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잔혹 반일집회’는 과연 애국인가


단지 반일시위 전국 무술인연합회 회장부인 박모씨가 14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우익단체들의 일본 역사왜곡 규탄집회에서 일본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손가락을 잘라 치켜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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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4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독도수호전국민연대의 일본 독도.역사 왜곡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반일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일장기 불태우는 반일시위대 14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역사왜곡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장기를 불태우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최근 계속되는 일본의 망언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도심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15일 서울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 시민단체 대표가 일본 상징물을 태우자 취재진이 몰려 취재경쟁을 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 15일 서울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HID(북파공작원)단체가 반일시위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사진설명]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홍정식 활빈단 대표가 할복을 시도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진설명]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HID(북파공작원)단체가 일본대사관으로 행진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분석] ‘잔혹 반일집회’가 걱정되는 까닭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은 연일 비장감이 넘친다. 닭의 생모가지를 치고,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미수에 그쳤지만, 배를 긋거나 산 돼지 멱을 따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피의 제전’은 독도 문제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박박 우기는 일본은 정말 싫다. 그런데 저 사람들 저러는 것도 싫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그들만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독도보다 제 손가락을 귀히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나쁜가? 이럴 땐 꼭 피를 봐야 나라사랑이고 민족사랑인가?

    “잘랐으면 됐지 웬 봉합수술?…서민은 몸으로 때워서 민족 지켜야”

    섬뜩한 의식을 마다지 않는 방식으로 ‘애국’을 외치고 실천하는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감행할까. 의문의 실타래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국민들은 너무 무관심하다. 저 놈들이 독도를 가져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조일환(69)씨는 지난 14일 부인과 아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단지식을 한 뒤에도 담담함을 잃지 않은 채, 국민이 독도 문제에 무관심한 걸 깊이 근심했다.“둘 다 봉합수술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두고 왔다. 잘랐는데 왜 붙이나?”

    손가락을 자른 처자에 대한 그의 담담함은 ’멸사봉공’의 극한을 보여주는 듯하다. 조씨 자신이 이미 74년 육영수씨 피살 직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손가락을 자른 바 있다. 그는 “학자들은 글로써 애국하고, 정치인은 정치로써 애국하고, 서민은 몸으로 때워서라도 민족과 국가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안병욱 교수 “관제데모의 잘못된 관행이 간접적 영향”

    그러나 그의 진지함에서 묻어나는 진부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국사학과)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북한 문제나 일본 문제를 국내정치에 써먹으려고 이용했던 관제데모의 잘못된 관행이 간접적 영향을 끼친 것 같다. 30여년 궐기대회의 문화가 민주화된 뒤로도 제대로 정리되거나 승화되지 않아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대응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의 지적은 심리학 이론으로도 뒷받침된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과)는 “인간은 좌절감을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나름대로 학습된 내용에 따라 고정된 행동방식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좌절감을 손가락을 자르거나 화형식을 하는 행위로밖에 표출하지 못 한다”며 “예전 같으면 이런 행동이 지사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생뚱맞다는 반응을 부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제데모의 뿌리깊은 학습효과…그들을 보면 박정희가 생각난다”

    이들은 이념적 경향에서도 매우 뚜렷한 공통점을 보여준다. 때만 되면 예외없이 극우적 목소리를 내온 단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독도 문제를 놓고 비슷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자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박정희가 생각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 전공)는 “박정희 정권 때도 단지식도 하고 엄청나게 반일 데모도 했었다”며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변신한 뒤 반일감정을 고취했던 박정희의 캐릭터가 극우단체들의 최근 반일 행태를 푸는 열쇠”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정희의 캐릭터가 ‘다중인격’적이어서인지, 그를 통해서 극우단체들의 행태를 설명하는 것도 매우 까다롭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일제 찬양성 글을 쓴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와 그의 서포터스를 자청하고 나선 지만원 시스템연구소 소장,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 같은 인물들이 지금 일본대사관 앞에서 극단적인 반일 행태를 보여주는 인물들과 정치적 사안에서 거의 한목소리를 내온 사실을 떠올리면 머리 속은 한층 복잡하게 꼬인다. 왜 이들은 유일하게 일본 문제 앞에서 분열되는 것일까.

    한홍구 교수는 “한승조 교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친일파라고 커밍아웃한 게 아니라 상황이 변하면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아우팅당해 본색이 드러난 것으로 본다”며 “한쪽이 ‘사고’를 치고 뒷수습을 하고 있을 뿐 일본에 대한 양쪽의 본색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친미파들이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이용한 것은 우리의 반일감정이 인종주의가 아닌 역사적 피해 경험에서 나온 것이어서 대중에게 강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극우세력이 국민 호소력을 잃어버린 걸 만회하려고 더욱 극단적인 반일 행태를 보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자의 논리’ 숭배 앞에선 ‘친일=반일’ 등식 성립”

    극우세력 사이에 ‘박정희=반공=친미’의 등식은 뚜렷하게 공유되지만 일본에 대한 태도는 갈릴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한승조 류의 ‘박정희=친일=반공=친미’의 등식은 부분적이거나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팀장은 “해방 이후 권력투쟁 과정에서는 친일파들이 생존수단으로 미국과 손을 잡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붙들었기 때문에 그런 등식이 성립된다”면서도 “친일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들이 극우세력 안에서도 다수가 된 지금은 문화적으로 그런 등식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 팀장은 “젊은 우파들 가운데는 심지어 친미에 대해 헷갈려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한 태도가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도 이들이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같은 목소리로 합창할 수 있는 사정은 무엇일까.

    “소설가 이문열씨는 ‘을사늑약은 합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독도를 북한에 미사일 기지로 내어주자’는 주장을 하지 않느냐.” 김 팀장은 “양쪽은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를 숭배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며 “힘이 약해서 일본에 먹힌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자는 태도와 힘의 방식으로 일본을 쳐부수자는 태도는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강자의 논리는 미국의 침략전쟁까지 ‘선’으로 여기며, 반일운동을 하면서도 과거사 규명을 ‘좌파의 음모’로 공격하는 태도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독도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케시마를 탐내는 방식을 따라야 하나?

    한국내 극우세력의 극단적인 행동이 독도 문제 해결을 더욱 꼬이게 할 거라는 우려도 있다. ‘탈민족주의자’ 임지현 한양대 교수(역사철학부)는 “한국사회가 들끓으면 일본의 극우파들이 양심적 좌파들에게 ‘한국의 민족주의자를 도와준다’는 비난을 퍼붓는다”며 “흥분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탈민족주의가 아니더라도, 독도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케시마를 탐내는 방식보다 엽기적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지난 15일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극우단체들말고도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청년학생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의 항의 표시는 ‘종이 비행기’를 접어 일본대사관 안으로 날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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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일기 - 남극의 비극적 영웅, 로버트 팔콘 스콧
    로버트 팔콘 스콧 지음, 박미경 편역 / 세상을여는창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한때 국내 S그룹에서 1등주의를 내세운 캠페인을 한 적이 있다. 물론 한편에서는 그 광고의 부당성을 말했다.요즘처럼 인터넷 패러디가 유행했다면 당연히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편화 되지 않았나 보다.스콧의 일대기는 국내 굴지의 그 잘난 그룹의 1등주의에 딴지를 거는 가장 좋은 예가 되었을 것이다.그때 광고가 뭐 그랫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스콧은 <남극일기>를 통해 최초의 남극점 정복자 아문센보다 유명세를 탔다.

    스콧과 아문센에 대한  평가는 세상을 보는 두가지 가치의 압축판이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 두 가치는 다른 이름의 옷을 입을 수 있다.그래도 가장 보편적인 시각은 '결과중심주의'와 '과정중심주의'라는 것이다.본인이 원한바는 아니지만 아문센은 결과중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저자가 간략한 브리핑을 통해 밝혔 듯이 <남극일기>가 발견된 후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는 아문센보다는 스콧에게 œP아졌다.극한 상황에서 보여준 인간정신의 강인함은 남극점에 깃발 하나 꽂고 돌아온것 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아문센 입장에서는 진짜 억울한 일이다.스콧에게 무슨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정당한 방법으로 남극점 최초의 정복자가 되었음에도 폄하되었으니 말이다. 스콧이 일단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그와 그의 팀이 보여준 초인적인 인간의 모습때문이다.동료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릴 줄 아는 대의정신,죽음앞에서도 책임을 잊지 않던 의연함,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활발한 활동들...

    20세기 초반,인간의 이성에 대한 강한 믿음의 시대,단순한 자연의 정복을 넘어서는 강인한 이성의 대표적 아이콘이 스콧이었을 것이다.거기에 정치적인 힘이 작용되었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제국주의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영국이 한낫 바이킹의 후예에 밀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콧 대원들의 장렬한 최후는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는데 최고의 명약이 된 셈이다.

    아문센과 스콧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콧 일행이 보여준 드라마는 인간정신의 구현이란 점에서는 최고의 드라마상을 받을 만하다. 내가 특히 관심이 갖던 것은 스콧 팀의 공동체 구현이다. 스콧은 자율성을 인정하는 열린 리더로 비춰진다.그는 각 대원들의 특징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그들의 능력을 공동체 안에서 공유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각 대원들은 자신의 해외경험이나 전공분야에 대해 동료들에게 강의를 한다.이 강의와 토론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아나키즘에서 말하는 자발적 공동체의 전형이 되는 것이다.아문센의 기록은 아직 살펴보지 못해서 무어라 말할 수 없으나 스콧처럼 인간적인 공동체를 구현해 내지는 못했을 듯 싶다.

    이만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통나무집 하나에 모든나라와 모든 지방의 경험이 다 들어있다. 잡다한 지식의 집합소가 따로 없을 정도다.

    겨울의 정점을 자축하던 밤 내가 선물로 받은 것은 체리그래드의 <남극타임즈 1호>였다.그것은 데이가 제본한 조그만 책자였는데 표지가 매력적이었다.

    스콧의 일대기를 무시하려는 처사는 아니다.그의 이야기는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책 <남극일기>에서 이를 찾으려는 사람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스콧이 직접쓴 보고서 형식의 일기이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며 쓴 생생한 경험의 글이라는 측면에서는 감동적이다.하지만 드라마적 구성은 결코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 책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내용이라고 할 만한 오츠의 죽음 역시 간략하게 그려질 뿐이다.그렇다면 책의 대부분 내용은 무었일까? '하루 몇킬로를 갔다. 식량이 얼마나 남았다.'가 주를 이룬다. 스콧이  이 글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쓴게 아니니 당연하다. 하루 하루의 일과를 간략한게 보고하다 보니 좀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번역은 진짜 맘에 안든다.주술관계가 안맞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 여러게 발견된다.안그래도 이 책에 등장하는 남극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데 한 술 더 떠주는 셈이다.

    결과는 원래의 쟁점을 정당화 시켰지만 나는 판단의 착오가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경우 충분한 증거없이 추정되는 안전감에 의존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불신감이 남극의 종잡을 수 없는 기후가 제법 오래 떨어져 있던 동료들에게 여러가지 형태의 재난으로 타격을 입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스콧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기대해서였을까. 그가 사선에서  쓴 <남극일기>는 기대에 미치치 못했다.좀더 신중한 번역이 필요했다.또 남극의 상황과 용어들에 낯선 일반독자들을 위해 좀 더 자세한 자료가 제공되었어야한다. 그래야만 스콧이 처했던 상황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감동이 커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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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우스 2005-03-15 12:46   좋아요 0 | URL
    아문센과 스콧, 다른 책에서 둘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성공해서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아문센이 준비 면에서 더 완벽했다고 들었는데, 남극일기 발견 후 역전이 되었다더군요.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남극일기도 남극일기지만 대영제국의 힘과 매스컴 플레이가 더 주효한 게 아닌가 싶네요.
     



    (이 음반은 솔로로 독립한 그래험 내쉬의 앨범이다.이거 진짜 대단한 포크명반이다.CD로 겨우 복사했다.)

     이제 이야기는 군을 제대한 때 쯤으로 넘어가자. 한동안 방황을 좀 해줬다.이유는 묻지마시라.살면서 누구나 다 그럴때가 있는 법이니.다들 공부하는데 나 혼자 겉돌았다.수업도 안듣고 영어공부도 안하고 대낮에 아는 술집에 가서 맥주나 혼자 마시고 아님 여기 저기 서울거리를 걸어다녔다.그때 무슨 음악을 많이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아마 내가 재즈를 좀 본격적으로 들었던게 그때쯤이 아닐까해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사실 내가 처음으로 산 재즈 음반은 고1때 케니G 이다.근데 그때 그게 재즈인지 알았다.요즘은 케니G를 재즈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업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그렇다면 재즈다운 재즈로 처음 산 음반은?  잘 기억안난다.재즈란게 그냥 올드팝이라 믿고 샀던 음반중에서도 있어을테니.예를 들면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경우 말이다.프랭크시나트라가 후기로 오면 어덜트팝이 명백해지는데 젊은 시절에는 재즈보컬로써 명성을 누렸다.


    이 아저씨의 마지막 음반이다.LP로 있어서 요즘은 거의 못듣는다.이거 산게 고등학교때쯤인거 같은데.그 이후 거의 안듣다가 대학때 다시 들었다.My funny valantain의 흐느낌이 와 닿았다. 그때가 아니였을까....하여간 재즈와 클래식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처음에 관심이 갔던 악기는 색소폰이었다.케니G의 얄팍한 소리와 달리 존콜트레인의 안개낀 사운드와 소니 롤린스의 탄탄한 블로윙은 다른 세계의 소리가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요즘은 피아노 트리오 음악에 더 맘에 든다.하지만 이게 시시때때로 변하는 거라서 다음 달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클래식이 내 음악의 주류로 자리잡은건 호주로 연수를 다녀온 이후이다.오페라 하우스가서 오페라 한 편 못봤으니 연수를 다녀온 것과 음악과의 상관관계는 하나도 없을 성 싶다.오히려 함께 공부했던 어떤 형 덕분이다.그 형은 나와 다른 학과 형이있는데 스터니 땜에 같이 공부했다.그 형은 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형수가 피아노 학원을 했었다.가끔 공부하다 담배피우며 놀때 그 형은 '무반주 바이올린은 쉐링이 죽이지""푸르니에의 첼로연주로 바흐를 들어봤어?" 뭐 이런말을 했다.그래도 음악 하면 한 음악한다고 자신있던 내개 이건 좀 모르는 분야였다. 물론 그 음악들은 어딘 가에서 한번쯤 들어봤음직 하다.하지만 그 긴 이름들까지 외우고 음반을 열심히 구매해가며 들었던 것은 아니다.결국 자극없이 발전 없는 법, 뭔가 좀 아는 척하기 우해서 또 새로운 음악을 찾아 헤매는 방랑근성에 의해 클래식에 들어서게 되었다.그리고 굴러온 돌이 박힌돌 빼낸다고 클래식이 나의 주메뉴가 되었다.



    이 음반은 미켈란젤리-줄리니 협연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이다.아마 처음으로 끝까지 다 들어본 피아노 협주곡은 이 음반일 듯 하다.그전에도 LP로 몇장의 클래식음반이 있었지만 대개 유명한 한 악장정도만 들었다. 그 다음은 거의 BGM이었다. 이 음반을 들을때 부터는 지휘자나 연주자들로 살펴보게 되었다.옛날에 누군지도 모르고 들었던 LP속 연주자들이 '꽤나 유명한 사람들이었군' 하고 알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또 이름 외우기가 시작되었다.팝음악은 그나마 영어라 좀 나았는데..이건 국적이 좀 다양했다.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알프레드 브렌델,파블로 카잘스,폴 토르틀리에,아르투르 로진스키,빌헬름 푸르트뱅글러,한스 크나퍼츠부슈.......  한번에는 절대 안 외워진다.그냥 들을때 마다 책에서 볼때 마다 음반을 넘길때 마다 눈에 익히고 마음에 담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외워진다.

    대개 사람들에게 어떤 음악 좋아하냐고 물으면...... "다 좋아해요" 라는 답이 많다. 나 역시 다 좋아하니까 반갑다.그래서 다음 질문 들어간다. '클래식도 좋아하세요' .... " 아니요"   (속으로....그럼 다가 아니네.)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 클래식 공부한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다.그들이 그나마 인정해주는 팝은 옛날 프랭크시나트류의 노래다.좀 더 봐주면 비틀즈. 요즘 나오는 애덜 음악은 그들에게 음악이 아니다.

    물론 나 역시 가리는 음악이 있다. 10대 위주의 댄스음악,테크노나 일렉트로니카,앰비언트처럼 전자음향에 많이 의존한 음악들이 그것 들이다. 몇번 시도를 해봤지만 내것이 되진 않는다

    많은 장르의 음악을 사랑하면서 내게 늘 아쉬운게 있다면 그건 내가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내가 할 줄아는 악기는 중2때 시작한 기타. 이것도 그냥 어디 모임가서 반주할 수준이지 연주라고 할 만한 것은 못된다.그래서 가끔 혼자 쓸모없는 상상을 한다.

    회사 퇴근 시간이 3시쯤 되는거야. 그럼 집에 가면 4시가 되겠지. 일주일에 3일은 첼로나 피아노,색소폰 중 하나를 배우는거야.그리고 나머지 3일은 하다만 테니스레슨을 받는거지. 저녁 먹고 헬스를 간단하게 하거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하루 1시간 이상씩 듣는 거지.아무 방해도 받지 말고.......

    쯥.... 점심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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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달 2005-03-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상상이네요^^ 그런데 방해 받을 일이 많으신가보죠??

    드팀전 2005-03-0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그다지 방해 받는 적은 없답니다.제 부인도 책보고 음악 듣는걸 좋아하거든요.그리고 항상 제가 책을 보다 먼저 졸기땜에 제가 먼저 자자고 하지요.근데 최근에 다른 짓 안하고 음악만 들어본 건 그다지 많지 않네요.언제 부인이 책 볼 동안 저는 음악만 들어야 겠어요.좀 크게 들어야 하는데 그게 좀 문제가 되겠군요.

    mannerist 2005-03-13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고립된 시절의 브루크너와 에팔래치아 왈츠.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요? 0_0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을 본 적이 있다.물론 TV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에서 이다.내게 남은 흑백화면의 잔상은 그가 무언가 소리높여 외치고 있는 장면이다.그는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삶을 마감했다. 민족문제가 žg혀있는 우리에게 그의 죽음은 공포의 감정으로 먼저 다가온다. 학습되어온 우리의 과거 경험은 그의 극우적 주장이 현실속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준다. 그런 개인의 단호한 비장미가 특정사건과 결합될 때 발생하게 될 전체주의라는 망령에 대한 경계심이다.

     미시마 유키오. 한 시대를 대표한 일본의 소설가이자  거부받아 마땅한 망상적 극우민족주의 신봉자. 그의 소설은 그래서 한국인에게 선뜻 다가서지 않는다. 비교하자면 지금보다 어렸을 시절 열심히 읽었지만 지금은 손도 대지 않는  국내 모 소설가의 경우와 같다.나는 예술 작품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자기목적성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편이다.하지만 인간에게 이성과 다르게 작동하는 정서라는 것이 있다.그런 입장에서 보면,예술과 사회의식을 사과 자르듯 반으로 나우어 한쪽씩 핥아먹을 수는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읽었다.늦은 감이 있지만 어찌할 것인가.책과 사람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인연의 끈이 맞아야 서로 조우하는 것이다. 

    소설<금각사>는  미시마 유키오가 그의 극우적 정치색을 드러내기 전에 씌여진 작품이다. 실제로 있었던 '금각사 방화 사건'이 소설의 모티프가 되고 있다.그렇다면 몇년전 교토여행에서 본 금각사는 복원된 것이란 말인가? 잘은 모르겠으나 전소되었다면 그럴 확률이 높다.내가 금각사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답이 은근 슬쩍 흘러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 미조구치에게 금각사는 절대미의 상징이다.그의 행동규범과 의식의 세계는 외면적으로 자율성을 얻고 있으나 내면적으로 절대미에 철저히 억압되고 있다.그가 위악적인 성적 일탈을 감행할 때도 그의 눈앞에 나타나 그를 절망케 하는 것은 금각사이다.내가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보아지는 부분은 바로 '억압'과 '파괴' 라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 내내 자의식과 환경사이의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물론 이 둘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주인공을 둘러싸며 자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란 것은 철저히 억압적이다. 먼저 주인공을 금각사로 보내는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권력과 권위를 쟁취하라는 손짓으로 이해된다.어머니는 부정한 관계와 이에 대한 천연덕스런 위선의 연출로 모성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공고히 한다.금각사의 주지 역시 온화함으로 가장한 세상의 위선의 세계를 보여준다.거기에 어린 시절 보았던 우이코의 죽음은 억압된 자아의 해결책으로 벚꽃처럼 일회적 파괴의 미학을 꿈꾸게 한다.그가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 가시와기 역시 주인공을 혼란으로 억압하는 존재일 뿐이다.가시와기의 미에 대한 인식과 세계 인식은 허무주의적이다.미와 삶에 대한 허무의식은 주인공의 내면에 또 하나의 억압으로 남을 뿐이다.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파괴에 앞서 이 모든 억압의 꼭지점에 서있는 금각사를 대상으로 삼는다. 죽음과 파괴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사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과잉집착에서 출발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실제 방화사건의 주인공과 달리 소설속 주인공은 생에 대한 강한 의지로 이를 표현한다. 소설의 주인공와 자신을 여러방식으로 병치시켜왔던 미시마 유키오 역시 현실에서 새로운 세계 ,즉 강한 일본에대한 의지를 점차 표나간다.

    이 작품은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의 정점으로 읽힌다.소설의 주제 역시 미에 대한 탐닉과 집착이 주를 이루고 소설의 화려한 문장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유키오가 보여주고 싶었던 미란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든다.추후 그의 개인적 역사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작품에서 타나토노스의 증후를 맡는다. 자기혐오와 세상의 위선에 대해 가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학 예술은 대상의 완벽한 소멸을 상정한 순간적이고 과격한 파괴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우이코의 모습,어두운 새벽 속에서 물처럼 빛을 발하며 내 입을 잠자코 주시하던 그녀의 눈 뒤에서,타인의 세계-즉,우리들을 결코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자진하여 우리들의 공범이 되며 증인이 되는 타인의 세계-를 본 것이다.타인이 모두 멸망하여야 한다.내가 정말로 태양을 향하여 얼굴을 들기 위하여는,세계가 멸망하여야 한다.......  <금각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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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달 2005-03-08 15:01   좋아요 0 | URL
    참 부지런하시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비로그인 2007-05-09 12:08   좋아요 0 | URL
    소설의 거시적 맥락을 조망케하는 좋은 리뷰네요. 파편적 감상을 긁어모은 감상문들을 읽어봤지만 주변부만 어루만지는 것 같아 답답했는데.. 소설을 이해하는 좋은 힌트 많이 얻어갑니다.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90
    최유준 지음 / 책세상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벌써 몇년 전일이다.전 한국종합예술학교 총장인 이강숙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의 주제가 무었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지금 남아 있는 이야기는 두가지.

     하나는 그분이 처음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된 사건이다.중학교 시절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첫 마디를 들었단다.그게 쳐보고 싶어서 학교 음악실에서 그냥 한음 한음 눌러가며 그 첫소리를 내었단다.자신이 만들어낸 '월광'의 '단단다 단단다...'하는 소리에 감동을 먹고 말았다고 한다. 그 인연이 결국 음악학자가 되게 만든 첫 사건이었다.

    두번째 기억나는 이야기는 이렇다. " 우리가 대개 듣는 클래식이란거.사실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한 음악의 역사에 견주어 볼때 아주 한정된 지역,한정된 시대에 나온 음악인 겁니다. 대개 클래식 듣는 사람들이 바하부터 쇼스타코비치,스트라빈스키...뭐 이정도까지 듣는데.그게 유럽을 중심으로 한 300여년 정도의 음악아니겠어요.근데 음악은 인류가 생겼을 때 부터 북치고 장구치고 했으니 그 시간의 광대함에 비추어 보면 세발의 피죠." 이런 류의 이야기였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관습적으로 수용되어 온 음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여기서 말하는 관습적 수용은 음악을 이분화 시킨 것을 말한다.즉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이다. 특히 저자는 서구 중심적인 예술음악계가 음악의 헤게모니를 쥐고 제도권 교육을 장악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우선 클래식을 전공한 엘리트들의 대중음악에 대한 망상적 자의식과 대중음악계의 뿌리깊은 콤플렉스가 원인이 된다.이미 구조화된 음악의 위계는 서로의 배타성으로 인해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이는 음악종사자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일반인들의 의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클래식'은 예술적이고 좀 있어보이고 좀 졸린 음악.'대중음악'은 멋지고 느낌이 확 오지만 클래식에 비해 격이 조금 떨어지는 음악.이러한 무의식적 음악위계는  상호 소통불가를 통해 더욱 공고화 되어간다.

    저자는 현재 한국에서 왜곡된 음악적 위계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기득권인 '예술음악'계에 혐의를 두는 듯하다. 우선 저자는 동시대의 음악,즉 대중음악이 버려진 자식에서 제 위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짜르트와 비틀즈음악 사이의 이질성과 모짜르트와 쇤베르크의 이질성 중 어떤게 더 큰가?" (단언컨대 쇤베르크와의 이질성이 크다.청자의 입장에서...)

    저자는 대중음악을 복원하기 위해 '음악의 합리화'란 개념을 도입한다.즉 근대음악의 역사적 흐름은 단순화,수학화 라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데카르트와 바하가 수학이란  도구를 가지고 합리성의 이름으로 만나게 된다.호모포니와 평균율은 음악 역시 '근대 프로젝트'에 대응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이것이 대량생산과 복제라는 테크롤로지를 만나며 20세기 대중음악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대음악계는 이 과정을 불연속적으로 파악한다.저자는 이 역사가 연속성을 띠고 있으므로 음악계에서 등한시되어온 20세기 대중음악의 가치 인정을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는 음악에 대한 관습적 해석이 가져온 몰이해를 해소하기 위해 새판을 짜는 개념을 동원한다.'실용음악'과 '자율음악'이란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은 음악을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하기'라는 관계성으로 파악하는 것이다.우선 이러한 시도가 음악에 대한 사회적 접근과 범주의 개혁을 통한 소통이란 측면에서는 솔깃한 내용이다.하지만 의문도 생긴다.

    우선 '실용음악=대중음악' 이란 것이 잘못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다.맞는 말이다.저자는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과거 클래식이란 음악들이 미사곡이나 장송곡,자장가등 실용적 목적에서 쓰였다고 말한다.이것 역시 맞는 말이다.결국 "모든 음악은 실용음악이다" 라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된다.이것은 범주의 오류를 잡기위해 환원론의 오류로 빠져드는 것 처럼 보인다. 음악뿐 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 처음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필요때문이다. 성당의 벽화,초상화,도자기,각종 제례악 등등...이 모든 걸 다 '실용예술'이다 해버리면 그만이다.그렇다면 인류가 발전시키고 쌓아온 예술적 업적과 성과가 도매급으로 넘어가버린다.또 한가지가 있다.실용-자율의 구분이 대중음악의 범위를 넓히고 무시되온 대중음악의 위상을 제대로 하는데는 기여할 수 있지만 결국 이것 역시 음악을 이분화 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음악하기'라는 말을 통해 장르적 유연성을 확보한다고 믿는 듯 하다.하지만 이것 역시 음악을 도구화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있다.아름다운 벽에 걸어놓으면 국보급 작품이다.하지만 종이없을 때 화장실 벽에 걸려있으면 휴지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세한도>의 심미적 가치나 예술적 가치는 전적으로 환경과 관계성속에서만 지배받는다.이것은 '예술은 무예술이다.' 라는 결론까지 이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의 세대는 예술-대중음악의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에 상대적으로 편견이 없다.' 라고 희망적 입장를 밝힌다.뭐 차츰 나아지겠지 하는 소망이랄까? 일견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여기서 말하는 젊은 세대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허나 이들이 클래식에 대해 덜 주눅든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아마 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 성숙도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이들 역시 예술음악에 대한 장벽은 그대로 갖고 있다. 편견없는 그 세대들 역시 저자가 그토록 원하던 소통을 위한 준비는 조금도 안되어 있다고 생각한다.100명쯤 정원인 대학교 아무 학과에 가서 물어보라. "가장 흔한 클래식.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끝까지 다 들어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라고 ....  100명중 10명 이상이면 내가 한말을 취소할 수 있다. 예술음악이 소외받는 현상을 예술 음악자체의 한계에서만 찾는다면 현 대중음악 소비자들의 자본주의적 음악소비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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