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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몰리라는 여자의 죽음 이후 그녀의 장례식에서 몇 명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한 여자의 애인이었던 남자들, 그러나, 그들은 숨겨진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들이 몰리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큰 충돌 없이 지내왔다는 점에서, 몰리, 그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 이야기는, 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몰리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몰리라는 여자에 대해 큰 관심이 생겼다. 그녀는 어떻게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해온 것일까? 그녀의 죽음 이후 그들의 관계는 크게 금이 가면서 각자의 치부를 드러내게 된다. "재치있는 레스토랑 비평가이자 사진작가였고 대범한 정원사였으며 외무장관의 정부였던 여자"(p.13). 몰리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다. 클라이브 린리, 버넌 핼리데이, 조지, 가머니, 이 네 남자는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이다. 그런데, 몰리의 죽음이 가지고 온 파장은 한 여자의 죽음 이상이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어느새, 클라이브와 버넌으로 좁혀진다. 사실 그녀의 죽음은 죽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진. 그 사진으로 인해 네 남자가 얽혀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음악적 성취를 위해 범죄의 현장이 분명할 것 같은 모습도 무시하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클라이브, 그렇지만 그가 막 끝낸 악보는 엉성하기 그지없다. 몰리의 유품에서 나온 사진을 이용해 출판부수를 늘릴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는 버넌, 직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을 진행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사생활을 까발린 저급한 편집자로 몰락하는 것이다. 또한 몰리의 남편이자 부유한 출판업자인 조지도 사진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파렴치한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사진의 주인공인 외무장관 가머니 역시 그의 부인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지만, 스캔들에 휘말렸던 사실은 그의 정치적 생명을 끝장내버린다.
사람들은 제 잘못은 잘 발견하지 못하지만, 남의 잘못은 잘도 찾아낸다. 어쩌면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사생활까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까발리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남이 발견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동조할 마음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신으로는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경우 이런 상황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나 자신도 여기서 에외일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느 하나를 위해서라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한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세상이 이렇게 양자택일의 관계로만 구성되어잇다면 얼마나 살기 싫은 곳이겠는가? 때로는 다르게 생각해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게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위인으로, 이 시대의 인물로 추앙을 받는 것은 역으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쨌든, 클라이브나 버넌은, 자신의 소신, 아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자기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그들이 결국 암스테르담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 자신들에 대해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참으로 내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