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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평점 :
어렸을 때 우리 동네는 가끔 '천막 극장'이 들어왔다.동네 친구들과 함께 총싸움하고 벽돌치기 하던 공터에 갑자기 못 보던 어른들이 나타난다.우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침입자들이 하는 양을 요리조리 살폈다.동네 아이들의 시선을 등 뒤로 하고 그들은 뚝딱 뚝딱 하던 일을 계속했다.공사 현장을 지켜보는 것이 지루해 질 때쯤 돼면 여기 저기서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아 ....밥 먹으러 와라' '준아...그만 놀고 들어와서 씻어.' 떨어지는 노을 빛을 받으며 친구들은 휑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 우리들이 놀던 그 공터에는 까만 천을 두룬 거대한 가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었다.'천막극장'이다.꺼끌 꺼글한 소나무 기둥과 이어 붙인 밧줄들로 지탱되어 있는 천막 극장은 거대한 코키리 같았다.동네 아이들의 호기심은 그 코끼리 내부에 있었다.아이들은 몰래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겁많던 나는 호기롭게 내부로 들어간 형들이 별일 없다는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천막 극장 앞에 쭈볏쭈볏 서있었다.형들이 극장 천을 살짝 들어 올리며 괜찮다는 손짓을 보내면 고개를 숙이고 벌어진 틈으로 머리를 디밀었다.낮 시간 동안 천막극장 안은 아무 것도 없었다.그냥 맨 땅에 흰 벽면,그리고 중간 중간 송진내를 풍기는 소나무 기둥들이 전부였다.그래도 아이들은 마치 실내 체육관에 들어온 듯 즐거워했다.하지만 신세계에 적응하기도 전에 아저씨들의 호통에 도망치 듯 천막 극장을 빠져 나와야만 했다.그리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 동네 천막극장은 3개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했다.한 편은 만화영화 였고 두 번째 영화는 '일지매' '각시탈'같은 국산 액션영화였다.마지막 영화는 성인 영화였는데 짐작만 할 뿐 당시 상영했던 영화의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두번째 영화가 끝나면 대개 8시쯤 되었던 것 같다.그 다음부터 까만 코끼리 내부는 어른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캄캄한 밤에도 켜져있던 공장 서치라이트가 천막극장 영사기에서 쏘는 빛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와 영화 무용담을 나누며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영화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멀티 플렉스에서는 매주 영화가 바뀌어 올라온다.푸른 조명과 팝콘,박스 오피스의 친절함 속에 영화는 '베스킨라빈스 31'의 아이스크림처럼 소비되고 있다.나는 영화가 과잉 소비되고 있는 사실이 몹시 불쾌하다.나는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장르라고 믿는다..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영화는 체리 주빌레를 먹을 것인가 아몬드 피스타치오를 먹을 것인 가하는 상품소비의 대상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활동사진이란 이름으로 영화가 등장하고 난 이후 영화를 둘러싼 상업성과 예술성과의 갈등은 클래식한 질문이다. 영화는 초기 제작 단계부터 자본과 협업이란 형태-즉 산업의 한 형식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그 특성으로 인해 영화는 다른 순수예술-편의상-에 비해 깊이 있는 장르로 존중 받지 못했다.또한 상업성이란 족쇄는 만드는 이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는 영화관에서 파는 팝콘과 별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했다.실제로 나는 우리 영화 관객들 대부분이 영화와 영화관의 팝콘을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면 대개 아침 회의 후 직원들은 그런 말을 나눈다. '00영화 어땟어? '00영화의 주인공은 어때?" 무수하게 영화와 관련되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하지만 대개 이야기의 핵심은 '재미있다''재미없다'로 귀결된다.그 단순한 감상도 그 영화가 간판 내릴쯤 되면 기억에서조차 사라진다.가끔 욱하는 마음에 그 단순한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별로 먹히지도 않고 나만 뭐 잘난 척 뾰족한 사람돼는것 같아서 그만 둔다.
이야기가 길어졌다.<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영화 과잉, 담론 부재'의 대중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단순히 극장에 앉아서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난 후 남은 팝콘을 쓰레기통에 비우며 '그 영화 재밌네' 하고 끝내는 단순행위가 아니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책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영화의 한살이가 너무도 짧다.대박을 터트려서 각종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영화들조차 한 철을 버티지 못한다....흥행작이 이럴진대 먹물 냄새 풍기는 예술영화의 경우에 새삼 무슨 말을 더 보탤 것인가......문학,철학,예술의 독자나 관객들은 그토록 잔인하지 않다....하지만 영화를 대할 때는 다들 성마르게 다가서서 서둘러 즐기고 조급하게 판단한 뒤 황망히 잊어버린다.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독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간곡한 바람이 묻어난다.저자의 머릿말 처럼 <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조금은 철지난-그래봐야 그리 오래지도 않았지만-영화 작품들의 텍스트 분석이다.텍스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다. 저자는 철학적 개념들을 영화를 분석하는 한가지 기준으로 삼는다.하지만 잘 살펴보면 영화 분석을 위해 철학적 개념을 들이민 것만은 아니다.오히려 한 가지 철학적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영화를 이용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영화가 철학을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철학이 영화를 캐스팅'한 것이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이.물론 누가 주체가 돼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철학적 개념과 영화 텍스트가 상생을 이루며 대중들에게 두 이야기를 다르게 또는 새롭게 보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온다면 돼는 것이다.철학과 영화의 만남에 등장하는 개념들은 이렇다.트루먼 쇼는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드' '탈주'라는 개념,슈렉은 '포스트모더니즘론'과 칸트의 '숭고'개념,동사서독-내가 무척 좋아했던-은 베르그송의 '표층자아,심층자아' 굿 윌 헌팅은 파스칼의 '섬세 정신'..그리고 중경삼림,쉘 위 댄스 등등의 니체,와호장룡의 '장자'.....등등등
각 개념들에 대해 굳이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철학사를 흔들었던 중요한 아이디어들이기때문에 몰랐다면 이번에 관심을 가지면 돼고 또 알고 있었다면 조금 쉽게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정리하면 그만이다.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은 분명하다. '온전한 자아 찾기' '참 나 찾기' 정도로 요약하면 조금 단순화한 경향은 있지만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사물,그리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다.철학 만이 총체성을 담보해 주기 때문이다.영화라는 단편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가 추구하고 있는 바라고 생각된다.여러모로 많은 장점에도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구성의 문제이다.한 편의 글은 세가지 단락으로 나뉜다.개인적 경험,문제제기가 서론.그리고 영화의 줄거리.결론에 해당하는 철학적 개념의 분석....이 패턴은 각 장마다 똑같이 적용된다.일단 이러한 통일성은 독자가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다음에 어떠한 글이 나오리라는 예상을 가능케해서 부담감을 줄여준다.통일성을 얻기 위해 약간 포기해야 했던 부분이 구성의 자유로움이었을 것이다.물론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종횡무진 넘나드는 글쓰기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다음 작품에서는 그러한 넘나드는 글쓰기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철학,영화를 캐스팅하다>를 보면서 다시 비디오 샵에서 빌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개봉 당시 먼저 영화를 본 친한 친구-영화아카데미 졸업하고 지금은 드라마 찍는다-가 '..딱 너 같은 영화다..'라고 했던 <동사서독>, 글을 읽는 내내 뉴질랜드의 풍광과 바닷가에서 울리는 주제음악이 머리를 울려서 결국 CD찾아 듣게 했던 <피아노>,영화 개봉 후 철학적 담론의 난장판을 만들었던 <매트릭스1,2,3>...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