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주어진만큼만 충실하게 하는 사람, 창의적인 기획력은 없지만 시키면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일을 하는 동안은 제법 능력있다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도 그때니까 그랬지, 요즘 같으면 그것밖에 못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한때는, 지금의 남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그 시절의 보상이라도 되는 양 가슴에 품고 살아가지만, 그게 위로가 될까?
요즘 문득 허~한 느낌이 많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학생 때 내가 닮고자 무척이나 애쓰던, 지금 생각하면 내가 꽤 좋아했던 듯한 그 녀석이 뜬금없이 내 꿈에 나타나 나랑 무척이나 닮은 여자와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서 싱숭생숭하게 만들질 않나...
전화를 해서 꿈얘기를 하다가, 내 기분이 그랬다는 걸 숨겼는데도 불구하고 그 녀석, "그 여자가 너랑 닮은 여자가 아니라 너였다면 참 좋았을텐데.."하는 선심성 멘트에 뜨끔하질 않나...
"이 녀석이!! 애엄마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하고 잘라버렸지만...기분은 쪼끔 좋더라...........
그 옛날, 그때, 우리가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지금과 다른 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자 사귀는 사람이 있음에도 연인처럼 편지를 주고받았던(어쩌면 자기 애인한테 보낸 것보다 우리 둘이 주고받았던 게 더 많았을 듯) 건 왜 그랬을까? 군대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는 경기도 모 우체국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보로 부쳐주었던 그 녀석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동기보다 1년 늦게 졸업하는 나를 위해 졸업식에서 인형을 손에 쥐어주던(그 인형은 지금도 한솔이 손에서 곱게 자리잡고 있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대학에서 강의할 때 쉬는 시간을 용케도 알고 찾아와 방없는 시간강사의 설움을 풀어주던 그 시간들....
나이 마흔에 떠올리기에는 좀 낯부끄럽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러고 싶네. 확실히 여자 나이 마흔의 첫 가을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