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을 불어요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23
에즈라 잭 키츠 지음, 김희순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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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즈라 잭 키츠의 『휘파람을 불어요』는 아이의 놀이를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책을 보면서 놀이뿐만 아니라, 윌리와 피터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아마도 학교에서 스스로 왕따라고 여기는 우리 아이가 대비되어져서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책이든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음을 또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피터는 왜 매일 혼자서 놀까?

그림책에서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는 혼자 노는 피터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피터는 휘파람을 무척이나 불고 싶어했다. 그 이유는 어떤 아이가 휘파람을 불면서 개와 노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피터는 휘파람을 불 수는 없지만 혼자놀기의 고수다.

 


 

빙글빙글 돌다가 멈추기를 하거나, 색분필로 땅에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색분필 하나만 있어도 집에까지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다.


 


집에 들어와서는 아빠의 모자를 쓰고 어른 흉내를 내어보기도 한다. 어른이라면 휘파람을 잘 불 수 있지 않을까? 피터는 거울을 보면서 휘파람을 불어보지만 여전히 휘파람은 불어지지 않는다.


 

아빠의 모자를 쓴 피터는 엄마에게 아빠 흉내를 내면서 말을 건다. 그에 대해 엄마는 자연스럽게 호응을 해준다.



 

윌리를 찾아나서는 길에도 피터는 그림자 놀이를 하면서 간다. 저 멀리 윌리가 보이자 상자 속에 숨어서 휘파람 불기를 시도!! 피터가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는걸까? 휘파람을 불 수 있게 된 피터에게 윌리가 다가온다.



휘파람을 불 수 있게 된 피터의 행복한 표정. 피터는 휘파람을 불지 못했지만, 무한한 연습을 통해 불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정성이 통했던걸까? 휘파람을 불자 다가와 꼬리치는 윌리. 피터의 행복한 얼굴은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만든다.




나는 우리집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그리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 그런지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왕따라는 말을 꺼내며 자기가 학교에서 왕따라고 말한다. 선생님도 알고 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내가 볼 때는 우리집 아이는 친구들에게 잘 다가가지 않는 편이다. 그냥 같이 어울려 놀면 되는데도 두려워하고 다가가기를 주저하는 아이다. 그런데 학교에 가니 아이들 사이에도 은근 서열이 매겨지는 것 같다. 놀이를 할 때도 누군가는 시켜주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시키는대로 하는 아이가 된다. 그러다보니 시켜주는 아이가 끼워주지 않으면 같이 놀 수 없단다. 그런 관계를 풀어가야 하는 것은 아이 자신이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피터는 혼자 놀기는 잘하지만, 윌리와 어울려 상호작용을 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휘파람을 불면 윌리가 응답을 하고, 자기와 어울려 놀아주고 하는 것 말이다. 그 장면이 내게는 우리집 아이의 모습과 겹쳐져서 다르게 읽혔다. 놀이를 시켜주고, 끼워주고 하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어울리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장난감이 없어도, 마땅한 놀이장소가 없어도, 친구가 없어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게 아이들의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왕이면, 누군가와 함께 하는 놀이라면 더 즐겁지 않을까? 피터에게 휘파람이 하나의 시작이자 계기가 되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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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루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69
에즈라 잭 키츠 글 그림, 정성원 옮김 / 비룡소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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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즈라 잭 키츠의 그림책을 보다가, 이 그림책이 유난히 내 눈길을 끌었다. 애즈라 잭 키츠를 이야기할 때 백인이 아닌 흑인 혹은 유색인(소수민족)을 주인공으로 그려낸 최초의 그림작가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유니세프에서는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에게 수여하는 애즈라 잭 키츠상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보통 『피터의 의자』로 이 작가를 만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도서관에서 책들을 꺼내놓고 보다가 이 책을 먼저 선택하였다. 슬쩍 들쳐 본 그림과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기때문이다.

 

수지와 로베르토는 인형극 공연을 위해 무대를 마련한다. 무대 밖에 앉아있는 관객들을 보면서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루이도 왔네. 쟤가 올 줄은 몰랐어." "나도 그래." 친구들이 모두 와서 구경해주기를 바랐을 공연인데, 루이는 의외의 관객이었던 것이다.

 

루이는 어떤 아이일까? 왜 이런 장소에 온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을까?
그 이유는 공연이 시작되고 난 후 바로 밝혀진다. 무대 위의 인형들을 보기 위해 벌떡 일어선 루이, 친구들이 안보인다고 아우성을 쳐도 막무가내이다.

결정적으로 루이는 무대 위의 인형 '구씨'에게 인사를 한다. 대답을 하지 않자, 종이로 나팔까지 만들어서 "안녕"하며 인사를 시작한다. 공연 중에 인형에게 저런 식으로 소리치는 건 3~4세 유아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장면 아닌가? 루이의 저런 행동에 친구들을 싫어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수지의 기지로 구씨의 입을 통해 루이를 진정시킬 수 있었고, 공연은 무사히 끝이 난다. 물론 루이는 공연 내내 가장 열심히 반응을 보이고 박수도 친 아이이다.


공연이 끝난 후 루이는 구씨를 안아볼 수 있었다. 이것도 수지와 로베르토의 작은 배려이다. 구씨를 꽉 끌어안은 루이를 보면서 수지와 로베르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루이는 보아하니 현실 속의 친구는 없는 듯하다. 이런 공연장에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듯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으며, 사람들이 많은 곳에도 잘 오지 않는 아이인 듯하다. 공연 중인 인형에게 말을 걸고 주변을 인식하지 않은 채 행동하는 루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 아이를 떠올렸다.

 

우리집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는데, 학교에서는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1학년 입학을 하자 여기 저기 학교에서 루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엄마들은 그 아이때문에 학교 생활에 지장이 많다는 말도 한다. 그 아이때문에 학교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이 그림책을 소개하는 글들을 읽어보면 루이를 자폐성향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자폐라는 것이 어느 선까지 통용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회성이 부족하여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관심을 가진 것에는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거나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했을 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루이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는 루이. 벽에 그려진 그림 속에 대형 아이스크림이 보인다. 이 아이스크림은 나중에 루이의 꿈 속에 다시 등장한다.

어쨌든 등을 웅크리고 땅을 쳐다보고 걸어가는 루이의 모습은 왠지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집에 돌아 온 루이는 방안에 혼자 앉아있다가 거대한 아이스크림을 구씨에게 먹여주는 꿈을 꾼다. 연극이 시작될 때 루이의 옆 자리에 앉은 여자아이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귀여운 고양이도 한 마리 옆에 있었다. 루이에게 구씨는 그 여자아이 옆의 고양이기도 하지 않을까싶다.

그러다가 밑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는 루이, 친구들이 '안녕'이라고 말하며 공연장에서의 루이를 흉내내며 놀려대는 꿈을 꾼다. 루이는 자신이 공연장에서 했던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놀림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싫기도 하고. 그런 루이를 깨우는 엄마.


루이가 꿈에서 깨어, 엄마가 전해준 쪽지의 내용을 따라가자 놀랍게도 구씨가 루이를 기다리고 있다. 구씨는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바로 수지와 로베르토일 것이다. 그들은 루이가 공연 중에 방해를 했을 때는 구씨의 입을 통해 루이를 진정시키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구씨와 루이가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마도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루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는 것은 성숙된 모습이다. 루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루이의 입장을 고려하고, 루이의 기분을 헤아려주는 것은 보통 어린이들로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 아이에게 그러한 모습이 옳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도 어렵다. 사실, 어른인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무시하거나 피해버리기 일쑤니까.

 

이 그림책에서는 수지나 로베르토가 루이와 함께 어울려 놀라고 하거나, 뭔가 거창하고 의미있는 일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루이가 그토록 원하는 구씨를 살짝 가져다 놓음으로써 루이를 이해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아도 친구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일이 있음을 알게 한다. 강요하지 않고 설득하는 힘을 가진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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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6-07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과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잘 그려낸
멋진 그림책 가운데 하나라고 느껴요.
이야기가 참 예쁘지요.

하양물감 2014-07-23 11:52   좋아요 0 | URL
네 의외의 그림책을 많이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읽고 아이랑 이야기하고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그림책이었습니다.
 
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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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이 너무나 봄스러운!! 책을 만났다.

다시, 봄!

 

 

 

2014년 우리의 봄은 어느 해보다도 사건사고가 많은 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슬픔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떠올릴 것이다. 잔인한 4월이라는 말이 어쩜 그리 딱 들어맞는 날들이었는지. 다시는 이런 봄 마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봄은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을 말한다.

 

 "봄은 한 해의 시작이요, 아침은 하루의 시작, 새로운 시작은 희망을 말합니다. 겨울에 죽지 않고 살아난 만물이 이제는 생명을, 희망을 말할 때입니다. 살아남은 것들은 희망을 맞이할 당당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시 새봄에 새로운 힘을 얻고 새 희망을 맞이합니다" (p.49)

이 아픈 봄날을 다시 만나는 날, 우리는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장영희선생님의 글뿐만 아니라 눈길을 사로잡는 화가 김점선의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묘한 어우러짐, 그러면서도 각각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여 글과 그림 모두 눈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투병중에도 끝까지 작품활동을 했던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을 함께 본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아픔과 시련이 언제까지나 계속 되리라는 절망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 숨 쉬며 살아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감사하다.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다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절망 속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산다면, 정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장영희와 김점선은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그 삶을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있음에 감사하한다.

 

수많은 생명들이 꽃다운 나이에 사라졌다.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살아있음을 고마워해야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차오르는 그 두려움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들 역시 부모에게 형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그런 봄, 2014년의 나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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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6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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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읽고 있는 작은 잡지지만, 이번호는 느낌이 달랐다.

어찌보면, 5~6월의 황금연휴들, 그리고 다가오는 여름, 선거에 월드컵까지 할말이 정말 많은 달인데, 그 누군들 주저리 주저리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맘이 들까? 그만큼 충격의 시간이었고, 슬픔의 시간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그래서 잊어서는 더더욱 안 될 그 일이 의혹의 꼬리를 잘라내지 못하고 자꾸 숨어들어간다.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는 유언비어(라고 말하는 이야기들)들이 유언비어가 아니라 진짜 그럴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뭐 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연이어 터져나오는 사건사고들이 정말 뜨거운 여름을 보내게 한다.

월간 샘터 6월호도 전체적으로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한 편집으로 보여진다.

 

 

 

 

동료들을 살리고 싶은 소방관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울림을 주는 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환경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구하고 남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일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겹쳐져서이기도 하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수백명의 목숨을 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서이기도 하다. 자신이 앞장서서 지켜주고 방패가 되어야 할 사람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아서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저 소방관같은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곧 있을 선거에서도 자신의 안위와 명예를 위해 출마한 사람들보다는 진정으로 시민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 뽑혀야 할텐데... 걱정만 늘어간다.


 

 

 

촌에서 온 그대... 나에게도 이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촌이라는 게 뭔가? 도시가 촌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는데, 사람들은 '촌'사람을 무시한다. 내가 서울에 한 1년 정도 있었을 때, 같이 일하던 어떤 사람이 나보고 촌에서 왔다며 놀렸다. 부산에서 온 나에게 금산에서 온 그 사람이 그렇게 놀렸다. 하긴 내 친구는 고등학생 때 서울로 전학갔는데 "아버지가 고기 잡으시니?"하는 질문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부산은 한국의 제2의 도시이고, 적어도 금산에서 온 사람한테 들을 말은 아니라고 했더니, 그 사람 왈 제2의 도시 다 필요없고 서울에서 가까우면 도시고 멀면 촌이란다. 어이상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디 그 사람뿐이었을까? 서울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부산은 여전히 촌일 뿐이다. 이 꼭지의 글들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면 지방사람의 한탄으로 비칠까 그냥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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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2 - 파리를 조종하라! 초록도마뱀
알리 스파크스 지음, 로스 콜린스 그림, 김난령 옮김 / 웅진주니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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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1권에서 거미로 변신했던 조시와 대니는, 다시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페티포트는 자신의 실험일지에 조시와 대니를 스위치 프로젝트 실험에 끌어들일거라고 적어놓았는데, 2권에서 성공하게 된다.

거미로 변신했던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파리"다.

아이든 어른이든 곤충에 대해 호불호가 가려지는데 파리나 쥐와 같은 동물은 좋아하지 않거나 혐오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병균을 옮기거나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시와 대니는 1권에서, 그리고 2권에서 갈갈이와 킁킁이 (쥐)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파리로 변신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마을에서 열리는 정원가꾸기행사에 참여하기로 한 조시와 대니의 엄마는 작년 우승자인 밉살스러운 이웃때문에 속이 상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척하면서 슬슬 약을 올리는 샤프부인. 거기에다가 그녀의 아들 타퀸은 공부를 잘해서 샤프부인의 자랑거리기도 하다. 정원가꾸기든, 아이들 공부자랑이든 샤프부인의 행동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처음 페티포트를 만났을 때도 조시와 대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웃으로 이야기를 했었다. 괴상한 괴짜라고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조시와 대니의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과 달리 페티 포트가 자신의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하여 조시와 대니는 또다시 페티포트의 집으로 가게 되고, 그들은 두번째 변신을 하게 된다.

 

 

 

페티포트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는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호기심을 이용하여 자신의 프로젝트에 스스로 참여하게 만든다. 지난번 거미가 되었던 일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이었지만, 엄마의 정원에 산울타리 새가 모두 사라져버린 상태에서 어떻게 된 사실인지를 밝혀낼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기때문이다. 페티포트가 아이들을 구슬리는 장면은 아이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단순히 거미나 파리로 변신만 한다면 이 책은 그저 그런 이야기에 머물 것이다. 거미가 되었을 때는 거미의 특성을 이용하여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파리의 특성을 이용하여 샤프부인의 집에서 정보를 찾아낸다. 그 과정에서, 페티포트의 잃어버린 큐브를 하나 되찾음으로써 이야기는 한발짝 더 진전한다.
 

 

 


파리로 변신한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역시 이번에도 갈갈이와 킁킁이이다. 아마도 6권까지 계속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갈갈이와 킁킁이는 샤프부인을 교란시키기도 하고, 정원가꾸기 심사에 불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2권에서는 페티포트 부인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지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잃어버린 큐브 조각들, 그 큐브 조각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조시와 대니를 이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의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6개의 큐브 중 2개의 큐브를 찾은 페티포트는 과연 큐브를 모두 찾아낼 수 있을까? 

 

* 이 책은 2학년인 딸아이도 재미나게 읽고 있는 책이지만, 4학년 아이들도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글밥이 적은 책에서 장편으로 넘어갈 때 권해주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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