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종이비행기 - 2022 문학나눔 선정 도서 마주별 고학년 동화 4
최은영 지음, 김소희 그림 / 마주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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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이니 사과탄이니 하는 것이 학교 안에서 터지고 전경, 백골단에 대항하여 쇠파이프 들고 앞장서던 선배들, 동기들도 기억난다. 내가 대학생이던 그 시절 나는 정치적 행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학생이었다. 당시 친구였던 ㅈ 이 나를 꽤나 비판했었다. 국가의 횡포에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우리 하나하나가 힘을 합쳐 한목소리를내야 한다며 …


이 책은 어린이책이지만 나의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하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단어들과 광주항쟁과 유월민주화투쟁 등이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는 많이 낯설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꽤 많아보인다. (아니 그런 것까지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알려주며 읽을 필요까지는 없는 것일수도)


누런 갱지에 인쇄된 가정통신문, 학교에 가져가기 위해 모으던 폐지와 빈병, 국민학교라 불리던 그 시절이다. 굴다리 아래 '할매식당'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동규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동규는 부모님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는 동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아빠는 재혼을 해서 다른 집에서 산다. 아빠는 동구더러 함께 살자고 했지만, 동규는 가지 않는다. 새엄마라고 불러야 할 지 아주머니라고 불러야 할지도 헷갈리는 그 분과 함깨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동규는, 종이비행기를 자주 접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할머니는 동규가 비행기 접는 것을 꺼려한다. 동규 역시 자신이 무의식중에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게 왜인지는 잘 모른다. 할머니의 반응으로 볼 때 '종이비행기'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유월의 종이비행기'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동규의 학급에는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민석이라는 아이가 있다. 동네에서 제일 큰 병원의 병원장 아들이다. 민석이는 반 아이들을 자기 수하처럼 부린다. 그 중에 승우라는 아이를 특히 많이 괴롭히는데, 승우는 늘 그런 민석이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반 아이들은 승우를 유달리 괴롭히는 민석이를 말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게 했다가는 그 불똥이 자기에게 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규도 마찬가지다. 동규는 남의 일에는 일체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도 튀지 않게 지낸다. 그런 아이들과는 달리 미진이는 이 상황을 바로 잡아보려고 애쓴다. 반 아이들이 함께 해주면 좋겠지만 언제나 미진이 혼자이다. 선생님은 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눈치이다. (아니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걸까?)


동규집에는 준희라는 대학생이 하숙을 하고 있다. 할머니는 유독 준희에게 신경을 쓰는데 늦게 다니거나 하면 걱정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동규 엄마의 친구라는 사람이 찾아오는데, 동규는 그동안 궁금하지 않았던 엄마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할머니는 동규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빠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동규가 명동에 잇는 아빠에게 가다가 데모 현장을 보게 된다. 아빠의 도움으로 집으로 온 동규는 준희누나가 백골단에게 쫓겨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광주의 이야기를 끌고 들어온다. 대통령의 독재로 인해 무고한 광주시민을 무참히 짓밟았던 그때의 이야기를. 수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무엇이 변했냐며 회의적인 사람들과,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때처럼 당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이 행동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6월 항쟁은 그렇게 타오른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동규의 시점에서 동규와 같은 나이의 어린이 시점에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독재'를 끄집어낸다. 친구들 사이에서 군림하는 민석이의 행동에 아무도 반발하지 않고 나만 안 당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몸을 사리던 아이들이 모두 함께 나서 대항하자 민석이도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이미 그런 정치적 경험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마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다면 그들이 자라 사회로 나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근 정치적 상황을 보면 우려가 되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자기 이익이 더 우선인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까? 이 책은 아이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그들이 하나되어 움직일 때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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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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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고 하면 그리스로마신화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실 그것도 제대로 읽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양신화와 그리스로마신화, 그리고 우리 신화에 이르기까지 비교를 하면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이 책은 역시 독서동아리에서 읽게 된 책이다. 개인적인 관심사가 있어서 여러 신화나 설화를 읽고 있는데 동아리활동을 하며 읽게 되면 다시 꼼꼼하게 읽는다. 이번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동양사람이든 서양사람이든 어치피 동일한 사람이다보니 비슷한 상상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삶의 방식이나 생각의 차이는 같으면서 다른 것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동양신화와 서양신화는 같은 듯 다른 이야기이다. 신화에는 인류 공통의 생각이 담겨있으면서 각 민족의 독특한 사유 방식이 담겨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만물 중에서도 인간을 가장 으뜸으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과 동물이 섞여있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나타내었다. 반명 고대 동양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높아 자연에 가까운 동물을 인간보다 신성시하였고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로마신화에 비해서는 성스러운 존재를 동물로 표현한 것이 많은 편이다. 이 차이를 신화를 읽어가는 동안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동양의 신화 중에서 중국의 신화만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중국 신화 속에 중국 신화 뿐만 아니라 동양의 여러 민족의 신화가 함께 담겨 있으므로 중국신화를 동양신화라고 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책에서 좀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다. 중국신화를 동양신화라고 본다면 그냥 '동양신화'라는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면 되는데, '동양신화'라고 했다가 '중국신화'라고 했다가 왔다갔다 하는 통에 '동양신화'를 읽고 있는지 '중국신화'를 읽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중국이 모든 것을(동양의 것 뿐만 아니라 서양의 것까지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터라 그게 더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예 동양신화라는 틀 안에 중국신화를 포함해서 이야기하면 더 좋았을텐데, 중국신화라는 틀 안에 동양신화를 집어넣은 듯 하여 그건 내 마음에서 갈라두었다. 저자는 당연히 한국신화와 비교하거나 후대의 중국문화와 한국문화의 상관관계를 살폈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여기서 좀더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여신'에 대한 관점이다. 남신 중심의 서술을 지양하고 여신의 원해 자리를 찾아주려고 노력한 점이 곳곳에 보인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여전히 부족(^^)해보이지만 말이다.

크게 11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부 하늘과 땅이 열리고 사람이 생겨났다, 2부 창조와 치유, 죽음과 사람을 주관하는 여신들, 3부 천상과 지상을 지배한 큰산들, 4부 자연계의 신들, 5부 문명의 창시자들, 6부 전쟁과 모험 그리고 영웅들, 7부 시조 탄생 신화와 민족의 성립, 8부 성군과 폭군의 시대, 9부 먼 곳의 이상한 나라, 괴상한 사람들, 10부 신기하고 별난 사물들의 세계, 11부 낙원과 지하 세계가 그것이다.

신들의 지위나 역할이 시대에 따라 변하거나 중첩되기도 하여 같은 내용일 자주 되풀이되는데, 앞선 내용을 은근슬쩍 복습할 수 있다 생각하면 괜찮다.

세계 각 민족에게는 저마다 나름의 창조신화가 있는데 대부분 혼돈으로부터 창조되었다고 한다. "암흑과 혼돈은 '인격신'의 모습으로 표현되고는 하는데 신화시대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사람에 빗대어 '의인화'하여 설명하기를 좋아했다"(P.25)고 한다. 그러므로 신화는 자연 현상을 인간의 행동과 성격에 빗대어 만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혼돈은 세상의 중앙을 다스리는 임금이 되었고 남쪽 바다를 다스리는 숙과 북쪽 바다를 다스리는 홀이 있었다. 숙과 홀은 '시간'이면서 '인간'을 상징한다. 혼돈이 숙과 홀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혼돈의 시대가 시간이 지배하는 시대이자 인간이 지배하는 역사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혼돈 속에서 태어난 거인이 죽음으로써 세상이 만들어어지는 방식을 신체화생설 혹은 거인화생설이라고 부른다. 거인이 죽어서 천지자연을 이룬다는 이야기는 동양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비슷한 이갸기가 많다. 그러나 동양신화만의 특징을 찾아보자면, '절대적인 창조주'가 없다는 것이다. 혼돈으로부터의 천지창조는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신체화생설일지라도 동양신화는 생태적인 순환의 과정을 나타낸 것이라면 서양신화는 '최초의 희생', '최초의 살해' 등 의도적인 작용에 의해 세상이 생겨났다고 본다. 자연과 인간의 존재 원리를 '상생과 조화'에서 찾는 동양과 '대립과 극복'에서 찾는 서양의 차이기도 하다. 또한 동양은 거인의 몸이 통째로 변하는 것과 달리 서양은 신체를 절단하고 분리하여 자연으로 변한다. 이것에서도 차이를 알 수 있는데 동양의 통합적, 전일적 사고방식과 서양의 분석적, 논리적인 사고 방식이 그것이다. (P.42~43 요약)

동양신화에서 인류의 창조는여신 여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간이 흙에서 비롯되었다거나 여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운명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생식능력에 대한 고대인의 사유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여와는 왜 흙으로 인간을 빚었을까? 이것은 신석기 시대에 토기를 제작했던 데서 비롯되엇을 수 있다. 흙으로 그릇을 만들거나 사물을 밎어낼 수 있게 되자 자신을 읽으로 빚어내는 신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각처에는 비슷한 내용의 홍수 신화도 전해진다. 홍수 신화의 기본 내용은 대개 홍수로 세상이 휩쓸려간 뒤 극소수의 인간만이 살아남고 이들이 다시 인류를 번성시킨다는 것이다.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는 중국 사천 지역에 전해오는 것인데 이런 종류의 신화는 홍수남매혼형 신화라고 한다.

남매혼 신화는 여와신화보다 뒤에 만들어졌다. 여신 여와가 황토를 뭉쳐 인간을 만드는 이야기가 여성이 중심이 되었던 모계사회적인 전통을 보여준다면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이 일부일처를 이룬 가부장적 사회의 인식을 담고 있다. (P.56) 모계 사회에서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로 바뀌면서 독립적인 여신이었던 여와가 남성의 동생 혹은 배우자로 위치가 격하된다.

홍수 신화에도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드러난다. 서양에서는 인간에 대한 분노와 징벌의 의미로 일어난 홍수라면 동양에서는 순수한 자연재해나 신들끼리의 전쟁 탓 등 징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홍수 이후 살아남은 인간도 서양에서는 부부나 가족단위임에 비해서 동양에서는 미혼남녀인 경우가 많다. 신과 인간의 지위를 엄격히 구별했던 서양에 비해 신과 인간의 구별이 느슨하거나 신마저도 자연의 변화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때문이다. 홍수남매혼형 신화는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진 이야기 이유형이다.

여신의 지위가 격하된 것은 서양에서도 동일하다. 아프로디테는 본래 대지를 다스리는 여신이자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지중해 일대에서 널리 숭배되었지만, 후대로 가면 속성은 변질되거나 축소 각색된다. 헤라도 당당한 대지의 여신이었다가 후대에는 제우스의 질투심 많은 부인이 된다.

여와 창조신화에서는 인간이 가축 뒤에 창조되기는 하지만, 인간 이후에 곡식이 창조된다. 인간을 창조의 궁극적 목적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이는 수렵이나 목축보다 뒤늦게 농업이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또하나의 여신은 서왕모이다. 서왕모는 죽음의 여신이면서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한나라때에 이르면 거이 영생과 불사의 여신으로만 숭배되는데, 여성에게는 보호자인 남성이 있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관념이 침투한 결과이다.

선녀와 나뭇꾼형 견우 직녀 신화는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와 일본에도 있다. 이 신화는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다. 중국신화에서는 로맨스가 많지 않다. 그리스로마신화를 표준으로 삼아서 보면 로맨스가 없는 것이 이상하지만, 거꾸로 세계 여러 신화를 보면 오히려 로맨스가 많은 그리스로마신화가 예외적인 경우다.

그리스로마신화에는 제우스가 하늘을, 포세이돈이 바다를, 하데스가 지하세계를 맡아 다스렸다. 중국에서는 다섯명의 신이 동, 서, 남, 북, 중앙을 나누어 지배하였는데 이 오방이 단순히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물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이자 작용 원리인 흙, 쇠, 물, 나무, 불, 즉 오행의 의미가 담겨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주를 형성하는 다섯 개의 큰 기운을 신겨화하여 숭배했음을 알 수 있다.

어디까지를 신으로 보아야 할까? 영웅들, 이상하고 신비한 사람들, 신기한 능력을 가진 온갖 사물들도 신화로 볼 수 있을까? 설화와 전설의 영역에서 신화의 영역을 구분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신'이든 '괴물'이든 인간이 두려워했던 '자연 현상'을 극복하고 이겨냈던 사람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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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백만장자 (골드 리커버 에디션) - 푼돈이 모여 어마어마한 재산이 되는 생생한 비법
토머스 J. 스탠리.윌리엄 D. 댄코 지음, 홍정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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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처럼 모으고, 부자들처럼 써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애초에 나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되지 않는 일에 내 에너지를 쏟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절대적인 액수'를 가지고 부자라 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부자는 '풍부한 물질을 소유한 사람들'을 의미하지만 저자는 '증식 자산을 소유하는 데서 더 큰 기쁨을 얻는 사람들'을 부자라고 정의한다. '부자방정식'을 개발하여 개인의 소득에 따라 순재산 기대치를 계산하고 그 기대치보다 높으면 부자라고 한다. 그리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PAW), 기대 이하의 부를 축적한 사람(UAW), 평균 정도의 부를 축적한 사람(AAW)로 나눈다. 물론 여기에는 백만장자들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여기에 '나와 내 이웃'을 대입하면 어느 정도 현재의 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 같다.

'백만장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부모가 부자인지 아닌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백만장자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부유한 가정에서만 백만장자가 나온다고 믿는 평범한 가정 출신의 사람들은 결코 부유해지지 못한다.' (P.38)

부는 축적하는 것이지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게 이 책의 결론인 것 같다. '부'와 '수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증거들을 수없이 나열한다. 저자는 '부는 대개 근면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계획적이고, 자제력 있는 생활 습성'으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중에서도 '자제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에 100% 동의할 수는 없었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부자들이 내가 생각하는 부자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부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조건이 정말 '성실, 근면, 자제력'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얼마나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밝혔듯이 나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저자가 소개하는 백만장자들은 지금 당장 일을 그만 두어도 몇 십년 이상을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현재의 소비 패턴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퇴직이나 은퇴 이후의 삶을 잘 준비한 사람들이라는 말인데, 그런 점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해놓지 못했다. 지금을 사는데도 쫓기듯이 살고 있고 내 집 한 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부모가 가진 '부'에 대한 생각은 자녀들에게도 미친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물려 줄 재산은 없지만 자녀에게 제대로 된 경제관념과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말 부자들은 상류층이라는 지위보다 재정적 독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 역시 이 부분은 상당히 공감한다. '지위'에 맞는 옷차림, 자동차, 집을 갖기 위해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 은퇴 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재정적 독립'을 추구하는 것 말이다. 또 부자들은 자신의 재산에 비해 훨씬 검소한 생활을 한다. 재산이 있는데도 검소하게 사는 사람과, 재산이 없어서 검소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재산이 있음에도 검소하게 산다. 아니 검소하게 살아서 재산을 모은 것인가? 자신의 소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까? 수입에 비해 더 많은 소비를 하는 사람을 우리는 다들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그렇지만 SNS를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소비생활을 우리는 '부러워 하는 시선'으로 더 보지 않는가?

책을 읽는 동안, 어떤 사람이 백만장자인지 수많은 예를 통해, 그리고 통계를 통해 보여준다. 어쩌면 이 책은 지금의 나보다, 이제 막 경제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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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 - 안전거리와 디테일이 행복한 삶의 열쇠다
장샤오헝 지음, 정은지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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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목차"가 다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목차만으로도 충분히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잘 드러난다. 사회성 좋은 사람들은 어떤 처세법을 갖고 있을까?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지만, 내가가장 관심 깊게 본 내용은 '직장'에서의 관계이다. 아무래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나 역시 직장 내 관계 때문에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의 규칙과 제도는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보호막이 아니다. 제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가장 기본적인 업무량을 완성한다고 해서 아무 걱정 없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위기감을 상실하면 조만간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될지도 모르는 곳이 회사다.

p.115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성격과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하나로 통일시키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강하다보니 단체 생활이나 직장 내 위계 질서에 따른 행동의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 어느 것 하나 통용되지 아니한다. 실제로 언제 그만 두고 갈지 모르는 부하직원을 데리고 뭔가를 도모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위의 글처럼 제시간에출퇴근해서 자기 업무량만이라도 다 하고 가주면 더 바랄것도 없겠다 싶을 때도 있다. '자기 업무량'에 대한 관점의 차이, 시각의 차이가 엄연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업무가 있을 때, 나는 A, A', A-, A+, A1, A2, A3....등이 모두 A라고 생각하는데 A만 A라고 생각하는 직원이 있을 때 나와는 부딪힌다. 즉, 나는 A라는 업무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를 하나의 업무로 보는데 그와 달리 명시된 업무만을 업무로 보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가장 기본적인 업무일 뿐이다. 그러나 일을 잘하는 사람은 그 업무의 전체를 볼 줄 안다. 그래서 자기가 맡은 바 일을하기 위해서는 전후 사정을 모두 살펴 일을 하니 실수가 적고 완성도가 높다. 누군가가 이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동료나 상사가 그 일을 마무리하거나 떠맡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주어진 일을 잘 하는 것과 규정을 어기지 않고 경력만 쌓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후자는 본질적으로 대충대충 일하면서 시간만 떼운 직원들이다. 이들은 분명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내세울만한 어떤 성과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길 수 있겠는가? 소위 잘 한다는 데는 어떤 기준이 있다. 규정된 범위 내에서 주어진 일을 안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상사는 물론, 본인도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결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p.116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성과를 쌓지는 못한다. 업무를 맡은지 몇 년이 되어도 승진하지 못하는 일이 이런데서 나타난다.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는 굳이 승진 같은거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신경 쓰고 싶지 않고, 딱 자기 할 일만 하고 월급 따박따박 받는 걸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뭔가를 가르쳐주고자 해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자기계발을 통해 성과를 쌓는 일이 본인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말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훌륭한 직원은 항상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을 때, 이미 생각을 끝냈습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미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고 있을 때, 이미 잘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하고 있을 때, 이미 가장 잘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똑같이 잘할 때, 당신은 이미 노선을 바꿔서 달리고 있습니다.”

P.127

맞다. 맞는 말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어떤지 모르겠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직원들 만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교육이 더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우리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쭉쭉 뻗어나가는 그들을 부러워만 할 일인가?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일하는 곳은 꼭 필요하지 않다면 함부로 다가가지 마라. 설령 일이 있어 상대방의 사무실에 가야 한다 하더라도 항상 예의를 지켜야 한다. 다른 사람의 책상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다른 사람의 컴퓨터 모니터를 몰래 보지 마라. 당신이 선의에서 한 행동이라 할 지라도 동료를 대신해서 일을 끝내서는 안 된다. 당신이 호의를 베풀었다고 해도 상대방은 감흥이 없을 수 있고, 또 상대방이 호의를 받아들일지 말지도 알 수 없다. 당신 생각에는 선의라고 여기지만 상대방은 오히려 당신의 의도를 의심할 수도 있다.

P.142

얼마 전에 겪은 일이다.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신의 영역을 넘는 것이란다. 나도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직원의 업무 중에 내가 손 한번 뻗으면 되는 일이 있어서 그 일을 대신 처리했는데, 상대 직원이 나에게 엄청 화를 낸 것이다. 나는 도와준다고 한 것인데, 그는 내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라고, 자기 일을 손댄 것이라고 화를 낸 것이다. 나의 잘못을 인정한다. 그래. 내가 선을 넘었구나.

그런데 어디까지가 영역 침범인 것일까? 직장에서의 일이라는 것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하나를 하면 그 다음 것을 해야 하는 순서가 있고, 앞엣 것이 되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일이 있다. 결국은 뒤에 있는 내가 갑갑해서 손을 댄다. 자신의 일에 손을 댔다고 화를 내기 전에 저 사람이 왜 했을까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화를 내기 전에 고민하고 확인해봐야 한다. 물론 말도 없이 일을 처리해버린 나의 잘못도 있다. 그렇지만 '화'부터 내면 소통은 사라진다. 서로 이유를 묻고 다음 번에는 각자 조심할 수 있도록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대뜸 화부터 내버리면 그러한 소통 과정은 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결론은? '일'을 맡기지 않게 된다.

직장에서의 대인관계는 자신의 이익을 보호함과 동시에 동료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야 한다. 갈등에 부딪치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직장 내 우정을 유지하는 데 주의하여야 하며, 일치하는 점은 취하고, 다른 점은 잠시 내려놓는 방식으로 갈등을 희석시켜라.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잃지 마라. 이것이야말로 분수를 아는 직장인의 처세술이다.

P.150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그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바가 많다. 번역서라 그렇겠지만, 책의 예시나 인용 등이 조금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다. 연차 사용 같은 경우 사업장에 막대한 지장을 줄 경우에는 시기 변경을 요청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설명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 해당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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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18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허삼관매혈기를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꽤 오래 전에 들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독서동아리에서 서로 책을 추천하고 그 책을 읽다보니 이렇게 내 손이 가지 않는 책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위화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 이 이야기는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죽음만이 유일한 평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 이야기가 말하는 평등은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재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일을 당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편리함이나 불편함은 개의치않지만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인내력을 잃는다. 작가는 허삼관을 통해서 그러한 '평등'을 이야기한다.

허삼관은 생사(生絲) 공장에서 누에고치 대주는 일을 한다. 할아버지는 허삼관에게 "피를 팔러 자주 가느냐?"고 묻는다. 뼈대가 튼튼하고 건강하다는 증거로 피를 팔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몸이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은 밥도 한 그릇 이상을 먹어야 하고, 성 안에 가서 피도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노동력의 대부분이 몸을 쓰는 일이니 당연히 신체 건강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벌 수 없는 돈을 피를 팔면 벌 수 있어서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피를 팔러 간다는 것이다. 몸이 부실하면 피를 팔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건강을 확인해주는 방법이기도 하고 '돈'을 버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허삼관이 처음 피를 팔러 간 것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후이다. 사람들은 물을 마셔서 피를 묽게 만들어서 양을 늘리고, 혈두에게 뇌물을 주고 피를 팔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피를 팔겠다는 사람은 많고 피가 필요한 사람은 적을 때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팔았으니 그럴 수밖에. 우리가 판 건 힘이라구. 이제 알겠나? 자네 같은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바로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

"어떤 힘이 피에서 나오고, 어떤 힘이 살에서 나오는 건가요?"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우리 집에서 근룡이네 집까지 갈 때는 별로 힘이 들지 않지. 이런게 바로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하지만 자네가 논밭 일을 하거나 백여 근쯤 되는 짐을 메고 성안으로 들어갈 땐 힘을 써야 한단 말씀이야. 이런 힘은 다 피에서 나오는 거라구." (p.31)

허삼관은 처음 피를 판 날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건지를 안 셈이죠. 제가 공장에서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써야죠."(p.33)라고 말한다.

이후 허삼관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가족의 생사가 걸려 있거나 할 때) 피를 판다. 매혈기라 함은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인 것이다. 허삼관은 피를 팔아 번 돈과 일해서 번 돈을 사용할 때 구분을 한다. 피를 팔아 번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허삼관은 장가를 가기로 한다.

허삼관은 '눈 내리는 겨울에 이불 속에서 꼭 껴안고 지낼 만한 여자'로 임분방이라는 아가씨를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결혼은 꽈배기 서시라 불리던 '허옥란'과 하는데, 그녀와 결혼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사주며 환심도 사고 그녀의 아버지에게는 '데릴사위'라도 되겠다고 한다. 허옥란은 하소용이라는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허삼관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들을 셋을 낳는다. 나중에 문제가 된 것은 그녀의 첫째 아들 즉 일락이다. 일락이는 자라면서 점점 하소용의 얼굴을 닮아가는 바람에 허삼관의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허삼관은 일락이가 자기를 닮지 않았지만 이락이, 삼락이와 닮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일락이는 엄마인 허옥란보다 아빠인 허삼관을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허옥란이 도와달라고 할 때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댔지만 허삼관에게는 자기가 먼저 다가가서 이런저런 일을 도왔다. 허삼관은 "일락이는 나를 닮고, 이락이는 당신을 닮았는데 삼락이 저 녀석은 누굴 닮은거지?"라고 하며 일락이를 좋아했다. 그러다, 삼락이가 싸우다가 형들을 불러오게 되고 일락이가 돌로 상대방 아이의 머리를 찍은 후 그 병원비를 물어주는 과정에서 자기 아들도 아닌 일락이가 저지른 일에 왜 자기 돈을 써야하는가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가 그랬어요. 한 번 아버지라고 불러서 대답이 없으면 다시 여러 번 부르라구요. 제가 벌써 네 번이나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대답도 안하고.... 꺼지라고만 하시니.... 그럼....갈래요." (p.98)

일락이더러 자기 아버지를 찾아가라고 했지만, 결국은 허삼관이 피를 팔아서 병원비를 갚아준다. 허옥란의 가구며 살림살이를 가져갔던 방씨는 모두 돌려준다. 허삼관은 임분방을 찾아가 관계를 맺는다. 허옥란이 하소용과의 사이에서 일락이를 낳은 것처럼 자기도 임분방과 같은 일을 해버린 것이다. (이런 걸 평등이라고 해야할까?)

일락이는 계속해서 허삼관이 키우지만, 이락이, 삼락이와는 다르게 대한다. 예를 들면 피를 팔아 번 돈은 이락이, 삼락이에게 쓸 수 있지만 일락이에게는 쓰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관계도 하소용이 죽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극적으로 해소가 된다. 사실 이 장면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허삼관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 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키킬테니..."(p.191)

이야기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로 흘러간다. 허옥란은 중상모략으로 화냥년이 되고 결국 인민재판을 받게 된다. 거리에서 목에 간판을 걸고 벌을 받는 허옥란을 위해 허삼관은 도시락을 싸서 간다. 허삼관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허옥란은 먹을 게 없어 굶주리던 시기에는 아껴둔 쌀로 죽을 해먹이고, 장갑실을 풀어 옷을 해입는 등 살림을 똑부러지게 하는 여성이다. 허삼관이나 허옥란이나 모두 자기 가정을 지키고 건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서민들이다. 중국의 대변혁을 겪으면서도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를 위해서라면 피 한번 더 파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락이가 간염에 걸렸을 때 허삼관은 일락이를 위해 연거푸 피를 판다. 피를 판 돈을 일락이에게 쓰는 것은 할 수 없다던 허삼관이 일락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이 상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연거푸 피를 파는 장면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중국이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옥수수죽을 먹어도 나만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굶주리고 있다는 것에 같이 감내한다. 내 아내가 인민재판을 받아 한길에서 벌을 서고 있어도 그건 들러리일 뿐이라며 그 상황을 또 견뎌낸다. 생산부대에 가게 된 일락이와 이락이에게 피 판돈을 보내고, 생산대장에게 잘 보여서 아들들을 좀 편한 곳으로 보내려고 애를 쓴다. 우리 가족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삶이 행복할 리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들 가족의 안전을 위해 걱정하고 보듬는다. 객관적인 행복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그들이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동안 묘한 감동이 있었다. 피 파는 이야기라고 해서 처음에는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들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들만의 '평등'에 관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제대로 전하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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