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 중에 많은 것들이 묻혀 들어 갑니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미 FTA문제입니다.월드컵 16강을 가건 못가건 월드컵은 순간의 흥분인데 비해 FTA의 결과는 향후 10년 아니 20년 이상 한국 사회의 지형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월드컵에 대한 관심의 10분의 1만 국민들의 관심이 모여진다면 앞으로의 전개도 달라질텐데...가장 나쁜 건 역시 언론입니다.9시 뉴스의 40분 중 어떨때는 20분이 축구이야기입니다.축구를 좋아하는 저이지만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프로축구 구장은 늘 텅텅비어 있으면서...이러니 월드컵의 과잉열기를 한국의 민족중심주의니 국가주의니 하는 비판들이 나오는 것이지요.

한미FTA처럼 국가적 관심은 아니지만 월드컵의 광풍에 묻혀 가는 사건이 시각장애인 안마독점권 위헌 결정입니다.지난 25일이었던 걸로 기억나네요.헌법재판소가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직업선택 자유에 위배된다면서 위헌결정을 내렸습니다.3년전에도 똑같은 소송이 있었는데 그때는 5:4로 합헌 결정이 내렸지요.3년 사이에 헌재의 결정이 뒤바뀐 것입니다.

객관과 합리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시각장애인만 특정 직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그들이 이해가지만 법적으로는 옳지않은 것 아니냐?  이런 접근이 아마 법을 글로만 이해하는 분들이 가장 쉽게 저지르는 합리적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법리 논쟁은 잘 모르겠지만 결국 이 문제 역시 '자유권'과 '사회적 평등권' 사이의 시각차이겠지요.

법적으로 공평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런 판단을 하기 전에 반드시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한번 쯤은 생각해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셔야 한다고 믿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은 많은 분들이 중도장애자입니다.다른 말로 하면 어느 정도 시력을 갖추다가 점점 시력을 잃게 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물론 거기에도 고도약시가 있고 아예 아무것도 안보이는 전맹이 있습니다.하지만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설령 조금 보인다해도 장애판정을 받은 시각장애인들은 거의 형태만 알아 볼 뿐 입니다.그러니 사회에 나와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겠지요.그래서 그들은 대개 안마직에 종사합니다.눈이 안보여도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안마 밖에 없습니다.그 외 소수 대학 졸업자들이 복지사로 일합니다.

가장 형편이 풍족하지 못한 시각장애인들은  안마 이외에는 아무런 소득원이 없습니다.그들은 대게 기초생활대상자가 되어 살아갑니다.한달에 60-70만원을 가지고 한 가족이 살아갑니다.시각 장애인 가장은 어떻게 든 살아보기 위해 안마를 배우고 일자리를 찾습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시각장애인 부인은 아이들과 임대아파트에 삽니다.그녀 역시 기초생활대상자입니다.생계를 위해 점자를 배우고-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의 점자 해독률은 2%가 조금 넘습니다- 안마 교육을 받습니다.하지만 헌재의 위헌 결정은 이들이 살아보려는 작은 희망마저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장애인 복지의 가장 기본은 그들에게 온정을 배푸는게 아니라 그들이 일반인들 처럼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학교 보내는 것입니다.그런데 그런 기회를 더 제공해야하는 대한민국은 오히려 그들의 일자리를 나누자고 합니다.그게 평등이고 공평이라고 합니다.10개를 가진 사람이 오직 단 1개의 생존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것까지 가져 와서 11개를 놓고 우리 공평하게 출발하자고 합니다.이런 평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평등입니까? 

내일은 명동성당에서 천여명 모이는 시각장애인집회가 있습니다.전국에 있는 맹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대거 상경집회를 합니다....좀 열받아서 하는 말인데...마음 속의 행복을 찾으라는 말들... 이 분들 앞에서  당당하게 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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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음반가게에서 또 질렀다

....1.가사 없는 바그너 일명 <무언의 반지>조지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연주

니벨룽의 반지 하이라이트판이다.제목에서 처럼 가사는 빠지고 일부 발췌해서 관현악으로 편곡했다.

2.바그너 관현악 서곡/주세페시노폴리-뉴욕필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개성있는 지휘자 시노폴리의 바그너 서곡집이다.이 음반은 예전에 <CD가이드>라는 음악잡지에서 바그너 서곡집부분 최고 추천음반들 중 하나로 뽑힌적도 있다.카라얀EMI판에 비해 뉴욕필의 개성이 살아난다고 해야 하나....좀 아쉬운건 전에 들었던 수입판의 예리함이 왠지 들리지 않는다는 것.

3..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1,2번 ....하인리히 쉬프의 첼로

4.비발디 비올라 디아모르를 위한 협주곡.

비올라 디아모르는 바이올린 처럼 연주하는 비올라의 원조쯤되는 악기이다.요즘 고음악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올리 디감바에 비해 연주 판이 많지 않다.수록곡 중 일부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도 쓰였다.

5.이미지가 없어서 못올리는 랄프 본 윌리엄스의 전원교향곡..앙드레 프레빈 지휘

.........  비발디 음반하고 랄프 본 윌리엄스는 국내 인터넷에는 등록도 안된 폐반인듯

바그너 음반은 지금도 구하려면 구할 수 있는...쉬프 연주는 대개 품절..중고음반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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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붉은꽃 피었다 옛날 배롱나무 아래 볼 발갛게 앉았던 여자가 생각났다.

시골 여관 뒷마당이었을 게다 나는 눈 속에 들어앉은 여자와 평생 솥단지 걸어놓고 뜨건 밥 함께 먹으며 살고 싶었다

배롱나무 아래 여자는 간밤의 정염을 양 볼에 되살려내는 중이던가 배롱나무 꽃주머니 지칠줄 모르고 매달 듯 그토록 간절한 십년 십년 또 오년이 하룻밤처럼 후딱 지나갔다

꽃 피기 전 배롱나무 거기 선 줄 모르는 청년에게 말한다 열정의 밤 보낸 뒤 배롱나무 아래 함께 있어봐라 그게 정오 무렵이면 더 좋다 여자 두 뺨이 배롱나무 꽃불 켜고 쳐다보는 이 눈 속으로 그 꽃불 넌지시 건너온다면

빨리 솥단지 앉히고 함께 뜨건 점심 해 자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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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의 답사적 가치는 어떤 면에서는 히회마을보다도 꽃뫼  뒤편 병산서원이 더크다고 할 수 있다. 병산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도 건재한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이다.

병산서원은 그런 인문적 역사적 의의말고 미술사적으로 말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으로 한 국건축사의 백미이다.

유홍준 청장이 교수시절 써서 인문학 베스트에 올랐던 <나의 문화답사기>에 나오는 글이다.

몇 년전 이던가...강원도 오대산에서 사나흘 쉬고 내려 오던 길에 안동 병산서원에 들렀다.무척 더운 여름날이었다.여름 날 병산 서원은 배롱나무 천국이었다.미끈한 피부에 오래된 고목 처럼 비비 꼬인 나무에는 붉은 꽃이 활짝 피었었다.선비들이 좋아해서 많이 심었다는 배롱나무는 꽃이 여름내 간다.또 백일홍나무라고도 한다.나무표피를 간지르면 잎이 바르르 떨린다고 해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단다.실제로 해보지는 않았다.지금 갑자기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병산서원 만대루에 앉아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책 한 권 펼쳐읽고 싶다.

 남해 고속도로에서 순천을 지나가다보면 순천 외곽쪽에 배롱나무 길이 있다. 올 봄에 그 길을 가다가 길게 심어져 있는 배롱나무들을 보았다.청주에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처럼 도시의 명물이 될 듯하다.물론 그렇게 되려면 나무가  더 커야하니 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그래도 여름에 배롱나무 꽃이 붉게 피면 그 도로가 아름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부산진역 가까운 곳에도 천연기념물 배롱나무가 있다.동래정씨들이 800년전에 심은 나무라고 한다.부산진 역 앞으로만 다녀서 실제 찾아가보진 못했다.올 여름에 배롱나무 꽃이 만개하면 들러보고 싶다.

우리 아파트 앞 화단에도 배롱나무가 몇 그루있다. 배롱나무 꽃과 함께 여름이 올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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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토 칸타빌레 (구) 문지 스펙트럼 1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악보 위 쪽에 뭐라고 씌어 있는지 읽어볼래? " 피아노 선생이 물었다.

창 밖에서 비명 소리가 두 차례 들렸다.석양이 엷어지고 있었다.나의 소나티네 소리는 짧고 강한 비명 소리에 흩어졌다.

안 데바레드-나의 어머니-를 그 곳으로 이끈 것은 손톱이 부서질 듯 칠판을 긁는 강렬한 절규였다.그 비명은 천년의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그녀를 깨웠다.엉켜버린 핏덩어리 상태로 가슴 속에서 가라앉아 있던 욕망이 깊고 으슥한 숨을 쉬었다. 엉컹퀴처럼 붉은 태양과 느릿 느릿 건너온 바닷바람도 그녀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바닷가로 향한 카페에서 그와 함께 하고 있는 나의 어머니 안 데바레드를 본다. 심각함과 호기심에 달뜬 그녀는 나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다.카페 여주인이 돌로 구획된 도로 위에 엉거주춤 서있는 나를 바라본다.그녀의 시선은 지갑을 주운 사람을 목격하고도 귀찮은 일에 엃히기 싫어 모른 척하는 행인을 닮았다.나는 도로로 난 창을 흘깃 거리며 저녁 놀을 벗삼는다.하지만 내 마음은 카페 안을 행하고 있다. 안 데바레드는 포도주로 점점 얼굴이 저녁 놀을 닮아간다.앞으로도 자주 그럴 것이다.

그녀는 나의 피아노레슨이 끝나면 카페로 향했다.그리고 그를 만났다.그녀는 내가 새로운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하지만  모래언덕 끝에 있는 거대한 집안에 있을 때처럼 황량한 도시 속에서도 나의 어울림은 겉돌았다. 머릿속은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와 나의 어머니 안 데바레드로 가득했다.그녀의 삶ㄹ은 중대한 변화를 앞에 두고 있다.사실 그녀의 삶은 포름알데히드 속의 토끼 배아 같았다.부족함은 없지만 또한 열정도 없다.숨을 쉬고 있지만 무의식적 움직임에 다름아니다.마치 잘라 놓은 생선 머리가 잘려진 몸뚱이를 바라보며 아가미를 펄떡거리듯..

 충격적인 살인사건! 살인사건보다 더 날카로운 외침.목련꽃의 알싸함을 모두 앗아가버렸다.그녀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이 바뀐 것이다. 

그녀가 그를 만나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그녀 속에 내재된 어떤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을까? 바다를 건너온 태양이 불은 열매가 되어 나의 얼굴을 덮고 있는 동안 내 머릿속은 그 생각뿐이었다.

때는 여름을 향하고 있었다.맑은 하늘이 도시의 배경이 되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삶이 한번 돌아가서 다시 오지 않는 무엇이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녀의 삶은 지나친 부러움과 자기 만족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처럼 지루했을 것이다.화창한 햇살과 향기로운 바람도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안개처럼 모호했을 뿐이다.그녀는 그를 만난 것이다.그는 처음부터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그는 오래도록 그녀를 보아 왔으며 그녀를 기다려왔다.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녀가 그를 찾아낸 것 뿐이다.그 남자 쇼뱅은 철강노동자치고는 섬세한 사람이며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다.나와 시선이 부딪치는 것을 어색해하긴 했지만...

그녀는 그 충격적인 살인 사건의 내막을 알고 싶어한다.그는 그 사건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은 자신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적 변화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하루 하루 가까와 오는 결말에 대해서.그 둘에게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강렬한 자극은 떠나버린 버스의 뒷모습을 하고 있다.그녀는 어느 중요한 모임이 있는 날 약속을 무시했다.모래언덕을 넘어오는 길에 그녀의 눈가는 젖어있었다.쇼뱅과 그녀는 서로를 확인했던 것 같다.살인 사건의 남자가 여자의 목을 조르듯이 그녀의 목선에 머물던 그의 시선만으로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누구나 자신의 안에 있는 욕망을 만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모데라코 칸타빌레'의 삶은 긴장감을 내포하고 있다.그 부드러운 노래가락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같은 것이다.결국 강렬한 자극 역시 노래가락 처럼 흩어져 버린 것이다. 그녀와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결말을 예고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쇼뱅은 그녀에게 1분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순간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영원의 또다른 이름이다.그녀의 두려움은 그녀의 욕망을 다시 붙들어 맨다.그들은 서로를 죽임으로써 짧았지만 강렬했던 기억을 영원으로 돌린다.마치 살인 사건의 주인공들이 실제 죽음으로 사랑을 이루었듯이.

그녀는 더 이상 카페로 발길을 옮기지 않을 것이다.나 역시 피아노 선생에게 가기 위해 그녀와 함께 하지못할 것이다.맑은 날씨가 아무리 이어진다해도..아무리 붉은 태양이 바닷바람을 산호빛에서 아마빛으로 바꾸어 놓더라도... 카페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 여주인이 문득 문득 바다 건너를 그리워 할 지라도...

삶의 배경은 또 다시 모데라토 칸타빌레...그 평온한 불안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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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6-04 20:29   좋아요 0 | URL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은, 늘 이상한 무력감을 안겨주곤 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였죠...

드팀전 2006-06-05 09:10   좋아요 0 | URL
다른 소설은 안봐서 모르겠어요.ㅜㅜ 무력감도 삶의 일부일테니.
 



맨 앞에 서진 못하였지만
맨 나중까지 남을 수는 있어요

남보다 뛰어난 논리를 갖추지도 못했고
몇마디 말로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 또한 없지만
한번 먹은 마음만은 버리지 않아요

 

함께 가는 길 뒷자리에 소리없이 섞여 있지만
옳다고 선택한 길이면 끝가지 가려 해요
꽃 지던 그 봄에 이 길에 발디뎌
그 꽃 다시 살려내고 데려가던 바람이
어느새 앞머리 하얗게 표백해버렸는데

앞에 서서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이들이
참을성 없이 말을 갈아타고
옷 바꿔 입는 것 여러번 보았지요

 

따라갈 수 없는 가장 가파른 목소리
내는 사람들 이젠 믿지 않아요

아직도 맨 앞에 설 수 있는 사람 못된다는 걸
잘 알지만 이 세월 속에
드릴 수 있는 말씀은 한가지예요
맨 나중까지 남을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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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어느 글에다 인용했던 시인데 요즘 다시 한 번 생각나서 올립니다.5.31 지방선거의 결과를 두고 . 실망한 사람들도 있고 또 여봐라는 듯 쾌재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갑론을박 선거 결과에 따른 논쟁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현실이 원래 그랬다는 사람부터 현실이 이럴 줄이야 라는 사람까지.....

치열한 논쟁에 등장하는 수많은 통계와 또 유명한 학자들의 이름에 주눅들기 십상입니다.가능한 모든 지식과 논리를 동원한 논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처음에는 다른 의견의 게재라는 선의의 의도가 점점 지나갈 수록 그 싸움에서 지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어떤 분들은 논쟁에서 통계와 수치,이론의 부족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합니다.맞받아 칠 수 없기에 또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수 없기에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바뀌기도 합니다.물론 이러한 과정도 논리적 오류를 수정해가고 풍부하게 만드는 도상에 있는 것이기에 토론이 주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겹겹이 진행되다 보면 가끔 잊곤 하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칼을 마구 서로 휘두르는데  내가 칼을 휘두르고 있는 곳이 어디이며 또 내가 왜 칼을 휘드르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 말입니다.제게 중요한 것은 이론적 과정이나 수많은 통계수치가 아닙니다.논리는 주장을 만들고 얼마든지 갖다 붙일 수 있습니다.그 주장의 오류에 대해서 비판을 해도 또다른 반비판의 주장으로 한층더 강화 시켜나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논리적 토론이 주목적이 된 경우도 봅니다.가끔 어떤 분들은 00주의자,00론자 라고 상대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00붙이면 왠지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그런데 그거야 말로 논쟁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술적인 부분일 뿐입니다. 넌 채식주의자야..그래서 나빠.그래 너는 육식주의자구나 넌 그래서 나쁜거야...넌 편식주의자야 그건 정말 나쁘지...넌 잡식주의자니..결국 그런 이도 저도 아닌 주의자가 되는 구나 그건 더 나빠.....백날 해봐야 끝이 없습니다.글쓰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쓰기 편하게 하기 위해 규정짓는 말일 뿐입니다. 

또한 어느 정치단체나 정치인이나 도덕적 완벽주의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입니다.민주 노총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곳 예를 들겠습니다.민주노총 아저씨들은 무지하게 가부장적 이며 권위주의적입니다.또한 사무실 금연해놓았는데도 담배 벅벅 피워댐니다.현장투쟁자들의 강한 마초적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것인지..어쨋거나 노동운동가 아저씨들은 남성우월주의자가 많습니다.하지만 이것이 그들이 가진 정치적 지향의 비판 단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그것은 내부적으로 비판하여 개선해 나가야 하는 상황인거지 그것이 그들 단체 전체가 지향하는 목표를 부정하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몇 몇 여성 단체에서는 그런 사실들을 비판하면서 "지네 집에서도 민주적으로 못하고 가부장적으로 하는 것들이 무슨 바른 노동자 정치를 하겠다고.."라는 혀짧은 소리를 합니다.맞는 말입니다만  그것이 이들 집단을 도매급으로 싸잡아 매도하는 논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주절 주절말도 많은데...작금의 상황을 보다 보니 ..엉클어진 말만 늘어집니다.중요한 것은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 아닌가 합니다.통계자료와 이론과 논쟁이 종사하는데를 생각해야 합니다. 정작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생각의 지향"입니다.즉 나의 생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가 아닐까 합니다.좁은 의미에서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사실 선거때 정도 입니다.하지만 일상은 선거라는 그 짧은 시간보다 훨씬 광범위한 시간입니다 .

 나보다 더 약한 사람,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웃음 한 번 더 줄 수 있는 마음...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현장 최전선에 나서든 최후방에 나서든 그건 중요한게 아닙니다. 앞에 나설 기회가 있으면 붉은 두건을 매시고 그게 아닐 때는 ....서울역 KTX 여승무원들이 목소리 높여 외칠 때 멀리 지나갔어도 다시 돌아가서 서명해주고 그녀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화이팅'이라고 외쳐주면 됩니다.그래도 결국 바뀐 것이 없다구요?  아닐겁니다. 역사는 그렇게 바뀌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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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4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