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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속의 문맹자들 - 한국 공교육의 불편한 진실
엄훈 지음 / 우리교육 / 2012년 5월
평점 :
제목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문맹자라니... 문맹률이 전세계에서도 제일 낮은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다. 거기에 세상에서 제일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라는 한글을 슬쩍 끼워넣어 말하면 증거까지 완벽한 - 문맹자를 다룬단다. 그것도 학교 안에 있는 문맹자를..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이 책의 내용과 많은 부분 겹쳤다. 그게 그래서였구나, 깨닫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어린이도서관이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나면 자율적으로 독서카드를 작성하고 독후활동을 하게 한다. 독후활동을 할 수 있는 자료를 다양하게 비치해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꺼내서 하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내가 보았던 현상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보았다. 아무리 가르쳐줘도 모르던 그 아이도 글자는 읽되, 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이였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듯이 나 역시 그랬다. 한글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문맹이다 아니다를 구분했던 것. 이러한 단순문해는 문맹에 해당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앞부분에서 저자가 만났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가정에서의 열악한 문식성 환경과 성공적인 독서 경험의 부족, 낮은 자아존중감 등으로 인해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읽기부진아가 아닌 공부를 못하는 기초학력부족(미달)인 아이로 취급받는다. 아이들의 상황을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읽기'가 아닌 '학력'의 문제로 취급되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진단은 아이로 하여금 읽기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받을 기회를 박탈한다.
문해력 발달 초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풍부한 문해환경을 제공해줄 수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낱말 해독 발달이 가능하다. 풍부한 문해환경과 지속적이고 의미있는 어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할 무렵이면 이미 엄청나게 많은 읽기 경험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립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게 된다. (p.135)
그렇다면 이런 아이들에게 어떤 읽기 지도를 해야할까? 저자는 읽기는 훈련이 아니므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지, 어떤 책에 관심을 보이는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수준에 맞고 관심사와 부합하는 책을 골라주는 것은 아이가 책읽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기본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효과적으로 지도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먼저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림책을 많이 봐야하고,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에서의 읽기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반적인 읽기 발달 단계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아이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적절한 조치를 해줄 때 학교 안에서도 읽기부진아동들에게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공교육에서는 그것이 왜 어려울까?
저자는 학교에서의 교사의 하루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읽기지도에 관심이 있고 함께 하기로 한 교사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없는 학교 현장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읽기부진은 해독, 독해, 읽기태도 등에 의해 생겨난다. 해독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게는 지속적인 읽기 경험을 통해 긍정적인 읽기 태도를 형성해나가면서 익숙한 문장 읽기, 익숙한 단어 읽기, 기본적인 음절 글자 익히기 등의 훈련이 필요하다.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터널비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한다. 나쁜 읽기 태도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는 부정적인 읽기태도를 갖지 않도록 도와주어야한다.
이러한 아이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환경적, 인지적, 교육적 원인을 제시한다. 이러한 원인에 대해 적절한 조치만 조기에 취해진다면 아이들의 읽기부진현상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 없는 학교 안의 상황을 이 책에서는 보여준다. 읽기에 대한 학교의 시선이 변하지 않으면, 학교가 추구하는 '기초학력신장' 역시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땜질만 한다고 될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은 '읽기', 문해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하였다. 또한 내가 매일 보는 아이들에게서도 역시 읽기부진 혹은 문해력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 책이다. 학교 선생님들뿐 아니라, 부모님들도 읽으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