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솔이 유치원 친구 엄마랑 통화하다가,
"요즘 바쁘세요? 통화하기 힘드네."
"요즘 좀 바쁘긴 바빴어, 집에 있는 한솔이 책 보니까 과학이 부족한 것 같더라고. 아는 사람이 전집 꽤나 갖추고 있는데 그거 사자니 경제적 부담이 되고 해서 그 집 가서 3권씩 빌려오고, 그거 읽어주고, 일주일 있다가 또 갖다주고 빌려오고 했거등. 그것도 일이더라. 요즘은 한솔이 관심영역이 많이 넓어져서 책 찾아서 읽어주고 전시회나 공연 가고 하는 것도 힘들고 말야."
"한솔이는 집에 있는 책도 많은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
"집에 있는 건 창작이 대부분이라, 내가 읽어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 읽거등. 그런데 아무래도 지식정보책은 한솔이 관심영역에 맞는 걸 직접 찾아오고, 읽고 받아들이는 것 보면서 수준도 조정하고 하려니 이 방법이 제일 좋더라고. 마침 그집에 있는 책이 한솔이 수준에 맞는 것과 조금 어려운 것들이라 적당하게 골라오기 좋더라. 다행히(^^) 그 집 아이들이 책을 잘 안본다네. 1-2년 후면 사촌집으로 물려줄 책이라고, 그 전에 열심히 갖다 읽으래서... 그리고 이제 한솔이도 공부좀 시킬까 하고 말야."
"한솔이가 언제는 공부 안했어요? 뭘 또 시키실라고?"
"에궁, 내가 무슨 공부를 시켰다고 그래? 한글이야 지가 알아서 뗐고, 한자랑 피아노는 지가 하고 싶다니까 하는거고. 겨우 하나 시킨 게 있다면 영어겠는데? 영어는 내 실력이 바닥이니...하는 건 많지만 시킨 건 하나밖에 없어...이제 겨우 글쓰기랑 국어공부 시작했는데... 이건 지 혼자 습득한거라 이제는 좀 제대로 잡아줘야겠다싶어서 하는 거야. "
그냥 가볍게 한 대화지만, '애 자랑'하는 걸로 들릴 수도 있고, '극성엄마'소리도 들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게 극성 축에 드는 지도 모르겠다마는...)
내 마음하고 옆에서 보는 것 하고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나는 아직 한솔이한테 공부시킨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옆에서 볼 때 (특히 아이는 놀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주변인들)는 내가 애를 잡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에게도 원칙은 있다. 자기가 좋아서 할 것. 다만, 그 아이가 그것을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엄마가 여러가지로 접해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되면 최소 1년 이상은 꾸준히 할 것.
피아노를 배우고싶다고 계속 졸라대던 한솔이에게 6살이 되면 시켜주겠다, 그때까지도 하고 싶으면 그때 시작하자고 했고, 6살이 된 올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벌써 9달이 지났다. 한솔이는 피아노 치는 것을 즐거워한다.
한글은 36개월에 읽기와 쓰기가 다 되었다. 특별히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책을 읽어주다보니 스스로 글을 익혔고, 글을 읽을 수 있으니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지, 혼자서 흉내를 내더니 쓸 수도 있게 되었다. 혼자 익힌 한글이다보니 글자를 쓰는 순서가 엉망이고, 글자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올해부터는 제대로 글자공부를 시키는 중이다. 다 아는 걸 하니 속도는 빠르고, 나이가 있으니 그동안 잘 못 써온 것을 설명해주면 이해도 빠르다.
한자는 유치원 친구 중에 한자공부 하는 아이가 있는데, 묘한 경쟁심이 생겼는지,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으니 한자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어 어휘가 늘어나는 느낌이다. 이 역시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한 것이라 1년 이상 꾸준히 하려고 생각중이고 한솔이도 잘 따라와주고 있다.
영어는 한글을 다 읽고 쓸 수 있던 36개월 이후, 사운드 중심의 수업으로 시작했다. 이것은 정말 내가 '시킨 것' 맞다. 이것만은 어쩔 수 없이 한솔이의 의지와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시킨 것이다. 중간에 슬럼프도 와서 두어달 쉬기도 했다. 확실히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한 것과 내가 시킨 것의 차이는 난다.
'한솔이 공부 좀 시킬려고...'라는 말 한마디 했다가....생각이 많아진 하루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