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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 넌 호랑이야 ㅣ 샘터어린이문고 39
날개달린연필 지음, 박정은 외 그림 / 샘터사 / 2013년 9월
평점 :
내가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그때가 1970년대니까, 못해도 40년은 된 사진이다. 그런데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동물원에 갈 일이 없었다. 경영악화로 문을 닫은 동물원때문이었다. 그러다 부산에도 동물원이 다시 개장을 하였고, 늘 작은 동물만 보던 아이에게 호랑이, 사자, 코끼리가 있는 동물원에 데려가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사자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지인들이 이렇게 댓글을 달았었다. "우와, 그래도 걸어다니는 사자 앞에서 찍었네요. 우리가 갔을 때는 잠만 자더라구요" 라는...
동물원의 동물들은 행복할까? 거꾸로 내가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싫은 일이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동물원에서 잠만 자는 맹수들, 우리를 타고 넘어 도망 갔다 다시 잡혀 온 동물 이야기. 이런 것들이 자꾸 머리 속에 떠올랐다.
이 책에는 세 개의 이야기가 있다. 보통은 표제와 같은 이야기가 하나 있기 마련인데, 이 책에는 표제와는 다른 제목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 제목은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 모두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잊지마, 넌 호랑이야. 잊지 마, 넌 하늘을 나는 두루미야. 잊지 마, 넌 초원을 달리던 코끼리야. 라고.

첫번째 이야기는 못생긴 호랑이 천둥의 이야기이다. 멸종 위기등급이기도 한 시베리아 호랑이. 천둥은 경영이 악화되어 먹이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동물원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말을 듣는다. 천둥은 고향 시베리아로 돌아갈 수 있을까?
행복동물원에 살던 천둥은 다른 호랑이들과 달리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야생의 상태에서 건강한 교배를 통해 태어난 호랑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몸집도 작고 약하다. 그래서 야생성을 지닌 다른 호랑이들에게 늘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천둥에게도 시베리아의 야생성을 지니고 있던 엄마 호랑이가 있었다. 천둥이 기억하는 엄마는 늘 초점 어뵤는 눈을 하고 바닥에 누워만 있었다. 고향 시베리아로 돌아 갈 희망을 잃은 호랑이였다. 천둥은 결국 행복동물원에서 견디지 못하고 꿈동산랜드로 간다. 꿈동산랜드에서 지낸 시간들도 천둥에게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천둥이 고향으로 보내진단다.
그러나 그가 간 곳은 시베리아가 아니라 행복동물원이었다. 행복동물원에서 다시 만난 친구들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그들 역시 천둥의 엄마처럼 희망을 잃고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가 동물원에 갔을 때 걸어다니는 사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부러워하던 지인들이 생각난다. 동물원은, 살아숨쉬는 공간이 아니다. 인간의 재미를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야 하는 곳이다.
새로 생긴 동물원이라고 좋다고 아이를 데려갔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미안하고 또 미안해진다. 우리 아이도 그런 생각을 할까? 우리가 자연 속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날은 올까?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자연으로 다시 방사되는 동물들 이야기도 간간히 들려온다. 애초에 잡아서 가두지 않았더라면, 그런 수고도 필요없었을 텐데 말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날고 싶은 두루미 갑돌이 이야기이다. 사육장에서 자란 갑돌이와 습지에서 붙잡혀 온 갑순이의 이야기이다. 갑돌이는 자유롭게 날아보지를 못했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천둥이처럼 갑돌이도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아보지를 못했다. 그렇지만 갑순이는 습지에서 생활하다 갑돌이와 함께 한국의 동물원에 오게 되었다. 야생의 삶을 알고 있는 갑순이에게는 동물원이 감옥같았을 것이다. 하늘을 날아야 하는 두루미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 갑돌이도 어렸을 때 아빠로부터 나는 연습을 했지만, 실제로 날아볼 수는 없었다.
야생의 삶을 포기하고 동물원에, 혹은 사육장에 길들려지기를 거부하는 갑순이를 통해 갑돌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다. 언젠가는 갑순이와 함께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으리라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그러나 갑순이는 이겨내지 못하고 먼저 죽고만다. 갑순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 갑돌이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사육사의 아들인 재운이를 통해 하늘을 날아 본 갑돌이. 언젠가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기를...

마지막 세번째 이야기는 동물원을 떠난 코끼리, 꽁이와 산이의 이야기이다. 꽁이와 산이는 아프리카 코끼리이다. 산이 역시 아프리카에는 한번도 가 본적은 없는 서커스단에 있던 코끼리이다. 이 책 속의 동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야생을 기억하는 동물과, 야생을 경험해보지 못한 동물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야생의 삶을 기억하는 동물들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삶을 포기하거나, 이상징후를 보이거나 한다. 그러나 애초에 야생을 경험하지 못한 채 태어난 동물들은 그냥 주어진 환ㄱ셩에서 적응한다. 우리가 보는 많은 동물들이 사실은 이러한 동물들이다. 그들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좁은 우리에서 적응하며 살고 있는 무기력한 동물들이다. 과연 아이들이 그 동물들을 보고 산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할까?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 지 궁금하다. 야생에서 자유롭게 거니는 동물들을 보지 못하고 우리 속에 갇힌 동물만 보아 온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신의 야생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보는 그들의 모습이 진짜가 아님을. 그 속에 갇혀 있는 동물들도, 그들을 보는 우리도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 샘터 물방울 5기 서평단으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