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 읽는 여인
해리엇 스콧 체스먼 지음, 임후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메리 커샛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인상파니 뭐니하며 이름이 오르내리긴 했지만, 메리 커샛의 이름은 나에게 각인된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 조금 망설였다고나할까? 앞 표지의 그림을 보고, 이 여자 이야기인가? 하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인상파를 거론할 때 등장하는 수많은 화가들 틈새에서 메리 커샛을 찾아본다. 그녀의 그림은 많은 수가 아기와 함께 있는 여인의 그림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녀의 언니, 리디아를 모델로 한 그림 중에도 아이와 함께 있는 그림이 있긴 한데, 다른 그림에서 느끼는 것과는 달랐다.

자, 책으로 돌아가보자. 메리 커셋은 프랑스에서 화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브라이트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언니 리디아를 모델로 한 몇개의 작품을 그렸다. 이 책은, 리디아의 시각으로 메리커셋을 바라보고 그녀의 연인인 드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메리 커샛과 드가의 러브스토리는 리디아의 주변에 머물 뿐이다. 병을 앓고 있으면서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는 여자, 리디아는 자신의 삶을 동생인 메리 커샛의 그림을 통해 연장한다. 그림의 모델이 되는 일은 고되고 힘든 일이지만 메리 커샛에게는 화가로서의 영감을, 리디아 자신에게는 삶의 연장을 의미했다.

병색이 짙어질수록 리디아는 자신의 삶이 다른 이들처럼 지속될 수 없는 아픔을 포착해내는 동생의 시선을 느낀다. 병으로 몸져 누워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사람은 생각이 많아진다. 리디아 역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수많은 생각에 빠져든다. 그림의 모델로서 시간을 붙잡고 있을 때도 그녀는 그녀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한 마디로 이 소설은 리디아의 생각 속을 헤엄치며 나아간다. 그림을 소재로 하여 그림 속 모델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소설, 대표적으로는 슈발리에의 [진주귀고리소녀]를 생각할 수 있다. 국내에 먼저 번역되어 나름대로 인지도를 높인 슈발리에의 코멘트는 그것을 노린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슈발리에의 소설 속 소녀와는 달리 이 소설 속 리디아는 침대에 누워, 혹은 모델로 움직임을 멈추고 있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일까? 인물들에게서 느끼는 생동감, 극적 장치들은 미흡해보인다. 잔잔하고 조용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대로 리디아에 대한 자료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리디아의 심리 상태를 작가는 상상력으로 복원해낸다. 책을 읽으면서 가끔 나오는 그림은, 그러한 상상력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심심한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중한 우리 명절이야기
강난숙 지음 / 대교출판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당신이 알고 있는 우리의 명절은 몇개나 되나요??
 
나는, 명절이라고 하면, 설날, 추석, 그리고 단오를 포함하여 3대명절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세 명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터였다. 이외에도 더 많은 명절이 있겠지만, 실생활에서 명절 기분을 그나마 느낄 수 있었던 날은 이 세날이 아닐까?
 
그러던 차에, [소중한 우리명절 이야기]를 읽게 되었고 내가 모르던 명절이 참 많았음을 알게되었고 어, 이 날도 명절이라고 얘기할 수 있구나 하고 새로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내가, 이렇게 우리의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고, 이제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겠구나,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날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나의 감상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떤 점을 느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아직 아이가 어린 탓에 아이가 직접 읽어볼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에게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명절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또한 엄마의 할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책으로 알게 된 명절이 많다한들 그것이 실생활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명절이 다 무슨 소용일까?
 




이 책의 장점은, 명절에 대한 설명을 쉽게 풀어놓았다는데 있다기 보다, 명절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10개의 명절을 소개하고 그날의 의미, 그맘때 할 수 있는 놀이, 음식, 관련된 옛 이야기, 그 즈음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행사가 있는지까지 소개를 하여 명절을 고리타분한 옛것으로 느끼지 않고 실생활에서도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컴퓨터 게임이나 텔레비전에 빠져있기 쉬운 아이들에게 우리의 전통놀이를 명절에 따라 (혹은 월별로) 소개하여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고, 음식 소개와 더불어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팁까지 소개하고 있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더불어 외국의 명절 (혹은 행사)을 같이 소개함으로써 시야를 넓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 책이 2002년에 발행된 책이라는 점에서 벌써 5년이나 지나는 동안 우리 명절과 관련한 다른 책들이 많이 나왔겠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만치 잘 짜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단점은, 현대에 있어서의 명절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코너가 없다는 데 있다. 사실 여기 소개된 명절 중에서 나처럼 2-3가지 명절 외에 명절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옛날에는 왜 렇게 많은 날들(달마다 하나씩)을 명절로 기렸는지, 현대에는 이런 명절들이 왜 축소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꼭지, 혹은 생각하기 정도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빠져있지만, 이 책을 읽는 아이에게 부모로서 도와주어야 할 부분이 이 부분이라는 말도 된다. 그리고, 우리의 풍물놀이를 [농악]이라고 표현한 부분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휘 선정에 있어서도 이왕이면 풍물이라 지칭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아, 시누헤...두권의 시누헤 읽기를 드디어 끝냈다. 드디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소설. 어찌 그리 읽히는 게 더딘지, 다 읽어야한다는 책임이 없었다면 다 읽어내지 못했을 것같다. 마치 대하소설 10권짜리는 읽은듯한 느낌이 든다. 방대한 내용이 있다는 것과, 길고 지루한 싸움을 끝냈다는 두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접해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인문서적을 통해 이집트를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기 힘들었다. 파로오의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니라 의사의 길을 가는 시누헤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파라오 중심의 글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선함을 느꼈으나 시누헤라는 인물에 도저히 감정이입이 안되었던 것이다.

 

시누헤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노예이자 하인인 카프카가 더 와닿는 인물이었고 카프카의 처신이 더욱 이해가 가는 편이었다. 혼란과 무질서의 세계에서 시누헤를 붙들어준 것은 파라오도, 그의 신념도, 그가 사랑한 여인들도 아니라 바로 카프카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했고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자였다.

 

그러나, 물론 시누헤의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이집트의 정치적 상황은 물론이고, 이집트의 하층민의 생활, 귀족이나 파라오가 아닌 이들의 삶을 볼 수 있었으니 이 책의 의미는 거기에서 찾아야할 듯하다. 내가 알고 있는 파라오와 다른 파라오의 모습, 신에 집착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개적 비공개적 싸움을 계속해야 했던 파라오의 모습을 보았다. 또, 그러한 귀족사회의 혼란 속에서 이집트 민중들의 가난과, 고통이 어떻게 무시되고 있었는지를 보았다.

 

카프카라는 인물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비록, 그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서 의적처럼 살아간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는 자였다. 시누헤와 카프카가 이야기를 나눌 때, 시누헤는 시종일관 카프카의 무례함과 오만함을 보았지만, 나는 시누헤의 멍청함을 보았다. 노예인 카프카보다도 사회를 보는 눈이 밝지 못했던 시누헤였지만, 자신의 의술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모습만은 본받을만하였다. 그 점조차 없었다면, 시누헤는 의미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 여겨질 정도이다.

 

더군다나, 시누헤가 네페르네페르네페르에게 빠져 가진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부모의 소박한 꿈마저 버려지는 모습을 보앗을 때는 어찌나 분통이 터지던지, 아, 눈먼 남자여~!! 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나마 미네아와의 사랑이 없었다면 한심한 남자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했으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 바로 미네아와의 사건이다. 미로 속의 미노타우로스 신화가 겹쳐지면서 지루했던 시누헤의 여행에 생동감이 넘치는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미네아의 죽음을 뒤로하고 다시 시누헤가 이집트의 일상으로 돌아와서부터 또다시 지루한 여행이 계속되었다. 사실, 전쟁과 관련된 부분이 나와 같은 여성(전쟁이나 싸움에 과심없는, 혹은 한참 유행이었던 시뮬레이션게임애도 흥미가 전혀 없는)들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을듯.

 

그러나, 시누헤가 이집트 귀족의 일상이나, 파라오와 호화로운 생활을 할 때 보여준 권태로움과 지루함에 비해 시신처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악어꼬리술집을 경영하며 곡물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카프카의 생활력은 재미를 더한다. 전체적으로는 끝까지 읽기가 힘든 소설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소설은 파라오의 권력투쟁기도 아니요, 이집트에서 의사로 살아가기 위한 지식과 의술의 향상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아니요, 혼란스러운 이집트에서의 신-아몬과 아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아케나톤의 혁명적 시도도, 마치 정신병자의 행동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그려져 있어 혁명이라고 이름붙이기 민망스러울 정도이다. 마치, 요즘의 정치상황을 보는듯한 느낌도 든다. 사람들이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았을 때는 그게 숙명이려니 생각하고 입 한번 놀리지 못하고 살았지만 귀족과 노예가 다같이 평등하다는 사상과 더불어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자유를 오히려 제대로 누리지 못한채 그때가 좋았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요즘 어른들이 모 대통령시절이 훨씬 좋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느끼는 괴리감과 똑같다. 사실, 언제 우리가 대통령을 놓고 농담을 했고, 대통령이 하는 일에 대놓고 반대를 해봤는가? 그러한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자들이 여전히 설치는 사회, 그 사회의 모습이 이 소설 속에 녹아있었다. 물론 아케나톤의 행적이 모두 이해되는 바는 아니나 적어도 과도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우리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내가 웬만해서는 에세이류나 수필류, 자기고백적인 이야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의외의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제목과 내용요약을 보고 내가 구입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책은 아니다. 그러나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이기에 읽게 되었고, 나는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이 책의 저자, 대니얼 고틀립이 만약, 손자인 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책을 썼다면 이만큼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햇을 것이다. 자기자신의 고통만으로도 숨쉬기 힘들 것 같은 저자가 자신의 손자, 자폐증 진단을 받은 샘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그 고통을 밝은 희망으로 써내려간 메세지다.

만약 내가 고틀립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 자신의 손자에게 닥침 불행까지 보게 되었다면 정말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았을것 같다. 물론 고틀립에게도 위기의 나날이 있엇겠지만, 이 책은 고틀립 자신의 불행보다 손자를 위한 따뜻한 마음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통 속에서 찾아낸 그의 메세지는 그 책을 읽는 부모에게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p.34) 샘,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명심해라. 네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고틀립 자신이 이런 깨달음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그 고통을 뛰어넘는데는 이러한 생각이 한몫햇을 것이다. 앞으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손자에게 남기는 이 메세지는 그래서 더욱 힘을 더한다. 자신이 겪지 못한 아픔을 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의 고통을 뛰어넘은 사람의 메세지는 강한 힘을 가지기 마련이다. 남과 다르다는 것, 이것은 비단 고틀립처럼 육체의, 샘처럼 정신의 다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

(p.102) 지금의 내가 나 자신이 바라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부끄러워한다.

(p.109) 부끄러움을 느낄 때면, 너를 사랑하고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가기 바란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자신이 드러났을 때 맺어지는 친밀감 속에는 놀라운 기회가 숨어있다. 네가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가!

고틀립은 샘의 부모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모 외에 그런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라 생각한다. 부끄러움, 수치, 경멸받은 느낌...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하는가? 이것이 결국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줄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틀립이 샘 뿐만 아니라 샘의 부모에게 남긴 말은 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배려해야하는가를 생각케한다. 아이 싸움이 어른싸움이 되는 일이 너무나 당연해진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고틀립이 전하는 메세지를 들어보자.

(p.147) 우선, 너를 괴롭히는 아이들에 대해 알아야한다. (p.148)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p.148-149) 그런 친구를 만났을 때 피하라는 것은, 검쟁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현명한 아이가 되라는 말이다. (p.149) 그 다음에는, 너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얘기해야한다. (p.150-151) 자기 자식이 못된 아이한테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화가 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분통을 터뜨리기 전에, 먼저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아이를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도와주고 싶다면, 부모는 일단 자신의 분노와 불안을 접어둬야 한다. 아이가 다급한 위험에 처했다면 물론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대화하는 게 우선이다.

우리는, 아이의 상태를 이해하고 아이를 믿어주는 단게는 간과한 채 자신의 문제로 변절시켜 흥분하는 부모를 자주 본다. 얼마전 모대기업회장이 아들을 위한답시고 한 행동을 떠올려보라.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대신하여 싸워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심리상태를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일이다.

책 부분부부느 밑줄 그을 곳이 많은 책이었다. 편지의 형식으로 담담하게 써나가되, 웬만한 이론서를 뛰어넘는 내용을 가진 책. 부모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형의 계절
온다 리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일단 이 책의 제목. 다 읽고났는데도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다. 계절을 어떤 형태, 그것도 구형(구형이라는 말, 어지간해서는 듣기 어려운 단어다.)이란다. 내가 모자란 탓이라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글을 읽어봐도 속시원하게 제목에 대해 언급한 사람이 없다. 정말 나만 모르는건가? ㅠ.ㅠ

내용은, 아, 온다리쿠의 소설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소설임을 눈치챌 만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학교에서의 생활(학교에서의 소문들, 주술의 유행, 사이코같은 선생 등등)은 옛날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그녀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인물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는 몇갈래로 갈라진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각각이 하나씩의 단편같기도 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과 어떤 연관이 있는 인물인가 생각하며 읽게 된다. 조용한 시골마을의 학교에서 퍼지는 소문은, 역시나 듣는 사람에 따라 자기가 듣고 싶은 부분만 확대해서 들음을 보여준다. 이건, 어디서 봤냐면, 유지니아...구나. 유지니아에서 똑같은 사건을 두고 사람마다 다르게 회상하는 이야기가 있었지. 아니나 다를까, 이 책 역시 그녀의 다른 책들과 이래저래 비슷하기도 하고 형식이 닮아있기도 하다. 이제는, 그냥 이런게 온다리쿠다. 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집중해서 읽기에는 별로인것같다. 성과 이름이 각각 사용되어 어떤 장에서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어떤 장에서는 성으로 불리기 때문에 가끔 이 사람은 누구지? 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일본인에게는 그게 자연스럽고 익숙한지 모르겠지만 한국인 독자로서는 헷갈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번역이 직역한듯한 느낌이 드는 문장들이 있어서인지 어색한 문장들도 보여서 더 그랬나보다. 또, 시호와 미호는 같은 인물일까? 아닐까?

온다리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에 항상 어떤 역할을 할 것 같다가 그냥 사라지는, 왜 나왔는지 모를 인물들이 몇몇 있는데, 어김없이 이 소설에서도 등장한다.너무 많은 인물들이 난립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쨌든, 이 소설 속의 아이들은, 여전히(그녀의 다른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들과 전혀 그렇지 못한 평범한 아이로 나누어진다. 가장 평범한 학생(여기서는 미노리)의 생각과 행동은 어쩜 그리도 평범하게 그려졌는지...딱, 나와 내 친구들의 여고시절을 보는듯하다. 그외에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들은 또다시 도코노 일족을 연상시킨다. 아, 온다 리쿠의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먼저 읽었던 다른 소설들이 겹쳐지는 것 같다.

온다리쿠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추천할 생각이 없는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