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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용수는 키가 컷다.190센티미터에 조금 모자랐다.얼굴도 조금 길고 눈두덩이도 보통사람보다 튀어나왔다.얼굴 빛은 조금 검은 편이고 눈과 댓구를 이룬 눈썹 역시 순악질표 일자 눈썹이었다.그는 내 군대 바로 밑 쫄따구였다. 군생활 초기 가장 그를 힘들게 한 것은 고참도 아니고 인사계도 아니었다.가장 큰 문제는 그의 '왕발' 이었다.용수는 그때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발이 큰 아이였다.그의 왕발은 '300밀리에서 305밀리'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하지만 그 당시 보급대에서 그가 지급받았던 가장 큰 군화는 290밀리였다.(군대는 '문'이라는 치수를 쓰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더 큰게 있었는데 재고가 없었는지 아니면 그게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나오는 가장 큰 사이즈인지 나로서는 지금도 알 길이 없다. 점호를 받거나 구보를 할 때 그는 약간씩 절뚝거리곤 했다.선임하사가 채근하면 그는 "네 알겠습니다.근데...발이 아파서..." 라고 말끝을 흐렸다.선임하사는 늘 "야..이xx 봐라...군대가 백화점이냐...그런말 몰라 '군대에 오면 옷에 몸을 맞추라'는 말 말야.이 xx 군기가 빠져서..." 내무반에서 본 그의 새끼 발가락과 복숭아뼈는 작은 군화에 혹독히 치여있었다. 결국 인사계는 용수에게 이태원 가서 사오든 미군부대서 훔쳐오든 그의 능력껏 알아서 군화를 바꿔 신으라고 나름대로 인자한(?) 해결책을 제시 했다.용수가 이태원에서 자기 발에 맡은 군화를 구하는데도 그 후 약 3달이 필요했다.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는 군화에 발을 맞추어야 하는 그리고 그것에 크게 저항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디서 출발하는지 주목하고 있다.이 책에서 박노자 교수는 그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 근대의 폭력성'이란 주제를 물고 늘어진다.과거 몇몇 책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역사학자로서 박노자는 한국 근대 형성기로 볼 수 있는 개화기의 우리 역사에서 근대적 폭력의 씨앗을 찾아낸다. 책은 주로 그동안 우리에게 '개화 선각자'로만 비춰진 개화기 지식인들의 행적과 그들의 사상을 따라간다.그들이 가진 가치관을 통해 이후 전개된 우리 역사의 근대적 폭력이 어떻게 파종되었나가 소상하게 펼쳐져 간다. 미리 밝히자면 이러한 계보학적인 접근은 원론적 비판에 곧바로 맞딱드리게 된다.현실 상황의 모순들의 근원을 계보학적으로 쫓아가다보면 사실이 가진 근원적 문제들과 역사적 관계들을 파악할 수는 있다.하지만 환원론적이라는 비판이 늘 따를 수 밖에 없다.비유하자면 '사상의 연좌제'라는 덫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또한 탈근대적 접근을 위해 당시 역사의 절박성이 지나치게 후대의 잣대로 재단되었다는 비판도 면하기 힘들것이다.역사라는 것이 해석의 문제이며 또한 한 역사가 가진 한계들을 지적하는 것 역시 후대 역사가의 몫이다.하지만 근대라는 거대한 광풍이 조선 반도를 밀어부치고 있던 시기에 그 구성원들에겐 역사적 도전에 대해 마땅한 응전을 찾는 것이 일차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폭풍전야의 시기에도 역사적 보편성과 인류애의 원칙을 잊지 않은 선각자들도 있겠지만 진정 소수중의 소수였을 것이다.박노자는 개화파에 대한 사회적 통념-즉 선각자라는-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그들은 그저 보수적 근대 지배계급이었을 뿐이라고 적고 있다.개화파들의 성향이 대개 귀족층이었으므로 계급문제를 들이대면 이것는 너무 당연해서 하나마나한 소리가 되어버린다.물론 박노자의 지적처럼 개화가를 선각자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기 때문에 어떤면에서는 그의 비판이 시의적절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또한 근대 초기 개화파들이 가진 문제를 그들이 접해보지도 못했던 '탈근대'로 '포스트모던'으로 들이미는 것에 -그 비판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한국적 근대만들기 프로젝트의 가장 큰 문제는 '근대적 폭력성'이다.이 폭력성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것을 박노자는 '사회진화론'에 두고 있다.개화기 지식인들 대부분이 부국강병이란 모토아래 사회진화론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봤다는 것이다.그리고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조선 민중 하나하나가 강인한 체력과 깨인 머리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즉 개인의식은 부재했으며 사회유기체의 한 구성으로 개인을 부속화 시키는 폭력이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는것이다.량치차오의 '무명영웅론' 이란 것이 결국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어 진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개화파들은 개인들의 덕성의 최고 모델을 근대적 군인에게서 찾았다.우리가 당연시 알고 있는 '징병제'에가 개화파와 구한말 조정에서는 가장 이루고 싶은 꿈중에 하나였다.하지만 일제의 군대해산은 징병제의 꿈을 산산히 깨드렸다.박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계보상으로 100여 년 전 개화파의 징병제 실시의 좌절된 꿈,일제시대 민족주의자들의 '징병제 구국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의식은 박정희,전두환의 병영국가 시대에 더욱더 강화돼 오늘의 징병제에 대한 보편적인 집녑으로 이어진 셈이다.
진보적인 인사조차도 '징병제폐지'에 선뜻 손을 들지 못하는 이유를 박노자는 계보학적으로 개화기의 부서진 꿈에서부터 찾고 있다.하지만 한국전쟁의 직접적 전쟁 기억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조금 이상한 면이 있다.반공주의와 징병제에 대한 신념등의 가장 직접적인 바탕은 한국전쟁에 개인들이 겪었던 경험의 역할이 크지 않을까 싶다.
박노자 교수는 우리 사회를 '병영의식'이 만연한 사회로 보고 있다.그 점은 남과 북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 우리는 '잃어버린 민족 동질성'을 자주 아쉬워하지만 결국 예비역과 그들의 특수한 가치관을 골간으로 하는 군사화된 사회의 형성과정은 남쪽과 북쪽이에 오히려 동질적 요소를 내포했다." 병영의식의 근저에는 무를 숭상하는 '상무정신'이 있다. 상무정신이 부각된 데에는 권력관계와 개화파들의 서구중심주의가 숨어있다고 그는 말한다.
"전통문화를 고수하려는 보수적 유림층으로부터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탈취하는 것이 계몽주의자들의 목적이었기에 '허약한 동양인''나약한 유교문화'와 같은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의 편견과 고정관견들이 여과 없이 받아들여져 이용됐다." "동양이 유교화 이전의 낭만화된 상무적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계몽주의의 역사관이었다"
박노자의 문제의식은 이제 테러리즘을 향한다.그는 테러리즘에 대해 한국 좌파가 서구 좌파에 비해 비교적 관대하다고 파악한다.그 근원에는 '의살'(의롭고 죄가 되지 않는 살인)이란 개념이 있다.거기에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더해진다.우리는 일제 강점기 무장독립투쟁 의사들을 국민적 영웅으로 보고 있다. 그들을 전부 테러리스트라고 매도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그런 현재적 이유로 인해 이슬람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박노자가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해 우선 비난하고 근원적 도덕성 결여를 지적하는 것을 빼놓지는 않는다.하지만 그렇다고 생각의 끝을 거기서 놓아버리지는 않는다.박노자는 개인의 폭력적 응징이 제국주의의 폭력에 그다지 효과적이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거시적으로 제국주의의 파시스트적 폭력에 대항하는 세계인의 연대이다. 조금 막연하고 이상적으로 보인다.이 대안 제시라는 부분에서 그가 피상적이며 이상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할 수 있다. 피억압 국민들에게 -예를 들어 이라크 민중들에게-박노자식 이상주의 해법이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해보자. 당장의 선결과제 앞에 그들이 어떠한 대응을 할 것인가? 공간적 외부자로 한 나라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또한 마찬가지로 시간적 외부자로 지난 시대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박노자에 의하면 한국 근대 태동기를 파악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국가'이다.교육,스포츠,군대,종교등이 각기 다른 외피를 쓰고있었지만 '강한 국가'를 위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다.개화파들은 '국가는 인격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박노자는 전근대 유교사회에서 어느정도 자율성이 있었던 개인에게 계몽의 잣대가 개인을 국가에 귀속 시켜 버렸다고 본다.근대의 관리체제가 '개인의 특성''개인의 성격'등을 무시하고 규격화,합리화 시켜 버린 것이다.박노자는 이것이 비단 우리 개화파들만의 잘못이라고 보지는 않는다.이미 근대적 '개인'이라는 가치 자체가 신화화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그 신화가 목표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틀안에서의 개인의 자유라는 한정적인 것이었다.
"근대 유럽의 '개인 자유의 영역'은 자본주의 국가가 공인하여 규격화시킨 한 사회 특권층의 법률적,문화적인 '사적공간'일 뿐이었지 만인의 '자아의 자유로운 실천'을 담보한 '개인주의 가치의 실현'이 결코 아니었다..... 또한 근대적 '개인'을 생산하고 규정한 주체가 바로 자본주의와 근대국가였던 만큼,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영역은 결코 국가적 폭력과 같은 '성역'을 침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로 소급되어 버리고만 개인 대한 그의 시각에는 완전히 동의 할 수 있다.하지만 근대적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전근대시대의 개인관을 미화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밖에 없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근대적인 개체와 전체의 관계논리는 어떤 경우에는 개체에게 근대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할 수도 있었다." 그가 예를 든 것은 2000년전 인도승려들에게 군대에 가지 않을 자율권이 있었는데 근대의 한국 불교신자는 그런 자유가 없다라는 것이다.개인에 대한 사회의 통제가 근대에 들어들며 합리화되고 수치화된 것은 사실이다.당연히 감시라는 측면에서 전근대의 허술함보다 근대가 치밀한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그런 사실을 가지고 전근대적 개체가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 받았다라고 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박노자교수는 결론에서 '국가물신화'현상에 대한 자각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스포츠 스타,황우석같은 과학자,한류열풍의 주역인 연예인등등이 다 '애국''애족'의 이름하에 움직이는 흐름에 반기를 들자는 것이다.이 생각의 밑바닥에는 '사회진화론'이 있고 거기서 승자가 되는 우리 민족과 국가에 대한 염원이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강자의 논리이며 세상을 정글로 파악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글을 맺고 있다.
"저항의 정신적 원천에는 바로 현 체제가 인간의 심신을 파괴하고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빼앗는다는 의식이 깔려 있어야 한다.... '힘의 숭배'는 생명 파괴의 길이요,죽임의 길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