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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미술관 -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정혜신 지음, 전용성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푸른색 표지에 구름들이 흘러가는구나.. 그런데, 왜 사람 얼굴을 안그렸을까?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 책을 다 읽었을 즈음에, 책 표지가 아닌 책 속 내용에서 이 그림을 다시 보았을 때, 사람 얼굴을 안 그린게 아니라 솜사탕, 혹은 구름사탕에 가려진 거라는 걸 알았다. 순간의 착각이 꽤 오래간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나 역시 내가 보고 싶은대로 뭔가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림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기 때문에, 함께 수록된 그림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블로그에서 전용성이라는 화가에 대해 소개한 글을 읽었다. 특별한 소개없이(남편의 선배이자 옆집남자라는 정보밖에 없었다) 그의 작업실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자니, 생뚱맞다. 어쨌든, 이 책 속 그림과 글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글로 옮겼다는데, 내가 그림을 보면서 떠올린 것과는 다른 것들을 많이 쓴걸 보니,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책 속 그림을 먼저 쭈욱 훑었다. 그림을 먼저 본 이후에 그녀의 글을 읽었다. 혹시나 글이 그림을 보는 나를 방해할까 싶어서였다.
p.36 붉은색 꽃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마흔다섯송이가 활짝 폈다.
p.48 두 남녀의 뒷모습이 가슴이 찡해온다. 왤까?
p.98 앞서 본 두 남녀의 뒷모습에 배경이 더해졌다. 삐쭉삐쭉..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뒷모습이 많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게다가 개 한마리. 그의 집에서 키우는 개일까?
그림을 다 본 후에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글의 내용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별 상관없이 느껴지는 글도 있다. 나의 공감을 받은 글은,
p.13 나를 긍정하기 : '나'를 아름답다고 마음 깊이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너'를 긍정하는 일에도 예민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각박해진다. 나를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이를 보는 눈도 넓어진다는 걸, 이미 과거의 몇몇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의 사회에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p.41 귀 기울이기 : 자세히, 정확히 알지 못하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삶에서 상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널렸다. 자기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진실이라 믿거나, 정답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곳,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p.45 시시함의 매력 : 힘을 합쳐 계란 삶기, 쓰레기 분리수거 함께 하기....등과 같은 무자극적인 일들, 그런 시시한 행위들이 사람 사이를 더 두텁고 끈끈하게 만듭니다.
힘을 합쳐 계란을 삶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쓰레기 분리 수거 함께 하기와 같은 시시한 행위가 사람 사이를 두텁고 끈끈하게 한다는 말에는 깊이 동감하는 바이다. 쓰레기 분리 수거는 일반 가정에서 매일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다. 그런데, 이걸 온통 주부의 몫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 분리해놓고 밖에 내다놓기만 하라는데도 하기 싫어하기도 한다. 이런 시시한 일(?)이 때로는 부부 사이의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하하.
p.107 돌이 자란다 : 자식에게 좋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방해하지 않는 것이 무관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것 쯤은 알겠지.
p.139 행복한 옥수수 : 옥수수나 꽃게. 양손을 모두 써서 먹어야 하는 이런 종류의 먹거리는 손에 뭔가 묻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탐탐해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무엇에나 손 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폭력을 제외하고요.
오,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옥수수, 꽃게 이런걸 먹지 않는다. 수박이나 포도도 먹지 않는다. 바로 손에 묻는 것이 귀찮아서이고, 물이 줄줄 흐르는 것도 싫고 일일이 씨를 뱉어야 하는 것도 귀찮아서이다. 그렇다고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적어도, 나보다 이런 것들이 주는 기쁨을 하나씩은 더 맛볼 수 있다는 말이겠지?
180페이지 정도 되는 책에서, 그림 세개와 글 5개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시하게 여겨진 건 아니다. 전체적인 글과 그림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아침에 일어나 그림 하나, 글 하나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런 류의 글이 그렇듯이 한꺼번에 쭈욱 읽어서는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글은 매일 업데이트되는 블로그 글에 어울릴런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