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아....알고 있다고...TV에서 봤다고...그렇다면 내년에는 지나가다 그 현장에 한번이라도 끼여서 그들의 고민을 좀 들어보자.모니터 안에서 바라보는 역사는 내 안방의 온도만큼이나 따뜻하다.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미국 민중사>에 나오는 현실도 차갑기만 하다.지금 길바닥에서 터져나오는 역사도 차갑다.그 차가운 바람 한번쯤 맞아보자.차가운 바람 한번 맞아보지 않으면서 사무실에서 교실에서 작업실에서 '정치는 허무해' '이제는 한국사회가 정말 염증나'라고 말하지는 말자.

일나 애버나시의 시의 한 구절

"나는 당신의 양심 긁는 소리, 나를 받아들여라"

<미국 민중사>를 올해 마지막으로 읽었다.한 줌의 지배세력의 욕심과 비인간적 자본주의와 전쟁이라는 장난질에 의해 죽어간 수 천 수 만 명의 이름없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한 해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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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12-31 18:31   좋아요 0 | URL
엄두를 못내고 있는 책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또 읽어보고 싶어지는.
결국 해를 넘기네요
리뷰를 읽고 나니 더욱 읽어야 할것 같네요 ^^

클리오 2006-12-31 22:5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정말 봐야 되는데.. 언제 진지하게 도전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별 다섯 리뷰의 도움을 받아, 꼭꼭 도전하렵니다!!! 뜬금없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드팀전 2007-01-01 10:08   좋아요 0 | URL
네...몽님도 클리오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저는 조금 전에 해운대에서 해뜨는 것 보고 회사로 들어왔습니다.이제 곧 집으로 들어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