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돼지 도라는 발을 동동 그림책 도서관 37
프란치스카 비어만 글.그림, 배수아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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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돼지 도라는 발을 동동...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꼬마 돼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발을 동동]만 들어왔었다. 아, 뭔가 어려운 일이 생긴게야. 짐작을 하며 책 표지를 보니, 예쁜 원피스를 입은 돼지가 보인다. 늘, 둥근 얼굴에 콧구멍을 그리던 돼지의 얼굴과는 달리 길쭉한 얼굴에 약간은 곰스러운(--) 돼지다. 코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뻔. 어쨌든 꼬마돼지 도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살짝 펼쳐본다.

 

 

꼬마돼지 도라에게 문제가 생기면 발을 동동 구르며 난몰라 난몰라를 연신 외쳐댄다. 보통은 난 몰라 다음에 울음보를 터뜨리기 마련이지만 도라는 아이참, 어쩌면 좋지? 라며 해결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이것이 보통의 아이들과 도라가 다른 점이겠지. 물론 도라가 찾은 해결방법이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고, 또 우연히 동전을 줍게 되는 상황처럼 말도 안되는 우연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건 그림책이니까, 라고 용서해주기로 하자. 대신, 도라가 언제든지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귀여웠고,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도라의 노력을 눈치채게 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인듯 싶다.

 

지금, 우리 아이는 겨우 엄마말을 알아듣는 단계이다. 도라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준이 아닌 단계라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지는 않았다. 대신, 아이가 가끔 우유를 쏟거나 과자를 떨어뜨리거나 책장에서 책을 꺼내다 놓치거나 했을 때 [아이참, 어쩌면 좋지?]라고 말을 걸며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게끔 유도해보았다. 아이는, 엄마나 아빠가 하던 행동을 흉내내어 나름대로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주었는데, 그래서 느낀 게 또 하나 생겼다. 역시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라는 걸...아이가 좀 더 자라면 자기만의 해결능력을 갖게 되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소설가 배수아의 번역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소설을 제법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호감가는 번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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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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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순례길을 무슨 생각을 가지고 오르는 것일까? 등산을 시작할 때처럼, 정상에 올라가 산을 내려다보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라거나, 산을 즐기며 그 산을 맘껏 느끼기위해서라거나, 산을 오르는 동안 육체적 고통을 통해 정신적 고민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라거나, 또는, 혼자 집중하며 생각하기 위해서라거나....등등 여러가지 목적 중 하나일까? 순례길은 등산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높지 않은, 혹은 2-3일이면 등반을 마치게 되는 산을 오르는 것과 몇십일간의 긴여정을 비교하지 말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이 비슷한것만은 사실이다. 어느 누구에게는 동네 앞산을 오르는 일도 야고보길을 오르기 위한 준비와 맞먹을만큼의 용기와 준비를 필요로 하기도 하니까.

어찌되었건, 나는,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 이 글을 읽었다. 야고보길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 모두가 종교적인 믿음과 관점으로 그 길을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종교적 의지가 없다면 끝까지 순례를 마치기가 힘들긴 하겠다. 단순관광으로 목적으로 그렇게 고생을 할 사람은 많지 않으므로. 그렇지만, 순례를 떠나며 하페 케르켈링이 쓴 이 책은 굳이 종교적 관점으로 읽을 필요는 없어보인다. 왜냐면, 이 책 속에는 그의 종교적 신념을 보여주는 내용보다는, 그가 신이 있다는 걸 믿는다는 전제 하에,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마음의 여정이 함께 실려있기 때문이고, 그가 순례길에서 만난 동반자들 역시 그들의 내면의 신념보다는 함께 길을 가고, 우연히 만나는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다져진 우정의 산물을 그리는데 등장했을 뿐이므로.

유명 코미디언으로, 자신의 건강을 해칠만큼 바쁘게 활동하던 그가 이런 순례길에 오른 것은 역시, 제목처럼 자기자신을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보면 어느날 문득 내가 잃어버린 기억들, 나를 지탱하는 것들, 나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똑같은 일상생활 속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훌쩍 짧은 여행이나마 떠나기도 한다. 하페 케르켈링도 그러지 않았을까? 물론 그는 이 순례를 통해 자신을 찾았을 것이다. 더불어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쁨까지 덤으로 오지 않았나? ^^;

p.136 이 길을 통해 내 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내 에너지를 어떻게 적당히 사용해야 하는지,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 필요하다면 전력을 기울이되 나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웠다.

그렇다. 그는 너무나 바쁜 연예인으로 살아왔다. 물론 그는 즐기면서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병원신세를 져야했고, 이 순례길을 통해 그가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도. 앞으로 전진, 전진만 외치는 것이 다는 아니다. 가끔은 후퇴도 필요하고, 휴식도 필요하다. 그런 리듬을 찾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리라.

p. 179 우습다! 집에서는 외관상으로는 매일 다르게 보이지만 네적으로는 거의 변함이 없다. 여기서는 외적으로는 똑같으나 내적으로는 매시간 달라진다.

이것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고, 사람들이 순례길에 오르는 이유가 아닐까? 정체되어 있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원동력!!

그가 매일매일을 기록한 이 글에는 하루의 깨달음이 하나씩 적혀있다. 때로는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깨달음이, 때로는 순례길에 따를 만한 깨달음이...결국은 이 책은 한 개인의 일기이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 우리는 쉽게 야고보길을 순례한다. 그러면서 육체의 고통은 함께 수반되지 않지만, 마음에 얻어지는 게 있으니 만족스럽다고 할까? 개인의 일기를 통해 이 정도 얻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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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블로그 푸른도서관 22
강미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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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지 제법 오래되었나보다. 이 책을 청소년도서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좀 충격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 얼마 전에 읽었던 [소녀, 소녀를 사랑하다]하고 비교가 되었다고 해야하나.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던 [소녀, 소녀를 사랑하다]를 무덤덤하게 읽어내렸던 나였는데, 이 책 [겨울, 블로그]는 그렇지 않았다. [소녀, 소녀를 사랑하다]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들고 나왔다면 [겨울, 블로그]는 그런 개념이나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일듯하다. 정말 요즘 아이들의 세계는 이런 걸까? 내가 그들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걸까?

동성애에 대해서는 특별히 반대할 생각도 없고, 그것도 사랑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동성애는 하나의 장치로서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생각된다. [겨울, 블로그]의 혜욱과 민지의 관계는 내게 있어서 이해불가능한 관계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혜욱과, 민지, 도서관 후배의 관계는 중고등학생때 한두번은 보았음직한 풍경이다. 물론, 그들이 도서관에서 한 행동은 좀 뜨악했지만. 이 글을 쓴 작가는 자신의 학창시절과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교묘하게 겹쳐놓은듯 보인다.

[사막의 눈기둥]이나 [독이 빠지는 시간]은 전형적인 청소년 소설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겨울, 블로그]에서 느낀 충격이 완화되는 소설이랄까?

어쨌든 그 충격은 [지귀의 불]에서 다시 세게 다가온다. 수희의 행동은, 왠만한 드라마 속 주인공 뺨칠 정도이다. 약간은 삐뚤어진 애정공세라고나할까. 중고등학교때, 선생님을 좋아하고 그 선생님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그때, 우리는 순수하게 좋아했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저 교무실에 꽃을 꽂아놓거나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거나 하는데사 그치지 않고, 선생님의 행동반경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녔던 아이들이 우리때도 있었다. 심지어 선생님이 사는 곳까지 가서 빨래며 음식까지 해놓고 오는 아이들, 그리고 그 선생님과의 결혼까지 꿈꾸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실제로 선생님과 결혼을 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수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수희의 행동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데에 있다. 사실, 알고보면 수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마지막에 민재와 나누는 대화들을 보면 수희가 일부러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자 수희가 변명하거나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떤 이는, [겨울, 블로그]를 읽고 설마 요즘 애들 정말 이런거야?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때도 그랬다. 이렇게 글로, 책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충격적인 모습으로 각인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이러지 않았으면, 좀더 순수하고 순진하기를 바라는 어른의 욕심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이건 내 자신이 좀더 솔직하게 아이들을 바라 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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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사는 귀신 - 제5회 푸른문학상 동시집 시읽는 가족 3
한선자 외 지음, 성영란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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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어렵다고 생각된 그 순간부터 내게서 시가 멀어져갔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시 몇줄 써서 자랑도 하고 했었는데, 성인이 되어 마주한 시들은 내게 어려움이라는 이미지만 남겼고 그래서일까 시를 읽는 일이 드물어졌다.

오랫만에 동시집을 읽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게 되니 아이들 책에 눈이 자주 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동시집까지 읽게 되었다. 첫 느낌은,,,,맞아. 이런게 시였구나. 내가 좋아했고 내가 썼던 시들이야. 라는 생각. 그랬다. 여전히 동시는 나를 시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나를 시의 세계에서 쫓아낸 것도 시였고 다시 나를 불러들이는 것도 시다.

어른들의 관념에 파묻힌 시에 주눅들어 살다가,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현실을 바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는 동시의 세계에 폭 빠져들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동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세계로,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추억과 아름다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 동시집은 신인들의 시들이 수록된 시지만, 동시를 읽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시집이었다. 기성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참 좋았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마트에 사는 귀신]을 쓴 한선자 씨의 시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을 그대로 읊은 듯하다. 제목만으로도 남편은 공감을 표한다. 나는, 오히려 표제로 삼은 한선자씨의 시보다는 다른 이들의 시가 더 마음에 든다. 박방희 씨의 [와르르와르르 무너지는 소리]외 시들은 말, 언어의 유희를 느끼게 한다. 단어 하나로 많은 걸 이끌어내는 시인의 솜씨가 [새], [왜 모과?], [개기],[왜가리]등에 잘 나타나있다. 나는, 특히 [이야기꾼은 심심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외 여러편을 쓴 이옥용씨의 시들이 마음에 든다. 동시 속에 동화가 숨어있다. 아이들도 그 이야기 속에 나처럼 빠져들듯하다. 이옥용씨의 다음 시들이 기다려질 정도이다. [선사인의 그림일기]외 시를 쓴 박영식씨의 시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잔잔한 시들이다.

동시를 읽으며 한순간이나마 기분좋은 상상에 빠져들 수 있어서 참좋았다. 가끔은 동시를 찾아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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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방 일곱 동무 비룡소 전래동화 3
이영경 글.그림 / 비룡소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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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중칠우쟁론기, 고등학생때 고전수업 중에 배웠던가, 어쨌든 한번쯤 읽어보았던 고수필을 어린이용 그림책으로 만든 책이다.

아주 어려울 것만 같던 고수필도 이렇게 예쁜 그림책으로 그려놓으니, 참 좋다. 아이들이 고수필이란 걸 알지 못하고 접하게 되지만, 나중에 원본인 규중칠우쟁론기를 접할 때 친밀하게 느낄 수 있겠다. 하긴, 우리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들도 대개가 다 고소설이니 고수필을 이렇게 바꿔놓는다하여 이상할것도, 특이할것도 없지만 말이다.

 

아씨방 일곱동무는 자부인, 가위색시, 바늘각시, 홍실각시, 인두낭자, 다리미소저, 골무할미다. 각각 붙은 이름이 참 곱다. 이름에 어울리는 그림 또한 일곱동무의 특징을 잘 나타낸듯싶다. 아이는 이 그림책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아씨방 일곱동무는 제각기 다 자신이 없으면 아씨의 바느질을 완성할 수 없다고 자랑하고, 아씨는 아씨대로 자신이 바느질을 하지 않으면 필요없다하지만, 결국은 아씨와 일곱동무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깨닫는다.

 

이 일곱동무는 예전에는, 없어서는 안될 물건들이었지만, 요즘은 보기 힘들다. 물론 각기 바느질이 아닌 다른 용도를 위해 존재하기는 하지만, 예전과 같은 중요성은 없어졌다. 인간의 가장 기본욕구인 의식주 중의 의를 담당하던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가진 도구들이 아니었나. 요즘은 도구 하면 보통 뚝딱거리는 도구들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집에서 없어서는 안될 도구들이 바로 이 일곱동무였다.

 

다섯살 이상의 아이들이 읽을수있는 수준의 그림책이지만, 아주 어릴때도 그림구경하는 재미가 독특하여 읽혀도 괜찮을듯하다. 어린 아이는 읽는게 아니라 그림을 보는거겠지만. 일곱동무들의 표정도 각각이라 재미나다. 한복도 각각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옷을 입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아이와 함께 일곱동무와 하나하나 만나보는 것도 참 좋다.

 

세상에는, 많은 물건들이 있지만, 각각의 쓰임새가 정해져있다. 그 쓰임새는 여러가지가 어우러질 때 빛을 본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 잘난 맛에 남을 배려하지 않는 아이가 많다. 우리 아이만 최고라고 키워 온 부모 탓도 있겠지만, 그렇게 나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되는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는 탓도 크다. 하찮은 물건들도 각각의 쓰임새가 있고,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완전해질 수 없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두드러질 수 있는 것도 다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이들 덕분이다. 그들이 없다면 나도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주위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함께 어우러져야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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