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근 가장 기대하고 있는 음반이다.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바흐 <평균율 클라이비어 1집> 

그는 현재 세계 TOP 클라스의 피아니스트이다. 흔히 알프레드 브렌델이나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비교되곤 한다. 브렌델은 지난 해에 은퇴를 했고 아르헤리치는 실내악 쪽으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폴리니는 42년 생이다. 고희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피아니스트들 중에는 80이 넘는 나이에도 콘서트를 하고 음반을 낸 사람들이 꽤 있긴 하지만 전성기는 분명 지난 시점의 선물이다. 그래서 70 가까운 나이도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더 많은 레퍼토리의 음반을 내주길 바라는 심정이다.  

폴리니는 1960년 쇼팽 콩쿠르에 우승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쇼팽의 대가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여기 심사위원들 중 저 청년만큼 연주할 수 있겠느냐?' 고 했다는 말은 상투적으로 인용되는 말이다. 

그의 연주는 대체적으로 '차갑다, 이지적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는 그의 회고록에서 폴리니의 연주를 기계적이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 음악을 통한 영혼의 고양을 포착하고 이를 건반을 통해 재현하려한 리히터의 입장에서는 폴리니식의 모더니즘은 냉정하게 들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폴리니의 튼튼한 구조의 부각과 냉철한 해석에는 그것 나름대로 피아노 음악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악적 숭고함이 있다. 내게 폴리니는 호불이 왔다 갔다 하는 피아니스트 중에 하나이다. 어떨 때 그의 연주는 정말 황홀할 정도로 딱 떨어진다. 또 어떨 때는 쉬운 말로 정나미 떨어지게 차갑기도 하다. 이런 모순적 감정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존재 역시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공간 자체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내게는 좋은 연주자다.  

그는 쇼팽부터 알려졌지만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등 독일의 고전낭만파 음악들을 모두 다루었다. 다만 라흐마니노프 같은 후기 낭만파의 피아노 음악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대신 현대 음악에서는 예의 차가운 음색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만드러 냈다. 모차르트는 거의 다루지 않다가 최근 몇 년 모차르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바흐는 연주회장에서는 간혹 연주했다고 하지만 음반으로 나온 것은 이번 음반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글렌 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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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독트린 -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 살림Biz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제방이 무너졌을때>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습한 뉴올리온즈를 다룬 영화다. 스파이크 리는 재난에 대처하는 미국 사회 모습을 통해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이 내부적으로 얼마나 허술한 지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자들의 인터뷰 내용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이곳은 이디오피아나 이라크가 아니라구요. 여기가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맞습니까?"  그리고 다른 스파이크 리의 영화처럼 이 영화도 카트리나라는 재난 앞에 드러난 미국 사회의 흑백문제(그리고 이의 물적기반) 를 건드린다. 이미 오래전부터 침수가 예상되었다는 점들, 또는 음모론이긴 하지만  부유한 백인지구를 지키기 위해 제방을 붕괴시켰다는 소문 등등.  이런 음모론이 설득력이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는 그런 소문들이 돌았다는 것은 흑백갈등과 이에 비롯되는 빈부의 문제가 오랫동안 이 지역의 쟁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재난 앞에 사리진 '국가'를 보여준다. 부상당한 아이를 앉고 부실한 대응책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건 흑백의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백인이고 내 아이는 지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 그는 재난 앞에서 '국가의 공백,국가의 무능,국가의 책임 방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후안무치한 국가는 재난을 마치 바랬다는 듯이 발빠르게 움직인다.

  재난의 예방과 복구에 수수 방관하던 이들이 갑자기 열기를 띄며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재즈의 고향' 뉴올리온스를 새로운 실험실로 여기기 시작한다. '재난 자본주의'라고 명명한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과 스파이크 리의 <제방이 무너졌을 때>가 서로 얼굴을 맞대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노 로고>로 반-신자유주의측의 여전사로 등장한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 역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실제 뉴올리온스를 취재하며 20세기에 벌어진 전쟁이나 자연 재해등의 충격적인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일련의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허리케인이나 쓰나미등의 자연 재해와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대외정책이 만들어낸 사회가 공통적으로 겪는 트라우마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것을 '쇼크독트린'이라고 명명한다. 사회적 '쇼크 요법'은 일부에게는 죽음에 가까운 치명적인 것이지만 일부에게는 새로운 기회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역사적으로, 지역적으로 이런 다양한 예들을 찾는다. 그녀는 다양하게 변주된 '쇼크'요법 속에서 이를 주도하는 한 세력들에 주목한다. '밀튼 프리드먼과 시카고 학파'가 그들이다. 나오미 클라인에 의하면 그들의 '자유방임적 시장주의, 민영화, 세금감축'같은 프로그램들은 케인즈의 실험이 끝나가는 70년대 부터 지구 방방 곳곳을 돌며 재난을 일으키거나 또는 재난을 통해 자신들의 복음을 설파해왔다. 그녀는 프리드먼의 실험을 '경제적 쇼크요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오미 클라인이 말하는 '쇼크'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녀는 단순히 인식상의 충격같은 가벼운 느낌의 통증을 쇼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회적인 쇼크 모델을 설명하기 위해 정신분열 치료법으로 연구되던 이웬 카메론의 실험을 은유적으로 예를 든다. 이 실험은 CIA의 지원을 받아 적국의 요원들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되기도 한 것이다. 일종의 '고문'인 셈인데, 그럴싸한 말로 '감각박탈법'이다. 시공간의 감각을 없애고, 폭력과 전기충격을 가한다. 자기 정체감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다량의 정보를 무처별적으로 제공한다. 피고문자는 한마디로 넋을 놓아버린 상태가 된다. 이웬 카메론은 정신병의 치료를 위해 '백지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설로 부터 이 실험을 시작했다. 즉 완전히 새로운 인간형을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의 알렉스처럼말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프리드먼과 시카고 학파가 남미를 비롯해서 신흥 자본주의 국가에 한 짓이 이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또한 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에서도 똑같은 방법이 동원되었다. 전쟁을 통해 폐허가 된 이라크나 쓰나미로 어촌 공동체가 붕괴된 동남아시아에서도 그들은 동일한 수법을 쓴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유방임적 시장주의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경제가 붕괴되거나 독재정권의 폭력이 일상화되면 국민들은 공포에 시달린다. 일종의 쇼크 상태에 들어서게 된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쓸어내고 난 다음 이들은 새로운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칠레의 아엔데 정권을 붕괴시킨 '시카고 보이즈'들의 이야기부터 이런 틀에 맞추어 설명한다. 미국이 자국의 정치적 이해와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남미에 독재정권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상식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새로운 자본주의를 설파하기 위해서 공포정치가 필수적이었다는 것 역시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3200명이 행방불명 되었고 8만명이 투옥되었다. 그리고 20만명이 정치적 망명을 했다. 그들은 노조나 좌파적 문화 인사들을 일거에 척결한다. 국민들은 공포에 휩싸여 온순해진다. 자유시장은 이런 공포를 동원해 이룩한 것이다. 그런데 '시카고 학파'만이 이런 요소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설명할 뿐이다. 또는 아예 거론하지 않는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런 '공포정치'의 요소를 단순히 '인권유린'의 부차적인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유엔을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의 인권 보고서들이 이 공포정치와 경제 정책을 분리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브라지의 <네버어게인>보고서만이 이 둘 사이의 공모관계를 제대로 언급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보고서에는 이런 말이 남아 있다. " 한 국가의 대다수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는 경제정책의 경우엔 무력으로 집행하는 수 밖에 없다." 남미의 대다수 가난한 소작농들과 빈농,인디오들이 그들의 땅을 부자들에게 넘기거나 국유화된 자본을 민영화하는 것에 찬성했을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남미의 독재정권들이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잔혹학 폭력이다. 그것은 칠레나 남미에서 자유방임시장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나오미 클라인이 현재 기부 자본주의의 전도사로 변신한 제프리 삭스를 비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의 볼리비아 성공담에 가려진 그늘에 대해 그는 정말 모르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이라는게 클라인의 비판이다. 어쨋거나 시카고 학파에게 경제학은 수학이었고 그들의 처방은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이 형성된 곳에서는 하나의 유일한 정답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공식은 '모든 것은 시장이 해결한다. 개입은 시장을 왜곡한다.'라는 원칙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자들은 한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시장 개방이나 자유화가 자신들의 실험실이 요구하는 만큼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늘상 항변한다. 실제로 이들의 프로젝트가 실시된 곳에서는 몇가지 공통된 현상이 발생한다. 하나는 사회 불평등이 극도로 발생한다. 쉽게 말해서 다 죽는 건 아니다. 대신 잘 사는 자는 더 잘살게 되고 못 사는 자,또는 보통 사는 자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이라크, 폴란드 등등에서 공히 발생한 것이다. 그러니 신자유주의를 부자들의,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을 위한 경제 정책이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쉽게 말해 돈 줄 좀 쥐고 있다면 신자유주의가 나쁠 이유가 하나 없다. 사업 기회는 늘어나고 기타 공공요금 등이 좀 올라도 그까짓거 원래 이용 잘 하던 것도 아니고, 돈 몇 푼 더 내면 구질구질한 꼴 안보고 다닐 수도 있는데 그 정도 기회비용이라면이야...)

그렇다면 미국입장에서 보면 외국에서만 이런 시카고 학파의 '자유시장주의'가 작동했을까? 그렇지 않다. 1970년대 미국 경제는 추락한다. 닉슨 대통령은 지금은 '케인즈 시대'라는 언명을 통해 프리드먼을 실망시켰다. 또한 남미에서 벌인 추악한 정책들이 속속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이 지원한 이란의 팔레비 정권은 회교혁명으로 쫓겨나고 니카라과의 소모사 정권 역시 물러나게 된다. 남미와 아시아를 통해 호기에 찼던 프리드먼의 자유주의는 궁지에 몰린다. 그런데 바로 그 때 1세계에 역대 가장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대처와 레이건의 시대가 된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대처의 성공을 포틀랜드에서의 애국주의와 연결시킨다. 떨어지는 지지율의 반전을 가한 대처는 이후 영국 최대 광산노조를 붕괴시키고 '주주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각종 민영화 정책을 취한다. 어떤 이들에게 이것은 '영국병의 치유'로 보이지만 한편에서는 가장 추운 겨울이 되기도 한다.  대처와 레이건 시기에 대해 클라인은 크게 다루지는 않지만 한가지 중요한 시시점을 건넨다. 나오미 클라인이 서있는 경제사적 위치와도 관련이 있다. 시장 붕괴에 대해 현실적이며 온건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좌파 계열에서 말하는 '공황-프롤레타리아 독재-공산주의'와 같은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시장 붕괴가 좌익혁명만이 아니라 우익 반혁명도 촉진한다는 이론에 관심을 갖는다. 그녀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지지하는 방식은 케인즈주의적 온건한 시장 조정이다. 프리드먼이 전통 좌파보다 케인즈주의를 적으로 삼았다고 하는 것도 그런 취지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처와 레이건 시대에 대해 나오미 클라인이 중심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은 미국의 국내정책보다는 대외 정책과 경제정책사이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한 미국의 대외정책문제를 다국적 기업의 경제적 이해 관계의 반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 시각도 일면적이긴 하다. 여기에 설령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독자는 군사적,정치적 이유들 까지 동시에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911테러로 본토에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실험하기 전부터도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확산과 이데올로기적 강화작업에 대한 내부적 고찰역시 필요 하다고 보인다. 호미바바의 식민지-피식민지의 상호 양가성 문제라는 틀을 빌어보자면 미국이나 영국의 자국내에서의 신자유주의 영향력 문제도 결코 간과해서는 곤란한 부분이다. 특히 나오미클라인이 경제적 침탈 문제에 집중하느라 국내적으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독자들이 스스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대처만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외치면서 사상적으로는 복고주의적 보수성을 보여준다. 그녀가 도덕적 승리를 위해 써먹던 구호가 '빅토리아시대로 돌아가자' 였다. 60-70년대 혁명의 시대가 보여준 급진적 문화변동에 대한 반혁명적 구호이지 퇴행적인 호소였던 셈이다. 그런데 '강한 영국'이라는 구호와 함께 대처의 보수주의 혁명은 국민에게 먹혀들어간다. 이는 대서양 건너편에 있던 레이건에게도 적용된다. 또한 부시정권의 '기독교세력'과의 연대에서도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다.    

 이 책 <쇼크독트린>에서 특히 눈에 들어온 내용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권 이양과정과 재난수출국가 이스라엘의 부분이었다. 남아공 부분은 진보정권의 국제적 감각의 부재나 정치적 감각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하나의 예가 된다. 남아프리카의 백인정권은 정권 이양을 앞두고 경제적 부의 집중과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들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 ANC 정권은 정치 협상의 중요성만을 생각하다가 그런 경제적 운용의 문제를 소홀히 한다. 결국 정권 이양이 되었는데 남은 것은 아파르헤이트 기간동안의 부채와 경제적 불평등이 만든 사회문제 밖에 없게 된다. "ANC는 명목상으로만 다스릴 뿐이고 실권은 국민당이 갖고 있었습니다. ANC 정부는 정치권력을 잡긴했짐나 허울상의 통치를 했을 뿐이죠. 실제 통치는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오미 클라인의 비유를 인용하면 '달랑 집 열쇠만 주고 금고 비밀 번호는 알려주지 않은 셈'이다. 이런 문제는 독립국가나 신생정부의 역사를 가진 곳에서는 늘상 반복하는 일임에도 남아공의 정부는 그런 역사의 경험을 살려내지 못했다.  

 '국가의 아웃소싱'이라는 대목도 무척 흥미롭다. 흔히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의 공통된 부를 사영화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가 <신제국주의>에서 '강탈에 의한 축적'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 강탈에 의한 축적이 수행하는 것은 매우 낮은 비용으로 일단의 자산을 방출하는 것이다.과잉축적된 자본은 이러한 자산들을 취득하여 즉각적으로 이들을 이윤 창출이 가능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감가된 자본 자산은 과잉축적된 자본에 의해 불티나는 가격으로 판매되어 이윤 창출이 가능하도록 자본순환과정에 재회전 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국가의 공적 자산을 다양한 작업을 통해 저평가된 상태로 만들고 민영화를 통해 매입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본의 입장에서는 공적 자산으로 접근이 금지되었던 영역들이 새롭게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안보시장'이다. 근대 국가의 기본기능이라는 '국토안보'가 '아웃소싱'의 영역으로 변하는 것이다. 언젠가 MB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 대하여 농담삼아 '휴전선도 외주주어서 캡스에서 지키게 하지' 라고 빈정거렸는데 우화적으로 보자면 틀린 비유는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안보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안보시스템'의 판매로 이미 악명이 높다. 전쟁과 테러 속에서도 이스라엘 경제가 꿈쩍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서구 선진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에 '안보상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자체가 주변 아랍국가로부터 섬처럼 존재하는 국가다. 다른 말로 하면 이스라엘은 국가 전체에 실제적인 장벽이든 보안장벽이든 '국토안보'에 필요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이후 테러리즘이 전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순간 이스라엘의 첨단 안보시스템은 성장하는 새로운 사업이 된 것이다.나오미클라인은 이스라엘과 관련된 다양한 보안정보회사들의 성장세를 보여줌으로써 세계 경찰 미국과 미국에 납품하는 이스라엘의 공존관계를 보여준다.   

나오미 클라인은 결론에서 쇼크 효과가 점차 누그러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쇼크효과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그것이 노리는 지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점점 자구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여러국가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해 지역연대를 강화한다거나 자구적 대안들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르몽드 디플로마> 한국판 10월호에 보면 이스라엘 가자지구에 대한 정책에 반대하여 이스라엘 불매운동과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또한 오바마 정권 하에서 등장한-물론 오바바라고 별반 다를 수는 없지만- 진보적 유태인 그룹인 J 스트리트 기사도 볼 수 있다. 나오미 클라인은 남미에서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미주볼리바르'의 연대에서도 희망을 본다. 물론 남미의 현재 상황도 사실 만만치는 않아보인다. 미국은 언제나 중동과 남미에 각각 쓸 수 있는 카드를 들고 있다. 중동이라는 카드에는 '테러리즘'이라는 씌여있고, 남미에는 '마약' 이라는 글자가 씌여져 있다. 이 두 카드는 필요에 의해서 정의와 도덕의 이름으로 미국이 쓸 수 있는 카드다.  <르몽드 디플로마>를 보면 미국의 반격 역시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페루 등은 친미국적인 성향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남미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며칠 전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 문제에 대해 합의를 끌어낸 온두라스의 경우는 향후 남미 정책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될 듯 보인다. 전세계적 금융시장 붕괴와 오바마 정권 이후 신자유주의와 일방주의는 끝났다고 보는 것은 여전히 간절한 소망에서 나오는 환상에 가깝다. 물론 오바마의 미국이 부시의 소통부재의 미국보다는 유연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바마가 양떼를 모는 목자도 아니고 한 국가의 외교정책이나 방향을 대통령 한 사람이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로 시작된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득세에 경종을 울린 것은 사실이다. 대안적 자본주의들이 조금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기회를 얻긴 했다. 하지만 자본의 근본적 속성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가 될 것인지는 여전히 끊임없는 투쟁과 고민 속에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농사꾼 세르미호 토마셀라의 말로 끝을 맺자. 그는 독재와 연합한 다국적 기업들의 거대한 착취 구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결국엔 진실과 정의가 승리를 거둘겁니다. 수세대가 걸릴지도 모르죠.저는 이러한 투쟁을 진행하다 죽음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언젠가는 우리가 승리할 겁니다. 저는 적이 누구인지 압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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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dogma) 

독단()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인간의 구제를 위해서 신()이 계시한 진리를 말하며, 교회가 신적 권위를 부여한 신앙신조()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네이버에 나온 사전적 정의이다. 

내가 기억하는 도그마는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으로 이용된 것이다. 흔히 현실과의 혼융 또는 교통을 놓쳐버린 마르크스주의 말이다. 마르크스는 누구보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현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는데도 말이다. 마르크스가 남겼다는 에피소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그런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저런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도그마화된 곳을 만난다. 그런 사이트 중에는 정치적으로 수구 꼴통이 있는가 하면 진보 꼴통도 있다. 앞선 수구 꼴통과 진보 꼴통의 공통점은 단 한가지 자기의 규범적 판단만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단호하다는 공통분모를 나눈다. 사람들은 수구 꼴통의 퇴행보다는 그래도 진보 꼴통이 낫지 않겠느냐고 위안한다. 보수적 정서가 지배적인 곳에서 진보 꼴통은 최소한 틈을 벌리는 저항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진보 꼴통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끔 자기도취에 빠져 모험주의에 빠지거나 진보 내의 다양성에 대해 폄훼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가 빠진 도그마로 인해 소탐대실하는 경우도 있다. 반동의 기회만 더 확산시키고 자기는 의미론적 만족에 머물때도 허다하다. 이들은 그저 깃발의 꼭대기만을 보며 내가 그 깃발 아래 있다는 것에 역사의 영광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도그마화된 기사단. 성지를 지키는 신의 군대. 바로 진보의 십자군이 되는 것이다. 대의제 하에서 어깨와 가슴에 그들의 소속을 상징하는 군표들을 하나 둘 붙이고 수구보수와 싸운다는 일념하에 녹슨 칼을 꺼내든다. 과거의 훈장을 꺼내기도 한다. 그것은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타인의 악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명박에 싸우는 것을 진보라고 착각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같은 맥락일거라고 생각된다.  

도그마된 진보 꼴통의 특징은-수구꼴통도 마찬가지이고- 타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블로그라는 문자문화공간을 예로 들자면 타인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체를 위한 방법론적 오독이 아니라 의식의 협착성이 다른 해석 공간의 존재를 말살 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구 세력들의 경우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악'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그렇다보니 북한이 한 나쁜 짓은 원래 그들의 속성이고 그들의 유화적 모습이나 긍정적인 면은 나쁜 짓을 숨기기 위한 변장한 늑대의 모습이다. 결론은 북한은 '절대 악'이다. 그래서 뭘 해도 '악'이다. 경험적으로든 이데올로기적으로든 이미 모든 판단이 결정되어 있다. 진보 꼴통도 이와 비슷하다. 자기는 '선'의 편에 서 있다는 의식은 수구 꼴통이나 마찬가지다. 도덕이라는 요소는 물론 중요한 가치이다. 또한 철학적으로 상당히 문제적 요소이다. 내가 말하는 도덕은 자기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걸친 '의류로서의 도덕'이다. 갑옷으로서의 도덕이다. 물론 도그마화된 인간들에게는 그 도덕이 자기 옷이 된다.일종의 도덕-기계, 선-기계가 된다. 이렇게 되면  진보든 수구든 십자군 기사단들은 천국을 위한 복음의 전도사 역할도 맡는다. 전도하고 가르친다. 내가 정말 웃기는 건 그들이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걸 일러 '사제권력'이라고도 한다. 그들에게 그것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진보 꼴통들의 세계관은 확실히 단순명료하다. 모든 것은 정권의 음모이고, 자본의 음모이다. 나와 다른 것은 '모두 적의 2중대'다. 신당참여를 목전에 두고'야권분열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모씨는 과거에 같은 논법으로 그 외의 정당들을 2중대로 폄하했다. 계급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계급의 이름 하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자, 또는 서발턴들의 목소리도 모두 계급의 적대선을 훼손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자본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는 자본의 공모자이자 자본의 수혜자로서 더 하층계급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물론 최종심급에서 우리는 자본의 핵심을 이야기해야만 할 것이다. 노동자 계급 내의 분화를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 결코 자본의 잔인성과 자본에 대한 기소유예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인식을 갖는 것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인가?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착취의 대상이자 또 착취자일 수 있다는 의식은 노동자의 발걸음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시각을 넓히고 노동 연대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 개개인에게도 성찰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현실적 맥락과 어우러져 그 한계선도 설정해야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하나의 단일 대오로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또 인식론적으로도 독단의 오류이다. 흔히 '동일성의 철학'이 가진 약점이다. 보수세력이 원하는 것은 '차이의 차별'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이의 인식'과 '차이의 연대'이다.    

뭐 뻔한 이야기였다.더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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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교육과 국민의 역사의식,그리고 생활철학에 더럽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예들이다. . 일단 저지르면 된다. 깃발 꽂았는데 지들이 어쩔꺼냐...배째라.  결과만 나오면 그 이후엔 다 끝이다.  

용산? 

일단 들어가서 잡아들여. 절차? 알게 뭐야? 누가 지들 보고 저러래? 쳐들어가!! 

'목표지상주의','결과지상주의' ... 그 과정은, 그 이후는 중요치 않다. 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키우면 다 그런 아이들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목적'과 '결과'만을 미친 듯이 쫓는 인간형을 만들어 놓고 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래? 사람들이 경우도 없고 앞뒤도 없다.천박하게..'라고 혀를 쯧쯧 찬다는 거다. 진짜 천박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오늘 <한겨레신문>은 개인적 관심에 의해 이래 저래 볼꺼리가 무척 많다. 그중에는 이런 것도... 

대리시험은 위법이지만 합격은 인정 

 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48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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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 검색에서는 '공옥진'이라는 이름을 제법 발견할 수 있을게다. 

'공옥진'....병신춤의 달인. 

어린 시절에 TV를 켜면 가끔씩 공옥진 여사의 춤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해학적 표정과 각종 동물들을 재현한 춤들은 코미디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게 아무 공여사의 춤은 춤으로서의 예술적 기능보다는 희극적인 몇 몇 이미지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내게 그녀의 춤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영영 사라졌다. 지난 시절의 화면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2006년 교통사고 이후 그녀의 힘겨운 투병생활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는 11월 1일 KBS 스페셜에서 최근 그녀의 삶이 방영된다. 정말 오랜만에 TV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닐까 싶다. (꼭 챙겨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요즘 나오는 가수 중에 2NE1의 한 가수가 공여사의 조카 손녀인가보다. 뉴스 검색에 유인촌과 함께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이 그녀다. 기획사에서 그녀의 인적 특이사항으로 공옥진이라는 이름을 활용하고 있는 듯 하다. 비즈니스계가 그렇지 않겠나 싶다. 

지난 10월 10일에 유인촌이 공여사의 영광 자택을 찾았다.  



쇼같다. 그렇다. 쇼다.  

전통 예인들에 대한 유인촌의 관심이 특히 남 다르다는 이야기는 듣지못햇다. 그들의 삶과 전통문화에 대한 노력은 그의 관심 목록에서 있긴 있어도-문화부장관이니 명목상 다 그의 나와바리 아닌가?- 저 밑에 있다. 미디어법을 비롯해서 신경써여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터인데 이해는 된다. 그래도 '유인촌:배우= 공옥진: 광대' 라는 연상을 통해 이미지 효과는 뛰어나다.

어쨋거나 정치인들의 사진찍기는 대개가 쇼인셈이니 딱히 유인촌만을 탓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사진기자들이나 방송 카메라 기자들이 그런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애를 들어 고 노무현 대통령이 낙향해서 기자들 대동하고 벼가 익은 논을 둘러 볼 때가 있었다. 근황도 이야기하고 농업에 대한 애정도 선보이고...하여간 그때 방송에서 많이 나간 장면은 '트랙터를 모는 대통령'이었다.(벼 수확할 때 쓰는게 트랙터 맞나.도시 촌놈이라서..) 그런 장면들은 다 연출된 거다. 주변 기자들이 한번 몰아봐 주시지요....'어..나 이런 거 안해봤는데..그거까지 해야돼나'..'그림 한번 만들어주시지요.' ..'음...뭐 이정도까지만 합시다.''''그래도 대통령님,그림 한번..'하아..그림있어야 이사람들도 갈테니 ..결국 한번 해봐야겠군요.'...뭐 대충 이런거다. 털털털...트랙터를 모는 귀농 대통령의 이미지가 나온다. 한국에서 이런 원조는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농민과 어울려 막거리를 나누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여전히 그를 둘러싼 아우라 중 하나이다. 도시보다 농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높은 것은 농민들의 평균연령이 높거나,학력이 낮거나 그런 이유때문만은 아니다. 실제 박정희 대통령은 농촌 문제에 대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관심을 보인 것은 분명하다. 그 시기는 세계적으로도 일종의 '그린 혁명'이 진행 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과학 영농'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량이 대폭 증가한다. 품종개량도 이루어졌다. 더불어 요즘 외면받는 각종 비료,농약이 스스럼 없이 쓰여서 역설적으로 향후 '유기농시장'의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성장과 더불어 농가의 부채도 증가해 갔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박정희의 농촌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은 분명히 성공적이었다. 그것은 무지랭이 농민들의 허상이라고만 취급할 수는 없다. 설령 그것이 가상일지라도 그 가상의 토대 위에서 정치가 시작되기때문이다. '막걸리와 시바스 리갈'은 둘 다 인식론적으로 실재이다. 

잠시 딴이야기로 갔다. 여튼 유인촌의 공옥진 방문은 쇼다. 그런데 난 그 쇼를 절대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내가 유인촌을 단 한번도 장관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 걸 보면 내가 결코 유인촌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알것이다.) 유인촌의 공옥진 방문은 실제로 공옥진 여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또 실제적인 지원도 가능케 했을 것이다.( 물론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지원까지 못간다는 면에서 이건 쇼에 지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못하는 진보가 유인촌의 쇼를 욕할 수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진보는 왜 그런 쇼를 하지 못했는가? 내 질문은 그런거다. 핸드폰만 쇼를 할 필요는 없다. 진보는 늘 너무 진지해서 '쇼'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진정성과 도덕성의 지표만이 그들의 무기인가? 난 진보가 쇼를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것이 중대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그리고 방법적으로 쇼를 통해서든 뭐든  쇼 뒤의 '이면'을 깨닫고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것으로 가야한다.(이미지 쇼의 문제는 대개 겉만 살짝 훑고 지나간다는 것이고 진보가 더 나으려면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공옥진의 얼굴을 안은 저 손이 그의 손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과거 공옥진 여사는 기업체에서 많은 돈을 들고 와도 자기가 싫어하는 공연을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하지만 대학의 대동제같은 공연에는 무료로도 가서 자기의 춤을 보여주고 젊은이들과 웃음을 나누었다고 한다.아마 TV로라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번이 거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11월 1일 KBS 스페셜이다. 

 <아름다움을 훔치다>. 사진작가 김수남은 공옥진이 본인 스스로 '공옥진이 보다 더 공옥진이 같다'고 흡족하게 평가한 사진이 있다. 어느 시골 읍내에서 멍석을 깔고 춤을 추는 공옥진,그리고 그 춤판이 끝나고 어르신들에게 막걸리를 따라 주고 있는 공옥진이 그 사진이다.  

그녀는 시대의 광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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