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 벌타령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2
김기정 지음, 이형진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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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그림책을 통해 만나는 전통문화(혹은 풍습)은 재미있고, 신이 난다. 아이들이야 처음 만나는 것이니 즐겁고 신이 나는 우리 옛 문화를 만나는 것이고, 고리타분한거라고 여기고 살던 어른들에게는 다시 보는 문화가 될 터. 이렇게 신나고 재미난 것이 바로 우리가 숨쉬고 살아온 이 땅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장승. 관광지 혹은 문화재로 지정된 곳, 또는 인위적으로 만든 툭제장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지도 오래다. 예전에는 마을어귀에서 마을사람은 물론이고 오고가는 길손들까지 보호해주던 것인데, 도로가 생기고, 마을이 변하면서 장승은 보기 힘들어졌다.

 

이 책을 펼치면, 팔도장승들을 다 만날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나무를 깎아 만든 장승 외에도 돌미륵, 하루방까지도 다 장승의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마을어귀에 세워져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것들을 모두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싶다. 내게는 장승이라는 말보다 벅수라는 말이 더 가깝게 여겨진다. 경상도에서는 장승을 벅수라 불렀다.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게으름뱅이 가로진이가 어미 성화에 못이겨 나무를 하러갔다가 실컷 자고 돌아오다가 장승을 나무땔감으로 쓴답시고 쑥 뽑아온 게 화근이었다. 비바람 맞아가며 마을사람을 보살피느라 고생한 장승이 하루아침에 나무땔감이 될 상황이다. 가로진이의 어미는 기겁을 하고 놀라지만, 정작 가로진이는 생각이 없다. 소식을 들은 우두머리 장승이 팔도장승을 다 불러모아 가로진이를 혼내주기로 하고 팔만가지의 병을 가로진이에게 바른다. 게으르고 쓸모없는 자식이지만 그래도 어미된 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 정성으로 장스을 다시 세운 후 가로진이의 병도 낫고, 게으름도 고츠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줄거리도 재미나지만, 제목처럼 타령을 구성지게 부르는듯한 이야기가 정겹다. "아침먹고 뒹굴, 점심먹고 빈둥, 저녁먹고 드렁" 마치 내 주위의 누군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하하하. 가로진이의 게으름에 속이 터진 어미, "징글징글 미운 내 새끼" 가로진이에게 나무 한 짐 해오라 시켰더니 대형사고를 쳤네. 뽑혀 온 장승이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그 내용인즉, 장승의 역할을 읊는다.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팔도장승들이 모여드는 장면에선 그림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 그들의 사투리가 정겨워 무서움은 잊혀진다. 장승들이 가로진이를 어떻게 벌줄까 읊어대는 소리는 한편으로는 무섭고 한편으로는 재미나다. "징글징글 미운 내 새끼"가 아프니 그래도 "내 살붙이 예쁜 아들"이라고 속내를 드러내는 어미. 벌받아 그냥 죽느니 착한 일로 죄를 씻게 해달라며 빌어 겨우 가로진이를 살려낸다.

 

참 재미있으며너도 장승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그림책이다. 이제, 어딘가에서 장승을 만나면 가로진이가 생각날 듯하다.

 

책의 마지막에 장승에 대한 정보를 짧지만 알차게 적어놓았다. 부모님이 먼저 읽고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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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앵거스 - 사랑과 꿈을 나르는 켈트의 신 세계신화총서 7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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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의 세계신화총서는,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기다림을 행복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 작은 사이즈와는 달리 세계의 신화를, 아니 세계를 품고 있다. 마치 어린 시절 시리즈 만화책의 다음 권을 기다리듯 그런 기다림을 알게 해 준 시리즈다.

이번에는, 켈트신화란다. 신화에 대한 관심 역시, 편중이 심하여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내게 새로운 신화가 다가왔다. 켈트신화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기대를 갖게 되고, 신화의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낯설지 않음을 느낀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꿈꾸는 앵거스와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켈트신화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이 책 속의 이야기도, 앵거스가 소설속 현실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앵거스는 다녀간다.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그 사랑이 어떤 형태로 발현되든간에 앵거스 불러온 꿈과 함께..

나도 한때는, 지독하게 사랑을 믿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뭐 그다지 독실한 추종자는 못되지만, 사랑을 조금 알 것도 같다. 사랑은 꿈과 같다.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잡힐것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 현실세계와는 달리 내가 주인공이 되는 꿈처럼, 사랑에 있어서도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것. 앵거스가 불러온 사랑은 꿈처럼 아련하다.

소설 속에는, 앵거스 신화와 더불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쳐질 듯 겹쳐질듯 전개된다. 특히 돼지를 사랑한 앵거스 이야기는 묘한 느낌을 준다. 인간이 돼지로 변해 살아간다는 신화적 이야기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조직을 이식받은 돼지의 이야기는 인간을 위해 희생된 동물실험의 대상이 된 수많은 개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어머니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가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를 미워하고 자신이 친아들이 아닌 사실, 그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좋아하는 모습에 섬찟함을 느끼기도 한다.

특별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아니, 신화가 꼭 교훈을 주어야한다고 누가 그랬나?) 앵거스가 꾸게 하는 사랑의 꿈은 다양한 현대적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나 재미를 더한다. 그랬다. 이 책은 한마디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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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때 들려주는 5분 구연동화 100가지 이야기 - 이솝우화 구연동화 잠들 때 들려주는 5분 구연동화
이옥선 지음, 이시현 그림 / 세상모든책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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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한솔이가 잠이 늦게 드는 바람에, 잠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어떤 책을 읽어주면 좋을까를 많이 고민했었다. 그래서 그동안 아이가 잠을 일찍 잘 수 있게 도와주는 책들을 주로 보았는데 이 책은, 잠이 들게 하는 동화라기보다는 잠자리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어느 정도 잠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구분하는 아이라면 나이가 어려도 읽어줄만 하다. 물론, 잠들기 전에 이런 책을 읽어줌으로써 잠잘 시간이라는 걸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드는 시간까지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낸다. 성인이 된 우리는 생활에 치어 이것저것 일을 하다 잠이 들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공부에 놀이에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하루종일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정작 하루를 정리해야 할 시간을 놓치고 잠이 들기 일쑤다. 불을 끄고 누워 있는 시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 부모님들이 많다. 그것은, 아이와 부모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해 줄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잠들기 전의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그러면 어떤 책을 읽어줄까?

 

이 책은, 일단, 구연동화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 참 좋다. 특별히 구연동화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좋다. 왜냐면, 간단하지만 구연동화의 형식을 빌어 책을 읽어줄 수 있도록 알찬 팁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정식 구연동화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안성마춤이 아닐 수 없다.

 

그 다음은, 이야기가 대부분 3분에서 5분 사이에 끝이 나는 길이일 뿐 아니라 내용도 아이들에게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내용이어서 좋다. 부모는 부담없이 읽어줄 수 있고, 아이는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 내가 중학생때 학교에서 방송으로 하루에 하나씩 탈무드를 읽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탈무드의 짧은 글을 하루에 하나씩 듣다보니 생각꺼리가 제법 많이 생겨나고 배움도 많이 얻었었다. 지금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것도 그런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긴 글을 읽지 않더라도 생활의 지혜,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들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관찰력, 사회성, 탐구심, 창의성, 도덕성 등으로 구분된 이야기를 돌아가며 하나씩 읽어준다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부터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100가지나 되는 이야기가 옛이야기, 신화, 우화, 창작동화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 구연하기 위한 팁 외에 포인트가 있어서, 아이와 어떤 대화를 하면 좋을지 조언도 해주고 있으므로, 아이와 잠자리에서 책읽기에 부담을 느낀 부모라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 스스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한솔이는 너무 어려서 내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을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구연동화의 장점만을 취해 읽어주었다. 그렇게 하루이틀 연습이 되면, 나중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때가 오면 더욱 자연스러워지리라 생각한다.

 

한 권의 책 안에 많은 내용을 담았기 때문에 책이 크고 무거운 것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누워 있는 아이 옆에 앉아서 들려주기에는 무리가 없다. 어떤 책을 읽어줘야 좋을지 고민하는 부모, 구연동화에 낯선 부모에게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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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들려주는 홍길동전
최태림 지음, 김고은 그림 / 세상모든책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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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책들이 좋은 점은, 한국의 고전을 저자의 생애와 더불어 읽음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허균이라는 인물과 허균의 대표적인 작품인 홍길동전을 함께 읽으니 허균이 왜 홍길동전을 썼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전기만을 접할 때와 작품만을 접할 때가 다르고, 전기와 작품을 같은 줄거리 안에서 접할 때는 또 역시 다르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아주 유용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다보니, 얼마전 읽었던 허난설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에서는 허난설헌을 아주 잠깐 언급했을 뿐이지만, 허균이 허난설헌의 작품을 모아 책으로 엮게 된 일화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랬을것이다. 허균이 허난설헌의 작품을 모아 전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문인과 교류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작품을 우리는 접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다음, 허난설헌의 이야기인 [스물일곱송이 붉은연꽃](일마)이라는 책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꿈, 이것은 허균의 일생과 더불어 홍길동의 운명까지도 함께 생각하게 한다. 한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 자질을 꽃피울 수 있는 시대를 함께 타고 나야한다. 한편으로는 시대탓을 하기에는 나약한 면이 있으나, 세종 대에 장영실이, 박연이,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던 것도 세종이라는 성군을 만나서가 아니었던가? 허균이 광해군 대가 아니라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허균의 홍길동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종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종이라는 성군이 치세를 하던 시대에 서자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홍길동.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유교적 전통이 확립된 시기가 세종 때라고 한다. 천민출신까지도 기용해서 일을 맡겼던 세종이지만, 바로 그 세종이 맏이든 아니든, 적자이든 서자이든 상관없이 집안을 이어받던 관습을 적장자 계승제로 바꾸고, 남자가 여자집으로 장가들던 풍습을 여자가 시집을 오는 방식으로 권장하고, 과부의 수절을 반드시 지켜야할 미덕으로 (왕의 투쟁, 페이퍼로드, p33)여기게 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시대에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하였다.

 

허균 자신은 서자 출신이 아니었으나, 그의 스승과 그의 벗들을 통해 그 불합리함을 많이 본 듯하다. 성리학적 지배체계하에서 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파직과 등용을 되풀이하던 허균도 여러가지로 답답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허균이 원하는 세상을 길동이 만들어줄까?

 

길동은 마지막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왕이 되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의 우애를 두텁게 하였다고 허균은 말한다. 허균의 가족사를 볼 때 부모와 형제간의 관계를 다룬 것은 이해할만하다. 또한 허균이 원하는 세상을 길동이 세운 나를 통해 보여주기도 하였다.

 

허균의 생애 후반을 살펴보면, 허균 역시 광해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한 채 죽어야 했지만 말이다. 허균의 생애와 홍길동전을 같이 읽음으로써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홍길동이라는 인물과 허균이라는 인물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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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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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투쟁,

나는 투쟁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멀리하는 편이다. 사전적으로는 뭔가를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이라 정의할 수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투쟁은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 혹은 독립운동 등에서 뭔가를 얻기 위해 싸우는, 고통을 수반한 싸움으로만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없는 투쟁, 피가 없는 투쟁은 내 기억에 없다. 그래서일까? 절대권력을 휘둘렀을 것만 같은 왕들의 투쟁이라니, 도대체 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걸까?

 

더군다나, 이 책에 소개된 왕들은, 우리가 내심 잘 안다고 자부하는 왕들이 아닌가? 세종대왕의 고명이야 모르는 이 없을테고, 최근 정조의 인기몰이는 그 어떤 때보다도 활발하고, 연산군과 광해군은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왕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들 네 사람을 하나의 책으로 묶었다는 게 신기하고, 그들을 통해 살펴볼 정치투쟁이 궁금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미디어의 인기를 등에 업고 세종대왕과 정조를 앞세운 다음, 연산군과 광해군이라는 양념을 친 책이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들었으나, 책을 읽는 동안 그러한 의심은 싹 사라졌을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를 막 치룬 후 새 지도자에게 바라는 정치상을 읽을 수 있었으니, 참 시기적절한 책이 아닐까싶다. 의외로 만족스러웠던 책이다.

 

1부에서는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를 차례로 다루며 그들의 정치투쟁을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앞서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4명의 왕을 비교 검토 분석하고 있는데, 1부가 새로운 역사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2부는 왕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만한다.

 

이 책에서는 태종을 뛰어난 정치와 역사 감각의 소유자로 본다. 대조적인 성격의 두 아들, 양녕과 충녕을 저울질해보는 태종. 무인타입의 양녕을 왕으로 삼아 북방으로 치고 올라가 제2의 고구려를 꿈꿀 것인가, 책밖에 모르는 충녕을 왕으로 삼아 태평성대를 이루어볼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양녕이 스스로 충녕에게 왕위를 양보했다는)와는 조금 다르지만, 태종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는, 현대의 정치판과도 다를 바 없다.

 

세종은, 처음부터 학문에 뛰어난 왕은 아니었다. 워낙 책을 좋아하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덕에 나이가 들면서 뛰어난 학문적 식견을 가질 수 있었던 왕이다. 그의 리더십은, 위임할 수 있는 행정업무는 최대한 위임하면서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다는 데서 볼 수 있다. 아무리 본인이 뛰어난 식견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하여도 그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그들의 성과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모습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세종대에 이루어진 수많은 업적들이 그런 데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연산군, 이 책에서는 연산군의 잘못을 그가 저지른 일보다 하지 않은 일에 있다고 본다. 즉, 초기의 조선에 비해 안정되고 특별한 개척이 필요없던 시절이라 쓸데없는 일을 물고 늘어지는 일이 많돈 시절이었다. 신경을 써야 할 급한 일이 없으니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형국이다. 이럴 때, 연산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만들고 프로젝트를 지시했다면? 아마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역사에 만일은 없지만. 여기서 최고권력자를 위한 저자의 한마디, [아무리 신하들 등살에 "임금 못 해먹겠다"는 심정이 들더라도, 왕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나도 모르겠다고 돌아설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설득하고 구슬러서 일이 제대로 돌아가게끔 노력했어야 한다.](p.103)

 

광해군, 시대의 불운아라고 할 만하다. 국가재건을 위한 광해군의 개혁조치는 방향이 바로 잡혀 있었고, 많은 실질적 성과 또한 거두었다(p.162)고 하지만, 그것은 초기 몇년에 해당하는 일이다. 신하들의 당쟁과 반목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닌 광해군은 리더십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정조에 대해 내가 몰랐던 사실 중에 하나는 그가 천재군주였다는 사실이다. 세종이 꾸준히 노력하여 중년이후에 대성하는것과는 달리 정조는 젊은 나이에 이미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내용을 떠나, 이 책의 재미는 2부에 있다. 물론 1부에서 보여 준 왕들의 정치투쟁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들도 재미있지만, 전혀 다를 것 같은 네 사람을 비교하고 분석한 2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선의 왕이 마땅히 해야 할 네가지 노릇, 신하와의 경연 / 제왕의 취미생활, 왕의 여자 / 왕과 언론, 왕의 인사권 행사, 왕의 형벌권 행사 / 서책간행 / 시대와 호흡하는 왕의 평가로 나누어지는 2부는 그 소제목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 / 는 개인적으로 구분해본 것임). 표로 정리된 자료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지도자는 자신이 계속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자기연민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훌륭한 지도자일 수 없다. 아니, 평범한 지도자조차 될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감히 못하는 일을 지도자에게는 기대한다. 그것이 아무리 터무니 없고, 지도자도 역시 인간일 뿐임을 무시하는 태도라 해도.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자 힘껏 노력하는 자만이 진정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p.320)

 

왕의 정치투쟁사를 살펴봄으로써 현대의 정치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민생은 제쳐두고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때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지도자가 그리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늘 달랐다. 그랬기에 그가 치중한 분야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성군이며 대왕이라고까지 부르는 세종도, 국방외교분야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모든 것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특정 분야에서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고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지도자는 패배자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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