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주문한 DVD 하나 아직도 상품 준비중이다.도착 예정일은 19일.토요일이니 아마 회사에서 못받을 테고..결국 21일이 되어야 받을 수 있다.그것도 돼봐야 안다.고로 12일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원래 알라딘에서 음반이나 DVD 주문을 잘 하지 않는데..그냥 한번 해봤다가 (부산말로..)욕본다..

알라딘은 음반 DVD 판매 코너를 없애고 그냥 책에만 집중하는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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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eol 2006-08-1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고객팀 표종한 입니다. 출고지연으로 일정에 차질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지난 14일 준비된 상품을 우선 출고해드리고, 17일 경 지적하신 음반이 입수되어 출고해 드렸습니다. 잘 받으셨는 지 모르겠네요. 결과적으로 애초에 약속드린 일정에 맞추어 모든 상품을 배송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음반이나 DVD의 경우 도서와 달리 취급도매상이 다양하지 못하고 수량도 매우 제한적이다 보니 도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수나 유통이 원할하지 못한데요. 이로 인한 불편을 고객님들께서 겪고 계셔서 송구스럽습니다. 지적하신 점은 관련 부서에도 전하여 입수 시스템을 더 획기적으로 보강하는 노력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외국에서 한 1년 정도 살아 본 적 있다.이미 10년도 넘은 일이다.내가 살던 곳은 바다의 푸른 끄트머리가 살짝 보이던 언덕 위의 낡은  하숙집이었다.그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버스에서 내려 언덕길을 10분 가까이 올라서 있었다.덕분에 집값은 동네에서 가장 샀다. 집 주인은 슬로바키아 이민자였다. 연금과 집세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한달에 한번 월세를 주기 위해 2층에 있는 그의 방 문을 두드렸다.그  외엔 그를 만날 이유가 많지 않았다. 가끔 그는 1층에 내려와 불편한 건 없냐고 물어보는 정도였다.

 집 뒤편에 빨래를 널 수 있는 작은 잔디 마당이 있었다. 빨래를 널며 지붕들 사이로 바라보는 바다는 하얀 종이 위에 떨어진 파란 잉크같아 보였다. 내 방 창에선 내가 널어높은 빨래며 푸른 보자기자락 같은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중고 가게에서 산 CD플레이어는 김광석의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를 계속 노래하고 있었다. 난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중에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을 가장 좋아한다. 그 창 밖 풍경때문이다.

비록 1년 정도의 타향살이 였지만 이방인의 고립감과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었다.  U2의 <STAY>란 곡을 이어폰에 꼽고 언덕길을 오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낯선 지붕들과 낯선 담장,다른 향기가 나는 공기,처음보는 나무들과 꽃들...보노의 무덤덤한 목소리와 흑백톤의 선율,소리를 많이 위축시킨 드럼.....내가 느낀 자유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다.

고립감... 내가 느꼇던 고립감은 사회적 비존재로서 느끼는 감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몇 명의 외국인과 한국사람들 외엔 나의 사회적 관계는 전무했다.학교와 집,도서관...그나마 사회적 관계를 갖는 다는 것이 버스나 전철을 타며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과 그 곳 사람들이었다. 공부삼아 그곳 신문을 사서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그곳이 나의 생활터전이었음에도 그곳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마치 한국 TV에서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외신 사건 처럼 느껴졌다. 사건 사고들에도 그렇게 무심했는데 그 곳의 정치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끼리 모이면 '불바다론','성수대교붕괴'등 열올리며 이야기 나눌게 많았고 나의 관심도 그쪽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이게 이민자들의 정서와는 다를 것이다.이민과 단기 체류는 분명히 정체성에 큰 차이가 있다.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에는 이민자들의 향기가 묻어 있다. 작가가 인도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서가 그대로 반영되었을 수 밖에 없다. 그녀는 투명하고 평이한 문장으로 이민자들의 이야기-그들의 정체성,그들이 느낀 고립감,그들의 고민,그들의 자긍심-를 풀어간다.이 단편집의 원제목은 <질병의 통역사>이다.한국판 표지에도 <축복받은 집>이라고 한글로 크게 써있지만 위에는 <Interpreter of maladies>라고 쓰고 있다.이 책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각 단편은 짧지만 이민자들의 삶과 관련된 몇가지 단어들로 수렴된다.

먼저 <축복받은 집>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은 가족이다. 첫 단편 <잠시 동안의 일>에는 아이를 잃고 관계가 소원해진 인도인 부부가 등장한다. 부인에게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산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이성적으로는 남편의 부재를 이해한다.그러나 이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불편함은 남았다. 부인은 별거를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 잠시 동안의 일처럼 정전이 된다. 며칠간의 공사로 그 빛이 없는 시간은 지속된다.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그러나 모든 것은 순서대로.......며칠 간의 정전은 새로운 관계를 위한 카이오스다. 복중의 태아가 어둠 속에서 새 생명을 얻듯이 이 부부도 빛이 사라진 짧은 시간 속에 서로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최근에 인기 있었던 손예진,감우성이 나왔던 드라마. 제목은 생각이 안난다. 꾸준히 본게 아니어서. 그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파르자다 씨가 저녁식사에 왔을 때>는 멀리 떨어진 가족들에 대한 안위를 걱정하는 모든 이민자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파르자다씨의 가족은 파키스탄 분리전쟁의 전장에 놓여있었다. 파르자다씨의 가족들에 대한 마음은 어린 주인공의 눈을 통해 전해진다. 매일 찾아와 저녁을 함께 하던 파르자다씨는 전쟁 소식이 들리지 발걸음이 멀어진다. 주인공의 부모는 TV뉴스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주인공은 수 천킬로 미터 떨어진 파키스탄의 파르자다씨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어떠한 모습으로 어떠한 곳에 살고 있어도 가족을 그리워하고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음 누구에게나 똑같다. 아이는 나의 가족을 넘어서는 '위대한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가족'의 마음을 조금 더 사회적으로 확대시킨 이야기가 <비비 할다르의 치료기>이다. 비비 할다르는 아마 간질 환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치료를 다해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결혼'을 해야 낳는다라는 말이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친오빠 내외는 이러한 말을 무시하고 동생을 귀찮게 여긴다. 그리고 결국엔 아픈 동생을 버리고 도망가버린다. 비비 할다르를 보살펴 주는 것은 함께 사는 마을 사람들이다. 가난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작은 벽돌 한장이라도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선다. 심심해할 그녀를 위해 아이들도 보내 놀게 한다. 나의 가족에게 한정되기 쉬운 사랑이 마을 공동체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줌파 라히리의 마지막 소설<세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은  자전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라히리는 런던에서 태어나서 지금 미국 보스톤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도-유럽-미국이라는 세개의 대륙을 거쳐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인도의 가치를 자신의 세계 속에서 지켜가면서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린다. 소설 마지막에는 이민자들의 자긍심이 가득한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우주 비행사는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몇 시간 밖에 머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신세계에 거의 30년을 머물렀다....내가 여행한 그 모든 거리, 내가 해온 그 모든 식사,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내가 잠잤던 그 모든 방 등을 생각할 때 마나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평범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때로는 그것이 내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이 소설 외에도 <센 아주머니의 집><축복받은 집><섹시>의 단편에는 이민자들의 정체성과 갈등,내적 방황들이 비교적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다. 줌파 라히리는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은어들처럼 자심의 뿌리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소설로 표현해 냈다. 그녀의 애정은 담백하며 투명하다. 9편의 단편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며 각 단편이 하나의 짧은 단막극처럼 인상적이다.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이 책은 내가 샀는데 와이프가 먼저 읽었다. 와이프는 아이를 젖먹이며 줌파 라히리의 책을 읽었다.한쪽 품에는 아이를 ...방바닥에는 책을 놓고....하루 중 수유시간이 꽤 길기 때문에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요즘 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가족이 생겨서 좋다.^^ 책읽는 엄마와  엄마 품에 있는 건강하고 예쁜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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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6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08-18 01:50   좋아요 0 | URL
빙고! 이민자와 단기 체류자의 정체성은 분명 다르죠. 저도 항상 느끼곤 해요.
전 항상 단기체류만 했기 때문에, 외국 생활에 대한 선망(?) 을 갖고 있는 것일 수도...
이 책 몇년 전에 샀는데 아직 안 읽었어요. 무슨 공항에선가 [Interpreter of maladies]를 샀는데,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 <축복받은 집>이란걸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리골레토 공연 영상물 중에서 나름대로 인기가 높은 베로나 실황이다.

거실에 있는 dvd 플레이어로는 이 공연을 볼 수가 없다.이제 6주된 아가가 거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때여서 집안에서 걸어다닐 때도 조용 조용다닌다.하물며 오페라 감상이라니..

결국 아가가 자는 사이에 컴퓨터로 볼 수 밖에 없었다.컴퓨터로 보면 좋은게 화면 캡처가 쉽다는 것이다.특히 회사에서 몰래 몰래 보는 오페라 DVD는 훨씬 재미있다.ㅋㅋ

이 공연은 2001년 베로나 실황이다.리골레토 영상물 중 높은 평가를 받는 공연 물 중 하나이다.커다란 무대에서 공연을 진행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무척 작아보인다.하지만 어차피 현장에서 보는게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것이기에 dvd시청자들에겐 크게 핸디캡이 되지 않는다.오히려 실황의 자연스러움과 열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더 좋다.베로나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을 준다.

무대는 비교적 단촐하고 의상 역시 전통적인 스타일을 따른다.특출난 연출이 아니어서 무대연출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말이 필요없다.


배우들은 조금 낯선 성악가들이 많다.

만토바 공작을 맡은 마차도는 키가 좀 작다.극 초반에 집중력이 조금 떨어진다.시선처리도 어색함이 묻어난다.바람둥이 만토바 공장의 욕망을 표현하는 연기의 표현력은 조금 낮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부르고 난 후 앵콜 요청에 씨-익 하고 웃는다.관객 중에 몇 명이 아주 큰 목소리로 앵콜을 외친다.

실황 공연에서 볼 수 있는 현장감이다.

미성이지만 호소력이 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만토바를 맡았던 너무 유명한 가수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질다 역을 맡은 가수는일바 뮬라 이다.그녀의 외모는 얼핏 르네 플레밍을 닮았지만 플레밍에 비해 서민적(?)으로 생겼다.질다역 치고 왠지 산전 수전 다 겪은 주름이 눈이 띈다.그녀 역시 공연 초반에 시선 처리가 어색하고 극에 깊이 몰입되지 못한 인상을 준다.하지만 점차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다.

그녀의 가창은 훌륭하다.리골레토에게 만토바의 용서를 구하는 2중창에서는 레오 누치와 함께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고음 처리도 비교적 깨끗하며 짜릿한 맛이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의 알파와 오메가는 레오 누치 몫이다.역시 현역 최고의 리골레토라는 평이 전혀 손색이 없다. 공연 당시 60에 이른 나이 였음에도 대단한 카리스마로 베로나 무대를 장악한다.레오 누치의 카리스마에 다른 가수들은 그 빛을 잃는다.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눈빛과 감정의 표현이 리골레토 자체다.딸을 찾기 위해 만토바 공작의 집 앞에서 으르렁거리다 결국 비굴하게 자비를 구하는 장면에서는 전율이 돋는다.대단한 표현력이다.2004년인가 조수미와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가졌다고 하는데....

레오 누치의 연기와 노래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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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대담.정리 / 삼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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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의 봄이었다.<노자 도덕경>을 처음 만났다.어제 밤에 퍼부어 댔던 최루탄의 잔향을 맡으며 빈 강의실을 찾았다.햇살이 반쯤 드는 빈 강의실에서는 언제나 '학교냄새'가 났다.노자를 읽었던 건 고전에 대한 애정이자 약간의 의무감같은 것이었다.한자는 대략 운만 따라 가고고 한글로 풀이된 내용만 읽었다.알 듯 말 듯 했다.

당시 선배들과 주로 하던 사회과학 세미나에서 노자는 비판의 대상이었다.세미나는 유물론에 대한 이해를 주목적으로 했던 것들이었다.그 곳에서 노자나 석가의 가르침은 주관적 관념론으로 분류되었다. 그들의 가르침은 허무주의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어 왜곡된 현실을 변혁하기 보단 순응하는 반동적 철학으로 읽히곤 했다.고전이 주는 아우라에 대해 비판해보지 않았던 대학 신입생이었던 내게 신선한 시각이었다.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꼇을 뿐 고전 자체에 대해 내가 두고 있던 무게감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도 종교가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생각한다.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을 보면 나는 대개 그 내용에 동의한다.하지만 종교가 가진 심리적,문화적 기능 역시 인정한다. 혐오감이 가고 미신 같아 보이던 무속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결과적으로 나는 ' 종교로서의 종교를 부정'하고 사회,문화 현상으로서 종교를 바라보는 입장에 서 있다.

장일순 선생과 이현주 목사 역시 <노자 이야기> 에서 인류의 큰 가르침으로써 노자,석가,예수를 이야기한다.책은 기본적으로 <노자 도덕경>을 한 줄  한 줄 읽으며 대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노자의 해석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노자를 이해하기 위해 아니 절대적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불교도 기독교도 전부 인용된다.특히 이현주 목사는 전공을 살려 도덕경의 내용과 성경의 내용 중 동일한 말씀을 잘 찾아 내어 들려준다.책 전체에 수시로 등장하는 예들이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이런 비유가 있다.

도덕경 4장에 보면 유명한 '화기광하여 동기진하라'는 말씀이 있다.풀이하면 '그 빛을 감추어 먼지와 하나가 된다' 는 것이다.먼지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물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만물이 같은 뿌리를 두고 있으니 천지만물과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예수가 가난한 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면 그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라고 한 말 역시 이와 같은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여기서 예수가 말한 나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다.먼지이며 하늘이고 땅이며 우주이다.석가모니가 태어나면서 '천상천아 유아독존'이라고 했을 때 그 '아'에 해당하는 존재이다.물론 이 '아'라는 것 역시 우리가 말하는 self 와 다른 것이다.'아상'을 없앤 '나'이다. '자기를 넘어선 자기,천지와 하나 되어 있는 자기'인 것이다.

도덕경 16장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모든 것을 품음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왕이요 왕이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도요 도가 곧 영원함이니 몸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도의 불생불멸을 이야기하고 있다.이현주 목사는 여기서 '부활'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즉 부활이라는 것이 죽었던 사람이 다시 멀쩡하게 살아서 밥먹고 여행다니고 대소변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부활이라는 것은 썩을 육신의 옷을 벗고 영원히 썩지 않는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범신론적 관점을 가지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도 노자의 이야기로 수렴한다.여기에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은 다 하나다.모두 공이요 무다.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존재 하지 않는 존재이다.인간의 가치로 재단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며 도 자체이다.이러한 범신론적 유연함은 종교적 편벽함이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 신선함과 깊이로 큰 울림을 갖는다.

노자의 철학을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그럴 능력도 못되거니와 더욱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몇가지 키워드로 노자의 철학을 정리하는 것 정도로 머물러야 겠다. 

無爲 ...無常...反...樸... 根 ...德 ....道

시각을 조금 현재로 끌어 올려 노자를 보게 된다.노자의 말씀은 여전히 지금 사회에도 유의미한 구석이 많다.특히 '강함'에 대한 이야기는 지구촌 유일의 패권국가에 대한 비판으로 적절하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라는 말이 도덕경 76장에 나온다.단단하고 강한 것을 무력에 기대 힘의 외교를 추구하는 강대국에 빗댈 수 있다.노자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죽음의 무리다.노자는 정치에서도 무위를 강조했으며 큰 나라의 역할을 요구했다.61장에 보면 '큰 나라는 하류라 천하가 모이는 자리요 천하의 암컷이다....그러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작은 나라를 얻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큰 나라를 얻는다.' 하지만 현존하는 패권국가에게 이런 이상적인 상황을 기대하기란 무리다.칼로 일어선 자가 칼로 망한다는 말을 듣고 부여잡은 무기나 좀 내려놨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그나마 도덕경에서도 '도가 아니면 오래가지 못한다'라는 말로 패권국가의 몰락에 대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있어서 더운 여름에 위안이된다.

노자를 읽다가 보면 편협한 기독교적 해석에 대한 비판이 종종 나온다.그와 함께 노자나 도에 대한 과소비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든다.노자의 철학은 근본적인 인간과 세상의 변화를 겨누고 있다.절대적 진리를 말하는 논점에서 지극히 당연하다.하지만 노자의 철학 역시 현실의 모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도덕경 후반부에 이상주의적이긴 하지만 노자의 정치철학이 상당부분 담겨있다.하지만 노자나 도,선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노자의 현실 적합성은 뒤로 두는 경우가 많다.그들은 성인들의 말씀을 지극히 소아적으로 해석하여 마음의 평화만을 쫓는데 쓰고 만다.사회적 비겁함이나 무관심을 내적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가려는 듯 보인다.이 책의 저자인 장일순 선생은 그 대척점에 있다.실제로 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생활에서의 실천이 있었다.또 내면의 수양만큼이나 현실의 불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대응했다.장일순 선생은 그러한 현실적 정의가 무용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중요한 것은 옳바른 일을 하고 거기에 머문다거나 어떤 사심을 가지고 그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그런데 선이나 도를 마음깊이 믿는 다는 사람들 중에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는 경우가 많다.노자가 말하는 '무위'라는 것을 철저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면서 선시를 즐기고 화두를 나눈다.도에 대해 말하고 여운을 즐긴다....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행위들은 '도'를 소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서구가 zen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선문화를 상품화해낸 것 처럼 ...이현주 목사도 지적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자기기만'이다.한산의 시나 고승들의 게를 소비하면서 마치 '도'에 이르는 도정에 있다고 믿는 것일 뿐이다.그냥 그런 여백을 좋아하고 즐긴다고 하는게 솔직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앎을 실천하는지 빈방에서 홀로 벽을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어 볼 일이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힘든 날이 이어진고 있다.중동에서는  무지비한 폭격으로 무고한 아이들이 쓰러지고 있다.지난 폭우로 인한 수재민들은 제대로 정비도 못한 상태에서 폭염을 맞아 복구가 더욱 힘들다.추운 겨울도 가난한 이들에게는 힘들지만 더운 여름도 마찬가지이다.. 노자는 말한다.

'하늘의 도는 마치 활에 시위를 얹는 것과 같구나.높은 데는 누르고 낮은 데는 들어올리고 남은 것은 덜고 모자라는 것은 채운다.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모자라는 것을 채우나 사람의 도는 그와 같지 않아서 모자라는 것을 덜어 남는 것을 떠받든다.누가 능히 남는 것으로써 천하를 받들 것인가? '

모든게 같은 뿌리라면 가난하고 힘없는 자도 한 뿌리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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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8-08 22:38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만...
님께서 그 가난하고 힘없는 고통에 빠진자라면 어떻게 할까요?
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내가 살아야 한다면요...
피할 수 없다는 말 자체가 패배주의라고 생각하시지 않으신다면...
저는 그 고통을 수용하면서도 고통에 영혼이 찌들지 않고 살찌우는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물론 제 능력으로 잘 될런지 모르겠지만요..
가끔 이라크의 비극을 보면서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들으면서 내가 드는 생각은
이스라엘을 응징하여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되찾는 것도 아니고 고통에 빠진 사람 하나 하나의 삶 속에서 보면 "그들이 그 삶의 고통을 겪으며 더욱 영혼이 정신이 성숙해지기를 기원합니다."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왜 그런지 저도 몰라요..

이 책은 원래 3권으로 나뉘어서 출판되었는데...
마지막 한 권은 장일순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이현주 목사님 스스로 묻고 대답하면서 쓰셨다고 밝히고 있어요...
그런데도 어색한 점 없이 아주 자연스러워요...
어느 정도 자신을 비워 무위당 선생님의 마음으로 써내려갔던 것이라 생각해요..
이현주 목사님의 책들도 대중화되어버려 읽기 싫은 책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드팀전 2006-08-09 09:09   좋아요 0 | URL
저도 좋은 책이라 생각해요.님의 말씀이 맞습니다.고통 속에서도 마음 한 자락을 잡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그와 함께 현실의 어려움을 깨기 위한 안과 밖의 노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자꾸 안 만 강조하다보면 발 딛고 있는 현실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그렇다고 님이 현실을 외면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님이 하신 말씀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이해합니다.
예를 들어...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있습니다.처음에는 분노하겠지요.그리고 왜 하필이면 나야 라는 생각도 들겁니다.하지만 그 다음에는 내가 왜 해고 당했나 고민하고 나의 잘못은 무언가도 생각하겠지요.시간이 지나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다른 일자리를 찾아 볼 수도 있을겁니다.하지만 이와 병행되어야 하는 일이 회사의 부당해고에 부당성에 대해 싸우는 겁니다.그 싸움을 제가 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들을 지켜본 봐야 의하면 정말 외롭고 힘들고 눈물나는 싸움입니다.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에 비할 만큼 힘든 싸움입니다.노자가 말한 바도 싸움을 하지 말라는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또 마음의 평화만 찾으라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부당함에 대처하돼 사욕없이 옳바르게 싸우라는 거라 생각합니다.

레바논 폭격은 저도 진짜 많이 격분했습니다.님 말씀 처럼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거기서 끝일 수 밖에 없지만 .. 그나마 현실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길도 있더군요.주한 레바논 대사관에서 난민들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었지요.뭐 큰 도움은 안되겠지만 큰 도움이든 작은 도움이든 ..생각만 하는게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줄탁동시' 라는 말이 반드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닐 듯 합니다.내부의 평화를 찾는 노력과 현실의 치열함이 안과 밖에서 조우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오늘은 아침에 바람이 불어주네요.댓글 감사드립니다.

2007-06-27 0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가는 죽었다....목에는 죽기 전까지 아가가 물고 있었을 젖꼭지가 걸려있다.

아가는 차가운 시멘트의 분칠을 하고 식어 있다. 중동의 하늘을 덥히던 뜨거운 태양도 무자비한 폭탄의 화염도 이제 아가를 더 이상 괴롭히진 못할 것이다.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던 아가에게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레바논도 이스라엘도 미국도 아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들이었다.

아가에게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과 때를 넘기지 않는 따뜻한 한 컵의 우유면 충분했다.

아가의 웃음은 전쟁의 먼지 속에서도 반짝였을 것이다.그 곳에 평화와 사랑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아침 신문에서 이 사진을 보고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도 코 끝이 찡하고 눈물이 그렁거린다.감기 든 사람마냥 콧물을 훌쩍 거린다.

옆에 있는 직원들이 볼 까 고개를 자꾸 반대쪽으로 돌린다.

회색 가루를 뒤집어 쓴 카나의 죽은 아가를 보며

지금 집에서 누워 있을 한 달 남짓 된 나의 아가를 생각했다....

 

같은 아이다.

..

..

하늘 저편에 가 있을 사진 속 아가.....

파란 하늘과 작은 새의 지저귐,예쁜 꽃과 나비가 있을 그 곳에서 평화롭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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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08-0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사람이 이렇게 슬퍼해주고 기도해주면 이 아가, 좋은 곳에서 편히 쉴수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그렇게 할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