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약간 무리를 하고 있다.말러리안 김문경이 쓴 말러 시리즈의 2편이 나왔다.2권에서는 교향곡 4,5,6,7번을 분석하고 있다.그가 칭찬한 음반중에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은 욕심이 난다.그중에 몇개는 진짜 못구하겠다.그래서 약간 열받고 있다.그 대표적인거...




 솔티가 연주한 말러 교향곡 3번이다. 솔티가 연주한 말러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나 역시 그의 음반은 가지고 있지 않다.그런데 김문경씨가 3번의 좋은 음반으로 이 음반을 추천했다.

문제는 이 음반이 전집으로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국내 유명인터넷음반사카탈로그에 이 음반을 찾을 수 없다.그래서 아마존을 기웃거렸다.거기서도 새음반은 없고 중고가 몇장 있었다.중고머천다이저에게 이 음반을 신청해 놓았다.그러나 문제는.....내 신용카드를 저쪽에서 못읽고 있다는 것이다.아마존 자체에서 신음반 구매에는 내 신용카드가 읽히는데 머천다이저쪽에서는 취급하는 카드기에 문제가 있는지 안됀다고 뜬다.내가 쓰는 해외용 카드는 딸랑 그거 한장...그렇다면 나는 이 음반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인가? .....

누구든지 이 음반을 구할 수 있는 분은 제게 알려주시길....

또한가지 음반.

리히터가 연주하는 슈베르트다,BBC에서 나온건데 ...이것도 구하기 쉽지가 않다.국내 인터넷음반사에서는 전부 품절이다.

아마존에는 신음반이 있어서 주문을 했는데 벌써 1주일이 지났건만 선적이 되지 않고 있다.거의 동시에 주문했던 <로린마젤의 말러 교향곡 4번>(이 음반도 김문경의 뻠푸에 ...) 은 배송이 시작되었는데...이 녀석은 왜 또 문제를 일으키지.....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행여 이 음반을 구할 수 있는 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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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0-07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존에 주문하신건 도착하실텐데.. 또 구하시면 어쩌려구요. ^^
그리고 결제는 아마존에 하는데, 셀러가 카드를 못읽어서 배송이 안된다는건 좀 이상한걸요?

드팀전 2005-10-0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뒤에꺼는 아직도 배송준비중이구요...머천다이저에게 주문한 것들은 죄다 카드 오픈이 안된다고 하네요.아마존 신품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이거 영어로 물어로 편지써서 물어봐야되나?

하이드 2005-10-0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송준비중인거 두.달.만에 받은적 있고요. 한달반만에 sorrymail 받은 적 있고요.
머천다이저라함은 개인셀러말씀하시는듯한데, 그렇다하더라도 결제는 아마존에서 이루어지는걸로 아는데, 개인셀러에게 카드번호 오픈되는건(알려지는건) 좀 위험하잖아요. 그 쪽 사이트에서 직접사시는거 아니면 왜 카드번호를 그쪽에서 신경쓰는지 음... 이해가 안가네요.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용수는 키가 컷다.190센티미터에 조금 모자랐다.얼굴도 조금 길고 눈두덩이도 보통사람보다 튀어나왔다.얼굴 빛은 조금 검은 편이고 눈과 댓구를 이룬 눈썹 역시 순악질표 일자 눈썹이었다.그는 내 군대 바로 밑 쫄따구였다. 군생활 초기 가장 그를 힘들게 한 것은 고참도 아니고 인사계도 아니었다.가장 큰 문제는 그의 '왕발' 이었다.용수는 그때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발이 큰 아이였다.그의 왕발은 '300밀리에서 305밀리'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하지만 그 당시 보급대에서 그가 지급받았던 가장 큰 군화는 290밀리였다.(군대는 '문'이라는 치수를 쓰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더 큰게 있었는데 재고가 없었는지 아니면 그게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나오는 가장 큰 사이즈인지 나로서는 지금도 알 길이 없다. 점호를 받거나 구보를 할 때 그는 약간씩 절뚝거리곤 했다.선임하사가 채근하면 그는 "네 알겠습니다.근데...발이 아파서..." 라고 말끝을 흐렸다.선임하사는 늘 "야..이xx 봐라...군대가 백화점이냐...그런말 몰라 '군대에 오면 옷에 몸을 맞추라'는 말 말야.이 xx 군기가 빠져서..." 내무반에서 본 그의 새끼 발가락과 복숭아뼈는 작은 군화에 혹독히 치여있었다. 결국 인사계는 용수에게 이태원 가서 사오든 미군부대서 훔쳐오든 그의 능력껏 알아서 군화를 바꿔 신으라고 나름대로 인자한(?) 해결책을 제시 했다.용수가 이태원에서 자기 발에 맡은 군화를 구하는데도 그 후 약 3달이 필요했다.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는 군화에 발을 맞추어야 하는 그리고 그것에 크게 저항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디서 출발하는지 주목하고 있다.이 책에서 박노자 교수는 그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 근대의 폭력성'이란 주제를 물고 늘어진다.과거 몇몇 책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역사학자로서 박노자는 한국 근대 형성기로 볼 수 있는 개화기의 우리 역사에서 근대적 폭력의 씨앗을 찾아낸다. 책은 주로 그동안 우리에게 '개화 선각자'로만 비춰진 개화기 지식인들의 행적과 그들의 사상을 따라간다.그들이 가진 가치관을 통해 이후 전개된 우리 역사의 근대적 폭력이 어떻게 파종되었나가 소상하게 펼쳐져 간다. 미리 밝히자면 이러한 계보학적인 접근은 원론적 비판에 곧바로 맞딱드리게 된다.현실 상황의 모순들의 근원을 계보학적으로 쫓아가다보면  사실이 가진 근원적 문제들과 역사적 관계들을 파악할 수는 있다.하지만 환원론적이라는 비판이 늘 따를 수 밖에 없다.비유하자면 '사상의 연좌제'라는 덫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또한 탈근대적 접근을 위해 당시 역사의 절박성이 지나치게 후대의 잣대로 재단되었다는 비판도 면하기 힘들것이다.역사라는 것이 해석의 문제이며 또한 한 역사가 가진 한계들을 지적하는 것 역시 후대 역사가의 몫이다.하지만 근대라는 거대한 광풍이 조선 반도를 밀어부치고 있던 시기에 그 구성원들에겐 역사적 도전에 대해 마땅한 응전을 찾는 것이 일차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폭풍전야의 시기에도 역사적 보편성과 인류애의 원칙을 잊지 않은 선각자들도 있겠지만 진정 소수중의 소수였을 것이다.박노자는 개화파에 대한 사회적 통념-즉 선각자라는-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그들은 그저 보수적 근대 지배계급이었을 뿐이라고 적고 있다.개화파들의 성향이 대개 귀족층이었으므로 계급문제를 들이대면 이것는 너무 당연해서 하나마나한 소리가 되어버린다.물론 박노자의 지적처럼 개화가를 선각자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기 때문에 어떤면에서는 그의 비판이 시의적절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또한 근대 초기 개화파들이 가진 문제를 그들이 접해보지도 못했던 '탈근대'로 '포스트모던'으로 들이미는 것에 -그 비판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한국적 근대만들기 프로젝트의 가장 큰 문제는 '근대적 폭력성'이다.이 폭력성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것을 박노자는 '사회진화론'에 두고 있다.개화기 지식인들 대부분이 부국강병이란 모토아래 사회진화론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봤다는 것이다.그리고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조선 민중 하나하나가 강인한 체력과 깨인 머리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즉 개인의식은 부재했으며 사회유기체의 한 구성으로 개인을 부속화 시키는 폭력이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는것이다.량치차오의 '무명영웅론' 이란 것이 결국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어 진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개화파들은 개인들의 덕성의 최고 모델을 근대적 군인에게서 찾았다.우리가 당연시 알고 있는 '징병제'에가 개화파와 구한말 조정에서는 가장 이루고 싶은 꿈중에 하나였다.하지만 일제의 군대해산은 징병제의 꿈을 산산히 깨드렸다.박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계보상으로 100여 년 전 개화파의 징병제 실시의 좌절된 꿈,일제시대 민족주의자들의 '징병제 구국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의식은 박정희,전두환의 병영국가 시대에 더욱더 강화돼 오늘의 징병제에 대한 보편적인 집녑으로 이어진 셈이다.

진보적인 인사조차도 '징병제폐지'에 선뜻 손을 들지 못하는 이유를 박노자는 계보학적으로 개화기의 부서진 꿈에서부터 찾고 있다.하지만 한국전쟁의 직접적 전쟁 기억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조금 이상한 면이 있다.반공주의와 징병제에 대한 신념등의 가장 직접적인 바탕은 한국전쟁에 개인들이 겪었던 경험의 역할이 크지 않을까 싶다.

박노자 교수는 우리 사회를 '병영의식'이 만연한 사회로 보고 있다.그 점은 남과 북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 우리는 '잃어버린 민족 동질성'을 자주 아쉬워하지만 결국 예비역과 그들의 특수한 가치관을 골간으로 하는 군사화된 사회의 형성과정은 남쪽과 북쪽이에 오히려 동질적 요소를 내포했다." 병영의식의 근저에는 무를 숭상하는 '상무정신'이 있다. 상무정신이 부각된 데에는 권력관계와 개화파들의 서구중심주의가 숨어있다고 그는 말한다.

"전통문화를 고수하려는 보수적 유림층으로부터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탈취하는 것이 계몽주의자들의 목적이었기에 '허약한 동양인''나약한 유교문화'와 같은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의 편견과 고정관견들이 여과 없이 받아들여져 이용됐다." "동양이 유교화 이전의 낭만화된 상무적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계몽주의의 역사관이었다"

박노자의 문제의식은 이제 테러리즘을 향한다.그는 테러리즘에 대해 한국 좌파가 서구 좌파에 비해 비교적 관대하다고 파악한다.그 근원에는 '의살'(의롭고 죄가 되지 않는 살인)이란 개념이 있다.거기에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더해진다.우리는 일제 강점기 무장독립투쟁 의사들을 국민적 영웅으로 보고 있다. 그들을 전부 테러리스트라고 매도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그런 현재적 이유로 인해 이슬람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박노자가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해 우선 비난하고 근원적 도덕성 결여를 지적하는 것을 빼놓지는 않는다.하지만 그렇다고 생각의 끝을 거기서 놓아버리지는 않는다.박노자는 개인의 폭력적 응징이 제국주의의 폭력에 그다지 효과적이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거시적으로 제국주의의 파시스트적 폭력에 대항하는 세계인의 연대이다. 조금 막연하고 이상적으로 보인다.이 대안 제시라는 부분에서 그가 피상적이며 이상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할 수 있다. 피억압 국민들에게 -예를 들어 이라크 민중들에게-박노자식 이상주의 해법이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해보자. 당장의 선결과제 앞에 그들이 어떠한 대응을 할 것인가? 공간적 외부자로 한 나라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또한 마찬가지로 시간적 외부자로 지난 시대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박노자에 의하면 한국 근대 태동기를 파악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국가'이다.교육,스포츠,군대,종교등이 각기 다른 외피를 쓰고있었지만 '강한 국가'를 위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다.개화파들은 '국가는 인격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박노자는 전근대 유교사회에서 어느정도 자율성이 있었던 개인에게 계몽의 잣대가 개인을 국가에 귀속 시켜 버렸다고 본다.근대의 관리체제가 '개인의 특성''개인의 성격'등을 무시하고 규격화,합리화 시켜 버린 것이다.박노자는 이것이 비단 우리 개화파들만의 잘못이라고 보지는 않는다.이미 근대적 '개인'이라는 가치 자체가 신화화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그 신화가 목표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틀안에서의 개인의 자유라는 한정적인 것이었다.


"근대 유럽의 '개인 자유의 영역'은 자본주의 국가가 공인하여 규격화시킨 한 사회 특권층의 법률적,문화적인 '사적공간'일 뿐이었지 만인의 '자아의 자유로운 실천'을 담보한 '개인주의 가치의 실현'이 결코 아니었다..... 또한 근대적 '개인'을 생산하고 규정한 주체가 바로 자본주의와 근대국가였던 만큼,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영역은 결코 국가적 폭력과 같은 '성역'을 침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로 소급되어 버리고만 개인 대한 그의 시각에는 완전히 동의 할 수 있다.하지만 근대적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전근대시대의 개인관을 미화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밖에 없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근대적인 개체와 전체의 관계논리는 어떤 경우에는 개체에게 근대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할 수도 있었다." 그가 예를 든 것은 2000년전 인도승려들에게 군대에 가지 않을 자율권이 있었는데 근대의 한국 불교신자는 그런 자유가 없다라는 것이다.개인에 대한 사회의 통제가 근대에 들어들며 합리화되고 수치화된 것은 사실이다.당연히 감시라는 측면에서 전근대의 허술함보다 근대가 치밀한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그런 사실을 가지고 전근대적 개체가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 받았다라고 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박노자교수는 결론에서 '국가물신화'현상에 대한 자각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스포츠 스타,황우석같은 과학자,한류열풍의 주역인 연예인등등이 다 '애국''애족'의 이름하에 움직이는 흐름에 반기를 들자는 것이다.이 생각의 밑바닥에는 '사회진화론'이 있고 거기서 승자가 되는 우리 민족과 국가에 대한 염원이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강자의 논리이며 세상을 정글로 파악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글을 맺고 있다.


"저항의 정신적 원천에는 바로 현 체제가 인간의 심신을 파괴하고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빼앗는다는 의식이 깔려 있어야 한다.... '힘의 숭배'는 생명 파괴의 길이요,죽임의 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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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들은 블루스 음반이다.이름이 '로버트 나이트 호크' ...  영화배우 이름처럼 멋있다.하기야 대개 블루스 아티스트들이 이름은 진짜 멋있다.

 '멤피스 슬림''하울링 울프''존리 후커''스크리밍 제이 호킨스''빅 마마 손튼'....

로버트 나이트호크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된 가수이다.그는 제대로된 생전에 자기이름으로된 음반을 가져보지 못했다고 한다.하지만 아마존에 들어가면 그의 이름으로 나온 음반이 수십장있다.그중에는 사후에 묶어서 나온 음반인 것도 있고 그가 세션으로 움직였던 음반들도 있다.

나이트호크는 블루스계에서 이단아였다.일단 그는 한곳에 오래머무르며 음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남부일대에서 꽤 이름을 알렸지만  어디 진득한 구석이 없었나보다.시카고에서 뉴올리언스,멤피스,캔사스...몇개월 단위로 이동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음반 자켓이 보통 샤우팅하고 있는 블루스음반 자켓보다 예쁘다.아마 이들의 공연이 정말 저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들정도이다.이 음반 <맥스웰스트리트 라이브>는 시카고에 있는 맥스웰거리에서 1964년에 행해진 실제 공연을 녹음한 것이다.즉 길거리공연을 그대로 녹취한 것이다,어떻게 보면 날것 자체의 블루스음반인 셈이다.맥스웰 스트리트는 당시 블루스맨들의 요람이었다고 한다.흑인 게토의 끝자락이었다고하는데 주말이면 수많은 블루스맨들이 이 거리에 나와서 공연을 하고 돈을 벌었다고 한다.

블루스에 대한 정의는 너무도 많아서 어떤게 정설인지 알 수조차 없다. 어떤 음악평론가는 블루스를 장르가 아닌 블루노트를 쓰는 흑인들의 음계를 뜻한다고도 한다.하여간 일반적으로 블루스는 블루노트에 가스펠의 상업적변모,노동가요의 묻고답하기,기타와 하모니카등의 민중적인 악기,블루지한 필링(흑인필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게 핵심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등을 특징으로 한다.

가장 쉽게 블루스를 구분할 때 세계 대전 전후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보통 남부흑인들이 목화따면서 부르던 블루스는 컨츄리블루스라고 한다.미시시피강 부근 목화밭에서 많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델타블루스라고도 한다.이 블루스 맨들이 강을 타고 올라가서 시카고에 도착하게 되는데 여기서 얼번블루스-시티블루스기 시작된다.아무래도 도시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니 통기타하나로 승부보긴 힘들었을 것이다.때마침 음악계는 일렉트릭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블루스에 일렉트릭 기타들이 사용되고 비트도 훨신 힘있어졌다.우리가 접하는 일반적인 블루스는 바로 이때 생긴 시카고블루스-얼번블루스이다.이 얼번블루스는 사실 블루스의 완성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아직도 시카고에 가면 이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이후 생긴 리듬앤 블루스,블루스 락 등은 원조블루스에 다른 맛들을 가한 것이라고 보면된다.

로버트 나이트호크는 컨트리블루스와 얼번블루스의 교량역할을 하는 사람이다.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무디워터스같이 일렉기타를 쓰지만 무디처럼 딱딱하지 않다.그가 연주하는 슬라이드기타 소리는 압권이다.녹음상태가 스튜디오처럼 좋지 못하고 모노로 녹음되어서 아쉽긴 하지만 블루스는 필 아닌가.그 필을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와이프랑 맥자한잔 먹으러 대학가로 갔다.간만에 락음악-이왕이면 60년대 올드락이나 블루스락을 틀어주는-그런 곳을 찾으려고 했다.예전에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는 그런 곳이 있었다.듀언올맨의 사진이 대문짝 만하게 걸려있고 재니스조플린의 영자신문조각이 여기저기 마구 붙어있는.... ...  하지만 이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거리를 몇번 빙빙돌았다.몇몇 그런 낌새가 나는 곳을 보았지만 왠일인지 문이 다 굳게 닿혀있었다.그런 음악틀어서는 장사가 안되나보다....ㅜㅜ

결국 밥말리의 사진이 대빵만하게 붙어있는 맥주집에 가서 'NO WOMAN NO CRY'를 들으며 50% 하는 맥주를 마셨다.오픈한지 며칠안돼서 맥주값이 50%라데..그걸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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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식들.... .... 공부는 안하고 맨날 역기만 들었나....짜식들.킁킁

다이어트를 시작한지 약 2개월이 지났다. 두달전 뉴욕타임즈 몇 십 주 베스트셀러라는 빨간 글씨가 선명하게 써있는 피트니스 책을 한 권 샀다.생전 이런 책을 사게 되리라곤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 밑줄 그으며 읽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라딘 리뷰를 쓰지 않았다.뭐 리뷰를 쓰려면 또 한 소설써대며 쓸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다이어트에 돌입했다는 말을 적들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서 안썻다.그리고 가오(햐..전문용어)가 있지 어디 수준높은 알라딘에 피트니스 관련 책에 대해 리뷰를 쓴단 말인가.사실 좋아들 하셨을 수 도 있지만 나의 고지식함이 45도 경사길을 내려가는 자동차마냥 '리뷰 브레이크'를 걸었다.

다이어트의 기본은 역시 운동과 음식조절 아니겠는가.식사량을 과감하게 줄였다.대신 영양가 높고 칼로리 낮은 간식을 끼니 사이에 한번 씩 먹었다.하지만 회사 다니면서 어디 매일 할 수 있었겠는가.식사야 공기밥을 더는 것으로 가능했지만 간식은 챙겨먹기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다.

운동도 그 책에서 알려준 데로 비교적 꾸준히 했다.저녁 시간에는 이런 저런 일들이 생겨서 방학일기 거르듯 빼먹기 쉽다.그래서 아침 일찍 운동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몇개월 전부터 일주일에 서너번은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베게에서 머리떼는게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2개월의 특훈(?)결과 몸무게가 조금 빠졌다.약 4kg. 광고 전단지에 나오는 기적의 다이어트들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하지만 세발 하려다가 돈날리고 몸망가지고 소비자 단체 찾아다니느라 귀찮은 것 보단 낫다.지난번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몸무게가 4kg빠진데서 3kg이 더 빠졌었다.물론 뒤에 빠진 건 병에서 회복된 기쁨과 함께 다시 반납했다.어떻게 보면 허무하다.그거 며칠 아팠다고 2달 운동 한것 만큼 몸무게가 줄다니.다시 돌아온 3kg에 유감은 없다.어차피 노력없이 버려질게 아니었으니까.그리고 다음 목표는 이 녀석들을 공중에 분해해 버리는 것이다.

운동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복근 운동이다.일주일에 두번에서 세번 정도 복근운동을 한다.위에 잇는 녀석들 처럼 왕자도 식스팩도 생기진 않았다.겨우 2달에 그런걸 넘보는건 과욕이다.그나마 축처졌던 배가 텐션을 받아서 올라붙었다는데 위안을 삼는다. 딱 맞던 바지들도 아주 조금 헐렁해졌다.의자 밑에 떨어진 펜을 주울때 예전보다 걸리적 거리는게 줄었다.그게 어디냐.떨어진 볼펜 100자루라도 신나게 줍겠다.

문제는 이제 운동을 안하면 안돼게 생겼다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계속 하지 않으면 결국 전부 다 살로 돌아간다.그것만은 진짜 막고 싶다.

저 위에 녀석들은 전부 식스팩에서 어떤 넘은 에잇 팩까지 배에다 차고 있다. 자--식들.....조금만 기다리라고.나도 배에다 선 그어준다 이거야..... 지금부터 너희들은 나의 존경하는 적이다.권상우,비,배용준,김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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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27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는 배보다는 눈이 최고죠^^ 퍼가요^^

하이드 2005-09-2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윽. 배용준 배 너무 숭해요

마태우스 2005-09-2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킬로라, 부럽습니다. 저는 운동은 하지만 식사를 못줄이는 바람에....

mannerist 2005-09-27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생각날때마다 10km를 뛰고 아침마다 윗몸일으키기 150개를 채우지만. 회식 한 번이면 다 망가지덥디다 -_- 여튼간. 요즘은 몸 괜찮으신거지요? 감량에 운동까지 하시는 걸 보면. 그때 그 보고서 읽구도 저런 이를 어째... 하면서도 댓글 하나 안 남겨 겸연쩍었는데... 이제야 인사 전합니다. 식스팩 성공하시고 비법 전수 좀 해주세요. 헤헷... 요즘 전어가 한참이던데, 물 가기 전에 부산 한 번 가도 될까요? =)

marine 2005-09-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용준까지 몸짱 대열에 낀 건 정말 충격이었죠 어제 장우혁 앨범 재킷 보니까 장난 아니더군요 연예계에서도 복근 없으면 못나오는 분위기 같아요 그런데 장우혁 말이, 하루에 6시간 이상, 어떨 때는 하루 종일 하기도 한다더군요 역시 직업적으로 하는 애들은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저도 아파서 살 빠지는 건 싫어요 옛날에 장티푸스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5kg 정도가 빠지니까 진짜 눈물나더라구요

드팀전 2005-09-2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비는 눈보다 춤이 낫지 않나요 ㅋㅋㅋ
하이드님>저두 징그럽게 생각합니다.사진의 테크닉일 수도 있는데...너무 울퉁불퉁하니까 잘빠졌다는 느낌보다 우악스럽다는 생각이...
마태우스님>제가 요즘 제일 무서워하는게 회식입니다.회식은 다이어트에 죽음이죠.다행이 요즘 너무 바빠서 회식할 틈도 없네요.
매너님>오랜만이에요.저두 매번 답글을 쓰지 못하는데 뭐 너무 개념치 마세요.그리고 10월달에는 힘들것 같아요.이달 초에는 주말까지 일해야 할 정도로 일이 몰려있구 중순에는 일주일짜리 출장하나에 일요일 쉬고 다시 교육 일주일이 겹쳐있네요.아..그나저다 2주일동안 운동을 하기 힘들어지는데...여관방이서 푸시업과 크런치를 해야하나.에이 나혼자라면 하겠지만 같은 팀사람들이 웃긴다고 할까봐서....
나나님>3킬로 빠졌다가 다시 찌는데 딱 사흘 걸리더군요.여기서 교훈...쉽게 빠진건 늘 쉽게 찐다.ㅋㅋㅋ
 

오늘 아침(2005.9.27) 한겨레 신문을 보다 전인권이 죽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시인 김갑수의 칼럼<자유인 정운영과 전인권>에서였다.칼럼은 고인들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우리사회에서 개혁운운하는 사람들의 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감상을 적었다.칼럼에서 김갑수도 말하고 있지만 이 전인권이 노래하는 그 전인권은 아니다.<남자의 탄생>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정치학자,미술평론가 전인권 선생이다.

<남자의 탄생>은 세간의 높은 평가에도 아직 읽지를 않았다.TV 책을 말하다에도 나오고 각종 신문에서도 올해의 책으로 뽑고 그랬지만 끝까지 보질 않았다.너도 나도 운운하는 책들은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어떨때는 냉큼 찾아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특별한 이유없이 '남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유'로 대중성에 비딱선을 탄다.이것도 일종의 얄팍한 문화적 우월의식인가?  어쨋거나 그 왜곡된 마음 때문에 그 책을 보지 못하고 있다니 스스로에게도 안타깝다.

하지만 정치학자가 쓴 미술책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은 즐겁게 읽었다.이 책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책 100권안에 들었다고 한다.이중섭 평전도 나와있고 관련된 서적들도 여러권 있지만 비미술학자가 쓴 인문학적인 미술평론집으로 훌륭했다.중간중간 이중섭의 에피소드도 들어있어서 읽기도 그리 어렵진 않았던 기억이 난다.

전인권 선생에 대해 알게 된건 S형때문이다.함께 일하던 어느날 형이 <편견없는 김대중이야기>라는 책을 들고 왔다. 전인권이란 사람을 한번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S형이 서울에서 일할때 회사 근처에 작은 서점이 있었다.거기 주인이 미혼의 노처녀였다.형이 퇴근하면서 가끔 들러서 차도 마시고 세상사는 이야기도 하고 책도 사고 그랬나 보다. 어느날 서점에 어떤 남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단다.그가 전인권이었단다.그 서점 주인의 오빠였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동네천재였고 다방면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서점주인은 오빠를 S형에게 소개해주고 함께 술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단다.그인연으로 해서 전인권선생이 책을 형에게 보내주었던 것 같다.(그리고 둘은 다 58년 개띠였다.)

<편견없는 김대중이야기>라는 책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다.책앞에는 저자의 서명이 있다.당시 형이 자기는 정치인 나오는 이런책 싫다고 해서 내가 덥썩 낚아챘다.하여간 형에게 들은 그의 이야기가 있어서 그랬는지 왠지 친근감이 갔다. 나 역시 언젠가 그 작은 서점에 들렀던 적이 있다.서울의 본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꽃한다발을 사갔다.그 아줌마(?)가 처음에는 좀 당황해했었다.그런데 S형 이야기를 하며 형이 보내는 거라고 했더니 빙긋 웃으셨다. 형에게 전화도 하고 차도 한잔 얻어마셨다.그리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맑고 편안한 내면이 느껴졌다.이후 그 서점도 대형서점에 밀려서 없어졌단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 그 인연이 조금 더 지속되었으면 전인권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서점 주인아주머니의 흔적도 이젠 찾기 힘들고 전인권선생의 부고는 신문 칼럼을 통해서나 들었다.

가을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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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9-2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전인권 선생이 죽었어요?
처음에 제목을 보고 가수 전인권이 자살했나? 했는데...
전인권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marine 2005-09-2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일이래요 언제 돌가셨죠? 저도 "남자의 탄생"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안타깝네요 별로 많은 나이도 아닌데...

비연 2005-09-27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름다운 사람 이중섭을 읽었었는데...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까운 분들이 자꾸만 사라지시는 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바람구두 2005-09-2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을 읽었는데...
돌아가셨군요, 정운영 선생 돌아가신 건 알고 있었는데....
그리고 고맙게도 잘 받았다는 인사도 전하고 싶군요.

마태우스 2005-09-2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저도 남자의 탄생 읽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