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장맛비에 푹 잠겨있다.눅눅한 물기 사이로 흐물흐물 검은 손이 올라올 듯 하다.공포영화의 시절이 돌아왔다.무서운 영화는 보고 나면 자꾸 머릿속에 장면이 남아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는 안보마 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또 다른 여름이 오면 호기심에 또 영화표를 끊는다.그러고 보면 공포영화와 숙취는 상관관계가 있다.과음한 다음날 "다니는 내가 술을 먹나봐라" 라고 말하지만 며칠 못가서 그 불편한 속과 머리에 대한 기억은 알콜앞에 무너진다.공포영화도 그 찝찝한 기억을 곧잘 잊는다.

금요일 밤에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을 보았다.영화포스터가 아주 인상적이다.화면처리를 통해 고딕분위기를 나타냈다.포스터 속의 김혜수는 공포에 넋을 잃은 밀랍인형처럼 앉아있다.그녀의 손은 분홍신을 신은 아이의 발목을 향해있다.

영화에서 분홍신은 여성의 욕망,에로스,질투의 상징이다.모든 초등학생의 학용품,신발,의상에 지배적 위치를 점유하는 분홍색.... 분홍색의 촌스러움에 익숙해져 갈 수록 아이는 여자가 되어간다.하지만 먼 기억속에 자리잡은 분홍의 유혹을 여자들은 떨칠 수 있을까.

영화는 분홍신에 얽힌 저주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너무 진부한 서술구조이다.몇몇의 샘플이 죽고 주인공에게 저주의 덧이 씌인다.기묘한 일들이 발생한다.점차 저주에 대해 인식하는 주인공,그리고 주변에서 저주의 실마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남자,결국 저주는 과거의 원혼이 특정 물체에 투여한 원한..영화<링>에사 나왔던 그 전형적인 드라마구조가 이 영화에서 답습된다.

드라마 구조의 허술함을 보상하는 것은 우선 미장센이다.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지하철 공간은 친숙함과 폐쇄성으로 공포를 실재화 한다.이 영화의 지하철 공간은 실재의 공간임을 의심케한다.아무도 없는 지하철이다.또 지하쳘 안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마치 모두가 사라져 버린 도시같다.심리적 의존 자체 불가능한 공간은 형광등 불빛 처럼 음산하다.디지털 탈색작업을 통해 화면은 전반적으로 녹색톤을 띈다.녹색이 주는 이질감과 또 핸드핼드 카메라가 주는 불안감.

주인공이 세로 이사한 아파트 역시 아무도 살지 않는 건물같아 보인다.통로는 지하철처럼 푸른 형광빛을 띄며 어둠의 입을 열어놓고 있다.반대로 집안의 구조는  앤틱스타일이다.CF를 찍는 세트처럼 주인공이 모은 구두와 그녀의 화장대,침대등이 고딕형 공포를 떠오르게 한다.이 실내공간은 연출된 강한 콘트라스로 음산함을 이끈다. 간간히 거울로 비쳐진 분열된 자아 이미지,공포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내려오는 천장의 압박감,꿈을 통한 저주의 암시,공중부양,아이를 이용한 공포등등.. .... 공포를 자아내기 위한 연출은 그다지 새로울게 없다.하지만 알고도 늘상 사람들은 놀란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은 욕망이란 부분이다.주인공 김혜수는 중상류층 여의사이다.그녀는 대외적으로 우아함을 유지하는 허위의식의 상징이다.금욕적이고 지적이며 이성적이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보여주기 위한 이성의 노력일뿐이다.허위의식은 반드시 억압을 낳는다.(물론 세상에는 허위의식자체도 인식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도 많지만...) 내적으로 쌓인 억압은 분홍신을 통해 은밀하게 해소되기 시작한다.분홍신이 가진 욕망의 무장해제에 대한 유혹은 나이를 가리지 않으며 미추의 기준도 넘는다.김혜수는 자신의 아이와 분홍신을 두고 싸운다.놀러온 뚱뚱한 후배는 폭력을 행사하며 아이로부터 분홍신을 빼았아 온다.그녀는 분홍신을 신고 즐거운 기분에 휩싸인다.마치 젊음과 아름다움을 전부 소유한 사람처럼 행동한다.그 결말은 이미 알겠지만 말이다. 억압은 여자들에게 늘 함께 한다.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자가 분홍신이 된다.하지만 여기에는 질투와 음모가 덧칠된 저주의 영혼이 들어있으니 욕망은 곧 파멸로 이어진다. 공포영화가 가진 도덕주의적 메시지가 이 영화에서도 다시 한번 재탕된다. 남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것.저주의 근본적 줄기가 되기도 하면서 현재에서 분홍신과 얽힌 저주의 패턴이 되기도 한다.

욕망을 자제하는 것 만이 저주로 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다. 영화에서 여자들이 과거나 현재나 미쳐버리게된 데는 남자들의 욕망이 존재했다.너무 쉽게 유혹에 넘어가고 한 여자를 파멸시키는 존재가 여자이다.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인과응보를 당하지만 실재로 공포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모두 여자들 뿐이다.이렇게 직접적으로 금욕적이고 반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포영화도 만나기 쉽진 않다.

저주를 풀었다고 공포가 끝나는것은 아니다.영화는 여기서 약간의 반전을 둔다.이미 공포는  억압안에 허위의식안에  죄의식안에 존재했었다는 것이다.영화초반 거울이미지로 분열된 정체서을 암시했다면 영화후반 지하철 씬에서는 주인공의 분열을 컷트 충돌이라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형상화한다.

아마 올해 이 영화가 올해본 첫 공포영화이자 마지막 공포영화가 될 듯하다.(공포영화는 역시 맘이 찝찝하다)  영화 전반부 억압과 공포가 어우러지는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진부한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낸 것이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좋은 오디오를 갖고 싶다는 건 언제나 먼 꿈이었다. 워낙 고가이다 보니 언감생심 어느 세월에 가져보나 생각만할 뿐이었다.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늘 꿈만 꾼다.그래도 '언젠가 ..'하는 즐거운 상상 정도야 뭐가 손해가 될가 싶다. 와이프는 가끔 그런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일단 집부터 사고 ...집 평수도 좀 넓어지면...그때 한번 자기돈으로 사라 ."   요약하면 이렇다.  1.집이 당면 과제다. 2. 오디오를 사도 지금 사는 작은집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3.사더라도 니돈으로..ㅋㅋ

사실 지금부터 열나 저축을 해도 하이앤드의 최고급사양들은 월급쟁이 내 신세에 무리다. 프론트 스피커 2짝에도 수천만원을 하는데 그 스피커를 구동하기 위해 그에 어울리는 친구들까지 들여놓는다면..한마디로 끝장이다.그리고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요란하게 시작할 필요도 없긴하다.오디오파일들도 다들 입문기.초급.중급.고급...이렇게 나누어서 업그레이드해 왔다고 한다. 저렴하게 시작해도 될 듯 하지만 그것도 당장은 안된다.왜냐...집이 없으니까....(정권은 1가구 1주택을 국민의무로 규정하라!!!.)

 집값은 넘 비싸다.아무리 오디오가 비싸도 집값만한 오디오는 없다. 최근에 와이프가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다들 그냥 평범한 주부들이다.서울사는 친구들이 대다수이다.집값 이야기, 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겠지.뭐 다들 어디 아파트가 얼마 올랐다.수원쪽이 낫다더라.판교가 어쩌구...6개월전에 샀는데 지금은 더블쳣다...이런 와중에 우리 와이프 기가 죽었나보다. 내가 사는 부산은 서울에 비하면 아직 집값이 장난이다.근데도 우린 아직 집이 없다.뭐 작년에 결혼했으니 그리 조바심낼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쨋거나 와이프는 빨리들 달려가는 친구들에게 약간 자극을 받았다. 어디 어디 분양 넣어보자고 한다.뭐 우리야 투기가 아니라 실거주니까...하긴 해야한다.그래도 이왕이면 오를 가능성이 있는데가 좋다고 열심히 알아보란다.근데 내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아서 좀 실망스러운가 보다.(나도 나름대로 하곤 있다구요.ㅆㅆ)  어쨋거나 전국민이 투기꾼화되어간다.재테크란 이름으로 그저 평범한 아줌마들도 집값 오르기 기대하고  돈을 여기저기 부동산으로 옮기고 다닌다.현명한 것 같다.근데 그럴 수록 나같은 무주택자들은 집사기 더어려워질텐데.....

아....오디오 이야기 하다가 왠/.........   장맛비땜에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아직 소리도 못들어 봤는데 난 왠지 저기 위에 있는 스피커가 맘에 든다.그랜드 피아노 시리즈이다.소누스 파베르라는 이탈리아제 스피커란다.저 브랜드도 또 나름대로 가격대에 따라 시리즈가 있는데 아마 저 위에껀 700만원대쯤 하겠지.더 비싼 것도 있고 더 싼 200만원대도 있고 그렇다.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소누스 파베르랑 인연이 닿을 것 같다.물론 저위에 있는 그런 좋은 건 아니라도....소누스 ...그때까지 잘 기다리고 있으라고....ㅋㅋ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5-06-2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모던하고 심플하고, 세련되 보이는군요. 드팀전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요. 근데 비싸긴 비싸군요. 인연 꼭 닿으시길...^^

분홍달 2005-06-30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면서요^^ 힘내세요!!
댓글저장
 

이달에도 결국 또 오바를 해버렸다.최근 들어 음반욕심이 높아졌나? 그전까진 매장가서 음반을 사다가 몇달전부터 인터넷으로 구입처를 바꾸고 난 다음 발생한 일인듯 싶다.시간날때 한번씩 보다가 보관함에 넣어두면 꼭 사게 된다.거기에 요즘 오디오를 구경만 하는데,오디오 구매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며 음반으로 푸느가보다.아무래도 목돈은 덜드니까.

  바흐의 키보드 협주곡 녹음이다.글렌 굴드의 에디션 중 일부인데 6번 협주곡은 들어있지 않다.6번을 굴드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고 한다.물론 실연에서는 연주한 적이 있지만 말이다.음반 내지를 보면 이 협주곡 녹음에 긴 시간이 걸린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지휘자 선정과 리허설 문제등이 걸림돌이었다고 한다.이 곡에 대한 녹음으로 최근 호평을 받은 머레이 페라이어 연주가 있다.기분에 따라 사실 좀 호불이 갈린다.어떨때는 페라이어의 감성 높은 터치가 맘에 들다가 또 어떨때는 무미건조한 굴드의 연주가 맘에 든다.하지만 피아노로 연주한 바흐에서 굴드를 빼놓으면 별로 남는게 없어진다.

 


압구정 풍월당 5월 음반 판매 1위라는 음반이다.모짜르트 레퀴엠의 현악 4중주 편곡판이다.피터 리첸탈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편곡한 거란다.이 사람은 모짜르트보다 조금 후대의 의사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다.밀란에서 오랜기간 살았는데 모짜르트의 곡을 좀 대중적인 장소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현악 사중주로 편곡하기로 했단다.현악 사중주의 긴장감이 레퀴엠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하지만 합창부분이 빠져있으니 뭔가 빈 듯한 느낌도 든다.오히려 하이든의 <십자가위의 일곱말씀>처럼 현악 사중주에 합창을 포함한 형태였으면 더 좋았을 듯 하다.커플링 곡은 피아노협주곡20번이다.내가 좋아하는 곡임에도 포르테피아노의 소리때문에 그닥 끌리지는 않는다.



아바도의 구녹음,카플란의 구녹음,래틀의 버밍엄 녹음에 이어 또 하나의 <부활>이 내 CD장에 들어왔다.주빈 메타와 빈필의 75년 녹음이다.주빈 메타가 요즘은 뭐하나 모르겠지만 이때만 해도 절정기를 달리고 있었나 보다.메타의 음악적 특성중 하나가 음색강조라고 한다.그래서 그랬나 뉴욕필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나 보다.이 음반에서 역시 화려한 음색과 긴장감 있는 템포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된다.그리고 폭발력 역시 어디 하나 꿀리는 데가 없다.과거부터 비독일계 지휘자가 연주한 최고의 말러 중에 하나로 손꼽힌 음반이었는데 이름 값한다.

.
 앞의 음반 듣다가 이 음반 들으면 "아..오케스트라에 따라 소리가 이렇게 다르구나"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뉴욕필과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러3번 교향곡 이다. 그러고 보니 번스타인이 뉴욕필을 메타에게 넘겨주고 유럽으로 갔네.이 곡은 옛날 부터 확대포장한 말러로 유명했던 음반이다.어떻게 보면 과장된 듯 하면서도 끈적끈적함이 묻어있다.뉴욕필의 금관은 여전히 건조하다.에버리 피셔홀의 음향상태에 적응하다가 그렇게 된 듯하다.(가본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하데..)건조한 금관이 주는 직선의 황량함이 또 다른 매력이 되기도 한다.아바도의 최근 녹음과 비교해보면 아바도는 범생이이고 번스타인은 블러핑쟁이이다.하지만 너무 매력적이다.이런걸 주술적 매력이라고 하나.


제랄드 수제는 프랑스 출신의 바리톤가수이다.최근에 과거 음반들이 재발매되면서 세인의 주목을 다시 받는 가수가 바로 그이다.독일 리트를 프랑스가수가 부르면 어떨까? 아주 멜랑콜리해진다.독일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나지만 대충 들어봐도 뭔가 독일어 발음에 두리뭉실하다.피셔 디스카우의 묵직하면서도 무뚝뚝한 딕션과는 차이가 있다.이 변칙성이 주는 독특함이 이 음반의 매력인 듯하다.수제 역시 디스카우에 비해 훨씬 부드럽게 곡을 소화한다.겨울들판을 헤메여도 품위를 잃지 않는 귀족풍의 해석이다.( 음반에는 <겨울나그네><백조의노래>가 들어있다.)



내가 처음으로 산 SACD이다.물론 아직 전용플레이어가 없어서 제대로 듣진 못하고 있다.그래도 하이브라이드라 일반 CD플레이어에서도 구동된다.왠지 음질이 더 나은 것 처럼 들리는데...실제 그럴지 아닐 지는 모르겟다.앞으로 SACD가 대세가 될 듯하다.물론 대중음악에서는 그닥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지만.일부에서는 MP3의 고압축이 LP소리까지 따라가서 결국 음반이 필요없게 될거라고 하지만 내생각은 좀 다르다.인터넷 소설이 있다고 종이책이 망하는 것은 아니다.화일도 저장된 CD....이것보다는 표지도 있는 SACD쪽이 더욱 땡긴다.야노스슈타커가 40년전쯤 남긴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음반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달이 슈타커가 나랑 궁합이 맞나보다.최근에 델로스에서 나온 하이든 첼로 협주곡 1,2번이다.위의 녹음할때 슈타커가 35살정도 였다고 하는데 이 음반 녹음할때는 70정되되었을거다.딸랑 두곡이 들어있어서 뭔가 아쉬운듯 하다.미샤 마이스키의 활달한 하이든에 비해  약간은 거친듯 깊은 숙성이 느껴진다.마이스키의 경쾌하과 밝은 하이든에 익숙해져서 일까 아직까지 확 땡기지는 않는다.물론 슈타커가 긇는 첼로의 질감은 스피커를 타고 느껴진다.마이스키가 첼로에 기름발라 맨질맨질한 연주를 들려준다면 슈타커의 첼로에선 나무냄새가 난다.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음반이다.수록곡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과 삼중협주곡이다.사실 후자 때문에 구입했다.삼중협주곡의 라인업은 피아노-클라우디오 아라우/바이올린-헨릭쉐링/첼로-야노스 슈타커/지휘-엘리후 인발 이다.그 유명한 EMI의 오이스트라흐/로스트로포비치/리히터/캬라얀 라인업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조화력인데....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든다.세링의 바이올린도 당당함이 떨어지는 듯하고 아라우의 피아노 음색은 튄다.워낙 독특한 음색이어서 피아노소리가 귀를 장악해버린다.


 결과적으로 아라우의 진가를 발휘한 음반은 쇼팽의 <녹턴>이 되었다.아라우는 동시대 살았던 호로비츠,리히터,제르킨 등에 비해 국내에서 인기가 없다.하지만 아라우는 SP시대부터 CD시대까지 아주 정력적으로 활약했던 대단한 피아니스트이다.내가 특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의 묵직하면서도 영롱한 피아노 음색이다.다른 어떤 피아니스트도 아라우같은 음색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쇼팽의 녹턴에서도 그 무게감과 영롱함이 빛을 잃지 않는다.부닌류의 연약한 쇼팽도 아니고 폴로니류의 강철같은 직선의 강함도 아니다. 거장의 무게감이 쇼팽에 힘을 준다.


듀오 크로멜링크는 부부 피아니스트 듀오이다.이 둘다 몇년전에 자살했다고 한다.이들은 브람스,드보르작등 작곡가의 곡들을 피아노 듀엣으로 연주한 음반을 여러장 발표했다.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교향곡 피아노판 편곡은 이것 저것 있지만 이 음반에 수록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비창>은 쉬이 찾기 힘들다.음반에는 세계 초연 녹음이라고 한다. 교향곡의 피아노 편곡판을 들을때 교향곡에 비교해서 들으면 실패한다.60-70명이 만드는 소리와 피아노한대 또는 두대로 만드는 소리가 어찌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겠는가.편곡반 나름대로의 매력을 찾으면된다.이 곡 역시 그런 차원에서 들으면 재미있다.매일 밥만 먹을수는 없지 않은가.


** 내가 산 음반은 이음반은 아니다.이미지가 없어서...

말러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구입했다.덥썩 집어들고 들어보니 현악오케스트라 편곡이었다.커플링은 드보르작 아메리카...2002년인가 4년인가 그래미어워드 뭐 그랬다.근데 정작 사중주와 스트링오케스트라는 듣는 재미를 둘만큼의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좀더 부풀려지교 유려해졌다는 정도.이 레퍼토리의 관현악 버전도 있는데 그걸 구입했어야 했는데....아쉽당.

 

쿠이겐의 플룻 연주에 대핸선 모짜르트 사중주때 부터 믿음이 갔다.그는 플룻대신에 트라바소라는 일종의 목관 리코더를 사용한다.나무통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가 훨씬 정감있고 따뜻하다.텔레만의 무반주 플룻 소나타..... 물론 전곡을 한번 다 듣기가 좀 힘든 면은 있다.특정 멜로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악기간의 조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듣다보면 딴짓하곤 한다.현대음악보다 고음악에 대해 내가 좀 지루하게 느끼는 것도 그런 성향때문이기도하다.그나마 텔레만은 바흐랑 그닥 멀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김갑수의 책중에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라는 것이 있었다.이른 아침 들으면 어떤 느낌이들까?

 

*휴....쓰고 나니 걱정된다.이렇게 많은 음반을 사고 말았다.부인한테 죽었다.제발 살려주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전출처 : 분홍달 > 동동주 한 사발 먹고, 쉬~엄 쉬엄^^

오랜 만에 떠나는 여행에선,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것들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무엇이든 다 느끼고 싶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떠났던 여행이 더 만족감도 크고 기억에도 많이 남는 듯 하다. 일주일 만에 다시 떠난 여행이라 짜릿함은 덜 했지만, 뭔가 느껴야 한다는, 좀 더 많이 보고싶다는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이것이 진짜 여행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보경사 적광전 신방목에 조각된 사자상

이번 여행은 포항으로 향한다. 오래 전 부터 한번쯤 가 보고 싶었던 보경사를 찾아간다. 보경사에는 원진국사비, 원진국사 부도, 오층석탑 등의 보물이 있지만 절 자체보다는 12개의 폭포가 있는 내연산이 더욱 매력적이다. 오르는 길이 험하지 않아 조금의 수고로도 깊은 골짜기에 닿을 수 있다. 해발 930m의 향로봉까지 오르는 것은 무리지만 내연산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려면 연산폭포 까지는 올라가야 하는데, 그것도 왕복 1시간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물빛이 짙은 고동색인데 아마도 활엽수가 많은 탓이 아닐까 싶다


연산폭의 제일 윗부분

내연산

내연산의 바람
뜨거운 한 낮에 산을 오르는 여행객에 더없이 고마운 바람이 참나무를 흔들고 있다. 바람을 찍고 싶었는데, 나의 내공으론 도저히....멋진 음악하나 배경으로 깔리면 그대로 천국이다.....내연산 보경사 입구에는 유난히 칼국수 집이 많다. 직접 손으로 만드는 칼국수 맛이 좋다하여 자리를 잡았다. 휴일이라 하루종일 손님들에게 시달린 점원들이 유난히 피곤해 보인다. 결국 칼국수는 맛 보지 못하고, 동동주와 도토리묵 한 접시만,, 넉넉한 나무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한잔 걸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다만 대낮부터 벌~게진 얼굴이 민망하다. ^^;;


매산종택(정재영 가옥)

포항에서 영천으로 약40분 쯤 가면 매산종택, 이 곳은 표지판이 잘 설치가 돼 있지 않아서 찾기가 힘들다, 거의 해가 질 무렵 도착한 이곳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서 좀 으스스한 느낌이었다..종택 뒤쪽 대숲에서 이는 바람 소리가 무섭기만 하다..

영천 시내로 가 숙소를 잡는다. 소도시라 그런지 8시 밖에 안 됐는데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없다. 빛과 소음에 익숙한 난 어둠과 고요가 무섭다


독락당의 별당 계정

다음날 아침, 10시 쯤 숙소를 나와 '동방오현'으로 추앙받는 회재 이언적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로 향한다. 위 사진의 독락당은 회재가 장년에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자옥산 골짜기에서 햇수로 7년동안 은거한 곳이다. 현재 그 후손이 살고 있어 독락당 안은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으나 주변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영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독락당은 살림집으로서는 드물게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인데 옆으로 개울이 흐른다. 지금은 그야말로 개울이지만 그 위에 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수량이 많은 곳이었으리라, 지금도 너른 바위와 푸른 숲으로 인해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다. 또 계정으로 가는 곳엔 바깥 울타리가 흙담이 아닌 성긴 나무 울타리로 되어 있는데, 그곳은 대청에서 바로 바깥풍경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곳이라고 한다. 인상적이라고 느끼면서도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정혜사 13층 석탑

독락당에서 약400m  정도 올라가면 왼 편에 정혜사터의 13층 석탑이 나온다. 신라시대의 석탑으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모양이다.  2층 이상의 탑신부가 급격히 줄어서 마치 지붕돌만 포개놓은 것 같고,  기단 또한 이색적인데 탑 주위에 네모지게 막돌을 두르고 그 위로 두둑이 흙을 쌓아올려 기단을 삼고 그 한 가운데 2단으로 다듬은 돌을 놓아 탑신부를 받쳐 놓았다. 쇠락해 가고 있는 토끼풀과 어울려 뜨거운 햇볕아래서 그 고즈넉함을 즐겨본다.


세심대에 놓여진 나무다리와 옥산서원

안강읍 옥산리 일대는 회재 이언적이 이름 지은 '4산5대'가 있다. 무학산, 도덕산, 화개산, 자옥산 이렇게 4개의 산과 계곡의 바위들 가운데 다섯 곳을 골라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징심대, 세심대라 하였다. 위 사진은 그 중하나인 세심대와 옥산서원(왼쪽으로 살짝 보이는)의 모습이다. 이곳은 회재가 죽고 20년 뒤인 1572년에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묘우였다가 2년 후에 서원으로 승격이 되면서 선조로부터 '옥산서원' 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누마루가 열려 있다면 훨씬 보기 좋을 터인데, 관리상의 어려움 때문인지 모든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참 답답하다. 하지만 옥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 만큼은 참으로 시원하다. 아침도 걸러 출출하여 근처의 산장식당으로 향한다. 파전, 동동주, 그리고 비빔밥...커다란 단풍나무 그늘아래 누워 음식이 나오길 기다린다. 드디어 조껍데기 동동주가 먹음직스런 파전과 함께 나온다. 바람불어 좋고 탁트인 앞마당이 좋고 사랑하는 님있어 좋고...타고난 문장가라면 시조 한 수, 훌륭한 소리꾼이라면 소리 한 자락이 절로 나올 터인데....


양동 민속마을의 관가정

옥산서원에서 포항방면으로 약2km 정도 거리의 양동 민속마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반촌하면 안동 하회마을과 이곳 양동마을을 꼽을 수 있다. 하회마을은 이름처럼 굽어진 내를 끼고 있고, 양동마을은 골짜기에 걸쳐져 있다. 국보 1점과 보물 3점 외에 많은 문화재들이 있어 마을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고 다른 민속마을에 비해 덜 인위적이어서 자연스런 느낌이다. 이곳 역시 표지판은 있으되 쉽게 알아 보기가 어렵다. 마을 입구 안내소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포항시 오천읍에 있는 오어사로 향한다. 호반의 절이란 멋진 설명과 사진을 보고 찾아 간 곳이나, 실망스러웠다. 혹시 가을에 단풍이 곱게 물들 때라면 그 풍경에 반할지도....

여행의 맛도 나이따라, 경험따라 참 달라지는 듯 하다. 하기야 늘 같다면 무슨 재민가!!...이제 다시 일상~~! 나의 일상도 가벼운 여행처럼 대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농의 책을 읽다가 대학교 역사 수업시간이 떠올랐다.식민지 해방투쟁과 관련된 수업이었다.첫 시간에 강사는 이 수업의 기본 전제에 대해 말했다.일제 식민지 시기 우리 민족의 반제국주의 전선은 크게 두가지이다.하나는 민족개량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혁명론이다.우리 역사는 분단으로 인하여 폭력혁명에 대한 부분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반면 민족 개량주의는 당시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아주 현실적인 선택이었다.하지만 강사왈...그거 다 뻥이다.그리고 한 학기 수업에서 왜 민족개량론이 뻥일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식민지 현실에서 폭력혁명이 유일한 반제국주의 투쟁방법일 수 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일제시대 우리민족의 과제는 두가지로 압축된다.반봉건과 반제국주의.반봉건은 유교적 중세성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와 민권의식을 함양해야하는 내적 과제이다.이와 함께 외세라는 제국주의의 물결에 저항하여 민족의 생존권을 지켜야하는 외적 문제 역시 해결되어야 했다.이러한 이중억압 구조의 혁파는 지상과제였다.많은 지식인들이 그 대안을 사회주의 혁명에서 찾았다.해방 이후 초기에서 중도좌파계열이 대중의 상당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혁명전통의 순수성과 토지분배문제에 대한 민중들의 이익을 반영하고 있었기때문이다.이 책<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서문에서도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다.  "민족혁명이 성공하려면 사회주의 혁명이어야 한다."

사회주의 혁명의 특징중 하나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이다.개인의 자유와 사적 자본축적을 이룩한 한 역사의 주체 부르주아지가 변증법의 틀에서 안티테제에 이르는 때가 필연적으로 온다.노동력만을 유일한 자본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은 승리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쳐 사회주의 이상이 건설된다.프란츠 파농은 이 책에서 사적 유물론의 단계론적 세계관을 식민현실을 토대로 부정한다.파농은 저개발국에서 부르주아지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한다.식민지 사회에서 부르주아지는 식민 모국의 부르주아지와 자신을 동일사하려는 속성을 보인다.거기에 그들은 편협한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민족을 대표하는 권력을 얻게 된다.이들은 또한 식민 모국이 심어준 인종주의적 편견을 그대로 답습한다.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하여 "조선놈들은 게을러서......" 라는 식의 민족 부르주아지의 정서가 피부색을 달리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면 그게 인종주의적 편가름이된다.민족 부르주아지는 점차 자신의 민중들에게는 등을 돌리고 식민 모국,외국자본가들을 지향한다.결국 식민 모국으로 부터 독립이 될 지라도 광범위한 압력을 통해 식민모국은 그 영향력을 직접지배때보다 넓히게 된다.더 간단하게 말하면 식민국가는 신신민지의 형태로 바뀌게되는 것이다.

파농은 식민지의 자본축적이 중개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파악한다.식민지는 경제적으로 이중의 수탈을 받는다.하나는 자원의 공급시장이요 또 하나는 잉여생산물의 수요시장으로서의 역할을 갖는다.민족부루주아지는 이 사이에서 중개라는 형태를 통해 자본을 축적한다.파농은 해방이후 중개업에 대한 국유화로 자원의 분배형평성과 민족부르주아지의 사적 자본 축적의 통제를 주장한다.

파농이 보기엔 혁명의 주체는 사회주의혁명처럼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파농은 프롤레타리아를 식민지사회에서 나름대로 수혜를 보고 있는 사람들로 본다.이들이 점차적으로 민족 부르주아화 되며 민족정당에 대한 지지를 보이게 된다.식민 모국은 지속적으로 분리정책을 주도한다.결국 프롤레타리아와 식민부르주아가 혼재하는 도시층과 농민과 기타원주민들이 산재한 농촌과의 분리가 이루어진다.파농은 혁명주체로서 후자인 농민을 들고 있다.그는 농민들의 혁명역량과 의식의 건강성에 대해 과하다 할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치교육의 강화이다.농민을 비롯한 대중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현재의 억압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농촌으로 잠입한 투사나 지식인들이 그 단초 역할을 한다.하지만 파농은 그들의 역할에 과다한 짐을 싣지는 않는다.그들 역시 민중속에서 그들에게 동화되어 배워야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탈식민논의의 초석이 된 것은 파농이 심리학자였다는것이 큰 역할을 한 듯하다.식민지의 구조와 경제체제만을 논의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인들이 갖게 되는 내적 식민화의 부분을 파농은 심각하게 우려하고 그 원인의 소재를 밝힌다.우선 식민화된 인간의 공격성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인종주의적 이분법이 내재화된 이주민들은 원주민 통제를 위해 가공한 폭력을 일삼는다.식민지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원주민처럼 되길 꿈꾼다.하지만 이러한 꿈은 꿈일뿐 지속적으로 좌절을 겪게된다.내적 억압은 같은 억압을 받는 원주민을 향한 폭력으로 발산되는 양상을 보인다.특히 식민지 룸펜 프롤레타이아의 폭력은 주의를 요한다.혁명초기의 룸펜프롤레타리아의 폭력성을 어느방향으로 잡느냐에 따라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파농은 기본적으로 식민지체제의 폭력과 원주민의 대항폭력에 같은 가치를 부여한다.식민체제가 폭력적일 수록 대항하는 힘도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파농은 이 에너지가 혁명투쟁으로 전환되기를 꿈꾼다.각성된 민중의,민중을 위한,민중에 의한 무장혁명이다.폭력투쟁은 게릴라전 양상을 띄게 될 것이며 또 식민모국의 유화정책에 교란될 것이다.파농은 단호히 전체의 변화가 아니라면 타협은 없다라고 말한다.또한 식민모국의 이분법적 사고로 내적 식민화된 사람들의 인식 해방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즉 검은 사람보다 더 검은 하얀피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 또 그 반대도 항상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세밀한 관찰을 요구한다.

파농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탈식민화는 식민상태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입장은 아니다.파농은 말한다.탈식민화는 언제나 폭력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탈식민화란 쉽게 말해서 어떤 '종의 인간이 다른 종'의 인간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과도기 같은 것은 전혀 없고 오로지 전면적이고 완전하고 절대적인 대체만 가능하다.파농의 이러한 주장은 현체제에 적용하는것은 과격한 주장이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파농의 60년대 알제리와 현재의 시대는 다른다.하지만 억압받는 소수국이 거대한 제국에 저항하며 생존권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에 의존하는 것 외에 또 다른 길이 쉬이 찾아지지는 않는다.물론 개량주의적 타협을 배제한다면 말이다.

우리 민족은 파농의 이야기에 정서적으로 닿는 부분이 생긴다.식민지를 겪었기때문이다.파농이 지적한 내적 탈식민화가 우리사회 제반 부분에 적용되는 것도 식민지 역사라는 토대가 있기때문이다.우리의 의식적 탈식민화는 일본제국주의의 억압대상자로서만 한정되지 않는다.신식민지상황 속에서 미국과 서구문명에 의존적인 역사 역시 내적 탈식민화의 영토가 된다. 또 등떠밀려나갔던 자의적으로 나갔다 미국의 세계전략 일원으로 참가했던 베트남전, 해외시장,국내등지에서 벌어지는에서의 경제적 착취문제등에도 자성해야만 한다.사르트르와 파농은 이렇게 자성의 목소리를 높인다.

"동포들이여 우리의 이름으로 온갖 범죄가 저질러 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한마디도 다른 사람에게 내뱉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법정에 서는 게 두렵다면 자신의 영혼에게라도 말해야 한다."

 "내 몸이여,나를 언제나 의문을 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6-16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5-06-16 09:26   좋아요 0 | URL
**님께....감솨..감솨....
오타는 찾는데로 수정하겠습니다.제가 서재글을 쓸때 주로 회사에서 눈치봐가며 쓰거든요.아무래도 빨리 치다보니 오타가 있습니다.거기에다가 다시 한번 볼 틈도 없이 바로 등록해버리거든요.이후에 한번씩 보다 오타발견하면 그때 그때 수정하죠.지금도 하나찾았는데...찾아보면 많을거에요.알어서 읽어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