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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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보코프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작성한 메모와 자료들을 글로 묶어낸 책이다. 우선 우리는 나보코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나보코프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17세에 자비로 시집을 발간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조국을 떠나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스위스 등을 전전하였다고 한다. 그는 소설 『롤리타』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다. 나보코프는 20년 가까이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 중에서 7개의 명작에 대한 강의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좋은 독자와 좋은 작가

예술 작품은 언제나 새로 창조된 세상이다. 평범한 작가는 평범한 것에 장식을 덧붙일 뿐 굳이 세상을 재창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훌륭한 독자, 좋은 독자는 상상력, 기억력, 사전, 약간의 예술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보코프는 "훌륭한 독자, 중요한 독자,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책을 다시 읽는 사람"(p.47)이라고 말한다. 그림을 처음 접할 때는 특별한 방식으로 눈을 움직일 필요가 없고 시간이라는 요소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책을 읽을 때는 시간을 들여 친해져야 하고 두번, 세번 네번, 책을 읽고 난 뒤에야 그림을 볼 때와 같은 태도로 책을 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손에 쥐고 읽으려고 애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다양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예술의 대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창조해낸 책인만큼, 이 책의 소비자도 당연히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공정하다."(p.48) 그러나 상상력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단순한 감정에 의지하며 개인적인 성격을 띄는 수준이 낮은 상상력이다. 나보코프는 독자가 책 속의 등장 인물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를 최악의 독자로 본다. 우리는 대부분 이 수준의 독자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두번째 상상력은 개인적인 특성과는 관계없는 상상력과 예술적인 기쁨을 말한다. 독자는 작가가 자유자재로 사용한 구체적인 세상을 명확히 파악하려고 애써야 한다. 책 속에 나오는 것들과 인물들의 행동을 눈으로 보듯 그려볼 수 있어야 한다.

"문학은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며, 네안데르탈의 계곡에서 커다란 회색 늑대에게 쫓겨 뛰어나온 그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문학은 소년이 뒤에 늑대가 없는데도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 날 태어났습니다." (p.49~50)

작가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이야기꾼, 교사, 마법사. 뛰어난 작가는 이 세가지를 조합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작가를 가장 뛰어나게 만들어주는 것은 마법사이다.

제인 오스틴(1775~1817)

『맨스필드 파크』(1814)

패니는 작가가 아끼는 인물이자, 이야기의 축이 되는 인물이다. 패니는 수양딸이고, 무일푼의 조카이며, 얌전한 피후견인이다.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에 이러한 피후견인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1. 기본적으로 낯선 집의 미지근한 식구들 사이에 자리한 그녀의 위치가 페이소스를 꾸준히 만들어낸다. 2. 낯선 집의 이 이방인이 그 집 아들과 낭만적인 감정을 주고받는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갈등이 빚어진다. 3.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관찰자이면서도 식구들의 일상생활에 직접 참여하는 이중적인 지위 때문에 작가의 뜻을 전달하는 편리한 대변인이 될 수 (p.54)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인 오스틴의 작품 뿐만 아니라 디킨스, 도스토에프스키, 톨스토이의 작품에도 이런 인물은 등장한다. 이 아가씨들의 원형을 나보코프는 '신데렐라'라고 말한다.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무기력하고, 친구도 없고, 방치된 채 잊혀진 존재였다가 남자 주인공과 결혼(p.54)을 하는.

나보코프는 제인 오스틴이 책의 첫머리에서 네 가지 방법으로 인물 설정을 설명한다며 직접적인 묘사, 인물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것, 남에게 전해 듣는 말, 자신이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의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보코프는 플롯을 "미리 생각해 둔 이야기"로, 테마를 "소설 속 여기저기에서 반복되는 이미지 또는 생각"으로, 구조는 "책의 구성, 사건 전개,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야기하는 것, 한 테마에서 다른 테마로의 이행, 인물을 교묘하게 등장시키는 것, 새로운 행동 묶음이 시작되거나다양한 테마가 서로 연결되거나 소설을 진행시키는 데 이용 되는 것"이며 문체는 "저자의 특별한 어조, 어휘, 독자가 어떤 문장을 보았을 때 이건 디킨스가 아니라 오스틴의 문장이라고 외치에 만드는 어떤 것"이라고 메모해두었다. (p.64)

나보코프의 강의는 플롯, 테마, 구조, 문체 등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이다. 책을 한번만 읽고 다시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발견하기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싶다. 나보코프는 문체가 작가의 개성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제인 오스틴처럼 경력이 쌓일수록 작가의 문체가 더 정밀하고 인상적으로 변해갈 수는 있지만, 재능이 없는 작가는 가치 있는 문제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천재성은 작가의 영혼 속에 깃들어있다. 나보코프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 소설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문학적인 재능이 있는 젊은 작가만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적확한 단어를 찾아내고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나 소설을 써보겠다고 습작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재능이 없음을 알고 일찌감치 그만 두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보코프가 내 앞에 있었다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 조금은 노력해봐도 되지 않을까?

찰스 디킨스(1812~1870)

『황폐한 집』(1852~1853)

나보코프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구식 가치관을 매력적으로 재배열한 작품이라면 디킨스의 작품에는 새로운 가치관이 나온다고 말한다. 『황폐한 집』에는 주목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아이들과 관련된 테마, 챈서리-안개-광기 테마, 등장인물의 속성,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물들, 셜록 이전의 탐정 스타일, 선과 악으로 구현된 이원론 등이 그것이다. 이 소설을 구성하는 주요 테마는 챈서리 법원 테마(안개, 새), 비참한 생활을 하는 아이, 그리고 미스터리테마이다.

디킨스가 챈서리의 안개를 다룰 때는 마법사이자 예술가의 면모를, 아이들 테마에서는 예술가와 사회운동가가 합쳐진 모습을, 미스터리 테마에서는 이야기에 방향을 제시하고 추진력을 제공하는 아주 영리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인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은 예술가의 면모입니다.(p.149)

이야기의 형식이란 이야기의 구조(예술 작품의 미리 계획된 패턴), 문체(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을 말한다. 작가가 등장인물을 선택해서 이용하는 것, 인물들 사이의 상호작용, 그들의 다양한 테마, 테마의 가닥과 그 가닥들이 교차하는 부분, 작가가 이런저런 직간접적 효과를 내기 위해 도입하는 다양한 움직임, 효과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준비 등이 전자에 해당한다. 후자의 문체에는 작가의 특징, 작가의 버릇, 여러 특별한 트릭들이 있다.

디킨스의 문체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음과 같다. 비유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는 생생한 감각적 표현, 상세한 묘사의 무뚝뚝한 나열, 비유:직유와 은유, 반복, 수사학적인 질문과 답변, 칼라일의 돈호법, 형용어구, 의미를 연상할 수 있는 이름, 두운과 유운, 그리고-그리고-그리고 장치, 유머러스하고 괴상하고 암시적이고 변덕스러운 표현, 말장난, 말(言)의 간접적인 묘사 등이다.

이런 것들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원서'를 읽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번역 문학에서 작가의 문체를 눈치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빙 영화보다 자막 영화가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나 할까?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를 읽어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그리고 두번 세번 계속해서 다시 읽는 동안 그 작품이 내게 좀더 친절하게 다가올 것 같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인오스틴과 디킨스의 작품 강의까지 읽기가 가장 힘들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나보코프가 강의 사용하는 것들, 테마, 문체, 구조와 같은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세번째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의 『보바리 부인』(1856)에 이르면 나보코프의 강의 방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그래서 훨씬 더 이해가 빨리 되었다.

이 부분에서는 해설을 따로 붙여 문체, 이미지, 말(馬) 테마를 따로 소개한다. 문체를 보면 플로베르의 소설은 산문시와 같으며 세미콜론 다음에 and를 사용한 방식을 사용한다. "세미콜론은 한 숨 쉬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and'는 문단을 정리하면서 최절정의 이미지나 생생한 세부 묘사로 이어주는 역할"(p.322)을 한다. 그런가 하면 점층법(시각적인 세부 묘사를 연달아 펼치는)을 즐겨 썼으며, 의미없는 대화를 통해 감정이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플로베르가 프랑스어의 불완전과거 시제를 사용하는 방법을 보면 그가 시간의 흐름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알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까지 느끼거나 찾아내려면 번역본에 의지해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이 책에서도 번역가들이 플로베르의 글을 번역하면서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

『지킬 박사와 하이드 시』(1885)

나보코프는 이 책을 미스터리 소설이나 범죄 소설, 영화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현대 미스터리 소설의 조상 중 하나라는 말은 사실이지만 스티븐슨은 "악령소설"이라고 외쳤다. 나보코프는 1. 지킬은 선한 사람이아니라 복잡한 존재이다. 2. 지킬은 하이드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순순한 악의 결정체인 하이드를 밖으로 쏘아보낸다. 3. 지킬의 인격은 세 개이다. 지킬, 하이드, 그리고 하이드가 전면에 나섰을 때 뒤에 남은 지킬로 구성된 제3의 인격이 있다고 말한다.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스완네 집 쪽으로』(1913)

문체는 작가의 버릇, 다른 작가와 구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특정한 버릇을 말한다. 나보코프는 프루스트 문체의 특징을세가지로 설명한다. 1. 은유적인 이미지가 풍부해서 비유가 층층히 겹쳐져 있다. 2. 문장의 폭과 길이를 최대한 늘리고 채우는 경향, 문장 안에 기적적으로 많은 수의 절, 삽입구, 종속절, 종속절의 종속절을 꽉꽉 밀어넣는 경향. 3. 대화가 묘사의 융합. 작가의 문체를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면 그 작품들이 나에게 정말 다르게 다가왔을텐데. 왜 이런 작품들이 칭송받는지 의아했던 내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문체만이 그 작품을 특징지을 수는 없지만.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를 통해 나는 새로이 '문체'를 이해하고, 구조와 테마에 대해 의식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일곱 개의 소설은 이미 읽은 책들인데도 나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시 읽게 된다. 그래서, 책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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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0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하양물감 2022-04-11 11:1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꼬마요정 2022-04-09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발췌해서 읽었는데(프루스트, 율리시즈 못 읽었어요ㅠㅠ) 지킬과 하이드에서 지킬의 인격이 셋이라는 부분은 놀라웠어요. 찬찬히 다 읽어야겠어요.(하지만 너무 어려워요ㅠㅠ)

이 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하양물감 2022-04-11 11:16   좋아요 0 | URL
나보코프가 말하는 책을 읽었다면 여러관점에서 볼수있어요. ^^ 안읽었다면 읽을때 참조되겠지요? 문학평론이 가끔 독서에 도움이 되는것같아요
 
교실 뒤의 소년 다봄 어린이 문학 쏙 1
온잘리 Q. 라우프 지음,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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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가 흉흉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다.

전쟁은 이유를 불문하고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제, 이 책을 읽었다. '교실 뒤의 소년'은 시리아의 '난민' 소년 아흐메트가 전학을 온 뒤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국경 봉쇄로 인해 부모와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된 아흐메트를 돕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남자애들을 위한 따분한 공룡 세트나 여자애들을 위한 공주 세트 학용품보다 우주인 세트를 선택하는 아이이다. 학교 갈 때 재미있는 학용품을 갖고 가는 건 깜박 졸거나 남아서 벌 받을 행동을 안 하도록 막아준다나? 올해는 만화주인공 땡땡과 밀루 세트를 샀다. 땡땡은 이상한 사건을 해결하고 모험을 하는 기자이고, 밀루는 땡땡의 개이다. '나'의 엄마는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어서 폐기되는 땡땡 책을 모아 주기도 하였다.

'나'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장 친한 친구이며 뭐든 나와 함께 하는 톰과 조시, 마이클이 도와준다. 톰은 미국에서 이사를 왔고 형이 셋이나 된다. 조시는 달리기가 빠르고 성격이 좋다. 기꺼이 벌도 함께 받아 주는 친구다. 마이클은 흑인인데 똑똑하고 부자다. 아빠는 교수고 엄마는 변호사라서 늘 바쁘다. 조시와 마이클은 일등이 되려고 경쟁하기도 한다. 조시는 수학을, 마이클은 역사를, 그리고 나는 읽기와 맞춤법을 잘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상상력도 뛰어난 아이다. 엄마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한몫 했을거라 생각된다.

개학 후 세번째 주가 되었을 때, 아흐메트라는 소년이 전학을 온다. '나'는 '그 애와 친구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조시와 톰과 마이클도 그렇게 해줄 것이다. 아흐메트처럼 겁먹고 슬퍼 보이는 아이에겐 친구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흐메트는 빨간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의가 있는 매우 더러운 배낭을 갖고 다닌다. 아흐메트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배낭이다.

"이따금 사람들은 거짓말인 것을 알 때도 거짓말을 믿고 싶은 것 같다. 거짓말이 진실보다 더 흥미진진하기 때문일 거다. 특히 신문에 인쇄된 것이면 진실이 뭐든 믿으려고 한다. 난 이제 그 사실을 안다. 또한 엄마가 왜 정치가들이 거짓말쟁이라고 하는지, 텔레비전에 정치가들이 나올 때마다 화를 내는지를 안다."(P.24-25)

아이들 사이에서도 누군가는 메신저 노릇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미디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사실인양 맹신하기도 한다. 아이들 사회라고 해서 어른 세계의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편견과 거짓이 섞여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진실을 찾아 나서고, 누군가는 순종한다.

학교에는 '제니'처럼 이것저것 소문을 퍼뜨리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브렌단 브루커'처럼 심한 장난을 치고 깡패처럼 행동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브렌단을 좋아하는데, 아이들은 브렌단을 싫어한다. 하물며 상급 학년의 깡패들도 브렌단을 얄미워한다고.

"난민 아이가전학 왔다는 소리 들었습니까? 칸 선생님 반에 들어갔다는데, 그 아이의 언어를 쓰는 보조 교사를 찾을 수 없답니다. 불쌍하게도!"

"곤란한 문제가 생길 거예요. 제 말 잊지 말아요. 그들은 오직 우리 직업을 빼앗으러 오는 거니까!"

"뉴스에 나오는 끔찍한 전쟁터에서 왔다면 참 안쓰러운 아이입니다. 죽음의 덫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데 비난할 수는 없지요."

"아휴! 귀찮은 사람들이에요. 모두 다! 무슨 말을 해도 난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 두고 보세요. 우리아이들이 고통을 당할 거예요. 그 사람들은 여기 와서 그들 좋을 대로 할 테니까..."(P.38-39)

'나'는 엄마에게 '난민 아이'가 무엇인지 물어본다. 엄마는 자기 나라에서 살 수 없어 새로 살 곳을 찾고 있는 사람들, 살 수 없는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선택의 여지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안전한 곳을 찾아 걷고 보트를 타고 낯선 곳으로 떠난 사람들을 이야기해준다. 조시와 톰, 마이클도 자기들 나름대로 난민에 대한 정보를 찾아온다.

아이들은 아흐메트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아흐메트에게 선물도 주고, 어렵게 구한 석류도 전달하는데, 석류로 인해 브렌단과 아흐메트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이 싸움으로 아흐메트는 브렌단을 이긴 소년이 된다. 그러나 브렌단은 여전히 아흐메트를 괴롭힌다. 학교에는 브렌단 말고도 아흐메트를 싫어하는 선생님도 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난민'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아이를 괴롭히는거라면, 어른들 중에는 '난민'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도 많다.

'나'는 아흐메트와 더 가깝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아흐메트의 여동생이 바다에서 죽은 것과 엄마, 아빠와 헤어져서 살게 된 비밀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난민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국경을 폐쇄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는 국경이 폐쇄되면 아흐메트가 엄마, 아빠와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조시와 톰, 마이클과 함께 계획을 짠다. 아흐메트에게는 비밀로 하고, 계획을 진행시킨다. 이 뒤의 사건은 아흐메트와 같은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말들 때문에 사람들은 가짜 정보를 진짜로 알게 되기도 한다.

주인공이 아홉살이지만, 나는 이 책을 청소년과 성인들이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하였고 그들이 살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났지만 길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수용소에서 죽는 일도 생겨났다. 몇년 전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어린 아이의 시신 사진을 기억한다.

요즘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시끄럽다. 가족과 헤어져 전쟁터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일 보도된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진 가족들의 모습도 보인다. 많은 피난민들이 국경을 넘고 있는데,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가족을 돌보기 뒤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 이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고 응원을 보내지만, 일생을 살아온 나라를 떠나오는 그들의 마음을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전쟁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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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와 버들 도령 그림책이 참 좋아 84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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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은 작가 이름을 보고 믿고 읽는 그림책이다. 

이번 그림책은 연이와 버들도령... 어렸을 때 들어봤고, 옛이야기로 읽었던 그 이야기다.

이 그림책 맨 뒤에 보면 참고한 책이 있는데 

<계모의 학대>, <정에 정도령>, <반반버들잎 초공시와 엽엽이>, <버들잎 도령>, 

≪연이와 버들잎 소년≫, ≪한국과 일본의 계모 설화 비교 연구≫가 그것이다. 


그림책의 내용은 익히 아는 바, 계모 이야기를 읽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 그림책에서는 그녀를 '나이 든 여인'이라고 표현한다.

나이든 여인은 연이에게 일을 아주 많이 시키고

연이는 그저 시키는대로 묵묵히 따르면서 살 뿐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가족 관계는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이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렸을 때, 이웃에 계모와 함께 사는 친구가 있었다. 

하도 나쁜 계모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나는 그 친구도 엄마도 같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 그림책은 나이든 여인과 연이의 관계를 가족 관계로 한정 짓지 않는다.

'가족'의 의미가 많이 달라진 요즘이기에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나이 든 여인'은 연이에게 일도 많이 시키고 

한겨울에 상추를 뜯어오라고 시키는 심술궂은 여인이다.

이 추운 겨울에 상추를 구할 수 없음에도 연이는 묵묵히 상추를 찾아 나선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연이도 참 갑갑한 아이다. 

요즘 아이라면, '지금은 상추를 구할 수 없어요'라고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겠지?

그저 시키는대로 따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텐데 말이다.

어쨌든 연이는 상추를 구하러 눈 속을 걸어다니다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아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연이는 꿈 속 같은 공간과 버들도령을 만난다. 


솔직히 처음에 그림책을 펼쳤을 때, 흐릿한 부분이 영 눈에 거슬렸다.

흐릿한 배경 앞에 선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또렸하게 보였지만.

작가의 의도가 분명 있을 것이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표현할 것인가 고민한 결과겠지만 말이다.

책을 다 읽은 다음 다시 그림책을 보니 흐릿한 배경 덕에 입체감이 더 살아나는 것 같다. 

봄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따뜻한 동굴 속 이미지가 포근하게 느껴진다. 


버들도령은 연이에게 상추도 주고, 귀한 꽃도 준다. 그 꽃은 살살이, 피살이, 숨살이 꽃이다. 

뭐에 쓰는 꽃인지 알려주지 않지만 그 이름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정말로 위급할 때 쓰라고 준다.


나이든 여인은 한겨울에 상추를 뜯어 온 연이를 의심하고

이번에는 화전을 부쳐먹고 싶으니 진달래꽃을 따오라고 시킨다.

그리고 살살 뒤를 밟아 연이의 비밀을 알아챈다.

연이가 집에 와서 화로에 진달 화전을 부치고 있을 때

나이 든 여인은 동굴에 불을 질러버린다.

어른어른 화전을 부치고 있는 장면이 불타는 동굴을 대신한다. 

화마로 모든 것이 사라진 동굴에서 연이는 버들도령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야기를 구전으로 듣거나, 글로 읽을 때와는 달리 죽은 버들도령의 모습은 훨씬 직관적이다.

동굴이 불타는 모습이 진달래 화전을 부치던 장면 만으로 짐작이 가능했던 것과 달리

버들도령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재가 날리는 동굴에서 황망한 연이의 얼굴.


연이는 이 광경 앞에서 목놓아 울지 않는다.

오히려 버들도령에게서 받았던 도움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고

이렇게 좋지 않은 일 앞에 놓여 있는 자신의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죽은 도령이 가여웠던 연이는,

뭔가 소중한 걸 놓아주고 싶었지만 가진 게 없었기에 버들도령에게서 받았던 꽃을 놓아준다.

정말 위급할 때 쓰라고 주었던 그 꽃은 버들도령을 살린다.

그리고 연이와 버들도령은 하늘로 올라간다. 

아마도 그곳에서는 행복하겠지?


자, 이런 이야기의 끝에는 권선징악적 결말이 항상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이 그림책의 마지막에는 '나이 든 그녀'의 마지막을 이렇게 알려준다.

나이가 들어 죽었다고. 

응? 뭔가 이상하지?

보통 같으면 큰 벌을 받고 그렇게 아이를 괴롭히면 안된다는 이야기로 끝나기 마련인데.

나이가 들어서 죽었단다.

죽음 자체는 그녀에게 벌이 아니었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쓸쓸히 죽었다는 것이 벌이었던 듯하다. 

옛이야기를 낯설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로 바꿔 낸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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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08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말이 굉장히 심오하네요. 나이가 들어도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살다 죽는것이 정말 큰 벌이겠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진짜 심오한.... 백희나작가의 그림책들은 언제나 평범하지 않네요.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정말 좋아한 작가인데 아이들이 크니 더 이상 그림책을 안보게 되고 이렇게 다른 분들의 리뷰를 보면서 또 아 좋다 그러고 있어요. ^^

하양물감 2022-03-08 15:5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결말에서 무릎을 탁 쳤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벌이라니...
홀몸어르신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렇게 죽는 게 제일 허무할 것 같기는 해요.
저도 아이가 그림책을 읽는 나이를 지나쳤지만,
그래도 도서관에 있다고 그림책을 읽게 되네요^^
 
메타버스 세상의 주인공들에게 - 우리가 만나게 될 새로운 미래 아우름 52
이상근 지음 / 샘터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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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는 미국 공상과학 소설의 작가인 닐 스티븐슨 veal Stephenson이 1992년에 발표한 소설 《스크래시 snows Crash)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렇게 되면 히로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컴퓨터가 만들어 내서 그의 고글과 이어폰에 계속 공급해 주는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컴퓨터 용어로는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상이었다."

현대에 와서 발명되거나 발견된 많은 것들이 '소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우리는 공상과학소설 혹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소설 같은 문학 작품에서 만났던 미래의 세계가 정말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있다.

영화나 소설 속이 아닌 우리 생활에서의 메타버스는 어느 정도까지 실현되고 있을까? 현재 메타버스는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이다. 이것은 현실 공간에 2D 또는 3D로 표현되는 가상의 물체를 겹쳐 보이게 하여 구현된다. AR 글래스나 3D 홀로그램(Hologram)을 통한 가상 회의가 이에 포함된다. 다음은 '라이프 로깅(Life logging)'.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가 이에 해당하며 최근에 페이스북은 가상 현실 커뮤니티인 '페이스북 호라이즌 월드 Horizon World'의 베타 서비스를 출시했다. 세번째는 '거울 세계(Mirror Worlds)'를 들 수 있다.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여 정보적으로 확장된 가상 세계이다. 쉬운 예로는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이다. 가상 현실에서는 현실 세계의 인간이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한다.

메타버스의 실현을 위한 기술은 계속 연구되어왔는데,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면접촉을 통제하고 비대면 상황이 강화됨에 따라 우리의 삶이 메타버스로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 세대는 메타버스의 일부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고, 과연 이것이 어떻게 작동할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이미 메타버스 속에서 놀이를 하고, 학습을 하고,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메타버스는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 모르는 메타버스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막연하게 우리가 열광했던 '싸이월드'가 메타버스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은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왜 싸이월드가 그 많은 이용자들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 지금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들의 확장된 세계를 볼수록 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성장 전략이 달랐다고 설명한다. 싸이월드가 소모임 커뮤니티에 충실했다면 페이스북은 수평적 통합을 통해 지속적인 자극을 제공하고 플랫폼에 가능한 오래 머무르게 하였다. 페이스북은 플랫폼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글로벌화를 선택하면서도 각국에 맞는 현지화도 꾀하여 성공한다.

앞에서 설명한 4가지 영역 외에 가상현실 VR과 증강현실 AR을 통합한 확장현실 XR도 있다. 혼합 현실 MR까지 아우르며 현실 공간에 배치된 가상의 물체를 느낄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 메타버스는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여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현장 기술자들과 사내 엔지니어들이 혼합현실NIR 기술을 이용하여 소통하고, 원격 조종으로 실제 기계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정비, 생산 등을 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날 것이다. 의료계는 그 어떤 분야보다 먼저 확장 현실 기술이 도입된 곳으로 정교한 그래픽, 모션 캡처 등을 활용해 수술을 돕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AR로 환자의 수술 부위를 구현하고 그것을 실제 환자의 몸에 겹쳐서 의사들이 보이지 않는 곳도 직접 확인하고 수술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이 밖에도 손이나 팔다리를 다친 환자들의 재활 치료, 노인들의 치매 예방을 돕기 위한 훈련 등에도 확장 현실xR 기술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P.91~92)

최근 가장 눈에 띄게 변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교육계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컴퓨터나 패드를 이용해 집에서 원격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 수업에 확장 현실 기술을 이용한다면 실제 교실에 온 것처럼 실감 나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고, 집중도가 높아져서 학습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문화 산업 분야 역시 확장 현실 기술의 도움을 받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직접 문화체험을 할 수 없게 되자 비대면 공연, 여행, 축제 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메타버스와 함께 최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NFT도 소개한다. NFT는 암호 화폐와 더불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자산 중 하나이다. NFT란 '대체 불가능한 토큰' 이라는 뜻으로, 블록체인의 토큰을 다른 토큰으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한 가상 자산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암호 화폐인 비트코인은 A가 가진 1비트코인과 B가 가진 1비트코인이 같은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서로 교환이 가능하다. 이를 대체 가능한 토큰이라 부른다. NFT는 각각의 고유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1:1 교환이 가능하지 않다. 이를 '대체 불가 토큰'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번 발행하면 제3자가 복제하거나 위조할 수 없고, 소유권과 거래 내역이 명시되므로 일종의 '디지털 소유 증명서' 처럼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P.122-123)

메타버스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쉽게 알려주는 책이다. 입문용으로 적당하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이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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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 밤하늘과 함께하는 과학적이고 감성적인 넋 놓기
김동훈 지음 / 어바웃어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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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왜 그렇게 좋냐는 질문에 이 책의 저자인 김동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별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며 흩뿌린 먼지에서 태었났기에 우주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여정이다. 별은 나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네준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내가 아는 가장 무해한 취미 가운데 하나다" 라고.

초등학교 때 받은 월간지 사은품인 조악한 천체망원경 덕분에 밤을 기다리고 가슴에 우주를 품게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의 경험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다. 좀 더 많은 별을 보려고 호주, 몽골, 남미, 북유럽을 여행했다고 한다. 마음을 온통 하늘에 빼앗긴 채 천체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허튼 짓으로 보였겠지만, 저자는 아름다운 우주 광경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에 새로운 설렘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긴다. 좋아서 즐거워서 즐기던 취미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취미가 취미를 넘어서는 일도 심심찮게 만난다. 김동훈 저자의 천체 사진과 글을 읽으면서 평소 쳐다볼 일이 거의 없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밤하늘은 특별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지만, 자꾸 올려다보게 된다.

003rd night 별일 없는 하루

슈메이커-레비9 혜성이 지구와 충돌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우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우주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지구 역시 한시도 안전하지 않다.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큰 기적은 별일 없는 하루, 또 그 하루를 별일 없이 산 나와 당신일지 모른다. p.24

어느새 반백년을 살아버렸다. 돌아보면 내 인생도 꽤나 스펙타클했던 것 같다. 사는 재미란 그런게 아니겠어? 그래도 굴곡 없이 조용히 넘어간 날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런 위로라도 보탤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010th night 백 년의 기다림

금성이 태양 앞을 지나가는 것은 굉장히 보기 드문 천문 현상으로, 거의 백 년 넘게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 지금 지구에 사는 사람 중 이 광경을 다시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번 지나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다. 설령 오더라도 우리의 수명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오지 않는 것과 같다. 단 한 번의 마주침이 영원 속으로 사라질 때가 많다. p.40

가끔 일식이라던지, 혜성이라던지 하는 우주쇼가 펼쳐질 때 미디어에서는 떠들썩하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지금 못 보면 다시는 못볼 것처럼 모두들 망원경 앞으로 달려가라고 부추긴다. 거기에 넘어가지 않는 나 자신을 칭찬하며 콧방귀 꽤나 꼈는데, 결국 그 또한 보지 못한 자의 변명이었을 뿐이다. 이번에 보지 못하면 백년을 넘게 기다려야 만날 수 있었다는 그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는 것이다. '별' 하나 못 본게 억울한 건 아니다. 살면서 '내게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친'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는 그것이 아쉽다.

034th night 흔한 여가활동

우주인이 독서에 흠뻑 빠져 있다. 그가 책을 읽고 있는 장소는 지상에서 400km 떨어진 국제우주정거장이다. 아마 그는 지금 퇴근해서 혹은 휴일에 개인 시간을 보내는 중일 것이다. 우주인도 지구의 보통 노동자처럼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를 한다. p.92

우주인도 노동시간을 지키는 줄 몰랐다. 어느 대선 후보는 주4일 근무를 공약으로 내세운다고 한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면 좋은데, 그만큼 내가 '고급 인력'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적게 일하면 적게 벌 수 밖에 없는 대다수의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039th night 초승달 모양 태양

미국 국회의사당 꼭대기에 걸린 초승달 모양 태양은 어쩌다 찍은 게 아니라 그 시각 태양과 건물 위치를 계산하며 치밀하게 계획한 결과물이다. 우연처럼 보이는 것도 노력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p.102

이 책에는 우연이 아닌 필연, 그리고 계산된 우연에 대해서 몇 번을 이야기한다. 별을 보고 우주의 상태를 확인하고, 하늘의 변화를 포착해내는 일이 그저 우연에 의해 가능하던 때가 있었을 거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책을 읽는 동안, 밤하늘과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아본다. 한낱 우주 먼지일 뿐인 인간이지만 광활한 우주의 바다를 헤엄치는 상상을 해 본다. 그 옛날 경외의 대상이었을 우주를 이만큼이나마 알게 된 것도 다 그런 상상 때문이 아니겠는가? 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게 반짝이고 있는 그 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별은 그렇게 우리 머리 위에서 반짝이다가 사라져간다.

099th night 우리 모두 춤출 뿐

"모든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 결정한다.

별, 인간, 식물, 우주의 먼지뿐만 아니라 벌레까지

저 멀리서 보이지 않는 피리가 부르는 신비한 선율애 맞추어

우리 모두 춤출 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p.226

115th night 은하수 커튼을 치다

남반구 하늘에서 은하수가 지고 있다.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 중 하나가 은하수가 지평선과 나란히 누워서 자는 모습이다. 은하수가 지평선과 맞닿으면 마치 은하수로 커튼을 친 것처럼 보인다. 이때는 눈길 닿는 곳 어디든 별천지다. p.268

151st night 별까지 가는 길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자." -1888년 6월,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중에서 p.342

168th night 어디서 온 빛인가?

별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움직인다. 그러니 매로페가 통과하면서 성운에 선사한 빛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를 반짝이게 하는 빛이 혹시 다른 사람에게서 온 것은 아닌지 항상 살펴볼 일이다. 세상에 당연한 희생은 없다. p.378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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