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사진의 주인공은 백고산이다.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다.97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국적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사진 왼쪽에 훈장 두 개가 번쩍인다.

최근에 신나라 레코드에서 백고산의 음반이 발매되었다

그는 한국전쟁 와중에 러시아로 유학을 갔다.거기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눈에 띄어 사사를 받는다.

이후 차이코프스키 콩쿨 종신 심사위원으로 위촉받는다.아시아 권에서는 최초였다고 한다.

그의 음반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번곡 무반주 아리랑 변주곡이다.너무 나 잘알려져 있는 곡.6분 가까외 되는 이 옛 녹음을 들으면 코 끝이 징해진다.여러 가지 아리랑을 들어 봤는데...아...정말 아름답고 짠하다.바흐 이후 잠시 단절 되었던 무반주 곡들이 20세기 들어서 많이 작곡되고 변주되었다.아리랑의 무반주 변주는 그 위대한 작품들에 견줄만 하다.물론 이게 보편성을 갖게 될 견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외에 고향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우리 농촌의 모습처럼 작고 소박하다.

후반부 곡들 중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행진곡 풍의 곡들이 있다.사실 곡 자체가 매력을 갖진 못한다.

예전에 정명화의 <한 꿈 그리움>이라는 첼로 음반이 나온 적이 있었다.정명훈이 피아노를 맡았다.그 음반에 수록된 <성불사의 밤 변주>가 생각난다.시냇물 소리와 목탁 소리로 시작되는 곡.첼로 현이 숨 넘어 갈 듯 거칠게 울었던 곡이다.

더운 여름날

백고산의 <아리랑>과 정명화의 <성불사의 밤>이 두 곡 무반주 연주.

찾아서 들어보셔야 한다.

(내가 음악 올리는 거 좀 알면 올려볼텐데..> 예전에 몇 번 해봤는데 어떤건 되고 어떤건 안되고...그래서 이젠 올리는 방법도 다 잊어버리고...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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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6-28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파일 주시면 바로 스트리밍 때려 드릴께요. 히힛^^;;;;

아... 일요일부터 어제까지 계속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다가 어제 밤 열한시에 집에 들어갔어요. 주말에 카레 해 놓은거 밥 해서 싸와 출장와서 숙직실에서 잔 선배들이랑 아침에 밥 비벼먹으면서 코다이 무반주 첼로를 들었는데... 밥 안 넘어가겠다고 뭐라고 하시더라구요. ㅋㅋㅋ

mannerist 2006-06-2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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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들어갔을 때는 손으로 쓰는 레포트가 대세였다.학교 문구점에서는 학교 로고가 박힌 푸른 표지의 레포트 용지를 팔았다.일부 잔머리 학생들은 선배들이 예전에 썻?것을 베끼던가 아니면 표지만 달랑 바꾸어서 냈다.표지만 바꾸어 제출해도 표지 이름은 볼펜으로 싸인펜으로 직접 서명했다.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워드프로세서 라는 걸로 작업해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이었다.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대세는 호떡 뒤집 듯이 바뀐다.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생의 신분이 되었다.레포트 제출을 하는데 90%가 면서기처럼 하얀 워드 프로세서 작업을 한 것들이었다.그 때는 그래도 아직 인터넷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서 손으로 자판 때려 넣기라는 수고는 했을 것이다.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으니 인터넷으로 레포트 대신 만들어 주는 사이트까지 생겼다.

사람들은 자신의 세대가 문화적 변이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아침과 저녘이 다른 기술문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세대여서 늘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하소연이다.나 역시 그 속성에 빗대어 본다면 내가 거쳐온 세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변화 중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적 삶이 인생의 절반을 차지 했다면 디지털화된 삶이 나머지 인생을 차지할 것이다.조금 더 지나면 디지털의 총화라고 불리는 '유비쿼터스'의 시대도 경험하게 될 듯 하다.

저자 김중혁과 나는 비슷한 세대이다.그 역시 아날로그적 소년기와 디지털적 청년기 속에 있었을 것이다.그의 소설은 자연스러운 변화처럼 느껴지는 이 두가지 삶의 방식 사이의 차이에 대해 말한다.그는 아날로그적 삶의 상징물들을 몇 개 제시한다.라디오,자전거,에스키모의 조각지도,타자기,연필 등이 그것이다.이 상징물들은 디지털 시대에 왕년에 홈런왕이었지만 지금은 벤치나 지키고 있는 4번타자 처럼 배치되어 있다.작가는 이 상징물들에 대한 애정을 통해 삶의 방식과 스피드에 문제를 제기한다.<무용지물 박물관>에 등장하는 라디오를 생각해 보자.(그 외 다른 단편에도 라디오는 가끔 등장한다) 주인공은 '압축하지 않는 건 죄악'이라는 믿음을 가진 디자이너다.압축은 지금은 일상에서도 흔한 단어지만 예전만해도 그렇게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었다.'압축파일'........ 음악 하나 뜨는데 예전에는 실시간이 필요했다.하지만 지금 환경에서는 10분의 1의 시간으로 압축된다.하지만 주인공은 라디오라는 올드 미디어를 접하며 새로운 묘사의 세계를 깨닫는다.장황하지만 상상력이 넘치는 세계.즉 아날로그적 세계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기회를 갖게되는 것이다.<회색괴물>의 주인공들은 타자기라는 상징에 집착한다.타자기를 두드릴 때 나는 톡톡톡하는 소리와 줄바꿈을 위해 넘기는 경쾌한 소리들.... 주인공은 아날로그 세계를 사랑니로 치환한다.강하고 목표가 명확한 충치먹은 어금니를 뽑아내고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사랑니를 그자리로 대치하는 것이다.

김중혁이 소설에서 건드리고 싶어하는 주제는 박민규 소설의 주제의식과 일견 겹친다.일종의 트렌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그 트렌드는 몇 단어들로 정리된다. '탈관습적인 삶'.'느린 삶의 속도' .....박민규가 김중혁에 비해 조금은 더 일탈적이며 해학적인 특징이 있을 뿐이다.<사 백 미터 마라톤>에서 주인공들은 스스로 삶의 스피드를 찾아가길 원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보여준다.400미터 선수인 친구와 몸의 역동성에 대한 무의식상태에서 무미건조한 삶을 꾸려가는 친구. 400미터는 전속력으로 뛰어야하는 경기이다.마라톤 같이 페이스 조절같은게 있을 수 없다.그저 출발 신호와 함께 100미터 달리기하는 속도로 결승테이프를 끊을 때까지 뛰어야한다.김중혁이 바라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도 이러한 전력 질주하는 400미터 선수와 유사할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처럼 400미터 이상은 뛸 수가 없다.그 이상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려서 뛸 수가 없는 것이다.또 한 친구는 달리기를 바라만 보았지 결코 트랙에 내려선 적이 없다.막상 달리고 싶은 충동에 땅으로 내려서지만 차마 발끝을 땔 수가 없다.이 둘은 천천히 자신들의 문제점을 들여다 본다.그리고 결론을 내린다.마라톤을 본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선생님에 의해 자신의 발이 400미터로 개조되었다는 것을 알게된다.또 한 친구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서 생애 최초로 바람을 가르는 스피드를 육화한다.그들은 곧 결론에 도달한다.... "내 스피드를 찾으면 된다는 것...그냥 존나 달려본면 된다는 것.."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에서 이눅씨 역시 자신만의 발명을 한다.일종의 '개념발명가',주인공인 사진기자는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의아해한다.하지만 점차 이눅이 자신의 공간 전체를 '하늘을 나는 배'로 전환시켰다는 것을 알고 흥분하게 된다.발명가 이눅은 기존의 관념으로 보면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는 사람과 같다.하지만 그는 관습과 타인의 시선을 넘어서는 세계를 스스로 꾸려나가는 발명가였다.

김중혁의 소설은 트렌드처럼 되어 버린 주제를 생활 속 상징들을 가지고 직조해낸다.그가 책 후기에서 자신을 레고에 비유한다.이것은 그의 소설 속 소재들이 그 문화의 실타래 속에서 풀려나온 것임을 말한다.그래서 인지 그의 소설에는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코드들이 수시로 등장한다.이 소품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친근함과 재기발랄함을 느끼게 해 줄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이름일 뿐이다.<펭귄뉴스>에 나오는 펭귄뉴스 창단멤버들 엘비스 코스텔로(그래도 이사람은 좀 낫다..SHE라는 곡이 영화에 쓰여 인기있었으니)조이 라몬,시드 비셔스등에 대해 아시는가?( 라몬스의 조이라몬과 섹스피스톨스의 시드비셔스....펑크를 들으면 알고 아님 모른다) .<회색 괴물>에 나오는 1초에 13연타를 쳤다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에서 이눅씨의 공룡뱃속 같은 연구실에서 흘러나오던 사계의 연주자 앤드류 맨츠는...

 다양한 레고조각(저자가 말한 자신을 구성한다고 한..)들이 소설 속에 과시적으로 배치된 것이 과욕이라고 생각한다.또한 이러한 과욕은 시대적 배경까지 헛갈리게 한다.저자가 듣는 음악들이 주인공들의 삶 속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어색하게 만든다.예를 들어 <사 백 미터 마라톤>을 보면 소설 속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요즘은 아무도 정비 같은 건 받지 않는다.자동차의 동력원이 전기로 바뀌고 나서 자동차는 가전제품 같은 형편없는 골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다' .추론컨대 소설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이다.10년 -20년 뒤의 시대가 분명하다.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다시 90년대로 돌아온다.이 시대에 사는  오토바이 스피드 클럽 친구들이 '레이지 어게인스트 머신'을 듣는다.그리고 DVD방에 가서 그들의 라이브 실황을 본다.물론 작가의 상상력이 시대를 혼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상상력과 작가가 경험한 문화적 세계의 충돌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마치 요즘 고등학교 폭주족 아이들이 듀런 듀런,신디로퍼 등의 음악을 듣는 꼴이다.하지만 어쩌겠는가.주인공들은 불쌍하게도 작가의 음악적 취향에 따라 시대 배경 쯤은 무시하고 옛날 음악을 들어주어야하니 말이다.<펭귄뉴스>의 주인공은 77년 생이다.그런데 대화 도중 이런 말이 나온다. "난 동시 상영관이 좋아.왼쪽 화면에선 텔레비전 크기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오른쪽에선 대형화면으로 <영웅본색>을 상영하는거야" ...푸하하. 77년생이면 <영웅본색>이 나왔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 찌질이들이었다.그들의 대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나? 있다면 딱 한가지 경우다.작가가 스스로의 경험을 캐릭터에게 뒤집어 씌운 경우이다.작가 세대에 <영웅본색>은 강력한 문화코드였다.그게 갑자기 여기서 불쑥 튀어나온다.그외에도 작가가 불쑥 불쑥 들이대는 경우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펭귄뉴스>에서는 보드리야르에 대한 대중적 이해의 예를 그대로 인용한다.주인공은 TV 속 전쟁을 보며 삶이 따분하다고 느낀다.'모니터 속 전쟁' 개념은 언론이 시뮬라르크의 세계를 설명할 때 가장 빈번이 등장하는 예이다.'지난  걸프전 때 CNN은...어쩌구 저쩌구..'하면서 말이다.

또한 작가는 너무 직접적인 방법으로 '탈관습화된 삶'을 계몽한다.그 방향은 두고온 아날로그화된 삶이다.<바나나 주식회사><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등 여러 작품에서 작가의 주제에 대한 강박은 너무 직접적으로 소설 속에 반영된다.마치 이러저러한 우화를 들려주고 이렇게 되야되는거 아닙니까...라고 호소하는 듯 하다.이런 스타일이 꼭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그러나 작가를 구성하는 수많은 문화코드와 오버랩되면서 이 역시 작가의 과잉의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저자의 세대는 문화적 축복 속에 살았던 세대이다.집집마다 라디오가 있었고 초등학교 때 컬러 TV라는 것도 나왔다.또한 음반,영화 직배,해외 스포츠중계,PC,인터넷 등등을 통해 어느 세대보다 풍족한 문화자본을 축적할 기회를 얻었다. 이것이 소설 속 한 요소로 표현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하지만 소설을 보면서 불쑥 불쑥 소설 속으로 치고들어오고 싶은 작가가 보여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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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7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도둑 2006-08-09 19:07   좋아요 0 | URL
조금 전에 읽기를 마쳤는데 조금 낯설고 황망하여(?) 다른 분들의 견해는 어떠한지 읽어보다가...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 리뷰 좋네요. 저도 아날로그 세대가 가진 소재주의 소설로 읽었습니다. 결국은 그렇고 그런 소설은 쓰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한, 또한 그렇고 그런 소설에 지친 독자를 위한 노력이지 않을까 비교적 너그러운(?) 생각을 해봅니다.

옥진 2007-05-16 16:50   좋아요 0 | URL
펭귄 뉴스 마이 리뷰를 전부 읽어봤는데, 진심으로 공정한 유일한 리뷰인 것 같습니다. 추천 누르고 갑니다.
 

내 컴퓨터상....

알라딘 메인페이지는 화면 전체에 100%차는데 왜 내 서재로 로그인 하면 서재 90%정도 나오고 그  오른쪽은 흰색으로 짤릴까요?

그냥 보통때처럼 글을 썼는데 어떨때는 옆으로 퍼져서 밑에 바를 드랙해야지 전체글을 다 볼 수 있을까요?퍼오기 원문이 넓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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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6-1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런데요. 왜그럴까요? 다른 포털사이트에서 펌한건 가끔 그렇게 되긴하던데 정말 궁금하네요. 다른분은 안그러실까요?

mannerist 2006-06-1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둘 다 1024 * 786에 최적화되있긴 한데, 알라딘 메인페이지는 가운데 정렬이고 알라딘 마을은 왼쪽 정렬이네요.

2. 대게 에디터 상에서 600 dot정도는 강제 정렬 되도록 테그를 짠 모양인데, 가끔 퍼올 때 원래 사진이나 단락 크기대로 출력되도록 포함된 테그가 있을 경우엔 그렇게 보이더군요. =)

가을산 2006-06-18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 말씀을 다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특히 2번) 음.... 그렇구나~~~ ^^

2006-06-21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6-28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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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강아지들이 이미 붉은 혓바닥을 길게 내밀었다.날씨가 덥다.꼼짝 하기 싫다.그래도 좋은 음악이 나오면 난 가끔 각종 댄스를 선보인다.대내적으로 나는 스스로 인정하는 베스트 댄서다.하지만 대외적으로 또는 객관적으로 나는 몸치에 가깝다.이미 어느 정도 검증을 거쳐 공인된 것 같다.몇 년 전 인가..함께 일하는 날라리 직원이 임창정이 부른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성실하게 몇 번을 가르쳐 주었는데 나의 동작은 거의 박수홍의 뒷걸음 댄스 수준이었다.(다행히 나는 박수홍의 뒷걸음 댄스는 좀 한다고 자부한다.)결국 그 친구가 내게 댄서로서의 사망선고를 내렸다.  "왠만하면 하지마..걍 술이나 마셔"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에서 혼자 또는 와이프 앞에서 각종 댄스를 선보인다.노래에  따라 리듬에 따라 동작을 살짝 살짝 바꾸어가면서...최근에는 좀 늘었다는 칭찬에 우쭐해진 적도 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를 읽고 나니 갑자기 열성인자의 총합에 가까운 내 몸 속의 댄스바이러스가 기지개를 슬금 슬금 편다.첨봐왐바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와준다면 리뷰를 잠시 접고 몸 한 번 풀어주는건데 요즘 그 노래는 잘 안나온다. (나도 춤추고 싶다!! )

책 제목부터 이야기 하자. 섹시하지 않은가?  올 상반기에 나온 책 제목 중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이다.하늘나라에 있는 엠마 골드만이 이 사실을 안다면 그녀 역시 지루박 스탭을 밟았을 것같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의 부제는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이다.크게 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철이도 영이도 좋아하는 '문화'와 관련된 내용들이다.90년대에 가장 남용되었던 말이 '문화'다. 현실 정치에 실망한 좌파 운동권도 일상영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문화연구'로 뛰어들었다. 정부에서는 '현대자동차 100대'운운하며 '문화상품'의 중요성에 대해 독을 올렸다.좌파든 우파든 정치권이든 비정치권이든 전부 '문화' 앞에서 발을 모으고 꼬리를 흔들며 혓바닥을 낼름 낼름 거렸다. 전국적이며 전세대적이며 또 전이념적인 '문화'의 침공은 영이도 철이도 순이도 똘이도 다..'문화' 앞에는 너그럽게 만들었다. '문화의 탈정치화가 바짝 끈을 조인것이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의 저자 최세진은 '탈정치화'된 문화에 '정치성'을 부여한다.(책 팔아 주려면 이런 말하면 안되는데..애들은 정치라는 말만 나오면 무슨 개 닭보듯 하니까) 사실 뭘 부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원래 문화예술 역시 정치적 지형을 갖는 것이고 그게 당연한 것이다.저자가 말하는 좌파적 상상력은 현재 너무도 일상적으로 여기는 문화현상들에 대해 한번 돌이켜 보는 힘을 말한다.즉 혹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매트릭스 아닐까...내가 혹시 어느 외계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게 아닐까...(이건 좀 웃긴 비약이지만..초등학교 4학년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즘도 가끔..우리별이 그립고..^^) 좌파적 상상력은 문화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다.하지만 현실의 장벽은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에서 겨우 겨우 뚫고 들어가는 최첨단 건물들 보다 훨씬 강고하다.여기에 의문을 가지려면 '다르게보기'를 위한 좌파적 상상력이 필요한것이다.

이 책 1장은 주로 인터넷 게임,해커,SF소설등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되새김질 한다.'게임이 그냥 게임이 아니다' 라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한다.지배자와 동일시 하는 게임.게임 이용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늘 지배자의 시선에 둔다.하지만 실제로 그들 게임 이용자들 다수는 세상의 SCV들이다.죽어라 자원(노동) 캐다고 적들이 치고 들어오면 집 지키려고 몸빵으로 적들을 막는다.노동은 하는데 적은 안막는다고..??(전쟁나면 예비군 안나가나..다 소집된다.걱정마시라.물론 나는 민방위다.민방위 SCV) 저자는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속성에 대해 관심을 두길 주장한다.또한 세상에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게임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한 게임제작단들이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개인적으로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며 관심을 가지게된 것 중에 하나가 SF소설이다.SF가 장르문학의 편견때문에 폄하된 것이 사실인데 내가 그 증거다.난 SF소설을 한 권도 아직 보질 않았다.읽어야 할 책들도 많은데 평가절하하는 SF까지 섭렵하라는 것은 무리다.그런데 이 책을 보다가 SF가 정치적,사회과학적 내용들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눈길이 머물렀다.생각해보면 조지오웰 같은 작가들의 소설은 장르적으로 SF임에 틀림없다.그런데 SF에 대한 저평가가 '조지 오웰은 조지 오웰이고 SF는 SF지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듯 하다.어슐러 K 르귄의 <빼앗긴 자들><어둠의 왼손>등은 언제 시간나면 꼭 봐야겠다.

2장은 유명한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의 정치적 의미들을 읽어낸다.바그너,쇼스타코비치,존 레논,피카소 등이다.70년대 피카소 크레파스 사장이 정보부에 끌려갔다는 것은 뒤에 나오는 음악 검열의 사례와 더불어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그리고 첨바왐바는 의외였다.사실 첨바왐바의 "Tubthumping"은 너무 유명한 노래다.또한 그 노래만 신나게 들었지 그 그룹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그맘때 쯤 해체,재결함 소식이 난무한 RATM 소식은 관심이 갖지만 말이다.첨바왐바가 노동계급과 함께 음악을 하는 단체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다.또한 그들이 상업 미디어 회사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방식 역시 비판의 여부를 떠나 흥미롭고 고민해 볼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3장은 체게바라,라쿠카라차,민중불교,조선혁명선언 등 뭐 하나로 카테고리화시키기 어렵다.그래도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다.또한 체 게바라 T 셔츠와 관련된 기억이 떠올라서 더욱 그랬다.

몇년 전에 체 게바라 T셔츠를 한 장 사고 싶었던 적이 있다.그 유명한 꼬르다가 찍은 사진이 프린트돼어 있는 T셔츠 말이다.하지만 아직 까지 우리 집 빨랫대에서 체 게바라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 체 게바라 대신 존 콜트레인의 T셔츠가 바람에 펄럭인다.Sheet of sound....브브브..(내가 만든 테너 색소폰 소리의 의성어다.맘에 드는데 ..훗) 체 게바라 T셔츠에 눈독만 들이고 포기한 것은 잘한 일이다.혁명도 팔리는 시대에 그 상업화된 혁명을 사는 짓은 하지 않는게 내 작은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저자 역시 체의 혁명성은 사라지고 상업성만 남은 현상태를 질타한다.지하철 노조 파업한다고 '지들 돈 좀 올려달라고 저 난리다'라고 하면서 가슴에는 체의 T 셔츠를 떡 걸치고 있는 대학생들은 없어져야 한다.또한 체의 T셔츠를 입은 동네 깍두기 아저씨들도..아마 그들에겐 체 게바라가 정말 "잘생긴 전사가 풍기는 1960년대의 낭만적이미지" 정도 일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고민 거리를 던져 주는 것은 4장인 < 인터넷 광장>이다.2002년 촛불 시위에서 보여준 네티즌들의 동력과 운동방식 또한 겉돌았던 기존 운동조직의 모습들이 비판적 관점으로 씌여있다.핵심은 네티즌이라는 새로운 사회주체의 등장에 따라 기존 운동조직 역시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를 수용하고 이들의 동력을 끌어갈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저자가 민주노총 정보통신 부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위기의식이라는 것이 더 절실하다.개인적으로 네티즌에 대해 저자처럼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인터넷을 도구적으로 이해하는 편인 나로서는 과연 네티즌이라는게 존재하는 가에 까지 생각이 미친다.물론 존재하지만 어떻게 개념지어야 하는가..분명 기존의 틀로는 어렵다.네티즌의 성격에 대한 고민은 개인적으로 좀 더 두고 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이 책 말미에 나오는 '인터넷이 평등하다는 편견을 버려'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봐야할 글이다. 기억해야 할 말들만 정리하자.

 '인터넷이라는 광장의 연단은 소수의 자본이 독점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네티즌은 극소수의 영리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습득하고 있다'

' 미디어 회사들의 주요한 임무는 수용자들을 모아서 광고회사에 넘겨주는 것이며 그들의 주 생산물은 이용자들의 노동 또는 이용자들의 노동력이다.............즉 이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으로 전화하는 과정이다.'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리뷰작업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으로 전화하는 과정인셈이다.)

이 책은 책 제목부터 섹시하며 내용도 여러모로 즐겁고 재미있다.한달음에 읽기에도 편안할 만큼 쉽고 평이하게 쓰여졌다.또한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예를 들면 빅브라더 사이트,좌파적 미디어 단체 사이트,바람구두 연방사이트등등- 인터넷 활용자들이 관심을 갖고 들어가서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는 유용한 사이트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단 본인이 노동자임에도 '노동'에 '노'자만 들어도 '노'래지시는 분이나 '좌'석 버스 타고 다니시면서도 '좌'측도 한번 보라면 몸에 선홍색 반점이 생기시는 분들은 읽지마시라.안 읽어도 된다.그냥 계속 하던 대로 '직장에서 성공하는 100가지 계략' 을 보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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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7-06 08:04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점을 꼭 나쁘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문화만큼 일상영역과 밀접하게 부대끼며 대중의 거부감이 적은 것도 없습니다.대중을 이해하고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그 대중들이 접촉하고 수용하는 지점에 현미경을 대야만 합니다.좌파 문화연구에 대한 혐의는 -제대로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기에-그 과정이 상당히 짧은 시간내에 이루어졌다는 것에 혐의를 두고 있다는 정도입니다.결과적으로 눈칫밥을 먹을 수 있는 조건이 좀 만들어졌던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문화현상에 대한 좌파적 연구와 해석 작업에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제네시스....영국의 프러그레시브락 그룹.솔로로 독립해서 히트곡도 많이 낸 필 콜린스가 드럼치던 그룹.스티브 해킷이라는 멋진 기타리스트가 있던 그룹....

이 음반들 옛날에는 정말 구하기 하늘에 별따기 였다.빽판으로라도 구하면 흥분...!!!

CD 재발매 이후 간간히 보여지기도 했지만 ..... EMI 에서 새로운 시리즈로 발매했다.1만원도 안되는 가격.

지금 이 음반을 다시 사진 않겠지만....아는 사람은 안다. 이 음반이 매니아들이 소장하고 싶어했던 음반 목록에 꼭 들어가던 음반이라는 것은... 하긴 벅스에서도 왼쪽 음반은 서비스를 했던 기억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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