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카멜라 윅스라는 미국 바이올린 연주자의 연주이다.EMI에서 '안동림의 이 한장의 명반'시리즈로 내 놓았다.

카멜라 윅스는 진짜 첨 들어보는 이름이다.근데 그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이 사람은 이 연주하나로 명성을 높인 사람이라고 한다.아직도 살아있긴 한데 나이를 보아하니 현역에서는 은퇴했을 성 싶다. 팝음악으로 말하자면 원히트 아티스트 인 것 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재발매 되어 나왔다는 것은 연주의 질에 어느정도 믿음을 준다.물론 국내에서 나름대로 권위를 얻은(나는 잘 모르겠지만) 안동림 교수의 책이 큰 힘을 주었겠지만 말이다.

연주는 상당히 맘에 든다.우선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하면 하이페츠의 50년대 녹음이 떠오른다.이가 시린 연주다.늘 그랬듯이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나아간다.무명 첨에 칼집을 넣고 좌...악 하고 가르며 나아가는 느낌의 연주다.하이페츠의 연주를 들으면 야..시원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카멜라 윅스의 연주 역시 시원함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조금 다른게 있다면 하이페츠의 얼음짱 같은 연주에 비해 은근한 불빛이 비춰나온다는 것이다.각종 음반평에서는 '북구의 서정'을 잘 표현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북구의 서정'이란게 뭔지 사실 잘 모른다.하지만 이미지로 유추해 볼 수는 있다.하이페츠의 시벨리우스는 북구의 숲길을 연상시킨다.눈도 많이 내리고 전나무도 시원하게 자라난 그런 숲길 말이다.카멜라윅스는 창 밖으로 그런 숲을 바라본다.방 안에는 작은 화로도 하나 켜져있다.차가운 것 만이 북구의 정서인가? 사실 겨울의 정서는 어느 계절보다 따뜻함을 먼저 떠오르게 하지 않던가?  눈이 많이 내린 강원도도 겨울이지만 난로가에 밤을 굽는 따뜻함도 겨울이다.

아마도 그녀의 연주는 이 차가움과 따뜻함의 변증법을 깨달은 연주여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빛을 잃지 않다보다.

원 LP에는 카멜라 윅스의 시벨리우스 협주곡 하나 뿐이었다.하지만 CD시대에 그것만 가지고 음반내면 망한다. 그래서 음반사에서는  바비롤리의 시벨리우스 관현악 곡들을 커플링해놓았다.세 곡 모두 근래의 연주에서는 들을 수 없는 투박한 진솔함이 묻어 있다.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복각과정에서 어쩔수 없었을 음의 손실부분이다.무언가 억지로 눌러놓은 듯한 음의 볼륨감이 아쉽다.이거야 연주의 질과는 상관없는 기술적인 부분이다. 이 음반을 깨끗한 LP로 들었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기는데는 장사가 없다.거기에 권력위계가 작동할 때는 더욱 그렇다.다른 사람도 뻔히 우기기 임을 알면서도 그냥 스리슬름 넘어가는게 인지상정이다.괜시리 한번 딴지 걸었다가 아드레날린 맞은 업그레이드 저그처럼  얼굴 벌게져가지고 달려들면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포토캐논이라도 깔아서 막아야 할 텐데 워낙 정색을 하고 달려들면 대포 몇방 가지고는 소용도 없다. 

 사건 하나.

모씨: 베트남에 가봤는데 아직도 너무 못살아.전쟁 끝난지 30년이면 우리와 비교하면 우리 80년대쯤은 되어야 하는 건데...국민소득이 400불도 안된다.호치민이란 사람은 청렴결백했는데 결국 체제와 베트남 사람들의 문제지?

나: 꼭 그런 비교는 조금..그런데요.우리야 미국의 지원하에 있었구.베트남은 미국의 방해를 받았을 텐데.그리구 전쟁 기간 동안 산업의 피해 규모도 베트남쪽이 훨씬 컷을꺼구.이번 이라크에서도 공습보다두 더 무서운건 경제봉쇄책이었다는데...

모씨:( 정색을 하며) 너는 우리가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나: (움찔하며) 지원이라기 보다두...그거야 편의상 말한거....

모씨:(말을 자르며) 게네들이 준건 다 잉여농산물이야.다 우리 힘으로 컸어.

다른사람: 그러니까 뒷배를 봐주었단 그런거겠죠.

아니 베트남의 미발전이유를 이야기하다 왠 미국이 지원했냐..아니냐는 말꼬리잡기로 주제를 바꾸나.

또 하나

모씨: 20세기 초반 미국인이 심리적 공포에 떤 적이 있지.미국 본토에 일본 비행기가 공습을 한거야?

나: 진주만 아니에요.

모씨: 하와이 아니라니까? 그 전에 무연료로 죽기를 각오하고 날아가서 떨어졌지.미국민들이 3달은 공포에 떨었어.

다른사람들: 미국 본토라는게 하와이를 포함한 걸 텐데...그때가 처음이고 그 담은 9.11 테러

모씨: 그게 아니에요.진주만 훨씬 전에 폭격을 했다니까..영화 도라도라 이런 거 안봤어?

모든 사람: 글쎄... ... ...

모씨: 어쨋든 본토를 공습한다는 거는 심리적 공포 효과가 대단하지. 

글쎄 이건 모를 수도 있다.사람들도 모르는 미확인 내진 은폐된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 근데 워낙 자신만만하게 진주만 공습전에 미국 본토에 대한 공습이 있었다니 ...내 지식에 의문이 간다.누가 확인 좀해주시길..

마지막

모씨: 내가 요즘 보는 책이 수메르 ...뭐 이런거다.아주 흥미롭다.인류문명이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우주에서 왔다는 거다.그래서 기름이 있는 그쪽 땅을 선택한거다.한단고기에도 보면 우리민족의 출발이 수미르인가(이건 확실하게 듣지 못함)인데 아마 거기서 출발한 거 같다.난 이런 걸 보면 가끔 신의 존재에대해 의문이간다.

나:근데 그런 책들은 다 사실이라 보긴 좀...한때 인기를 누렸던 한단고기란 것도 과도한 자민족중심주의 사관이라고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모씨: (정색하며)우리가 언제 학계의 말을 들었나?

선무당 사람 잡는 다는 말이 여기에 딱 어울린다.신화와 드라마와 역사가 마구 마구 혼재되어 갈피를 못잡는다.때론 김진명류의 소설 속에 나오는 통계들이 사실인양 논거로 등장한다.다빈치 코드,신의 지문,등등등이 다른 어떠한 정설보다도 확고한 논증의 자료로 제시된다.자신은 책을 많이 본 다고 늘 자랑삼아 말한다.스스로도 그렇게 믿는다.내가 보기에 제대론 된 책은 10권중에 한두권이다.어쨋건 그 자신감이 그런 우기기를 가능케한다.

이런 사람과 이야기 할 땐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모르는 척하는게 최고임은 아는데..가끔 말도 안되는 말을 말인양 하니 대들고 싶어진다.

참고로 모씨는 지금도 저 멀리서 무언가 열심히 읽고 있다.아마 아직 다 못읽은 수메르 문명의....비사일것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이드 2005-03-0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얘기만 들어도 갑갑하네요. 저라면 더 강하게 얘기하면서 무시해주거나, 암튼, 내가 '그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는걸 팍팍 티나게 해줄래요. ( 제가 이래서 사회적 동물이 아닙니다. -_-a)

하얀마녀 2005-03-05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그냥 너는 짖어라' 모드 스위치를 누르겠습니다.

파란여우 2005-03-05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 잘났다...가 젤 낮지 않을까요?

드팀전 2005-03-06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아니 워낙 정색하며 달려 들려해서 힘들다니까요.한마디만 더하면 물거같아요.
마녀님>사실 그게 주모드인데..그래도 가끔 허무맹랑한 잘난척을 보면 저두 잘난 모드가 발동해서...님 말씀 처럼 그냥 귀막고 있어야 되는데
파란여우>문제는 잘난거 같지도 않은데 그러니까 그러죠.그냥 그런 이야기에 반응안하는게 최고겠죠.

kleinsusun 2005-03-0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정말 답답하셨겠어요.
저는....횟집 수족관에 "멍게"를 "해삼"이라고 우기는 선배한테 진 적도 있었다니깐요. ㅋㅋ
 

 

학술]임지현 vs 조희연 ‘박정희 논쟁’


조희연(49·사회학) 성공회대 교수와 임지현(46·역사학) 한양대 교수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를 놓고 지상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임 교수가 저서와 학술 세미나 등을 통해 박정희 시대를 ‘대중독재론’(지배자의 강압과 민중의 동의가 결합돼 독재가 출현했다는 입장)으로 평가하자, 조 교수가 계간 ‘역사비평’ 지난해 여름호에서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조 교수는 대중독재론이 대중의 순응적 침묵을 전면적이고 능동적 동의로 확대해석함으로써 박정희 독재를 정당화하는 보수 우익에 이용당할 우려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조 교수는 또 박정희 시대는 군대까지 동원해 유지됐으며 박 전 대통령이 최측근에게 암살된 것은 민중의 저항이 권력의 내부균열을 낳을 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역사비평’ 지난해 가을호에 바로 반론을 제기했다. 임 교수는 조 교수의 인식에는 민중을 영웅시하고 독재자를 악마시하는 도덕적 이원론이 작용하고 있다며, 대중독재론이 우익화에 이용당할 것을 우려하는 것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라고 반박했다. 임 교수는 오히려 독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철저히 해부함으로써 새로운 독재의 대두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대중독재론은 소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대중에게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식의 과거 청산이 아니라, 과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역사비평’ 올해 봄호를 통해 재반론을 폈다. 조 교수는 “대중독재론은 폭압과 저항을 강조하는 진보적 분석의 정반대의 지점(보수적 입장)으로 이동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는 또 사실상 박정희 체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전까지 유지됐다고 주장하며 “박정희 독재에 대한 분석의 출발점을 6월 민주항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이어 박정희 체제에 대한 현재의 동의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여름호에 다시 반론을 제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임 교수는 “대중독재론은 박정희 체제뿐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 체제에도 적용되는데, 조 교수가 대변하는 진보 진영에서는 박정희 체제만 문제 삼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의 과거사 청산과 맞물려 이 논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임지현교수의 <일상적 파시즘>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논의입니다.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arine 2005-03-0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중독재론에 한 표를 보냅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따라 주지 않는다면 정치인 한 사람의 힘으로 병영국가를 이루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임지현의 말처럼 독재자 한 사람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울 것이 아니라 대중 역시 함께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희연의 주장처럼 자칫하면 보수우익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지만요

비로그인 2005-03-0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부 쓸데 없는 짓...... 그 머리로 사회발전에 기여나 해라...

마태우스 2005-03-0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당근 조교수님 편! 군대가 아니었다면 유지될 수 없던 정권이 대중의 동의를 전제로 한 거라고 생각지 않아요

2005-03-03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3-03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뻘줌 구경만 하다.. 저도.. 투표(!)할래요! 전 조희연 선생님께 한 표 던지겠습니다. 박정희 정권에 동의했던 사람들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군부세력에게 기생했던 조선일보같은 언론들이었겠죵.. 임지현 교수의 말을 조선일보측에선 아주 좋아라, 활용하겠는데요. 임 교수님 자꾸 왜 그러신댜..헷갈리게..임교수의 양비론 뒤엔 조선일보가, 조선일보 뒤엔 박정희가..크크..

드팀전 2005-03-0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좀 복잡한 문제라....또 임지현-조선일보 문제까지 생각하면 더 그럴수도 있지요.학자의 이론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가의 문제까지 그 학자가 고민해야하는 가는 또 다른 문제 제기가 되겠지요? 그게 학자의 잘못이라 해야 하는지 아님 학문과 지식이 가진 본질적인 협력관계때문일지... 근데 임지현-조선일보-박정희 이렇게 구획화하는 건 좀...다르게 생각합니다.좀더 다층적인 문제일 듯 해요.

도서관여행자 2005-03-0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대중들이 열광적으로, 적극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동의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겠죠. 독재 체제에 대한 대중들의 격렬한 저항에서부터 수동적인, 또는 적극적인 협력과 동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겠죠. 그러니 일부의 독재권력층(가해자)/저항적 대중들(피해자)의 도식으로 그 시대를 단정하는 것도 피상적, 도식적입니다. 마치 일제강점기엔, 죄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들만이 살았던 시대로 거칠게 파악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임지현의 견해들이, 그렇다고 독재체제 옹호에 이용되지 않았으면 하네요^^

릴케 현상 2005-03-0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의 '선택'이 생각나네요. 당시 사람들도 독재정부 아래서 '살기'를 선택했겠죠
 


레드 제플린은 내가 최고로 좋아했던 그룹이다.한 장 한장 그들의 LP를 모았다.그들의 음반중 가장 먼저 알게된건 4집이다. 천국의 계단이 있는 그음반.^^  개인적으로는 1,2 ,3집에 애정이 간다.이 음반들은 블루스에 영향을 받은 느낌이 강하다.4집은 좀 더 포크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옆에 있는 음반 역시 아주 뛰어난 음반인데 내가 가진 LP자켓은 이것과 다르다.이것도 검열때문이다.이유가 웃긴데 여기 있는 벌거벗은 아이들이 외설적이란 것이다.별로 그렇지도 않은데...하여간.

사실 기타리스트로써 지미 페이지는 다른 기타리스트들에 비하면 매력이 덜했다.그의 작곡능력이나 프로듀서 능력은 뛰어났을 지 몰라도.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은 지금 들어도 짜릿 짜릿하다.어떻게 보면 여자 목소리 같기도 하다.나이가 60이 다되었을 텐데. 아직도 그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솔로 독립 후에도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지만 역시 젊은 날 레드제플린 보컬로 기억될 거 같다.

제플린의 유일한 라이브 두장 짜리 음반이 기억난다.앨범 안에 보면 뮤직 비디오처럼 사진들이 붙어있다.영화 비스무리하게 만들었다는데 그 나이에 그 비디오를 한번 봤으면 하고 얼마나 조바심을 내었는지 ..그런데 아직도 보지 못했다.지미 페이지가 바이올린 활로 기타를 쳤다는 전설만 아직도 기억난다.

고등학교자율학습 시간때는 가끔 논쟁이 붙었다.누가 더 뛰어난 기타리스트냐 보컬리스트냐 하는 그런 것이다.사실 좀 유치한 짓이다.나는 무슨 거물처럼 작은 논쟁에 뛰어들진 않았다.그게 폼을 잡는 길이니까.그러다가 친구들 중 누군가 달려와 물어보면 그때 은근 슬쩍 한마디 던지는 거다. "잉위 맘스틴의 연주는 리치블랙모어에 큰 빚을 지고 있지" "3대  기타리스트라는 건 좀 영국지엽적이고 블루스에 바탕을 둔 기타에 한정되는 느낌이 강해" ....다 개폼잡는 작전이다.근데 나름대로 효과도 있었다.친구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으니까.

 친한 국민학교 친구의 형님이 음악다방 DJ였다.그 집에 가면 그 형님이 가진 희귀한 음반들이 있었다.겨울방학이면 그 음반들을 TAPE에 옮기는게 일이었다. 옆에 있는 수퍼세션 음반은 그 형님 LP덕에 알게 되었고 비교적 쉽게 구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네브라스카>음반도 무지 갖고 싶었지만 결국 몇년 지나 CD로나 구할 수 있었다. 그 형의 LP에는 항상 "용" 하고 자신의 싸인이 있었다.그 싸인만 없었다면 몇장 몰래 꿀꺽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집에는 초록빛,푸른빛,보라빛의 단색 빽판이 많았다. 수입이 잘 안되던 시기라 결국 빽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겠지. 핑크플로이드,클라투,예스,지미헨드릭스,알버트 킹  등 그 형님의 빽판에서 간간히 만나곤 했던 이름들이다.아마 지금쯤은 다 처리해버렸겠지?

대학들어가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워낙 바쁜 1,2학년 아니겠는가? 술먹어야지 학습해야지 가투도 나가줘야지...또 미팅도 나가줘야되구 연애도 해야되고 실연도 당해야하고...하여간 수업듣는거 빼놓고는 좀 바빳다. 음악 듣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좀 등한시 했던 락 음악들에 관심이 갔다.아마 헤비메틀의 성전에서 조금씩 발을 뺀 시절이 그때였을 거다. 그렇다고 그 중금속 음악들에 절연한 건 아니다.장르의 분화가 있었겠지만 요즘도 시끄러운 음악들을 즐겨듣는다.요즘 나온 친구들 중에는 린킨파크와 에바네슨스가 좋다.


새롭게 달려 들었던 장르는 포크 락쪽이다.지금도 포크 락은 여전히 좋아한다.특히 모던락들이 대개가 포크에 베이스를 두고 있어서 좋다.현대적인 감각의 포크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모던 락들을 듣는다.옆에 있는건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의 <데자뷰>음반이다. 포크 락계에서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모인 그룹이다.닐 영의 솔로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래험 내쉬의 음반을 좋아한다.그의 솔로음반은- PRISON SONG이 들어있는- 나중에 CD로 구워서 얻을 수 있었다. 이 팀 말고도 포크락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밥딜런,버즈,존 바에즈,에밀루 해리스,버펄로 스프링필드 등의 음악을 열심히 찾아 들었다. 당시 음악계는 메틀이 기울고 얼터너티브가 급부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그쪽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몇몇 그룹들 너바다,펄잼 등의 대표곡들 정도만 귀기울여 들었다.


이건 밥딜런 음반이다.그의 최고 명반이라 하기엔 좀 뭤하지만 그의 음반중 집시나 인도음악의 성향이 나타난 특이한 음반중에 하나라 애정이 간다. 월드 뮤직이란 것도 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땐 요즘 말하는 월드뮤직은 아니었다.오히려 시완레코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권 아트락이나 이탈리아 칸따토우레의 음반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영미 음악권이 가지지 못한 서정성과 실험정신이 새로운 음악을 찾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나 역시 그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터.


한때 DJ로 맹활약 했던 성시완씨가 만든 시완레코드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그런데 음반을 고를때는 늘 조심해야 했다.아트락이란게 워낙 스타일이 다양해서 잘못하면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을 고를 수 도 있기때문이다.어디 라디오에서라도 한번쯤 들어본 것을 위주로 구입했지만 한곡만 귀에 들어오고 나머진 심벌즈 쟁쟁 거리다 끝나버리는 것도 있다.옆에 있는 팀의 이름은 아직도 못외운다. 일 로베치오 델라 메다글리아 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대개 이탈리아 그룹들은 약자로 불렀던 것 같다.PFM,IRDM,...등등. 그러다보니 멤버들 이름도 못외운다.이름이 너무 어려운 것도 있었구 예전만큼 계보 외우기에 지쳤기 때문이다.특히 요망때즘 부터는 곡제목까지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았다.그냥 듣다가 귀에 들리는 곡은 한번 찾아보고 마는 정도였다.외우기 음악에서 조금 벗어나기 시작한 반가운 일이다.하지만 그래도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은 두번세번 확인해서라도 기억한다.어려서부터 들였던 습관이란 완전히 버리기 쉽지 않은법.이 습관은 나중에 클래식들을때 이름 긴 아티스트들 외우는데 아주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면 아르투르베네데티 미켈란젤리..같은 긴 이름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3-0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연을 준게 아니라 당하셨군요^^. 덕분에 락계에 입문하신 드팀전님!
님의 글로 쓰는 락은 여전히 감탄의 목소립니다.^^

드팀전 2005-03-0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ㅋㅋㅋ 실연당한적은 하도 많아서 일상이죠.근데 실연땜에 락계에 입문한건 사실과 다른데요.^^
 


   내가 음악이란걸 열심히 듣기 시작한 건 아마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일 거다.건전지 4개 들어가는 라디오가 내 첫번째 오디오였다. 그때 주로 즐겨 들었던 노래는 조용필,송골매,김범용 이었다. 특히나 송골매 아저씨들 노래를 가사 받아쓰기 하면서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겨울 방학때는 방바닥에 이불 덮어쓰고 라디오로 김범용의 '바보 같지만 바보같지만...' (겨울비는 내리고..인가? ) 을 열심히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 팝송 테입이란 걸 산 건 아마 중학교 들어가고 일거다.그때 동네 전파상-왜 전파상에서 음반을 팔았을까?-에서 비틀즈 베스트 테입을 하나 샀다.아마 불법 복제품이었을 것 같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또 한자 한자 받아썻다....오마 트라블 씸소 파 어웨이.... 다음으로 받아쓰기 한건 당시 황인용의 <영팝스>에 많이 흘러나오던 폴리스의 이었다. 첫 전주가 나올 때,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로 눈이 떠진 거다.아마 이 곡이 날 팝음악의 세계로 빠뜨린 첫번째 투여받은 마약이 아니었을까? 그 다음 부터는 3년 굶은 식충이 처럼 팝송을 열라들었다.그 당시 나오던 <음악세계>라는 월간지가 있었는데 달이면 달마다 그 잡지 나올 때만 기다려 서점가서 "음악세계"나왔어요 ..하고 물었던 것 같다. 그맘때야 마이클잭슨과 듀런듀런,아하 뭐 이런 그룹들이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그 외에도 심플마인즈,스펜다우발레,브루스스프링스틴,빌리 조엘 등등 ..거기에 각종 댄스그룹들..조이,모던토킹,왱청 등등...근데 그때부터 몸치였던 난 댄스음악에 극단적 혐오를 보였다.요즘은 그나마 좀 나아졌는데 그땐 댄스음악은 진짜 저주받은 상업주의의 전물이라고 여겼다. 대충 빌보드니 뭐 이런 것들에 자신이 있어졌을 무렵.중 2 어느 밤.드디어 그걸 듣고 말았다. 전영혁이라는 사람.그 아저씨가 진행하는 <25시의 데이트>(이후 이프로그램은 0시의 데이트,음악세계,등등 이름을 자주 바꾼다.) 동네 친구들 사이에선 음악통으로 우쭐하던 내게 그 프로그램은 충격이었다.1시간을 통째로 들었는데 아는 곡이 단 한곡도 없었고  아티스트들도 전부 생경했다. 나의 첫 반응은 외면이었다. "그따위 인기도 없는 음악들,별볼일 없으니 평소에도 나오지 않지" 하지만 그런 마음 한편에는 비굴한 외면에 대한 자괴감도 있었다. 당시까지만해도  헤비메틀을 포함한 락음악은 거의 듣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프로그램에서 알아듣는게 없을 수 밖에.


중3이 되면서 '들어보지 말고 비판하지 말자'라는 스스로 뱉은 말에 책임지기 위해 마지못해 락음반하나를 사왔다.그게 오지 오스본이란 아티스트였는데....한번 듣고 뻑가고 말았다. 옆에 있는 이 음반인데..LP로 구했을때는 앞에 있는 피 질질 흘리는 오지오스본 사진은 없었다.그리구 앨범 동명타이틀 곡도 잘려나갔다. 그 유명한 검열이란게 있었으니까. 첫곡 제목은 아직도 생각난다. OVER THE MOUNTAIN...
타미앨드릿지의 파워드러밍에 랜디 로즈의 멜로딕한 리프.그리고 저음을 깍어버린 오지오스본의 기괴한 목소리. 드디어.....락의 세계로 빠지고 만거다. 어떻게든 버텨가며 전영혁 방송을 듣고 자려했다.물론 잘되진 않았다.처음 듣는 그룹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

그 다음부터는 지난 잡지 뒤져가며 계보 외우기가 시작되었다. 이상하게 그런 계보는 왜 그리도 잘 기억나는지.'오지오스본은 블랙새버스에 있다가 갈라서고 자신의 그룹을 만든다.블랙새버스의 왼손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밍은 레이보우 출신 로니제임스 디오로 대체한다. 그는 명반 <천국과 지옥>을 만들고 독립하여 자신의 그룹 디오를 만든다.'등등...아직도 굵직굵직한 계보는 기억이난다. 특히 가계분열이 많았던 딮 퍼플 패밀리는 압권이었다. 가계도 트리가 만들어 질 정도였다. 레인보우,화이트스네이크,(보컬 데이빗 커버데일은 재가 좋아하는 보컬이었다.)길런밴드...또 거기 멤버들의 합종연횡. 안외우려고 해도 외워지는 이상한 과목이었다.

거기에 프러그레시브란 새로운 장르를 알게되었다.전위 음악 같은 것이 나의 음악적 허영을 채워주기엔 딱이었다.핑크플로이드를 비롯해 예스,킹크림슨,러쉬,제네시스 등등등... 애니 해슬럼의 르네상스는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었다.보컬의 섬세함도 물론이고 음악구성도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었다.음반을 구하고 싶었지만 당시 어디서도 음반을 구할 수 없었다.아주 나중에야 그때 들었던 음반들을 구할 수 있었다.그러니 당연히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어떨때는 잠결에 녹음 버튼만 눌러두고 자는 바람에 60분테입의 한면 즉 30분만 녹음되고 만 경우도 허다 했다.(옆에 있는 음반은 U.K라는 프러그레시브 밴드 앨범이다.요즘은 뉴에이지를 한다는 에디좁슨이란 키보디스트가 이끌고 있었다.내가 가지고 있는 그들의 LP는 2장인데... 당시엔 구하기 어려운 음반이었다.)

당시 열심히 들었던 밴드들이 그래도 프로그레시브보다는 메틀쪽이었다.스콜피온스,마이클쉥커 그룹,블랙새버스,레인보우,잉위맘스틴,주다스 프리스트 등이었다. 그리고 몇몇 미국밴드들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영국락밴드의 묵직함과 음울함이 마음에 들었다.그건 아직도 좀 그런것 같다. 이 많은 밴드중에 가장 애정이 간 밴드는 ....끈끈한 의리로 젊은음악팬의 의기를 한층 높여주었던 밴드....한번에 확 하고 벚꽃처럼 꺼져버려서 더 아쉬움이 컸던 밴드.붉은비행선.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존 폴존스,그리고 존 본햄...레드제플린!!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kimji 2005-03-03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처음으로 산 테이프는 마이클잭슨과 사운드오브뮤직OST였답니다. 초등 3학년이었을 때고요. 다음번은 아마 마돈나,였을듯요- 혹은 비틀즈 였을수도 있고, 퀸이었을 수도 있고요. 저는 팝,을 시작으로 롹에서 프로그래시브,로 이동한 것 같네요. 저를 휘어잡았던 것은 배철수의 음악캠프. 그리고, 저도 기억합니다만, 전영혁의 라디오프로도요. 저 역시도 그 프로그램때문에 프로그래시브,나 아트롹, 뭐 이쪽으로 기웃거리게 된 것 같아요. 아무튼, 그 표현. '헉,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잖아!' 에 공감 별 다섯개입니다. ^>^
계보 적기, 계보 외기, 에도 별 다섯. 생각해보면, 비슷한 경험(같은 취미?의 공통분모로 비슷한 유년기의 모습이 나오더군요^^) 이 많네요.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 밥딜런, 존바에즈 등에 열광했고요, 고등학교때에 비로소 제대로 음반이 나오기 시작한(제 기억으로는 말이지요)레드 제플린, 도어스의 음반(물론 LP죠!)을 사모으는 일(물론, 엄마에게 거짓말로 참고서나 문제집을 산다고 해서 말이지요;;)이 제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것 같아요.
애니 해슬럼, 킹크린슨, 제네시스, 아, 반가운 이름들이에요. 제임스버클리하비스트(맞나요?)나 잇츠어뷰티불데이,같은 그룹도 참 좋아했어요.
마이클쉥커그룹,레인보우,크림, 등의 음악도 너무 좋아했고요.
^>^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마치 오래 전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마구 들어요. 주책이라고 뭐라 하지 않으실라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