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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둘러라 - 샘터와 함께하는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재순 지음 / 샘터사 / 2013년 11월
평점 :
아, 이렇게도 책이 되는구나.
나의 첫 느낌은 이것이었다. 인쇄매체에 쓴 칼럼이 책이 도기도 하고, 블로그에 올린 글들이 책이 도기도 하는데, 잡지 맨 뒷장을 장식했던 글이 책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월간 샘터에는 맨 뒷표지에 이렇게 멋진 글들을 실어왔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글을 기다려 읽은 이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몰랐다.
잡지를 꽤 꼼꼼하게 읽는 편인데, 나의 무의식이 잡지 뒷표지는 당연히 광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이 책을 펼쳐보고서야 집에 있는 월간 샘터 뒷표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랬구나.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천천히 가되, 세월아 네월아 흘려보내지 말라는 말인가? 서둘러 가되 꼼꼼하게 살펴보고 가란 말인가? 읽어보면 알 일이다. 월간 뒷표지이니 그 즈음에 화두가 되었던 일에 대해 쓴 것도 있을터이고, 잡지의 특집에 맞게 쓴 글도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읽어본다.
2007년 10월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란 상대의 인품에 맞추어서 심리적 거리를 잘 조절하는 사람이 아닐까.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되도록 먼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p.18)
이 글귀가 마음에 든 이유는 뭘까? 아마도 내가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일이 바로 인간관계이다. 학부모가 된 후부터는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다. 엄마를 보면 아이가 보이고, 아이를 보면 그 집 부모가 보인다. 그래서 어떨 때는 엄마가 마음에 안들어서, 혹은 그 집 아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관계가 소원해질 때가 많다. 그리고 때로는 그 아이와 내 아이의 관계에 따라 다른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인간관계란 무수한 변수에 의해 변할 수 있는 것이어서 딱 이렇다 정의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글귀가 무척이나 와닿는다. '상대의 인품에 맞추어서 심리적 거리'를 잘 조절한다는 것. 조금은 알 것 같다.
2000년 7월
허친스가 고전목록과 함께 학생들에게 내 준 과제
1. 롤 모델로 삼을 책을 정하라
2. 영원불변한, 인생의 모토가 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라
3. 발견한 가치에 대하여 꿈과 비전을 가져라 (p.28)
2012년 6월
'경영학자들은 현재의 세계를 표현할 때 군사용어를 사용하여 VUCA라고 부른다. V는 불안정성, U는 불확실성, C는 복잡성, A는 애매모호. (P.38) vuca환경에서는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최고 기능을 가졌더라도 안심할 수가 없다. 앞으로 필요하게 될 새로운 기술, 기능을 찾아서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인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p.39)
지금의 내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배워야 하는 이유다. 지금에 만족하면서 산다고 해서 당장에 별반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사회에 나와서 움직이고, 사회의 변화를 몸으로 부딪치면서 느낄 때에야 비로소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체감할 수 있는 듯하다.
2008년 11월
'우정을 유지하는 것은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하다, 좋은 친구를 오래도록 사귀는 방법을 터득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우정을 키워 나가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상대의 장점을 끌어내느냐 하는 것이리라. (p.91)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 어떤 친구든 나의 인생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 서로 나눌 것이 많을수록 배우는 것도 많다. 상대에게 무엇인가 조그만 것이라도 물심으로 주고 싶어 하는 마음 - 그것이 우정의 씨앗이 아닐까. (p.92)'
아하... 우정이라.
오래된 벗을 만나면 좋은 점이 말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준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의 내 상태를 그대로 봐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만나면 편안함을 느끼고, 또 오래도록 계속 보고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눌 것이 많을수록 배우는 것도 많다는 말이 꽤 가슴에 오래 남을 듯하다.
2009년 11월
'무리한 야망을 키우지 마세요. 그 해 그 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만 하세요. 그러면 커리어는 절로 굴러갑니다. - 헨리 키신저' (p.123)
억지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 가장 충실하게 반응하는 것, 그것이 나를 키우는 일인 것 같다.
2011년 1월
'평범한 교사는 그저 일방적으로 주입하려고 한다. 좋은 교사는 설명을 해 준다.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실천해 보인다. 그리고 위대한 교사는 마음에 불을 지른다.(p.199)'
아, 나는 누구의 마음에 불을 비른 적이 있던가? 반성하는 밤이다.
줄을 그어가며 읽었더니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제법 되었다. 가끔은 쓸모없다 여기거나 내게는 필요없는 부분이라 여겼던 곳도 기꺼이, 즐거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땐 내 출근길이 지하철로 오가는 거리만 되어도 좋겠다. 멍하니 앞사람 발끝만 바라보느니 이런 글귀 마음에 담는 시간을 만들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