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제전 - 세계대전과 현대의 탄생 걸작 논픽션 23
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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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13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반란의 에너지와 제물의 죽음을 통해 삶을 찬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에 ‘제물’이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스트라빈스키의 작품과 제1차 세계대전을 비교하며 그 의의를 설명한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른’ 것처럼 전쟁에서는 ‘이름 없는 병사’들이 죽어갔다. 저자는 이 병사들을 ‘제물’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봄의 제전」에서 희생양은 애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영예롭게 기려졌다. 메시지, 음악, 작품의 테마, 안무까지 모든 것이 불편했다. 이 작품은 현대적 반란의 여러 본질적 특징을 담고 있었기에 단편적 관객으로부터는 열광적 참사를 이끌어냈지만, 떠들썩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관객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 주인공들 그 자체보다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훨씬 더 중요한 증거의 원천(p.10~11)이라고 보며 ‘관객’에 대한 묘사를 이어간다. 작품이 공연되었던 그날 밤은 그 시대의 상징이자 20세기의 지표가 되었고 최신식 파리 샹젤리제 극장, 핵심 관계자들의 사상과 의도, 관객의 소란스러운 반응까지 모두 ‘모더니즘’의 발전에서 획기적인 이정표였던 셈이다.


러시아 발레단의 단장이었던 댜길레프는 예술을 구원과 재생의 수단으로 인식했다. 구원은 도덕적 관습과 관습의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러시아를 포함한 서구 문명의 경쟁적이고 자기 부정적인 윤리에 지배되는 우선적 가치들로부터의 해방이었다.(p.65) 예술은 생명력이며, 삶을 붇돋우는 종교적 힘을 지닌다. 그는 예술가의 자율성과 도덕성은 상호 배타적이라고 믿었고, 예술가는 도덕과 무관해야 한다고 보았다. 도덕은 추(醜)의 발명품이며 추의 복수였다. 미(美)를 향한 해방은 에고이즘과 개인적 구원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댜길레프는 예술이 현실을 가르쳐주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관객은 예술적 경험에 중요하다고 보았다. 


19세기의 많은 지식인에게 자아와 사회, 물질계로부터 소원해지는 진짜 원인은 성(性)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중간계급은 쾌락을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으로 해석했고 감각은 죄악이라고 의심받았다. 따라서, 성도덕 쟁점이 현대적 운동을 위해 부루주아적 가치에 맞서는 반란의 매체가 돼야 했다. 동성애자는 반란의 이미지의 중심이 되었다. 무용의 신이라 불렸던 니진스키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대담한 정신, 순수함과 무모함의 조합으로 한 세대 관객 전체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p.71) 이전까지는 시적 영감의 원천이자 숭배의 대상, 공연 예술에서의 주인공으로 여성이 주목받았다면,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갖춘 남자가 각광 받는 시대가 되었다. 


1914년 8월, 대부분의 독일인은 자신들이 개입하게 된 무력 충돌을 정신적 의미로 이해했다. 전쟁은 무엇보다 하나의 관념이지, 독일의 영토 확장을 노린 음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p.156) 전쟁이 발발했을 때 독일인들은 자기들의 “도덕적 우월성”, “강한 정신력”, “도덕적 정당성”을 확신했다.(p.158)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서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민주주의를 위하여 세계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전쟁”이라는 관념이 부상했다. 많은 이에게 전쟁은 천박성, 제약, 관습으로부터의 구원이었고.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전쟁 열기에 사로잡혔다.


일부 젊은이들은 전쟁을 반가운 모험으로 여겼다. 그들은 전쟁을 미래로, 진보로, 혁명으로, 변화로 가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의 성격이 변해감에 따라서 적은 갈수록 추상화되고 영웅은 이름을 상실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무명의 병사로 바뀌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의 중반부가 되면 전쟁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들은 뒤집어진다. 무인지대에서 무더기로 희생자가 된 병사들은 전쟁의 최대 이미지가 되었다. 


무수한 공격에 노출되어 시간이 지나면 병사는 반사작용에 따라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왜 앞으로 나아가는지는 몰랐지만 충성스럽고 성실하며 명예롭게 움직인다.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대의명분’은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병사는 훈련을 통해 몸에 밴 규칙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와 교육, 성장 배경에 의해 주입된 가치 체계에 따라 움직인다. 개전 후 몇 달이 지나자 영웅주의가 빛이 바래고 진 빠지는 소모전에 들어서자 의무라는 개념이 노력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목적이 변하는 지점이다.


19세기 중간 계급의 이상적 도덕률에서 개인적인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사회 조화, 공공복리, 공공선이었다. 개인적인 자제는 사회적으로는 존경받는 태도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공공에 봉사한다는 관념, 즉 의무는 이 계급의 위대한 성취가 됐다.(p.300) 1914년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전쟁에 나간 사람들은 주로 봉사와 의무 관념으로 충만한 중간계급이었다. 이전 전쟁이 왕조 간, 봉건적/귀족적 이해관계, 군주 간 대립으로 시작한 전쟁이었다면, 지금은 역사상 최초의 중간계급 전쟁, 부루주아 전쟁이었다. 의무는 신의가 없고 비열한 외국의 공격에 맞서 조국을 지킨다는 말로 들렸다. 따라서 전쟁 초기에는 이 의무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적인 명령이었다. 


전쟁은 문명의 행진과 진보의 지속에서 거쳐가는 한 단계였고, 문명과 진보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토대로 여겨지는 것에 기반을 뒀다.(p.303)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 의무 관념은 옅어지고, 병사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무너지거나 자제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위기 상황에서 손발이 말을 듣지 않거나 용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1917년이 되자 의무라는 말은 사라진다. 진짜 전쟁은 1918년에 끝났다.


전쟁의 이미지와 어휘는 1920년대 모든 형태의 문화에 스며들었다. 그 시대의 문학, 영화, 광고, 정치까지 청년 숭배에 지배됐다. 전쟁에서 젊은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과 슬픔에 빠진 구세대는 젊은 반항아들에게 딱히 항의하지 않았다. 1920년대의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정치를 멸시하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성과 합리성, 불변성, 신념은 사라지고 운동, 우울증, 신경증만 남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이 나타난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어른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라는 말을 많이 했다. 누군가의 경험은 그 사람의 가치체계와 사고방식을 바꾸거나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 젊은 세대는 외국과 총칼 들고 싸우는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삶이 곧 전쟁이라는 생각을 한다. 국가를 위한 의무와 충성보다 개인의 이익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 정의인가? 


가까운 곳에서 지금도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민간인이 죽음을 당하며 이름없이 스러져간 군인들이 있다. 세계 질서를 바로잡는다면서 무기를 들이밀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불이익을 강제하고, 네 편 내편 갈라서 편 먹지 않으면 따돌리고, 무시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가까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소식을 듣고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쉽지는 않았다. 봄의 제전과 세계대전을 엮어서 생각하기 위해 두 번, 세 번을 다시 읽었다. 잠재적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걱정’이 커진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 무슨 봉사 활동 하듯 참전하러 간 개인이 있는가 하면, 자취방 이사할 때도 챙기고 알아보고 살펴볼 게 많은데, 두 달 만에 옮기겠다고 큰소리치는 정치인도 본다. 명분과 목적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실리’가 없으면 국민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축제의 제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희생의 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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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배달룡 선생님 -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저학년) 신나는 책읽기 61
박미경 지음, 윤담요 그림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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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으로 초등 1~3학년에게 적당한 글밥책이다. 표지 그림을 보니 배달룡선생님은 어린이의 모습을 한 귀여운 선생님이다. 한 손에는 딱지를 한 손에는 사탕바구니를 들고 있고, 넥타이에 그려진 스마일조차 배달룡 선생님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린이책의 삽화는, 그림책과는 또 달라서 이야기의 분위기와 상상을 조금 제한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배달룡 선생님의 이미지가 그러하다. 어찌되었건 배달룡 선생님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앞 이야기에서 배달룡 선생님은 어렸을 때 '학교 짱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물론 우리는 이미 '짱'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서 아이들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짱"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의 꿈을 드디어 이룬다. 햇살초등학교의 교장이 된 것이다. 처음 학교에 가서 교장실에 앉아 사탕 하나를 빨던 배달룡 교장선생님은 쉬는 시간이 되자 어디선가 딱! 딱! 딱!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교실배치도를 확인하던 선생님은 교장실 바로 위가 1학년 교실임을 알게 된다. 1학년은 가장 용감하면서도 가장 잘 우는 학년이기 때문에 배달룡 선생님도 쉽게 건드릴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까?

배달룡 선생님은 학교 앞에서 광고지를 받아서 딱지를 접는다. 쉬는 시간이 되자 1학년 교실로 달려간 선생님은 아이들과 딱지치기를 한다. 이긴 딱지는 가져오고, 진 아이에게는 사탕을 나눠준다. 배달룡 선생님의 첫 해결은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배달룡 선생님이 학교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어렸을 때생각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잘 이해하는 짱이 된 배달룡 선생님은, 해결 방법도 남다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수진이의 특기를 알아봐주고, 맛이 없는 학교 앞 가게의 메뉴 레시피도 알려주고, 다문화가정의 어린이와 (자칫하면) 학폭으로 연결될 수도 있었던 일들을 현명하게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로 많은 선생님들이 배달룡 선생님처럼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을 보면 늘 이런 생각을 했었다.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아이들과 비슷하다고. 그러니까 초등학교 선생님은 초등학생 같고, 중고등학교 선생님은 중고등학생 같은 느낌. 매일 같이 있는 사람들과 닮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교 선생님이 무섭고 다가가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도, 학교 선생님과 친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아이들에게도 '배달룡 선생님'같은 분을 만나는 일은 행운일 터이다. 학생들의 진로를 걱정하고 함께 고민해 주는 선생님, 학업이나 학교 생활에서 불편이나 어려움을 제거해주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많은 학교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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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심리학 (10만 부 기념 골드 에디션) -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모건 하우절 지음, 이지연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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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심리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로널드 제임스 리드와 리처드 퍼스콘이라는 사람의 일화를 비교한다. 잡역부이자 주유소 직원이었던 로널드 리드는 92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순자산이 800만 달러가 넘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이 번 얼마 안 되는 돈을 저축했고 우량 주식에 투자를 했으며 수십 년간 기다렸다. 또다른 한 사람 리처드 퍼스콘은 40대에 이미 자선사업가가 되어 이름을 날렸으나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파산했다. 로널드 리드는 인내했고, 리처드 퍼스콘은 탐욕을 부렸다. 이것이 두 사람의 인생에서 교육과 경험으로 생긴 엄청난 격차를 무색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이는 금융 성과가 지능, 노력과 상관없이 운에 좌우되며, 금융은 아는 것보다 행동이 중요한 소프트 스킬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소프트 스킬을 돈의 심리학이라 부르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의 투자 의사결정은 본인 세대의 경험, 특히 성인기 초기의 경험에 크게 좌우된다. 모든 금융 의사결정은 판단을 내리는 그 사람만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타당하게 내려진 의사결정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부를 만들어내는 것과 부러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충분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재미가 없다. 행복은 결과에서 기대치를 뺀 것을 말한다. 내가 가진 게 주변 사람들보다 적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충분하다'는 것은 그 반대로 했다가는 후회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명성, 자유, 독립, 가족, 친구는 귀중한 것이다. 날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일, 행복도 귀중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리스크를 언제 멈춰야 할지 아는 것이다. 즉 내가 '충분히' 가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워런 버핏이 부를 쌓은 과정을 다룬 책은 2,000권이 넘지만 그렇게 큰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냥 훌륭한 투자자여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훌륭한 투자자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는 책은 거의 없다. 버핏의 성공을 투자 감각 덕으로만 볼 수는 없다. 성공의 진짜 열쇠는 그가 무려 75년 동안 경이로운 투자자였다는 점이다. 그의 재주는 투자였지만 그의 비밀은 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복리의 원리다.(p.90)

부자가 되고 싶은가? 저자는 부자로 남는 방법은 겸손함과 편집증이 어느 정도 합쳐져야 한다고 말한다. 돈을 버는 것은 버는 것이고, 유지하는 것은 별개다. 돈을 버는 것에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낙천적 사고를 하고, 적극적 태도를 갖는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을 잃지 않는 것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재주를 요한다. 겸손해야 하고, 또한 돈을 벌 때만큼이나 빨리 돈이 사라질 수 있음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번 돈의 적어도 일부는 행운의 덕이므로 겸손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p.103~104) 투자든, 커리어든, 사업이든 상관없이 오랫동안 살아남는 능력이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복리의 원리가 빛을 발하려면 자산이 불어날 수 있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쓸 수 있다는 게 돈이 주는 가장 큰 배당금이다. (p.139)

돈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더 많은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어느 정도의 부는 내가 아플 때 빈털털이가 되는 일 없이 며칠 일을 쉴 수 있다는 뜻이다. 부가 그보다 조금 더 있다면 해고가 되더라도 좀더 기다릴 수 있다. 가장 먼저 찾은 일자리에 어쩔 수 없이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자리를 기다릴 수 있다는 말이다. 6개월 치 비상자금이 있다는 것은 상사가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새 직장을 구하느라 좀 쉬더라도 별일 없이 지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부가 있다는 건 월급이 좀 낮더라도 시간 조정이 자유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필요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은퇴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141~142 요약)

'부'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이 문장들이 직관적으로 탁 와닿았다. 나는 지금 현재 어느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는가? 앞서서 말했던 '충분함'을 생각하면 나는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도...

옛날과 비교하자면 부나 소득이 현저하게 증가했지만, 더 행복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오히려 더 많은 걱정과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말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많아진 부를 더 크고 더 좋은 물건을 사는 데 쓰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은 포기하고 있다. 부는 많아졌지만 자유로운 시간은 줄어들었다.

오늘날에는 1950년대의 제조업 노동자보다 머릿속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과거에는 일이 끝나면 도구를 직장에 두고 왔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머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앞선 세대에 비해서 시간에 대한 통제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처럼 보인다. 나의 시간을 마음대로 쓰는 것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정 수준의 소득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저축을 하는 사람, 자신이 저축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저출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갈린다. 부를 쌓는 것은 소득, 투자수익률과 거의 관계가 없다. 저축률과 관계가 깊다. (p.172) 투자 수익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지만 결과는 늘 불확실성 위에 놓여 있다. 저자는 개인의 저축과 검소함은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부분이고 확실하다고 본다. 소득이 높지 않아도 부를 쌓을 수 있지만 저축률이 높지 않고서는 부를 쌓을 가능성이 없다. 여기에는 앞에서 말한 '충분함'이 또 전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적은 돈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상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축은 돈을 덜 쓰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욕망을 줄이면 돈도 덜 쓸 수 있다. 성공적인 투자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 대가는 변동성, 공포, 의심, 불확실성, 후회를 지불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나는 부자가 아니지만, 나의 '충분함'을 고려할 때는 어느 정도 '부'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나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적지만 소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 책은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를 묻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지금 행복하고,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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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는 아이 장애공감 어린이
뱅상 자뷔스 지음, 이폴리트 그림, 김현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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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혹은 만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묘한 감동이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을 느꼈다. 처음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을 때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숨을 참는 아이"라는 제목은 이 책을 선택하는데 별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원제가 Incroyable 인 것 같은데... 굳이 이런 제목으로 바꿨어야 하는지... 벨기에문학상 만화 부분에서 최고작품상, 브뤼셀 국제 만화축제에서 그래픽노블 최고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그래픽 노블 최종 후보로도 올랐다.

어쨌든 이 책이 나의 눈길을 끈 건 바로 아이가 있는 공간 때문이다. 서재일까? 아니면 도서관? 우리는 책장을 넘겨서 루이의 방문을 연다. 특이하게 시작부터 막이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1983년 가을, 사람들이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 벨기에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아,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 마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처럼 들리다니... 나의 기억 속에 카세트테이프는 음악을 듣고 음악을 녹음하던 훌륭한 미디어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 이야기 속 배경은 1980년대이다. 벨기에는 3개 국어를 쓰며, 국왕이 있는 나라이다. 루이는 이곳에 사는 아주 평범한 아이다. '평범하다'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누군가 먹고 버린 바나나 껍질처럼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아이, 루이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만의 역할이 있다"(P.6) 체호프가 "무대 위에 권총이 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총을 쏜다."고 말한 것처럼.

루이는 열한 살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조잘조잘 떠들고 놀아야 할 나이의 루이지만, 학교에서도 는에 띄지 않으려는 듯 움직이고, 도서관에 푹 파묻혀 책을 읽으면서 오로지 혼자 있을 수 있는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린다.

자기만의 루틴을 지키며 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루이. 코를 세 번 톡톡톡 친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 없는 아이처럼 군다. 일생 생활에 하나하나 점수를 부여하고 그 점수를 계산한다. 엄마 생각을 안하면 200점, 하얀 선을 밟지 않고 건너면 60점, 정해진 시간 안에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500점을 넘기기 위해 이런저런 행동을 반복한다. 루이의 이런 행동은 '강박적인 반복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집으로 가면 루이는 자기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카드 기록하기. 갖가지 정보들을 작은 카드에 기록해서 주제별로 모아두는데 이 카드만 해도 무려 1500장이 넘는다. 루이의 카드함은 도서관의 대출카드보관함과 똑같다. 루이의 방은 하나의 도서관이다.

조금 '독특한' 루이는 벨기에 국왕과 친하다. 이 벨기에 국왕 필리프는 루이의 머릿 속에 살고 있다. 물론 필리프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뭐랴고? 머릿속이나리.... 아냐...인졍 못 해!"(P.24) 루이와 필리프는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다. 늘 루이 옆에서 함께 하는 친구.

물론 가끔 조상님 유령들이 나타낼 때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때도 있다. 루이는 언제나 형편 없는 녀석. 멍청한 녀석, 어디서든 대장이어야 한다고 다그침을 당한다. 점점 더 크게 루이를 위협하지만 필리프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루이는 "저리 가! 넌 그냥 내 머릿속에 사는 바보 장난감이잖아!"(P.33) 라며 화를 낸다. 그래도 필리프는 가만히 루이 옆에 눕는다. 루이는, 그렇다. 아픈 아이다. 마음이 아픈 아이다. 매일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사는데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루이는 반 아이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 일주일동안 아주 열심히 자료를 준비했지만, 평소 루이의 관심을 끌던 주제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주제를 골랐다. 왜냐면 눈에 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아주 우연히도 진드기 한 마리 때문에 루이의 일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맨 앞에서도 말했지만, 무대 위에 등장한 어떤 것이든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드기일지라도 말이다. 학교에 늦어버린 루이는 허둥지둥 달려가지만 발표자료를 집에 두고 간다. 발표 자료가 없는 루이는, 자기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주제에 대해 원고 없이 발표를 시작한다. 늘 있는 듯 없는 듯 눈길을 받지 않던 아이였는데, 루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로 발표를 시작하자 아이들은 루이에게 집중한다.

루이는 어쩌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살게 된 걸까? 좋아하는 주제를 신나게 이야기하던 루이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온 루이와는 전혀 다른 아이였다. 그렇게 신나게 발표를 한 루이도 하늘을 날아갈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물론 나머지는 평소와 똑같았다.

루이는 혼자서 집을 떠난 적이 없지만 새로운 주제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숨소리만 들리는 전화를 오늘도 받았지만, 루이는 다 잘 될거라며 길을 떠난다. 아빠가 역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오늘도 아빠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엄마의 유골함을 늘 곁에 두고 있는 루이는 길을 떠날 때도 가방에 넣어서 간다. 루이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없다. 그런 마음이 생기는 순간 다시 조상님 유령들이 나타난다. 우울중, 불신, 자기비하... 루이의 의지를 꺾는 수많은 소리들.

발표대회를 무사히 끝내고 난 후, 루이는 여전히 강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지역 발표대회에서 잠깐 생기를 되찾았던 루이가 우연히 다시 전국 발표 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용기를 얻는다. 구겨 던져 놓은 발표 자료도 다시 꺼내고, 그동안 들어가보지 않았던 엄마의 서재에도 들어간다. 엄마 사진도 보고, 아빠의 편지도 본다. 엄마 아빠가 없었더라면 루이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리고 보려고 하지 않던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루이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점점 루이에게 빠져 들었다. 조금 독특한 행동을 하고, 남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살아가는 루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생기가 넘친다. 자신을 옭아매는 조상님 유령들도 혼자서 통제할 수도 있는 아이다. 7막에 이르면 루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왜 루이가 그렇게 강박에 갇혀 살고 있는지, 늘 들고 다니는 엄마의 유골함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필리프는 왜 루이 옆에 있는지....

루이의 마음을 다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루이 곁에서 루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어야 했지만 아빠는 그러지 못했다. 외삼촌을 통해, 그리고 학교 선생님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때로는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들이 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나를 믿고 이해해주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세상으로 나가는 길은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 한 걸음 내 딛는 그 걸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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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4-14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에 들어왔더니 읽고 싶은 책이 마구 눈에 들어오네요.
이 책도 그 중 하나.
표지 그림에 빈틈 없는 책들, 그리고 아래에 광활한 우주가 함께 그려져 있어요.

하양물감 2022-04-14 15:11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그래픽노블이라 별 기대없이(이 장르에 대한 나의 인식은 이제 달라져야할듯요) 봤다가 감동받은 책이에요^^
 
오리 부리 이야기 - 제1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황선애 지음, 간장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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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부리 이야기』는 제11회 '비룡소문학상' 수상작이다.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때문에 책을 선택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눈이 한 번 더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오리부리의 이야기.


최근 들어 '가짜뉴스'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인지를 실감하고 있어서일까? 이런 류의 책들이 좀 출간되는 것 같다. 사회 현상이나 사회 문제가 은연 중에 드러나는 것이다. 어린이책에서 이런 주제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어른들'은 자신의 생각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철썩같이 밑고 있는 그 이야기도 실은 남한테 들은 이야기다.


'가짜뉴스'에 세뇌되는 것이다. 그나마 뇌가 말랑말랑한 어린이들은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오리 부리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오리다.

엄마가 늘 하던 말이 "넌 물에 빠져도 부리만 동동 뜰 것 같구나."였다. 


입이 너무 가벼워서 그렇단다.


오리 부리는 늘 말을 한다. 그런데 말이란 것이 하면 할수록 실수하기 쉽다.

해서는 안 되는 말, 옮겨서는 안 되는 말, 사실이 아닌 말 등등 의도하지 않았지만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리 부리도 그렇게 말 많이 하다가는 언젠가는 큰일이 날텐데 하는 걱정이 되었다. 


오리는 어쩌다 오리 부리가 되었을까?

총을 든 사냥꾼을 피해 도망을 가다가 몸이 지친 상태에서 몸은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부리만 쏙 빠져서 도망을 간 것이다. 


사냥꾼은 동물을 잡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도 총으로 잡지 않았다. 

총만 든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그건 사냥꾼의 마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오리는 그런 사냥꾼에게 잡히기 싫어서 도망을 쳤는데, 결국 부리만 달아나고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사냥꾼은 부리가 빠져버린 오리를 잡지 않았다. 왜냐면 사냥꾼이 잡고 싶었던 것은 오리부리였으니까. 


오리는 이때 굳이 자기 몸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겠다는 기발한 생각을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부리가 다 할 수 있으니 가볍게 부리만 돌아다녀도 될 일이었던 것이다. 아니 이런 깜찍한 생각을 하다니.


오리 부리는 우연히 토끼의 찢어진 그림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가 토끼의 그림을 찢어버린걸까? 동물들은 제각각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들쥐를 지목하고 마치 그가 토끼 그림을 찢어버렸다고 단정을 짓는다.


들쥐는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한번 소문이 나면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법이다. 소문이란 것은 또 희안한 게 움직이면서 살을 붙여 나간다. 처음에는 작은 거짓말이었지만 돌고 돌아 돌이킬 수 없는 큰 거짓말이 된다.


오리 부리가 사는 마음에는 앞치마 요리사고 살고 있다. 앞치마 요리사가 이 마을에 살게 된 것에도 그러저러한 사연이 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마음에 두고 있지 않지만, 그래서일까? 세상을 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져있다. 앞치마 요리사와 만난 들쥐는 앞치마 요리사의 위로를 듣는다.


"그래그래, 정확하지 않은 얘기라면 나한테 전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그렇게 미안한 표정은 짓지 마렴."(p.50)


"확실하지 않은 말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단다."

"바람이요?"

"그래, 바람. 나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걸 마음대로 전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누구나 살다보면 소문의 바람을 맞을 때가 있단다. 태풍처럼 큰 바람을 맞을 수도 있고, 그저 마음이 살짝 아플 정도의 살랑바람일수도 있겠지."(p.51)


이 책에는 소문을 퍼뜨리며 다니는 오리 부리도 있지만, 그 소문의 피해자인 들쥐, 앞치마요리사, 사냥꾼도 등장해서 양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헛소문이나 가짜뉴스를 퍼뜨리고는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를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듯, 여기서는 무당벌레가 그 역할을 한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서 '내 잘못'이 아닌 것이 아니다. 내 입에서부터 그런 소문이 만들어져서 나갔다면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정확하지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양 떠벌리다가는 큰일 난다. 이걸 우리 어린이들에게만 알려줘서 될까? 


어이, 정치인들 보소. 툭 던져놓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행동을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반성 좀 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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