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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의 잠 ㅣ 도란도란 우리 그림책
박완서 글, 김세현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15년 2월
평점 :
7년 동안의 잠? 순간 '매미'가 떠올랐다. 땅 속에서
7년을 기다리고 땅으로 올라와 매미가 되고 나면 약 한 달동안 시끄럽게 울어대며 나 여기 있소 외치다 죽은 그 매미 말이다. 표지그림은 개미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7년 동안 잠을 자는 녀석이라면 매미가 틀림없을터였다.
첫 페이지에서 개미는 커다란 먹잇감을 발견한다. 보아하니
매미 유충이다. 개미 마을에도 흉년이 계속 되어 먹을 것이 부족하던 개미에게 이것은 행운의 먹잇감이다. 개미는 기쁜 마음에 마을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리는데, 크고 싱싱한 먹이가 있다는 말에 개미들이 달려간다. 존경하는 늙은 개미가 그들에게 이것이 '매미'라는 것을 알려준다. 개미들은
여름날 시끄럽게 울어대던, 개미들이 열심히 일할 때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노래나 하던 매미와는 다른 모습에 의아해한다.
보통 개미와 함께 등장하는 베짱이 이야기처럼 매미 역시
개미들이 열심히 일을 할 때 팔자 좋게 노래나 부르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늙은 개미는 '매미'가 그렇게 한여름 한 달을 울기 위해 7년
동안 잠을 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개미들은 7년이나 잠을 자고 깨어나서는 한달 내내 그렇게 노래나 부르다 죽는 매미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개미들은 매미의 노래소리 때문에 힘을 내거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매미가 성충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풀과 나무가 있는 곳을
옮겨준다.
사실, 개미들의 마을에 흉년이 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땅 아래에 사는 개미들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나무와 숲이 있는 땅 속에서 살던 개미들은 여러
가지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지만, 딱딱한 콘크리트로 뒤덮인 땅 아래에서는 제대로 된 먹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 마을에도
흉년이 들었다.
7년 전 아직 이 땅 위에 풀과 나무와 숲이 있던 때에 땅
속에 낳아진 매미도 이렇게 세상이 변한 것을 알지 못할 터였다. 껍질을 뚫고 나온들 제 껍질보다 훨씬 두꺼운 콘크리트 땅을 뚫고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사라진 자연 대신에 인간의 욕심이 자연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개미들이 매미를 나무와 숲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것은, 7년
동안 참고 기다려온 세월이 헛되지 않게 하려는 뜻이다.



'7년 동안의 잠'은, 인간의 삶도 돌아보게 한다. 개미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흉년이 든 것은 인간이 파괴한 자연때문이다. 개미들이 먹고 자고 입는 것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마저 채우지 못하고
사는 것 역시 그러하다. 보통 의식주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더 높은 욕구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급한 이에게
'매미'의 노래는 팔자 좋은 한량놀음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지치는 일이 많더라도 노래 한 곡, 춤 한 자락이 하루의 피로를 싹 씻어내릴
때가 있는 것처럼, '매미'도 매미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미들은 매미를 나무 아래까지 끌고 가서 우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다음, '기쁨에 차서 매미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인간의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매미처럼 바짝 한 달을 놀다 가는 인간도 다 그들 나름의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어느 누구도 가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