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 파크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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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의 제인오스틴 전집을 사놓고 겨우 오만과 편견 하나 읽었다. 그 외 다른 책은 줄거리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냥 책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독서동아리에서 읽을 책을 정할 때 일부러 이 책을 추천했다. 언젠가 읽으려고 사 놓은 책을 읽기 위해서. ^^


쉽지 않았다. 우선 778페이지나 되는 책인데다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 읽기가 좀 더딘 편이다. 감정 이입도 잘 하지 않는 편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당연히 주인공인 패니와 에드먼드에게 집중을 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크로포드 남매에게 더 눈길이 갔다.


"결혼 문제에 관해서라면 늘 그런 게 아니란다. 사랑하는 메리."


“결혼 문제에서 특히 그래요. 지금 말하고 있는 그 두 사람의 결혼 운에 대해서는 적절한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요, 친애하는 그랜트 부인, 결혼할 때 기만당하지 않는 사람은 여자건 남자건 백 명 중 한 명도 안 된답니다. 앞으로 제가 처하게 될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언제나 그렇게 보여요. 결혼이라는 것이 모든 거래 중에서 상대에게 가장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가장 정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거래라는 점을

고려해보면요."


“저런! 너 런던의 힐 거리에 살면서 결혼에 대해 정말 잘못 배웠나 보다."


"돌아가신 가엾은 숙모의 결혼 생활은 분명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직접 관찰한 것들만 근거해서 말한다고해도, 결혼이란 책략을 쓰는 작전 같은 일이에요. 결혼하면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인척 관계에서 뭐라도 한 가지 득이 있겠지, 혹은 상대방이 교양과 훌륭한 성품을 갖고 있겠지 하고 철석같이 믿었다가, 자신이 완전히 기만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래서 그 정반대의 상황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을 제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요! 바로 이런 게 사기가 아니고 뭐겠어요?"


"얘, 그 생각에는 틀림없이 상상이 어느 정도 가미된 것 같구나. 미안한데 네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어. 내가 장담하는데 너는 절반밖에 못 보고 있어. 안 좋은 면은 보지만 위안이 되는 면은 못 보고 있다고. 어디든 사소한 마찰이나 실망은 있는 법이야. 그리고 우리는 모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경향이 있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 가지 행복의 계획이 실패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계획 쪽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지. 첫 번째 계산이 잘못되면 두 번째 계산은 더 잘하게 되는 법이야. 어디에서든 위안을 찾아. 사랑하는 메리, 심사가 비뚤어져서 사소한 문제를 중요한 일로 치부하는 제삼자들이 사실은 당사자들보다 더 많이 기만당하고 속아넘어간단다."


"참 훌륭한 말씀이네요, 언니! 언니네 기혼 부인 집단의 단결심에 존경을 표하겠어요. 저도 기혼 부인이 되면 딱 그만큼 심지를 굳게 가질게요. 제 친구들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요. 그럼 가슴 아픈 여러 일들을 피하게 되겠죠." (p.77~78)


책을 읽는 동안 잊어버렸었는데, 메리의 결혼관을 이렇게 서두에 말해두었다. 메리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결혼이란 서로가 서로를 기만하는 거래라고 생각하기에 그녀는 그 거래를 훌륭히 해내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그랜트 부인의 대화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행복하게 살기에 그렇게 결혼을 못 시켜 안달인 사람이 많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결혼이 행복하다고만 말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을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비슷하다.


나는 영악하지만 메리의 행동에 오히려 공감하는 바였다. 내가 닳고 닳아서 그런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가난한 성직자, 아니면 재산은 있어도 그 재산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도전이나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에드먼드에게 '성직자'가 아니면 안되냐고 하는 그녀를 나는 이해한다. 도시에서 온 메리와 헨리 남매의 눈에 에드먼드와 패니의 삶이 좋게 보일 리는 없는 것이다.


시골의 삶을 동경하여 귀농을 했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거나 실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본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시골의 삶이다. '돈'이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다른 여자들이 무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너는 주목받고 칭찬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던가."(p.315)


메리는 패니를 정확하게보았다. 물론 패니가 처한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원래 그녀의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패니는 비록 노리스 이모의 잔소리와 미움, 구박을 받고 있을지언정 자신의 집에서 나와 이모 집에서 살게 된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 환경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나는 자주 느껴왔다. 패니가 이모집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그 많은 동생들을 돌보며 자랐다면 그녀의 사려깊은 생각과 처신들은 그다지 형성되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안 그럴수도 있지만)


패니는 이모집에서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던 것 같다. 노리스이모가 사랑해마지 않는 언니들을 제쳐두고 자신의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인물이 그 정도 눈치가 없을 리가 없다.


패니의 행동은 자신감 없고, 마음은 자존감 낮고, 거기에 몸마저 허약했다. 그런 패니를 잘 챙겨주었던 에드먼드도 그녀를 여자로서 느끼지는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나라도 메리 같은 여자에게 반할 것 같다. 물론 메리의 사고방식에 깜짝 놀란 에드먼드가 패니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은 좀 의외였다.


노리스이모는 지금 말로 하자면 '가스라이팅'을 저지른 사람이 아닐까?


"분수도 안 지키고 제 본분을 벗어나 터무니없는 일을 하면서 어리석게 구는 사람들 얘기를 하다 보니 네게 조언을 하나 해주는 게 옳겠다는 생각이 든다, 패니. 네가 우리 누구와도 함께 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제발 부탁이고 간곡히 바라는데, 너무 나서서는 절대로 안 된다. 네가 네 사촌 언니들이라도 되는 양 함부로 말하면서 네 생각을 밝히면 안 돼. 우리 러시워스부인이나 줄리아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런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내말 명심해. 어느 곳을 가든 네가 제일 미미하고, 네 순서가 제일 마지막이라는 걸 잊지 마. 물론 크로퍼드 양은 목사관이 제집인 양 편안한 태도를 보이겠지. 하지만 네가 그녀의 자리를 차지해선 안 돼. 그리고 밤에 돌아올 때 말인데, 에드먼드가 바라는 시간만큼만 그 댁에 머물러야 한다. 결정을 그 애에게 맡겨"


“네, 이모, 딴생각은 전혀 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혹시 비가 온다면 말이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여, 내 평생 오늘처럼 비가 금방이라도 퍼부을 것 같은 험한 날씨는 본 적이 없구나, 어쨌든 혹시 비가 온다면 너 스스로 알아서 최대한 잘 해결해야 한다. 너를 위해 마차를 보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나는 오늘 밤 분명히 집에 안 돌아갈거야. 나 때문에 마차가 나갈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비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준비를 철저히 해 가거라."


조카딸은 이모의 말이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노리스 이모가 생각하는 만큼이나 안락하게 지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p.350~351)


다행스럽게도 패니는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로서는 패니의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성격이든 태도든 그렇지 않고 그녀의 생각이든간에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이라면 역경을 이겨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면의 변화라도 보일텐데 패니에게서는 그런 점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갔을 때 자기 식구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3부에 넘어가면 책의 내용은 급한 마무리가 된 듯하다. 에드먼드가 메리에게서 패니에게로 마음이 옮겨가는 과정을 오롯이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그들의 결혼으로 귀결된다. 헨리와 마리아가 사랑의 도피를 한 후 파경을 맞는 과정도 그렇다. 줄리아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이츠 씨와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도 그렇다. 이야기를 마구 풀어놓았다가 급하게 거둬들이느라 앞에 비해 지나치게 생략된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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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트와 그림자들 - 2022 볼로냐 라가치상 오페라프리마 수상작
마리옹 카디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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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고 나면 제목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표지가 보이게 전시된 그림책은 정말 행운이다. 그렇지 않고 책등만 보게 되면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는 그림책이 많다. 그런 점에서 온라인 서점은 표지 그림을 보면서 책을 선택하게 되니 나름 그것도 장점이긴 하다. (오프라인에서야 당연히 내용도 볼 수 있겠지만)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책의 제목이 사실 그닥 눈길을 끄는 제목은 아니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림책의 핵심 내용을 제목에다 써버리면 그 또한 책을 읽는 맛이 사라져버리니 제목을 잘 짓는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그림책의 표지를 보고 나는 이 책을 골랐다. 아리에트는 누군지 모르겠는데 물에 비친 소년의 얼굴과는 다른 모습에 눈길이 갔다. 머리모양은 좀 비슷한 것 같기고 하다.


이 그림책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옛날에 사자가 살았어요. 

사자는 사냥을 많이 하고, 많이 먹고, 많이 자다가

어느날 죽었어요. 그리고 그림자만 홀로 남겨졌답니다. 


늙은 사자의 평온한 죽음과는 대비적으로 물 속에 비친 사자는 젊고, 강단이 있어보이고, 동물의 왕 같은 면모를 보인다. 죽음 뒤에 그림자만 남아 돌아다닌다는 것이 참 기발한 상상인 것 같다. 사자의 그림자는 다른 주인을 찾아다니다 아리에트의 생활을 지켜본 다음 아리에트의 그림자가 되기로 한다. 아, 아리에트는 저 소년이었구나. 그렇다면 그림자....가 아니고 그림자들...인 이유는??


학교에 가는 아리에트를 뒤따라간 사자의 그림자는 아리에트의 그림자를 쫓아내고 자신이 아리에트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하교로 간다. 그날따라 아리에트는 자기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거칠어진 느낌을 받는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얼굴로 준비를 하던 아리에트였기에 그가 그날 하루 학교에서 벌인 일들은 확실히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리에트는 사자의 기운을 받아 활기차고 신나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 다음날 사자는 더욱 신이 나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리에트는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더 확대되고 더 거침없어지자 '피곤함'을 느낀다. 


아리에트와 같은 느낌을 받았던 때가 있다. 나의 평소 성격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커피와 재미있는 책 한권이면 충분히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하루종일 입 한번 떼지 않고 있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때도 많다. 하루 세끼 굳이 챙겨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을 때도 많다. '나' 혼자 일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행동들인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그런 내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평소의 나보다 오버해서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상황상 그렇게 해야만 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내 속의 나'가 하고 싶어하는 행동과는 반대되는 행동이다보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럴 때 나는 집으로 돌아와, 혹은 카페 같은 곳에 가서 '평소의 나'로 돌아간다. 이게 릴렉스이고 이게 나를 다시 충전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만이 '나'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봤던 영화 '인사이드아웃'도 떠오른다. 내 안에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여럿 있다.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적절한 나를 발동시켜야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필수적인 여건이다. 눈치도 좀 챙길 줄 알아야 하고, 스트레스도 확 날려버릴 수 있어야 하고, 신중하게 고민하고 생각도 해야 한다.


그림자라는 특이한 소재로 내 행동의 여러 면을 생각하게 해 준 그림책이다. 거기에 페이지 페이지마다 작은 볼거리가 곳곳에 숨어있는 그림책이어서 그걸 찾는 재미도 있다. 색감이나 무늬의 사용도 다채로워서 그림책을 보는 눈이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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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17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표지그림 진짜 좋은데요. 그림책의 아이디어도 좋고.... 도서관 가는 날에 한번 살펴봐야겠어요. 내가 가진 또 다른 얼굴은 뭐가 있나 생각 좀 해보면서요

하양물감 2022-06-17 15:5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표지보고 골랐어요.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는 이야기예요^^
너무 평범하잖아요.
 
유월의 종이비행기 - 2022 문학나눔 선정 도서 마주별 고학년 동화 4
최은영 지음, 김소희 그림 / 마주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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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이니 사과탄이니 하는 것이 학교 안에서 터지고 전경, 백골단에 대항하여 쇠파이프 들고 앞장서던 선배들, 동기들도 기억난다. 내가 대학생이던 그 시절 나는 정치적 행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학생이었다. 당시 친구였던 ㅈ 이 나를 꽤나 비판했었다. 국가의 횡포에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우리 하나하나가 힘을 합쳐 한목소리를내야 한다며 …


이 책은 어린이책이지만 나의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하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단어들과 광주항쟁과 유월민주화투쟁 등이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는 많이 낯설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꽤 많아보인다. (아니 그런 것까지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알려주며 읽을 필요까지는 없는 것일수도)


누런 갱지에 인쇄된 가정통신문, 학교에 가져가기 위해 모으던 폐지와 빈병, 국민학교라 불리던 그 시절이다. 굴다리 아래 '할매식당'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동규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동규는 부모님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는 동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아빠는 재혼을 해서 다른 집에서 산다. 아빠는 동구더러 함께 살자고 했지만, 동규는 가지 않는다. 새엄마라고 불러야 할 지 아주머니라고 불러야 할지도 헷갈리는 그 분과 함깨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동규는, 종이비행기를 자주 접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할머니는 동규가 비행기 접는 것을 꺼려한다. 동규 역시 자신이 무의식중에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게 왜인지는 잘 모른다. 할머니의 반응으로 볼 때 '종이비행기'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유월의 종이비행기'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동규의 학급에는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민석이라는 아이가 있다. 동네에서 제일 큰 병원의 병원장 아들이다. 민석이는 반 아이들을 자기 수하처럼 부린다. 그 중에 승우라는 아이를 특히 많이 괴롭히는데, 승우는 늘 그런 민석이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반 아이들은 승우를 유달리 괴롭히는 민석이를 말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게 했다가는 그 불똥이 자기에게 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규도 마찬가지다. 동규는 남의 일에는 일체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도 튀지 않게 지낸다. 그런 아이들과는 달리 미진이는 이 상황을 바로 잡아보려고 애쓴다. 반 아이들이 함께 해주면 좋겠지만 언제나 미진이 혼자이다. 선생님은 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눈치이다. (아니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걸까?)


동규집에는 준희라는 대학생이 하숙을 하고 있다. 할머니는 유독 준희에게 신경을 쓰는데 늦게 다니거나 하면 걱정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동규 엄마의 친구라는 사람이 찾아오는데, 동규는 그동안 궁금하지 않았던 엄마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할머니는 동규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빠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동규가 명동에 잇는 아빠에게 가다가 데모 현장을 보게 된다. 아빠의 도움으로 집으로 온 동규는 준희누나가 백골단에게 쫓겨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광주의 이야기를 끌고 들어온다. 대통령의 독재로 인해 무고한 광주시민을 무참히 짓밟았던 그때의 이야기를. 수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무엇이 변했냐며 회의적인 사람들과,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때처럼 당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이 행동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6월 항쟁은 그렇게 타오른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동규의 시점에서 동규와 같은 나이의 어린이 시점에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독재'를 끄집어낸다. 친구들 사이에서 군림하는 민석이의 행동에 아무도 반발하지 않고 나만 안 당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몸을 사리던 아이들이 모두 함께 나서 대항하자 민석이도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이미 그런 정치적 경험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마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다면 그들이 자라 사회로 나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근 정치적 상황을 보면 우려가 되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자기 이익이 더 우선인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까? 이 책은 아이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그들이 하나되어 움직일 때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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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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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고 하면 그리스로마신화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실 그것도 제대로 읽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양신화와 그리스로마신화, 그리고 우리 신화에 이르기까지 비교를 하면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이 책은 역시 독서동아리에서 읽게 된 책이다. 개인적인 관심사가 있어서 여러 신화나 설화를 읽고 있는데 동아리활동을 하며 읽게 되면 다시 꼼꼼하게 읽는다. 이번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동양사람이든 서양사람이든 어치피 동일한 사람이다보니 비슷한 상상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삶의 방식이나 생각의 차이는 같으면서 다른 것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동양신화와 서양신화는 같은 듯 다른 이야기이다. 신화에는 인류 공통의 생각이 담겨있으면서 각 민족의 독특한 사유 방식이 담겨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만물 중에서도 인간을 가장 으뜸으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과 동물이 섞여있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나타내었다. 반명 고대 동양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높아 자연에 가까운 동물을 인간보다 신성시하였고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로마신화에 비해서는 성스러운 존재를 동물로 표현한 것이 많은 편이다. 이 차이를 신화를 읽어가는 동안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동양의 신화 중에서 중국의 신화만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중국 신화 속에 중국 신화 뿐만 아니라 동양의 여러 민족의 신화가 함께 담겨 있으므로 중국신화를 동양신화라고 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책에서 좀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다. 중국신화를 동양신화라고 본다면 그냥 '동양신화'라는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면 되는데, '동양신화'라고 했다가 '중국신화'라고 했다가 왔다갔다 하는 통에 '동양신화'를 읽고 있는지 '중국신화'를 읽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중국이 모든 것을(동양의 것 뿐만 아니라 서양의 것까지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터라 그게 더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예 동양신화라는 틀 안에 중국신화를 포함해서 이야기하면 더 좋았을텐데, 중국신화라는 틀 안에 동양신화를 집어넣은 듯 하여 그건 내 마음에서 갈라두었다. 저자는 당연히 한국신화와 비교하거나 후대의 중국문화와 한국문화의 상관관계를 살폈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여기서 좀더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여신'에 대한 관점이다. 남신 중심의 서술을 지양하고 여신의 원해 자리를 찾아주려고 노력한 점이 곳곳에 보인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여전히 부족(^^)해보이지만 말이다.

크게 11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부 하늘과 땅이 열리고 사람이 생겨났다, 2부 창조와 치유, 죽음과 사람을 주관하는 여신들, 3부 천상과 지상을 지배한 큰산들, 4부 자연계의 신들, 5부 문명의 창시자들, 6부 전쟁과 모험 그리고 영웅들, 7부 시조 탄생 신화와 민족의 성립, 8부 성군과 폭군의 시대, 9부 먼 곳의 이상한 나라, 괴상한 사람들, 10부 신기하고 별난 사물들의 세계, 11부 낙원과 지하 세계가 그것이다.

신들의 지위나 역할이 시대에 따라 변하거나 중첩되기도 하여 같은 내용일 자주 되풀이되는데, 앞선 내용을 은근슬쩍 복습할 수 있다 생각하면 괜찮다.

세계 각 민족에게는 저마다 나름의 창조신화가 있는데 대부분 혼돈으로부터 창조되었다고 한다. "암흑과 혼돈은 '인격신'의 모습으로 표현되고는 하는데 신화시대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사람에 빗대어 '의인화'하여 설명하기를 좋아했다"(P.25)고 한다. 그러므로 신화는 자연 현상을 인간의 행동과 성격에 빗대어 만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혼돈은 세상의 중앙을 다스리는 임금이 되었고 남쪽 바다를 다스리는 숙과 북쪽 바다를 다스리는 홀이 있었다. 숙과 홀은 '시간'이면서 '인간'을 상징한다. 혼돈이 숙과 홀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혼돈의 시대가 시간이 지배하는 시대이자 인간이 지배하는 역사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혼돈 속에서 태어난 거인이 죽음으로써 세상이 만들어어지는 방식을 신체화생설 혹은 거인화생설이라고 부른다. 거인이 죽어서 천지자연을 이룬다는 이야기는 동양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비슷한 이갸기가 많다. 그러나 동양신화만의 특징을 찾아보자면, '절대적인 창조주'가 없다는 것이다. 혼돈으로부터의 천지창조는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신체화생설일지라도 동양신화는 생태적인 순환의 과정을 나타낸 것이라면 서양신화는 '최초의 희생', '최초의 살해' 등 의도적인 작용에 의해 세상이 생겨났다고 본다. 자연과 인간의 존재 원리를 '상생과 조화'에서 찾는 동양과 '대립과 극복'에서 찾는 서양의 차이기도 하다. 또한 동양은 거인의 몸이 통째로 변하는 것과 달리 서양은 신체를 절단하고 분리하여 자연으로 변한다. 이것에서도 차이를 알 수 있는데 동양의 통합적, 전일적 사고방식과 서양의 분석적, 논리적인 사고 방식이 그것이다. (P.42~43 요약)

동양신화에서 인류의 창조는여신 여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간이 흙에서 비롯되었다거나 여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운명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생식능력에 대한 고대인의 사유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여와는 왜 흙으로 인간을 빚었을까? 이것은 신석기 시대에 토기를 제작했던 데서 비롯되엇을 수 있다. 흙으로 그릇을 만들거나 사물을 밎어낼 수 있게 되자 자신을 읽으로 빚어내는 신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각처에는 비슷한 내용의 홍수 신화도 전해진다. 홍수 신화의 기본 내용은 대개 홍수로 세상이 휩쓸려간 뒤 극소수의 인간만이 살아남고 이들이 다시 인류를 번성시킨다는 것이다.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는 중국 사천 지역에 전해오는 것인데 이런 종류의 신화는 홍수남매혼형 신화라고 한다.

남매혼 신화는 여와신화보다 뒤에 만들어졌다. 여신 여와가 황토를 뭉쳐 인간을 만드는 이야기가 여성이 중심이 되었던 모계사회적인 전통을 보여준다면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이 일부일처를 이룬 가부장적 사회의 인식을 담고 있다. (P.56) 모계 사회에서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로 바뀌면서 독립적인 여신이었던 여와가 남성의 동생 혹은 배우자로 위치가 격하된다.

홍수 신화에도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드러난다. 서양에서는 인간에 대한 분노와 징벌의 의미로 일어난 홍수라면 동양에서는 순수한 자연재해나 신들끼리의 전쟁 탓 등 징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홍수 이후 살아남은 인간도 서양에서는 부부나 가족단위임에 비해서 동양에서는 미혼남녀인 경우가 많다. 신과 인간의 지위를 엄격히 구별했던 서양에 비해 신과 인간의 구별이 느슨하거나 신마저도 자연의 변화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때문이다. 홍수남매혼형 신화는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진 이야기 이유형이다.

여신의 지위가 격하된 것은 서양에서도 동일하다. 아프로디테는 본래 대지를 다스리는 여신이자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지중해 일대에서 널리 숭배되었지만, 후대로 가면 속성은 변질되거나 축소 각색된다. 헤라도 당당한 대지의 여신이었다가 후대에는 제우스의 질투심 많은 부인이 된다.

여와 창조신화에서는 인간이 가축 뒤에 창조되기는 하지만, 인간 이후에 곡식이 창조된다. 인간을 창조의 궁극적 목적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이는 수렵이나 목축보다 뒤늦게 농업이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또하나의 여신은 서왕모이다. 서왕모는 죽음의 여신이면서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한나라때에 이르면 거이 영생과 불사의 여신으로만 숭배되는데, 여성에게는 보호자인 남성이 있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관념이 침투한 결과이다.

선녀와 나뭇꾼형 견우 직녀 신화는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와 일본에도 있다. 이 신화는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다. 중국신화에서는 로맨스가 많지 않다. 그리스로마신화를 표준으로 삼아서 보면 로맨스가 없는 것이 이상하지만, 거꾸로 세계 여러 신화를 보면 오히려 로맨스가 많은 그리스로마신화가 예외적인 경우다.

그리스로마신화에는 제우스가 하늘을, 포세이돈이 바다를, 하데스가 지하세계를 맡아 다스렸다. 중국에서는 다섯명의 신이 동, 서, 남, 북, 중앙을 나누어 지배하였는데 이 오방이 단순히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물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이자 작용 원리인 흙, 쇠, 물, 나무, 불, 즉 오행의 의미가 담겨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주를 형성하는 다섯 개의 큰 기운을 신겨화하여 숭배했음을 알 수 있다.

어디까지를 신으로 보아야 할까? 영웅들, 이상하고 신비한 사람들, 신기한 능력을 가진 온갖 사물들도 신화로 볼 수 있을까? 설화와 전설의 영역에서 신화의 영역을 구분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신'이든 '괴물'이든 인간이 두려워했던 '자연 현상'을 극복하고 이겨냈던 사람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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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백만장자 (골드 리커버 에디션) - 푼돈이 모여 어마어마한 재산이 되는 생생한 비법
토머스 J. 스탠리.윌리엄 D. 댄코 지음, 홍정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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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처럼 모으고, 부자들처럼 써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애초에 나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되지 않는 일에 내 에너지를 쏟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절대적인 액수'를 가지고 부자라 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부자는 '풍부한 물질을 소유한 사람들'을 의미하지만 저자는 '증식 자산을 소유하는 데서 더 큰 기쁨을 얻는 사람들'을 부자라고 정의한다. '부자방정식'을 개발하여 개인의 소득에 따라 순재산 기대치를 계산하고 그 기대치보다 높으면 부자라고 한다. 그리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PAW), 기대 이하의 부를 축적한 사람(UAW), 평균 정도의 부를 축적한 사람(AAW)로 나눈다. 물론 여기에는 백만장자들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여기에 '나와 내 이웃'을 대입하면 어느 정도 현재의 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 같다.

'백만장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부모가 부자인지 아닌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백만장자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부유한 가정에서만 백만장자가 나온다고 믿는 평범한 가정 출신의 사람들은 결코 부유해지지 못한다.' (P.38)

부는 축적하는 것이지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게 이 책의 결론인 것 같다. '부'와 '수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증거들을 수없이 나열한다. 저자는 '부는 대개 근면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계획적이고, 자제력 있는 생활 습성'으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중에서도 '자제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에 100% 동의할 수는 없었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부자들이 내가 생각하는 부자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부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조건이 정말 '성실, 근면, 자제력'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얼마나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밝혔듯이 나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저자가 소개하는 백만장자들은 지금 당장 일을 그만 두어도 몇 십년 이상을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현재의 소비 패턴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퇴직이나 은퇴 이후의 삶을 잘 준비한 사람들이라는 말인데, 그런 점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해놓지 못했다. 지금을 사는데도 쫓기듯이 살고 있고 내 집 한 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부모가 가진 '부'에 대한 생각은 자녀들에게도 미친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물려 줄 재산은 없지만 자녀에게 제대로 된 경제관념과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말 부자들은 상류층이라는 지위보다 재정적 독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 역시 이 부분은 상당히 공감한다. '지위'에 맞는 옷차림, 자동차, 집을 갖기 위해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 은퇴 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재정적 독립'을 추구하는 것 말이다. 또 부자들은 자신의 재산에 비해 훨씬 검소한 생활을 한다. 재산이 있는데도 검소하게 사는 사람과, 재산이 없어서 검소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재산이 있음에도 검소하게 산다. 아니 검소하게 살아서 재산을 모은 것인가? 자신의 소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까? 수입에 비해 더 많은 소비를 하는 사람을 우리는 다들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그렇지만 SNS를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소비생활을 우리는 '부러워 하는 시선'으로 더 보지 않는가?

책을 읽는 동안, 어떤 사람이 백만장자인지 수많은 예를 통해, 그리고 통계를 통해 보여준다. 어쩌면 이 책은 지금의 나보다, 이제 막 경제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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