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긋 아기씨 사계절 그림책
윤지회 글.그림 / 사계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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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표지만 보았을 때는 아기에게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그림책은 이제 막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거나,

곧 아가를 만날 예비 엄마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장을 넘겼다.

아기의 몸이 포대기에 꽁꽁 싸여있는 걸 보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이다.

이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옛날 옛날에 아름다운 왕비님이 살았어요.

왕비님이 사는 궁궐은 아주 크고 화려했어요.

하지만 왕비님은 마음 둘 곳이 없었어요.

늘 혼자인 것만 같았어요.


이 그림책의 주인공은 아기가 아니라 엄마인 왕비가 아닐까?

왕비는 아름다웠고, 그녀가 사는 궁궐은 크고 화려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마음 둘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그림책이 끝날 때까지 아기의 아빠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기가 웃기를 바라며 이것저것 알아보고 노력하는 사람은 엄마다.

화려한 식사를 할 때도 우스꽝스러운 공연을 할 때도, 언제나 엄마 혼자이다.

그럼 아빠인 왕은 어디에 있는 걸까?

처음부터 왕은 존재하지 않았을까?

다시 한 번 그림책을 살펴보다 나는 왕을 발견했다.

그림책이 접히는 부분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있었다.

그러나, 육아의 의무는 온전히 엄마인 왕비의 몫이었던 듯하다.

왕은 아기가 태어난 공식적인 행사 이후로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늘 혼자인 것 같았'던 왕비는 정말로 혼자였다.

그런 왕비에게 아기는 전부였을 것이다. 

웃지 않는 아기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자 하는 왕비의 마음은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에

아기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기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웃지 않았다.

언제나 '아기씨는 말똥말똥 왕비만 바라보았어요'

아기는 태어나서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모방하면서 성장한다.

자기 편이 누구인지를 알고, 주양육자와 애착관계를 형성해나간다.

아기씨에게는 잠시도 아기씨 곁을 비우지 않는 왕비를 바라보면 세상을 배워나간다.

아기는 왕비가 아기를 위해 준비한 모든 것에도 웃지 않고

왕비의 얼굴만 바라보았을까?

아마도 이쯤 되면 다른 독자들도 눈치를 챘으리라.

 

나는 이 그림책이 아기를 위한 그림책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그림책이라고 말했다.

주양육자로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와닿을 그림책이다.

아빠가 이 그림책을 함께 본다면,

왕비가 왜 그렇게 외롭고 마음 둘 곳이 없었는지,

왕비의 얼굴에 왜 웃음이 없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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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건 말도 안되는 핑계구요.
그저 책상 앞에 앉아 글 쓸 여유가 없었을뿐이에요.
페이스북은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블로그, 서재 모두 개점휴업이었네요.
그래도 책은 많이 읽었는데. ..

써야할 글도 있고
약속한 글도 있는데
쩝.

지난 지진 때는 집밖으로 대피해있다가 들어왔답니다.
아, 지진이 나니 말이죠.
책장과 쌓아놓은 책들이 곧바로 무기가 되더라는 ㅠㅠ
전등이나 벽걸이 텔레비전보다
책이 머리 위로 쓰러질까 도망쳤슴돠.

다들 행복한 추석되세요.

저는 지금 아이와 단둘이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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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문의 기적 일공일삼 67
강정연 지음, 김정은 그림 / 비룡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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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절대 문 색깔을 분홍색으로 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복한 우리집'이라는 낯간지러운 말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취향의 차이겠지만 말이다.

몇 년 전, 아니 십여년 전인가? 현관문 리폼이 대유행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아파트의 개성 없는 현관문에 질려서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인 향기네도 그런 집들 중 하나일까?

향기는 회색문들 사이에 특이한 분홍색 문을 가진 집에 살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색깔의 문을 가진 집을 보며 사람들은 온갖 상상할 것이다.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사랑이 퐁퐁 넘치는 그런 집.

그런데 이 집에서 그렇지 않은 남자가 둘이 산다.

문의 외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매일매일 펼쳐진다.

분홍집의 과거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대로일지도 모르지만, 이 집의 현재는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는 늘 말썽을 피우거나 혼이 나는 박향기와 하기 싫은 장사를 억지로 하고 있는 아빠 박진정의 삶은 한마디로 폐인이다.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박진정씨의 아내이자 박향기인 엄마의 죽음이다. 

김지나씨가 죽자 박진정씨와 박향기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살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바로 김지나씨가 작은 요정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 책은 김지나씨가 이들과 함께 지내는 72시간을 보여준다.


감씨가 목에 걸리고, 까치가 날아오고 그리고 까치가 주고 간 씨앗에서 나타난 엄마가,

엄마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준다.

우선은 엉망징창인 집을 정리하고, 필요없는 것은 버린다.

그런 다음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옆집과 인사를 하고 이웃과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될대로 되라고 시간만 보내던 향기는 엄마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을 하고,

가게문도 늦게 열고 장사도 하는둥마는둥하던 아빠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한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엄마를 중심으로 얽혀있던 기존의 질서가 모두 파괴되었다.

김지나씨는 행기와 진정씨가 자신이 있을 때와 똑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없어도, 그에 구애받지 않고 제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행복한 우리집이 안 행복한 우리집이 되었다가 그래도 행복한 우리집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가꿀 수 있는 토대를 보여준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박진정씨와 박향기가 있다.

어쩌면 우리도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도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거나, 살아서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을 하려고 하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온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후회없이 도전해볼 수 있는 삶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죽은 자의 힘을 빌어 바뀌고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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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4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양물감 2016-09-14 20:21   좋아요 1 | URL
지진때문에 저승가는줄...
요즘 서재에 거의 못들어와서 소식도 못전했습니다
감사해요^^
 
고라니 텃밭 사계절 그림책
김병하 글.그림 / 사계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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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20여년 전 도시를 떠나 시골에 터를 잡으셨다.

노후를 귀농하여 편안하게 보내신다거나,

뜻한 바가 있어 젊은 날 귀향한 것이 아니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떠난 그곳에서

이웃의 땅을 빌려 텃밭을 가꾸며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

농사라고는 지어보지 않았던 초보농꾼이었지만,

지금은 그 동네에서 제일 농작물이 잘 되는 집이기도 하다. 

 

이 그림책을 보는데,

그 생각이 났다.

텃밭에 감자를 심어놓았는데, 밤새 멧돼지가 내려와 파헤쳐놓았다거나
콩을 심어놓았는데 새들이 죄다 먹었다거나 하던 일들.

이 그림책 속 작가 겸 화가인 아저씨도 텃밭을 망쳐놓은 동물을 잡으려고

밤을 새며 기다리는데

고라니 녀석이 딱 걸린다.

잡지 못하고 놓쳐버렸는데

어느날, 고라니가 새끼들과 함께 내려 온 모습을 보고'마음을 바꿔먹는다.

 

그림책에서 이 장면은 극적인 반전을 가져온다.

텃밭을 망쳐놓는 도둑이자 훼방꾼인 고라니와 눈을 마주치는 저 장면은

슈렉인가 거기서 나온 장화신은 고양이의 눈을 떠올리게 한다.

산에서 먹을 것이 없으니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는 것이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도 몇 가지 더 늘어난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갈 방도는 없는걸까?

 

아저씨는

그 날 이후 텃밭을 아래 그림과 같이 두개로 나누었다.

 

울타리를 친 텃밭은 아저씨와 딸이 가져 갈 것이고

울타리가 없는 곳은 고라니가 와서 자유롭게 먹을 밭이다.

​그림책의 묘미는 숨어있는 그림을 발견하는 재미일 것이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할 때부터 민들레 싹이 나 있는 작은 텃밭이 보인다.

텃밭 주변으로 난 길처럼 민들레를 둘러싼 돌에도 길이 나 있더니

고라니가 내려와 밭을 엉망으로 만들 때는 텃밭의 울타리가 꽉 막혀있는 것처럼

민들레 돌담도 입구 없이 막혀있다.

그러다 아저씨가 고라니와 마주치고 고민을 할 때는 꽃이 핀 민들레 돌담 바깥에 작은 싹이 나온다.

그리고 반 반 나누어진 텃밭처럼

민들레 돌담도 작은 싹을 받아들여 하나가 된다.

인간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지고자 할 때 문제가 생겨나고 전쟁이 일어난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때

평화가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고라니텃밭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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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6-05-21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밤중에 차를 몰고 가다 마주쳤던 고라니 생각이 나네요. 이 녀석, 불빛을 받으면 빨리 피해야 하는데 그냥 서있는 거예요. 속도를 안내서 다행히 아무 탈없이 헤어졌지요. 이따금 길에서 얘네들..... 마음이 아파요. 사람들이 얘네들 공간을 빼앗아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죠. 공생, 참 중요한 화두예요. 사람끼리도 그렇고 자연과도 그렇고 ...

하양물감 2016-05-21 18: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실 농사를 업으로 하시는 분들에겐 야생동물 출현이 반갑지않아요.
이 그림책에서는 작은 텃밭이라서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한 귀결로 여겨지지만요.

숲노래 2016-05-22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도 그림도 앙증맞네요.
말씀처럼 ˝쓸 만큼만 쓰려는 마음˝이 된다면
얼마든지
서로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부디 그렇게 되기를 빌어요.

하양물감 2016-05-26 11:57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은 이미 실천하고 계시죠?
저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수호천사 나무 일공일삼 58
김혜연 지음, 안은진 그림 / 비룡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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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호천사나무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편에 나오는 제주 와흘 본향당 팽나무를 모티브로 하여 쓰여진 이야기라고 한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어렸을 때 읽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떠올랐는데 모티브가 된 나무가 있다고 하니 또다른 느낌이 들었다. 마을 어귀에서 또는 언덕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그 나무는 사람들의 고민과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였다. '들어준다'는 말은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소원을 이루어주거나 고민을 해결해주는 의미와, 듣다(聽)의 의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속 주인공인 팽나무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이 털어놓는 고민을 말 없이 들어주는 나무, 고민을 안고 왔던 사람들은 고민을 털어놓음으로써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직접적으로 고민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버릴 수 있다. 또,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도 나무는 묵묵히 들어준다. 사람이 아닌 '나무'이기때문에 누군가에 말을 옮기지도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신성한 나무에 고민도 풀어놓고 소원도 빈다.


이 책에는 커다란 팽나무 한 그루가 나온다. 신성한 히을 가진 나무였지만 번개를 맞아 가지가 타고 부러진 후에는 마음에도 안좋은 일이 일어나고 나무의 신성한 힘을 믿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든다. 그래도 늘 잊지 않고 찾아오는 이가 있으니 이 나무와 오랜 인연을 맺어 온 고구마할머니이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팽나무에게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주는 아기 박새도 있다. 팽나무는 번개를 맞은 후 예전의 위용과 신성함을 잃어버렸지만, 고구마할머니나 박새에게는 팽나무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처음에는 성준이의 성장소설이 아닐까 하며 읽다가, 주변인물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집중력은 좀 떨어지는 감이 있다. 팽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박새로부터 전해들으면서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결국 이 책에 나오는 인물(박새와 나무도 포함하여)들은 모두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맨 마지막에 성준에 의해 살아있는 나무가 아닌 또다른 존재로 되살아나는 팽나무 역시 그러하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들처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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