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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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생뎐>은 2006년 동인문학상 최종후보까지 올랐다.그러나 상을 받지는 못했다.문학상이란 것이 그렇다.겉표지에 '00문학상 수상' 딱지를 하나 두르고 있으면 눈이 한번 더 간다.미스 코리아가 두른 어깨띠 마냥 '올해의 소설'띠를 두르면 그 아우라가 1년은 보장된다.한해가 지나가 또 다른 후보들이 신문 문화면을 채우면 고별 행진을 하며 스르르 기억에서 잊혀져간다.물론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아주 오래도록 문어다리보다 질기게 독자들의 입맛을 붇돋아주는 책들도 있다고 말이다.맞는 말이다.올해 동인문학상은 <틈새>라는 작품이 받았다.그럼 작년(2005년)에 무슨 책이 받았을까?....국내 문학을 내 몸처럼 아끼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결국 보편적으로 말해 문학상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2007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나왔는데 2006년 수상집을 들고 다니면 왠지 뒤깍이 같아보이기 때문이다.

문학상 수상작품이 그럴진대 아무리 아까운 탈락이라지만 후보작을 오래 기억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하지만 <신기생뎐>은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이다.오히려 '2006 00상' 이라는 시간을 한정하는 딱지가 붙어 있지 않기에 더 긴시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글의 처음을 문학상과 관련된 이야기로 풀어서 그렇지 사실 문학상이나 콩쿠르 우승이니 하는 것이 예술가치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어떤 유명한 사람이 그랬다나.."경쟁은 경마장에서 하는 것이지 예술 작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이현수라는 작가의 작품은 <신기생뎐>이 처음이다.신문에 난 동인문학상 최종후보군을 보고 보관함에 넣어두었다.물론 다른 몇몇 작품들도 함께.그러다가 수상발표가 난 후에야 책을 주문했다.1등 먹은 책보다 떨어진 책에 더 눈이 간 것은 아무래도 삐딱한 우월감이던가 아니면 곧 잊혀질 책에 대한 연민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좀 더 그럴싸한 이유를 대자면 '소재'의 특이성이 마음에 들었다.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긴 하지만 '일상사'의 질곡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소설들에 좀 지루함을 느껴왔다.후일담과 일상의 미묘함의 한 시대를 건너더니 요즘은 가벼움을 동반한 일탈이 패권을 잡는듯하다.무식을 무기로한 일반적 편견일 것이다.어쨋건 나의 부족한 식견은 한국 문학을 그렇게 재단하고 있었다.그 와중에 만난 <신기생뎐>의 소재는 특이해보였다.

내가 아는 기생이라봐야 책이나 영화로 만난게 전부다.대개 조선시대 황진이의 선후배들이다.가끔 정치드라마를 보면 정치인이나 군부 인사들이 모종의 계획을 도모하기 위해 만나는 요정,그리고 그 종업원 기생 정도가 가장 최근에 간접적으로 만난 기생이다.소설 <신기생뎐> 역시 허구이다.하지만 왠지 인간극장을 보는 듯 하다.즉 소설적 리얼리즘이 돋보인다는 말이다.부용각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한번쯤은소설이나 영화에서 만나봤음직한 내용들이다.상투적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원형의 기억같은 것을 툭툭 건드린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오래된 소나무 향기를 내뿜은 부용각,어머니의 자궁처럼 낮은 사람들의 사연과 욕망,회한을 묵묵히 그러나 포근하게 안아준다.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옴팡진 눈에 박복한 생김의 타박네는 뒤틀려있어 위태로와보이면서도 수백년 절을 지켜온 일주문의 기둥처럼  등굽어가는 부용각을 건사해낸다.부엌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는 시장터에서 만나는 욕쟁이 할머니이다.그녀가 내뱉는 말들은 하나의 운율을 이루어 잘만들어진 요리처럼 맛갈나다.욕을 들으며 즐거워지는 것은 그 욕이 세월의 향기속에 숙성되기 때문이다.세속적이지만 약아 빠지지 않았다.실속을 챙기지만 남을 해하지 않는다.무뚝뚝하지만 숭늉같이 -그 말 밖에 없다-그냥 숭늉같은 의리와 인정이 있다.연꽃의 대궁처럼 텅비어가는 기생들을 바라보며 그 텅빈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 부엌 흙냄새가 나는 타박네의 역할이다.타박네의 욕질과 적재적소의 옛스런 표현들은 <신기생뎐>의 비타민같다.몰락의 기운이 서려있는 기생들 속에서 그녀는 거울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빛과 같다.유려하게 흐르던 흐름은 타박네가 등장하는 순간 액센트를 받는다.셋 잇단음표가 되고 스타카토가 되어 소설의 스피드를 높인다.<신기생뎐>의 완급이 타박네의 말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이 재미있다.그리고 캐릭터를 보고 웃음을 띄는 순간, 소설속에서 튀어나와 '너는 뭐하는 종잔데...웃고 지랄이여' 라며 머리통을 칠 것 같은 등장인물의 생생함.작가 이현수의 은근한 공력이 느껴진다.

타박네가 소설의 한축을 이룬다고 하지만 <신기생뎐>의 주인공은 역시 기생들이다.이 소설에는 세 명의 기생이 등장한다.채련,오마담,미스 민.....채련과 오마담은 동기이고 미스 민은 차기 부용각의 기대주이다.이 세명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 왔지만 기생이라는 이름으로 똑같은 한의 정서를 지닌다.그리고 셋은 변증법적으로 하나가 되기도 한다.뛰어난 춤솜씨로 촉망받던 채련은 사랑을 얻을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여 이른나이에세상을 접는다.모두를 사랑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잔인한 운명을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유명한 소리꾼도 고개를 떨구개 만든다는 오마담은 채련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 운명과 대면한다.자기를 비우는 방법으로 소리를 지키고 부용각을 지킨다.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수많은 남자들에게 몸을 주고 정을 주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배신일 뿐이다.오마담은 서운해하지 않는다.그녀는 기생의 삶이 몸에 배게한 허무의 정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지는 벚꽃이 가는 봄을 원망하지 않듯이 대숲의 떠림을 간직한채 그녀는 기생의 운명을 따라간다.미스 민은 마지막 기생이라는 떨리는 감투를 써야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철길 옆의 가난은 그녀를 국악원 대신 기방으로 몰았다.오마담의 허무미와 다르게 그녀는 야망의 푸른빛이 서려있다.소설은 그녀의 기대와 다짐을 통해 사라져가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기방의 미래에 나지막한 희망을 싣는다.기생들의 캐릭터와 그녀들의 한을 풀어나가는 솜씨 역시 눈여겨볼만하다.특별한 세계를 살아온 그녀들의 이야기가 깨진 독에서 흘러내리는 달콤쌉싸름한 술처럼 흘러내린다.작가는 기생을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예인으로서도 파악한다.물론 예인과 기생은 성과 속의 세계로 나뉘어 살고 그렇게 인정받고 있지만 말이다.오마담의 소리,채련이나 미스민의 춤 등 묘사하는 작가의 호흡과 표현력도 근래 소설에서 만날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몇 번 씩 소리내서 읽어도 아깝지 않은 문장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신기생뎐>을 읽다가 책장 위에 꽂혀 있는 최명희의 <혼불>에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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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16 09:45   좋아요 0 | URL
님의 리뷰 멋집니다.^^

2007-01-24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1-24 12:24   좋아요 0 | URL
몇 번 씩 소리내서 읽어도 아깝잖은 문장들이 어떤 건지 한번 보고 싶군요. ^^
셋잇단음표와 스타카토... 요즘 피아노 배우다 보니 이런 거 힘들어요. ㅠㅠ 아직 건반 자리도 못찾아 뒤뚱거리면서도 멋지게 폼잡고 앉아서 우아한 선율을 연주해낼 날을 꿈꿉니다. ㅋㅋ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달팽이 2007-01-24 20:01   좋아요 0 | URL
리뷰가 너무 멋있어 책읽고 혹 실망할런지 모르지만...
일단 보관함으로 옮깁니다.
혼불은 마눌이 사둔것이 눈앞에 들어오는데...
아무래도 열권을 달아 읽을 공력이 딸리는지라...이 책을 먼저 주문해서 들어볼까...생각중..

드팀전 2007-01-25 14:07   좋아요 0 | URL
글샘님>좋아하실 겁니다.피아노는 저도 배우고 싶지만.지금은 좀 곤란.제가 피아노학원다닐때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는데...그게 늘 가슴의 한이되더군요.박철순이 피아노 건반보다 좋았습니다.
달팽이님>설마... 언감생심 졸렬한 리뷰가 어찌 책을 따라가겠습니까.재미있는 책이고 향기가 있습니다.사람들의 향기,세월의 향기 같은 것들...지난번 모임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심이 있어서 사진을 찍으신다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이 책이 딱 그러네요.사라져가는 기생들의 이야기니까...
혼불은 대학4학년때 읽었는데...좋았지요.8권인가쯤에는 사천왕상을 중심으로 한 권 통째로 불교문화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던것 같아요.그때부터 사찰에 가면 그 의미를 알아보며 꼼꼼히 보기시작했지요.사찰 장식의 이해 같은류의 책들도 사보고..^^...혼불10권이 1부로 알았는데..그 이후 작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멈춰선게 안타까왔습니다.최명희 작가는 모든 글을 육필로 썼다하더군요.원고지가 너덜 너덜한데 뒤에 첨가한 글을 메모지에 써서 본 원고에 붙였다더군요...혼불...그 책을 읽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아련해지는게...마음 한 켠에 바람 한점 휭 지나갑니다.
 

2006 내 맘대로 베스트 좋은 음반.

올해 산 음반이면서 가급적 올해 발매된-아니면 한동안 듣기 힘들었던-음반을 위주로 만들어봤다.올해 산 음반만으로 짜보면 조금 달라질 수 도 있겠지만...

1.교향곡

콜린 데이비스의 월튼 교향곡 1번은 올 하반기쯤 나온 걸로 기억한다.최근 들어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자체 레이블로 라이브 실황 음반을 제작하고 있다.LSO가 그중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월튼의 교향곡 1번은 영국 작곡가들이 쓴 교향곡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마이너 교향곡이다.텔덱의 앙드레 프레빈의 음반을 제일 먼저 들었다.프레빈과 비교하면 조금 심심하다.콜린 데이비스의 영국적 중용이 느껴지기도 한다.하지만 수준급의 연주임엔 틀림없다.

2.독주곡

그리그의 서정소품집.스비아토 슬라브 리히터의 발췌 연주이다.그리그의 서정 소품집은 그다지 귀에 꼽히지 않았다.작년인가 나왔던 안스네스의 연주 '그냥 좋은 연주네' 하는 생각이 든 정도 였지 애정을 가지고 CD장에서 뽑아들게 되는 연주는 아니었다.이 음반은 출시된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하여간 최근 몇 년간은 음반시장에서 만나기 힘든 음반이었다.리히터는 얼음을 들고 바라보는 세상처럼 그리그의 음악에 마법을 건다.나는 이 음반을 듣고나서야 비로소 그리그 서정 소품집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3.협주곡

올해는 협주곡을 그다지 많이 듣지 않았다.음반을 사더라도 시대를 거쳐 살아 남은 음반위주로 들었던 듯 하다.알프레드 브렌델-아바도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도 그런 음반 중에 하나이다.이 음반은 현재 필립스 본사 품절 상품이다.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 길은 일본 라이센스뿐이다.푸르니에의 브람스 첼로 소나타와 주문했는데 결국 이것만 겨우 구했다.아바도의 서포트가 든든하며 브렌델의 진지한 접근 역시 믿음이 간다.약간 답답한 구석이 없진 않지만..

4.실내악

폴 루이스와 레오폴드 트리오의 슈베르트 피아노 오중주 '송어' 음반이다.일단 폴 루이스라는 새로운 피아니스트에 관심을 가게 만들었다.옛 거장과는 다른 의미로 슈베르트의 유명한 곡을 이끌어간다.은빛 물결을 헤치며 송어가 파닥거린다.이 음반은 앞 뒤로 현악 삼중주가 커플링 되어 있다.음반의 구성 자체가 또 매력적이다.올해 실내악 쪽에서 좋은 음반을 무척 많이 만났다.이 음반은 그 중에 한 귀에 쏙 들어온 음반이다.물론 이게 이 음반이 시대를 뚫고 살아 남으리란는 걸 담보하진 않는다.

5.성악곡

 한스 크나퍼츠 부쉬와 함께 50년대 바이로이트를 이끌던 카일베르트의 오래된 녹음이 처음으로 스트레오 CD화 되었다.속속 등장하는 그의 '반지'시리즈는 곧바로 명반대열로 끼고 있다.<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역시 같은 선상에 있는 듯 하다.세기 초의 묵직한 분위기가 여실히 전해지는 음반이다.우데를 비롯해 가수진들도 고답적인 성악 미학을 그대로 보여준다.다이나믹과 거대한 분위기가 바그너 음악의 핵을 짚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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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22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장을 하고 있는 것들이 몇개 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6-12-2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시니 : 세빌리아의 이발사 - 한글자막 포함
유니버설뮤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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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니버셜에서 최근 나오는 한글 번역판 DVD는 여러모로 평가가 좋다.영어를 따라가느라 음악과 영상에 집중하기 힘든 점을 조금 덜어주기 때문이다.물론 영어가 우리말처럼 편안한 사람들이야 한글 읽는 거나 영어 읽는 거나 오십보 백보일것이다.그러나 대개는 모국어로 된 번역이 빨리 읽힌다.그런면에서 오페라 DVD가 라이센스로 보급되는 것은 오페라의 층을 넗히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우선 유니버셜의 DVD들은 특정 극장과 특정 시기에 상영된 작품들에 많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대개가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공연이 많다.그렇다보니 남자 주인공은 열에 아홉이 '플라시도 도밍고'이다. 공연물들이 주로 80년대 또는 90년대 초반에 녹화된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화질과 연출이 이 시대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그런면에서 볼 때 가장 최근에 나온 레알 마드리드 극장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그 동안의 유니버셜 DVD의 약점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주고 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공연물은 2005년 레알 마드리드 프로덕션의 새로운 작품이다.무대 연출가는 에밀리오 사기이다.공연이 시작되고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 위에서 세트가 만들어진다.검은 그림자들이 여기저기 오고 가면서 세비야의 하얀 거리를 만든다.무대의상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무채색의 세련된 조화는 2막 마지막 부분까지 이어진다.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극의 마지막 부분이 되면 무대 위는 검은 색과 흰색의 단단한 조화를 벗어던지고 총천연색으로 변한다.갑자기 조르지오 알마니에서 베네통으로 옷을 갈아입는 느낌이다.사랑하는 두연인의 결합을 축하해주기 위해 무대는 동화처럼 바뀌는 것이다.무대 연출가는 이렇게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무대의상의 전환을 생명력의 분출로 설명하고 있다.동화 같은 마지막 부분도 인상적이지만 무대 전체를 이끌고 가는 심플함 역시  매력적이다.흰색과 검은 색으로 구성된 옷을 입어도 스트라이프 패턴,물방울 패턴등을 활용하여 지루함을 없앤다.오히려 무대의 배경과 어울리는 깔끔함으로 기억된다.장면의 전환은 서곡과 마찬가지로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진다.무대를 만드는 과정등은 보너스 DVD에 실려 있다.오페라 무대가 대략 저렇게 만들어지는 구나를 훔쳐보는 즐거움이 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현역 최고의 로시나 가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랑에 목메달고 있는 알마비마 백작은 페루의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가 맡았다.몇 년전 부터 오페라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잘생긴 청년이다.전형적인 레제로 테너로 가볍고 탄력있는 목소리가 그를 동시대의 최고의 로시니 테너로 만들어가고 있다.1막 전반부부터 시작되는 카바티나부터 플로레즈는 사랑의 열정에 상기된 젊고 자신만만한 알마비마 백작의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나름대로 훤칠하게 생긴 외모 역시 비디오가 중요시되는 최근의 오페라 무대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큰 메리트가 되고 있다.

로시니의 현명한 여자 주인공 로지나 역은 스페인의 마리아 바요가 맡고 있다.그녀는 모차르트나 헨델음반등으로 국내에도 꽤 알려진 가수이다.플로레즈의 젊음에 비해 외모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인다.그러나 그녀의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개성적인 목소리는 현대적인 여성상으로서의 로지나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마리아 바요의 음색은 크리스탈처럼 맑다.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유리관을 막 빠져 나온  산소같은 생기가 느껴진다.사각거리는 홑이불을 펼치듯이 마리아 바요는 탄력 있는 가창을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이발사 피가로 역할을 맡은 피에트로 스파논리이다.그는 정말 호남이다.키도 크고 다리도 길다.생긴 것 역시 귀족적이다.플로레즈와 서있는 장면을 보면 어디가 귀족인지 잘 모르겠다.오지랖 넓은 중매쟁이 피가로로 보기엔 너무 멋있다.그는 마치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대농장 소유주처럼 생겼다.그의 가창 역시 희극적이 부분을 살리기에는 너무 점잖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돈 바질리오에 나오는 루제로 라이몬디는 일단 무척 반갑다.아무래도 자신감있는 목소리는 아니다.그래도  한 시대를 대표했던 베이스가수들 젊은 가수들 틈에서 만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바르톨로를 맡은 브루너 파라티코는 생긴 외모만큼 인상적인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외모는 나이든 늙은 의사와 너무 어울리지만 말이다.

새로운 프로덕션의 작품이지만  실험적이지는 않다.배경은 대략 계몽주의 시대쯤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실험성 보다는 -바그너나 베르디가 아닌 로시니니 만큼- 로맨틱하며 코믹한 오페라 부파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는 쪽을 택하고 있다.최근 <세빌리아의 이발사>녹음이나 DVD가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 공연물이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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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랑 아기가 처가에  올라간지 어느덧 열흘.원래 지난 주 토요일에 내려올 계획이었다.토요일에 아이를 데리러 올라갔다.그런데 다음날 눈이 많이 왔다.처갓집 뒤란의 장독대에 함박눈이 쌓였다.디지털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했다.그러나 아이 뒤치닥 거리 하느라 그 예쁜 장면을 찍지는 못했다.첫눈이 함박 내려버려서 아이와 함께 내려오지 못하고 그냥 혼자 기차를 탔다.텅빈 기차역에서 넓은 하늘가를 뒤덮고 있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눈 내리는 건 역시 넓은 하늘을 배경으로하고 봐야된다.앞이 탁트인 산중에서 바라보는게 가장 좋을 것 같다.하늘이 넓은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바라보는 것도 과히 나쁘진 않다.내리는 눈처럼 가볍게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강 위로 뛰어드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묘한 슬픔을 안겨준다.사라진다는 것이 저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것도 슬며시 자유낙하하여 차가운 강물 위로 종적을 감추는 눈송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쯤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부여앉고 싶은 마음이 절절해진다.

열흘째 돌아온 총각으로 지내고 있지만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퇴근 후 매일 하던 청소를 조금 뜸하게 한다는 것과 결혼후 꼬박 꼬박 챙겨먹던 아침을 자주 거른다는 것의 차이뿐이다.와이프가 있을 때는 매일 청소를 했다.하루는 청소기만 돌리고 다음날은 청소기 돌리고 한경희 스팀 청소기로 바닥을 한번 닦아준다.중간 중간 아기 목욕시키는 것 도와주고 설겆이도 하고 뭐 이러다 보면 대략 10시를 넘긴다.나는 투덜거리는 페미니스트인가 보다.어차피 하게 될 걸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 해서 본전도 못찾았다.그래도 힘든 건 사실이다.가끔은 내가 축구선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회사에서의 하루는 전반전에 지나지 않는다.퇴근길 운전하면서 대략 20분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다.음악을 들으며 하프타임의 달콤함을 누린다.집에 들어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다시 후반전이 시작된다.10시가 넘어서면 힘이 빠지고 좀 과장하면 정신이 몽롱하다.그냥 번잡스러운 마음에 몽롱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다행히 아이가 잠들어주면 와이프랑 10시 이후에 차라도 한잔 할 수 있다.그러나 어떨 때는 11시가 다 돼어서야 아이가 잠든다.와이프가 아기 재우고 씻는 동안 잠깐 책을 본다.그리고 아기 깨기전에 와이프도 눈을 부쳐야 하니까 불을 꺼줘야된다.몇 마디 말을 나누다 보면 둘 다 스르르 잠이 든다.

투덜이 페미니스트라 늘 투덜거리지만 와이프가 나보다 100배쯤 힘이 든다는 것은 알고 있다.새벽에 틈틈이 깨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아내의 몫이다.아기는 아토피 때문에 자다가도 자주 얼굴을 긁어댄다.그걸 내버려 둘 수는 없기때문에 그 때마다 아이를 안고 있거나 팔을 잡아 주어야한다.와이프는 그래서 자주 깨어날 수 밖에 없다.거기까진 도와주지 못한다.출근한다는 핑계로 그걸 면해보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아기 백일 축하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한참 오래된 듯 하다.그 이후의 사진은 아직 컴퓨터로 옮겨 놓질 않았다.지금의 예찬이에 비하면 저때는 더 아기같다.그사이 많이 컸다.지난 주 토요일에 올라갔더니 더 큰것 같다.대가족인 외갓집 식구들 사이에서 아이가 훌쩍 커버렸다.낯을 가리기 시작했다는 아내의 말에 행여 아빠 얼굴을 일주일 사이에 잊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했다.하지만 기우였다.우리 아들은 아빠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일주일 만에 만나서 번쩍 안았더니 아이가 까르르 하고 웃는다.아이와 함께 하는 '아빠볼 깐따삐아'놀이를 했다.(별거 아니다.아이의 양손을 잡고 내 볼을 톡톡 치며 입으로 '깐따비아'하고 노는 거다.내가 만든 건데 우리 아기를 웃기는데 잘 통한다.) 일주일 만인데도 우리 아기는 잊지 않고 천사 같이 '까르르'해주었다.옆에서 보시던 장인 어른이 '역시 니네 아빠 밖에 없구만..허허' 하면서 질투어린 웃음을 띄셨다.장인 어른의 질투어린 웃음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더 큰 목소리로 '깐따비아 ..예찬아..아빠 볼,아빠 볼'하며 놀았다.

일요일에 혼자 내려온 후 아기가 감기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 하다.아기가 첫 눈을 본 날 첫 감기에 든 셈이다.육아 일기에 그 내용을 썻다.첫 감기를 이기고 나면 더 튼튼해질 거라고 생각한다.열도 나고 코도 막혀서 힘들어 한단다.그러나 우리 아기 예찬이가 잘 견뎌내리라고 믿는다.(화이팅!!)

밤이 깊었다.아내와 아기가 무척 보고 싶은 밤이다.옷장에 걸려 있는 아기의 옷에서 '까르르'하는 아기의 웃음 소리가 쏟아진다.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와이프가 무척 그립다.사진에서 처럼 와이프는 참 예쁘다.내가 가끔 아내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하는 말이 '중부권 최고 미인'이다.여러모로 참 훌륭한 사람이다.이번 주 금요일은 아내의 생일이다.아무래도 함께 하진 못할 것 같다.다음 날이나 되어야 올라갈 수 있을테니까..어떻게 축하해주어야 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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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0 0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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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0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6-12-2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정말 고운 분이시네요. ... 저희 예찬이도 낯가림을 시작했는데, 아빠가 그렇게 잘 놀아줬는데도 아빠가 안고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아빠 품에서는 칭얼칭얼 거려서 제가 좀 민망해요... 아가들은 감기가 빗겨가지 않나봐요.. 전, 열도 안나고 해서 감기 걸린지도 모르다가, 너무 밤에 잠을 못자서 병원에 혹시나 하고 데려가봤다니까요.. 하여간 육아란, 엄마아빠 모두 화이팅해야 되는 일인가봐요..

느티나무 2006-12-2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 금요일은 아내의 생일이다." ㅋㅋ 제 아내도 이번 주 금요일이 생일인데요...참, 신기한 일도 다 있네요 ^^

2007-01-15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덧 올 한해도 보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시간이 날아가는 화살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지난 주 토요일 처갓집에 다녀왔다.아기 아토피 때문에 벽지 공사를 한번 해보기로 했다.한지로 만든 황토벽지가 괜찮다는 와이프 친구의 경험담을 믿고 시공키로 했다.큰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에 아기방과 거실만 도배하기로 했다.공사하는데 하루 온 종일 걸리기 때문에 겸사 겸사해서 일주일 외갓집 나들이를 결정했다.토요일에 아이와 바이바이 하고 그날 밤 내려와서 일요일 공사를 지켜봤다.도배사들이 도배지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도배를 끝내놓고 도배사들이 괜찮은 도배지같다고 칭찬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도배중 세심하게 처리하지 못한 부분 때문에 부분적 수정을 했다.다행히 도배사 부부가 '정 이상해지면 자신들이 한 롤을 구매해서 다시 부분 재시공하겠다.'라는 의사를 밝힐 정도로 책임감있는 분이었다.벽면이 조금 울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조금 나아져서 그냥 두기로 했다.

처음에는 일주일 간의 휴가같이 느껴졌다.그런데 돌아온 날 부터 아기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옷장에 넣어져 있는 아기 옷을 보면 그 옷을 입고 웃고 있던 녀석이 생각난다.유모차를 봐도 그 안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함께 있을 때는 늘 안고 있어야 했기에 힘들어했는데.....벌써 보고 싶어진다.

집에 가면 주로 청소하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시간들이 무척 소중하다.평소보다 훨씬 늦게 잠든다.<미국 민중사>를 보고 있는데 워낙 분량이 많아서 올해 다 볼 수 있을까 했다.그나마 최근에 시간이 좀 나서 어제 1권을 다 볼 수 있었다.다음 주에는 송년회등이 많아서 시간이 없을테니 남은 며칠동안 열심히 달려봐야겠다.

아기 생기면서 집에서 30분이상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올해 꼭 보려했으나 결국 내년으로 넘긴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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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13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조카들이 집에 오면 손이 많이 가고 망가지는 것 많고 내 시간 없고 힘든 것 많지만, 가고 나면 바로 너무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부모는 오죽할까 싶어요^^

드팀전 2006-12-1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내일 아기데리러 올라가야 해요.아기가 일주일 안봤다고 아빠얼굴 잃어버렸으면 어떡하나 걱정돼는군요.춥다는데 그것도 걱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