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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문의 기적 ㅣ 일공일삼 67
강정연 지음, 김정은 그림 / 비룡소 / 2016년 4월
평점 :
나라면, 절대 문 색깔을 분홍색으로 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복한 우리집'이라는 낯간지러운 말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취향의 차이겠지만 말이다.
몇 년 전, 아니 십여년 전인가? 현관문 리폼이 대유행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아파트의 개성 없는 현관문에 질려서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인 향기네도 그런 집들 중 하나일까?
향기는 회색문들 사이에 특이한 분홍색 문을 가진 집에 살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색깔의 문을 가진 집을 보며 사람들은 온갖 상상할 것이다.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사랑이 퐁퐁 넘치는 그런 집.
그런데 이 집에서 그렇지 않은 남자가 둘이 산다.
문의 외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매일매일 펼쳐진다.
분홍집의 과거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대로일지도 모르지만, 이 집의 현재는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는 늘 말썽을 피우거나 혼이 나는 박향기와 하기 싫은 장사를 억지로 하고 있는 아빠 박진정의 삶은 한마디로 폐인이다.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박진정씨의 아내이자 박향기인 엄마의 죽음이다.
김지나씨가 죽자 박진정씨와 박향기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살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바로 김지나씨가 작은 요정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 책은 김지나씨가 이들과 함께 지내는 72시간을 보여준다.
감씨가 목에 걸리고, 까치가 날아오고 그리고 까치가 주고 간 씨앗에서 나타난 엄마가,
엄마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준다.
우선은 엉망징창인 집을 정리하고, 필요없는 것은 버린다.
그런 다음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옆집과 인사를 하고 이웃과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될대로 되라고 시간만 보내던 향기는 엄마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을 하고,
가게문도 늦게 열고 장사도 하는둥마는둥하던 아빠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한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엄마를 중심으로 얽혀있던 기존의 질서가 모두 파괴되었다.
김지나씨는 행기와 진정씨가 자신이 있을 때와 똑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없어도, 그에 구애받지 않고 제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행복한 우리집이 안 행복한 우리집이 되었다가 그래도 행복한 우리집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가꿀 수 있는 토대를 보여준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박진정씨와 박향기가 있다.
어쩌면 우리도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도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거나, 살아서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을 하려고 하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온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후회없이 도전해볼 수 있는 삶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죽은 자의 힘을 빌어 바뀌고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