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사회학 - 지구를 정복한 축구공, 지구를 말하다
리처드 줄리아노티 지음, 복진선 옮김 / 현실문화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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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축구는 유사종교이다. 축구팬들에게 스타디움은 성전이요 외치는 구호는 그들만의 주기도문이다. 그 구호소리가 높아져가면 마치 통성기도장의 신도들 처럼 그들 내부에 뭉클함이 떠오르고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언젠가 외신에서 보니 아르헨티나에서는 마라도나를 신으로 모신다는 우스운 종교가 나왔다고 한다.물론 스타플레이어를 신으로 모시는 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하지만 스타디움 안에서 스타플레이어의 존재감은 성경의 선지자 역할은 충분히 할 것이다. 축구가 가진 광적인 몰입과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숭배,타자에 대한 배타성등은 종교의 속성을 닮아 있다.사회학적으로도 종교가 국민통합의 목적으로 장려되었듯이 축구 역시 20세기 초반 근대국가 형성기에 국가정체성을 담보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그러므로 축구를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도 종교의 그것 처럼 양분될 수 있다.종교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이 있고 그걸 삐딱하게 바라보는 비판자가 있듯이 축구 역시 옹호자와 비판자가 선을 긋 듯 나뉘어진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선이 우리 앞마당에서 확실히 보여진 적이 있다.마치 후천개벽이라도 일어날 듯 치솟았던  2002년 월드컵의 붉은 물결-이젠 인용자체도 진부해서 이번으로 끝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집단주의의 한 단면으로 바라보고 멀리 파시즘의 요소까지 읽어내단 비판자들.우리들의 축구에 대한 시각은 그 양 극단 속에 어느 한 점 속에 위치한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축구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독특한 사회구조 분석에 촛점을 맞춘 시각일 뿐 축구 일반에 대한 통시론적 관점은 아니다.세계 최대의 문화현상인 축구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축구를 사회학의 한 대상으로 파악하여 객관적으로 해부한다는 것이다.여기에는 물론 축구의 사회적 속성이 된 국가 통합의 문제,축구팬의 문제,인종의 문제,미디어와의 관계,젠더의 문제들이 포함된다.

이 책 전반부에 등장하는 원시 축구의 발생이나 근대 축구의 노동계급 출발설등은 축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도 새로울게 없는 사실이다. CATV에서 가끔 하는 다큐멘터리에도 나오는 이야기 니까 언젠가 흑백화면에 축구하는 그림 나오면 한번 보시길 바란다. 이 책 전반부에 가장 중심을 두고 다루는 주제는 역시 축구 팬과 관련된 사회학적 접근이다.결국 환원해서 보자면 계급과 축구의 문제이다.저자는 20세기 중반을 거치며 축구의 주요 참여층이 노동계급에서 화이트칼라 중산층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이게 현대축구를 둘러싼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라고 생각한다.이 중심 계급의 변동은 축구 클럽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고 축구 시청층과 여성축구팬의 증가라는 새로운 변화를 일궈낸다.그리고 이는 과거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담보하던 축구클럽의 변화까지 유도할 수 밖에 없다.즉 세계적인 축구클럽으로의 도약이 불가피하며 지역 정체성보다는 국제적 비즈니스로의 축구가 등장한다.결국 참여적 축구팬문화는 상대적으로 약화되며 소비자로써의 축구팬이 부각된다. 축구 자체의 변화가 물론 축구 팬층의 계급적 변화 일부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환원주의의 우려가 있으나 결과적으로 미디어의 발전과 팬층의 변화에 그 원인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축구 내부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포메이션과 스타플레이어가 있다. 초기 축구는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였다.테일러이즘이 사회에 지배적 관점이 되면선 WM 형의 축구가 선보인다.이탈리아의 빗장수비같은 경우는 체계적 분업의 대표적 모습이다.하지만 네덜란드의 토털사커가 등장하며 다기능전문화 축구가 지배적인 분위기로 변해간다.하지만 이 역시 축구의 세계화와 더불어 순환구조를 갖는다.앞으로 어떠한 포메이션이 등장할지는 미지수다.축구장의 꽃 스타플레이어 역시 보스먼 평결이후 세계적 물류 흐름 처럼 여기저기를 오고 간다. 아프리카는 한동안 유럽축구 시장의 식민지시장 역할을 해왔었다.그러한 흐름은 이제 아시아로 까지 번지고 있는데 이는 곧 자국 리그의 위축을 의미한다.월드컵 스타들의 해외진출을 막연히 국위선양이라고 홍보하는 언론이 늘 외면하고 있는 점이다.

결국 이점은 팬문화 형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축구 팬문화에 있어서도 저자는 여러 연구를 이용하여 훌리건,카니벌등의 팬문화를 설명한다.우리의 붉은 악마는 애써 끼워맞추려면 카니벌적인 팬문화에 가까울 듯 하다.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이러한 팬문화가 유럽에서는 클럽 위주의 팬문화인 반면 우리에겐 그러한 팬문화가 전무하다는 점이다.생각을 멀리까지 뻗어 본다면 결국 우리의 축구 팬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인가 '국가대표 축구'를 쫗아하는 것인가 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내 나름대로의 답은 단연코 후자이다.우리에겐 유럽과 같은 축구 팬문화가 전무하다.경기장에도 사람이 없는 와중에 무슨 팬문화가 있겠는가. 축구는 강한 라이벌성을 바탕으로 하고 잇다.대개 지역적 라이벌 관계이다.하지만 국내 축구에는 그러한 라이벌 관계가 희박하다.그렇다보니 국가적 라이벌 구도가 비정상적으로 확장된다.한일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결과적으로 붉은 악마들은 축구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국가와 연결된 축구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다.만약 축구를 좋아한다면 월드컵 기간중 한국경기를 제외한 타 경기장이 그렇게 비어있을 수는 없었다.

축구를 싫어 한다는 사람들의 비판의 목소리도 사실 그 지점에 가장 닿아있는데 축구와 연결된 국가주의가 싫다는 것이다. 대개의 스포츠가 근대국가 건설에서 국민통합의 기능을 했다. 이 책에도 인용된 에코의 말처럼 "축구가 열리는 날에 혁명이 가능한가 ?" 하는 말은 축구가 가진 정치적 모습-즉 정치권력에 이용되는 순응주의-을 보여준다.그런데 이런 식의 사회적 접근에만 촛점을 맞추면 스포츠가 가진 하나의 자율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된다.전통적으로 축구 비판자들은 부르주와와 엘리트층이었다.(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특히 엘리트층의 경우 축구가 가진 공격성,원시성,하층계급민들의 축제에 대한 반감을 교묘하게 위장했었다.현재는 이러한 비판이 많이들 수그러 들었지만 과연 전부 그런지는 의심이다.아직도 공부 잘하는 몇몇 사람들은 스포츠에 대해 미개한 무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특히 한국 사회에서 그러하다. 분명 세상의 한 구석을 똑똑한 머리와 근거없는 자부심으로 모르고 죽는것이다.

뱀다리 1)....  이 책의 직역투 번역(마치 대학 다닐때 교수님이 원서주면 스터디그룹끼리 나누어서 번역하고 합쳤던 듯한..물론 그정도는 아니지만)과 오자와 탈자는 비판 받아야한다.

뱀다리 2) ....축구에 관심이 없는데 축구에 대해 이해보려는 가상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분들도 가급적 피하시길 바란다.우선 영국 위주의 사례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축구와 연관된 다양한 사회학적 접근이 등장하므로 머리가 복잡해져 축구가 더 싫어질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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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입니다. 그중 2악장...워낙 유명한 곡이라서 뭐 설명도 필요없지요.

클라라에 대한 속앓이만 하다 세상을 마친 브람스가 그녀를 위해 만든 곡입니다.

이곡은 현악 6중주 버전 말고도 피아노나 기타 연주로도 음반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라두 루푸, 브렌델을 들어봤는데 다 좋았던 거 같구.백혜선 음반에서도 괜찮았던것 같아요기타 연주는 존윌리엄스와 줄리안 브림 밖에 못들어 봤습니다.

현악 연주로는 알반베르크 연주가 제일 좋았습니다.좀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지만 비장미는 넘치는 연주지요.(지금 나오는건 알반베르크껀 아니구...어서 퍼와서 잘 모르겠으나 메뉴힌 아니면 아마데우스겠죠.)

사실 지금 보다는 늦은 가을에 더 어울릴만한곡인데 그래도 뭐 ...

옛날 어느 가을 확 무너지는 음악이 듣고 싶었습니다.그때 아는 형님이 추천해준 곡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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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8-27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을 '지대로'긁어버리는군요. ㅜㅡ

지금 시쳇말로 '필 꽃혔습니다' 다음달 데카 TRIO로 나온 쿠벨릭의 슬라브 무곡 사려고 했는데 수정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전에 아마데우스 사중주단 브람스 실내악 박스셋(DG)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안에 있겠죠? 저역시 알반베르크를 듣고 싶은데 수이 구할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가을도 되고 하니 JAZZ 한번 들어보는 것도...>

클리포드 브라운은 2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트럼펫 연주자였습니다. 따뜻한 음색을 갖고 있으면서도 파워블로잉도 선보여주었지요.후에 등장하는 많은 하드밥 트럼페터들에게 교본이 될만한 음악인 이었습니다.그의 음반중에 가장 대중적이며 현악반주가 달려 가을에 더 듣기 좋은 음반이 옆에 있는 겁니다.

아래 글은 하루키의 <재즈에세이>중에서 클리포드편을 옮겨왔습니다.             

    Clifford Brown

 
 
  그가 생전에 남긴 레코드로 판단하는 한, 클리포드 브라운만큼 음악적으로 밀도 높은 연주를 하는 재즈 연주가는 달리 없을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어떤 앨범을 들어도 실로 질이 높고, 뜨겁고 정서적이고 그리고 가히 혁신적이다. 레코딩을 한 시기는 전부 합쳐야 불과 네 해밖에 되지 않지만, 브라운은 그 사이에 눈에 띠는 모든 기회를 포착하여 몸을 깍아내듯이 한껏 불어제쳤고, 한 점의 좌절도 주저도 없이 그야말로 절정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마약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희귀한 존재였던 클리포드 브라운이 오히려 그 누구보다 빨리 이 세상을 떠났으니 실로 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딱히 생이 서두른 것도 아닐텐테, 어떤 유의 생은 그 시작부터 생의 길이를 견디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앨범은 "Study in Brown"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샀던 국산판을 지금까지 소중하게 듣고 있는데, 몇 년 전에 보스톤의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엠아시의 오리지널 판을 3달러 99센트에 샀다. 야, 정말 기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싼값에 팔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가격보다 더 기뻤던 것은 이 레코드의 음질이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훌륭했다는 점이다. 음질이 시원치 않은 국산판조차 감탄해가며 들었는데, 새로 구입한 오리지널 판을 듣고 나는 지금까지 눈앞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싹 걷히는 듯한 신선한 경악감을 느꼈던 것이다. 클리포드 브라운이 두 걸음 정도 앞으로 나와 연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오리지널판 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가끔 그런 일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아무튼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에는 재즈라는 음악 형식이 지닌 모든 훌륭한 면이 남김없이 담겨 있다. 훌륭하지 않은 면은 (아마도) 거의 파고들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이는 실로 기적이랄 수 있는 완성도이다. 이 점은 거의 모든 재즈 팬이 인정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에 탐닉하는 사람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나 자신조차 그의 음악에 탐닉하지 못하고 있다. 전면적인 경의를 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몰입할 수 없다. 어째서일까? 아마도 우리들이 그의 음악에서 나약함과 과잉성과 망설임을, 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적 모순의 음영(陰影)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들은 어쩐 셈에서인지 좋고 말고에 상관없이 모든 사고력을 뛰어넘어, 무질서하고 파괴적인 나약함을 내포한 예술에 종종 매려되고 만다.
  물론 그것이 클리포드 브라운의 책임이랄 수는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을까?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그의 생에는 한눈을 팔 틈이 없었다. 죽음이 바로 등뒤에서 그의 목덜미에 싸늘한 입김을 내뿜고 있으니까.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이 안이한 탐닉을 넘어선 곳에 우뚝 서 있으니, 우리들은 그 앞에 조용히 고개 숙일 수밖에......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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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 '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이적료 170억원

마드리드 AFP=연합뉴스

입력 : 2004.08.14 09:01 54'

▲ 마이클 오언
잉글랜드의 간판 스트라이커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24.리버풀)이 초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게 됐다.

레알 마드리드 구단은 14일(이하 한국시간)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버풀에 이적료1천2백만유로(약 170억원)와 지난 시즌 11경기에 출장해 1골을 넣은 미드필더 안토니오 누네즈를 주는 조건으로 오언을 영입했다고 밝혔다.

레알 마드리드와 4년간 계약을 한 오언은 이로써 호나우두, 라울,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등 세계 최고의 공격수들과 함께 주전 경쟁을 하게 됐다.

97년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프로무대에 데뷔한 오언은 297경기에 출전해 158골을 뽑았고 팀의 2001년 FA컵, UEFA컵,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

도대체 레알의 욕심은 어디서 멈출 것인지 ?

오언 뒤에 바보처럼 웃고 있는 헤스키가 앞으로 외롭겠군.

최고의 호나우도,라울등 최고의 공격진에다 최고의 지단,피구등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드진...

그럼에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헤멘다.결국 문제는 후방인데...어쩌자고 후방 보강은 안하고 창만 갈고 닦는지...

내가 좋아하는 오언이 새로운 리그에서 잘적응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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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맨 2015-11-3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름값이 중요한게 아니라 밸런스가 중요한건데 말이죠!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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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화 <박하사탕>에 나오는 시간을 역행하는 기차에 오른다.시간이 뒤로 뒤로 흐른다.때는 80년대 중반 아침등교길, 선도부들이 학교 앞에서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있다.마치 죄지은 사람들인 양 학생들은 명찰과 옷단속에 분주하다. 무언가 하나 빠진 친구들은 교문 100여미터 멀리서부터 정문을 통과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자못 진지하다. 딴에는 자신있게 교문을 통과하다 무언가 걸린 학생들은 엎드려 뻗쳐 자세로 고개를 처박고 있다.위풍당당 선도부들의 머리 위에는 교문 전체를 덮어 쓸 만한 플랫카드가 하나 걸려있다.

"  경축!!  00고등학교 00년도 졸업생 개똥이, 소똥이,말똥이,새똥이 00차 사법고시 합격 "

선생님들이 엎드려 있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너희들 자랑스런 선배들은 저렇게 잘나가는데 니들은 도대체 정신이 있냐 없냐.그 썩어빠진 정신상태로 뭘하겠다는거냐 ? 전부 일어나! 지금부터 운동장 끝까지 선착순 1명!! "

대한민국이 생겨나고 나서 아니 일제시대때부터 사법고시는 국가가 인정하는 최고의 시험이었다. 옛날에 시골에선 한 마을에서 사법고시 합격하면 군수,경찰서장 이런 사람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축하인사를 하고 갔다고 한다. 고시에 합격하면 비록 나이가 어리더라도 '영감'이 되었다고 한다.어린 시절 그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감은 할머니가 부르는 할아버지 호칭인데 왜 20대 젊은이를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영감이라 부를까? 

법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법은 사회적 강자들과 권력자들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경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수도 없이 있었다. 이런 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독재정권과 그의 수족 역할을 해 온 법조인들 때문이다.이 책 <헌법의 풍경>은  크게 두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첫번째는 뼛 속 부터 특권화된 법조인들의 모습이다.이들은 법 정신을 수호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일반인들의 위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 두번째는 헌법의 조문과 헌법의 정신이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되며 형식적으로만 실천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두식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특권화된 법조인들의 모습을 살핀다.그는  법전 해석의 권한을 법조인들이 독점하면서 특권이 출발한다고 말한다.즉 법조인들은 일반어와는 다른, 난해하고 현실어와 동떨어진 이상한 말들을 공부하며 자신들의 장벽을 친다는 것이다.이건 누구나 동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에게 가장 밀접한 법인 < 주택임대차 보호법>같은 것만 보더라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몇번을 읽고 읽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어떨때는 부동산 관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 때도 있다. 생활과 관련된 법이 그 정도인데 다른 법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물론 법조계에서도 이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턱도 없이 멀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법연수원생들의 오버는 가히 코미디 수준이다.고시원에서 쩔쩔매던 시절에 대한 복수인양 자신들이 얻은 특권을 마음껏 향유(?)한다. 그들의 막나가는 특권은 아무도 못 이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배울 만큼 배웠고 법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너희들보다 똑똑하니까 ... 이들이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된다. 공부하시느라 연애질도 제대로 못해보시고 인간사의 갈등과 인간에 대한 이해도 공부만(?)하신 판사님들이 법(?)에 입각해서 재판을 한다.도대체 법전만 파고 다닌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인 검찰은 어떤가? 한 체제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고민은 합격하고 나서 하자고 작정한분들이.... 합격하고 나면 생각이나 해보시는지. (물론 법조계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다.특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성공보다는 양심과 소신에 따라 행동해온 지사형 법조인들께 박수를 보낸다.) 어쨋거나 20-30대에 가장 힘이 센 사람들은 역시 검사들이다.검사들 앞에가면 높은 사람들도 다들 주눅든다는데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큰 소리 한번만 치고 으르렁거리면 꼬리내리며 정신 놓아버리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법조인들은 법의 객관성만을 내세워 자신들은 객관적인 법정신 아래서 일한다고 말한다.하여간 아전인수격으로사용되는 '객관성,중립성,불편부당' 이런 단어들은 사전에서 다시 용어정리 해야한다. 언론도 그렇고 법조계도 그렇고 이 용어들의 성 속으로 쏙 숨어 버리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누가 자신들에게 '객관성,중립성,불편부당'을 독점할 권한을 주었는지...  요즘은 판사님들의 오버 시즌이다. 노 대통령의 형이 뇌물문제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나보다.집행유예인지 무혐의인지 하여간 풀려났다.재판부에서 노건평씨에게 대통령의 친인척으로써 행동에 주의하길 바란다는 멋진 말을 남겼단다. 언론에서는 다들 감동적으로 이 사건을 보도 했다.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아니 법적으로 문제가 되면 대통령이든 뭐든 법대로 하면 되고 아님 풀어주면 되는 거지 재판부가 그런 충고를 할 권한이 있는가?  재판부의 오버다. 

 김교수의 두번째 이야기는 헌법정신에 대한 부분이다.우리나라의 헌법이 명문으로 만 지켜지고 현실에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헌법의 정신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관용의 정신이라고 설명한다.독실한 기독교인인 김교수는 관용의 정신이 부족한 보수적 기독교의 양심적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도 헌법정신을 들이 밀며 비판한다. 표현의 자유문제나 정치적 자유문제에 있어서도 관용의 정신을 주장한다.하지만 정작 현실은 아직도 색깔론이 정치권에서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주요언론들은 이를 지원해주고 있으니 전부 헌법정신에 위배된 작당들이다.그러면서도 그들의 수장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지 않으려면 국가 문을 닫아야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위대한 정신은 헌법의 정신이 아니라 반공의 정신인 듯하다. 차라지 정권을 잡으면 헌법 1장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말을 삭제하고 '대한민국은 전세계 최고의 반공국가이다 '라는 말을 넣던지.(진짜 그러기만 해봐라.웅 흥분을 가라앉히자..)

이 책에는 그 외에도 헌법에 보장된 권리들이 잘못 적용되고 있는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묵비권'  즉 '말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도 신문에 난 주요 사건들을 예로 들며 친절하게 보여준다. 검사가 '임의조사'를 할 경우 대답하기 싫으면 "저 인제 좀 지겹거든요.갈께요.안녕히 계세요." 하고 가도 준법적이란 거다.과연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또 피의자의 인권측면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어떻게 경찰과 언론의 담합으로 무너지는지 구체적 사례들이 등장한다. 힘없는 피의자는(그 죄의 경중을 떠나)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힘있거나 좀 귀찮게 할 피의자들은 완벽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잘못된 사례들이 인상적이다. 물론 여기에 언론은 알권리 운운하며 맞서겠지만 굳이 헌법정신을 위배해가면서 까지 경찰서에서 고개 푹숙이고 있는 피의자들을 보여줄 필요는 또 뭐있겠는가.다 똑같은 그림이던데....

우리나라의 지난 50년은 독재와 반독재 투쟁의 시기였다.그나마 이제 형식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형식적 민주화란 절차적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민주화가 진정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현재 헌법에 보장 받고 있는 권리들이 실제적으로 지켜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가능하다.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세력들에 의해 독점된 법해석이나 특정시대에 만들어진 법해석등을 과감히 재해석하고 비판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또한 악법도 법이라고 지킬 것만 강요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악법이면 고쳐서 개인의 양심과 자유가 실제적으로 보장되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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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8-15 14:32   좋아요 0 | URL
우와...이거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중입니다. 님의 멋진 리뷰를 보면서 저는 아무래도 이 책 리뷰 쓰는거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흑흑..너무 잘 쓰셨잖아요...추천 꾸욱~

바람구두 2004-08-31 17:53   좋아요 0 | URL
정말 잘 쓰셨습니다. 관점도 잘 잡고 계시고요. 사법개혁의 물꼬가 어찌되었든 트이는 모양입니다. 저도 추천해요.

마립간 2004-09-09 21:06   좋아요 0 | URL
반성하는 사유님, 첫 만남에 불쑥 질문을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개인의 양심과 자유가 실제적으로 보장되는 제도'에 해당하는 대안적 방법이 있을까요?

드팀전 2004-09-10 09:32   좋아요 0 | URL
최근에 어떤 대학법대 교수를 만나 이야길 했습니다. 그냥 반 왈...법의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운용이 결국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 하더군요.얼핏 그럴듯 해보이는데...과연 법의 운용자가 선의로만 법해석을 할 지 아닐지 누가 알겠냐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만 참았습니다.
대안적 방법이란 것이 각 항목에 대한 각론을 이야기하는것은 아닐겁니다.결국 너무도 광범위한 인식의 변화라든가 사회 여론의 변화라든가 뭐 그런 이야길 해야 될 겁니다.개인의 권리는 이미 헌법에 잘 보장되어 있읍니다.그런데도 잘 이행되지 않는 것은 헌법의 정신이 기타 영향에 의해 무시되고 곡해되어서 형식법처럼 되어 있다는 거겠죠.제 생각에 헌법 기본정신에 대한 침해나 왜곡에 대해 좀더 단호하고 선진적인 판례들이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물론 현재 고루하신 헌재에서 기대하긴 어렵겠지만....학교내 종교의 자유 1인시위나 양심적 병역거부 재판등 이어지는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일반인들의 법감각보다 훨씬 느리신 헌재판사님들도 마지 못해 그런 주장에 법적인 힘을 실어주실 수 밖에 없겠죠.
님의 질문에 대답이 되긴 제 생각이 짧지만....위의 질문은 세가지 뉘앙스로 들립니다.하나는 "저런 식의 막연한 문제제기는 하나 마나 한 것 아닌가?" 하는 것과 두번째는 " 말은 좋은데 저게 과연 어느 세월에 가능하겠어" 하는 느낌.또 하나있다면 현재의 정치 체제하에서는 개인의 자유는 원래 구속의 속성을 갖기 때문에 완전한 개인의 자유와 자율적 연대를 구상하는 아나키즘적 속성.
이러저러한 점에 대해서 저 역시 공감하고 마음 한 구석에도 그런 감정이 남아있습니다만...
그래도 현실적 부정에 대해 작은 지껄임들이 조금씩 모여 움직임을 만드는 거라 생각합니다.사법 개혁이 조금씩 박차를 가하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마립간 2004-09-10 12:54   좋아요 0 | URL
반성하는 사유님, 답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의 해결책을 여기서 모두 찾을 수 없지만 반성하는 사유님의 의견을 듣고 싶었습니다. 질문의 뉴앙스 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쓰겠습니다. 초면에 실례를 한 것 같은데, 반성하는 사유님이 충실한 글을 주시니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립니다.

드팀전 2004-09-10 14:38   좋아요 0 | URL
무슨 별말씀을 ^^ 저 역시 저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니까 당위론적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아쉽긴합니다. 설령 전문가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뾰족한 수를 내더라도 결국 도루묵이 되기 쉽겠지요.
어제 대학생들을 좀 만났는데....넌지시 국보법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습니다.
제길 그 자식들이 뭐라냐면..." 전 그런 쪽 관심 끊은지 오랜되요" " 그거 정치하는 넘들 이야기죠" "그거 생각하느니 영어 한문장 더 외우죠." " 국보법이 뭐에요? " ....
뭐 특수한 아이들이 아니고 진짜 평범한 대학생들이었습니다.제가 분통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가끔 제가 여기다 글쓰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분들과 이야기나누고 뭐 이러는게 전부 지랄병같은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위와 같은 답을 하는 아이들에게 (거짓말 안하고 10명중 8명은 저런 류의 대답을 합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문제가 도대체 무슨 장판뜯는 소리인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