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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ㅣ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평점 :
신기루는 두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하나는 딸 다인이의 시선으로, 또 하나는 다인이의 엄마 숙희의 시선으로.
엄마의 문학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생애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된 다인이에는 몽골이라는 나라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곳이다. 그래도 해외여행 한 번 안 다녀온 아이는 제 또래중에 없다며 따라나선 다인이. 엄마의 친구들은 한때 문학소녀였고, 등단한 작가인 춘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젊은 날의 꿈과는 상관없이 현실에 떠밀려 살아온듯 보여진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인이에게는 엄마친구들의 현재모습에서 고등학생이던 그 시절의 모습을 유추하긴 어렵겠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다. 나 역시 한때 문학소녀로 살았고, 책을 좋아하고, 그렇게 고상하게 살아갈 줄 알았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것과 다르다. 현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더 많다는 걸 나도 어느새 알았기때문이다.
소설의 앞부분은 다인이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다인이는 야누스라는 가수를 좋아하는 아이이다. 야누스의 콘서트에 가야하고, 음원을 다운받아 외워야하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 나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과하지만 않다면 이런 시절 연에인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것도 괜찮다고. 때로는 그 연에인이 부모인 우리보다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기도 하고, 연예인이기에 포장하고 만들 수 밖에 없는(혹은 그 연예인이 진짜 그런 사람일수도 잇다) 이미지때문에라도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의 일련의 사태들(연예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못된 짓을 하는, 그런데 이게 꼭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한정된 것은 아니잖아.)때문에 우려의 눈빛을 보낼 수 밖에 없기도 하지만.
다인이가 여행을 떠나면서 그나마 야누스의 지노오빠를 닮은 바뜨르라는 가이드때문에 나름 마음고생도 하고, 아이들보다는 아무래도 인생을 좀 살았다는 어른들이나 느낄 수 있는(그것도 예외는 있지만) 사막에서의 황량함을 상쇄시킨다. 다인이의 모습을 보면, 딱 그 또래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 잘 듣고 엄마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오빠때문에 다인이는 언제나 약간은 뒷전이라는 생각도 품고 있다. 그런 것들을 이 여행을 통해 어떻게 풀어낼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인이보다는 다인이의 엄마 숙희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소설의 앞부분이 다인이의 소녀감성과 청소년기의 삐딱한 시선,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동경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있었다면, 뒷부분은 다인이 엄마의 삶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숙희가 고교시절 부러워했던 대상은 춘희, 지금 유일하게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친구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꿈을 이룬(?) 춘희보다는 아들을 카이스트에 보낸 주희가 지금의 숙희에게는 그저 부러운 대상이다. 철저한 계획을 세워 남들이 다 알아주는 대학에 보낸 엄마인 주희가 부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의 꿈보다 이상보다는 자식의 입신양명을 꿈꾸는 엄마들의 공통된 생각일듯하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 있을까? 어디에 가치를 두는가는 자신의 몫이고, 자신의 인생보다 자식의 인생에 모든 걸 건 엄마도 있을 수 있다.
물론 나는 숙희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 오히려 나는 자유로운 춘희의 편에 서고 싶다. 숙희가 고비사막이 있는 몽골까지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때문이다. 암때문에 소설이 무거워지는 일은 없다. 그냥 그녀가 암에 걸렸다는 것이 제시될 뿐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숙희가 춘희를 부러워했던 이유와 숙희의 삶을 죄던 엄마의 모습 등이 오버랩되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물론 여행이 모두 끝나갈 즈음에야 그것을 깨닫지만.
숙희도 다인이도 몽골의 사막에서 신기루를 경험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삶과 죽음의 단계에서 잘 만난다는 이야기 속의 신기루. 그들은 깨닫는다. 힘들고 지쳤을 때, 진짜가 아니란 것은 알지만 신기루를 봄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숙희에게도 다인이에게도 '신기루'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인생은 뜻하지 않게 공룡알 화석을 발견한 다인이처럼, 여행을 하다 만난 모르는 사람들과 다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춘희처럼, 세상에서 가장 말 잘듣는 아들이라 생각했던 형인이가 엄마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처럼, 습작하는 것조차도 알리지 않고 있다가 덜컥 등단을 하는 금란이처럼....인생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