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수많은 명반이 있다.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반만 해도 서너개가 넘는다.쉐링의 모범적 연주,오이스트라흐의 고고한 연주,지노프란체스카티의 우아한 연주,이착펄만의 유연한 연주....

어제 라디오에서 아주 특이한 연주를 들었다.기돈 크레머와 아르농쿠르의 연주다.기돈 크레머는 내가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 연주자다.우선 그의 날카로움이 싫고 또 전반적으로 빠른 연주 속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하지만 그만의 미덕도 많이 있다.고전과 현대를 오고 가는 다양한 음악적 관심과 실험성,연주의 자기확신성,싫어하면서도 놀랍기도 한 바이올린 톤의 예리함과 기교의 완벽성...

어제 바이올린 협주곡의 1악장을 들었다.연주 속도는 전반적으로 빠른 편이었고 또 연주톤 역시 베를 가르듯 날렵했다.아르농쿠르와 크레머의 전형적인 스타일이었다.문제는 카덴차부분.카덴차는 협주곡 1.3악장 말미에 나오는 화려한 부분이다.연주자의 개성이 묻어나며 여러 연주자들이 나름대로의 카덴차를 만든다.락음악으로 이야기하면 1절 끝나고 자주 등장하는 솔로기타 애드립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이 연주의 카덴차 부분은 정말 실험적이었다.협주곡이 갑자기 실내악으로 전환되어버린 것이다.대개 이 곡의 카덴차는 팀파니의 둥둥거림 정도에 바이올린의 솔로가 나온다.그런데 이 연주의 카덴차는 피아노가 등장하여 피아노,팀파니,바이올린의 3중주가 이루어진다.특히 느닷없이 등장한 피아노는 반주정도에 머물지 않고 1악장의 주제부를 재현하며 3중주로 들어간다.카덴차 후반부의 바이올린 솔로도 일반적인 연주보다 상당히 길고 화려한다.바이올린이 청룡열차를 탄 듯 곡예를 한다.정말 이런 카덴차는 처음 들어봤다.

이 곡의 피아노 버전과 바이올린 버전이 카덴차부분에서 합쳐진 듯 하다.실제 연주에서는 피아노가 무대 뒷편에 설치되었고 스피커를 통해 무대 전면을 울렸다고 한다.잠시 등장하고 빠져야하는 피아노의 배치가 어정쩡했기 때문이었겠으나 재미있는 설정이다.

지금 당장 이 음반을 구하기는 어렵겠지만(이미 오래 기다린 다른 음반 여러장이 주문들어 간 상태여서)언젠가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은 음반이다.

최근에 브리튼의 피아노협주곡/바이올린협주곡 음반을 어렵게 구했다.인터넷 음반사 3곳에서 유일하게 재고1장 남은 것을 냉큼..ㅋㅋ

  브리튼의 <golden vanity> 음반도  구해야 할 텐데...

국내 모든 인터넷 음반사에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다니....

어디 어디 물어봤더니 ...동네 레코드샵에서 본 적이 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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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1-17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기돈 크레머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음반 구하고 싶네요..흠.
실험적인 카덴차라는 대목에서 가장 끌립니다. 카덴차를 들으면 그 연주자의
모든 것이 느껴지는 듯해서요...아. 사고 싶은 음반이 넘 많아요...ㅋㅋ

2006-01-23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1-23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1-24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1-27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지음, 김병화 옮김, 파블로 카잘스 구술 / 한길아트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1938년 6월 파리 녹음....카탈루냐 사람 카잘스가 만들어낸 음악이 그는 본 적도 없었을 은빛 원반에 담겨져 내가 있는 먼 곳의 아침을 연다.겨울 가뭄을 녹였던 단비가 긋고 난 후 만나는 새벽 하늘...아직 창 밖은 흐리다.무명의 하늘을 하나 씩 열어 제끼듯 빛이 스며든다.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뭉쳐있는 한 덩어리 산.바흐의 선율과는 상관없다는 듯 자기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드리운다.아직 어둠이 있던 시절 그저 검은 덩어리의 그림자였던 산들.지금 보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계가 있다.앞에 있는 산은 자신이 더 앞에 있다것을 자랑하려는 듯 더욱 선명한 겨울 빛을 보연준다.앞산 속으로 몸의 절반쯤은 숨긴 뒷녀석은 자신이 모든 걸 감싸고 있다는 듯 은근한 웃음으로 희뿌옇다.카탈루냐 사람 카잘스의 첼로는 이제 주인과 자신도 잊은 듯 스스로 음악이 돼어 간다.

모음곡은 2번 d단조로 넘어 간다.수 많은 인연의 부침을 묵묵히 지켜봐 왔을 오래된 석탑 위로 눈이 내린다.조용한 경내가 눈 때문에 더욱 고즈넉하다.석등 위에서 반쯤 눈이 덮히고 대웅전에 달린 풍경 속 작은 물고기의 등 위에도 하얀 눈이 덮힌다.공양간 굴뚝 아직 남은 온기는 눈의 침범에 저항해 보지만 이도 오래지 않아 하얀 모자를 쓸 터이다.모든 옷을 벗어 버리고 굵은 힘 줄 만을 남겨둔 절집 나무처럼 첼로소리는는 외로우나 비굴하지 않다.카탈루냐 사람 카잘스의 첼로는 시간의 심연과 기억의 회한을 되짚는다.

파블로 카잘스는 이미 두 세대 전의 사람이다.그의 청년시절 아직도 브람스는 활동하고 있었다. 드보르작,라벨,림스키 코르샤코프,말러,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이 전부 그의 시대 사람이다.사라사테,외젠 이자이,자크 티보,알프레드 코르토,크라이슬러...등등. 이 많은 인물들 속에서도 카잘스는 현재와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우선 그가 다른 이들에 비해 오래 살았다는 이유도 한 몫하겠다.하지만 오래 살았다는 것만이 카잘스를 동시대인으로 느끼게끔 해주는 것 만은 아니다.

 우선 카잘스가 남긴 음악적 자양분부터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가장 좋은 예일테다.카잘스가 바흐의 악보를 발견한 것이 그의 13살때이다.단순한 연습곡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음악으로 이를 이해하고 세상에 알린 것이 카잘스의 공로다.마치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세상에 알린 것에 비견할 만한 일이다.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이 곡에 대한 카잘스의 39년 녹음은 영원불변의 명연이다.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이 곡의 다른 연주 녹음들을 좋아할 수 도 있다.나 역시 5종이 넘는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가지고 있지만 카잘스의 연주를 가장 즐겨듣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가끔 듣는 그의 녹음은 다른 연주들에서 느끼지 못하는 아우라가 있다.카잘스가 첼로 연주에 있어서 혁신을 불러 일으킨 것 역시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이러한 음악적 발견과 혁신 외에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 역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카잘스는 노동자들의 친구였다.그의 음악은 늘 카탈루냐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들에게 음악의 깊은 울림을 전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장을 보면 나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부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그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왜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재산을 향유하지 못하고 지내야 합니까?

카잘스는 스스로 예술가들이 쉽게 빠져 버리는 '자기애적 예술지상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그는 어린시절 부터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카페나 술집등지에서 연주했다.유년기에 그의 음악을 즐기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에게 육체노동에 대한 긍정적 가치를 심어준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음악, 아니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그 자체로는 대답이 될 수 없다고 느꼇습니다.음악은 어떤 목표에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그것은 그 자체보다 더 큰 어떤 것,즉 인간성의 일부가 되어야한다.......음악가도 인간이잖아요,그의 음악보다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또 그 두 가지가 서로 분리될 수도 없고요."

카잘스의 자서전을 보면 크게 두가지 테마가 있다.하나는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궤적이고 또 하나는 정치적으로 옮바른 삶을 산 사람의 모습이다.카잘스는 그 두 요소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그가 젊은 시절 만들었던 '노동자 연주회 협회' 라는 단체는 카잘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1928년 최초 노동자 연주회에서 받은 환호를 카잘스는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그리고 카탈루냐 노동자들에게도 그 기억은 오래도록 소중하게 남는다.1965년 카잘스의 90살 생일,프라드 축제 현장에 두 대의 버스가 산 넘고 물 건너 넘어온다.40여년 전 노동자 연주회 협회에서 함께 연주하던 노동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었다.그들은 카잘스 앞에서 모차르트를 연주했다.음악과 사람에 대한 진정성은 이렇게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카잘스가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다사다난 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서유럽은 19세기 말 문화와 과학의 전성시대를 달리고 있었다.인류의 이성은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달아 올랐고 합리적 이성과 과학이 곧 유토피아를 만들것으로 믿었다.풍요로움에 바탕을 둔 예술 역시 백가쟁명의 다채로움을 보여주었다 .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이다.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연이은 1,2차 대전과 파시즘,홀로코스트등은 천국과 지옥이 한 마당 안에서 펼쳐진 것에 다름아니다.카잘스는 그 시대의 한 복판을 관통했다.카잘스의 고향 카탈루냐는 스페인에서도 독립적인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는 지역이다.어린 시절 부터 카잘스가 채득한 저항의 정신은 카탈루냐 역사가 만들어 준 선물이다.카잘스는 카탈루냐 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킨 파시즘 정권에 저항했다.또한 카잘스는 2차 세계대전 중 수 많은 해외도피 요구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떠나지 않았다.히틀러의 독일에서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미 훨씬 그 전일이다.포로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애호가 히틀러의 연주 요청 마저 거부한다.그런 면에서 당시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나치에 우호적일 수 없었다고 한 지휘계의 황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변명과 대조적이다.카잘스의 정치적 소신은 승전국 영국에서의 연주거부에서도 드러난다.영국에 우호적이었던 카잘스를 틀어지게 만든 것은 전후 프랑코 정권에 대한 서방국가의 불분명한 태도때문이다.그는 옥스포드나 캠브리지의 학위수여도 모두 거부한다.

카잘스의 삶은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모범이 된다.특히 세상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태도는 인상적이다.물론 그에게도 한계가 있다.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그의 믿음은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고 정치적 안목의 소박함에 실소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그러한 점은 사소한 부분이다.카잘스는 음악과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오는 인간이었다.하지만 현실의 나는 불행하게도 인간적인 모범까진 안돼더라도 정치적으로 옮바른 음악가들 조차 만나 본 적이 없다.우리 사회에서 음악 한다는 것은 사실 계급적으로 어느 정도 상위층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내가 만난 음악한다는 사람들은 대개 좋은 집안에서 어느 어느 선생에게 사사받고 유럽의 무슨 콘소바토리니 하는데서 잠깐 공부하고 가끔 연주회하고...뭐 이런 사람들이다.그들은 악보를 읽을 줄은 알지만 자신의 음악 왜에는 아는 것이 없다.심한 경우는 자신이 다루는 음악 외에 다른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무지한 사람들이 많다.예전에 성악 공부하는 음대생이 "라흐마니노프가 프랑스 사람이에요? 윤이상이라고요? 첨들어보는데..." 라고 하더라.즉 성악 공부하니까 그 외 음악은 잘 몰라도 된다는 건 가보다.물론 아직 어린 친구였으니 그럴 수도 있다.하지만 이건 공부 많이 한 음악선생들도 마찬가지다.악보와 연주테크닉,곡 해석 이런 것만 선생이다.도대체 음악이 음악만 갖고 되는 것인가.그들의 음악 외적 수준은 고등학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해보였다.역사관,세계관,인간관...등등 너무 음악공부가 어려워서 그랬겠지...물론 음악가가 일반인들보다 더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자신들이 세상의 어느 부분에 어느 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좌표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또한 비슷 비슷한 음악소비자들 사이에서 고만고만하게 흡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계급의 사람들과 사회의  다른 영역이 움직이는 법에도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닌가.언제가 봤던 영화<바이올리니스트>가 떠오른다. 주인공은 바흐의 음악이 필요한 곳은 비싼 표사서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입은 관객들이 앉아있는 음악회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정작 필요한 곳은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가난으로 인해 영혼마저 상처입은 낮은 곳이라고 믿었다. 그는 결국 노숙자들이 머무는 지하철 역에 바이올린 하나 달랑 들고 나섰다.카잘스는 말한다.마치 내가 만난 그리고 내가 혐오하는 몇 몇 우리음악가들에게 나를 대신해서 이야기 해주는 듯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은 곧 나에 대한 모욕입니다.예술가라고 해서 인권이라는 것의 의미가 일반 사람들 보다 덜 중요할까요? 예술가라는 사실이 인간의 의무로부터 그를 면제시켜줍니까? 오히려 예술가는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왜냐하면 그는 특별한 감수성과 지각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때에도 그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자유와 자유로운 탐구,바로 그것이 창조력의 핵심입니다."

...........파블로 카잘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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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1-16 11:48   좋아요 0 | URL
별 5개 주기엔 뭔가 좀 아쉬운 듯 도 하고....그의 음악엔 별 다섯이 충분하지만말이죠.아무래도 구술 형태의 자서전이어서 주관적으로 미화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2006-01-24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1-28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금 전에 황우석 인터뷰가 끝났다.무지 하게 할 말이 많았는지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듯 하다.

중간 중간 봐서 그 내용은 전부 모르겠고 좀 지겹기도 하다.그동안 해왔던 주장과 별반 다른게 없는 듯 하다

오늘은 비주얼을 좀 강화해서 뒤에다 방청객 애들을 앉혔다.수의대 연구팀인지 ...어쩌구

언젠가 마태우스님 댓글로 남겼던 적이 있던 내용인데...황우석은 그 수순대로 하고 있다.

요는...

우리 기술은 확실하다.이거 대한민국에서 대접 드럽게 안해준다.외국 나가면 다들 특급대우받을 기술이고

인재들이다.

그러니까 이거다. 애국주의의 재도래

황우석을 뒷받침해주었던 건 줄기세포도 배반포기술도 아니다.그를 뒷받침해준 가장 든든한 빽은

애국주의 국민이다.워낙 과학기술내용이 어렵다보니 대충 좋은거다 결과가 좋다 하면 국민들은 껌뻑껌뻑

넘어간다.그때부턴 그냥 애국주의로 달리는 거다.

황우석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해 놓은 기술 다 외국에 빼앗길래...이 인재들 전부 외국에 넘겨줄래...그러면 우리나라가 손해겟지? 그러니까 이쯤에서 그만하자.나두 억울하다.그렇지만 내가 십자가를 질께...어쨋거나 지금부터는 우리나라만 손해라니까...

황우석은 다시 애국주의에 기댄다.한동안 수렁속을 헤메다 그가 잡은 동아줄에 애국주의가 써있다.

황우석팀 연구원들....어떻게 보면 피해자다.으쌰 으쌰 해서 위에서 몰고 가는데 어찌할 것인가?

국내 또 다른 연구팀에서 수용할 수도 있는 문제다.또는 황우석을 배제하고 그 팀이 다른 수장을 만나서

재연구에 돌입할 수도 있는 문제다.황우석은 자기 아님 안돼니까 다 외국보낼래..하고 겁을 준다.

군대를 제대하고 지하철에서 전임 고참을 우연히 만난적이 있다.진짜 사람 괴롭히던 넘인데...확 뒤통수를

 갈겨 버리고 싶었다. 십여년만에 그때 그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 났다.황우석 인터뷰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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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1-1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래도 매너보다 훨 나으시네요. 일과 끝나고 사무실에서 조용히 음악 듣다 책 읽다 하는 중인데 전화울려 받으니 '그색히'가 헤헤 웃으며 나야 대중아, 이러잖아요. 니가 뭔 낮짝으로 여기 전화질이냐 십장생아 부터 시작해서 10년간 퍼부어야 할 분량의 육두문자를 마구 퍼부었다죠. 마지막엔 밤길 조심하란 말까지 덧붙여서... 이제 생각해보니 '그색히'는 왜 전화 안끊었나모르겠네요. -_-;;

아... 글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기필코 '알현'을. ㅎㅎ

깍두기 2006-01-1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말이에요, 여기 넘어가는 사람 넘 많아요.
오늘 인터뷰 끝나고 후배한테 전화가 왔는데 인터뷰 보니 다시 한번 믿고 싶다는 거예요. 너무 안되어 보이고 진심 같다면서...
제 동생도 그러네요. 황우석 정말 쇼맨쉽 하나는 타고 났다고. 거짓말인 줄 다 아는데 묘하게 설득력 있더라고요.
국민에게 총 들이댄 이승만도 박수치며 보내주고, 살인마 전두환도 아직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황우석이야 뭐.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이해 안가요. 높은데 올라갔다 추락하는 사람을 엄청 동정한다니까요. 그 사람이 애초에 그 자리가 어울렸는지, 걸맞는 업적을 쌓았는지, 이런 것에 상관없이.
(저....저희 아는 사이죠?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 즐찾한 지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kleinsusun 2006-01-1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이뉴스를 보니 <나의 생명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황우석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난자를 기증한 젊은 여자 얘기가 있던데..... 최재천 교수랑 공저라고 하는데, 어떤 책일까..... 읽어볼까요? ㅎㅎ
 
미의 역사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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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유토피아를 구체화 할 수는 없으나 예감할 수는 있다.   -

 - 아도르노-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을 꼽자면 미에 대한 상대주의적 가치관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도 알만 한 그런 개념이다.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왔다는 것이 미의 상대성에 대한 가장 사전적 정의일 것이다.에코는 미술을 중심으로 수세기에 걸쳐 변화되어온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시적으로 살펴본다.에코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여기서 말하는 미는 서유럽 중심적이다.

에코의 서문에 이어 바로 등장하는 것은 <비교표>이다.비교표라는 삭막한 용어밖에 없나 싶지만  가장 간명하게 이 장을 설명하는 말이다.비교표는  '주제별 미술 슬라이드'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준다.<옷을 벗은 비너스>의 예를 보자.첫 슬라이드는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뵐렌도르프의 비너스>이다.이후 <밀로의 비너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벨라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고야의 <옷을 벗은 비너스>, 마네의 <올랭피아> 그리고 마지막 켈린더 속의 모니카 벨루치의 누드까지 ..비교표는 역사 속에서 비너스의 이미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그 외에도  <옷을 입은 비너스><옷을 벗은 아도니스><예수><성모><왕> 등을 보여주는데 서양 미술사의 주요 소재들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책은  고대 그리스의 미에서부터 가장 최근인 20세기 후반 미디어의 미까지 다룬다.흔히 미술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진행 순서를 따르고 있다.그리스 미학에 있어서 미학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원근법의 창안이다.그리스 미술이 주관적인 시각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이때 부터 시작된 원근법은 전문 미술가들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는 요소지만 일반 미술 교육에서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지고 있다.수세기에 걸쳐 원근법에 대한 변증법적 발전이 있어왔다.하지만 우리의 미술 교육(최소한 내가 배웠던 시절의)에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철칙이다.미학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미술에 대해 우리 교육에 어떤 철학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든다.그저 몇 몇 테크닉 좋은 아이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다행히 나는 교육계에서 인정하는 미술을 잘했지만..)그리스 미술에 또 하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아폴론적 미와 디오니소스적 미를 동시에 인정했다는 점이다.안정과 평화 속에 혼란의 카오스가 난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것은 이후 추함과 악마적 미의 표현부터 미에 대한 현대적 표현까지 가능하게끔 통로를 열어 놓은 것이다.그리스 미학은 조화와 비례를 중요시했다.건축은 물론이고 인물상들까지 조화와 비례의 수학적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우리가 그리스 조각상을 보면서 그 완벽함에 감동을 받는 것은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미학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흔히들 말하는 황금비는 지금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스 미학으로부터 시작한 글은 시간을 따라 중세로 넘어 온다.중세 천년은 흔히들 '암흑의 시대'로 일컫는다.최근에 나온 중세 미시사 책들은 그런 편견이 진짜 '편견'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아직 일반의 굳은 마인드를 뚫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이 책 <미의 역사>에서 가장  신경써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 중세의 미이다.에코가 중세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기존 '암흑기론'에 반기를 드는 쪽이다.특히 중세의 시나 회화는 빛이 가득하다.당대 사상의 중심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의 세 가지 요소를 강조했다.즉 비례,완전성,그리고 명료성이다.이 명료성 미학의 기원 중 하나가 신은 빛과 동일시 된다는 것이다.즉 중세의 기독교 중심 세계관에서 빛은 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이러한 빛에 대한 개념은 일상으로도 확대된다.인용된 랭부르 형제의 <5월,베리 공작의 귀중한 성무일과>라는 작품을 보면 누가 과연 중세를 어둠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붉은 휘장과 녹색의 여성 가운,스웨덴 국기를 떠올리게 하는 남성의 가운..화사한 5월의 기운이 화면 전체에 가득하다.또한 그리스 시대부터 인정된 '추함의 미학'이 괴물과 기이한 존재들의 형상화로 발전한다.

카를 로젠크란츠는 <추의 미학>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추는 상대적 개념으로서 다른 개념과의 관계 내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추는 미가 존재할 때에만 존재하는데 이는 미가 추의 긍정적인 측면을 구성하고 있기때문이다.만약 미가 없다면 추는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상상 속의 동물들이나 괴물들은 어떻게 보면 중세시대부터 쌓여온 신화의 누적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중세 사람들은 이 괴물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크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이들은 괴물들을 비롯해서 불가사의한 것에 매료되었던 것이다.이는 후대에 이국적인 것에 대한 예술가들의 매력과도 이어진다.

중세 미학의 또다른 재미는 십자군 전쟁으로 기인한 음유시인과 귀부인과의 사랑이야기이다.열망하지만 다가설 수 없음의 미학이 본격적으로 시를 수 놓고 있다.엘리아데 같은 사람은 폭력성과 잔인성이 연애라는 형식을 통해 세련되어가는 과정 즉 합리화의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음유시인들의 다가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존재감은 시와 미술에서 '천사같은 여인'을 만들어 낸다.우리가 단테나 그 후 낭만주의 작가들의 글에서 만날 수 있는 성녀와도 같은 지위의 아름다움 여인상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시기인 것이다.

미술사는 인문주의 정신에 입각해 그리스를 구현하고자한 르네상스와 절대왕정을 바탕으로 화려함을 선보인 바로크의 시대로 넘어간다.18세기에 이르면 부르주아지들이 힘을 얻게 된다.이들은 이성과 규율을 중시하는데 미학사에선  신고전주의 시대가 이에 병행한다.신고전주의는 매우 엄격한 자연주의 정신하에 잘못된 고전성에 반발했으며 이는 바로크의 과잉과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또한 이 시대에는 미의 즐거움이 미의 영역과 숭고의 영역으로 발전하다.여기서 말하는 숭고는 신에 대한 정신적 숭고가 아니라 자연주의적 숭고이다.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매력이 자연적 체험에 바탕을 둔 숭고미로 전이되었다고 보는것이 옳다.클래식 CD재킷에 자주 등장하는 카스피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난파><방랑자>같은 것이 전이된 숭고미의 대표적 예이다.

19세기로 넘어오며 드디어 낭만주의의 물결이 서양미술사를 장악한다.미술사에서 많이 배우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의 들라크루아 <메두사의 땟목>의 제리코 등이 등장한다.낭만주의의 키워드는 감정,자연,자발성이다.또한 밤의 우울과 불안한 방황도 중요한 덕목이 된다.독일에서는 이 물결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칭했다.19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며 영국을 중심으로 단순성을 강조한 댄디즘과 프랑스의 퇴폐주의가 성행한다.또한 예술이 예술을 위한 것이라는 순수주의 관념이 예술계를 지배한다.퇴폐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보들레르를 필두로 하는 상징주의가 예술계의 한 축이 된다.그리고 19세기 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또 미술 책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상파가 등장한다.모네,르누아르부터 시작해서 고흐,고생,세잔 등 현대 미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후기 인상파들까지...

움베르토 에코는 책 후반부에 기계의 미학에 대해 다시 그리스시대부터 되짚어온다. 수단으로서의 기계가 미학적 평가대상으로 바뀐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현대의 자동차가 고딕 대성당과 정확하게 동급이라고 생각한다.그것은 무명의 예술가들이 열정적으로 창안해 낸 한 시대의 위대한 창조물이다.

바르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현대의 기계들 그들이 가진 스타일과 디자인들은 이미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평가받아야 하는 미학적 대상이 되었다.그러한 측면에서 기계의 미학을 현대미의 하나로 위치시킨 에코의 시각은 훌륭하다.물론 상대적으로 분량이 협소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이 책이 기계문명의 미학에 대해서만 다룬 것은 아니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20세기 전반부의 현대 미술은 재료에 대한 도전이며 기존 예술에 대한 도전 자체가 작품이된 시기이다.뒤상의 <샘>이나 앤디워홀 등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에코는 이 책의 마지막을 미디어의 미로 마무리하고 있다.이 시대를 에코는 도발의 미와 소비의 미 사이의 극적 투쟁의 장으로 보고 있다.예술에 대해 극한 도전을 펼쳐온 아방가르드조차 소비시대의 미에 포획된 듯이 보인다.에코는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미에 어떠한 통일된 모델도 어떠한 단일한 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는 관용의 대향연 앞에서 전반적인 혼합주의 앞에서 제어할 수 없는 완전한 미의 다신교 앞에서 항복할 수밖에 없다라고 책을 맺고 있다.

리뷰를 쓰다가 보니 결국 서양미술사의 약사를 정리하게된 듯하다.이 책<미의 역사>는 미라는 것이 수천년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해왔고 현재 우리가 아름답다 또는 추하다고 느끼는 것이 어떻게 유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내용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 사회적 변화상과 미술작품의 상세한 소개까지 곁들인 서양미술사책들의 친절함도 없다.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해설 같은 것도 전혀 없다.그러므로 서양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런 점들을 보상해주는 미덕도 많다.우선 선명한 그림인쇄이다.책값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그렇지 최고 수준의 도판 인쇄를 보여준다.하지만 이것도 부차적인 장점이다.이 책의 최대 매력은 수많은 인용문들이다.인용문이 원저술보다 훨씬 많다는 느낌을 준다.에코는 각 시대의 미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당대 저술을 싣고 있다.철학서에서 음유시인의 시집,작가미상의 전설집,소설과 사회학 서적들... 인용문들 중에는  당시 시대의 미적기준과 가치에 대해 에코의 글보다 훨씬 와닿는 글들이 있다.물론 너무 파편적이어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글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과감하게 넘어가면 별 문제 없다.에코가 인용하고 있는 글들 중에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글들도 있다.전부는 아니지만 그 단맛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마지막으로 사족 한 가지 더 붙인다.표지에 움베르코 에코의 저자 이름이 너무 크게 쓰여 있어서 간과하기 쉽지만 이 책은 사실 에코 외에 또 다른 공동저자가 있다.지롤라모 데 미켈레라는 사람이다.누군지는 모른다.하지만 그는 에코와 거의 50%씩 나누어 집필했다.에코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겠지만 그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것에  왠지 씁쓸하다. 책을 판매하는데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유리했기 때문일까... 역사 속 숨은 이름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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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7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1-08 06:50   좋아요 0 | URL
ㅋㅋ.. ㅜㅜ 감사...제가 원래 좀 약하거든요.약한데다가 쓰고 나면 돌아보질 않습니다.ㅋㅋ 이건 또 어디서 나온 버릇인지.ㅋㅋ 늘 눈치보며 쓰기때문에..빨리 쓰고 아래로 내려야돼요.회사에선 아저씨들 눈치보고 집에선 와이프가 왜 컴퓨터방에서만 있냐고 울고..
여러모로 감사.하나 하나 보고 고치다가 '귀차니즘' 발동해서 그냥 복사해서 다시 붙였습니다.역시 잔머리가 좋아요.그나저나 30분씩이나.. 여간 폐가 아니군요.
걍..개떡처럼 쓰면 찰떡처럼 보세요.ㅋㅋ 앞으로도 개떡은 주욱 이어집니다.
오늘 아침은 와이프가 어딜 좀 일찍 나가서 이른 아침 서재질을 하넹....
즐거운 일요일!!

돌바람 2006-01-09 11:44   좋아요 0 | URL
으하하, 개떡이 이렇게 맛있을줄이야. 저랑 비슷한 상황이시군요. 그럼요, 찰떡같이 보겠습니다요^^*
 


겨울에 자주 듣는 음반 중 하나가 차이코프스키 음반이다.내가 가장 많은 판을 가지고 있는 것은 6번 <비창>연주다.므라빈스키,플레트네프,칸델리,카라얀,플레트네프,스베틀라노프.....그 중에서 가장 변칙적이면서 가장 주관적인 연주가 번스타인의 이 느린 연주다.아침 해보다도 느리게 시작된다.그러다가 힘을 모아서 폭발하는데 오래 지속되진 않는다.뉴욕필의 금관은 약간 혼란스러우면서도 앨범자켓 처럼 이른 아침의 싸늘함이 묻어있다.므라빈스키처럼 광폭하지 않다.너무 느려서 예리하지도 않다.하지만 눈내린 벌판에 불어오는 이른 새벽의 서늘함.이 음반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음반은 변종이다.

또 다른 말년 번스타인의 매력적인 음반이다.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곡이 교향곡 2번이다.다른 시벨리우스 교향곡의 심심함에 비하면 군계일학이다.다른 교향곡들은 구조의 튼실함을 찾기엔 내 귀가 너무 둔감하다.반면 이 곡은 마치 베토벤 곡을 듣는 듯 하다.또한 고통 끝에 환희로의 승화도 유사하다.바비롤리의 명연과 함께 논란의 대상이 되던 음반이 바로 옆의 음반이다.문제는 말년의 번스타인에게 있다.차이코프스키 비창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극단적인 템포의 이완이 이 음반에도 적용된다.하지만 비창의 서늘함에 비하면 훈기가 돈다.빈필의 현은 여기서도 번스타인을 살려준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다.무수한 명연 중에서도 이 음반을 기억할 수 밖에 없다.이유는 내가 가장 먼저 들었던 음반이기 때문이다.지금은 중년의 아줌마같은 정경화지만 이 음반 자켓에는 청년의 풋풋함과 수줍음이 뭍어있다.하지만 연주는 그 반대다.정경화는 생긴 것 처럼 싸늘하게 연주한다.프레빈과의 동곡 녹음에 비해 그녀의 당당함이 돋보인다.지금와서 보면 약간 아쉬운게 샤를르 뒤트와의 서포트이다.정경화의 냉랭함에 비하면 너무 온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근데 샤를르 뒤트와의 연주는 다 그렇다.1악장의 주선율은 겨울이면 항상 흥얼거리게 된다.딴따..따라라라 ...라..라라...


지겨워도 어찌 사계의 겨울을 빼놓을 수 있으랴.특히 이 곡은 이현우의 샘플링 덕에 더 잘 기억된다.문제는 이제 이 멜로디가 끝나 "어제 하루는..." 이러고 '헤어진 다음날'의 앞구절을 따라한다는 것이다.사계 연주는 크게 현대악기 연주와 원전연주로 양분된다.최근에는 현대 악기연주자들도 템포를 조금 빨리잡는 경향이 있다.원전 연주중에서는 한때 과격함의 경주가 붙었을 만큼 격렬한 해석이 주를 이루었다.그 와중에도 중용을 지키는 미덕을 보여준 연주가 바로 The Drottningholm Baroque Ensemble의 연주이다.녹음 역시 상당히 훌륭하며 가장 즐겨 듣는 사계 음반이다. "나 나 나 나나나나 나 난난나.... 어제 하루는"


이 음반에 대한 나의 애정은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다.하지만 카라인드로우의 음악은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만큼이나 멋있다.<황새의 멈춰진 발걸음>이란 음반인데... 주변에서 이 음반 들어봤다는 사람을 단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창 밖으로 눈이 펑펑내리는 어느날, 공항 대합실에 갖혀 이 곡을 들어보시라.굳이 공항 대합실이 아니면 어떠랴...미니멀리즘적인 바이올린 선율에 나의 세상과 눈의 세상 사이에 구분이 없어진다.


<동설>이 아니라 아쉽다만.... 황병기의 <춘설>이다.지나간 것들은 늘 아쉬움을남긴다.이제 남은 것이 그림자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이내 그 그림자도 사라지고 언젠가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창 밖을 바라보며 앙상한 가지를 휘돌아 나가는 바람소리를 가야금 소리와 어우러 보라.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라짐을 기약한다.가야금이 깊은 농현도 사라지고 말 듯이.


이반 레브로프는 특이한 가수다.러시아 민요를 부르는 사람이고 베이스 가수이다.생긴 것도 진짜 동화책에 나오는 고집장이 술꾼 러시아사람 처럼 생겼다.

그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쉬트라우스의 <박쥐>에도 출연을 햇다.하지만 그의 본령이 오페라 가수는 아니다.이 음반은 러시아의 로망스,민요,대중가요등을 수록하고 있다.그의 낮은 목소리는 멀리 보이는 겨울 지평선에서 부터 울려오는 듯 하다.친숙한 러시아 민요들도 그의 목소리로 들으면 새로운 느낌이 든다.

겨울 노래에 <겨울 나그네>가 빠지면 너무 섭섭하지 않을까

피셔 디스카우와 마티스 괴르네의 정통파 독일 리트가 주류이다.이 둘이 부른 <겨울 나그네>는 묵직하면서 독일적인 중후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반면에 프랑스인이 부른 <겨울나그네>는 조금 다르다.훨씬 멜랑콜리하다.왠지 그가 발음하는 독일어는 낭만적으로 느껴진다.목소리 자체도 온화하면서 품위가 있다.

<겨울나그네>도 따뜻함이 필요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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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2005-12-2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이면 차이코프스키와 시벨리우스를 찾게 되죠. 러시아와 핀란드라는 지리적 특성때문일까요? 아님 그들의 음악에 겨울의 한기라는 것이 배어있는걸까요? 카라인드로우의 음반은 꼭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구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드팀전 2005-12-2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님>카라인드로우의 음반 그다지 구하기 어렵진 않습니다.앨범자켓도 예쁜데..ㅋㅋ 앙헬로풀로스 감독의 영화 졸릴 때가 많지만 그래도 좋아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