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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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의점에 잘 가지 않는 편이다. 처음에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 생겼을 때, 동네 구멍가게들이 다 죽는다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환하게 불을 밝힌 편의점, 깨끗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편의점, 동네 구멍가게들보다 많은 물건들이 아무래도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그러다보니 골목골목에 하나씩 있던 구멍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제는 편의점 건너 편의점이 이어질 정도로 많아졌다.

작년에 이사를 한 후에야, 근처 편의점을 이용하게 되었다. 원체 군것질거리나 야식을 먹지 않기에 그다지 갈 일이 없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동네 구멍가게를 떠올렸다. 동네 사정 다 아는 동네 주민이 운영하였기에 사는 이야기도 하고, 안부도 묻고,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물건을 척척 내주던 가게들말이다. '독고'씨가 야간 알바를 하게 되면서, 이 편의점은 불편한 편의점일지언정 동네사랑방 같은 느낌의 편의점으로 바뀐듯하다.

편의점이라는 이름은 '편리함'을 포함하고 있다. 24시간 문을 열 뿐만 아니라 웬만한 물건들은 다 있어서일 터이다. 그런데 이 편의점은 불편한 편의점이라고 한다.어떤 사연이 있는 편의점일까?

"버스를 타고 홀로 돌아오는 길에 염 여사는 편의점 직원들을 떠올렸다. 지지리도 말 안듣는 아들놈과 오지게도 잘난 딸년보다 요즘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가족 같고 편하다. 이렇게 말하면 딸은 또 직원들을 가족같이 대하면 악덕 업주니 옳지 않다느니 따지겠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랴. 직원들에게 날 가족같이 생각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원들을 가족같이 여겨 무리한 업무를 부탁하는 것도 아니다. 염 여사는 지금 가까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편의점 직원들이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p.31)

염 여사는 서울역에서 자신의 파우치를 지켜준 노숙자 '독고'씨를 본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 데리고 와서 도시락을 준다. 언제든지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어도 된다고 말하면서. 염 여사의 선행은 쉽게 할 수 있는 선행이 아니다. 편의점에 노숙자가 들락거리는 것은 결코 가게 운영에도 도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독고'씨에게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까지 주게 된다. 그녀가 편의점 직원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편의점을 운영하지만, 그것을 갖고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서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근처에 다른 편의점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때도 무리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오랜 시간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그래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 저 아래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애정'이 있다. 그런 그녀 덕분에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아간다.

이 편의점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알바를 하고 있는 시현이 있고, 동네에서 20년을 알아온 친구이자 교회 성도인 오여사가 있다. 그리고, 종종 담배를 사 가던 동네 아저씨 성필이 야간 알바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염 여사는 그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이 편의점을 떠나게 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족 같다는 느낌이라고.

"평생 사장이나 자영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염 여사가 편의점 경영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이 사업장이 자기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삶이 걸린 문제라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였다."(p.33)

염 여사의파우치를 찾아주고, 염 여사가 곤란에 처했을 때 도와 준 인연 덕인지 '독고'씨는 성필 씨가 떠난 야간 알바 자리에 들어간다. '독고'씨는 시현 씨로부터 편의점의 일을 배운다. '독고'씨의 과거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지만, 편의점 일을 배우는 속도나 시현 씨에게 유튜브 업로드를 제안하는 등 아마도 잘 나가던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게 된다. 시현 씨는 '독고'씨의 조언대로 유튜브를 업로드하면서 다른 편의점에 스카웃되어 가게 된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나쁜 사람이 없다. '독고'씨는 어눌한 말투지만,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손님들과 소통을 해 나간다. 처음에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라며 무시하지만 결국은 '독고'씨로부터 위로와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은 손님들이다. '독고'씨가 일을 한 후로 편의점에는 동네 할머니들도 드나들고 매상도 조금씩 오른다. 편의점의 변화는 조금씩 조금씩 일어난다.

'독고'씨가 손님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도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찾아가는 듯하다.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아 온 시간들이 그에겐 어떤 시간이었을까? 짐작컨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과거와 단절된 채 노숙자로 살아가게 한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지며 책을 읽어가는 동안, 이 편의점을 들렀다 가는 많은 손님들을 통해 나 역시 독자로서 위안을 받는다. 어쩌면 그들의 생활이 나의 어느 일부인 것 같아서.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도울 것을 돕고 나눌 것을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p.266)

소설 속의 인물들을 보면, 혼자 애끓이며 고민할 때는 풀리지 않던 것들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고민하면서 풀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문제는 혼자 고민한다고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그랬다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기에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무수한 긍정 에너지가 있다. 요즘 본의 아니게 사회생활이 제한되고,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에 '관계와 소통'이 더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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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 장대한 동슬라브 종가의 고난에 찬 대서사시
구로카와 유지 지음, 안선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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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당연하게도 최근에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2022년에 발매되었지만, 이 책은 2002년에 일본에서 나온 책을 번역한 책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하기까지의 역사를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지만, 최근 2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국제 정세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하는 내용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 즉,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최근의 전쟁 때문이고 과거와 달리 20년이라는 세월은 국제정세가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는 시대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쳤다면 아마도 그런 아쉬움을 같이 느끼지 않을까?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짚어보는데는 꽤 읽을만한 책이었다. 일본인 작가가 우크라이나와 일본을 엮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부분만 좀 뛰어넘으면 되겠다.

저자는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스키타이인의 건국설로부터 시작한다. 스키타이인은 유목생활을 했으며 고대에서 유목의 형태를 거의 최초로 확립한 민족이다. 스키타이인에 대해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배경과 부합한다. 다만 스키타이의 땅에 사는 이들이 모두 유목민이엇던 것은 아니다. 스키타이는 문자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농경 스키타이가 슬라브의 선조라는 학설도 있다. 또 스키타이인은 용맹함을 숭상하고 능란한 기마술이 특징인 매우 뛰어난 전사였다.

2장부터 키예프 루스 공국이 등장한다. 키예프 루스 공국은 중세 유럽에서 찬란하게 및나는 대국이었다. 루스라는 단어에서 '러시아'가 파생되어 '키예프를 수도로 삼는 루스'라는 뜻에서 키예프 루스로 부르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키예프 루스 공국의 역사를 러시아역사에서만 다루었지만 러시아(소련)는 대국이고, 우크라이나는 독립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키예프 공국이 멸망한 후, 우크라이나의 땅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영토가 됐고 나라 자체가 소멸해서 계승자가 없었다. 반면에 키예프 루스 공국을 구성하던 모스크바 공국은 단절되지 아노고 존속했기 때문에 키예프 공국의 문화를 계승하여 러시아제국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의 입장이다.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는 모스크바를 포함한 당시 키예프 공국의 동북 지방은 민족, 언어가 달랐고 16세기가 되어서야 슬라브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모스크바는 키예프 루스 공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비슬라브 부족의 연합체이지, 키예프 루스 공국의 후계자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또 전제 중앙집권체제였던 러시아/소련과 키예프 루스 공국의 체제는 전혀 다르기때문에 별개의 국가이다.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정치, 사회, 문화는 키예프가 파괴된 이후에도 1세기에 걸쳐 서우크라이나 지역의 할리치나, 볼린 공국으로 계승됐다. 그래서 양 국가의 주장은 배치된다. (p.41~47 요약)

이 책에는 12세기 초에 편찬된 『원초연대기』의 내용을 많이 소개한다. 키예프 루스 공국의 건국, 번영, 쇠퇴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최초의 역사서이다. 키예프 루스 공국은 동슬라브의 거주지역에 건설됐는데, 그 촉매 역할을 한 것이 하자르인과 북유럽의 바랴그인(바이킹)이다. 하자르는 세계사에 세 가지 흔적을 남겼는데, 유대교를 국가의 종교로 채택한 점, 동쪽에서 유럽으로 침입하려는 이슬람을 막은 점, 통상무역을 보호하고 전쟁보다는 외교를 중시하는 국가가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동슬라브인의 땅에 국가를 수립한 것은 바랴그인이었다. 그들에 의해 '루스'라는 나라의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키예프 루스 공국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이를 통해 비잔티움 문화를 흡수했다.

12세기에는 10~15개의 공국이 나타나면서 키예프 루스 공국은 공국들의 연합체가 되었고, 블라디미로 수즈달 공국에서 갈라진 것이 모스크바 공국이었다. 경제적으로 교역로가 쇠퇴하였고 상품경제에서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경제로 변화하며 침체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몽골의 침략으로 몽고 시대로 접어드는데, 이때 모스크바는 몽골에 순종하여 유복해지는 발판을 마련한다. 우크라이나의 역사가들은 할리치나-볼린 공국을 최초의 우크라이나 국가로 본다.

제3장은 리투아니아-폴란드의 시대를 다룬다. 키예프 루스 공국은 단일 루스 민족이었으나 이 시기에 이르러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세 민족으로 분화하고 모스크바대공국, 폴란드왕국,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분할된다. 언어도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가 독립적으로 형성되고, 코사크가 형성된 시기도 이때다. 이 시기는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이 증가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라는 어원을 러시아에서는 '변경지대'라고 하였으나 우크라이나에서는 '땅', 또는 '나라'를 의미한다고 본다. 16세기가 되자 특정한 땅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면서 코사크 지대를 가리키게 되었다. 코사크에게 우크라이나는 조국이라는 의미를 담은 정치적, 시적인 단어가 되었다. 19세기가 되어 러시아제국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지배하자 우크라이나 땅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의 정식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1917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제4장에서는 코사크의 영광과 좌절을 다룬다. 코사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 스텝 초원에 거주하던 자치적인 무장집단을 말한다. 코사크는 이후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한다. 우크라이나의 최고 영웅이자 우크라이나의 배신자라고도 평가되는 흐멜니츠키가 등장한다. 흐멜니츠키와 코사크군은 폴란드를 분쇄하기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완전한 독립보다 코사크의 권리 향상 정도에 머물렀다. 이후 흐멜니츠키는 자력으로 폴란드에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외국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때 모스크바와 보호협정을 맞게 된다. 이때의 조약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병합되는 과정의 첫걸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국의 안전을 위해 외국의 협조 또는 외국의 힘을 빌어올 때, 그 결과는 언제나 좋지 않았다. 자주국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제5장에서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은 우크라이나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80%는 러시아제국, 20%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발흥해서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는 급속한 공업화가 진행되어 러시아 제국 최대의 공업지대를 형성하게 된다.

제6장에서는 중앙 라다가 등장한다. 러시아 제정이 무너지고 소련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는 과정애서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의 발트, 북유럽 국가들이 독립하고 오스크리아-헝가리 제국 하의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달성한 국가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큰 에너지를 독립운동에 투여했을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희생을 치렀다. (p.189)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는 왜 독립을 하지 못했을까?

먼저 국내적 요인으로 차르 정부 하에서 민족주의가 억압되어 있었다. 많은 인텔리가 사회개혁과 민족독립을 두고 고민하는 상황에 놓였다. 자치와 독립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정치가들이 정부 수립을 하게 되었고, 혁명의 주도권을 쥔 도시 주민 중에는 우크라이나인이 적었고 독립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 낮은 교육 수준 탓에 독립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국외적 요인으로는 폴란드의 압도적인 힘, 러시아의 볼셰비키의 인적 물적 차이, 협상국과 미국이 정부의 좌파적 성향을 탐탁치 않게 여긴 점 등을 들 수 있다.

힘들게 독립을 했지만, 다시 전쟁의 포화 속으로 들어간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대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이 책은 평가하고 있다.넓은 면적, 유럽 최대 규모의 철광석 산지, 세계 흑토의 30%에 이르는 농업, 과거 소련의 최대 공업지역이면서 수준 높은 과학자와 기술자, 서유럽세계와 러시아, 아시아를 잇는 통로로서의 지정학적 위치 등은 그런 잠재력을 짐작케한다. 그러나 역으로 이러한 잠재력 때문에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유지는 세계 ㅍㅇ화와 안정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최근 20년 간의 정보와 변화를 함께 알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책을 마지막으로 덮는 순간까지도 이 점은 많이 아쉽다. 우크라이나의 최근 상황을 다룬 내용을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덧붙임: 키예프, 키이우 표기 방식에 대해선 일단 책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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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장, 놀라운 발견이 가득한 곳 똑똑한 책꽂이 25
호셉 수카라츠 지음, 미란다 소프로니오 그림, 문주선 옮김, 페란 아드리아 추천 / 키다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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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왜냐면 나는 시장에서 자랐고, 나의 어린 시절은 시장과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시장을 돌아다니던 기억, 길거리 곳곳에 있던 고양이들, 없는 것 없이 다 팔던 시장이 떠오른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시장이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몇개 시장이 골목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름 있는 커다란 시장들도 있지만, 이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재래시장은 그리 많지 않다. 현대화 사업, 개량 사업 등을 통해 대형마트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시장도 있다.

이 그림책에는 전 세계 약 50여 곳의 시장이 등장한다. 그림책 맨 마지막 40~41에는 시장 이름과 설명 페이지, 그리고 지도 위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번호가 있다. 42~43에는 세계 지도가 펼쳐진다. 처음 이 그림책을 설렁설렁 넘기다가 맨 마지막 페이지 지도를 한참 보았다. 옆 나라 일본도, 중국도 시장이 있는데 대한민국은 없다. 이건 조금 아쉽다. 아이들하고 같이 이 그림책을 본다면, 우리나라 시장을 한번 그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시장은 고대부터 도시의 중심이었으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장소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었다. 인류 최초의 상인은 '행상'이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다가 한날 한시에 같은 곳에 모여 팔기 시작한 것이 시장이 되었다. 의외긴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고대 로마의 마첼룸 같은 곳이 물건을 사고 파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시장에 가면 물건을 살 수 있고, 무언가를 교환할 수 있으며, 즐길 수도 배울 수도 있다. 시장은 식품 저장고이자 커다란 요리교실이고 훌륭한 식당이기도 하다.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로도 시장은 유용했다.

시장에는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판다. 녹색채소, 과일, 색색의 채소가 있고, 고기, 생선, 그리고 온갖 종류의 먹거리가 즐비하다. 향신료와 조미료, 콩과 식물과 곡물들, 가공식품 뿐만 아니라 '이것도 먹는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식재료도 찾을 수 있다. 썩은 냄새가 나는 두리안, 거미, 오리 혀, 캐비아, 달팽이, 도마뱀, 그리고 거북손(아, 이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본 적이 있다)도 있다.

시장에는 시장 가까이에 있는 곳에서 키우거나 채집하고 잡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운송 수단과 저장법의 발달로 아주 먼 곳에서 온 것들도 팔게 되었다. 일반적인 식재료를 파는 시장도 있지만, 세계의 시장은 각각 장소의 특징도 파는 물건도 다른 곳이 많다.

비가 많이 내리는 영국에서는 1822년 최초의 실내 시장이 열린다. 이 시장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주었고 실내 시장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아프리카에서는 거의 노천 시장이 열리고, 태국이나 미얀마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수상 시장이 있다. 그밖에도 중고품을 파는 시장도 있고,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바자가 있다. 수산시장도 있고 도매시장도 있다.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 시장이니 당연히 교환 수단인 돈에 대해서도 설명을 한다. 그림책 한 권에 이렇게나 많은 정보를 담아 놓았다. 글 뿐만 아니라 그림이 숨겨놓거나 표현한 시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시장에 직접 가서 흥정도 하고 물건도 골라보고 사는 일이 이제는 흔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마트에 물건값은 '흥정'이 필요없다. 정가가 있고, 미리 할인가도 정해놓는다. 시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흥정을 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장이 조금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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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언박싱 - 10대를 위한 메타버스 완전 정복 10대 이슈톡 3
이정호 지음 / 글라이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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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에 관한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도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위한 메타버스 책은 전체를 개괄할 수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메타버스는 이미지로 만들어진 세계지만 그 안에서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활발히 이뤄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금 청소년들은 이미 메타버스 세계를 많이 경험하였기 때문에 '어른들은 메타버스를 너무 신기하게 생각하고, 그것에 관심을 많이 두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우리에게는 신기한 세계이지만, 이미 그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있는 세대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메타버스로 불리는 서비스, 기술, 용어를 찾아가다 보면, 메타버스가 4가지의 대륙, 4가지의 특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급작스럽게 비대면 시대로 접어들었고,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변해간다. 이미지는 현실만큼 중요해졌고, 세상을 바꿀 기술이 메타버스로 집중되고 있다.

어제는 방송사들의 기술경쟁력을 살펴 볼 수 있는 대선 투표 집계 방송이 있었다. 과학적인 통계방식을 접목한 출구조사 결과가 정확도가 예전과 비교할 때 엄청 정교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거리에서 시민들과 인터뷰를 했을텐데 어제는 메타버스 안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AI와 메타버스 기술을 접목하여 다양한 개표방송을 보여주었다. 메타버스가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끊임없이 매테버스를 발전시키고 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확장현실 등이 현실을 대체하고, 메타버스를 체험하기 위한 맞춤형 기술들도 준비되고 있다. 학교도 예외일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메타버스가 실현되기 좋은 공간으로 학교를 이야기한다.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우리 눈 앞에 와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 세계를 가

리키는 말이다. (p.15)

전문가는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여러 세상을 라이프로깅 세계, 증강현실 세계, 거울 세계, 가상현실 세계로 구분한다. 라이프로깅 세계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저장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세계로 '페이스북(Facebook)', '틱톡(Tik-Tok)',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말한다. 라이프로깅 세계는 평범한 개인을 디지털 세계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마법의 공간이다. 증강현실 세계는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 위로 3차원 이미지를 덧대어 보여 주는 세계로 포켓몬go, 이케아(IKEA)의 가구 배치, 박스를 열지 않고도 가상의 이미지를 통해 내용물을 확인하는 서비스 등이 해당한다. 생산 공정이나 수리 과정에 증강현실을 도입하는 기업이나 공장도 늘어나고 있다. 거울 세계는 세상 구석구석을 디지털 정보로 변환해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세계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글의 스트리트뷰(Street View)'이다. 현실과 완전히 차단된 환경에서 또 다른 현실을 만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가 중요한 진짜 이유는 사람이 가상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가장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로는 제페토와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인데 이 서비스에는 오픈월드, 샌드박스, 창작자 경제, 아바타라는 4가지 공통점이 있다. 메타버스는 정해진 스토리가 없고 사용자가 자유롭게 탐험하거나 바꿀 수 있는 시스템, 즉 '오픈월드'이다. '샌드박스'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놀이를 하는 모래 놀이통인데 메타버스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원하는 것을 만들거나 탐색하고, 즐길 수 있다. 로블록스의 '로블록스 스튜디오', 제페토의 '빌드 잇' 기능과 '크리에이터' 기능은 창작자가 되도록 도와준다. '창작자 경제'는 메타버스를 진짜 대세로 만든 핵심적 요인이다. 메타버스를 서비스하는 운영 기관은 창작자에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생산한 콘텐츠는 그 공간에서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는 거래 시스템까지 제공한다. 콘텐츠 거래 시 각 메타버스 서비스만의 화폐를 사용하는데 이 가상 화폐는 실제 현금으로 환전이 가능하다. 마지막은 '아바타'이다. 아바타는 나날이 진화하는 중인데 인공지능(AI)을 통해 사람의 얼굴 표정과 제스처를 학습하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시작된 비대면 시대에 안전한 아지트로서 메타버스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지금 학생들은 인공지능과 더불어 살게 될 것이라며, 이들이 갖춰야 할 역량으로 6가지

'C'를 꼽고 있습니다. 개념적 지식(Conceptual knowledge)을 바탕으로 창의성 (Creativity),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컴퓨팅 사고(Computational thinking), 융합 역량(Convergence), 인성(Character)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p.162)

우리가 메타버스를 이해하고, 메타버스 학교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연구하고 있고, 하나둘 성과를 내기 시작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기업이나 대학에서도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메타버스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가 경험하게 될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도 가질 수 있었다. 메타버스에 대한 좋은 점이나 기대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밝음이 있다면 어둠이 있는 법, 우리는 지금도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일상 생활에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을 본다. 우리 청소년들이 현실 세계가 아닌 가상셰계에서 제대로 적응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메타버스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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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다
로마나 로맨션.안드리 레시브 지음, 김지혜 옮김 / 길벗어린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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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 《움직이다》는 '움직임'이라는 행동에 담긴 수많은 의미를 이미지로 해석하여 전달하는 논픽션 그림책이다. 양면으로 쫙 펼쳤을 때 부여지는 공간을 아낌없이 활용하여 우리의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게 한다.


길은 걸으면서 완성된다고 하는 옛 속담에서부터 시작한 이 그림책은 '여행'과 '신발'이라는 테마로 옮겨간다. 4백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두 다리로 일어서서 걷는 순간부터 수천년 동안 움직이며 살아왔다. 8천 년 전에 발명된 스키, 약 1만 년 전에 발명된 카누 등도 보여준다. '스키'를 보니 지난 동계올림픽 때 중국이 '스키'도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던데, 뭐든 자기가 최초고 자기가 원조라고 하는 행태에 놀라울 뿐이다.


우주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가만이 멈춰 있지 않다.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그리고 지구와 물, 대기 심지어 대륙까지 움직인다. 이 그림책에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다양한 용어도 설명하고 있다. '로코모션'은 사람과 동물이 움직일 때 사용하는 특정한 움직임으로 달리기, 점프, 수영, 비행, 활공, 기어가기, 미끄러지기 등을 말한다. 동물이 양손을 이용해 움직이는 '브래키에이션'도 있다.


그런가하면 인류의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는 바퀴도 있다. 6천 년 전에 발명된 바퀴를 이용해 인류는 점점 빠르고 더 멀리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이유로 공간 이동이 이루어지는데 이제는 우주로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움직이다》는 우리가 왜 이동하고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알려준다. 글로 전달하는 정보 외에 선명한 색채로 보여주는 그림은 이미지를 통한 정보 전달에 적합해 보인다. 그 중에서도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들을 표현한 그림에 잠깐 시선을 멈춰본다. 이민자, 난민, 실향민들의 움직임이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또 살기 위해서는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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