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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 반짝하고 사라질 것인가 그들처럼 롱런할 것인가
이랑주 지음 / 샘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정말 많은 직업이 있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 중 몇개나 될까?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거기에 미쳤다. 물론 이 책은 직업을 소개하는 책도, 진로고민에 빠져 있는 청소년을 위한 책도 아니다. 살아져가는 전통시장들이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을까? 100년 200년 전통을 가진 시장들이 대형마트들 틈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런데 저자의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비주얼 머천다이저. VMD라고 불리는 이 직업을 저자는 '상품가치연출' 전문가라고 이야기한다. 소상공인 맞춤 VMD라는 영역을 개척하였고, 수많은 쪽박가게를 대박가게로 거듭나게 하였던 그녀가 세계일주를 하며 40여 개국 150 여개의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점포를 둘러보고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VMD라는 직업도 생소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음에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보러 떠난 그녀의 자세는 배울 것이 많다. 자신의 능력과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보고자 했던, 그리고 자신의 분야를 더 전문적으로 무장시킬 수 있는 경험을 하러 떠난 그녀의 자세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지금의 나 역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나무꾼 이야기가 나온다.
두 명의 나무꾼이 있었다. 한 명은 하루 종일 나무를 베고 가끔은 야군도 하면서 열심히 하루에 14시간을 일했다. 다른 한 명은 하루에 8시간만 나무를 베고 일찍 퇴근했다. 20년 뒤 하루에 8시간 나무를 벤 사람과 하루에 14시간 나무를 벤 사람 중 누가 더 성공해 있을까?
단순 노동시간으로 따진다면 당연히 14시간씩 일한 사람이 더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년 뒤 더 송공한 것은 8시간만 일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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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만 일하고도 성공한 기업가가 된 사람은 자신만의 숲에 갇히지 않고 더 넓은 숲을 보러 떠나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직접 모험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책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했다. 그는 시간 활용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일할 시간, 도끼를 갈 시간, 낯선 도끼를 찾아다닐 시간을 적절하게 잘 분배해서 인생 전체를 설계한 것이다. (p.8)
저자 역시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나무만 베는 나무꾼'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는 세계에서 모르는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p.9) 잠깐 멈춘 그녀는 1년 간의 세계일주를 떠났고, 세계의 전통시장을 돌아본다. 1년간 보고, 만나고, 경험한 것들을 풀어내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차례를 보면, 각 시장의 특징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대체불가능한 시장을 보다, 성공계산기를 뺀 사람들이 만든 시장, 부족함을 함께 채우다, 아날로그 감성에 편리함을 더하다, 보여주는 진열에서 체험하는 진열로, 나는 시장에 놀러 간다, 상품에 대한 자신감을 눈으로 알게 하라, 사이즈를 파괴하라, 시장건물 문화유산이 되다, 시장에도 상상력이 필요해, 과학적 진열의 첫째 조건" 등등등.
저자가 페인과 영국의 시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자신들이 파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시장에서만 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p.20)이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물건을 사기 위해 시장에 가는 것은 1차적인 목표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것을 인터넷이 대신해주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 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 있다면? 인터넷에서는, 대형마트에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시장으로 가야 한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힘듦과 불편함을 알고 있음에도 산에 오르는 것은 정상에 올랐을 때의 느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면, 혹은 그 길을 걷지 않았다면 절 대 느낄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도 마찬가지. 시장에 가지 않고서도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판매기능만을 가진 대체가능한 시장이 될 것인가? 스토리와 재미, 경험을 공유하는 대체불가능한 시장이 될 것인가?"(p.25)
스페인 마드리드 산 미구엘 시장을 찾은 저자가 부산의 야시장에 대한 코멘트를 했다. 산 미구엘 시장에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던 저자는 이곳에서는 모든 식재료를 1유로에 파는 '한입음식이 주류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각종 크기의 선물용 포장상품도 함께 팔고 있었다. "단돈 1유로를 내고 일단 맛보게 한 다음 백 유로를 쓰게 만드는 것이다."(p.52) 부산의 야시장은 다른 나라의 야시장 문화를 본떠 만들어졌다. 그런데 부산에 살고 있는 나도 그곳과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잘 가지를 않는다. 특별한 야시장 먹거리가 있다는 말도 없고, 비싸다는 말만 들려오기 때문이다. 야시장이라는 형식을 빌려왔다면, 내용은 달라야한다. 밤에 문을 연다는 것을 빼고 무엇이 다를까?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면 그것을 쉽게 먹어보고싶어하도록 만들어야하고, 그것을 먹는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야 한다. 그러한 방법을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할 듯. 저자가 둘러 본 세계의 시장은 물론이고, 이렇게 우리의 시장에 어떻게 접목하면 좋을지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책에서는 서점도 다루고 있다. 인터넷서점의 확장으로 인해 동네서점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관계와도 다르지 않다. 서점의 단순 기능을 파괴한 일본의 츠타야 서점, 없는 책 빼고 다 있다는 미국의 스트랜드 서점, 재고나 파본 도서를 판다는 독일의 조커스 서점, 오페라극장을 서점으로 변모시킨 엘 아테네오서점 등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책을 읽다보니, 살아남은 전통시장들에는 공통점들이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살 수 없는 것, 그곳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시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어서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적용이 가능하다. 나는 강의를 계획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일을 한다. 그런데 좀 괜찮다싶은 강의는 금세 다른 곳에서도 따라하고, 똑같은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사람은 한정적인데 동일한 프로그램이 여기저기서 생겨나다보니 강좌가 폐강되는 일도 많다. 경쟁력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캠든 마켓을 둘러보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보다 특별한 점을 극대화하라" (p.104)
독일의 함부르크 어시장, 영국의 코벤트가든, 그리스 플라카 지구의 상점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장이 물건만 사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첫인상을 좌우하는 첫 느낌을 강렬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 즉, 그곳에서 놀게 하라는 것이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구매도 늘어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도서관에서도 그러한 점을 많이 부각시키고 있다.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만드는 것, 그것이 도서관 내 강의를 듣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내고, 문화공연을 통해 한 권의 책에 관심을 갖게 한다. 그 책이 재미있으면 또 다른 책을 들게 하는 것.
이 책은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지만, 그 내용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응용가능한 것들이다. 물건을 팔든, 서비스를 팔든, 지식과 정보를 팔든 간에 기본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